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이 길어지면 인간은 비루해진다

지루한 삶에서 오는 권태는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



















*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난다, 2023)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권태의 섬뜩한 실체를 알고 있었다보들레르는 자신의 첫 시집 악의 꽃의 시작을 알리는 서문에 해당하는 독자에게라는 시에서 권태를 언급한다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더러운 놈이 하나 있다!

이렇다 할 몸짓도 없이 야단스러운 고함소리도 없이,

지구를 거뜬히 산산조각 박살내고,

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지니,

 

그놈이 바로 권태! 눈에는 본의 아닌 눈물 머금고,

물담뱃대 피워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알고 있지,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보들레르, 악의 꽃》 「독자에게중에서, 황현산 옮김)




그는 권태를 일시적으로 지루한 상태로 바라보지 않았다과장된 비유로 보일 수 있겠지만, 보들레르가 노려본 권태는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괴물’이이 괴물은 지구를 박살 내버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크게 하품하는 권태는 세계를 집어삼킨다.


보들레르는 한가한 생활에도 싫증을 느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자신을 자책했고, 나태를 괴로워했다



 “영원한 불안에 휘둘리는 영원한 한가로움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세요. 마음 깊이 그 한가로움을 증오하면서 말입니다.”

 

(보들레르, 앙투안 콩파뇽의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46쪽에서 인용함)



이때 당시 보들레르는 백수였다. 그는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보들레르가 법관(法官)이 되기를 바랐지만, 보들레르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20대 초반의 보들레르는 재산과 땅을 일찍 상속받았지만, 금방 다 써버렸다. 아들에게 실망한 가족은 금치산자 선고 신청을 했고, 보들레르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청년으로 살아가게 된다스물여섯 살의 보들레르는 불안을 동반한 끝 모를 한가함을 증오한 청년이었다.




















* 파스칼, 김화영 옮김 팡세: 분류된 단장(IVP, 2023)

 

* 파스칼, 이환 옮김 팡세(민음사, 2003)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1)





보들레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지루함과 권태의 위험성을 간파한 철학자가 있었다보들레르는 이 철학자를 닮은 냉소주의자였고, 심연이라는 제목의 시(악의 꽃》에 수록되어 있다)에 철학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냉소적인 철학자의 정체는 짧은 글 모음집 팡세를 쓴 파스칼(Blaise Pascal)이다. 사실 그는 철학자보다 수학자와 신학자가 잘 어울린다. 파스칼은 이 책에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은 불행하다고 썼다인간이 지루함을 크게 느낄 때가 언제일까? 파스칼은 인간이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할 때 불행이 시작된다고 봤다.


아늑한 방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쓸쓸한 감옥이 될 수 있다. 너무 한가해도 문제다. 방에 틀어박혀 지내기 싫은 사람은 탈출을 시도한다. 지루함을 달래줄 기분 전환(divertissement)’을 감행한다. 그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까지 오락(divertissement)을 즐긴다오락에 빠지면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파스칼은 기분 전환을 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말한다오락을 즐기는 사람은 지루함과 권태를 못 본 체하거나 감추고 있다.






























* 몽테뉴, 심민화 · 최권행 함께 옮김 에세 1(민음사, 2022)

 

* 몽테뉴, 심민화 옮김 에세 2(민음사, 2022)

 

* 몽테뉴, 최권행 옮김 에세 3(민음사, 2022)

 

* 몽테뉴, 뫼니에 드 케를롱 엮음, 이채영 옮김 몽테뉴 여행기(필로소픽, 2020)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2)





파스칼은 은퇴 후에 즐기는 여가 생활도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를 좋아하지 않는다. 귀족으로 태어난 몽테뉴는 스물네 살에 법관이 되었고 서른 일곱 살에 은퇴했다. 한가해진 그는 자신의 성 안에 있는 서재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부지런히 쓴 글이 바로 에세다. 이 책이 유명해져서 사람들은 몽테뉴를 사색하는 은둔자로 기억한다하지만 몽테뉴는 밖에 나가서도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신장결석에 시달린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을 여행했다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던 몽테뉴는 여행 일기를 남겼다.


