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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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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무척...당황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를 웃음을 참지 못해 흐느끼며 읽었었기에,
이 책을 읽다가 비행기에서 넘 크게 웃으면 어쩌지...하는 걱정까지 했다.

뜻밖에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무척...지루했다.
"계몽소설"이 아닌가 혼란스러울 만큼
초반부터 주제를 "기호 O번 OOO!"를 외치는 선거운동원들처럼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자!"

아마도...심훈의 <상록수> 이후로
이처럼 주제의식이 직접적이고도 극명한 소설은
두물 것 같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너무너무 못생긴 여자,
너무 못생겨서 사회생활 자체가 어려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너무너무 못생긴 여자"가 소설의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얼마나, 어떻게 못생겼는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저... 남자주인공을 통해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로 첫인상이 묘사된다.

그녀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상상하는 건 독자들의 몫이다.
내 상상력이 부족한 걸까?
그녀를 떠올리려 노력해도... 상상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기에,
설령 세상에서 제일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토록 모멸과 모욕, 비웃음과 따돌림을 면전에서 받아야 하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과장된 장치일 수는 있겠지만
소설 속의 그녀는 너무도...비현실적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프로"와 "아마"로 나눠지는 세상에 날리는 통쾌한 펀치라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미남/미녀"와 "추남/추녀",
그러니까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한 인간들"로 구성된 세상에 대한... "훈화 말씀"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망설였다.
끝까지 읽을 것인가? 덮을 것인가?
그 때, 어디선가 읽은 독자서평이 생각났다.
마지막 50페이지에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반전"이 있다고.
난 그 "반전"을 기대하며 인내심 있게 책장을 넘겼다.

기다렸던 반전은...
"세기의 대표적인 추녀"처럼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영화 <식스 센스>처럼 상당한 트릭이 있는 반전이었는데,
놀랍다기 보다는....허탈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작가의 말"에 다시 한번 요약된다.
"작가의 말"에 제목도 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 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 작가의 말 中

맞는 말이다.
이 사회를 이끄는 동력은
가지지 못한 대다수 구성원들의 함묵적 동의와 소극적 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세뇌시키듯 400페이지에 걸쳐 주제를 여러가지 변형된 문장들로
반복해야 하는 걸까?
지나친 의욕? 또는 주제에 대한 강박?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큰 소설이었다.

덧붙이는 말 1)
이 소설을 읽으며 개콘 <봉숭아 학당>의 "박지선"이 자꾸 생각났다.
박지선이 물리적으로 못생겼다는 얘기가 아니라,
<봉숭아 학당>의 폭력적인 "설정", 매회 "못생긴" 박지선을 놀리는 걸로 3~4분을 잡아 먹는다.
예전부터 개콘 PD에게 메일이라도 하나 써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코너를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 있다.
아주... 폭력적이고도 위험한 설정이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특히 비판의식 없는 어린 애들에게,
못생긴 여자는 놀림 받아야 마땅하다는 마초근성을 심어준다.

이 얘기를 사람들한테 하면
"싫으면 안보면 되지!" 그러는데,
나 혼자 안봐서 될 문제가 아니다.

덧붙이는 말 2)
내 생각에... 이 폭력적인 사회를 살아가는데 더 힘든 건
"못생긴 여자" 보다 "어설프게 예쁘고 돈 없고 빽 없는 여자"다.
"자존감" 없는 "어설프게" 예쁜 여자들의 뒤틀린 인생을 너무도 많이 봤다.

조만간 이 주제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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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2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는거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말이죠, 중간에 그 못생긴여자가 남자한테 편지를 쓰잖아요, 아주 장문의 편지. 그 편지가 정말 미치도록 짜증스러웠어요. 못생긴 여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줬다는게 그 잘생긴 남자 덕분이란 얘기를 너무 신파적으로 절절하게 쓰려고 한 것 같아서 그 편지가 정말이지 화가 났어요.

