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0. ‘책의 날’ 질문 이벤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제야 ‘책의 날’ 질문 이벤트에 응모하는 거죠? 뒷북치는 건가요?

 

 

 

네, 제가 뒷북(book)을 잘 쳐요. 유행에 둔감해요. 유행이 지나가서 사람들 반응이 잠잠할 때 뒤늦게 따라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그래요. 남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를 몇 개월 혹은 일 년 지난 뒤에 읽어요.

 

 

Q1. 말장난 그만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책 한 권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다 좋습니다. 책 단 한 권도 없는 장소에 혼자 있으면 지루하고 허전해요. 조용한 밤에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을 때가 좋아요. 그러면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잠이 스르르 옵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싶어요. 책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유익한 최고의 수면제입니다. 아, 그리고 변비로 고통받는 분이라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보세요. 일단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지 골라보세요. 그러면 장 속에 그토록 원하던 신호가 와요. 책이 많은 곳에 가면 화장실 생각이 나요. 저는 변비에 걸리지 않았지만, 배변 기간이 불규칙합니다. 뱃속이 찝찝하고 그럴 때 도서관에 가서 책 구경을 하거나 책을 읽어요. 신기하게도 뱃속에서 신호가 옵니다. 우리나라는 도서관이 많아져야 합니다. 변비 환자들을 위한 치유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Q2.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제대로 된 독서 이야기 좀 합시다.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제 별명이 ‘책성애자’입니다. 새 책이든 헌책이든 종이책이 제 손으로 들어오면, 냄새를 맡는 특이한 습관이 있어요. 새 책에 나는 냄새와 헌책에 나는 냄새. 확실히 달라요. 냄새의 느낌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헌책 냄새 한번 맡아보셨어요? 어렸을 때 시골집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오래된 이불 냄새 기억하십니까? 그거랑 조금 비슷해요. 눅눅한 습기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헌책방에 자주 가게 되니까 헌책 냄새가 좋아졌어요. 헌책방 내부로 들어가면 헌책 가게 사장님보다 헌책 냄새가 먼저 저를 반깁니다. 마음이 편해져요. 헌책 냄새 없는 헌책방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책 읽을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전자책은 종이책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나라 전자책이 읽을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지만 않습니다. 잘 찾아보면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외국 작가의 작품이나 장르문학 작품을 번역한 전자책이 있어요. 예전부터 ‘페가나북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페가나북스는 1인 전자책 전문 출판사입니다. 러브크래프트와 함께 환상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알려진 로드 던세이니의 작품을 번역했어요. 아무도 관심 없는 작가의 작품을 혼자서 번역 출간한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이런 출판사와 직원이 있기에 함부로 전자책을 ‘읽어볼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책 읽으면서 메모하는 것을 싫어해요. 책을 대할 때는 결벽증 환자가 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책을 접는 것도 안 좋아해요. 한 번은 동생이 제가 산 책을 읽다가 한 번 종이를 접은 적이 있어요. 저는 동생에게 그렇게 읽지 말라고 핀잔을 줬어요. 그렇지만 헌책은 예외입니다. 종이에 낙서가 남아 있고, 물에 젖은 흔적이 있어도 가지고 싶은 책이라면 삽니다.

 

 

 

 

Q3. 말씀하시는 자세가 진지한데요. 마음에 듭니다. 혹시 지금 침대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저는 3번 질문이 마음에 안 들어요. 침대 없는 사람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잖아요. 저는 침대가 없어요. 맨바닥에 이불을 깔고 잡니다. 자기 전에 배 깔고 책을 읽어요. 이미 말했듯이 책은 종이로 만든 수면제입니다. 잠이 안 오면 일부러 재미없고,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습니다. 지난주에는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읽었습니다. 그 책은 좋은 수면제였습니다.

 

 

 

 

Q4. 애서가라면 늘 괴로워하는 고민이 있어요. 그 고민이 바로 바로 장서 관리 문제입니다.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맞아요. 처음에 책을 살 때 하늘 위로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 샀던 책을 책장에 꽂으려고 하면 갑자기 우울해져요. 책이 너무 많아서 보관할 자리가 없거든요. 책을 분야별로 구분해서 배열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보관 공간을 확충하는 일이 시급하니까요. 책 욕심이 많아서 책을 가져야 기분이 좋아져요. 알라딘 서점에 책을 팔아서 받은 돈으로 다른 책을 삽니다. 이러면 책을 줄이지 못합니다. 최근에 30권 정도의 책을 종이 상자에 담아 다른 방에 옮겼습니다. 책장에 빈자리가 생겼는데, 그것만 보면 다른 책을 사서 채워 넣고 싶어요. 책에 대한 탐닉이 무서워요.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세계명화백선》이요.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 100점을 모아놓은 도록입니다. 요즘에 나오는 명화 도록과 비교하면 선명도가 떨어지는 편이에요. 그래도 전 이 책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 책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줬어요. 여기서 밝히기가 부끄럽지만, 사실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집에 혼자 있으면 마네의 <올랭피아>만 봤어요. 비록 그림 속 여인이지만, 올랭피아의 육체가 아름다웠어요. 그때는 올랭피아가 엄청난 그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당연히 마네가 누군지도 몰랐죠. 올랭피아는 소년의 마음을 홀리는 야한 여자였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서양미술사에 ‘입덕’하게 된 계기가 《세계명화백선》이었어요. 이 책을 보지 않았으면,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여자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아시죠? 올랭피아가 매춘부라는 사실요. 그리고 훌륭한 그림을 그저 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으로 봤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되니까 올랭피아가 야한 그림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놀랄 만한 책' 몇 권 가지고 있습죠.

