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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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 익숙한 생활반경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 비교적 쉽게 얻을수 있는 일탈ㅡ일상에서의 탈출. 언제부턴가 여행은 여가를 보내는 꽤 흔한 방법이 되었고,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매일 수많은 여행경험담과 이런저런 꿀팁들이 쏟아져나온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여행지의 흔적을 남기는것이 너무도 쉬워졌기에, 인터넷 클릭, 스마트폰 터치 몇번으로 마치 직접 다녀온것마냥 현지의 풍경이나 날씨, 에피소드들을 넘쳐나게 찾아볼수도 있다. 어지간한 관광지는 구글맵으로 골목골목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지만. 아무래도 간접경험만으로는 뭔가 성이 안차서 기어이 비행기표를 끊고 짐을 싸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곳에 발 딛고 숨을 들이켜야만 아, 여행을 왔구나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이다. 낯선 시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감.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둘러싸인 고립감. 위화감. 신선함. 설렘. 그 모든것들. 


김영하 작가를 처음 알게된 것은,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방송에 잘 나오지 않는 황교익 선생과, 작가라는 말이 영 어색하던 유시민. 정재승 박사, 유희열 가수까지 뭔가 참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장황하면서도 밀도있게 이런저런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것이 나름 재밌고 신선했었지. 당시 영화로도 제작된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어보고 아, 이 작가 꽤 재밌는 사람이네 싶었지만 추가로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었다. 순전히 나의 게으름덕에, 의무가 아닌 유희로서의 독서와 멀어진지 꽤 되었기 때문인데. 어쩌다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예약구매 한정판이었던 "첫문장 노트"에 대한 물욕이 범인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노트는 역시나 한줄도 채워지지 못한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사실, 차고 넘치는 것이 여행기고. 한때는 여행기를 읽는것으로 여행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었으나. 어딘가 뻔한 여행기들에 지쳐서 그마저도 읽지 않은지 좀 되었다. 마음의 말랑말랑함이 굳어져가고 있다 해야하나.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여행기는 아니고 여행에 관한 작가의 에세이인데. 김영하 작가라면 그 흔한 감성뚝뚝 핑크빛 보랏빛 여행담이 아니라 뭔가 좀 재밌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내 기억속의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에서 봤던ㅡ어딘가 시니컬하면서도 찌그러진다 해야하나? 비대칭적인 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이 에세이의 첫 장은. 한달 계획으로 소설 집필차 떠난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비자를 미쳐 준비 못해서 (아니, 중국도 비자가 필요해요? / 한국 국민인데요. 비자 필요한가요? 대목에서 작가 목소리 자동재생..)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추방당하는 경험담. 여느 뻔한 여행기라면 마음씨좋은 공안요원을 만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푸동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와야 수순이겠지만, 사람좋은 미소만큼 좋은(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그 공안요원은. 곰 아저씨 같은 푸근한 미소를 연신 지으며 이런저런 서류들에 싸인을 시키고. 자연스럽게 한국행 출국 비행기표를 결제시키는 것이다. 그 와중에 현금으로 결제할지 카드로 할지 물어보는 직원과, 잠깐의 고민끝에 그나마의 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카드를 선택하는 장면. 아 시작부터 이런 블랙코미디스러운 장면이라니. 


첫 장거리 비행. 해외여행에 서툴렀던 나는, 며칠간 stop-over하는 한 도시에서 입국심사관의 당황스런 질문에 어리버리 답하다가. 앞의 여행객들처럼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고 어쩐지 무시무시했던 옆 골방같은 사무실로 불려가 이런저런 서류들(호텔, 비행 예약 서류들 등)을 내밀고 나 여기 불법체류자로 일하러 온거 아니니까 어서 보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공항밖으로 나올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라면 마음의 여유도 삶의 여유도 생겨서 그런 별거아닌 에피소드에 마음 졸이지 않겠지만 당시는 행여 뭐가 잘못될까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피식피식 웃었더랬다. 2005년 푸동 공항의 김영하 작가도 뭐 결국 추방당하긴 했지만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며 무겁지 않게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늦은 저녁 서울에 도착했고. 중국이야 비자를 받아서 다시 가면 되는 거였지만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소설을 쓰기로 했고. 결과적으로는 "소설이 완성되는 배경"으로서 한달 중국생활이 "내방 여행"으로 바뀐 것일 뿐 크게 달라진것이 없다는 대승적 합리화로 귀결되는데. 그 와중에 첫 해외여행이었던 대학생때의 일명 "사회주의 제대로 알기 패키지 여행"이었던 단체 중국 여행 에피소드들과. 우연히 함께했던 서대문경찰서 안형사님과의 소설같은 인연 등등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어쩌면 스스로 마음 깊은곳에서 중국에 다시 가는것을 거부했을수도 있다. 때문에 중국 입국에 비자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최소한의 노력도 일부러 하지 않았던 것이고, 추방당해 어쩔수 없이 돌아간 집에서 오히려 안온함을 느끼고, 비자따위 요구하지 않는 나 자신만의 세계로 마음껏 침잠하였다는, 소설가스러운 서술로 에피소드를 마친다. 여기서 여행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정리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의 이유, p.51)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구체적인 여행의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에서의 벗어남. 일상의 부재, 가 아마 큰 포션을 차지할 것이다. 낯선환경이 주는 긴장감은ㅡ 그 낯섬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적당한 자극이 될테니까. 여행을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여행은ㅡ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돌아갈 곳이 있는 안전한 일탈. 내 귀한 돈과 시간을 기꺼이 쏟아부으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 일종의 사치.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자극에 (비교적 안전하게) 노출될수 있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여행 자체가 현재의 생생한 삶이 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한 해에도 여러차례 여행을 떠나온지 벌써 이십년이 넘었다는 이 작가는,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던 유년을 상기하며. 본인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읊었음직한 대사를 늘어놓는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p.60) ...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 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 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 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 그러나 곧 또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p.61) 


