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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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남성에게 담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담배 연기에 고민거리들을 실어 보내고 나면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흡연은 술과 함께 대표적인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꼽힌다. 매년 새해맞이와 함께 금연을 다짐하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담배를 두고 백해무익하다고 말하지만, 어찌 됐든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옛날에 담배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망우초(忘憂草)’다. 시름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이다.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공초란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한다’는 큰 뜻이지만, 사실 궐련을 피우고 남은 꼬투리를 이르는 ‘꽁초’를 고상하게 바꾼 것이다. 오상순은 아침에 담배를 물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는 애연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로 알려진 장유는 어전회의를 할 때도 담뱃대를 손에 놓지 않았다. 담배 냄새를 참다못한 인조가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장유에게 지적을 할 정도였다.

 

요즘 흡연자들의 처지야말로 장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건물에 들어서거나 길을 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처량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흡연자들을 보게 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외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죄를 지은 것처럼 잔뜩 움츠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늘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다 꽁초를 잘못 버리면 핀잔은 물론 망신당하기에 십상이다.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흔히 서두로 꺼내는 말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이 말은 과연 어느 때를 가리키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말이 처음으로 나온 시기는 구한말이다. 1910, 20년대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내용의 민담과 전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절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알려면 구한말 이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통 담배는 임진왜란 이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헌마다 그 정확한 시기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를 남쪽에서 들어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의미로 남령초(南靈草)라고 불렀다. 그 후 개화기 때까지 ‘담바고’로 불렸는데 ‘Tabacoo’라는 외래 음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처음 담배가 선보였을 때 조선시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유몽인이 쓴 「담바귀설」이라는 글에서 담배를 즐겼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장안의 남녀가 어린애고 늙은이고 가리지 않고 병이 있거나 없거나 즐겨 태워서 연기를 마셔대니 코를 비트는 악취가 거리에 가득했다. 때때로 못된 소년배가 “아름다운 여자와 맛좋은 술을 참아도 담바괴는 참을 수 없네”라는 노래를 앞다퉈 부르고 다녔다. (33쪽)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건너온 담배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로 알려져 순식간에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다. 일본 상인들은 담배를 약으로 팔았다. 여자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조선 시대는 그야말로 ‘담배 천국’이었다. 정조는 인조의 핀잔과는 반대로 백성들에게 흡연을 노골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정조도 골초였는데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금연을 주장하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이에 발끈한 정조는 ‘남령초 책문’을 내린다. 책문이란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던 논술시험이다. 정조는 앞으로 담배 정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각자 생각하는 바를 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정조가 책문을 내린 이유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자신이 내린 책문으로 담배를 배척하려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해서 담배 옹호론을 밀고 나가려고 했다. 남녀노소 모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반층들에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담배 피우는 행위를 금지할 수는 없는 일. 담뱃대의 차이를 통해 신분 귀천을 구분토록 했다. 담배를 담는 대통과 물부리를 연결하는 설대의 길이가 신분을 상징했는데, 양반은 설대가 긴 장죽을, 서민은 설대가 없거나 짧은 장죽이나 곰방대를 사용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기호품으로 애용됐다. 차(茶)나 술 대신 손님 대접용으로 담배를 내놓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담배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인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담배를 오래 피우면서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비옥한 논까지 돈 되는 담배재배에 매달리는 현상이 생기면서 사회문제로 번졌다.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흡연론과 금연론이 맞붙었다. 조선 후기 들어 박지원과 이덕무 같은 학자들은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곰방대를 물고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진 민화 속에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서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 속에는 금연론이 나오기 전, 남녀노소 누구나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흡연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멋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이 애연가에게는 담배의 해악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평화로운 시기였다.  

 

나라 곳간 때문이든 건강 때문이든 우리나라 담배의 역사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뒤엉켜 수세기에 걸친 논쟁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흔적이다. 담배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해도 끝내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담배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근심을 덜어주는 벗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건강에 위협적이라고 경고해도 요지부동인 흡연율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여전히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다. 만약에 정조가 환생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좁은 흡연실에 갇힌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백성들의 후예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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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녀노소가 다 피웠다니 이런!
어릴때 담배 농사 짓는 집 참 많기는 했어요.

cyrus 2015-05-01 15:44   좋아요 0 | URL
옛날에도 담배 농사 짓는 일이 흔했어요. 담배 피는 사람이 많아서 밭농사보다도 수입이 좋았다고 해요.