 

 

 

 

 

JTBC 보도 담당 사장 겸 ‘뉴스룸’ 진행자인 손석희 씨도 오래 전에 책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풀종다리의 노래》입니다. 2014년에 제가 운 좋아서 JTBC 사옥 내부를 구경하고, 손석희 씨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특별한 날을 위해서 한 달 전에 《풀종다리의 노래》를 샀습니다. 절판본이라서 가격이 비쌌어요. 그래도 이 희귀 도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저는 이 책을 가지고 JTBC에 갔습니다. 손석희 씨의 친필 사인을 받으려고요. 손석희 씨는 자신의 책을 본 소감으로 구하기 힘든 책을 가진 사람을 십 년 만에 봤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소개할 ‘놀랄 만한 책’은 오늘 처음 공개합니다. 《세계고전삽화백과》라는 책입니다. 자연, 기술, 건축,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도안 삽화가 실려 있습니다. 1851년 독일에 출간된 그림 백과사전에 수록된 삽화를 옮긴 겁니다. 즉, 19세기 판 《세계만물 그림사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19세기 당시 지구상에 알려진 모든 지식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죠. 책에 있는 그림들을 보면 눈이 즐거워요. 세밀한 표현에 감탄하게 됩니다. 책에 있는 그림들을 조금만 공개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 책을 상세하게 소개하겠습니다.

 

 

Q7. 정말 놀라운 책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홍윤 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분이 알라딘 서재에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분은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천 편이 넘는 서평을 남겼습니다. 제가 너무 늦게 알라딘 서재를 알게 돼서 홍윤 님과 댓글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습니다. 홍윤님의 서평집을 읽어봤어요. 그녀는 혼자서 광활한 추리문학의 세계를 자유롭게 거닐면서 수많은 탐정과 범인들을 만났습니다. 홍윤 님은 그 만남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서평으로 기록했습니다. 홍윤 님의 서평집은 저 같은 추리문학의 세계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한 한 권의 지도입니다. 저는 홍윤 님의 발자국을 믿고 서평의 지도를 보면서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헌책방에 가면 홍윤 님의 서평집을 참고합니다. 헌책방에 홍윤 님이 읽었던 절판된 추리소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녀처럼 문장으로 된 발자국을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홍윤 님이 생전에 읽지 못한 추리소설은 많습니다. 만약 홍윤 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제가 헌책방에서 찾아낸 추리소설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추리소설 읽기의 재미를 알려준 홍윤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굳이 꼭 한 권만 골라야 됩니까? 저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잘 때까지 끊임없이 책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고 나면 새 책이 나옵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 이럴 때 정말 괴롭습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이것도 많은데요. 중간에 읽다가 만 책도 언젠가 다시 읽게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끝내지 못한 책’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죽을 때까지 완독하지 못한 책이 있으면, 그 책이야말로 진짜 ‘끝내지 못한 책’입니다.

 

 

 

 

Q10. 음, 갑자기 대답이 점점 짧아지는데요. 이제 끝나갑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그런데요, 정말 무인도에 가면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왠지 무인도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책 읽을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무인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정에 따라 세 권의 책을 가져가겠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 최인자 씨가 번역한 마틴 가드너 주석의 《앨리스》, 그리고 앵거슨 디턴의 《위대한 탈출》 구판입니다. 세 권 모두 오역과 발췌 번역으로 논란이 있었던 책입니다. 무인도에 살아남으려면 몸의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세 권의 책은 불쏘시개로 쓰기에 좋습니다. 아니면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해도 됩니다. 옛날에 방영된 추억의 일본 만화 <빨강머리 앤>에 보면 앤이 추위를 이겨내려고 책의 종이를 찢어서 뭉친 뒤에 몸 안에 넣더군요. 실제로 몸 안에 종이나 낙엽 뭉치를 넣으면 체온이 올라갑니다. 절대로 읽으면 안 되는 엉터리 책도 가끔 쓰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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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책의 날이벤트포스팅 글 최고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각색이 대단하네요...ㅋ

cyrus 2016-05-14 19:08   좋아요 0 | URL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분량이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비의딸 2016-05-13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풀종다리의 노래는 저도 있어요. 으쓱~!!
물론 중고로 샀구요.