교양 라디오 프로그램 <함께하는 여름>을 진행했고, 방송 내용을 책(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 등)으로 펴낸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팡세몽테뉴를 반대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말한다몽테뉴는 자신을 향해 되묻는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 파스칼의 관심사는 생각하는 자신이 아니라 이다그는 숨어 있는 신을 알고 싶어했다파스칼의 눈에 비친 몽테뉴는 비참한 신 없는 인간’(팡세1부의 제목)이다.










 









[카페 스몰토크 철학 도서 읽기 모임 지정 도서 (2025년 9월)]

* 고쿠분 고이치로, 김상운 옮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어떻게 살 것인가(arte, 2025)

 

* 남태현 극우의 노래: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오월의봄, 2025)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남을 돕거나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기분 전환이다. 그러나 비뚤어진 정신으로 타인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극단주의자가 된다.


지루함과 한가함을 철학으로 분석한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郎)극우화된 일본 청년들이 긴장 속의 삶’에 익숙해졌고 진단한다극단주의 성향이 강한 청년들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는다. 그들은 숨어 있는 적대 세력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해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천하태평이다. 자신이 믿는 음모론을 우습게 여긴다. 극단주의자는 초조하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정치다. 적대 세력들을 공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적대 세력 규탄 집회에 참여한다. 그렇게 자신들은 바람직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루함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는 사람들을 분석한 고쿠분의 견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내 청년의 극우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극우 청년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적대 세력은 친북 정치인들과 간첩, 그리고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이다구직에 어려움을 느낀 청년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을 위한 정책에 분노한다. 외국인과 여성이 유리해질수록 자신들은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불만이 가득 쌓인 청년들은 외국인 혐오와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주의자의 논리에 끌린다


대부분 사람은 이른바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 집회에 참석한 노인들을 경멸한다. 태극기를 액세서리처럼 치장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들을 바라보면 거부감이 느끼고, 애초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버린다이러면 노인들이 극우 집회에 참석하게 된 속사정을 알지 못한다극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극우의 노래의 저자 남태현 교수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집회를 즐기러 오는 노년층을 주목한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함께 웃으며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서로 동료애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들이 모인 자리 같았습니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와요.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거든요. 이렇게 친구들도 만나고 자주 볼 수 있어 좋죠.”



 실제로 집회 전후의 모습은 아이들의 소풍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풍경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정치적 토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사적인 이야기들이었죠. 몇 년을 매주 함께하다 보니 깊은 우정도 쌓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의 고립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태극기집회는 이들에게 연대와 우정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극우의 노래》 중에서, 179~180쪽)



교수가 바라본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은 집회를 동년배와 함께하는 축제로 인식했다. 집회에 비속어를 섞어 가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거칠게 하는 노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노인들은 정치와 관련 없는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혼자 있으면 한가하면서도 지루하다한가함을 뒤집으면 지루함이고, 지루함을 뒤집으면 한가함이다그래도 우리는 지루함을 더 크게 느낀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데도 지루할 수 있다가족과 연인이 함께 있으면 보드라운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꺼칠한 권태로 변한다. 하품을 연신 해대는 권태 괴물을 조심해야 한다. 소리 없는 괴물은 우리를 계속 집어삼킨다. 권태에 잡아먹힌 우리는 기분을 전환하는 재밋거리를 찾는다. 오락이 재미있어서 행복감을 느끼면 권태 괴물의 속은 더부룩해진다. 불편한 권태는 행복한 인간을 뱉어낸다. 오락을 계속 반복하면 지루하다. 이때 권태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다시 한번 하품할 준비를 한다.


파스칼은 사는 게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을 딱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싸늘한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말로 불행한 사람은 지루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을 따라 한다.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오락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오락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지루함을 극단적으로 해소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다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타인을 괴롭힌다. 타인이 즐거워하지 않는 오락(娛樂)은 오락(誤樂)이다. 잘못된 재밋거리(誤樂)



가장 위험한 권태 괴물은 지루함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에게 오락(誤樂)을 하라고 속삭인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괴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괴물이 우리를 닮아서 그런가?