붉은돼지 2015-05-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망한 풀` ㅋㅋㅋㅋ
저도 담배 한 20년 훨 넘게 피웠는데요,,, 작년부터 끊었습니다. 저는 뭐 금연주의자는 아니고 담배도 피고 싶을 때는 한대씩 피워도 된다는 그런 조금 희미한 주의인데요
작년말에 담배 끊은 것도 생 용을 써서 끊은 건 아니구요....그냥 담배 좀 줄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안 피우니 어렵지 않게 끊어지더라구요...참 신기하게...

그런데 지금도 술마시고 하면 가끔 한대씩 피워요. 4월달에는 3대 정도 피운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매연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 담배 한대 핀다고 뭐 어떻게 되겠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05-01 15:49   좋아요 0 | URL
20년 흡연했으면 끊기가 엄청 힘들텐데 아무 일 없이 금연한 붉은돼지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비흡연자라서 금연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금연하자는 생각만 한다고 해서 담배를 멀리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stella.K 2015-05-0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나 어렸을 때는 담배 냄새가 지금같이 독하지 않았어.
어린 코에도 오히려 구수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울엄마도 그러시더군.
옛날엔 담배 냄새가 좋았는데 지금은 담배 피우는 사람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그 사람이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더라도
담배가 몸에 베어서 불쾌해.
요즘엔 공공장소에서 못 피니까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피우더라.
그게 더 나쁜 거 같아. 그냥 흡연 장소 정하고 거기서만 피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해.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어떤 남자는 여자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연애를 했다나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그 남자 지금도 잘 사는지 모르겠어.ㅋㅋ

cyrus 2015-05-01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버지가 비흡연자라서 집에서 간접흡연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흡연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담배 냄새에 적응했는데 저도 담배 냄새를 안 좋아해요.

어제 인터넷 기사에서 본건데 어느 중국인 영화감독이 탕웨이는 촬영 준비 전에 대사를 보면서 담배를 핀다고 기자회견 때 말해가지고 탕웨이 팬들한테 비난을 받았더군요. 감독이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한건지 모르겠지만 탕웨이가 담배를 핀 것에 대해 혐오감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담배 피면서 대사를 외우는 모습도 예쁠 것 같아요.. ㅎㅎㅎ

stella.K 2015-05-01 17:58   좋아요 0 | URL
헉, 그거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지?
그 나란 울나라 보다 더 보수적인가 보다.
그게 기호식품처럼 인식되어버린지 오랜데 무슨...
그런데 여자든 남자든 담배 안 피는 게 좋긴하지.
특히 여자는 더 안 좋다고 하잖아.ㅠ

해피북 2015-05-0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담배천국 이였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구 정조임금님은 역시 논박으로 다스리시는 정책은 어떤 경우에서도 빛을 바라네요 ㅋㅋ

cyrus 2015-05-01 15:57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 절반은 담배와 함께 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인지 흡연과 관련된 우리나라 문화사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

oren 2015-05-0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재털이`가 달려 있었지요. 방학때마다 서울에서 안동으로 오고 갈 때 차멀미 때문에 고생할 때면 고속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달려 있는 `재털이`가 참 미웠더랬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재털이`는 어딜 가나 꼭 있었어요. 소파와 함께 놓인 테이블 위는 물론이고 각자 자신의 책상 한귀퉁이에는 버젓이 재털이를 모셔 놓고 담배를 피워대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다 싶네요. ㅎㅎ

cyrus 2015-05-01 19:09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한 풍경입니다.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에 재떨이가 있었다니... ㅎㅎㅎ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담배가 술보다 인기가 많은 기호품이었다가 요즘은 흡연 건강 문제 때문에 위상이 줄어들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