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이신 이성철 교수님께서 페이스 북에 올려 주신 리뷰입니다. 1년에 두 어 번 뵙는데 사심가득 애정가득한 리뷰를 써주셨어요. 전 사실 아는 분들이 책 쓰면 리뷰를 안씁니다..쑥쓰럽구 그래서. 하지만 앞으로는.소식 뜸할때 이런 리뷰 받으니 훈련소에서 애인 편지 받는 느낌이랄까?
책과 직접 관련 없는 몇 가지 사적인 내용과 인물들은 임의 삭제했습니다.페이스북 지인들 이름..이런것들.
모처럼 올리는 글이다.
(1) 엄상준 PD의 <음악, 좋아하세요?: 엄PD의 세상과 만나는 음악이야기>(2019, 호밀밭출판사)를 읽으면서 그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4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메모를 해가며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엄PD와의 인연이 좀 있다. 2012년이었나? 아님 그 이후였나? 엄PD가 노동조합 지회의 간부를 맡고 있을 때 나에게 조합원 교육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나의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책을 보고 연락을 한 것 같다. 교육을 마친 후 방송국 옆의 ‘봉이 동동’에서 지회장님 등이랑 술추렴한 기억도 있다. 이후 옐로스톤의 간헐천처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만남은 항상 뜨거운 온천이었다.)
진중한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 중에 유독 속내를 밝히며 싫어하는 인간들은 ‘꼰데’들이었다. 그러나 ‘아재’는 좀 봐주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스스로 아재라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아재는, ‘아 쟤?’하고 무심코 넘길 수 있는 범주이지만, 꼰데는 자신이 꼬인 데를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타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ruler)로만 측정하는 부류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즉 그런 인간을 독재자(ruler)로 여기는 것 같았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책 제목이 <음악, 좋아하세요?>라서다. 엄PD라면 절대 이 제목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일상에서 이런 말은 즉각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안 좋아하면 어쩔 건데?’라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즉 꼰데스런 제목이다. 아마 호밀밭출판사의 장현정 대표가 이 제목으로 밀어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안 좋아하면 어쩔 건데?’라고 퉁명스레 말하곤 ‘내가 음악 좋아하던가?’라는 반추도 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반추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장현정 대표의 작명이 좋았다는 말인가....)
(2)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장’(章, chapter)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치 네 개의 곡으로 구성되는 교향곡처럼(4악장)... 교향곡을 이루는 각각의 작은 곡을 ‘악장’이라 하니, 그의 책은 ‘봄 악장’, ‘여름 악장’... 등의 식으로 움직인다(무브먼트, movement) 그러나 그의 책 목차 형식은 기악곡 중심의 교향곡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대중가요-민요-클래식-팝 등 ‘세상의 모든 음악’을 아우르고 있다.(KBS 클래식 FM 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네...) 교향곡이 연주될 때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지만, 나는 이 책의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어느 곳을 먼저 읽더라도 그 속에 또 다른 교향곡들이 있다.
(3) 그의 글이 참 좋은 이유는 이렇다. 특정 곡에 대한 권위있는 또는 정통한 해석만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이 좋아는 곡들만 추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버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려준다.(그러나 겸손한 가치판단은 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 식대로 말한다면 이렇다. 예컨대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곡 ’사랑의 기쁨‘을 슬프게 느낄 수 있고, 그의 ’사랑의 기쁨‘을 들으면서 슬픔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주제곡 이었던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의 가사 속에 사랑의 슬픔이 들어있듯이... 엄PD의 글이 그렇다. 이분법이 아니라서 좋다. 아마 그가 익힌 사회과학의 내공도 깃들었으리라 생각한다.
(4) 음악에 관한 내공과 적공은 두말할 필요없지만, 무엇보다 엄PD의 글이 정말 빼어나다. 예컨대 각 절의 첫 문단은 시(詩)다. 정말이다. 저자 자신이 글과 글자에 얼마나 깊은 마음을 담으려했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 대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아노의 흰 건반이 눈 내린 하얀 숲이라면, 검은 건반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조각가는 ‘살아있게 만드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과장 없이 말한다. 그의 글은 음악을 살아나게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조각칼로써 해당 음악에 걸맞는 책을 선택한다. 책 속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예컨대 57쪽에 이런 글이 있다. “.... 공기의 진동에 불과한 음악이라는 비-물질을 단단히 붙잡아 놓은 물질성이 좋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사회과학자들의 논문이나 책 속에 아무런 상관없이 자연과학의 용어를 쓰는 행위(fashionable nonsense)를 질타한 물리학자 ‘앨런 소칼’을 은근히 두둔하면서도, 소칼에게 쓸데 적은(쓸데 없는 것은 아니므로!) 대응을 한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도 포용하는 부드러움...을 느꼈다....면 지나칠까? 그리고 115쪽의 도입부는 마치 ‘줄리언 반즈’의 그것처럼 읽혔다.(확인해보시라...)
(5) 그의 책에는 음악을 말하면서 낮은 곳들과 연대하는 실천이 담겨있다. 세월호와 공관병, 그리고 남미의 굴욕과 피의 역사가 담겨있다. 독일의 과학역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어느 곳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개별 학문 분야와 무관한 질문이 제기되면, 객관성이라는 관념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난다.” 음악도 과학도 학문도 모두 현실관계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큰 덕목 중의 하나이다.
이 책에서 프로이트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충분한 애도를 갖지 못한 기억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이후 상실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다...”(74쪽) 함께 인용한 나희덕의 시도 좋다... ‘노동’에 대한 그의 시선은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말로 대변된다.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127쪽)
(6) 그외 사소하지만 부러운 것들 몇 가지
- <적벽가>를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애늙은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김소희의 판소리 <심청전>의 한 대목을 ‘소리로 그린 그림’ 같다고 했다.(234쪽)
- 가끔 본 엄PD의 모습은 좌중에서 별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책 속에서 그의 지킬 또는 하이드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유머스런 분이었나?...라는...
- 엄PD의 머리카락은 베토벤 닮았지만, 얼굴은 바흐가 떠오른다. 그런데도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모습이다. 늘 골몰하기 때문에 드러난 몰골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베토벤은 바흐(Bach)를 시냇물(bach)이라 생각지 않고, 큰 바다라고 말했다.(메르, mer)
-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다시 책 제목의 뜻을 새기게 된다. <음악, 좋아하세요?>... 나의 대답은 이렇다. ‘더 좋아할 거에요..’ 올리브 색스는 그의 책 <뮤지코필리아> 서문에서 니체를 인용한다. ‘음악은 근육으로 듣는다.“ 더 좋아해야 근육이 생긴다.
* 아래 사진은 참치집에서 찍은 것이다. 심지어 초밥도 축음기 속으로 뛰어든다... 아니... 술병 속으로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