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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는 "신파".
줄거리만 보자면 울고 짜는 아침 드라마와 크게 다를게 없다.

한 여자가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남편이 떠난다.
왜? 다른 여자가 생겨서.
여자는 두 딸과 함께 홀로 남겨진다.

여자는 슬픔과 분노에 빠진다.
시아버지는 상심한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해,
며느리와 손녀들을 시골 별장에 데려다 준다.

그 별장에서 시아버지는 말한다.

" 자기 때문에 남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괴로움말이다.....남아 있는 사람들은 동정을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은 어떠냐?" (p97)

혼자 남겨진 며느리는 "남아 있는 사람".
다른 사랑을 위해 떠난 아들은 "떠나는 사람".
그리고....자신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아버지는
떠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유령처럼 "남은 사람".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묻어둔 사랑을 들려준다.
( 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한국의 근엄한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뭐....시아버지의 사랑 얘기도 별 다를 것 없는 신파다.

워크홀릭이었던 42세의 남자.
아내와 두 아이, 전형적인 한 가정의 가장.
자신에게는 아무런 열정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매력적인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남자는 그 여자(마틸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차마 가정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떠나지 못한다.
자신이 비겁했음을 잘 알고 있다.
결국....마틸드는 떠나고 남자는 가정을 지키며 조용하게, 유령처럼 살아간다.

이렇게 별 다른 것 없는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읽은 이에게 강한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키는 건,
남아 있는 사람, 떠난 사람, 남은 사람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감정이입이 되는 소설 속 인물이 다를 것 같다.

난 남아 있는 사람(며느리), 떠난 사람(아들), 남은 사람(시아버지)이 아닌 마틸드(시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가장 연민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남자가 유부남인 이유로 몰래 만나야 했던 마틸드에겐
해보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느 날, 마틸드가 호텔방에 하루 종일 혼자 틀혀 박혀 쓴
하고 싶은 일 리스트.

소풍가기,강가에서 낮잠자기,.....................지하철 타기,빨래 널기,..........시장 보러 가기, 슈퍼마켓에 가기,........당신 팬티 사 주기,..............동물원과 벼룩시장에 가기,.....커튼 꿰매기........당신 머리 깍아주기,......세차하기,...........뜨개질 배워서 당신에게 목도리 떠 주기,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주인 없는 고양이와 개를 거두어 먹이기............쓰레기통 비우기..........사진 붙이기.......(p193~196)

아.....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게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결혼한 여자라면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시시하기 까지한 일들을 갈망했던 마틸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기증 처럼 마음이 어질어질 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말하지만,
어쩌면.....사랑이라는건 다 신파 아닐까?

딴지) 책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읽다가 웃겨서 쓰러지는지 알았다.

" 작가는 키가 크고 늘씬한 금발 미인이다. 초록빛 눈의 금발 미인이 영화나 노래가 아니라 소설로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웃겨. 웃겨. 정말 웃겨, 웃겨서 뒤집어 지겠어 .

"프랑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어쩌구 오버까지 하며
작가의 외모를 설명하는 발상 자체가 웃긴다.

이제....소설가들도 성형외과를 드나들고, 집중 피부관리를 받아야 하는 시대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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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0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프랑스 역사상 처음이라니!! 정말 뒤집어집니다. 우리나라에는 키크고 늘씬한 미인 소설가 없나? ㅎㅎ
흠, 유령처럼 살아가는 기혼자들.. 무척 많죠. 생각보다. -_-;;

kleinsusun 2006-01-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그죠? 기가 막히죠? "프랑스 역사상 처음" 넘 웃겨요. 출판사들의 오버가 장난이 아니네요.ㅎㅎ

하이드 2006-01-0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역사'의 수키김도 한미모합디다.
패트리샤 콘웰의 가죽잠바 입은 미모로운 사진은 꼭 그녀 책의 주인공인 '스카페타' 같지요? ^^

천리향 2006-01-0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담에 클수님도 책 내실 때 꼭 피부관리 받으시고
책 앞!표지에 사진 박아서 내세요. 그럼 대박 나실 꺼예요. 히히
수욜날 '통역사' 를 샀는데 사면서 '작가가 참 분위기 있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kleinsusun 2006-01-07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통역사에도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어처구니 표현이 있나요? ㅎㅎ
지노님, 네....그러기 위해 몸짱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음하하하.