아마도 작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준 '알쓸신잡'의 여행들에 대해서도, 따로 한 장을 할애해 정성스럽게 이야기한다. '알쓸신잡'은 아마도 새로운 예능의 한 장을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을텐데. 한명 한명이 박학다식하고 어쩐지 재미없는 얘기들을 늘어놓을것 같은 잡학박사들을 함께, 또 따로 여행을 시키면서 그들이 갖고있는 다방면의 지식들을 풀어놓으면서도 적절한 편집의 묘미로 시청자에게 재미+교양의 두 측면을 적절히 충족시켜 준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었다. 정해진 대본대로 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는 잡학박사 본인들도, 촬영자들도, 편집자들도 알수없다. 각자의 한나절, 혹은 하루 분의 여행기록을 적절히 편집하고, 사실확인도 하고, 방송을 위한 시청각 자료들도 넣고 그렇게 완성된 형태로 방송으로 나가지만. 김영하 작가 본인도 방송을 보기전까지는 스스로의 여행만 알 뿐이고, 같은 여행지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겪었던 같은 하루는 완성본을 봐야 비로소 알게되는 것이다. 서로의 하루를 모르는 상태에서 저녁에 모여 각자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함께 여행을 갔지만 각자의 여행이야기를 듣는것이 또다른 여행의 한 면을 완성한다. 어쩌면 이 여행에 대해 가장 포괄적으로 잘 알게 되는 사람은 시청자일 것이라는 아이러니. 각자의 여행경험이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오히려 명확해지는 역설. 바로 여행기나 여행 프로그램들이 주는 "간접 여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타인의 시선으로 미리 본 여행지와,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 그리고 여행 이후 다시 마주하는 간접경험들이 켜켜이 쌓여서 비로소 특정 장소에 대한 여행 경험이 완성된다는 말. 이것은 책을 읽을때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겠다. 한권의 책을 온전히 읽어내는 것은. 작가가 경험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나의 경험치와. 또 다른 독자들의 경험치가 얹어져서 적절히 혼재되고 숙성되어야 완성될 수 있다. 잘 만든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 여러 비평들과 이차 창작물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섞어 여행자가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신뢰와 환대"에 이야기 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여행하는 동안 적지않은 호의를 받았다. 물론, 뜨내기 여행자를 어떻게든 잘 벗겨먹으려는 현지인들의 바가지나 농단에 휘말린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낯선곳에서 나를 모르는 이가 그저 호의로 베푸는 작은 행위들은, 익숙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호의들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오고, 마음에 오래 남기 마련이다. 실수로 두고온 머플러를 찾아주기 위해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던 식당 종업원. 길을 읽고 어쩔줄 몰라 하는 나를 굳이 시간을 내어 목적지에 데려다주던 사람들. 말도 통하지 않는 식당에서 그저 자기 나라를 찾아온 관광객이라고 자기돈으로 메뉴를 주문해주던 어느 손님들...물론 내가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도 있다. 쨌든 여행지에서 마주한 소소한 호의들은. 삶에 찌들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성선설따위 세상 물정 모르는 여유로운 사람이나 하는 말이라고 한껏 시니컬해지던 나에게 힘든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고. 어쩌면 그것들이 다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두렵지 않게 만드는 자신감의 원천일수도 있겟다. 



책을 읽고 무언가 기록물을 남기는 것이, 대체 몇년만인지 가물가물하다. 공간 등의 문제로 가뭄에 콩나듯 사들이던 책들을 처분해야하는 상황에서. 중고책으로 내놓기는 어쩐지 아쉬워서. 직장 공용책장에 두기로 했다. 내 손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조금 더 오롯이 이 책을 마음에 남겨두고자 이렇게 끄적이고 있다. 이 책을 읽을/읽은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기록물 역시 그의 독서에 한겹 쌓이는 흔적이 될테니. 이렇게 나의 독서도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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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EBS야! - EBS 수능 외국어영역 교재의 치명적 오류들
정재영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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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인이 쓴 책이다. 베네수엘라에 있을때 파일로 최종편집본을 받았다. 읽어보고 괜찮으면 리뷰를 써달라는데. 솔직한 말로 별로 쓸 생각이 없었다. 다른 좋은 책들 리뷰도 이래저래 못쓰고 있는데 '학습서'류의 리뷰까지 써야하나? 이런 마음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심심풀이로 읽어보다가..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영어책이 아니다. 교양서이자 논리적 사고를 키워주며 사회비판력까지 쑥쑥 키워주는 '불온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대상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다. 수능이 코앞인 학생들은 책 뒤에 실린 권말부록(지문 오류목록,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어휘목록, 막판 영어 공부법)정도가 막판 마무리에 도움이 될 터이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교육 문제의 핵심은 서열화된 대학과 그 통과의례로서의 수능시험이다. 한 문제로 대학(과,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길)이 갈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시험점수와 등급에 쩔쩔매는 수험생들을 어여삐 여긴 높으신 분들이 EBS와의 연계 강화라는 해결책을 내 주셨지만 지난 몇 년간 그 '연계'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호라 그래서 내 놓은 야심작은 70%연계와, 고난이도 문제역시 EBS에서 출제하겠다는 강한 의지! 그래서 지난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오답률이 높았던 리딩 지문 5개는 모두 EBS출신들이었고 듣기에서도 14개 문항이 EBS교재와 완전히 동일하게 출제되었다. 이 정도면 '확실한 연계'라 할만하다. 

