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악몽을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많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성격만을 일관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을 대할 때,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여 ‘cyrus’가 되어 회원의 글을 읽을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사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상처 입은 인간이다. 가면 속에 가려진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은 위협적이다. 그의 그림에는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엉켜 있는 가면(얼굴)들이 가득하다. 앙소르는 ‘낯익은 것의 낯선 배신’을 시도한다.
『해골 화가』에서 앙소르는 그림 그리는 해골로 묘사된다. 만약에 앙소르가 자신의 모습을 해골로 그리지 않았으면 이 그림은 ‘낯익은 얼굴’을 그린 평범한 자화상이 된다. 앙소르는 해골이라는 ‘낯선 가면’을 쓴다. 그의 아틀리에는 실재(낯익은 것)와 환상(낯선 것)이 서로 엉겨 상호 침투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쓴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앙소르의 그림이 주는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그림 속 얼굴’과 화가의 실제 모습이 같아야 자화상이 성립된다. 그런데 앙소르는 ‘낯익은 얼굴’을 스스로 벗겨 낸다. 이젤 밑에 젊은 남성의 모습을 한 가면이 있다. 젊은 시절의 앙소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골 가면을 쓴 앙소르는 우리가 아는 화가가 아니다. 섬뜩한 ‘죽음’ 그 자체다. 그림 속 ‘죽음’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관객에게 말한다. “내가 화가(앙소르)로 보이니?”
앙소르는 가면뿐만 아니라 해골을 주제로 한 그림도 많이 그렸다. 그는 죽은 인간이 부패하는 현상에 매료되었다. 앙소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스텐데라는 마을에 시체가 엄청나게 많았다. 17세기 초 스페인이 벨기에를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오스텐데가 확장 공사를 하게 되면서 스페인 군대에 희생당한 시체들이 대량 발굴되었다. 어린 앙소르는 땅 속에 묻힌 시체를 보게 되었고, 그 상황은 지워지지 않는 섬뜩한 기억으로 남았다. 앙소르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한 정서를 잊기 위해서 앙소르는 ‘죽음의 신’으로 분장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자들과 함께 카니발 연회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앙소르의 카니발은 유쾌하다기보다는 기괴하다. ‘낯익은 얼굴’의 가면과 ‘낯선’ 해골이 함께 어우러진 앙소르의 그림에서 죽음과 불안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