moonnight 2006-01-0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게 와닿는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작가가 인기있는 이유에 외모가 큰 몫을 차지하는 거 같다고 느꼈었답니다. ^^; 요즘은 어딜 가나 외모가 중요한가봐요. ㅠㅠ 흐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미모로운 사진이 실린 수선님의 책 기대할께요. >.<

kleinsusun 2006-01-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 moonnight님, 감사합니다, 사진을 위해서 피나는 습작 보다는 몸짱이 되어야 겠네요.ㅎㅎ

바람돌이 2006-01-0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부관리도 받으세요. 수선님! ^^
마틸드의 저 마음은 저도 공감이 가네요. 아마 일상에서 지겨운 것들이 결핍되면 저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어쌨든 있을 때 잘하라는 교훈이 떠오른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

로드무비 2006-01-0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신파가 아닐까? 라니.
그걸 이제 아셨수?=3=3=3

kleinsusun 2006-01-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겨운 일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이기도 하네요. 새해 들어 부쩍 좋은 글 많이 쓰시네요. 바람돌이님, 계속 홧팅!

로드무비님, 제가 좀....느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산 건 벌써 몇달 전이다.
책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알라딘 서재 지인의 "재미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것 같다.

책 표지가 참 이쁘다. 탐스러운 빨간색.
2~3달 전 후배랑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책이 한 권 선물하고 싶어져서
책상 위에 있던 이 책을 들고 나갔다.
물론 나는 아직 읽기 전이었다.

월요일에 후배가 출근해서 말았다.
" 성대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주말을 보냈어요."
난 책 선물한걸 깜빡 잊고 뭐지? 생각했다.
내 짧은 침묵에 후배가 다시 말했다.
" 성대리님이 주신 책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었는데...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그런 책 있쟎아요.
여자친구한테도 읽으라고 줬어요. 누나한테도 읽어보라고 했구요."

책 선물하고 이런 말 들으면 참 기분이 좋다.
주말이 행복했다는 후배의 말에 이 책을 한 권 더 주문했다.
그리고....어제 밤에 읽었다.

책은...허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같았다.
이 책 판권을 드림웍스에서 샀고,
스필버그가 영화를 만든다는데
정말 허리우드 영화 만들기에 딱인 그런 내용이다.

웃길 때 확실히 웃겨 주고,
울릴 때 마구 울려 버리고,
그러면서도 영화가 가볍게 보이지 않게 중간중간에 교훈을 넣고,
또 관객을 배반하지 않는 해피엔딩.

이 정도 원작에 흥행 천재 스필버그가 감독을 하면
대박이 터지겠지.
뭐 극장에서는 "이 세기 최고의 로맨스" 하며 광고를 할테고...

이 책은 전업작가가 쓴 책이 아니다.
"마르크 레비"라는 프랑스인 건축가가 쓴 소설이다.
아마츄어가 쓴 처녀작의 판권이 28개국에 팔리고,
스필버그는 200만불을 주고 영화제작을 위한 판권을 샀단다.

아...이건 정말 출판사의 힘이다.
대단한 마케팅 능력이다.
팔릴 작품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또 허리우드 영화에 딱이라는 판단에 영화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단다.

난 사실..."마르크 레비"라는 작가보다
무명 작가가 쓴 책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든 "로베르 라퐁"사가 더 대단해 보인다.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걸까? 아님 너무 퍽퍽한걸까?
난 무협지나 SF,판타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
왠지 손이 가지도 않고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뇌사상태에 있는 식물인간의 영혼과 사랑하는 얘기다.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즈 처럼
영혼은 이리 저리 마음대로 이동하지만 아무 것도 만지지 못한다.
패트릭 스웨이즈가 우피 골드버그한테만 보였던 것 처럼,
이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의 영혼은 남자 주인공에게만 보인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자꾸 혼잣말을 하고,
허공에 대고 키스를 하는 남자주인공은 정신이 이상해진 걸로 오해를 받는다.

난 이런 소설을 읽으면 내가 참 썰렁하게 느껴진다.
육체를 이탈한 뇌사상태 식물인간의 영혼과 사랑을 한다...
이런 걸 상상하기는커녕 가능한 사랑에도 너무 많은 제약을 둔다.
그리고 툭하면 말한다.
"그 사람 참....용기있네."

