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가뭄 때문에 경북 포항 형산강에 바닷물이 역류해 와 수돗물에서 짠맛이 난다고 한다. 형산강의 감조(感潮) 구간은 포항 송도동 하구(영일만 유입부)로부터 상류로 약 10~12km 내외 구역이다. 독일의 세계적 지리학자 헤르만 라흐텐자흐(1886-1971)[코레아](1945년 출간)에서 형산강을 남한의 동해안 유일의 가항하천(可港河川)으로 보았다.([코레아]는 라흐텐자흐가 한반도 전역을 직접 답사하고 남긴 방대한 지리서다.)


가항하천은 수심이 충분히 깊고 폭이 넓어 배가 안전하게 통항하며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하천을 말한다. 서두에서 말한 바닷물 역류는 내가 사는 연천의 주요 두 강 중 하나인 임진강과도 관련이 있는 현상이다. 임진강의 실질적 감조구간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 하구(교하)로부터 상류로 약 40km 구역까지다그곳보다 더 상류쪽인 연천 호로고루 아래의 고랑포는 수위만 상승, 하강하고 염도(鹽度)는 변함없는(바닷물이 직접 유입되지 않는) 감조 담수(淡水) 구간이다


폭염과 가뭄으로 강의 수량이 줄어 바닷물이 역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은 모든 물질이 맞물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공백(진공) 없는 세계라는 데카르트의 와동(渦動; 볼텍스; vortex) 이론이 떠오른다. 25년전 수련 당시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아리조나주 세도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가 강한 곳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내 기 수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지질 해설을 한 지 6년이 넘은 지금은 세도나의 사암(砂巖) 지대는 약 27천만 년 전 페름기 지구의 역동적 환경 변화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자연의 걸작이자 기() 학문과 지질학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뿐이다. 세도나의 거대한 바위산과 절벽들은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빛을 띤다. 사암 속에 포함된 적철석(Iron Oxide; 산화철) 성분 때문이다


당시 읽던 책이 곽내혁 저자의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이고 수련 종료 후 같은 저자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었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곽내혁 저자가 올해 초 [기론 입자에서 으로]이란 책을 낸 것을 확인했다. 정독해야 알겠지만 이번에 나온 [기론- 입자에서 으로]는 내가 읽기에 버거울 것 같다. 앞의 두 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침에 AI와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대립에 대해 대화를 했었다. 그것은 세상을 지속(持續)으로 본 베르그송과 불연속으로 본 바슐라르의 대립이다. 베르그송의 지속은 시간을 시계 바늘처럼 쪼갤 수 있는 공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질적인 흐름이자 변화 그 자체로 보는 사유 방식이다. 바슐라르의 불연속은 베르그송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적 지속에 정면으로 맞서는 개념이다


과학은 과거의 상식, 일상적 경험, 잘못된 전통을 과감하게 부수고 단절(Rupture)할 때만 진보하다는 바슐라르의 과학사 및 인식론의 불연속인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때도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일상적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슐라르는 우리가 과학 개념을 마주할 때 친숙한 이미지나 비유에 의존하려는 무의식적 습관을 경계했다. 가령 우리는 원자를 이해할 때 흔히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모습(보어의 원자 모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 양자역학에서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도는 알갱이가 아니라 확률적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 뉴턴 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서 저절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책을 읽듯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나는 베르그송의 지속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바슐라르의 불연속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얽히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한 행위의 시작, 진정한 의미의 시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베르그송에게 어떤 근원적인 창조의 순간들 - 예컨대 베르그송이 회상한 바 있듯이 어느 화창한 봄날 그의 뇌리 속에서 지속의 개념이 홀연히 떠올랐던 그 창조의 순간은 그의 지속 이론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1999년 출간 [담론의 공간])


1999[담론의 공간]을 읽고, 2001[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을 읽고, 2006[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던 때가 내가 인식적으로 가장 활발하던 때다. 흥미롭게도 곽내혁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에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이라는 시적인 에세이집이 소개되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바슐라르는 물리학자, 시인, 철학자다


바슐라르는 [초의 불꽃]에서 나는 촛불을 통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일체감을 노래합니다. 나를 가두던 현실의 불연속적인 벽들이 허물어지는 치유의 순간입니다.“란 말을 했다. 곽내혁은 기의 감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우주를 상식과 다른 내용으로 만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에게 상식이 된 우주가 좌뇌로 인식된 것일 뿐 우주의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우주를 우뇌로 떠올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란 말을 했다.([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 159 페이지)


바슐라르의 불연속적인 벽들의 허물어짐과 곽내혁의 좌뇌와 우뇌의 통합은 같은 맥락이다. 최근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규정하는 지질학이야말로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한 학문이다. 지질학은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바위, 대륙)의 이미지와 단절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간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재구성해 낸 학문이다. 가장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지구)을 마주하고서 가장 유연하고 역동적인 불연속적 도약(시간과 판의 이동)을 사유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기론]을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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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흔드는 과학 - 지진에 대해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것들
수잔 엘리자베트 호프 지음, 김성욱.김인수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지구물리학 박사 수잔 호프(Susan Elizabeth Hough)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이후인 2009년 나온 [지진 예측 과학(Predicting the Unpredictable: The Tumultuous Science of Earthquake Prediction)]에서 우리는 지금 지진을 예보할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원제의 정확한 뜻은 [예측 불가능을 예측하기: 지진 예측의 격동적인 과학]이다.

