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 주신다면 상무님 발가락이라도 핥겠습니다."

무슨 3류 소설도 아니고, 변태 에로 영화도 아니고
내가 직접 들은 말이다.

前회사에서 품질 불량으로 한 해외법인이 반품 및 대량 클레임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문제의 제품을 생산한 중국 생산법인의 부장이
노발대발한 해외법인의 법인장에게 사과하며 한 말이다.
둘만 있는 자리도 아니고, 몇 명이나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난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이런 구차하다 못해 스스로의 인격을 모독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모욕도, 치욕도 감수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다.

김훈의 <남한산성>이 왜 많이 팔리는가?
왜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중년 남자들이 열광하는가?

인조의 굴욕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스스로의 구차함을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오버하는 사람들까지!

문학 평론가 김영찬도 이 점을 지적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지난한 생물학적 당위에 압도된 비루한 삶에 대한 위안과
속화된 보편주의-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고래로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의
알리바이를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한산성>을 읽은 많은 회사원들이
<남한산성>을 읽으며 자신의 회사생활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견뎌야 하는, 참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일상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을 느꼈다나?

김훈은 CBS 라디오 손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이 남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남자 분들이 세상의 고통이나, 더러움이나, 억울함, 비리, 모순, 치욕...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여성 독자들보다 훨씬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 역시 가부장답다.
요즘 어디에 가나 여자들이 더 용감하고 바른 말을 잘하는 건
부양 가족이 없어서, 즉 가부장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훈은 툭하면 "삶이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다!"라고 외치며
밥타령을 한다.
내 청춘의 소망은 작가가 아니라 밥이었다!
( 이명박 아저씨랑 친구하면 되겠다. 오...영원한 친구, 친구친구~ ♬)

이제 일년에 세금만 8천만원을 내는 인기 작가가 되었으니
사회적 지위에 맞게 밥타령은 좀 그만 하는 게 어떨까?

김훈의 소설이 치욕을 견딜 수 밖에 없는 약자들 뿐만 아니라
일신의 안위 또는 야망을 위해 스스로 굴욕을 자초하는 사람들에게,
안 그래도 되는데 스스로의 자존감을 짓밟는 사람들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훈의 소설이 벙어리를 대량 양산하는 기폭제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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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직원 모임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8-16 08:26 
    모 상무님이 여직원 모임을 주선하였다. 까닭을 묻자 여직원 복장규정이나 복지 관련한 의견수렴이라는 이유를 대셨다. 다른 여직원들에게 사전모의를 독려했다. 평소 화장실이나 탈의실에서 삼삼오오 하던 잡담이나 불만불평을 수면 위에 끌어올릴 때라고. 모두 동조하는 분위기인데 나서기는 죄다 꺼려 한다. 이유는 가지각색. - 인사팀이라 - 부문장님이 주선하는 모임이라 - 신입이라 - 안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 엉뚱한 불똥이 튈까봐
 
 
Jade 2007-08-1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수선님 글 읽으니 괜시리 시원(!)한데요 ㅋㅋ "영원한 친구, 친구친구" 압권이예요 ㅎㅎㅎ

2007-08-1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8-1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명바기는 8천만원 세금 내려나 궁금해지네요? 칭구사인데...

kleinsusun 2007-08-1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ade님, 이 노래 가끔 제가 노래방에서 부르는데...영원한 친구,친구친구~ ㅋㅋㅋ

속삭님, 묵묵히, 다른데 두리번거리지 않고 꿈을 향해 걷는 님을 보면 정말 기뻐요.
쭈~욱 홧팅!^^

글샘님, 글쎄요... ㅋㅋ 오늘은 형님까지 신문에 크게 나셨던데... 쩝

Mephistopheles 2007-08-1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저는 김훈의 소설은 "칼의 노래"만 읽었군요..
그래도 꼭 가부장..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부양가족이 딸린 사람(남녀불문)은
밥벌이가 제법 중요하긴 해요..^^

kleinsusun 2007-08-1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당근 밥벌이가 젤 중요하죠.^^
제가 말하려 한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알아서 "기는" 사람들 얘기예요.
오버하는 사람들요. 스스로의 자존감을 짓밟는 사람들을 회사 생활하며 많이 봤거든요. ㅠㅠ

Mephistopheles 2007-08-15 22:33   좋아요 0 | URL
하긴..그렇게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지나칠정도로 모질더군요..^^

드팀전 2007-08-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벌이에 모든 걸 올인하라고 하고, 간쓸개 다빼놓으라하고,그래도 너만 그런 것 아니니까 쪽팔릴거 없어..라고 하는 것들은 누구일까요? 그런 올인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들은 누구일까요? 밥벌이외에 사람들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겠지요...

kleinsusun 2007-08-1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김훈 아저씨도 크게 일조하고 있죠. ㅠㅠ

nada 2007-08-1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난 김훈이 왜 싫을까.. 하다 말았는데 이래서였나 봐요. 명쾌해요.

kleinsusun 2007-08-1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가부장의 대명사 김훈!^^

2007-08-15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5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첫 문장의 실제 들으신 대사라니요, 놀랍습니다.
남자들이 밖에서 그렇게까지 한다구요. 일부겠지요, 물론.

kleinsusun 2007-08-1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실제상황이랍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저는 정말 놀랐어요.
네...근데 소수이긴 하지만 극소수는 아니랍니다. 쩝

antitheme 2007-08-1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하다보면 정말 간혹 그런 분들을 볼 기회가 생기죠...
슬픈 현실입니다. 불쌍한 직장인들...

kleinsusun 2007-08-1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런 사람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빠져요.
모두 "알아서 기는" 분위기로! 쩝

마늘빵 2007-08-1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이 내가 하고픈 말을 해버렸네. 김훈에 대해 판단중지였던 이유는, 어떤 원인 모를 불쾌감이었는데, 그게 이거였구나. 근데 전 <남한산성>은 안봤어요. 소설을 안봐도 그의 인터뷰 내용만 봐도 이 정도는 '느낄'수 있었어요.

kleinsusun 2007-08-1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아프님도 불쾌함을 느끼셨군요. 이제 더이상 밥타령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조선인 2007-08-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은 참 싫은데, 그의 문장은 좋아라 해서 아이, 싫어, 정말 싫어, 이러면서 보는 전. 켁.

kleinsusun 2007-08-16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김훈은 싫은데도 막상 책이 나오면 사게 되는 뭔가가 있어요. ㅋㅋ

라로 2007-08-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훈이 어렵게 글을 쓰니까 그의 책 몇권(그래도 글 잘쓴다고 해서 거의 다 읽었다.)읽었는데
지금은 김훈이 책썼다고 해도 시큰둥해요.
남한산성 거들더도 안봤어요....>.<
괜히 김훈 읽었다면 좀 나아 보이려나 했었던거죠~!
그런데 제 사고능력은 변함이 없네요~.ㅋㅋㅋ
그가 낸 8천만원의 세금엔 연루되어 있지만...ㅎㅎ


kleinsusun 2007-08-16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세금 8천만원 내는데 일조하셨네요. 전 여태까지 3권 샀어요.^^

누에 2007-09-1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안녕하세요. 조용히 추천누르고 갑니다. ^^

kleinsusun 2007-09-17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