그러나 마지막 하늘색책장의 결말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답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봐라, 라는 상투적인 결말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결말마저 그랬다면 저는 진짜 화날 뻔 했지 뭐에요.

kleinsusun 2009-08-24 08: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편지 압권이었어요. 그 부분에서 제일 덮고 싶었어요.
못생긴 여자의 "자존감"이 한 남자의 관심과 사랑에서 생겨난다는 설정,
못생긴 여자가 "감지덕지"하며 고맙고 또 고맙다고 찌질하게 써내려간 너무도 긴 편지....
정말 읽기가 불편했어요.
소설의 주제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인데, 그 주제를 위해 못생긴 여자가 그토록 찌질해 져야 하는 걸까요?

로쟈 2009-08-23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 페이지 읽고 계속 읽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습니다...

kleinsusun 2009-08-24 08:23   좋아요 0 | URL
계속 읽으시라고 말씀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네요.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

stella.K 2009-08-2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박지선만이겠습니까? 사람 웃기겠다고 노력하는 거야 가상한데
정말 짜증나는 코너 몇개 있어요.
저 덧글2 공감하고 기대됩니다. 수선님 글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하겠슴다.^^

kleinsusun 2009-08-24 13:09   좋아요 0 | URL
근데...박지선이 그렇게 못생겼나요? 전 아닌거 같은데... ㅠㅠ
네... 자존감 없고 돈도 빽도 없는 어설프게 예쁜 여자 얘기는 곧 올릴께요.^^

2010-03-01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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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에 필이 확~꽂혀서,
도대체 이 엄청난 가창력... 누구지? 하며
mp3를 다운 받는 대신 비싼 CD를 샀는데
노래들이 다 고만고만, 비슷비슷해서 실망했던 적이.

정이현의 두번째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

문학상 수상집들을 통해
이미 <삼풍 백화점>, <위험한 독신녀>,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었다.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기 전까지
사실 정이현을 무시했었다.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고민 없이
그저 "튀는데" 올인하는 것 같아,
작품들을 통해 "스타일"을 형성시켜 가는 게 아니라,
드라마 기획의도처럼 스타일을 규정시켜 놓고
작위적으로 작품을 쓰는 것 같아 불쾌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고 정이현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새삼 깨닫기도 했다. 작가는 진화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두번째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은
단편 10편이 하나 같이 너무나 비슷하다.

10개의 단편을 계간 문학지들을 통해
한편 한편 띄엄띄엄 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단편 10개를 한꺼번에 몰아 읽으니
삶은 계란 10개를 연거푸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달디 단 던킨 도너츠 10개를 한꺼 번에 먹고
한동안 설탕 들어간 음식만 봐도 질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 질린다.

한편 한편 보면 참신하지만,
트로트 메들리도 아니고
참치 김밥, 치즈 김밥, 소고기 김밥...
재료만 좀 다르고 맛이 똑 같은 김밥 10종류를
한꺼번에 먹으라고 들이대다니!

"미스테리" 기법을 쓰는 것도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을 때나 참신했지,
<오늘의 거짓말>, <그 남자의 리허설>, <익명의 당신에게>
싹~ 다 그렇게 쓰면 더 이상 미스테리가 아니라 재미 없는 트릭,
<위험한 독신녀>처럼 스프레이 독하게 뿌린 유행 지난 앞머리!

정이현은 "중산층"의 일상을 포착하는
몇 안되는, 재기 넘치는 작가로 인정 받고 있다.

그런데... 너무 그 물에서만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특장점은 어느 순간 함정이 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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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09-1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달걀과 던킨의 표현, 매우 와닿아요- ^^ (처음뵙겠습니다~)

kleinsusun 2007-09-1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반갑습니당^^
근데...저 정말 던킨 도너츠 5개 넘게 먹고
한동안 단걸 못먹었던 적이 있어요.ㅋㅋ

1sosh 2007-09-1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삶은 계란,던킨 도너츠,트로트 메들리,ㅇㅇ김밥 이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님께서 알아듣기 편한 단어선택에 절래 고개가 돌려집니다,,조금전에 달콤한 나의 도시를 다 보고 신간 나왔길래 리뷰를 둘러보다가,,이렇게 주제넘게 몇자 올립니다,,와우~~지수 레벨이 거의 신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kleinsusun 2007-09-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킨쥬스님, 님 서재에 다녀 왔어요.
따끈따끈한 <달콤한 나의 도시> 리뷰를 올리셨네요. 잼나게 읽었습니당^^
아...근데 오늘 치킨을 많이 먹었더니 던킨 도너츠 10개처럼 느끼하네요.ㅋㅋ

2007-10-05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비 2007-10-0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잼있네요. 트로트메들리같은.. ^^

2007-10-29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 6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명두>에서 김애란의 단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읽은지
거의 1년 만에 김애란의 단편집을 읽었다.