 아니, EBS연계가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묻고싶다. 수능 외국어영역 대비는 '영어 학습'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을 위한 것이지 'EBS 지문과 친해지기'가 아니다. 실제 6월 학평의 경우 평소 영어를 잘 하지만 EBS교재로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과, 전자보다는 영어실력이 떨어지지만 EBS교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간에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교사와 강사들은 중위권 학생들에게 "교재 뒷부분의 우리말 해석과 해설을 열심히 읽고 시험장에 가라"라고 조언하기도 한댄다. 듣기의 경우 'FM 고교영어듣기'에서 다수의 문제를 동일하게 출제해버리고 난이도도 낮아지니 듣기 만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EBS교재만 몇 번 들으면 수능 영어 듣기 준비는 거진 되는 셈이다.  

EBS교재를 금과옥조로 여겨야 하는 현 상황에서 다른 중소 출판사들의 영어교재는 수험생들의 관심 밖이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신봉하는 현 정부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억압해서 결과적으로 '경쟁을 통한 발전'을 막고 있는 것이다. EBS교재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당신. EBS는 무려 60만 수험생들에게 '강매'되는 책이다. 학생들 개개인에게는 '저렴한 책'일지 몰라도 결국 60만 수험생들에게 "삥"을 뜯어서 특정 기업에 몰아주는 것이다.

중소출판기업들의 도산이나 EBS독점 자체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문제는, EBS 70% 연계로 과연 사교육시장이 줄어들었냐 하는 것이고, EBS교재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의 주장은 두 질문 모두 "아니오"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EBS 독해교재들은 교재의 완성도라는 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수준이 낮고, 독해 지문이 어렵다는 면에서는 수준이 너무 높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올해 출간된) EBS교재의 '우려할 만한 4가지 특징'을 보자 

 

1. 지문이 상대적으로 매우 길다.  

2. 어휘 수준이 상당히 높다. 

3. 전문성이 높은글이 많다. 

4.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지거나 근거없이 일방적 주장을 펼치는 수준 이하의 지문 역시 많다.

 

 상대적으로 긴 지문과 어려운 어휘는 영어공부를 힘들게 하고, 전문성이 높은 글이나 수준 이하의 지문들은 우리말 해설과 해석을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을 만든다. 이런 지문들이 많은 교재에서 70% '연계'된다면 EBS교재는 '달달 외워야'하는 '교과서'가 되고 수능영어공부는 '학교 내신'처럼 '외워서 푸는 시험'이 되어버린다. 학교 '교과서'는 오랜 제작기간과 이중 삼중의 검토, 검정을 통해 만들어 지지만 EBS교재는 매년 '전면 교체'되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기간동안 시간에 쫓기며 만들어진다. 공동 저자, 감수 등으로 올려진 이름은 수두룩하지만 과연 제대로 검토되었는지 의문스러운 '실수'들이 너무 많다. 단순한 오/탈자의 문제가 아니라 need to를 want to로 해석한다든지,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기엔 지나치게 전문적인 지문을 선정한다든지 등등 교재 제작에 있어 '기본적인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 70%를 내겠다고? 

수능, 은 이미 치뤄낸 사람이나 대학에 진학할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겠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모든 에너지를 입시에 쏟는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절실한 문제다. 그리고 '수능'이전에 행해지는 교육들은 '수능'을 잘 치뤄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아직 사고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논리력과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함도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 EBS교재는 이런 지문들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다.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당신의 대인 관계에 스며들어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수능완성 유형편 p24)  

 급진적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빈곤으로 고통 받는 국가들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감을 자극하여 결국 미국의 파멸을 추구하는 폭력 집단에 대해 호의를 보이게 할 수 있는 에이즈 전염병을 인지하고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중략)...이 끔찍한 질병의 추가적 확산을 막는 것을 도움으로써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아프리카에 안전하게 은신할 곳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수능특강 p.18)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 "님, 차라리 그냥 조선일보 사설을 교과서로 삼지 그러세요?" 

 

스피노자의 사상을 인용한 지문, 에이젠슈타인의 작품에 관한 지문, "영화 기법에 대해 아는 것이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라는 요지의 예시로 히치콕의 작품을 드는 지문, '변연계', '뇌간'등의 전문적인 단어를 주석없이(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단어인 '대뇌 피질cerebral cortex'은 친절히 주석을!)포함한 글로 두뇌구조를 알아보자는 지문 등등. 우리말 해석을 봐도 갸웃갸웃한 지문들로 영어공부를 하자는 건 어떤 논리일까?  도저히 수능 수준이라고 볼 수 없는 단어들을 "수능 필수 단어"코너에 버젓이 실려 놓는 분은. 혹시 자신의 어휘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설마 어려운 글과 어려운 단어로 영어공부를 하면 학생들의 영어실력과 교양이 쑥쑥 동반성장 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은 아니겠지! 

책 안에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있다. <수능특강>의 단어 중 과도하게 어려워 보이는 수능 비기출 어휘 목록으로 서울대 인문대 어문계열, 서울대 의예과, 경희대 한의학과 학생들에게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한 것. 결과는?  정답률 17.5%. 50%를 넘긴 학생은 불과 네 명. 이 학생들은 아마도 수능 외국어 영역 1등급 상위권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런 학생들조차 거의 알지 못하는 단어들로 수능 대비 교재를 만들어 공부를 하랜다. 현 정권이 신봉하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 하에서는 자연 도태되고도 남을 교재다. 그런데 학생들은 어쩔수 없이 구매를 해야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어를 외운다. 대충 만들어도, 문제가 엉망이어도 60만 수험생의 '필수 교재'니까. 참 편한 책장사다. 