[글 제목이 있는 사진 원본에 붙인 주석] 블룹 몬스터(The Bloop Monster)라는 미확인 괴생명체(Crypt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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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20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루함을 뜻하는 한자로는 민(闷)이 있고요, 한가함을 뜻하는 한자로는 휴(闲)가 있네요.
둘 다 부수로 문(門)이 네요. 마음이 문 안에 갇혀 있으면 지루하고 답답하게 되고, 마음이 문을 벗어나 나무를 보면 한가함이 된다고 하네요. 즉 같은 사물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지루함과 한가함이 나누어지네요. 파스칼 선생께서 지루함을 조금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하셨다면 한가로움의 충만함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아마 느끼셨겠죠? ㅎㅎ
Cyrus 님께서도 한가로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cyrus 2025-11-02 21:05   좋아요 1 | URL
파스칼과 니체의 공통점은 몸이 허약해서 여러 병을 달고 살았어요. 그래도 두 사람은 아픈 와중에도 글을 열심히 썼는데, 글이 전체적으로 보면 냉소적인 분위기가 짙어요. 두 사람을 보면서 건강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픔을 달고 사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
 











이번 연휴는 철학 책에 달라붙어 읽으면서 지내고 있다지난달부터 철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달과 그다음 달에 철학 책을 읽는 모임 일정이 잡혔다철학 책 모임 전부 주말에 진행된다이미 지난주 토요일에 철학 책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이번 주 일요일 오후에 철학 책 독서 모임이 있다.












[카페 스몰토크 철학 공부 모임 <니체와 레비나스> 지정 도서]

* Bettina Bergo · Jill Stauffer 엮음, <Nietzsche and Levinas: “After the Death of a Certain God”> (Columbia Univ Pr, 2008)





지난주 토요일에 시작된 철학 책 독서 모임 이름은 니체와 레비나스(Nietzsche and Levinas)’. 모임 이름은 지정 도서 제목이기도 하다. <니체와 레비나스>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영문으로 된 원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읽는다. AI 번역기로 한 것이라서 어색한 문장이 있지만, 그래도 읽을 만하다.





























* [품절]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 · 홍사현 함께 옮김,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책세상, 2005)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 2025)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모임 지정 도서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안티크리스트(아카넷, 2013)

 

* [품절]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5)




책의 부제는 어떤 신의 죽음 이후(After the Death of a Certain God)’신의 죽음은 니체 철학의 핵심 용어다. 오랫동안 서양을 지탱해 온 철학의 두 기둥을 무너뜨리는 선언이다. 철학의 두 기둥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된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초월적인 신을 뜻한다. 철학의 두 기둥을 부여잡은 인간은 관념론을 쫓아다녔고, 자유와 욕망을 부정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타락한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 철학의 두 기둥 앞에 서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도덕과 기독교 교리를 반복적으로 새겼다니체는 을 죽이려고 철학의 두 기둥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철학의 두 기둥에 해방된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 줄 안다.









<니체와 레비나스> 첫 번째 시간은 레비나스 철학이 등장하기 전의 철학사를 되돌아보는 강연으로 시작했다. 강연자는 과거에 니체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철학 독서 모임을 진행했던 카페 스몰토크의 주인장 김 사장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 플라톤, 이기백 옮김, 크리톤(아카넷, 2020)





니체가 등장하기 전에 활동한 철학자들은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소크라테스(Socrates)덕에 관하여 논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38a). 플라톤(Plato)의 대화편 크리톤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대화 상대자 크리톤(Crito)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려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logos)’을 내다 버릴 수 없다면서 거부한다(플라톤, 크리톤46b). 원칙을 존중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은 윤리적인 삶이다.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윤리형이상학 정초(아카넷, 2018, 개정 2)

 

* 임마누엘 칸트, 김석수 · 김종국 옮김 도덕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한길사, 2019)

 

*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실천이성비판(아카넷, 2019, 개정 2)



그리스도교와 중세 기독교 철학은 금욕적인 윤리를 강조했다. 칸트(Immanuel Kant)가 지향하는 이성적인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도덕 법칙을 지키면서 자율적으로 살아간다. 그 도덕 법칙은 행위의 결과와 목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실행해야 하는 정언 명령이다.



