cyrus 2016-05-14 19:10   좋아요 0 | URL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저는 희귀 도서를 가지고 있는 분을 보면 반갑게 느껴져요. ^^

stella.K 2016-05-1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난 네가 이거 한 줄 알았는데 안 했단 말이냐? 와, 진짜 손석희 씨 책은 특종이다.ㅋ 너도 침대가 없구나. 왠지 동지 같다. 배 깔고 읽는 건 좋지만 팔이 금방 아프지 않냐?ㅋㅋ

cyrus 2016-05-14 19: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팔이 저려서 불편한 점이 있어요. 날씨가 따뜻해지면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어요. ^^

syo 2016-05-1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 질문과 대답에 관하여 사뭇 진지하게 궁서체로 뭐 하나 여쭤봅니다.

참여정부시절이었습니다.

대학 도서관은 처음이었는데, 시립도서관에서는 접할 수 없는 스펙터클이 참 사람 왜소하게 만들더라구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며칠째 지지부진 답보상태이던 장과 변 사이의 소통구조가 일시에 합의에 도달하면서......

이후로도 희한하게 서가를 기웃거리노라면 꼭 어느 시점부터는 괄약근이 열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왜일까를 한참을 고민하던 어느 날, 별일 없는 제 인생에 손꼽을만한,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도 역시 의미없이 서가를 방황하며 읽지도 않을 책 괜히 뺐다 꽂았다 하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알살 혁명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폭발 상태는 아니었던지라, `아 도대체 책과 똥 사이의 상관관계는 뭐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눈 앞에 있는 아무 책이나 꺼내서 펼쳤는데, 세상에 바로 그 책에, 거기다 바로 그 페이지에, 도서관이나 서점 같이 책이 대량으로 진열되어 있는 곳에 가면 장활동이 활발해지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적같은 만남이! 저는 그 어마어마한 우연이 전해주는 감동에 소스라치게 전율하면서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쾌변했다는 소스라치게 더러운 이야기가.....

여하튼 그 사건 이후로 저는 이게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자를 맞닥뜨린 인간의 온몸이 떨리듯이 책 더미를 맞닥뜨린 인간의 대장이 떨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렇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몇달 전, 우연히 친구 둘과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제 이야기를 들은 그 인간같지도 않은 것들이 자기네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며, 그건 너의 대장이 coward라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삼십 평생 남한테 피해 한 번 안주고 살아온 제 선량한 대장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책 앞의 똥 현상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관련해서 언급해놓은 책도 있다, 내가 봤다, 고 진술하였는데, 이 베니스의 사악한 고리대금업자 같은 친구놈이 책의 제호를 대 보라며 따지고 들자, 10년도 더 전의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말을 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네이버를 통해 저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증언을 증거로 제시하려 하였지만, 도대체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그저 앞이 캄캄한 겁니다. 차마 이 자리에서는 언급하기 힘든 부끄럽고도 유치하고도 적나라한 문장을 입력하여 검색을 시도해보았으나 비극적이게도 만족할만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시체뜯는 하이에나 같은 친구놈들의 시선을 등 뒤로 한 채, 저는 점차 위장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다, cyrus님의 이 글을 만났습니다. cyrus님의 독서력과 식견을 믿고 염치 불구 도움을 요청합니다. 혹시 참여정부시절 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던 그 이름 모를 책의 이름을 알고 계신가요? 아니면, 책 앞의 똥 현상의 과학적 근거를 증명할 만한 논문이나 문헌에 대한 정보라도.......

도와주세요.
저 적그리스도의 졸개 같은 친구놈들로부터 제 대장의 잃어버린 명예를 복권해주세요.....

cyrus 2016-05-14 19:14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는 책 너무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syo님이 찾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도서관과 배변 욕구의 관련성은 옛날에 스펀지라는 방송을 보면서 알았어요. 이를 증명하는 학술논문은 보지 못했습니다.

시이소오 2016-05-13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야말로 애서가십니다 ^____^

cyrus 2016-05-14 19:16   좋아요 0 | URL
구입한 책을 바로 읽지 않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안 읽으면서 사들이는 건 병입니다. ㅎㅎㅎ

:Dora 2016-05-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ㅋㅋㅋㅋㅋ사진은 어디서 어떻게 뽑으시는 검뉘까 ??아놔 ㅋㅋㅋ

cyrus 2016-05-14 19:17   좋아요 1 | URL
그냥 검색하면 웃긴 사진들이 나옵니다. 글로 웃기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재미있는 사진으로 글을 보는 분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

:Dora 2016-05-14 19:20   좋아요 0 | URL
덕분에 많이 웃네요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보물선 2016-05-1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뚝뚝 묻어납니다!