 

저자는 지진을 예보하고 재해를 평가하는 일은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과학에서는 다소 복잡한 개념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학술적 용어나 까다로운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유명 과학자 중 한 사람이 찰스 다윈이다. 그는 대륙 이동 대신 해수면 변화를 주장했다. 다윈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적 변화가 지구의 모습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윈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판구조론의 진짜 로제타 스톤은 돌에 적힌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것보다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해저에 새겨진 자기(磁氣) 줄무늬였다. 이는 해양 지각이 자석처럼 자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현무암은 마그마로부터 고화(固化)될 당시 지구 자기장 방향을 기록하여 보존하는데 이 방향은 그 후 지구 자기장이 다르게 변하더라도 그대로 유지된다.

 

판구조론이라는 용어는 1969년에야 처음 나왔다. 대륙 이동과 해저 확장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인 캘리포니아주 아실로마에서 열린 작은 지구 물리학 발표회에서였다. 군사 작전으로서의 지구 물리학과 순수 학문으로서의 지구 물리학, 이 양자의 오래된 공생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판구조론 혁명을 통해서 지구과학에서는 새롭고 거시적인 기본 패러다임(근간 법칙)이 명확히 자리 잡았다.

 

지구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꼽히는 해저 확장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잠수함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현대 지진학이 전 지구적인 정밀 데이터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냉전기 핵전쟁의 공포가 있다. 전쟁 지형을 분석하고 군사 시설을 짓는 기술은 현대 지반 공학 및 엔지니어링 지질학의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GPS 자료는 판의 운동과 판의 내부 변형에 관한 문제에서 매우 유효하게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진 예보는 미해결 문제다.(47 페이지)

 

저자는 맨틀은 대류하는데 열점은 왜 대류하지 않는가? 묻는다. 대류는 상부 맨틀에서 일어나고 열점은 하부 맨틀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암석이 꽉 눌려 있어서 상부 맨틀처럼 빙글빙글 도는 수평 대류가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하부 맨틀의 최하단 즉 지하 약 2,900km에 위치한 핵-맨틀 경계(CMB)에는 거대한 열점의 뿌리가 존재한다. 과학자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깊은 곳의 구조를 알아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진(Earthquake)이다.

 

지구 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파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 지진파가 핵-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이유는 극도로 높은 온도와 물질의 부분적인 용융 때문이다. 지진파(특히 전단파인 S)는 매질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이동하고 부드럽고 액체에 가까울수록 느리게 이동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일반 맨틀)을 달릴 때는 발걸음(지진파)이 빠르지만 뜨거운 열 때문에 반쯤 녹아내린 끈적한 아스팔트나 진흙탕(열점 부근)을 지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며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약권(弱圈)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대류 작용이 판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라면 지진은 그 힘의 전달자다.(53 페이지) 확장축 지진들의 운동량을 전부 더해 보면 관련된 판의 전 운동량보다 적게 나온다. 이를 지진 모멘트 결손(Seismic Moment Deficit) 또는 낮은 지진 결합도(Low Seismic Coupling)라 부른다.

 

이는 지진 없이 미끄러지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확장 작용이 섭입과 달리 큰 마찰 저항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1) 암석은 온도가 높아지면 부서지기보다 진흙이나 고무처럼 끈적하게 늘어나는 연성(Ductile) 성질을 갖는다. 이로 인해 판이 양옆으로 벌어질 때 에너지를 모았다가 쾅 하고 터지는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 암석이 소리 없이 천천히 늘어나거나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변형(Aseismic Deformation)으로 판의 이동을 대부분 소화한다. 실제 확장축에서는 전체 변형의 약 90% 이상이 지진 없이 조용히 일어난다.

 

2) 확장축에서 판이 갈라지는 힘은 오직 암석의 단층 운동(Tectonic faulting)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갈라진 틈 사이로 지하의 뜨거운 마그마가 끊임없이 주입되며 공간을 채우고 판을 밀어낸다. 이 마그마 주입 과정은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도 판을 양쪽으로 확장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지진계에 기록되는 운동량의 총합을 크게 줄인다.

 

3) 한편 지진이 발생하려면 암석이 차갑고 단단하여 깨질 수 있는 지진원성 층(Seismogenic Zone)이 두꺼워야 한다. 하지만 확장축은 고온의 마그마 환경 때문에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상부 지각의 두께가 보통 수 킬로미터(대개 5km 이내)로 매우 얇다. 응력을 버텨낼 수 있는 암석 층 자체가 너무 얇다 보니 대규모 지진(모멘트가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

 

4) 바닷물이 갈라진 지각 틈새로 침투하면 뜨거운 맨틀 암석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사문암(Serpentine) 같은 광물을 만들어낸다. 사문암은 일반 암석에 비해 마찰력이 매우 낮고 매끄러운 특성을 갖는다. 단층면에 이 광물들이 형성되면 판이 걸려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기(Creep) 때문에 지진 에너지 방출이 억제된다. 요약하면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틈을 채우며, 암석이 부드럽고 매끄럽기 때문에 판이 이동하는 전체 에너지 중 극히 일부(1%~10% 수준)만 지진으로 전환되고, 나머지는 소리 없는 변형과 마그마 활동으로 해소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환 단층의 경우에는 단층의 운동량이 지진으로 미끄러진 운동량 전부를 합친 것과 같다.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도와주어 지진 없이 부드럽게 벌어지지만 변환 단층은 차갑고 단단한 암석이 마그마 없이 서로 꽉 맞물린 채 수평으로 비벼지기 때문에 판이 움직이려는 모든 에너지가 지진의 형태로만 100% 방출되기 때문이다. 마그마는 판의 운동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대형 지진을 억제한다. 주로 판이 양갈래로 찢어지는 확장축(해령)이나 열곡대에서 발생하는 정단층은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인장력 때문에 단층면이 수직에 가깝게 비스듬히 떨어지는 구조다.

