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트금요일 저녁, 나의 知己 P언니와 르네 마그리트전을 보러 갔다.
우린 연인들처럼 손을 꼭 잡고 그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며 얘기를 나눴다.
이번 전시의 collection은 소문대로...기대 이상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샤갈, 달리, 피카소 등
이름만으로 경외심을 자아내는 화가들의 전시회가 많았지만,
이렇게 완성도를 갖춘 전시회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르네의 그림들 뿐만 아니라
직접 찍은 사진들, 친구들이 찍어 준 르네와 아내 조제트의 사진들,
연필로 그린 수많은 드로잉들과 편지들,
아마츄어 영화 감독으로서의 르네가 찍은 일상을 담은 무성영화들,
또한...유명해 지기 전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렸던 포스터와 벽지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보이지 않는 선수>, <심금>, <대화의 기술>, <순례자>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아니라
르네가 만든 벽지 샘플집이었다.
앨범만한 크기의 샘플집에는
르네가 디자인한 벽지들이 정사각형의 비스킷 크기로 잘라져 붙어 있었고
각각의 샘플들 위에는 일련 번호와 "가격"이 있었다.
번호 뿐 아니라 가격도 르네가 연필로 직접 쓴 글씨였다.
그 당시의, 그러니까 2차 대전 전의 벨기에의
화폐 가치와 벽지의 단위를 몰라
샘플집에 있는 벽지의 가격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천재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르네 마그르트에게도
샘플집을 들고 다니며 벽지를 팔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아........화려함의 이면이여!
또한 마음에 깊이 남는 건... 르네의 아내를 향한 "절절함"이다.
르네의 그림은 주로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2차 대전 당시 그는 화려한 색채로 고흐를 연상시키는 인상주의풍의 그림을 그렸고
바슈(프랑스어로 암소라는 뜻, 야수주의를 패러디)시기에는
르네의 그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절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인상주의, 바슈 이후에 그는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했는데,
복귀한 이유가...
전시장 벽에 크게 써 있는 그 이유가...
마음을 짠~하게 했다.
천천히 자멸하는 것, 그것이 내 성향이다.
그러나 조제트가 있으니...
그녀는 옛날처럼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조제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지난날의 회화들만을 보여 줄 것이다.
그 안에 때때로 즐겁고도 거대한 엉뚱함을 슬쩍 밀어 넣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아.....감동, 감동, 감동의 절정이여!
르네를 지지해 주고 평생 친구가 되어 주고
그림을 그리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한
아내 조제트의 존재감에 경의를!
(전시장 벽에 써 있는 글귀를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다. 너무 부러워서!)
전시회에 갔다 와서
K(Eric Clapton 콘서트를 같이 본 바로 그!) 와 통화를 했다
"마그리트가 인상주의, 바슈를 거쳐 왜 다시 초현실주의로 복귀했는지 알아?"
난 그에게 질문을 던지며 전시회 벽에 써 있던 절절한 사연을 얘기했다.
여전히 감동에 취한 목소리로.
"아내가 예전 작품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래."
그런데.... K는,
그러니까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고
"교환은 생산이다."는 잊지 못할 영화평을 한 K는,
이렇게 말했다.
"인상주의에 설 자리가 없었겠지.
그러면서 아내 핑계를 대는 거 아니야?"
아......내가 너무 감상적인 걸까?
아니면 K가 시니컬한 걸까?
난 핑계라도, 거짓말이라도 그런 말을 들어 보고 싶은데...
조제트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싶은데...
난 아직도 하이틴 로맨스를 읽던 중딩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오늘 수잔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를 반쯤 읽었다.
마저 읽고 르네 마그리트 전을 한번 더 보려 한다.
그의 작품들이 서울을 떠나기 전에.
딴지) 르네 마그리트 전을 보며 김영하가 생각 났다.
(소설 <빛의 제국> 표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고양이를 꼭 껴안고 찍은 르네와 조제트의 사진들을 보면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르네의 어록을 보면서
김영하가 떠오른 건.... 나 뿐만은 아닐 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