이 책의 끝에 있는 <작가의 말>에 김애란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김애란은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고 느낀 첫번째 감상(?)은
아....정말 소설 많이 읽고, 습작 많이 하고, 소설 작법을 피 터지게 배웠구나! 다.

얄밉다.
꼭 "국영수를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수능 전국 수석의 9시 뉴스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그러니까 벌써 몇년 전, MBA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GMAT을 5번이나 봤는데 매번 똑 같은 점수가 나왔다.
그 비싼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5번이나 봤는데
그 때마다 똑 같은 점수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이라니!

Top 5 MBA 합격자들이 쓴 [TOP MBA로 가는 길]에
합격자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썼다.

TOEFL은 모의고사를 한두번 풀어 보고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좋은 점수가 나왔고,
GMAT은 바쁜 회사 일에 쫓겨 2~3달 주말에 도서관에서
[The Official Guide for GMAT]을 반복해서 봤는데,
다행히 700~75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와 essay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런 수기를 읽었을 때의 좌절감이란!
난 머리가 나쁜 걸까?

그런데...그 합격자 수기 중에는 학교 선배의 것도 있었는데,
(그 선배도 그렇게 썼다!)
그 선배는 회사까지 휴직하고
온 종일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저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어요!" 라고 하면
쩍 팔린걸까?

평론가들은 김애란의 출현을 "천재 소녀의 강림" 으로 보는 것 같다.

김애란은 분명, 단연코, 유쾌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가다.
하지만... 아직 작품집이 한 권 뿐인 작가를 가지고 너무 오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애란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장편, 또 다음 단편집을 기다려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비난 보다도 더 무서운 "무관심" 속에 힘들어 할
신인 작가들의 소설도 계속해서 "사서" 읽으려고 한다.

그것이... 회사원 나부랭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문학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딴지가 길었다.
그래서...김애란의 단편집은 어땠는가?

이렇게 딴지를 걸 만큼,
동종업계도 아닌데 시기와 질투를 느낄 만큼,
대.단.하.다.
그 유쾌한 상상력과 놀라운 비유들로 가득한 문장들!

김연수 소설의 아버지가 "늙고 추례한 아비"라면
김애란 소설의 아버지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실종된, 사라진 아비"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는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아비의 떠남은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도 않고
자기연민의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김애란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삶의 고통에 빠지는 대신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긍정한다.
아....이 도발적인 유쾌함이라니!

김애란이 단편을 발표하는 여러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김애란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달려라,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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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판단을 유보한 작가들 중의 하나입니다. 김형경의 글이 아무리 못되어도 좋다라는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몇 편을 읽어야 했고 박민규가 때로는 영 아니올시다 싶었던 글과 대단스런 글들을 섞어 단편집을 내는 것을 보다 보니, 판단을 내리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어요. 저도, 다음 작품집을 기다립니다.

kleinsusun 2007-06-0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음 작품집, 또 장편을 읽어 보고 싶어요.
평론가들은 말하더군요. 다음 작품집을 기다려 평을 하면 이미 늦는다고... 작품에 배팅을 해야 한데요. 평론에도 시장의 논리가! ㅋㅋ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소설에 대한 비평가들의 무관심은 실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5월 9일자 한겨레 칼럼 [야!한국사회]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물었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문학평론가들은 김훈의 소설에 대해 침묵한다.
(이명원은 김훈 소설 비평을 쓴 적 있나? 모르겠다.)

김애란, 이기호, 박민규에 대해서는
범비평가 연합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사실이다. 왜일까?

이명원의 칼럼을 읽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궁금해서!

김훈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아무 것도 읽지 않았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김훈! 하면 떠오르는 마초 같은, 가부장의 전형 같은 이미지가 싫었다.