 

이 환경에서는 판이 벌어지면서 단층면에 가해지는 수평 압력이 낮아진다. 이 틈을 타 마그마가 아주 쉽게 위로 솟구치며 단층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단층 암석이 서로 비벼지며 지진을 일으키기 전에, 마그마가 틈새를 부드럽게 채운다. 이 때문에 정단층 지역에서는 판이 멀어지는 거대한 운동량에 비해 지진의 크기가 매우 작고 미소 지진 형태로만 유발되는 억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륙과 해양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섭입대(: 일본 해구, 칠레 해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역단층은 두 판이 서로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단층면이 강하게 압착된다. 역단층면은 엄청난 압력으로 꽉 맞물려 있어 판이 움직이지 못하고 거대한 에너지가 쌓인다. 이때 단층면 깊은 곳에 마그마나 뜨거운 열수가 침투하면 마그마의 압력이 단층을 양옆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 유체 유효 응력 감소라 한다.

 

꽉 맞물린 단층을 살짝 띄워주는 역할을 하여 판이 대지진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슬로우 슬립을 유도한다. 하지만 정단층과 달리 역단층은 사방에서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마그마가 쉽게 틈을 뚫고 분출하지 못하고 갇히기 쉽다. 만일 마그마가 단층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특정 구역에 계속 갇혀 압력만 높아지면 단층면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켜 오히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초거대 지진(Megathrust Earthquake)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요약하면 정단층에서는 마그마가 빈 자리를 채워주는 평화로운 건설자 역할을 하여 지진을 효과적으로 지워버리지만 역단층에서는 꽉 막힌 단층면 사이에서 마찰을 줄여주는 아슬아슬한 윤활유 역할을 하다가 압력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거대 지진을 터뜨리는 야누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 2004년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규모 9.1)2)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의 경우다.

 

1) 토호쿠 대학교 연구진 등의 시뮬레이션 연구(2022)에 따르면, 3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은 단층대 깊은 곳에 갇힌 초고압 유체(Pore-fluid pressure)가 단층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대규모 단층 미끄러짐을 촉발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입증되었다. 2) 태평양판이 일본 열도 밑으로 파고들 때 포함된 물과 마그마 성분이 섭입대 틈새에 갇혀 극도의 과압(過壓)을 형성했고 이 압력이 브레이크를 부수고 터지면서 단층이 무려 50m 이상 수평 이동했고 역사적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판 내부 지진은 지각을 이루는 거대한 판의 경계가 아니라 판의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지진을 말한다. 판 내부 지진을 일으키는 힘의 근원은 여러 가지다. 멀리 중앙 해령으로부터 대륙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압축력, 대규모 빙하가 물러난 후 다시 지각을 서서히 융기시키는 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판 내부 지진은 판 경계 지진보다 발생 빈도가 훨씬 낮은 것에 비해 인명피해는 훨씬 클 수 있다. 이는 파괴적 지진에 대한 대비가 훨씬 미흡하기 때문이다.

 

단층은 광산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단층이란 암석의 연속성이 중단되는 곳으로 이를 통해 광산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지구과학자들은 과거에 운동이 발생했던 암석면 즉 불연속면에 대해 단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층면은 실제 완벽한 평면은 아니다. 단층은 단단하고 손상 없는 지각 내에 존재하는 약한 접합면이다. 지진은 지각의 약대(弱帶)인 단층과 연관되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단층에는 잘게 갈린 물질로 된 일정 크기의 비지대(gouge zone; 단층 깊은 곳에서 암석이 짓이겨져 만들어진 진흙·광물 가루 지대)라는 것이 있다. 비지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운동하는 단층 작용으로 암석이 갈려 작은 가루가 된 것이다. 단층이 오래되고 잘 발달할수록 비지대가 두꺼워진다. 단층도 진화한다. 단층은 지역적 특성과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하여 생겨나고 발달해 간다. 이렇게 단층이 생겨나고 진화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다.

 

지각의 여기저기에는 과거 함께 활동했던 단층들이 자리잡고 있다. 단층 중 어떤 것은 판 경계라는 중요한 약할을 하는 반면 어떤 단층은 어쩌다 한 번 움직이는 사소한 균열대로 그친다. 저자는 지구는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한다. 얼른 보아 한 개로 쭉 뻗은 것처럼 보이는 단층도 자세히 보면 여러 작은 직선들 즉 더 작은 단층 분절들로 되어 있다.

 

직선으로 보이는 각각의 분절들도 또 확대하면 더 작은 분절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졌음이 나타난다. 각 분절들을 또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여러 분절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고 자세히 보면 그 전체적 생김새나 복잡한 모양이 다시금 나무처럼 생겼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복적 성질은 수학적으로 프랙탈 즉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층이 분열된 것 - 작은 꺾임과 갈라짐 - 이 거친 돌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70, 71 페이지)

 