회사 사람 중에 여자네 부모가 극심하게 결혼을 반대해서
무슨 김경호 노래 가사처럼
신부 가족이 한명도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을 한 사람이 있는데,
몇 번이나 그 여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어디서 그런 확신이 왔을까?

마르크 레비는 이 소설을 나중에 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 한다.
마르크 레비의 아들이 "소아불면증"을 앓았단다.
그래서 마르크 레비는 아들이 잠드는 걸 돕기 위해
침대에 걸터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창작해서 들려 줬는데,
하다 보니 긴 얘기에도 욕심이 생겼고,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쓰고 싶었단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게 또... 스필버그가 좋아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더 오버를 해서 관객들을 울릴 것이다.

아들을 위해서 쓴 소설이라서 그럴까?
소설 곳곳에는 "교훈"이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음에 살짝 남는다.

매일 아침 깨어날 때 우리에겐 하루당 팔만 육천 사백 초의 삶이 예치되어 있고,
저녁에 잠이 드는 때에 새 구좌로 이월 같은 건 없다.
그날 살아지지 않은 것은 유실된다,어제는 지난 것이다.
매일 아침 이 마법은 새로 시작되어, 다시금 팔만 육천 사백 초의 삶이 예치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비껴갈 수 없는 규칙과의 놀이를 한다.
은행은 어느 때라도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의 구좌를 닫을 수 있다.
어느 때라도 삶은 멈출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팔만 육천사백 초를 가지고 어찌할 것인가?(p267)

그러니....항상 알면서도 자꾸 딴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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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2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5-08-0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전개가 참 빠르고 감동도 있고.. 정말 영화로 만들기 딱 좋겠다 싶어서 혼자서 주인공들을 상상해보기도 했었죠. 영화화 되길 무척 기다렸는데 도대체 언제 나올 건공 -_-a <너 어디 있니>도 그렇구..사랑의 절대적인 힘을 믿는다는 건 참 가슴 찡해요. 저역시 겁이 많은지라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극복할 자신이 없거든요. ;; 그래요. 매일 공평히 주어지는 팔만육천사백초를 대충 살아버릴 것인가 즐길 것인가는 내 선택이고 책임이겠지요. ^^
 
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 지음 /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를 두달 전 쯤 읽었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아멜리 노통의 첫번 째 소설이다.
25살에 이 소설로 화려한 데뷔를 했단다.

만약 <살인자의 건강법>이 내가 읽은 아멜리의 첫번 째 소설이라면, 난 아마도 반해 버렸을 꺼다.

그런데....
<살인자의 건강법>은 내가 읽은 아멜리의 4번째 소설이다.
<적의 화장법>,<두려움과 떨림>,<오후 네시>.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고 어떤 기분이었냐면,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의 새로운 앨범을 기분 좋게 샀는데,
지난 앨범과 노래 제목이랑 가사만 다르고 너무 비슷비슷해서
실망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고,
여자의 생리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 스포일러 경고 : 이 소설은 추리소설 처럼 전개된다.
내용을 알면 읽는 재미를 놓칠 수 있으니,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으실 분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이 소설의 주인공 타슈는
어렸을 때 또래의 사촌 동생을 사랑한다.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면 꼬마 때 처럼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많은 것들이 변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년과 소녀는 사춘기를 맞이하지 않기로 선서한다.
영양가 있는 음식은 안 먹고, 잠도 거의 안 자고,
신체의 발육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영원히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로 남아 있어야 하는 사촌동생 레오폴딘이 생리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랑의 이름으로 레오폴딘을 죽인다.

몇 십년이 흐른 후, 타슈는 말한다.

"끔찍한 의식이란 말이오,신화적인 삶에서 호르몬적인 삶으로,영원한 삶에서 순환적인 삶으로 넘어가는 것이니,식물적인 인간이라야 순환적인 영원에 만족할 수 있다오."(page 205)

"대개 살인자들이란 희생자의 피를 보게 마련인데, 난 피를 보기는커녕 난 레오폴딘을 죽여서 계속 되풀이될 출혈을 미리 막아주었을 뿐 아니라 그애를 원초적인 불멸의 상태,출혈 없는 불멸의 상태로 되돌려놓았잖소."(p218)

주인공 타슈가 하는 말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생리를 지저분한 것, 또는 창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면,
약사나 종업원은 생리대를 까만 비닐에 넣어준다.
왜? 생리대가 보이면 안되는 걸까? 위험한 걸까?