 이 책을 읽고 감동했던 것은, "EBS교재들이 엉망이다"라는 폭로 자체 보다는. 어떤 부분이 왜 부적절한지 성실하게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것. 범주의 혼동으로 인한 오류, 이랬다 저랬다 논리적인 일관성이 없는 지문들, '유사성과 대조', '반복과 귀납'의 차이를 무시한 연결사 문제 등등. 올해 시험을 봐야하는 학생들은 이 책 까지 볼 시간적/심리적 여력이 없겠지만 내년, 내후년에 수능을 볼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책 뒤에는 '엉터리 교재로 스마트하게 공부하는 법'이란 타이틀로 <수능특강>,<수능완성>의 오류목록 + 절대로 수능에 나올 수 없는 단어 목록 + 비기출 어휘 중 중요한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들의 구분 표가 실려있다. 올해 수험생들에게 이 권말부록만 복사해서 나눠줬으면 좋겠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EBS연계가 아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일단 사교육비는 개인간의 현금거래가 많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접근하기 곤란한 지점들이 있다. 2011년 2월 정부는 2010년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전체 인구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총액 감소는 별로 의미가 없다. (EBS교재 구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는 사교육비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단다.) 사교육비가 줄었다는 정부의 발표가 뻔뻔하다는 자유선진당의 논평이 책에 인용되어 있다.(p.197) 그렇다면 'EBS교재에서 70% 연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문제를 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문의 출처 보다는 체감 난이도가 더 중요하다. '교과서 연계율 100%'인 학교 내 시험은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을까?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EBS교재 지문들은 지나치게 어렵거나 논리가 뒤죽박죽이거나 여타의 이유로 우리말 해설과 해석을 봐도 혼자 공부하기 어려운 교재다. 독해만 해도 총 지문이 1000개가 넘는데, 학교에서 교과서를 무시하고 EBS교재 강의를 한다고 해도 소화하기 벅찬 분량이다. 학원가에선 "EBS 총정리 단기 특강" 등 EBS교재를 대상으로 한 강의들을 열고 학생들은 EBS교재를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원한다. 이 정도면 "사교육의 좋은 친구 EBS"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말미에는 '언어 영역' 비문학 문제 형식으로 한국 사회 교육문제에 관한 두개의 지문이 있고, 적절하지 않은 추론을 골라내는 세 문제가 있다. 세 문제의 정답은 모두 현재 '사교육 감소'의 명목으로 정부에서 실시하는 대책들이다.  

"프랑스의 대학 입학시험인 바깔로레아를 프랑스 국영교육방송 교재와 연계 출제하면 프랑스의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에서 각 과목 만점자가 1% 나올 수 있도록 출제하면 사교육은 줄어든다" 

"학원 수업 시간을 통제하고 입시제도를 바꾸고 영어 공교육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겠군" 

 

저자랑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침 EBS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민주당 의원이 이 책을 들고 EBS측을 공격했는데, 그에 대한 기사는 그 의원의 지역구인 '제주투데이'와 극소수 인터넷 신문에만 올라왔더랜다. 오호 이게 말로만 듣던 '차단'이구나. '서평'에 대한 의무감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던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십 수년간 사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사교육 감소'의 신성한 의무를 띠고 강림하신 EBS교재에 대해 이런 책을 쓴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긴 한국사회는 워낙 다이나믹 기상천외한 일들이 난무하는 사회니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서평의 90%이상은 책의 내용들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평'이라기 보다는 '발제문'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름 '수준있는'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 책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EBS교재가 사실 이렇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런식으로 반복되어야 하는 걸까요?"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교육문제는 수험생과 부모, 교육계 종사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중의 하나라고 인식하는 당신,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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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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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과 관련된 에세이 혹은 소설들은 대개, 사람을 설레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심지어 이별후 겪는 에피소드들까지. 헤어진 다음에 떠올리는 추억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게 윤색되는지. 내가 겪었던 사랑-이별의 추억도. 대개는 좋은 기억들로 덧칠되어 있다. '사랑'의 과정속에 겪었던 수많은 갈등과 굴곡. 이별후 그 기억을 떨쳐내기까지 지내야 했던 숱한 잠 못이루던 밤들의 기억ㅡ 소위,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마음 밑바닥에 꾹꾹 눌러 밀봉된지 오래.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사랑, 에 관한 기억 보다는. '그의 부재'를 견디는 기록. 쪽이 더 적절하다. A를 만나는 기간동안 아니 에르노에게 시간은 'A의 있음과 없음'의 오직 두 종류였으니.

책의 처음과 끝은 이렇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렸을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잇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아니 에르노는 데뷔이후로 줄곧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 물론 다른 소설가들도 스스로를 모델로 한 작품들을 많이 쓰지만,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자서전과 자전적소설,로 분류하기엔 '뭔가 다른'무엇이 있다.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기. 감정을 증폭/축소시키거나 미화하지 않고 '감정'그대로 서술하기. 그것도 단소정한하게.  

   
 

 내가 단어들에 부여하는 이미지는, 이미 말했듯 돌과 칼이예요 - 칼 같은 글쓰기 p.116

예를 들어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나의 내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것이 그 시절 내 모습이었고 어쩌면 많은 측면에서 여전히 내 모습이기도 한 여인의 이야기임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글쓰기가 일종의 육화처럼, 다시 말해 체험에 속하며 '나'에 속하는 어떤 것이 전적으로 나라는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난 글을 쓰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텍스트 속에 있는 것이 나의 질투심이 아니라 그냥 질투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꼈고 또 의식하고 있었어요.즉 그 감정이 추상적이면서도 느껴질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것임을 느꼈던 거죠. 하지만 그러한 질적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의해 생성되죠. 내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어떤 진실을 탐구하는 글쓰기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진실은 나 개인보다, 나 개인의 근심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근심보다 더 중요합니다. - 칼 같은 글쓰기 p.149~150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나눈 불륜의 기록. 르노도 상을 수상했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는 중년 여작가의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릴것 같지 않은 열정적 사랑, 질투, 집착, 그리고 A와 나누는 '강도높은' 섹스들. (통상적인 소설이라면 체위에 대한 끈적한 설명이 덧붙겠지만 이 책에는 '그와 ~한 체위로 섹스를 했다'정도에서 끝난다.) A를 기다리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절한 기다림과 끝없는 불안의 단어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73  
   