<남한산성>을 읽게된 건
정말....진정....넘넘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 난리인가?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중년 남자들이 소주가 아니라 소설 나부랭이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말 많은 비평가들은 외면 또는 침묵하는가?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절묘한 아슬아슬함"을 느꼈다.
고난이도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밧줄에서 떨어지는 척 하다가 멋드러진 공중곡예를 펼치는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능란한 곡예사!

무식하면 용감하다! 고
무식함을 전제로 용감하게 말한다면
<남한산성>에서의 김훈의 서사나 인물 설정은
대하소설의 대중작가 최인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

김상헌의 칼에 죽은 사공이나 그의 딸 나루나,
노비 출신으로 청의 통역관이 된 정명수나,
대장장이 서돌쇠나 그 얼마나... 통속적인가?
대하 드라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만약 최인호가 <남한산성>을 썼다면 3권은 되지 않았을까?

김훈의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어떻게 이런 문장을 번역하지?

김훈의 문장은 특이하게...아름답다.
문장이 미려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말이 되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마초적인 아름다움?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있고,
인물들에게도 일체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는다.

인물들이 남한산성의 돌이나 돌벽에 피는 꽃,
한 겨울 꽁꽁 얼었다 봄이 되자 콸콸 흐르는 강 같은
자연과 다르지 않다.

그저 꽃이 피다, 꽃이 지다 처럼
인물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비평가들의 애로사항(?)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도대체 김훈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이론을 적용(?)할 것인가?

담론이 담론을 낳는 지식인 사회의 특성상
누가 먼저 얘기를 해야 딴지를 걸텐데
누가 먼저 시작을 할 것인가?

여전히...김훈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전히...김훈의 이미지는 마초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을 읽고 생각한다.
김훈은 뛰어난 작가라고!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해된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고!
김훈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데...

김훈의 책을 한권 더 샀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수어사 이시백의 대화가 생각난다.

-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page 218)

김훈의 산문집을 빨리 읽어봐야 겠다.
좋아하지 않지만 관심이 가는 남자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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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2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이게다예요 2007-05-2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도 이 책 질러서 지금 책장에 꼽혀있는데 언제 읽을까 고민중이에요. 저도 김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선뜻 손이 잘 안 갔는데 이거 보니 빨리 읽고 싶네요.

kleinsusun 2007-05-2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오랜만이예요.^^ 이명원 칼럼 아니었으면 저도 안 읽었을 꺼예요.ㅋㅋ 이 책 읽으면서 "명불허전"이란 말이 생각났어요. 뭔가...있더라구요.^^

프레이야 2007-05-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다고 독자가 느끼는 건, 정말 군더더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조의 끊어짐 즉 님이 말한 것처럼 스타카토 그리고 난무하는 반점(쉼표)들
때문이라 여겨요. 오히려 그의 문장은 그의 사념으로 인해 군더더기가 많다 싶은 때가
많아요, 제 경우엔.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글은, 묘한 매력이 있으니 참,
난감하지요. 평론가들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힘 또한 그만의 힘으로 보입니다.^^

kleinsusun 2007-05-2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역시...예리하시군요!^^
"난감하다".... 정말 김훈의 소설을 표현하기 딱인 단어네요! ㅋㅋ
평론가들도 정말...난감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07-05-2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거부반응이 일어 그간 미뤄오다가 최근에 [강산무진]을 읽었거든요. 맙소사, 정말 좋던걸요. 이런글을 쓰고싶다, 고 할 정도로 말이죠. 좋은걸 알겠지만 다음작품에 선뜻 손을 대기가 두렵기도 하니, 이 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kleinsusun 2007-05-2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김훈은 역시....대략난감하다니까요. 맞아요....첫장을 펼치기가 내키지 않는...두려운...빙고!^^

2007-05-27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5-2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장은 단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김훈의 글은 이렇게 말하는게 옳을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뒤틀린 고독감이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생생함을 담고 있지요.
미디어적 글쓰기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런 짧고 명확한 문장이지요...김훈은 기자시절부터 명문으로 익히 알려진 사람이다보니....뭐 이런식으로 쓰면 어떨지^^
" 김훈은 각진 현미경이다.그에게는 모난 고독감이 느껴진다...줄라. 불라. 불라."