단층이 움직이면 마찰력이 감소하지만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단층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지진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한 단층에서의 지진 발생률은 장기적으로 그 단층에 작용한 응력의 축적률과 단층이 미끄러진 비율에 따른다. 현대 과학이 실전에서 쓰는 것은 지진을 미리 맞추는 예측이 아니라 지진이 이미 땅속에서 발생한 순간 무선 전파가 지진파보다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 몇 초는 또는 몇 십초 전에 대피 명령을 내리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대는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태평양판과 북미판 사이의 경계는 왜 이리 복잡한가? 그 답은 판 구조운동이 공 모양의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에는 가장 긴 판 경계 구조가 펼쳐져 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캘리포니아 북부와 중부의 동편에서는 광대한 지각 덩어리가 지속해서 늘어 당겨지고 있다. 이 확장 작용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나기 전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전개되던 섭입 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난 후 확장 작용은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북쪽 3분의 2 부분을 서쪽으로 밀어냈다. 몇 백만 년이 지나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일원인 몇몇 단층들이 직접 판 경계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런 진화는 시간이 지질학적 단위로 흘러야 가능하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는 당분간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선의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지질학과 지진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중요한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열쇠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지진 재해는 엉뚱한 데서 생긴다. 섭입대 지진에서처럼 해양 지각이 갑자기 내려앉으면 해저에서 파도가 생겨난다. 이런 파도를 쓰나미라고 한다. 이것은 지진 발생지 바로 인근의 해안으로 달려든다. 이런 파도는 시속 수백km의 속도로 해저 바닥을 따라 소리 없이 전파된다. 그러다가 연안의 수심이 얕은 곳에 이르러서는 에너지가 수직으로 집중되어 엄청난 진폭 증가가 일어난다.

 

즉 공해에서는 보이지 않던 파도가 갑자기 커다란 물의 장벽으로 변하는데 때에 따라 그 높이가 수십m나 된다. 쓰나미는 근원지 바로 근처의 해안지대에 엄청난 재해를 가져온다. 또 수천 km 떨어진 해안지대도 마찬가지다. 쓰나미 경보 체제가 없던 예전에는 멀리서 지진이 일어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맹렬하게 연안으로 돌진하는 물의 장벽에 당하기도 했다. 알래스카 쓰나미의 대부분은 그 지역 지진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지진 발생 후 바로 뒤에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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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다이어리 - 세종 33년 간의 기록
김경묵 지음 / 새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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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李裪)라는 이름을 가졌던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 1450)33(1418-1450)간의 재위 기록을 담은 책이다. 중국은 정치 제도를 우선시하는 발정시인(發政施人)의 정치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사람을 먼저 헤아리는 시인발정(施人發政)의 정치를 택할 수 있었다. 세종은 그것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임금들이 많았다. 정조는 시인발정과 발정시인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세종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식 이름을 검비(儉妃)라고 정하려 했으나 부왕 태종이 반대해 공비(恭妃)라 정했다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는 하나의 예이다. 태종은 세종의 길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세종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던 한편 세종을 고뇌케 한 존재이기도 하다. 악역을 자임한 것이다. 세종은 장인 심온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을, 바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자신의 입버릇에서 시작되었다고 자책했다. 장인이 자신에게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15, 16 페이지)

 

고뇌 또는 자책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병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한 것이다.(31 페이지) 이는 태종이 충녕대군(세종)을 마음에 둔 반면 원경왕후는 양녕대군(폐세자된 아들)을 깊이 아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세자(世子)란 왕의 자리를 잇는 사람을 말한다. 세종은 아버지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17 페이지)

 

세종은 "나는 지금까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선비와 같이 살아오지 않았는가...", "내가 아는 것은 책에서 익힌 지식이 전부이기에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서 배우고 또 익히고 있다.." 같은 말을 했다. 책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나서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경연을 연다. 신하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현안 이슈를 토의한다. 경연(經筵)을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라고 부르는 이유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국방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쳤다. 태종은 유련(流連)을 경계할 것을 가르쳤다. 유는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하고, 연은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세종은 수령에게 지배당하는 소민(小民)을 사랑하라고 지시했고, 정부에는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하라고 매일 같이 닦달해 왔기에 수령들이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만 같다고 여겨 마음 아파했다.

 

자식의 신분을 노비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종부법과 종모법을 보자. 종부법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고, 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다.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 사람이 이조판서 허조였다. 이는 허조뿐 아니라 다수의 신하가 여종을 첩으로 들여서 아이를 낳고 노비 즉 재산을 늘리고자 한 수법이었다.

 

강무(講武) 이야기도 나온다. "3월에 경기도 연천으로 군사훈련을 다녀오며 메마른 논과 밭을 직접 보고 왔다."(87 페이지) 강무란 왕이 직접 전국의 군인을 모아서 사냥하며 훈련시키는 제도로서 농사일 전의 초봄과 추수를 마친 늦가을, 이렇게 두 번 한다.(111 페이지) "왕은 국민의 배고픔을 보고 지나칠 수는 있어도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왕의 태도다." 이 말은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한 말이다.

 

태종은 세종에게 이 한마디를 전해주기 위해서 군사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세종을 모질게 다루었다. 세종이 그토록 싫어하던 돌 싸움을 맨 앞에서 지켜보게 했고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 졌다고 판단되면 바쁜 농사 철에도 군사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훈련 중에는 냉정한 왕이었지만 훈련을 마친 뒤에는 다친 군인을 치료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세종이 지켜보게 했다.(143 페이지)

 

재위 13년인 1431년 세종은 18세의 세자 향과 함께 첫 군사훈련을 했다.(149 페이지) 조선의 농부는 꽤 어려운 위치의 사람들이었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정기 군사훈련과 성을 쌓는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때로는 무기 창고에 보관된 무기를 수리하는 일도 해야 하고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한다. 이처럼 농부는 나라에서 부르면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군인이 되기도 하는, 고단한 신분의 사람이다.(223 페이지)

 

자책을 많이 한 세종은 군사훈련 중 추위에 얼어 죽은 군인들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자책했다. 재위 8년인 1426년 세종은 강원도에서 한창 군사훈련을 하던 중 서울에 큰 불이 났다는 긴급 보고를 받는다. 화폐개혁이 방화의 원인이라고 말해줬다. 전년도부터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통보로만 거래하라고 명령해 법을 어기고 물물거래를 하다 적발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가둔 결과 가족까지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는 거지로 전락했기에 국민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황망한 일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진 것이어서 그 가족들이 명화(明火) 강도를 본떠 화적 집단으로 뭉친 것으로 짐작된다.

