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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에스터 빌라 지음, 안인희 옮김 / 시유시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원제는 [Heiraten ist unmoralisch].
"결혼은 비도덕적이다".
이 책은 "세다".
통렬하고 신랄한 비판과 비난,
선각자인지 또라이인지 헛갈릴 정도의 위험수위,
확고하고 뚜렷한 대안 제시.
여자건 남자건,
결혼을 한 사람이건, 하지 않은 사람이건,
결혼을 할 사람이건,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건,
이혼을 할 사람이건, 이혼을 하려는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이 책은 편하지 않다.
뜨끈한 방바닥에 배깔고 누워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마초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박수를 치며
" 그래, 맞는 말이다,맞는 말!
이런 정신 똑바로 박힌 여자들이 있어야지."
할지 모른다.
하지만 에스터 빌라가 제시한 대안을 보면 "아차!"할 꺼다.
에스터 빌라는 결혼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여자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얼마나 남자들을 착취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결혼이 얼마나 악랄한 제도인지 피 튀기며 성토하고 있는 듯 하지만,
에스터 빌라가 말하려는건 "결혼하지 말자!"가 아니다.
기존 결혼제도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폐단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
그 방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피 튀기며, 오버까지 하며 난리를 친거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결혼한 여자들의 "희생"과 "상실"을 성토했다.
에스터 빌라는 이에 코웃음을 치며 "결혼은 사업이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자기 보존'을 위해서, 즉 경제적으로 부양 받기 위해서,
남자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 즉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고...
에스터 빌라는 물론 여자들의 성적 욕망을 인정한다.
여자들은 남자를 선택할 때,
"성적 능력"과 "경제적 부양 능력" 둘 다를 따지지만,
둘다 갖춘 남자는 극히 드물므로 성적 능력이 좋은 쪽보다는
부양 능력이 좋은 쪽으로 기우는 것이란다.
뭐...이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외모에 목숨 거는데 비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 즉 선에서 남자의 외모를 첫번째 조건으로 여기는 여자나 여자의 부모는 거의 없다.
많은 경우, 돈이 헉 소리 나게 많으면 대머리도 용서된다.
돈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많고 능력 있는 남자라면,
대머리+ 15살 연상 + 숏다리 + 비만까지도 다 용서된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리 돈 많고 능력있는 여자라도,
심지어 여자가 대기업 CEO더라도,
남자 보다 15살 많고, 같이 다니기 쩍 팔리게 생긴 여자랑 결혼하면서,
자랑스러워할 남자는 별로 없을 꺼다.
뭐 무너진 집안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한 인생 희생하는 남자 정도는 있겠지만...
"결혼 잘했다"는 말도 남자, 여자 구분해서 적용된다.
여자의 경우,
"그집 딸, 참 시집 잘 갔어." = "그집 딸, 진짜 부잣집에 시집갔어."
가 대부분 적용된다.
작년에 사촌(여자)이 한 기업 총수의 손자랑 결혼을 했는데, 그 때 집안이 법석법석 장난 아니었다.친척들은 "넌 여태 뭐했니?" 이런 무언의 압력을 내게 보냈다.정.말.짜증났다.
남자의 경우, 특히 결혼이 늦은 경우,
"그 친구 대박 터뜨렸어" = "여자가 10살이나 어려.도둑놈"
이 적용된다.
나이 차이가 많은 여자랑 결혼하면 그게 대단한 자랑이 된다.
에스터 빌라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남자는 나이도 상관없고 외모도 상관이 없다는 소리를 떠들고 다닌게 대체 누구시며,오르가슴도 채워 줄 줄 모르는 늙다리들한테 정말 죽여 주는 아저씨라고 야무지게 내숭을 떤 게 다 누구란 말인가? 아니 장관 나으리라면 노친네라도 개의치 않고 한침대에 누워, 그 남자의 권력이 정력도 채워 주는 걸로 착각하게 만들어 놓은게 다 누구신가?....(중략)....