cyrus 2016-05-14 19:18   좋아요 0 | URL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입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문십답 가운데 가장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애서가 인정..

cyrus 2016-05-14 19:19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글이 더 재미있었어요. 곰발님이라면 질의응답식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실 것 같습니다. ^^

nomadology 2016-05-1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께. 그런 분들이 한 20%된다는 글이 있네요.

http://dvdprime.donga.com/g5/bbs/board.php?bo_table=comm&wr_id=6163530

다행히 저는 그 20%에 해당하지 않나봅니다.

cyrus 2016-05-16 16:12   좋아요 0 | URL
진짜 예민한 사람은 화장실 출입이 많다고 하더군요. 책이 많은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 장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

마녀고양이 2016-05-1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이야, 뒷북!

아유, 이 페이퍼 정말 잼나네요. 그리고
사이러스님 진짜 책 많이 읽으시네.... 애서가 완전 인정. 멋져요~

근데 진짜루 손석희 님의 사인 받았어요,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진짜, 완전히, 제대로, 확실히, 그대는 멋집니다.

cyrus 2016-05-16 16:14   좋아요 0 | URL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책이 많아요. 생각해보니까 다 읽지 못한 책이 다 읽은 책의 수보다 많을 거예요.

2014년에 손석희 님의 사인 인증 사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

http://blog.aladin.co.kr/haesung/6818267
 
닳지 않는 칫솔
서민 지음 / 장문산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2016년은 특별하다. 2016년은 셰익스피어 사후 400주년이다. 다시 한 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돈 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근대문학의 문을 열어젖힌 두 거장을 향한 관심의 열기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2016년은 ‘우리의 스타’가 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의 스타’가 누구냐고? ‘마침내 태어난 우리의 스타’를 잊으셨는가? 슬프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으로 위대한 작가를 모르시다니. 이제부터 1996년 9월 15일을 기억하시라. 엄청난 소설이 나왔던 날이다.

 

 

 

 

 

《소설 마태우스》. 이 소설은 놀라운 힘을 가졌다. 《소설 마태우스》 3대 의혹을 아시는가. 그중 하나가 《소설 마태우스》의 저주와 관련되어 있다. 《소설 마태우스》를 읽은 사람 대부분 서민 교수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서민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소설 마태우스》의 실패,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관계 단절, 스타를 알아보지 않는 사회에 대한 실망감. 저주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인생의 쓴맛을 본 서민 교수는 《소설 마태우스》 2권을 출간하기로 한다. 아들의 글쓰기를 응원했던 어머니가 극구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 교수는 재기를 노린다. 이때 나온 책이 바로 ‘삐삐소설’ 두 번째 이야기로 알려진 《닳지 않는 칫솔》이다.

 

 

 

 

 

 

 

 

 

《닳지 않는 칫솔》은 《소설 마태우스》보다 구하기 힘들다. 서민 교수는 《소설 마태우스》가 자신의 아들이면, 《닳지 않는 칫솔》은 둘째 아들이라고 말했다. 서민 교수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아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 독자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숨기려고 한다. 《닳지 않는 칫솔》은 형과 닮았다. 작가의 경험담, 재미있는 이야기, 사회 현상을 소재로 한 칼럼 그리고 소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전작보다 못한 후속작’의 저주를 《닳지 않는 칫솔》도 피하지 못했다. 《닳지 않는 칫솔》은 형보다 못한 아우다.

 

서민 교수는 소설 창작에 대한 쓰라린 실패가 두려웠던 것일까? 《닳지 않는 칫솔》에 수록된 소설의 수가 많지 않다. 고작 네 편에 불과하다. 썰렁한 개그로 무장한 ‘형사 마태우스’가 등장하는 소설도 없다. 《소설 마태우스》 2권답지 않다. 《닳지 않는 칫솔》에 삐삐소설 두 편(‘성탄절 밤의 고등어’, ‘외다리 정육점의 비밀’), 가상소설(‘올챙이의 꿈’), 음모소설(‘호랑이는 무얼 알고 있었을까?’) 한 편씩 수록되었다. 그래도 가상소설 「올챙이의 꿈」은 읽어볼 만하다. 무정자증 남자들이 증가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공상과학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정자무(精子無)’다. 정자무의 아내 이름은 ‘난소유(卵巢有)’다. 마태우스는 무정자증 치료법을 개발한 박사로 언급된다. 서민 교수는 세계 최초로 정자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재가 황당하지만, 「올챙이의 꿈」은 남성 불임 환자가 급증하는 사회를 예언한 소설이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늦은 결혼과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30대 후반 남성 불임 치료 환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출산율이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무정자증 환자 급증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할 수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26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1996년 베스트셀러였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데 26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모은 편집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글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 서민 교수의 글은 간결한 분량을 유지하면서, 재치 있는 유머가 독자 앞에서 번쩍 드러날 때가 매력이 있다.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다가도, 그 다음에 나온 이야기가 생각보다 재미없을 때가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26가지 이야기」는 ‘재미’와 ‘노잼’을 반복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빵 터지면서 웃다가도 진지한 내용의 글이 나오면 웃음이 싹 사라진다. 이렇다 보니 독자는 작가가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책의 정체에 혼란스러워한다. 《닮지 않는 칫솔》의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서민 교수는 책의 관심을 끌려고 ‘닳지 않는 칫솔’이라는 특이한 제목을 정했다고 밝혔다. 원래 제목은 ‘눈 비비다 눈 빠진 사나이’였다고 한다. ‘닳지 않는 칫솔’도 범상치 않은 제목인데, ‘눈 비비다 눈 빠진 사나이’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아무튼,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닳지 않는 칫솔’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목이다. ‘닳지 않는 칫솔’의 정체가 궁금해서 이 책을 고르는 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에 실망한 독자가 많았다.