 

명화란 횃불을 밝혀 들고 다니던 것을 말한다. 세종은 군대를 통솔하는 것은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다고 말한다. 곡식의 생산량이 늘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먹고 남은 곡식을 화폐로 바꿨다가 필요할 때 곡식으로 다시 바꾸게 될 텐데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개혁을 서두른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세종은 이 사건으로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 그것을 알아채면 빨리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 왕이어야 한다는 태종의 유언을 되새겼다. 세종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군사훈련을 위한 사냥터 몇 곳도 농경지로 개관하도록 허가 했다. 다만 군사훈련을 할 때도 있으니 사냥을 금지하는 것은 유지했다.(123 페이지) 세종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노는 것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국가고시에서 공부와 말, 활로 구분되는 문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125 페이지)

 

재위 12년인 1430년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지진이 발생했다. 4월말인데 서리만 내리고 비는 내리지 않고 햇볕만 쨍쨍한 날이 이어져 농작물 파종에 지장을 주는 이상기후 이야기도 전한다. 세종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에 매우 많다"는 말을 했다. 새롭게 알게 해주는 사실이 많은 것이 [이도 다이어리]의 특징 중 하나다. 국가 고시 시험에 노비 신분은 응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이 사실 자체는 세운 것이 아니다. 노비의 자식이 국가 고시에 합격해 고위직까지 승진하면 노비가 양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렇다.(161 페이지) 세종은 금수저 청년은 자유분방하게 살지만 가난한 부모를 만난 청년을 평생 흙수저로 살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방법으로 범죄자의 자식이라도 재주가 있거나 착한 청년이면 권리로 채용할 수 있게 법을 보완한 것이다.

 

조선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빼놓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나라다. 여진족과 생존을 위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당장이라도 오랑캐 무리를 몰살시킬 군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중국 땅에 조선 군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황제와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171 페이지) 두 여진족 부족인 오랑캐는 강가의 사람이라는 뜻이고, 우디 캐는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다.(189 페이지) AI는 둘 다 숲속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랑캐는 몽골, 퉁구스족 계열의 부족인 우량카이에서 유래했다.

 

세종은 변역(變易) 방식의 정치를 지향했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변이고 남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행동이 역이다. 여기저기가 다 문제다. 북쪽 국경을 넘나드는 여진족 만큼 남쪽의 항구를 드나드는 왜인(倭人)의 상황 또한 좋지 않다.(194, 195 페이지)

 

세종은 정초(鄭招; ? - 1434)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62일 나보다 더 나를 닮았고 언제나 왕을 사랑으로 돌봐주던 신하 정초가 죽었다. 내가 왕이 되고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경연이고, 정초가 없는 경연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정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다. 정초는 내가 왕이 된 해에 장인이 역모에 몰려 죽임을 당할 때 경연에서 지금은 보고도 못 본 듯 행동해야 한다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새로 임명한 수령은 반드시 가까이 불러서 소민을 사랑하라고 당부하라고 알려주었던 인물이다.“

 

소민은 지배당하기만 해서 힘이 없고 움츠러드는 작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197 페이지) 정초는 문학, 농업, 천문, 과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기틀을 닦는 모든 핵심 사업을 주도한 세종대왕의 핵심 참모이자 만능 천재 학자였다. [농사직설]의 저자이기도 한 정초는 이천, 장영실 등 기술자들이 과학 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고 작업을 총지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초는 언제나 배우고 묻기를 좋아한 인물이었다.

 

세종은 세자 향을 어떻게 대했을까? 다음의 구절을 보자. "328일 이른 아침에 세자 향을 데리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건원릉에 가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광진구에 있는 낙천정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서 송파구의 나루터 부근 편평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불을 쬐며 아들에게 선대왕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부모가 잠들어 있는 서초구에 있는 헌능에 들러서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이틀 동안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라가 탄생하고 유지되는 기본을 일러줬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에는 못 미치지만 나도 내 방식으로 아들에게 전해주고 있다"(199 페이지)

 

흐뭇한 정경이다. 세종은 대다수의 집현전 학사들이 언론, 감찰, 인사, 국방을 다루는 힘 있는 기관으로 옮겨가고자 한다고 말한다. 세종은 태만한 마음을 잡고 종신토록 집현전에서 공부하고 경연을 준비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세종은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집현전 인원을 32명에서 20명으로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229 페이지)

 

세종의 책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전에 아버지가 방에 틀어 박혀 지내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아들 주변에 있던 책을 모두 치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 구소수간(歐蘇手簡) 책 한 권만 방에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205 페이지) ()과 무() 또는 중앙과 변방의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다. 부모가 죽어도 아내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러 집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국경을 지키는 장수의 숙명임에도 국경을 지키는 장수가 조그만 사건 사고라도 저지르면 서울의 관리들은 트집을 잡고 죄인처럼 대하기 일쑤였다.(211 페이지)

 

해괴(駭怪)한 일을 없애기 위해 해괴제(解怪祭)를 지냈다고 한다.(219 페이지) 세종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세종은 왕이 되고 나서 신하에게 한 첫 말이 "더불어 의논하자"였는데 세 정승이 자신의 뜻을 읽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고 마침내 그들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게 되어서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물론 세종은 법을 바로 세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324 페이지)