 이 책을 씌여질 당시의 아니 에르노의 일기는, <탐닉>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탐닉> 을 읽다보면. <단순한 열정>이 그저 자기 마음 가는대로 끄적여 놓은 글을 출판한 것이 아니라 짧고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들로 씌여졌음을 알 수 있다. <탐닉>은 일기이므로ㅡ 집착과 불안의 강도와 빈도가 훨씬 잦고, 훨씬 더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는 느낌이 있지만 <단순한 열정>은 총 74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글 (더구나, 곳곳에 여백도 많다. 여백이 말하는. 침묵의 효과!) 임에도 강한 임팩트를 준다.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 에르노에게 편지를 쓰고, 만나서 5년간 그녀의 애인이었던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무려 33세 연하!)은 거의 비슷한 글쓰기 방식으로 그간의 일을 <포옹>이라는 소설로 발표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포옹, 은 '솔직하기'만 하고 <단순한 열정>의 단소정한함은 갖추지 못했다. 필립 빌랭은 그 연애기간동안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 A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있었고, (5년의 연애를 끝내게 된 계기도 아니 에르노의 지갑에서 우연히 떨어진 A의 사진이었다.) <포옹>은 그 불같은 질투와 열등감의 흔적, 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지만. 질투심에 대한 묘사는 아니 에르노의 <집착>이 훨씬 뛰어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 있지?"에 속하던 행위들이, 어느새 "아 누구나 그럴수 있구나!"로 바뀌는. 남의 일인줄만 알던 행동과 감정들이 어느새 내 것이 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와 <탐닉>. 이렇게 단 두권의 내면일기 만을 출판했어요. 이 일기들은 모두 십 년 전의 씌어졌고, 실제로 그 기간에 살았던 삶은 이미 각각 <어떤 여자>와 <단순한 열정>이라는 자전적 이야기의 대상이 되엇지요. 이 두가지 상황 - 십년이라는 유예기간과 그 기간에 상응하는 책의 존재 - 가운데, 후자가 일기를 출판하도록 부추긴 좀 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유예기간도 중요하겠죠. 그 세월이 내가 나의 일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이것은 '나'를 다른 존재로, 다른 한 여성으로 생각하고 그 시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분출되는 감정을 초월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글쓰기가 생산해내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일기를 출판하는 것은 먼저 나온 텍스트를 '작용하게'하고, 그것에 어떤 다른 조명을 비추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게 열어줍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열정>과 <탐닉>의 경우처럼, 열정의 두 가지 '버전'앞에서 독자를 뒤흔들어놓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말이죠. 긴 버전은 그날그날 현재의 모호함 속에서 씌어졌고, 다른 버전은 좀더 간략하고 정화된 것으로서, 열정의 리얼리티에 대한 묘사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일기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텍스트보다 더욱 격렬하고 노골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를 감출 권리가 내겐 없다고 느껴요. 루소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조각을 제공해야"합니다. 작품의 폐쇄성이 지닌 신화적 성격 또한 깨뜨려야 하고요. - 칼 같은 글쓰기 p.50~51  
   

  

보통 책 뒤 표지에 인용된 언론의 평가들은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뒤표지의 인용문들은 마음에 든다. 

 

   
 

단정하고, 간결하고, 차가운 문장들. 화해도, 양보도, 심리분석도 없다. 정확한 단어들만이 있을 뿐이다. 정확함에 대한 열정, 완전무결한 단호함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그 어느때보다 훨씬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 르 몽드 

아니 에르노의 어조는 보기 드물게 간결하고 꾸밈이 없다. 그녀는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 - 르 피가로

 
   

 

 심리학에서는, 스스로의 감정, 마음상태를 글로 써보는 것이 치유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들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내 일기장에조차도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그녀에게 일종의 해방구였고,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솔직해 졌을'것이다. 그럴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써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단순한 열정>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인데, "노출증 환자"취급이나 "소설이 아니라 외설적인 포르노 수준"이라고 폄훼하는 것부터, 마치 자기 얘기를 보는것 같다며 치유받은 열성팬들까지. 이 짧은 텍스트를 읽고 감동받고 무언가 '치유되는'느낌을 받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텍스트의 존재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쓸때 아니 에르노는 48~50세. A의 나이는 36~38세. 한국에서 40대 후반의 이혼 여성이라면 이런 불같은 사랑을 나눌수 있을까? 물론 작가고 교수라는 아니 에르노의 사회적 지위도 있겠지만 '프랑스'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단순한 열정 이후 사랑을 나눴던 필립 빌랭과는 무려 33살 차이였는데! (한국에서라면 밝혀지는 순간 사회적 매장이 아닐까 싶은 조합이지 않나!) 간간이 그녀에게 수작 걸어보려는 다른 남자들 이야기들도 나오고. 아니 에르노라는 이 작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열정적이다. 죽을때까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건 축복중의 축복인데 말이지. 이 여자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어쩌면 필립 빌랭과 헤어진 후에도 또 다른 사랑에 빠졌을수도.

이 책 덕에 <탐닉>, <집착>, <칼같은 글쓰기>를 내리 읽었다. 보너스로 필립 빌랭의 <포옹>까지. 간만에 정신줄 놓고 마구 빠져드는 독서였고, 읽고나서의 느낌도 좋았다. 소설가 김탁환은 <천년습작>에서 "아니 에르노의 책을 곁에 꽂아두고 간간이 자세를 가다듬으라"고 했다. 대부분의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들 역시 읽을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수 있을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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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0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포옹] 보다는 [단순한 열정] 쪽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단순한 열정] 보다는 Jade님의 리뷰가 더 좋네요.
저는 이 책 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솔직함이 지나쳐서 거부반응이 좀 생기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는 그 지나친 솔직함이 좋다고 했지만 말이지요.

