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7

 


다큐사진이란 무엇인가
― Kazakstan nuclear tragedy
 유리 이와노비치 꾸이진(Yuri Kuidin)
 Юрий Иванович Куйдин
 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

 


  카자흐스탄이 카자흐스탄 아닌 ‘소련땅’이었을 때에 숱하게 벌어진 핵실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사진책 《Kazakstan nuclear tragedy》(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1997)는 유리 이와노비치 꾸이진(Yuri Kuidin/Юрий Иванович Куйдин) 님이 엮습니다. 1924년에 태어난 유리 꾸이진 님은 세미빨라찐스크(SEMIPALATINSK)에 있는 핵사격장을 없애는 일에 함께하면서 이 책을 선보였어요. 손수 ‘반핵 생물학 협회 폰드’를 열고, 손수 사진을 찍으며, 손수 글을 써요. 몸으로 부딪히는 삶을 고스란히 책 하나에 갈무리합니다.


  나는 러시아 핵실험이나 카자흐스탄 핵실험을 모릅니다. ‘카자흐스탄 핵실험’이라지만, 지난날 ‘소련’과 오늘날 ‘러시아’가 군대와 정치권력으로 밀어붙이는 전쟁놀이라고 해야 올바른 이름이 될 텐데요, 가만히 보면, 나는 한국에 핵무기가 몇 가지나 있는지 잘 모르고, 아직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가까이에서 만난 적조차 없어요. 한국 사회와 정치는 한국에 있는 핵무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돕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핵발전소를 없애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핵발전소 쓰레기’를 앞으로 어떻게 할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외려, 낚시 좋아하는 이들은 핵발전소 둘레에서 흐르는 ‘열폐수(온배수)’ 때문에 낚시하기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을 한다면서,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로 찾아가서 ‘핵실험 피해’를 취재하거나 살피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쓸 만한 이가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다큐영화를 찍거나 다큐연속극을 찍겠다면서, 애써 ‘원폭피해 이야기’를 파헤치거나 다루려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두멧시골을 찾아간다든지, 어떤 분쟁지역을 찾아가는 사람은 제법 있지만,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있을까요.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있는가요. 송전탑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비무장지대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는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비무장지대를 찍으면서도 ‘군대’와 ‘전쟁’과 ‘무기’를 슬기롭게 돌아보는 이는 퍽 드문 듯합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젊은 사내를 바보로 만드는 군대를 톺아볼 줄 안다거나, 나라와 정치와 사회를 전쟁으로 내모는 흐름을 꿰뚫을 줄 안다거나, 무기산업이 경제와 문화에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깨달을 줄 아는 이는 몹시 드문 듯해요.

 

 

 


  내가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또 세미빨라찐스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면, 나로서는 아주 마땅히 ‘러시아 핵실험’을 둘러싼 아픔과 슬픔을 늘 바라보고 부대꼈을 테니까, 이 이야기를 글로도 쓰고 사진으로 찍으며, 연극이나 춤이나 노래로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이라는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에요. 북녘과 남녘과 일본에서도 이 같은 일은 엇비슷하게 일어나요. 입으로는 평화를 들먹이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전쟁무기를 끔찍하게 만들고, 전쟁무기 끔찍하게 만드느라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은 갈가리 찢기거나 조각조각 부서져요. 그러니까, 카자흐스탄 아닌 미국이나 영국에서 태어났어도 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으로 지낼 만하겠지요.


  다큐사진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이 다큐멘터리를 이룰까요. 다큐작가란 누구인가요. 어떤 삶과 넋으로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쓰거나 아로새기는가요.


  사회나 정치나 권력이나 전쟁을 다루어야 ‘다큐’이지 않습니다. 사회나 정치나 권력이나 전쟁을 다루려 한다면, 이에 앞서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으며 권력이나 전쟁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를 읽으려면 마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를 읽으려면 내 작은 보금자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나 전쟁을 알아채려면 제도권 울타리와 톱니바퀴를 슬기로이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눈으로만 읽는 삶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하루일 수 있어야지요. 지식을 머리에 갖추는 사람이 아니라, 온마음 쏟아 살아내는 사람이어야지요.