* 에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4년)


* 에마누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그린비, 2018년)


* 에마누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 (민음사, 2003년)




지금까지 언급된 철학자들(그리고 강연에 언급되었으나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철학자들)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주체(개인)를 이타적 존재로 상정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이들과 다르게 타자를 위해 살아가는 이타적 존재가 되자고 제안한다왜냐하면 윤리적 주체는 타자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시선과 관점으로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체와 타자는 동일한 존재가 된다. 아무리 개인이 이타적이라고 해도 타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카페 스몰토크 <에마뉘엘 레비나스 × 주디스 버틀러 읽기세 번째 지정 도서]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16번째 도서 (2019)]

주디스 버틀러윤조원 옮김 위태로운 삶애도의 힘과 폭력》 (필로소픽, 2018)




일요일에 있는 철학 모임도 정확히 일 년 전 카페 스몰토크에서 했던 <레비나스 읽기> 모임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레비나스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겹쳐 읽는 모임이기도 하다. 일요일 모임은 총 5회로 구성되어 있다모임 진행자는 작년 여름에 <레비나스 읽기> 모임을 만든 창현 씨창현 씨는 헤겔(Hegel), 칸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라캉(Jacques Lacan) 등의 철학자들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학식이 깊은 분이다모임 참석자 중에 철학을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분들이 있다. 창현 씨는 이분들을 위해 지정 도서의 핵심 내용을 글로 요약해서 정리한다.


곧 다가오는 첫 번째 모임의 지정 도서는 작년에 완독한 시간과 타자. 두 번째 지정 도서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마지막으로 11월과 12월에 진행될 예정인 모임 지정 도서는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이다. 이 책은 예전에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지정 도서로 만나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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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0-09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 철학에서 ‘신은 죽었다‘ 는 명제가 가장 대중적이며 유명하죠. 사람들은 니체하면 니체의 그 말만 회자 시키는데 신의 죽음. 그럼 신은 왜 죽은 것일까? 무엇 때문에 죽었는 가로 바로 이어지지 못 하는 것 같아 보여요. 그저 기독교 적인 사고에서 벗어났다 라는 의미로만 보는 것 같더라구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보면 신이 죽었다는 명제 뒤에 나중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왔어요. ˝신이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죽었다˝ 고 밝혀요. ˝신에게도 지옥이 있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신에게는 지옥이란 거지요. 즉 신의 죽음은 결국 인간 때문이란 것이지요. 기독교의 폐단을 말 하기 보단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신은 죽고 인간은 위버맨쉬 즉 초인으로 변해야 된다고 역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낙타에서 사자의 변신 끝에 어린아이가 되는 것 그것은 동심이며 그 동심이 바로 신임을 밝히는 거지요. 즉 신은 죽되 죽지 않고 변화 한 것이 아닐까요?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 죽음이 바로 초인을 탄생 한 게 아닐까요? cyrus님의 신은 죽었다라는 해석이 궁금해 지네요. ㅎㅎ

cyrus 2025-10-09 16:07   좋아요 1 | URL
니체가 ‘신의 죽음’ 선언 이전에 기독교 교부 철학자와 종교인들은 성경 속 교리를 철저히 지키면서 살아가라고 강조했어요. 원죄론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천국에 가려면 매일 기도하고, 성경 교리를 지키고, 도덕을 지키면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니체가 보기에는 기독교에 강조하는 도덕이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고 비판해요.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을 자의대로 읽고 해석하면서 신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기독교 성직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해요. 성직자들은 매일 사랑을 언급하고 강조하는데, 신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은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신도들은 성경과 믿고 따르는 성직자들의 말속에 갇혀서 살아가요. 이것이 니체가 비유하는 ‘노예’이자 기독교 교리는 ‘노예도덕’이에요.

낙타, 사자, 어린아이 비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답은 없어요. 저도 어린아이가 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체는 자신을 디오니소스의 제자라고 표현한 글을 썼는데, 어린아이는 디오니소스와 닮은 신으로 해석하고 싶어요. 지금 이번에 나온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중인데, 마힐 님이 언급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야겠어요. 생각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은빛 2025-10-10 0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는 저도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철학책들을 사곤 했었죠. 대학시절 교양 수업도 몇 차례 들었었고. 깊게 공부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도중에 길을 잃기 참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에 제가 공부했던 사회학은 상대적으로 길을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학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길이 과연 내가 가야할 곳으로 잘 데려다주는 길이었느냐가 문제겠지만요. 아, 그건 철학도 마찬가지겠네요. 역시 학부 전공만 했기 때문에 깊게 공부하지 않았지만, 사회학은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 살아가면서 겪는 현상들을 지켜보고, 기록해두고, 정리하는 일도 학문을 이어가는 일이라 여겨요. 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제 평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으니, 여전히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럼 철학은 살아가는 일에 대한 학문이니,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되는 걸까요? ㅎㅎㅎㅎ