메사츄세스에서는 슈퍼에서 술을 사면
비치치 않는 종이 봉투에 넣어준다.
술병을 그냥 들고 다니거나, 투명한 비닐에 넣고 다니면 안된다.
차에도 술은 보이지 않게 트렁크에 넣거나, 종이 봉투에 싼 채로 뒷 좌석에 놓아야지, 뒷좌석에 맥주 박스를 그냥 얹어두면 경찰한테 걸린다. 메사츄세스 주의 법이다.

그런데....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에 넣어서 주위에 남자 손님이 있나 없나 조심스레 살피면서 후다닥 사고 나와야 하는걸까?
뭐 잘못했나?

예전에 나도 그랬다.
생리대를 사는게 부끄러웠다.
생리대를 사야할 때면 여자 약사가 하는 약국이나,
여자 아르바이트가 있는 편의점,
그것도 아니면 손님이 거의 없는 데서 샀다.
누가 보는게 부끄러워서....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교육 받았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애들이 생리대를 사는걸 창피해 했다.
혹시라도 아는 남자애가 볼까봐 조마조마했고,
생리할 때 옷에 묻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남자들이 이런 말 하는거 들어 본 적 있을꺼다.
" 너 서서 오줌 쌀 수 있어? "

정말 한심하다.
아무리 자랑이 없어도 그렇지....
어쨌든 남자들은 그런 생물학적 특징을 자랑스러워 한다.

여자들은 생리를 한다.
생리를 하는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여자로서의 "생물학적 자긍심"을 가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초경을 시작했을 때 기뻐해 주는 엄마가 없었다면...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눈뜨고,
여자로서의 생물학정 자긍심을 갖는 것.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도 생리대 사러 가는 것이 부끄럽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유명호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자궁을 가졌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많은 남편들이, 남자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알면 사랑한다."
이 말을 누가 했지?

아는 만큼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오해 없이.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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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6-0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의 건강법이 7번째 노통소설이었던 저는, 95%의 익숙함과 5%실망감을 맛봤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대표작을 나중에 읽는게 좋은 데 보통 제일 처음 읽다보니 갈수록 실망하게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을 읽으며 "열정"과 "치정"의 차이를 생각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자신의 경험을 쓴 아주 자전적인 소설이다.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기 고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한 남자를 끔찍히도 사랑하는 한 여자의 고백이다.
그 남자를 향한 열정, 그 남자를 향한 갈망은 '나'의 모든 것이다.

아주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말고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p12)
-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있기 위해 다음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p17)
- 차라리 밤에 강도라도 들어와 나를 죽여주었으면 싶었다.(p49)
- 어느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쟎아.'(p51)
( 에이즈라도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고백을 읽다가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정말 충격적이다.'나'에게 그의 부재는 죽음인 것이다.)
-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떤 영화를 볼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p58)
- 나는 그 사람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어했었다.그 사람이 마신 술잔도 닦지 않은 채로 보관하고 있다.(p72)

신문 사회면에는 매일 치정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토막기사로 난다.
변심한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남자,
변심한 애인 뿐 아니라 여자의 새로운 애인까지 죽여버린 남자,
자신을 떠난 남자의 통화기록을 뽑아서 남자의 새로운 애인을 괴롭히는 여자,
실연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자살 소식,
사랑하는 사람을 감금하고 미저리 역할을 하는 납치극,
분노한 배우자가 자신을 배신한 상대방과 그 애인을 간통으로 고소하는 일기예보 처럼 매일 나오는 기사들.....

두줄 세줄 짜리 기사의 주인공들도
아니 에르노 처럼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의 질주,
상대방을 향한 너무도 강한 욕망과 집착으로 죽을것만 같은 광기와 고독, 외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백번씩 질투로 정신을 잃고,
하루에도 몇백번씩 기다림에 지쳐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고,
하루에도 몇백번씩 자신의 외로움에 분노하고,
하루에도 몇백번씩 잊는다고, 다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기다리던 전화 한통에 달려 나가고 마는 치사하기까지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폐인 생활을 했을 것이다.