Jade 2010-09-01 23:12   좋아요 0 | URL
히힛 역시 다락방님이 최고! ㅎㅎ

솔직함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여자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ㅎ

Alicia 2010-09-0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라는 배경,하니 프랑스는 행동의 자유가 가능하지만 생각은 남과 같이 해야하고, 독일은 행동은 남들처럼 해야 하지만 생각의 자유는 무한하다고 했던 모옴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네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몸 아저씨의 장편도 읽어보세요. 제이드님 마음에도 꼭 드실거에요.^^


Jade 2010-09-01 23:13   좋아요 0 | URL
모옴 아저씨가 서머싯 몸을 가리키는 거겠지요?! 알리샤님 추천이라니 봐야 겠군요 ㅎㅎ

yamoo 2010-09-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갖고 있는뎅...거의 다 읽고 조금 남은 상태에서 한 켠으로 밀어놨는데, 어디로 사자렸는지 모르겠다는...리뷰보고 막 찾고 있는데..오리무중 이네요..ㅎㅎ

리뷰를 보고 얼른 다 보려고 했는뎅..ㅜㅜ
 
<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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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보내준 책을 받아들고는 잠시 갸우뚱 했다. 과일사냥꾼? 뭐지?;;  

 

  서평단을 하면서 좋은점은, 어떤책을 받아들지 몰라 설렌다는 것. 단점은..역시 내가 고른 책이 아니기 때문에ㅡ 어떤 사전정보 없이 받아든 책이, 소위 "내스타일"이 아닐땐 별로 읽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과일사냥꾼. 제목도 생소하고. 표지도 그냥 그렇고... 첫 인상은 그닥 좋지 않았다.  

 

  윌북, 에서 나온 "헝그리 플래닛"이라는 책이 있다.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ㅡ 주제 자체로는 조금 재미없을수도 있겠지만. 거의 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눈을 사로잡는 사진들이 꽤 쏠쏠하다. (물론, 사진이 많다는 것은 책값이 비싸다는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정가는 25000원...하지만 XX공원, 에서 반값행사할때 샀다는...) 각 나라를 돌면서 일주일치 식량과 함께 사진을 찍고, 곁들여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도 많고. 그렇게 각 나라의 식생활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면서 자연스레 사회,경제, 문화적인 면까지 슬그머니 파고드는 재미가 있다. 중간중간 섞인 꽤 깊이있고 비판적인 칼럼들은 책읽는 재미를 북돋는 감칠맛 나는 양념이기도 하고.

 "과일사냥꾼"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때, 순간 이 "헝그리 플래닛"이 생각이 났다. 세계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세계의 진귀한 과일들을 소개하는 책이겠지?  하지만...스르륵 넘겨본 결과. 사진이라곤 한장도 없는. 그저 글만 가득한 책이라는 사실에 보기도 전에 선입견부터 생겼다. 이건 뭥미... 세계의 온갖 매력적인 과일들에 관한 책이라면, 혀는 즐겁게 해주지 못할망정 휘황찬란한 사진으로 눈이라도 즐겁게 해줘야 하는거 아닌감? 

뭐 아님 말고...^^;; 

 

헝그리 플래닛, 을 보며 감탄했던것은. 각 나라의 '어떤'가정에 일주일치 식량을 지원해주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수 있을 만한 지원을 받는다는 것. 스폰의 세계는 내가 알지못하는 세계지만 한국에서라면 '세계 각국의 식생활'에 관한 (그닥 상업적이지 않은 목적의)프로젝트들이 많이 지원받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간간이 크라프트나 네슬레 등 초국적 식품기업들에 의해 획일화 되어가는 소위 '선진국형'식생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확실히 기업친화적인 프로젝트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과일사냥꾼>에서도 앞부분에, 단지 어떤 희귀한 과일을 맛보기 위해 항공료, 숙박료, 택시비 등등을 기꺼이 지불하고 떠날수 있는 저자가 슬그머니 부러웠다. 한국에서는...일년에 한두번 휴가철에 비행기 타는것도 어지간한 중산층이 아니면 힘든 일인데 말이지. 특히 숙녀과일, 코코드메르를 향한 저자의 열정은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를 연상시킨다. 하긴, 그러고보면 저자와 같은 '과일사냥꾼'들에겐 최고의 맛을 느낄수 있는 '적절하게 익은' 과일이야말로 인생의 보물이겠지. 더욱이 쉽게 만날수 없는 희귀 과일이라면.

(잠시 딴길로 새서, 이 대목에서 또한번 사진의 부재가 안타깝다. 생김새도 여성의 아랫배-음부-허벅지와 흡사하고 그 맛도 오묘하다는 이 희귀과일-코코드메르-의 우아한 자태를 사진, 혹은 그림으로나마 엿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론 한장의 사진이 백 문장보다 많은것을 말해주기도 하거늘..) 

 

저자인 아담 리스 골너, 는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언론인이라...이 책은 희귀과일들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여행기 이기도 하고, 과일탐정, 과일주의자, 과일수집가 등 과일에 대한 애정(혹은 집착)이 대단한 사람들을 취재한 인터뷰집 이기도 하다. 과일에 탐닉하고 과일을 예찬했던 유명한 역사속 인물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간간히 등장. 심지어 과일로 욕정을 해소하거나 (저자가 인터넷에서 봤다는ㅡ 멜론, 으로 야릇한 행동을 하려 했던 에피소드, 를 읽다가 빵 터졌다 ㅋㅋ) 환각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단순히 후식 또는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먹을거리'로 과일을 대하던 보통사람들에겐 색다른 자극이 되긴 한다. 하지만...'저널리스트'라면 좀 더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줘도 되었을텐데 싶은 아쉬움. 착향과일인 '그레이플(포도향 입힌 사과)'과 관련된 부분에선 인공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특정과일이 가진 효능을 과대포장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폐해에 대한 것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루는데. 어쩐지 그저 '관찰자'스러운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독자에게 판단 유보. 나쁘게 말하면 방관. 이 책의 목적이 어떤 머리아픈 고민, 을 유도하는게 아니라. 그저 "이런 세계도 있어요 여러분" 이란 흥미유도라는것이 명백해지는 대목. 