철학책 읽기 모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시간과 공간이 허락한다면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늘 시루스님 글을 읽으면 질투심이 드는데, 오늘 유독 더 그렇네요. ㅎㅎㅎㅎ

cyrus 2025-10-10 06:48   좋아요 0 | URL
저보다 철학 책을 즐겨 읽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공부하는 분들을 알게 돼서 이제야 철학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만나서 앞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설정해 보고,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되짚어보면서 반성하고 싶어요.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공통점이 있을까? 이 질문을 만든 내가 생각해 봐도 두 사람을 잇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서동욱 옮김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8~10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레비나스 읽기 모임 첫 번째 도서 (6~8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2024)




레비나스에게 문학은 철학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만든 자양분이다레비나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타자를 환대하는 철학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소설에서 드러난 사해동포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레비나스가 죽음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인용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시간과 타자에서 레비나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분석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의 주인공 맥베스(Macbeth)가 죽어가면서 내뱉는 말을 인용한다






















* 아르튀르 랭보,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문학과지성사, 2014)

 

*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황현산 감수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2016)


* [구판 절판] 아르튀르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1974)


















*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2022)

* [구판 절판] 폴 발레리, 김현 옮김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년에, 전체성과 무한1961년에 발표된 레비나스의 저서다이 두 권의 책에서도 작가와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레비나스가 태어난 곳은 과거에 러시아 영토였던 리투아니아다. 그는 독일에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을 만났고, 프랑스로 건너가 후설의 현상학을 소개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레비나스가 프랑스 문학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존재에서 존재자로전체성과 무한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들이 나온다. 보들레르, 랭보(Arthur Rimbaud),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폴 발레리(Paul Valéry).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 옮김 악의 꽃》 (난다, 2023)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절판] 샤를 보들레르, 박은수 옮김 《보들레르 시 전집》 (민음사, 1995)


* [절판] 샤를 보들레르, 김붕구 옮김 악의 꽃(민음사, 1974)





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시는 <여행>, <밭 가는 해골>, <심연>(Le gouffre) 등이다. 작품 출전은 시집 악의 꽃이다. 1857년에 발표된 이 시집은 태어나자마자 집중포화를 맞았다. 법원은 시집에 외설스럽고 부도덕한 표현이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보들레르를 재판에 서게 했다. 법원은 보들레르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악의 꽃2판은 여섯 편의 시가 삭제된 채 1861년에 출간되었다. 보들레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악의 꽃3판이 출간되었다.










 






 

 



*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김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 이건수 보들레르: 저주받은 천재 시인(살림, 2006)

 

* [절판] 윤영애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민음사, 2001)


 



레비나스가 보들레르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모습이 내게는 색다르다윤리를 제1철학으로 내세운 레비나스도덕을 경멸한 보들레르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철학자와 시인의 기묘한 만남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전제하지만, 보들레르는 원죄에 물든 나쁜 존재로 봤다. 보들레르는 도덕적인 생활이 인간의 악을 감춘다고 생각했다레비나스는 유대인이다. 보들레르는 반유대주의자다.










 


 

 










*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20)

* [구판 절판] 테오필 고티에, 권유현 옮김 모팽 양(열림원, 2006)

 

* 샤를 보들레르 · 테오필 고티에, 임희근 옮김 보들레르와 고티에: 아름다움을 섬긴 두 사제(걷는책, 2020)




레비나스는 존재에서 존재자로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가 한 말을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으로 해석한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외부 세계가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라는 말로, 테오필 고티에는 사물들을 즐기고자 하는 모든 욕심을 표현한다. 이 욕심이 세계 내 존재를 구성한다.