모두 우리 여성들이다.게다가 너무나 괜찮은 여자들이 그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그런데 우리는,자신의 살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먹는 이 여자들과는 경계를 긋지 않은 채 언제나, 남자들만 욕하곤 한다.능력있는 남자를 골라 사랑에 빠진 척 눈속임을 하고는 그 남자의 부인이 되고 마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유도하는 그 능력 있는 남자들만을 욕해 왔다.(p112~113)
남자들을 그렇게 착각하게 하는게 누구냐?
남자들만 싸잡아 비난하지 말고 여자들이 변해야 한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에스터 빌라의 일관된 주장이다.
사실...읽으면서 뜨끔했다.
능력있는 남자를 골라 사랑에 빠진 척 하는 여자들.
어디 한두명이냐? 주위에도 널렸다.널렸어....씁쓸하다.
에스터 빌라는 여자들에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몇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여성의 돌파구'라는 장에서 무려 25가지의 방법을 설명했다.)
그 중 눈에 띄는거 몇가지.
1.소신 있는 여성은 아예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정말 뚜렷한 명분이 있을 때만 결혼을 한다.
2. 소신있는 여성은,모든 사정을 고려해도 역시 결혼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을 경우,이 남자가 혹시 돈이 너무 많거나 나이가 많거나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 아닌지를 꼭 따져 볼 것이며,이런 조건에 걸리는 사람과는 결코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이는 무엇보다 그 남자에게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며,여성 전체의 명예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이런 식의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여자들이란 늙은 부자한테 혹은 유명 인사한테 제 젊음을 팔아 넘기는 존재들이란 소리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4. 결혼을 결정한다 해도 요란히 잔치를 하며 이런 주접스런 일을 세상에 떠벌리지는 않을 것이다.
7. 소신 있는 여성은...... 서른이 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
아울러, 남성은 수명도 짧고 또 성적인 능력도 일찍 노쇠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소한 몇년은 연하의 남자를 선택한다.그리고 혹시 재정상의 문제에 부딪힐 경우 당연히 그 남자를 '부양할 용의'가 있다.
8. 소신 있는 여성은 나이를 물어도 절대 모욕당한 느낌을 갖지 않으며,아주 당연하게 실제 나이를 그대로 가르쳐준다.그렇지 않을 경우,나이가 들면 여성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심어 주어 여성 전체의 위신이 깍일 수 있기 때문이다.아울러 젊어 보인다는 인사말일랑 철저히 무시해 버리면,상대가 '젊어 보이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p197~200)
아....에스터 언니...쿨하다.정말 세다.
에스터 빌라는 기존 결혼제도를 맹렬히 비난한다.
능력있는 남자를 물어서 평생 편하게 살려는 여자들을 무섭게 욕한다.
그리고...요구한다.
우리 여성으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게드는 이 사회가 나쁜 것이다.남자들이 현재 독점한 권력의 절반을 우리에게 정식으로 넘겨 준다면 우리도 아마 다른 식으로 대응할는지 모르지만 현실은 현실일 따름이다.(p161)
에스터 빌라의 주장은 간단하다.
여자,남자 다 함께 일하자.
어떻게?
일일 5시간,일주 25시간 노동제
기존 결혼제도의 문제점은 남녀의 사랑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을 없앨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랑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일이 없어져야 하며,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그러나 이는 우리 노동 시장이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출 때 완성된다.
가) 남성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가지고 여성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나) 남성에게 팔려 갈 필요가 없을 만큼 여성의 수입이 좋아져야 한다.
이 책의 단점이 있다면,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거다.
에스터 빌라는 기존 결혼제도는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왜? 여자가 알콜중독이나 범죄자가 아닌 이상 여자에게 양육권이 100% 보장되니까...이혼을 하게 될 경우 남자들은 집에서 쫓겨나 양육비를 부담하면서도 아이들을 한달에 몇번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니까....혼외 자녀일 경우 엄마의 허락 없이 남자는 아예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없으니까...
이런 많은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는 "부양의 의무"가 있으니까...
에스터 빌라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이런 소설을 읽으면 기절할 꺼다.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한번 보지도 못한 아이를 부계에 입적시키고, 엄마에게서 합법적으로 뺏아 올 수 있다는걸 알면....
" 아니....그런 나라도... 있단 말이예요? "
이렇게 말하지 않으까...
이 책...읽는 내내 불편하긴 하지만,정말로 생각할 거리가 가득하다.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