바람돌이 2007-05-28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이 수선님에게서 제대로 표현되어지는 것 같네요. 저는 그 감정의 정체가 뭘까 참 감이 안잡히더라구요. 책을 다 읽고 놓을때조차도 계속 저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던 낯섬이라고나 할까요.

kleinsusun 2007-05-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김훈은 "양가적인 존재"라는 말에 공감 110%.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다가도 뭔가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과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드팀전님, 뭔가 뒤틀린 고독감......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각진 현미경"이란 표현 멋진걸요. 줄라.불라.불라.....^^

바람돌이님, 님도 "묘한" 감정을 느끼셨군요.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랬어요. 고개를 끄덕이더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칼의 노래>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9월 중순.
회사에서는 07년 경영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패션잡지들은 겨울 유행 아이템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제 곧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온 시내에 울려 퍼지고, 방송국들은 "연기대상", "가요대상" 같은 연말특집을 내기하듯 방영할 것이다.

12월엔 신문이나 잡지나, 개인들의 블로그나 어디서나
"올해의 잊지 못할 사건 Top10" 같은 걸 한다.(호들갑을 떨면서!)

곧 3분기 마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06년 Top 10"을 떠올려 본다.
올해 내겐 어떤 특별한 일들이 있었나?
4분기에 대한 예의로 3개 정도는 빈칸으로 남겨 두어야겠지?

인색하게 7개만 리스트에 올리더라도 꼭 넣고 싶은 하나.
정미경의 소설을 만났다는 것!
정미경은 소설 나부랭이와 최소간격 이상의 평행선을 두고 살아가려 애쓰던,
나름 건조하게 살려고 노력하던 10년차 회사원의
소설을 향한 잠들어 있던 짝사랑,목마름에 불을 붙혔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과 작가와의 구분이 혼동스러운
신경숙이나 전경린 같은 여자 작가들의 정물화 같은 소설들에 질렸던 나는
한국 여자 작가들이 쓴 소설을 웬만하면 읽지 않았다. 정미경의 소설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정미경의 소설은....
삶은 달걀 세개를 소금도 찍지 않은 채 연거푸 먹고 마시는
시원한 "칠성 사이다" 같았다.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실려 있는 6개의 소설.
어느 것 하나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
- 호텔 유로, 1203
- 나의 피투성이 연인
- 성스러운 봄
- 비소 여인
-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정미경은 비루하고도 질긴, 질기디 질긴 일상을 무섭도록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그런데 영화를 찍어가면서 ,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 씨에게서 보았어요. 그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中 241p)

골목시장의 영화 감독 승우의 고백처럼
정미경은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에 천착하고,
그 치열한 주제를 "냉정하게" 담아낸다.

정미경의 소설은 절제되어 있고
그 어떤 사건, 그 어떤 인물과도 일정 간격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냉정한 서사 속에 문장 하나하나는 이글거린다. 그 절묘한 비유들이란!

내일 프랑크푸르트로 날라가는 비행기에서는 <장밋빛 인생>을 읽어야지.
오.........나의 칠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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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9-1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과 느끼는게 비슷한가봐요, 저는. 저도 사실 국내여류작가의 소설들은 읽지 않았었지요. 그러다 재작년쯔음인가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보고 바뀌게 됐죠. 그뒤로 읽는 것들이 어찌나 좋았는지요. 송은일, 정이현, 이명인등이 제가 최근에 푹 빠진 작가들이었어요. 특히 정미경은 그중 으뜸인지라 [장밋빛 인생]을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비행기안에서의 수선님의 시간이 무척 부러워지는걸요. 잘 다녀오세요 :)

로드무비 2006-09-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옥과 비소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저도 리뷰 썼었죠.
신경숙과 전경린에 대한 감상이 우리 비슷한가봐요.
프랑크푸르트라니!
지금 독일 어드멘가는 맥주 축제가 한창이라는디.
출장 멋지게 보내고 돌아와서 <장밋빛 인생> 리뷰도 올려주세요.^^

비로그인 2006-09-1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사람을 잡아끕니다.

2006-09-19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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