 

 

 

 

 

서민 교수의 글은 재미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기생충, 더러운 화장실 내부, 방귀 등 우리가 평소 불결하게 생각하는 대상을 소재로 쓴 글이 있다. 서민 교수는 《닮지 않는 칫솔》에 ‘유령선’이라는 삐삐소설을 실을 생각이었다. 이 소설 내용 역시 독특하다. 사람이 벽을 본 채 가부좌를 튼다. 침을 몇 시간 동안 모은 뒤에 한꺼번에 삼켜 배고픔을 잊는다는 설정이다. 침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가 있을까 봐 아쉽게도 책에 수록되지 못했다. 서민 교수는 침과 방귀로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저급 유머로 여기는 교양주의의 ‘꼰대’를 지적한다. 그의 저항심에 동의한다. 저급 유머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 중에 과연 내실이 청결한 이가 얼마나 될까? 여전히 우리는 편협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대상을 판단한다. 기생충을 더럽기만 하고,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생각한다.

 

 

 

 

 

‘닳지 않는 칫솔’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칫솔이 뭔지 알 것 같다. ‘닳지 않는 칫솔’은 서민이다. 두 명의 아들이 쫄딱 망한 이후로 서민 교수는 긴 세월 동안 글쓰기 훈련에 매진했다. 어려운 세파에 시달렸어도 그의 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다.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의 세월 끝에 서민은 마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서민은 닳지 않은 인간이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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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5-1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사냥꾼의 탄생이네요.

cyrus 2016-05-13 16:24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입니다. ^^;;

stella.K 2016-05-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글 보는 순간 마태우스님 TV 특강 때 나와 하신 말씀이 생각나
한참 웃었다.
와, 근데 넌 어떻게 이 책을 손에 넣었냐? 부럽다!!!

cyrus 2016-05-13 16:25   좋아요 0 | URL
이 책 찾느라 매일 헌책방 사이트를 접속했어요. ^^

2016-05-12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3 16:28   좋아요 0 | URL
교수님이 대구에 강연하러 오셨을 때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소설 마태우스>를 들고 와서 사인도 받았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책의 어설픈 점을 지적했지만, 오히려 그게 이 책의 매력이었어요. 진짜 서민 교수님은 마음이 순수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마태우스 2016-05-13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cyrus님....제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시다니 ㅠㅠ 근데 전 갠적으로 이 책이 마태우스보다 좀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cyrus님은 다르게 생각하시는군요 하기야 뭐, 도토리 키재기죠 하하하하. 더 낫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덜 한심하다, 이런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걸요. 근데 이 글이 좋아요가 20개나 되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보겠군요 ㅠㅠ 으으.... 역시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봐요

cyrus 2016-05-13 16:34   좋아요 1 | URL
저는 형사 마태우스가 나오는 이야기가 좋았어요. <닳지 않는 칫솔>에도 나올 줄 알았는데, 마태우스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교수님 유머에 많이 웃었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5-1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이 귀한 무림기서를 얻으셨군요..이로써 cyrus님의 내공이 일갑자는 더 올라가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5-13 16:34   좋아요 0 | URL
아직 못 찾은 서민 교수님의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이제 그 책만 찾으면 됩니다. ^^

페크pek0501 2016-05-13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겠습니다. 열 번 누르고 싶으나 물의를 일으킬 것 같아 한 번만 누르겠습니다.
마태우스 님도, cyrus님도 웃음을 주셨습니다. 웃음은 우리 삶의 활력소지요.
무엇보다 감동을 주셨습니다.