 

재위 18년인 1436년 세종은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내는 세금이 쌀 70석에 이르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계속되는 흉년에 세종은 처음으로 왕으로서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231 페이지) 무엇이 문제일까? 산업, 기술이 부족한 때문일까? 이때 세종은 눈병이 심해져서 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수개월 동안 적지 않은 문서를 읽어가며 일하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자치통감훈의 책 원고 작업을 하며 눈을 혹사시킨 후유증인 듯하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본문에 오랑캐 이만주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과 세조 시대에 조선 북방을 끊임없이 위협했던 건주여진의 대추장이다. 46진을 개척하도록 촉발한 인물이다. 재위 21년인 1439년 이런 기록이 있다. 국경에서 성을 쌓고 있는 소민에게 밥을 가져가면 물고기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로 모여드는 것 같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것을 지켜보기가 괴롭다는 평안도 군사령관의 편지글이다. 세종은 밥이 배고픔을 해결하지만 성은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평안도 벽단, 함경도 원성 등지에 행성과 바리케이트 공사를 했는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여름 장맛비에 휩쓸려 많은 곳이 허물어졌다. 현장을 조사하고 온 관리가 주먹으로 내리쳐도 허물어졌을 정도였다고 보고했다. 눈에 보이는 성의 바깥만 돌로 쌓고 보이지 않는 곳은 모래와 흙으로 대충 메운 부실공사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문제의 핵심이 성을 쌓는 기술 차원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재촉했던 데에 있다고 말한다.(300 페이지)

 

다양한 여진족들이 귀화해왔다. 대부분은 국경 가까운 지역의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세종이 당뇨병을 비롯한 여러 병으로 인해 작은 일처리는 세자가 맡는다라고 통보하자 신하들은 왕이 아직 젊어서 병이 곧 나을 것이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보며 세종은 요즘 신하들의 말과 행동은 지금까지 왕에게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자신이 늙고 병이든 신하를 퇴직 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왕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마땅하다고 압박하는 듯하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신하들은 세자로 하여금 군사훈련을 지휘하게 하려는 세종에 극구 맞서기까지 했다. 세종은 찬바람이 불면 온천이 간절해진다고 말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144233일 아내와 세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강무를 겸해서 강원도 이천(伊川)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강무장에 아내와 함께 온 것도 처음이다. 강무는 세자가 지휘하게 했고 나는 틈틈이 세자와 더불어 사냥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쌓았다. 아홉 살 막내 이염(영웅대군)은 여행이 지겨운가보다."(319, 320 페이지)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어떤 사건의 현상이 아닌 배경을 헤아리는 데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가령 고의 방화 사건에 대해서도 세종은 해당 지역의 수령을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며 문제의 핵심은 왕 때문에 주민이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 등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위 25년인 144347세의 세종은 12월 마지막 날 우리나라 사람의 말을 듣고 글자로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이라는 세상에 없는 새 문자를 만들었다고 세상에 알렸다.(335 페이지)

 

세종은 오랫 동안 비밀리에 새 문자를 만들어 왔다. 온천에 가서 틀어박혀 지낸 이유도, 군사훈련을 취소한 이유도 모두 훈민정음 연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과 소통에 섬세했다. 요즘 말로 정동(情動)의 사람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정동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들과 만나며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 정동 이론의 핵심은 의식 이전의 거친 감각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언어와 의미로 전환되느냐에 있다.

 

세종은 자신이 한창 젊었을 때는 신하의 보고를 받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너의 말이 아름답다. 그러나"라고 말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차근히 설명하는 열정이 넘쳤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자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354 페이지) 세종은 몸이 낫기 전까지는 이런 마음의 병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재위 28년인 144650세의 세종은 아내를 보내야 했다. 세종은 "아내 이름은 소헌(昭憲)이라 정했다. 아내가 살아서 불리던 이름이 공비(恭妃)였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아내의 모습을 보고 태종이 지어준 이름이다. 죽은 뒤에 불릴 아내의 이름을 내가 직접 정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소헌은 밝음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실제로 아내는 왕인 나보다 더 아랫사람을 믿어주던 왕비였다."(373 페이지)라고 말한다.

 

"99일 세자가 영릉(英陵)에 가서 어머니 제사상에 밥 한 그릇을 올렸다. 그리고 띠로 벽과 지붕을 이은 한 칸 넓이의 임시 거처에 들어가서 밥을 먹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고 한다. 나도 그립고 보고 싶은데 큰아들이 오죽했을까?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났을 것이다. 내가 추억하는 아내는 평소에 믿음을 주는 말로 정을 쌓으며 살았고 나에게 모범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잔소리도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왕이 처신하는 도리의 바탕이 되는 정을 아내에게 배웠다'라고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374, 375 페이지)

 

세종은 정()이란 글자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뜻을 가진 글자라 말한다. 세종은 훈민정음이 백성의 한()을 풀어내고 정()을 쌓는 글자라고 말한다. "왕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하늘이 준 기쁨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들고 늙으니 쉽게 피곤해지고 게을러진다. 내가 지금 그렇다."(390 페이지)

 