(존재에서 존재자로》 중에서, 56~57쪽)



여기서 레비나스가 말한 욕심은 타자를 지향하는 욕망과 동일하다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존재가 아닌 무한한 자로 바라보면서 조건 없이 환대하는 욕망을 형이상학적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고티에는 예술지상주의를 강조한 시인 겸 소설가. 그의 대표작 모팽 양서문예술지상주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고티에는 이 서문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며, 유용한 것은 추하다고 했다. 예술지상주의자 혹은 유미주의자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의 제1철학은 아름다움이다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누리는(향유) 이다. 그 밖에 실용적인 사물과 도덕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서 예술지상주의자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첫 시집 악의 꽃초판에 고티에에게 보내는 헌사를 남겼다. 실제로 두 사람은 친했으며 서로를 존경했다. 보들레르 사후 1868년에 출간된 악의 꽃3판의 서문은 고티에가 보들레르를 만났던 일을 회상한 <샤를 보들레르>라는 글이다. 보들레르는 1859년에 쓴 <테오필 고티에>에서 모팽 양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라고 평가했으며 정치에 무관심한 예술지상주의자 고티에를 옹호한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을 때 그가 인용한 문학 작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레비나스는 철학을 만들기 위해 문학이라는 풍부한 재료를 마음껏 사용한 철학자다물론 몇몇 작품들은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문학적 장식품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으로 철학에 접근하면, 처음에 난해하게 느껴진 내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사랑하는 방식은 무한하다보들레르의 시를 자주 읽은 독자로서 레비나스와 보들레르의 기묘한 관계를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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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는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 레비나스 철학의 코어(Core, 핵심)’가 들어 있다그래서 레비나스 철학을 공부하려면 반드시 전체성과 무한를 만나야 한다문제는 철학이 단순한 코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레비나스 철학은 하드코어(hardcore)’. 책을 펼치자마자 이해하기 어려운(hard)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눈빛은 당혹스러워서 굳어진다(hard).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페이지를 좀처럼 넘기지 못한다. 책을 잠깐 덮고 나는 자책한다. 내 머리는 철학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딱딱한(hard) 돌머리인가 봐.’









 








[레비나스 철학 읽기 모임]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그린비, 2018)





전체성과 무한은 난해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못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꾸짖지 말자. 전체성과 무한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전체성과 무한을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는 세 명이다. 그들은 전체성과 무한철학 전공자도 힘겹게 읽는 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번역자는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절하게 글을 써야 한다. 레비나스 철학과 관련된 용어가 어떤 뜻인지 알려줘야 한다. 레비나스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도 주석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체성과 무한1(‘동일자와 타자’, ~149)를 읽었는데, 주석이 있어야 할 단어와 인명이 있다서문에 레비나스는 프란츠 로렌츠바이크(Franz Rosenzweig)라는 학자가 쓴 책을 자주 참고하면서 전체성과 무한》을 썼다고 언급한다. 어떻게 보면 프란츠 로렌츠바이크는 이 책을 태어나도록 도움을 준 철학의 산파이며 레비나스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가 구원의 별에서 전체성 관념에 반대하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 저작은 이 책에 자주 인용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빌린 발상들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모두 현상학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지향적 분석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탐색이다. 자신을 정의하는 사유의 직접적 시선에 포획된 개념은, 그 순진한 사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사유가 생각지도 못했던 지평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 지평들이 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후설(Edmund Husserl)의 본질적인 가르침이다.

 

(서문, 18)



독자는 로렌츠바이크가 누군지 모른다. 나도 모른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낯선 용어나 사람 이름이 만나면 스치듯이 보면서 지나간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을 눈앞에 보고도 놓칠 수 있다.















* [절판] 마리 안느 레스쿠레, 변광배 · 김모세 함께 옮김 레비나스 평전(살림, 2006)




로렌츠바이크는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다. 그는 헤겔(Hegel)을 전공했으며 첫 번째로 쓴 책이 <헤겔과 국가>. 로렌츠바이크는 1916년부터 <구원의 별>을 쓰기 시작한다. ‘구원의 별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뜻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 세계의 관계성을 다윗의 별기호를 가지고 설명한다. 레비나스는 로렌츠바이크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로렌츠바이크는 레비나스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철학자다. 레비나스는 <구원의 별>이 헤겔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반전체주의를 주장한 책으로 평가한다레비나스 철학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따라서 레비나스 철학과 로렌츠바이크의 연관성을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레비나스와 블랑쇼의 철학적 교감을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관점과 같다.