˝두 명의 아들이 쫄딱 망한 이후로 서민 교수는 긴 세월 동안 글쓰기 훈련에 매진했다.˝
- 본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저를 느낍니다. 저도 매진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cyrus 2016-05-13 16:37   좋아요 0 | URL
절판된 서민 교수님의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지 못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소설 마태우스>와 <닳지 않는 칫솔>가 복간되었으면 좋겠어요. 페크님이 매진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페크님이라면 좋은 성과가 올 거라 믿습니다. ^^

yamoo 2016-05-1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사이러스 님이 마태우스 님을 제대로 디스 했네요...아, 정말 신랄한 디스입니다. ㅎㅎ 마태우스 님...어떡해요..^^;;

저도 좋아요를 누를께요. 100번 누르고 싶으나 물의를 일으킬 거 같아 한 번만 눌러써요~~ㅎㅎ

아, 사이러스 님은 도체 이런 책을 잘도 구하신다는! 진짜 <닳지 않는 치솔>은 희귀본인데 말이죠. 더군다나 1000원..OTL

cyrus 2016-05-13 16:39   좋아요 0 | URL
신랄한 디스의 대가 곰발님이 하셔야 더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운이 좋았어요. 책이 없었으면 저는 진짜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

마녀고양이 2016-05-1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저도 TV 특강에서 마태우스님이 이 얘기를 하시길래
엄청 웃었는데. 그리고 경향 신문의 마태우스님 칼럼 읽으셨어요? 캬캬캬.....
그 반어법에 끝까지 머리 굴리며 낄낄 대고, 이후 댓글을 읽으면서 또 낄낄 대고.

참, 매력적인 분들이 많아요, 알라딘 동네는~

cyrus 2016-05-16 16:16   좋아요 0 | URL
칼럼이 나올 때마다 꼬박 챙겨 보고 있습니다. 평범한 소재로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는 게 교수님 칼럼의 매력입니다. ^^
 

 

 

 

 

 

 

 

 

 

 

 

 

 

 

 

 

하루도 빠짐없이 사과나무를 찾아가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나뭇잎을 주워 모으고, 떨어진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면서 숲 속의 왕자가 되어 놀았다. 때론 맛있는 사과도 따 먹고, 혼자 놀다가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사과나무에게 물건을 사고 싶은 소원을 말했다. 나무는 자신의 사과를 팔아서 그것을 사라고 하였다.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돌아왔고 나무는 언제나 그랬듯 소년을 기쁘게 맞이한다.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서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 후 소년은 나무줄기를 베어서 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 떠나가 버렸다. 나무는 소년의 행복만을 기원했다. 한때 자신을 버리고 이용했던 소년이 늙고 병든 몸으로 돌아왔다. 나무는 열매와 가지 줄기를 모두 내주고 마침내 몸체가 잘려나간 밑동까지 쉼터로 내준다.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무는 정말 행복했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선한 의지를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어 주고 여전히 행복하기만 한 나무의 모습이 딱해 보인다. 이 책을 아이나 어른들에게 권하는 게 권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안구에 습기가 차오른다.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주는 삶은 좋다. 하지만 무조건 주는 행위가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려고 타인의 희생을 이용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심리 조종자’다. 심리 조종자란 타인의 허점을 파악하고 관계의 주도권을 쥔 다음 조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만날 경우,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 증후군’에 빠진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심리 조종자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억누른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강박적으로 믿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의지나 감정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대방 욕구에 자신을 맞추려다 보니 무조건적으로 희생한다. 소년 한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퍼주다가 흔들린 나무처럼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고도 정작 원하던 대가들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숭고한 희생의 사랑으로 포장된다. 착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 끙끙 앓는다. 마음이 멍들고, 그 감정의 불순물은 마음 밑바닥에 모래알갱이처럼 응어리진다.

 

소년의 입장이 되어 보자. 그가 그동안 살면서 받았던 나무의 도움을 잊지 않았으면 나무의 존재를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줘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지켜준 나무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우리는 소년처럼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나무처럼 남을 위해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만드는 훌륭한 일만 하려 하지 남의 존재를 부각하는 궂은일은 피하려고 한다.

 

 

 

 

 

 

 

 

 

 

 

 

 

 

 

 

 

만약 신영복 선생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을 칭송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 나무가 행복할 방법을 알려준다.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있는 나목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 봅니다. (《처음처럼》 111쪽)

 

 

 

나무는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어디에 심어졌든 묵묵히 자라 봄이면 싹을 틔워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낸다. 나무는 햇빛을 피하는 그늘도 되고, 성글지만 비를 피하는 우산도 된다. 아이들 놀이터도 되고 그네를 매는 기둥도 된다. 베어져서는 집을 짓는 재료나 땔감으로도 쓰인다.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 바로 그게 나무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의 헌신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면서 늙어버린 겨울 나목을 외면한다. 이처럼 희생하던 사람은 더 큰 희생을 요구받고 항상 손해를 보게 된다.