재위 32년 즉 마지막 해인 145054세의 세종은 소민(小民)과 더불었던 소여왕(小與王)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태종은 신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통치하는 권도의 왕이었고 세종은 신하와 대화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겼던 정도의 왕이었다.(421 페이지) 부모를 잘 만나서 자신의 이성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세종의 이성은 감성을 잘 헤아리는 바탕 위에 세운 이성이다. 여주 영릉(英陵)에서 해설을 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세종 시대의 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다. 정초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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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힘 - 세상은 우리를 밀어내고, 당기고, 붙들고, 놓친다 페트로스키 선집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이충호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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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밀거나 당기는 물리적 접촉 없이 작용하는 힘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중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이다. 중력은 우리를 지구 표면에서 둥둥 떠올라 멀리 벗어나지 않게 하는 반면 아이가 쥐고 있는 끈 위의 풍선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살아간다. 사업자와 과학자는 우주정거장 내부 조건을 무중량 상태나 무중력 상태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미소 중력(microgravity)이라고 부른다. 이는 중력이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자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화기 내부가 전기 기계적인 것에서 전자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전기 기계는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필수적이다. 다이얼을 돌리면 테엽과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고 내부의 금속 접점이 실제로 부딪히며 전기 신호를 끊었다 이어주었다. 전자식에서는 움직이는 부품이 없다. 트랜지스터, 반도체, 집적회로 같은 고체 소자 내부에서 전자가 이동하며 신호를 처리한다.

 

간밤에 내가 잠을 잘 자는 데에는 중력이 한몫했다. 내 마음은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꿈을 꾸었을지 모르지만 내 몸은 지구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마찰은 순간적으로 작용하여 파악하기 힘든 힘이다. 그것은 꼭 필요한 힘과 잠재적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잠재적 조건은 1) 접촉면, 2) 누르는 힘, 3) 미세한 거칠기의 세 가지다.

 

접촉면이란 두 물체의 표면이 맞닿아 있어야 한다. 누르는 힘은 표면끼리 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꽉 누를수록 마찰력의 잠재적 최댓값이 커진다. 미세한 거칠기란 아무리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도 분자 수준에서는 울퉁불퉁하며 이 접촉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체가 가만히 있을 때는 마찰력이 0이다. 물체를 밀기 시작하는 순간 그 미는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마찰력이 작용한다.

 

미는 힘을 계속 키우면 마찰력도 같이 커지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최대 정지 마찰력에 도달한다. 접촉을 포함한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는 밀고 당기는 힘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들이 혼란스러운 조합으로 일어나 해석하거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찰력은 걸어갈 때 디딤돌 역할을 하는 벽과 같다. 발을 밀었을 때 뒤에 단단한 벽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듯이 마찰력이 있어야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저자는 서로 대응하는 한 쌍의 뉴턴의 힘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자신의 발이 땅을 누르는 힘은 작용으로, 땅이 자신의 발을 미는 힘은 반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끄러운 얼음판이라고 해서 뉴턴의 작용 반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자 수준에서 발을 잡아줄 마찰력이 없기 때문에 발이 뒤로 미끄러져 나가며 앞으로 가기 위한 수평 방향의 작용을 땅에 전달하지 못한다.

 

땅을 밀지 못하니 몸을 앞으로 밀어줄 반작용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마찰력이 없으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의 모든 물체에 초강력 윤활유를 바른 것 같은 상태를 넘어 제대로 서로 붙잡아두는 결속력이 사라지게 된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액체처럼 흘러내려 형태를 잃어버리는 종말이 찾아온다. 물질 자체를 만드는 것은 화학적 결합력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체들이 서로 미끌어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쓸모 있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묶어주는 실질적인 결속력은 마찰력이다.

 

인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문명적인 것이든 야만적인 것이든 모든 것을 항상 힘에 의존해 해결해왔다.(126 페이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늘 접촉하는 모든 것에 힘과 운동을 가하고 그 효과를 되돌려 받는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물리 세계와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 경험의 도서관 밖에 존재하는 힘과 운동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크게 놀라게 되는데 거기서 해를 입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하며 즐거움을 얻을 때도 있다.

 

힘을 천연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은 실험실의 과학자나 사무실이나 현장의 공학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누구든지 재미로 힘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런 짓은 아름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일만 하고 놀 줄 모르는 어른은 따분한 부모가 되고 만다.(173 페이지)

 

저자는 19세기의 박학다식한 지식인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이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고 부른 역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리엄 휴얼은 과학자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다. 저자는 바로 그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는 분야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거의 모든 기술 분야는 나머지 모든 기술 분야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인 역학은 일종의 패러다임 역할을 한다.

 

저자는 힘은 자신이 배운 화학공학, 전기공학, 심지어 핵공학 분야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아주 큰 힘 앞에서 부러지는 것은 분필 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부러지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휴얼은 모든 실패는 성공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저자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189 페이지) 역사는 힘에 관한 감각과 감수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1986128일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지호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대통령위원회와 관련이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이론 물리학 교수였던 리처드 파인만과 한 위원은 공청회 도중 탁자 위에서 단순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실험 장비 중에는 얼음물이 든 컵과 C형 클램프가 있었다. 파인만은 C형 클램프로 O링이라는 작은 고무 개스킷을 조였다. O링은 우주왕복선 부스터 로켓의 핵심 부품 중 하나였다. 그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NASA 관리자 들은 챌린지호 부스터에 쓰인 O링이 탄성이 매우 뛰어나 팽창하면 어떤 틈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인만은 이 실험으로 발사 당시의 혹한 상황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었다.(혹한이란 플로리다주 지역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한파와 강풍이 몰아 닥친 순간을 말한다.) 얼음물에 담겨 있던 O 링을 꺼내 클램프로 힘을 가하자 고무는 변형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제 로켓에서도 O링이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틈을 통해 가스가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오면서 결국 폭발사고가 났다. 이렇게 간단한 실험을 통해 복잡한 현상을 명료하게 밝힐 수 있었다.(193, 194 페이지)