  아이 낳아 돌보는 어버이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몸으로 부대끼지 못한다면, ‘핵실험 방사능 때문에 갓난쟁이가 아프게 태어나 괴롭게 죽는 일’을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숲바람 푸른 물결을 누리지 못하거나 마음 깊이 좋아하지 못한다면, ‘핵실험 방사능 먼지바람 때문에 시골마을 삶터가 깡그리 망가지는 일’을 뼛속으로 받아안지 못해요.

 

 

 


  지식을 갖추거나 자료를 챙긴대서 다큐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지식이 없거나 자료가 없어도 다큐작가로 지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있어야 해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따사로운 마음으로 내 이웃을 아낄 수 있어야 해요. 너그러운 사랑으로 내 동무와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해요. 다큐사진은 고발사진이 아니거든요. 다큐사진은 선전사진이 아니에요. 다큐사진은 소리 높이 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다큐사진은 기록사진 또한 아니에요. 다큐사진은 내 이웃이 살아가는 하루를 보여주면서 삶빛을 밝히는 사진입니다. 다큐사진은 내 동무가 짓는 웃음과 눈물을 수수하게 나누면서 사랑씨앗을 심는 사진입니다.


  사진책 《Kazakstan nuclear tragedy》에는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진책 《Kazakstan nuclear tragedy》에는 수수하고 투박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모두, 유리 꾸이진 님한테 이웃이요 동무인 사람들입니다. 유리 꾸이진 님은 이들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지냅니다. 한솥밥 먹는 살붙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다큐’라고 하는 갈래로 사진을 나눕니다만, 정작 ‘다큐’라는 이름이 붙는 사진을 찍는 이들은 스스로 ‘다큐’라 생각하지 않고 ‘다큐’라 느끼지 않아요. 그저 함께 살아갑니다. 그예 한 마을 이웃으로 지냅니다. 이를테면 평택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이들은 평택 시골마을 이웃으로 터를 잡고 지내요. 강정마을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이라면 으레 강정마을 시골집 이웃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삶을 마주하겠지요. 김영갑 님은 오름하고 벗삼으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김기찬 님은 골목동네에서 이야기꽃 나누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최민식 님은 저잣거리에서 길밥 먹으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모두들 사진찍기 한길을 걷지만, 사진찍기에 앞서, 삶을 함께 누리는 길벗으로 지냈어요.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넘어가지 않아요. 이 사진감에서 저 사진감으로 옮기지 않아요. 그렇거든요. 다큐사진을 찍는 이들은 스스로 ‘다큐’라고 느끼지 않고 ‘다큐’라는 허울을 굳이 뒤집어쓰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는 사진이에요. 언제까지나 이웃하는 사진이고, 한결같이 동무하는 사진이에요. 곧, 다큐가 아닌 다큐이면서, 사진이 아닌 사진이에요. 사진쟁이인 만큼 손에는 사진기를 쥐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이웃입니다. 살림꾼 손에 부엌칼이랑 걸레가 있듯, 사진쟁이 손에 사진기 있어요. 골목 할아버지가 빗자루 들어 골목을 쓸듯, 골목 사진쟁이가 사진기 들어 골목을 찍어요. 시골 할머니가 호미 쥐어 밭을 일구듯, 시골 사진쟁이가 사진기 쥐어 밭을 찍어요.


  다큐사진이란 삶사진입니다. 다큐란 삶이니까요. 사진이란 또 삶이니, 다큐사진이란 ‘삶 + 삶’이라 할 만합니다. 따사로이 살아가고 넉넉하게 살아가면 다큐가 되고 사진이 됩니다. 사랑스레 살아가고 어여쁘게 살아가면 다큐가 되면서 사진이 돼요. 이주민이라든지 아동노동착취를 담았다고 하는 사진을 떠올려 보셔요. 빼어난 눈매로 현장을 찾아다녔기에 찍을 수 있던 사진이 아니에요. 어떤 공공기관에서 맡긴 일이기에 찍을 수 있던 사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유리 꾸이진 님도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가기에 카자흐스탄 핵실험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글로 쓰면서 책을 내지 않아요. 삶을 느끼고 삶을 누리며 삶을 사랑하는 이웃이요 벗이며 한식구로 지내는 넋이기에, 비로소 다큐사진 한 자리를 이룹니다.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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