 

신영복 선생은 벌거벗은 나목을 위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달아줬다. 아름답고 포근한 별빛을 달아주면 나목은 외롭고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 나무를 위한 최상의 배려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진짜 사랑이다. 겨울은 별만 생각하는 계절이 아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한 나무를 생각하는 계절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요구에 맞춰 사는 수동적인 개인에 불과하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무를 위해서 무언가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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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5-1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새로운 시각이네요.심리조종자라니!!

cyrus 2016-05-12 18:38   좋아요 2 | URL
인터넷에서 본건데, ‘심리 조종자’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었어요. ^^

페크pek0501 2016-05-1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면서 모녀관계에 대해 생각했어요.
딸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으레 외할머니에게 육아를 맡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선배 중에는 손주를 키워 주는 일을 맡아서 사람들이 만나는 모임에도 못 나오고
집에 갇혀 사는 분이 있는데, 그것이 좋은 삶인지 모르겠어요.

딸이 긴 세월 자신을 키워 주신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답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가 육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현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힘든 현실...)

저도 자식에게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cyrus 2016-05-13 16:45   좋아요 0 | URL
저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부모와 자녀 관계를 생각해봤어요.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가 많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살면 좋은데, 페크님 말씀처럼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죠.
 
처음처럼 - 신영복의 언약, 개정신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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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이란 이름 다음엔 자연스럽게 ‘감옥’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선생은 감옥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가장 저주받은 운명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이다. 어둡고 암울한, 분노와 저주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지혜와 사색의 산실, 때론 축복과 은혜처럼 여겼다. 선생의 생각이나 정서의 형성에 더 큰 계기를 제공한 것은 오히려 오랜 감옥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책으로 구성했던 사회론 대신 가장 소외된 밑바닥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사회에 숨겨진 모순구조를 통해 사회를 새롭게 바라봤다.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다른 사람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절대 감사의 존재다. 신영복 선생은 ‘불경어수 경어인(不鏡於水 鏡於人)’이라는 묵자의 말을 인용한다. 옛날에는 거울이 없어 맑은 물을 거울로 삼던 시대였다. 거울(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 비춰 자기 모습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진리’를 강조한다. 그 사회 속에 나는 내 밥그릇을 챙기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갔다. 물질적 부를 추구하며 과시하는 삶의 외양은 잠시 화려해 보일 수 있다. 거울(물)에 비춰보면 이런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화려한 모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편견과 이기심은 자신의 모습에만 매몰되고 다른 이들의 삶에 자신을 투영해보는 반성을 거치지 않아 나온 부산물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딱딱해지게 되어 있다. 살아서 유연하던 근육과 뼈는 시체가 되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진다. 유연하지 못하고 시체처럼 굳어진 이념의 노예가 되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이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흑백 논리에 사로잡히기 쉽다. 우리 사회에 소통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들보다 불행한 존재는 없다. 결핍증 환자는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만한 너그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포용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공존과 상생의 규칙을 모르는 데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만든다. 자격지심은 헛된 자존심으로 헛된 감정싸움을 불러일으킨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 맨스플레인(mansplain) 성향이 있는 나였기에 이 말에 비춰 보니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에 대하여는 냉혹하게 평가하는가 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올바르지 않은 판단 속에 남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비판의 칼날을 자신에 향하고, 타자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홀로 잘났다는 마음, 자신이 옳다는 마음, 자신을 합리화하는 ‘꼰대’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는 도그마의 권력은 모든 사람에게 재앙이다.

 

 

 

 

‘함께 맞는 비’라는 휘호를 보면서 내가 기억했던 ‘공감’이 잘못 변형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에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지는 못할망정 빗방울이 튈까 봐 피하기만 했다. 남을 돕는 삶을 살자고 하면서 나 자신부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면 꿈과 이상은 높은데, 재능과 실력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럴 때 어떤 이들은 냉정한 현실을 말하며 꿈을 접으라고 한다. 하지만 꿈을 꼭 이루겠다는 절실함, 그리고 약간의 우직함만 있다면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믿고 싶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라고 한 신영복 선생의 역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삶은 모두 순간순간의 과정이다. 실천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강제보다 스스로 가하는 강제 즉, 자율의 의지가 중요하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진작에 ‘지기추상’의 철학을 배웠더라면,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이란 구절처럼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끝까지 아집을 추구하는 무식함이 사라졌을 텐데. 너무 후회된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보듬어온’ 선생의 빈자리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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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좀더 살아 계셨더라면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을텐데 말이죠..

cyrus 2016-05-12 17:09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참된 어른이었습니다. 다른 서재 이웃분들의 서평 덕분에 처음으로 <처음처럼>을 읽었습니다. 진작 읽었어야 했습니다.