레비나스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헤겔 철학(존재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래서 전체성과 무한에 헤겔이 심심찮게 언급된다.



 결국 행복과 욕망을 분리하는 거리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 정치는 상호 인정을, 즉 동등성을 향한다. 정치는 행복을 약속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법은 인정 투쟁을 완성하고 신성화한다. 종교는 욕망이지 결코 인정 투쟁이 아니다. 종교는 동등한 자들이 이루는 사회에서의 가능한 잉여다. 즉 영광스러운 비참함의, 책임의, 희생의 잉여다. 이것은 동등성 자체의 조건이다.

 

(79~80)

 


인정 투쟁(Anerkennungskampf)은 헤겔 철학의 핵심 용어다헤겔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정하는 행동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헤겔이 바라보는 자아는 그 타자가 자기 자신을 자립적인 가치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그것은 인정에 대한 욕구. 헤겔은 상호 인정 행위를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로 비유하면서 설명한다
















*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


* 스티븐 홀게이트, 이종철 옮김 헤겔의 정신현상학입문(서광사, 2019)




주인은 노예에게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주인은 불안하다. 노예가 나를 제대로 주인으로 대접해 주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복종하는 노예의 태도는 과연 진심일까. 그래서 주인은 노예를 따뜻하게 대하면서 그에게 자유로운 생활을 하도록 허용해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인은 또 불안감을 느낀다. 자유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에 익숙한 노예가 나를 섬기지 않으면 어쩌지? 자유민이 된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해방되는 동시에 자립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자기의식을 발견한다. 노예는 예전처럼 주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예가 아닌 내가 주인인나답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그가 막상 주인이 돼서 살아보니, 자신을 인정해 주는 노예, 즉 타자가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결국 모든 사람은 타자를 만나면 내가 주인이요!’라고 외치면서 생사를 건 투쟁(Kampf auf Leben und Tod)’을 벌인다.

















* 악셀 호네트, 이현재 · 문성훈 옮김 인정 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사월의책, 2011)

 

* 악셀 호네트, 강병호 옮김 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나남출판, 2021)

 

* 이현재 악셀 호네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레비나스가 언급한 인정 투쟁은 헤겔 철학 용어다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헤겔의 용어를 좀 더 확장해서 논의한다.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면 생사를 건 인정 투쟁을 한다. 그들의 인정 투쟁은 자기 존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주목하게 만든다. 기득권층과 사회적 약자 간의 갈등 관계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가 해야만 하는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저항이며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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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4-08-22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비나스를 공공정책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것이 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책만 들입다 읽는다고 세상이 나아지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지요.

cyrus 2024-08-26 06:48   좋아요 1 | URL
오장원님이 레비나스 독서 모임에 오시면 좋겠어요. 오장원님의 견해가 궁금해요. ^^

yamoo 2024-08-21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레비나스 책은 정신현상학보다 10배는 쉬워요~~ㅎㅎ 지젝 보다 훨씬 읽기 수월합니다. 읽어서 이해가 안되는 건 역자들이 깜양이 안되어도 마구 번역하여 한국어 문법규정을 초월한 문장을 사용해서 그래요. 전혀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현상학을 이해하고 보면 좀더 수월합니다..

cyrus 2024-08-26 06:49   좋아요 0 | URL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됐어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 읽는 것보다 낫네요.. ㅎㅎㅎ
 



나는 과거에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철학책은 읽기 어렵다는 핑계로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 관련 책만 골라 읽었다. 철학 개론서와 철학사에 축약된 철학 지식이 담겨 있다. 그것만 충분히 이해하면 철학을 좀 안다고 착각했다철학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철학사가 아닌 철학을 사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지난달 초에 시작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철학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선정 도서는 레비나스의 강연록 시간과 타자



















* 에마누엘 레비나스, 강영안 · 강지하 함께 옮김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24)


