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악몽(惡夢)을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





                    - 영화 << 기담 >> 에서 그 유명한 엄마 귀신




                                                                            무릎과 무릎 사이,  치골과 둔골 사이, 그 사이에 거뭇거뭇 거웃이 자랄 무렵,  우리는  많은 < 꿈 > 을 꾸게 된다.   이야기도 가지각색이고 판타자도 스물네 가지 총천연색이어서 지난 꿈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 무서운 꿈 " 은 세월이 흘러도 비교적 生生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사춘기 때 꿈속에서 수많은 악귀(惡鬼)를 경험하게 되지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낯선 자'가 아니라  낯익은 자'다.  그 대상이 낯익은 얼굴일수록,               유대 관계가 친밀한 존재일수록 두려움은 비례한다.  그러니까,  달빛 어스름 비치는 거실 한구석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성이는 귀신은 주로 어머니'인 것이다. 낯익은 대상이 나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낯설게 말할 때의 공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악귀 가운데 사랑하는 엄마'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대상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그 대상으로부터의 분리 공포 불안'도 강화된다.  아침만 되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나 주인이 집을 비우면 이상 증세를 보이는 반려견도 분리 불안 장애'에 해당된다.

우리는 모두 모체(母體)에서 분리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 탄생 > 은 곧 익숙한 것(모체)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원형적 분리 불안 공포가 엄마 귀신에게 투사되는 것'은 아닐까 ?   이처럼 두려움을 작동시키는 서사의 원형은 < 낯익은 것의 낯선 배신 > 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악몽을 통해서 배운 교훈은 사람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이었다.  낯익은 얼굴과 낯설은 얼굴은 동일하다는 사실. 얼굴과 탈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얼굴은 기본적으로 (낯) 설은 것과 (낯) 익은 것이 엉켜 있는 부위다.   즉, < 낯 > 은 " 설익은 " 것이다.  김현은 << 행복한 책읽기 >> 에서 모체(母體)에서 분리된 불쾌한 경험을 동일자와 타자로 설명한다.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 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김현의 말대로라면  :   악몽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 엄마 귀신 ㅡ 꿈 > 은 동일자라 믿었던 대상이 타자화될 때 느끼게 되는 불안이 반영된 결과'다.     여기서 동일자는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 자상한 엄마 > 이고,   타자'는 나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되묻는 < 기이한 엄마 > 다.

이례적으로 조성호(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 범인)의 얼굴과 신상(身上)이 공개되었다.  경찰은 시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얼굴을 공개했다지만 흥미진진한 싸구려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1).  범인 얼굴을 본 대중은 대동소이한 한 줄 논평을 내놓는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놈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는 장탄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모든 범죄의 팔 할은 멀쩡하게 생긴 놈이 저지른다. 오히려 괴물 같이 생긴 얼굴(놈)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느냐 > 는 질문에는 < 인간의 탈을 썼기 때문에 가능하다 > 는 답변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모든 패륜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범죄'다.

익숙한 얼굴,                다시 말해서 멀쩡한 얼굴은 항상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경계'다. 믿음이 선을 넘으면 맹신이 되고, 맹신이 과도하게 되면 파시즘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평범한 얼굴은 믿을 것이 못된다.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은 얼굴이다.  파리는 죽은 사체의 눈, 귀, 입, 귓구멍 속으로 들어가 구더기를 낳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얼굴은 구멍의 총합이다.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은 설익은 얼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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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봐도 어버이연합 게이트라는 대형 이슈를 덮기 위한 이벤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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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바.보 #47 - 내가 화가로 보이니?
    from 冊性愛子 2016-05-11 17:31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많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성격만을 일관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을 대할 때,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여 ‘cyrus’가 되어 회원의 글을 읽을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사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cyrus 2016-05-1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이 얼굴, 그리고 인간의 탈. 곰발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이 생각났어요. 자세한 감상은 따로 먼댓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는 글, 참 좋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0 21:23   좋아요 0 | URL
dk, dkd아, 앙소르 그림 인상 깊게 본 1인입니다. 맞아요. 이 글에 알맞은이미지는 앙소리 그림인 것 같습니다. 먼댓글 남기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정독하겠습니다..

5DOKU 2016-05-1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면 너무 무섭게 봤던 기억이 나는데
무심코 스크롤 내리다가 심장 떨어질 뻔 했네요. ㅎㅎ
<행복한 책읽기>를 읽어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17:23   좋아요 0 | URL
행책은 왠지 구판 디자인으로 읽어야 제맛인 것 같습니다.
새판 나왔던데 영 책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더군요.. 행책은 구판이 정답입니다..


글구.... 저 장면, 저도 진짜 깜놀했습니다. 정말 꿈속에서 막 뭐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귀신을 꾼 적이 있거든요...

yamoo 2016-05-1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영화 <기담>은 못봤지만, 귀신 사진은 정말 섬뜩하군요! 정말 <기담>을 보면 무시무시 할 거 같습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9   좋아요 0 | URL
이 장면만 무섭습니다.. ㅎㅎ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만한 공포영화였습니다. 한번 보세요...

채송 2016-05-1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 대한 해부학적(정신이든 육체든)글이 인간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3:56   좋아요 0 | URL
해부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능력이 열등합니다. 머리만 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