yamoo 2016-05-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영복 님의 책을 3권 갖고 있지만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한 참 후에나 읽게 될 거 같아요. 요즘 동양철학 계에서 핫하신 분을 만나 그 분 책들 다~~읽고 도올 전집을 다 읽은 후에야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참된 어른 인지 아닌지는 제가 신영복 님의 행적을 거의 몰라 평가하기 곤란하구요. 단지 투옥에서 고생하셨고, 그곳에서 쓴 책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감명을 줘서 저도 몇 권 구해놓았을 뿐입니다. 신영복 님 글을 읽으면 저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미래의 제 독후감처럼 사이러스 님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예감에 저도 이런 글 비스무리하게 리뷰를 작설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은지라..ㅎ

cyrus 2016-05-13 16:48   좋아요 0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처음처럼>, <나무야 나무야>를 읽은 게 전부입니다. 동양철학에 관한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동양철학은 어려워요. 신영복님의 삶을 반추하는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행적을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
 
우리가 악몽을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많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성격만을 일관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을 대할 때,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여 ‘cyrus’가 되어 회원의 글을 읽을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사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상처 입은 인간이다. 가면 속에 가려진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은 위협적이다. 그의 그림에는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엉켜 있는 가면(얼굴)들이 가득하다. 앙소르는 낯익은 것의 낯선 배신을 시도한다.

 

 

 

 

 

 

해골 화가에서 앙소르는 그림 그리는 해골로 묘사된다. 만약에 앙소르가 자신의 모습을 해골로 그리지 않았으면 이 그림은 낯익은 얼굴을 그린 평범한 자화상이 된다. 앙소르는 해골이라는 낯선 가면을 쓴다. 그의 아틀리에는 실재(낯익은 것)와 환상(낯선 것)이 서로 엉겨 상호 침투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쓴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앙소르의 그림이 주는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그림 속 얼굴과 화가의 실제 모습이 같아야 자화상이 성립된다. 그런데 앙소르는 낯익은 얼굴을 스스로 벗겨 낸다. 이젤 밑에 젊은 남성의 모습을 한 가면이 있다. 젊은 시절의 앙소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골 가면을 쓴 앙소르는 우리가 아는 화가가 아니다. 섬뜩한 죽음그 자체다. 그림 속 죽음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관객에게 말한다. “내가 화가(앙소르)로 보이니?”

 

 

 

 

 

 

 

 

 

 

앙소르는 가면뿐만 아니라 해골을 주제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죽은 인간이 부패하는 현상에 매료되었다. 앙소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스텐데라는 마을에 시체가 엄청나게 많았다. 17세기 초 스페인이 벨기에를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오스텐데가 확장 공사를 하게 되면서 스페인 군대에 희생당한 시체들이 대량 발굴되었다. 어린 앙소르는 땅 속에 묻힌 시체를 보게 되었고, 그 상황은 지워지지 않는 섬뜩한 기억으로 남았다. 앙소르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한 정서를 잊기 위해서 앙소르는 죽음의 신으로 분장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자들과 함께 카니발 연회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앙소르의 카니발은 유쾌하다기보다는 기괴하다. ‘낯익은 얼굴의 가면과 낯선해골이 함께 어우러진 앙소르의 그림에서 죽음과 불안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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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5-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가면을 쓰고
가면무도회로 갑니다~

cyrus 2016-05-11 20:04   좋아요 0 | URL
알라딘/북플은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공간 같아요. 오늘은 어떤 가면을 쓰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생각하니까요. ^^

yureka01 2016-05-1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ray찍어도 보이는 해골인데,단지 사진일뿐이겠지만...
해골이 가면이 아니라 진면이란 보장이 없겠지요.
간혹 자신도 자신이 낯설 때가 많아서 말이죠..ㅋㄷㄷㄷㄷ

cyrus 2016-05-11 20:06   좋아요 1 | URL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을 이루는 해골도 진짜가 아닐 수 있겠어요. 뼈도 세월이 지나면 부식되어 사라지니까요. ^^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5-1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
˝언어유희˝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지금은 재밌네요^^

cyrus 2016-05-11 20:28   좋아요 0 | URL
여기 오랫동안 놀다보면 점점 지겨워질 때가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로는 옛날에 앙소르 전시회가 열렸던 것으로기억합니다. 아니면, 종합 전시회 때 옹소르 작품 몇 점이 있었는지.. 하튼, 그림을 본 기억이 나네요..


하튼 그림이 굉장히 독특해서 아주 기묘한 감상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기분 더럽달까... ㅎㅎㅎㅎㅎㅎㅎ 참 독특한 감상이었씁니다..

cyrus 2016-05-12 17: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기분이 더럽습니다. 사실 앙소르가 가면과 해골을 그려서 무얼 나타내고자 하는 건지 전문가들도 잘 몰라요. ㅎㅎㅎ

yamoo 2016-05-1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앙소르는 처음 듣는 미술가네요~
좋은 화가 소개 감사합니다~ 찾아 봐야 겠어요!

cyrus 2016-05-12 17:11   좋아요 0 | URL
그림이 무섭고, 어둡습니다. 그 점을 참고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