읽으면서 가장 화가나고, 또 한번 경제권력의 막강함을 느낀 부분은 10장 <기적의 열매 이야기> miracle fruit, 또는 sweeter라고 불리는 카메룬의 이 열매는 자체로는 그닥 맛이 없지만 이후에 먹는 신 맛 - 이를테면 레몬 - 성분을 황홀하리만큼 달게 느껴지게 해 준다나. miraculin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에는 당분이 소량 붙어있는데 이 분자는 혀에서 단맛이 가장 민감한 부위 근처에 붙어있다가 신맛이 들어오면 활성화되어 단맛 수용기에 닿아 신경계에 끔찍하리만큼 황홀한 단맛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준다고. 이 성분을 잘 이용하면 감미료를 넣지 않고서도 말이 안나올만한 단맛의 효과를 낼 수 있으니 당뇨병 환자들이나, 건강을 생각해서 설탕을 줄이려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열매'다. 하지만....세계 제당업계의 위력은 강력했다. 미라큘린 개발자는 생명을 위협하는 알지못할 '추격'을 받고, 사무실은 털리고ㅡ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판매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쥐에게 인체 섭취량보다 3,000배를 많이 먹여도 부작용이 없었던 기적의 열매는 금지이고ㅡ 동물실험에서 발암작용이 밝혀진 사카린, 은 2000년에 미 공화당 의회에서 '건강 경고문'규정까지 폐지된 상태라니 뭐.   

다행스럽게도(!) 이 기적의 열매는 일본에서는 시판되고 있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용 미라큘린 알약도 있고. 기적의 열매 카페까지 있다고. 화악요법 치료 후 음식맛이 거북해진 암환자들에게 사용되기도 하고. 심지어 "남자친구를 꿀처럼 달게 해주는"용도로도 사용된다나. 흠흠. 

 

과일산업, 은 - 농산물이 마지막 남은 면세사업이기 때문에 - 상당히 이윤이 많이 남는 부분이라고 한다. 이 바닥도 부패가 장난아니라, 농부들을 사기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도매상들도 많다고. 전달받은 농산물의 등급을 낮게 판정하거나 썩어버렸다고 검사관이 판정만 해주면. 도매상들은 돈을 돌려받고 (실제로는 썩지 않은) 과일들을 팔아서 새로운 이윤을 얻을수도 있다니. 이런 사기가 아니더라도 '과일산업'의 면모는 과일과 달리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합성착색료로 빛깔을 좋게 만들거나 왁스 같은걸 바르는건 이제 비밀도 아니다. 소비자들이 과일 품종에 대해 많이 알게되면 단일품종의 질낮은 과일을 파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품종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기까지 한다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비판하지 못하도록 언론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바보 만들고 싶어하는 건 기득권자들의 공통된 욕구인건가. 

 

 아무튼. 이런저런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에서. 그저 fact만 전달하려 애쓰는 글쓰기 방식은.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저자의 문체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뭔가 매력적이지는 않은 책이랄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적당한 시간과 돈, 열정을 들일수 있는것은. 사실 큰 축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ㅡ 그날그날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니까. 과학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분명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삶은 '편해'졌지만. '삶의 질'이란 부분에선 과연 나아졌다고 말할수 있는건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ㅡ 안다고 해도 그걸 누릴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으니까. '과일'의 세계가 무궁무진한 경이로움의 연속, 일수도 있다는 걸 일깨워 준 책이었지만. 다른 각도에서의 불편함이 계속 남는다. 이런책으로나마 '대리만족'할수있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건지.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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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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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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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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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간 너그러워지고ㅡ 조금은 미화하게 된다. 나와 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에 대해선 좋은점 못지않게 눈에 띄는게 부족함이나 허물이지만,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는 존재에게는 굳이 쓴 소리 하고 싶진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요절'이나 '억울한' 혹은 '안타까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죽음이라면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로 한동안 이어졌던 추모행위들 역시 대부분이 '낭만화' 혹은 '이상화'에 가까웠다. 추모, 란 원래 그런거니까.   

죽음, 의 의미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죽은자는 늘. 말이 없다. 

 

6,2 지방선거도 있었고. 서거 1주년이기도 했고. 노무현 관련 책들이 속속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어느것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이고, 지금처럼 '해도 너무하는' 막무가내 정권 하에서 나오는 책들이라면 할 얘기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사실 이 책도 알라딘 신간평가단, 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노무현이 읽던 책에 대해 말한다"....뭐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이 가졌던, 알려지지 않은 고민들을 알게되는 계기는 되겠다만.  

 

 늘 공부하는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뜻을 이어받아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열었던 강독회였고ㅡ 이 책은 그 흔적이다.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 위해 노통이 공부하던 몇 권의 책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오연호 기자의 머리말은, 좋게 말하면 딱딱할 수 있는 책을 감성적인 문구들로 잘 열었고ㅡ 나쁘게 말하면 그저 감상적인 추모글이다. 바꿔 말하면 머리말 하나로 이 책을 꿰뚫는 키워드는 "노무현 추모"임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강연회의 강사들도 대부분 참여정부 하에서 노대통령과 함께 일하거나 퇴임 후 책 집필 준비를 도와주던 사람들이라 주제는 달라도 일관된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책들을 읽으며 이런이런 고민을 했었다. 참여정부하에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냈고, 이러이러한 것들은 하고싶었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잘 되지 않았다." 등이다. 워낙 재임기간에 언론에게 뭇매를 맞았던 탓인지 늦은 해명처럼 들리는 부분도 몇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쉬운 점을 말하는 청중에게, 김용익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답변 중 이런게 있다.