두줄 짜리 치정극의 주인공들에게도 모두 사연이 있다.

그러면....
그러면 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을 향한 아니 에르노의 사랑은 "열정"이 되고, 그 체험의 고백은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고, 베스트셀러까지 되어 엄청난 인세까지 챙기는데,

왜 두줄짜리 기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감옥으로 가는가?
"열정"과 "치정"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아니 에르노의 그 처절한 사랑을 "열정"이라 말할 수 있는건,
에르노는 그 사람으로 인한 "열정"으로 자신을 세상과 더욱 굳게 결속시키고, 그 시간 속에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p72)

삶의 극한까지 치달은 사랑의 고통은 에르노를 성숙시켰고,
에르노는 그 고통의 시간들을 사랑했다.
그 열정은 에르노의 삶을 단단한 것으로 만들었고,
그 열정의 에너지는 발화하여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다.

두줄짜리 기사의 주인공들은?
치정극의 주인공들은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어 발화시키지 못했다. 그 고통으로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하지 못하고,
물이 100도가 되어 끓을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한참 뜨거운 98도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에르노는 자신에게 열정의 시간을 준 그 남자에게 감사했고,
치정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떠난 상대방을 증오했다.

열정의 주인공은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산 자신의 체험에 감사하며,
치정의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붙잡지 못할 바에야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 싶어한다.

만약 누가 나에게 에르노와 같은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겠다.

"No."

난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

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변함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 또한 나의 존재 자체에 신뢰감을 가지고 불안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안식이 되어 주는 사랑.
좀 뜨뜨 미지근해도 좋다.
난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지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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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 부터 이 책을 한번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왜? 제목이 맘에 들어서...

속 깊은 이성 친구.
얼마나 매력적인가?
속 깊은 이성 친구가 있다는건, 정말 든든한 일이다.
그 친구 앞에서는 걱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 욕도 할 수 있고,
그 친구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술마시고 가끔씩 취하기도 하고...
그런 친구... 그 어떤 보험 보다 사람을 든든하게 하는 최고의 빽이다.

장 자끄 상뻬의 책은 참 이쁘다.
파스텔톤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참 편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기 전(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인지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38개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레이션과 38개의 짧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과 이야기 모음이다.

상뻬가 하나의 소재를 떠올려 짧은 이야기를 먼저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을 먼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실제로 어떤 작업을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으로는,
그림을 먼저 그린 것 같다.
(사실 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파스텔 톤의 잔잔한 그림들이지만, 생각할 거리들을 툭툭 던져주는
위력적인 그림들이다.)

38편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짧은 글들은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침대나 회사 책상에 두고
가끔 펼쳐 보면 좋을 그런 책이다.

펼쳐 볼 때 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지식 축적과 체계적 독서에 목이 마른 사람이 읽는다면 돈 아까울 책이다. 글자 많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실망할 수도...)

내 마음을 살짝 건드린,
잔잔한 호수를 통통 튕겨가는 작은 돌멩이 처럼 와닿은 말이 있다.
초록색 파스텔톤의 오솔길을 한 남자가 급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삽화와 함께...

"전화 한 통 받고도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중엔 그녀 때문에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p58)


두.려.움.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기다리던 전화를 받고
첫눈 오는 날 어린 아이 처럼 그저 좋아했던 때와는 다르다.

사랑을 하는 것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마음을 여는 것이,
두.렵.다.

사랑을 하는 것이 가슴 벅차고 기쁜 만큼이나 두렵다.
좋을 땐 그저 좋기만 해도 되는데...

<속 깊은 이성 친구>에 실린 상뻬의 글과 그림은
상뻬의 연애의 산물이 아닐까?

2년전인가?
이소라 콘서트에 갔을 때, 이소라가 말했다.
자기의 노래들은 모두 연애의 산물이라고...
사랑할 땐 그 행복함과 즐거움을 노래하고,
헤어질 땐 그 마음 아픔을 노래하고,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보고 싶거나 외로울 땐
그 절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설레일 땐
다시 찾아온 설레임과 짜릿함을 노래한다고....

쌍뻬도 그런 경험으로 38편의 사랑 이야기를 쓴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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