*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레비나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철학 스승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 담긴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하이데거는 라는 존재는 이미 구성된 거대한 세계에 내던져진’ 상태라고 주장한다하이데거의 는 현존재(Dasein)’즉 거대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세계가 없으면 는 존재할 수 없다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세계 속 타자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공존재(共存在, Mitsein)’로 정의한다여기서 레비나스는 개인보다 전체를 더 중시하는 공존재가 전체주의로 변질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그뿐만 아니라 주체 및 이성 중심 철학까지도 비판한다레비나스에 따르면주체와 이성에 초점을 맞춘 철학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자신의 철학이 파르메니데스와 결별하자는 시도(시간과 타자, 37)’라고 한다왜 레비나스는 갑자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언급했을까? 레비나스는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하나요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다. 영원불변하는 일원론 철학사를 통해 알려진 파르메니데스 철학의 핵심이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파르메니데스가 만물의 변화를 거부하는 철학자’라고 외운

















플라톤, 정준영 옮김 《테아이테토스》 (아카넷, 2022)

플라톤, 김인곤 · 이기백 함께 옮김 《크라튈로스》 (아카넷, 2021)




파르메니데스 철학과 반대되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만물의 변화를 인정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철학사를 외운’ 사람은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라고 주장한 격언을 강조한다. “너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크라튈로스》 402a).” 플라톤이 인용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은 만물 변화설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명확하게 일원론과 다원론으로 구분 지어서 설명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한 플라톤의 견해는 정확하지 않다. 상식으로 굳어진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다원론’, ‘파르메니데스의 만물 불변설 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변화설은 두 철학자의 진짜 생각을 보여주지 못한다. 지금까지 일부만 남아 있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 관련된 고대 문헌들 속에 플라톤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있다.



















* 김재홍 · 김주일 · 강철웅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아카넷, 2005)

 

* 움베르토 에코 · 리카르도 페드리가, 윤병언 옮김,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고대. 중세 편(arte, 2018)

 

* [절판] 피터 애덤슨, 신우승 · 김은정 함께 옮김 초기 그리스 철학(전기가오리, 2017)




헤라클레이토스가 쓴 글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인용한 다른 학자들의 글만 남아 있다. 히폴뤼토스(Hippolytus of Rome)라는 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logos)’를 언급한 문장을 인용했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236)



헤라클레이토스는 처음으로 로고스의 중요성을 언급한 철학자. 그가 생각하는 로고스는 모든 만물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고대 사람들은 완벽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문장을 근거로 내세워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 변화설을 믿었다는 플라톤의 견해를 반박한다(참고 문헌: 피터 애덤슨, 초기 그리스 철학, 움베르토 에코,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고대 그리스 철학(사색의숲, 2021)




파르메니데스는 최초로 존재론을 정립한 철학자존재론에 초점을 맞춘 철학자들의 계보를 만든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파르메니데스가 나와야 한다. 레비나스는 전통적인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하이데거와 파르메니데스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한 존재의 정의는 아주 단순하다. 반드시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 있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므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그는 더 나아가서 있는 것절대로 변하지 않은 완벽한 구()’의 형태라고 믿는다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계 속 존재들은 변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변화하는 현상들 모두 감각이 꾸며낸 환영 또는 착각이라고 주장한다파르메니데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성이다. 그는 순수한 이성적 논리를 동원하여 존재의 불변함을 증명하려고 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를 거부하는 엄격한 일원론자로 알려졌으나 흥미롭게도 다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야말로 자신들의 지적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다원론자들은 자연이 변화한다고 믿는 자연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언급한 파르메니데스의 글에 주목한다. 자연철학자들은 세계가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세계. 현실 배후에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이 있는 참된 세계가 있다. 다원론자는 참된 세계속 만물의 근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고 주장한다. 두 개의 만물의 근원이 섞이면현실 세계에서 필멸하는 만물이 생긴다. 그리하여 자연철학자들은 항상 변하는 자연 현상의 원인과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참고 문헌: 김주연, 《철학사 수업 1》).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분류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여백이 많은 철학자. 출생 연도와 출생지가 불분명하고, 고대 문헌에 적힌 내용이 정확하지 않아서 연구 대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이렇다 보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과소평가하는 철학도들이 있다하지만 철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철학도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철학 사상을 대충 보지 않는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공부한다. 그런 다음에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어제 쓴 글을 다시 강조하자면 지성을 사용할 용기(공부할 용기)와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가 모두 있어야만 철학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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