"제가 대통령의 참모로 일했기 때문에 가급적 비판 같은 건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설사 제가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돌아가셨다고 또는 임기가 끝났다고 해서 참모가 이리저리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약간 갸우뚱이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도 권위주위를 깨려고 노력했고, 대등하게 '토론'하길 좋아했던 노대통령과ㅡ 비판하는 것은 '참모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 사이에 느껴지는 이질감. 흠흠.

 

 강연을 듣는 수강생들과 강사들 사이에는 '노무현'이라는 큰 전체 말고도 또 하나의 공유점이 있으니,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소개하는 장의 소제목은 아예 "이명박 정부, 슈퍼자본주의와 닮은 꼴"이다. 요즘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이명박, 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재임기간의 노무현도 그랬었지. 차이가 있다면ㅡ 노무현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뭇매를 맞았다는 것이고 이명박 정권은 주류 언론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 퇴임후 노무현은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구상하며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이명박은 퇴임 후 <보수의 미래>같은 책을 내놓을거라고 상상하기엔 좀 힘들다는 점...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책들, 보다는 강연자들의 말 속에서 살짝씩 드러나는 노통의 평소 모습들이 더 인상적이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표현에 따르면 노통은 "정치를 하기보다는 종교지도자가 됐으면 성공할 수 있었을 정도로 거래를 거의 하지 않은 특이한 분"이었다"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종교지도자'의 의미를 좀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강연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노통은 자신은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민중은 실패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었고, 우회할 줄 모르는 강직한 지도자였으며, 재임기간내에 개인적 업적을 이루겠다는 욕심보다는 좀더 멀리 보고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던 대통령이었다. 애초에 "노무현"이라는 전제조건이 없었으면 성립되지 않았을 강연회였으니ㅡ "노무현 추모"는 이 책의 목적이자, 일종의 한계다.

  

어쨌든.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좋은 책들을 맛깔나게 소개하는 책들이나, 관련 분야의 책들로 친절히 가지를 뻗고 나름의 기준으로 장단점 평가까지 해주는 이런류의 책들은, 많이 많이 더많이 출간되어야 한다. 비록 솟구치는 구매욕에 허리가 휠 망정. 어차피 어떤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할 소비욕이라면, 책을 향한 욕심은 귀엽게 봐줄수도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책을 읽는다건 타인의 생각을 휘젓고 다니며 슬쩍 간(!)도보고 내 머릿속에도 담았다가 맘에 안들면 미련없이 out 시킬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 아니던가. 이 책 역시 곳곳에 유혹의 손길들이 숨어있다. <유러피언 드림>,의 경우 노 전 대통령도 몇번이고 "좋은책"이라고 강조했다니, 애초에 '노무현'이라는 대전제하에 펼쳐지는 책 안에서ㅡ 그보다 더 매력적인 유혹이 있을까?  

이 책 덕분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빈곤의 종말>. 세 권이 우리 집으로 영입되었다...관련 책 세권을 사게하는 정도라면. 이 책으로서의 할 일은 다 하지 않았나? ^^ 

 

 국가의 역할,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빈곤의 종말 챕터를 찬찬히 읽다보면 노무현이 품었던 '국가의 역할'의 이상이 보이는 듯도 싶다. '국가의 역할' 운운 하면 게거품 물고 빨갱이 운운할 모 신문이 떠오르지만ㅡ 사실 논쟁의 핵심은 국가가 개입할것이냐, 개입하지 않을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개입할것이냐다. ('개입'하지 않는 '국가'라는것이 존재하는가?) 폴 크루그먼의 표현에 따르면 '진보의 시대'에는 아무리 보수정부라도 진보적 정책을 수행할 수 밖에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는 진보정부였는가(이말을 집권 당시 했다면 또 한차례 좌파진영의 야유를 받았겠지). 보수의 시대에 참여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등 임기 후 곳곳에 퇴임 후 노통의 고민이 묻어난다. 이젠 아버지형 국가가 아니라 어머니형 국가가 필요하다든지, '삶이 질이 높은 진보의 나라'를 소망한다든지,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 참여정부 시절 언론들이 쏟아내던 공격과 야유를 생각하면, 어라 참여정부가 이런 고민도 했어? 새삼 놀라는 부분도 많다. 물론 강연자들이 대개 노통 참모들이라 '성과'중심으로 말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ㅡ 이명박 정부 2년 반 동안의 학습효과 탓인지 덕인지. 새삼 참여정부가 "급진적 좌파 정부"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도 있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은, 뒤에 남은 자들의 몫이다. 노통 서거 1주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의 일관된 논지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자"다.  노통의 정신을 본받아(!) 안일했던 삶을 반성하고 우리도 치열하게 현실에 맞서자, 뭐 이런 감상적인 레토릭을 적절히 섞어 곳곳에 배치한다.  6/2 선거 직전에 천안함 사건만 아니었음 노풍이 제대로 불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만. 그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죽이는" 드라마틱한 감동의 도가니, 라기 보단. 노통의 카리스마를 팔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세워보려는 옹졸한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피상적인 표현이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예의를 갖춰 그를 추모하는 것일 게다. 그런의미에서, 단순 추모집이 아닌 "정치적 각성"을 촉구/압박하는 이런류의 책이 출간된 것은 좋은 일이다. 이 책을 계기로 누군가 사회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되고, 조금 더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ㅡ 이 책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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