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빠짐없이 사과나무를 찾아가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나뭇잎을 주워 모으고, 떨어진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면서 숲 속의 왕자가 되어 놀았다. 때론 맛있는 사과도 따 먹고, 혼자 놀다가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사과나무에게 물건을 사고 싶은 소원을 말했다. 나무는 자신의 사과를 팔아서 그것을 사라고 하였다.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돌아왔고 나무는 언제나 그랬듯 소년을 기쁘게 맞이한다.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서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 후 소년은 나무줄기를 베어서 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 떠나가 버렸다. 나무는 소년의 행복만을 기원했다. 한때 자신을 버리고 이용했던 소년이 늙고 병든 몸으로 돌아왔다. 나무는 열매와 가지 줄기를 모두 내주고 마침내 몸체가 잘려나간 밑동까지 쉼터로 내준다.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무는 정말 행복했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선한 의지를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어 주고 여전히 행복하기만 한 나무의 모습이 딱해 보인다. 이 책을 아이나 어른들에게 권하는 게 권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안구에 습기가 차오른다.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주는 삶은 좋다. 하지만 무조건 주는 행위가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려고 타인의 희생을 이용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심리 조종자’다. 심리 조종자란 타인의 허점을 파악하고 관계의 주도권을 쥔 다음 조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만날 경우,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 증후군’에 빠진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심리 조종자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억누른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강박적으로 믿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의지나 감정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대방 욕구에 자신을 맞추려다 보니 무조건적으로 희생한다. 소년 한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퍼주다가 흔들린 나무처럼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고도 정작 원하던 대가들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은 숭고한 희생의 사랑으로 포장된다. 착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 끙끙 앓는다. 마음이 멍들고, 그 감정의 불순물은 마음 밑바닥에 모래알갱이처럼 응어리진다.

 

소년의 입장이 되어 보자. 그가 그동안 살면서 받았던 나무의 도움을 잊지 않았으면 나무의 존재를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줘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지켜준 나무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우리는 소년처럼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나무처럼 남을 위해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만드는 훌륭한 일만 하려 하지 남의 존재를 부각하는 궂은일은 피하려고 한다.

 

 

 

 

 

 

 

 

 

 

 

 

 

 

 

 

 

만약 신영복 선생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었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을 칭송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 나무가 행복할 방법을 알려준다.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있는 나목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 봅니다. (《처음처럼》 111쪽)

 

 

 

나무는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어디에 심어졌든 묵묵히 자라 봄이면 싹을 틔워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낸다. 나무는 햇빛을 피하는 그늘도 되고, 성글지만 비를 피하는 우산도 된다. 아이들 놀이터도 되고 그네를 매는 기둥도 된다. 베어져서는 집을 짓는 재료나 땔감으로도 쓰인다. 무엇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 바로 그게 나무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의 헌신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면서 늙어버린 겨울 나목을 외면한다. 이처럼 희생하던 사람은 더 큰 희생을 요구받고 항상 손해를 보게 된다.

 

신영복 선생은 벌거벗은 나목을 위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달아줬다. 아름답고 포근한 별빛을 달아주면 나목은 외롭고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 나무를 위한 최상의 배려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진짜 사랑이다. 겨울은 별만 생각하는 계절이 아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한 나무를 생각하는 계절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요구에 맞춰 사는 수동적인 개인에 불과하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무를 위해서 무언가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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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5-1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새로운 시각이네요.심리조종자라니!!

cyrus 2016-05-12 18:38   좋아요 2 | URL
인터넷에서 본건데, ‘심리 조종자’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었어요. ^^

페크pek0501 2016-05-1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면서 모녀관계에 대해 생각했어요.
딸들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으레 외할머니에게 육아를 맡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선배 중에는 손주를 키워 주는 일을 맡아서 사람들이 만나는 모임에도 못 나오고
집에 갇혀 사는 분이 있는데, 그것이 좋은 삶인지 모르겠어요.

딸이 긴 세월 자신을 키워 주신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답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가 육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현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힘든 현실...)

저도 자식에게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cyrus 2016-05-13 16:45   좋아요 0 | URL
저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부모와 자녀 관계를 생각해봤어요.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가 많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살면 좋은데, 페크님 말씀처럼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