 

힘이라는 개념은 쉽지도 않고 명백하지도 않다. 그 개념이 발전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일부 물리학자들은 지금도 그 개념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물질은 어느 정도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종의 용수철이라고 볼 수 있다.(249 페이지) 이 말은 세상에 완벽하게 딱딱한(강체) 물질은 없다는 공학적 진리를 꿰뚫는 멋진 비유다. 우리 눈에는 돌, 콘크리트, 강철 등이 전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자나 분자의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은 전자기적 힘으로 묶여 있다. 이 원자 사이의 결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스프링으로 연결된 것과 같다. 물체에 힘을 가하면 이 미세한 원자 스프링들이 아주 미세하게 압축되거나 늘어난다. 이는 탄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체가 용수철처럼 작동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 에너지를 잠시 변형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방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물질이 용수철처럼 힘에 비례해 늘어나다가 한계를 넘으면 영구적으로 변형되고 결국 부서진다.

 

압축력의 반대는 인장력이다. 우리가 줄다리기를 할 때 경험하는 힘이다. 여기서 우리는 돌기둥이나 강철들과 달리 강성이 없는 물체가 인장력과 압축력을 받을 때 다른 행동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양팀이 잡아당길 밧줄에 다가가기 전에 밧줄은 대개 땅 위에 헝클어진 정원용 호스처럼 구불구불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양팀이 밧줄을 집어들면 밧줄은 곧 강철 케이블처럼 곧고 뻣뻣해지는데 단 양쪽에서 충분히 강한 힘으로 끌어당길 때에만 그렇다.

 

상대팀이 없더라도 끈이나 치실을 손가락 주위에 감고 양손은 서로 멀어지게 함으로써 끌어당기는 힘과 밧줄의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손가락에 실이나 끈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힘의 세기와 우리가 통증을 견디는 내용에 따라 것을 끊을 수도 있고 끊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윌리엄 휴얼이 역학에 기초해서 지적했던 수평 방향으로 아무리 세게 잡아당긴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결코 완전히 똑바른 직선으로 만들 수 없다. 항상 약간 처진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구조에서 모든 부분이 인장력이나 압축력은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공학자는 외력에 의해 구조물질 내부에 생기는 단위 면적당 힘의 세계를 응력이라고 부른다. 같은 힘이라도 표면 전체로 확산되느냐 좁은 부분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응력이 작아지거나 커질 수 있다. 지진이 구조에 손상을 입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건물은 내버려둔 채 그 아래에 있는 지반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은 식기가 놓인 식탁에서 식탁보를 갑자기 홱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하다.(4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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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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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지의 책이다.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로 알려진 고생물학자다. 저자는 데이지 커터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종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데이지 커터는 목적지에 투하되어 넓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는 초강력 폭탄의 일종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위대한 성공담 밑에서 예전보다 오래 버티고 있을 뿐 덤으로 주어진 수천 년이 끝나고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피엔스는 어디를 가든 파괴를 자기 표식처럼 남기는 존재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는 홀로 살아 남은 호미닌이다. 호미닌이란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초기 인류 조상과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피엔스는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해왔다. 역사상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차례 이주를 감행했다.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의 호미닌으로 아프리카를 처음 떠났고 약 10만년 전을 시작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다른 호미닌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 두 차례의 이주는 모두 구체적인 의도나 목적지 설정 없이 이루어졌다. 인구 압박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또는 사냥감 무리를 뒤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호미닌이 가끔씩 내킬 때만 두 발로 걷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족보행을 기본적인 보법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모른다. 물론 이족보행은 유리한 방식이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극도로 희귀했다. 한 끼의 식사로 아사를 면하고 또 한 끼로 멸종을 피하며 아주 작은 무리가 지구 표면으로 아슬아슬하게 퍼져나갔다.

 

사피엔스가 희귀했던 것은 1) 역사 속에서 급격한 기후 변화나 가뭄 등을 겪으며 몇 번이나 멸종할 뻔한 인구 병목 현상을 겪었고, 2)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턱없이 낮고, 3) 거대한 지구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무리를 지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비교한다. 왜 다른 호미닌 특히 네안데르탈인 같은 종족이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을까? 핵심은 집단에 크기에 있다.

 

현생인류가 조금 더 밀집된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멀리 떨어진 무리끼리도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약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을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자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간(개인)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영양실조, 전염병, 과도한 노동을 선물한 재앙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헨리 지의 통찰이다.

 

주목할 개념이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말이다. 커다란 집단에서 극소수의 개체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저자가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설명할 때 핵심 이론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사피엔스 중 아주 일부만이 고향을 떠나 중동으로 이동했다.

 

이때 아프리카에 남은 본() 집단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유전자 중 극히 일부분만 새 정착지로 배달되었다. 중동에 자리 잡은 소수 집단에서 또다시 더 적은 무리가 떨어져 나와 유럽으로 가고, 그중 또 일부가 아시아로,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창시자 효과'를 연속으로 겪으며 유전적 다양성이 처참할 정도로 복사, 축소되었다. 창시자가 된 소수의 무리는 필연적으로 아주 좁은 유전자 풀(Pool) 안에서 번식해야 하므로 극심한 근친교배를 겪게 된다.

 

큰 집단에 있을 때는 묻혀서 나타나지 않던 해로운 열성 유전 질환이나 유전적 결함들이 소수 정착지 안에서는 서로 유전자가 겹치면서 후대에 폭발적으로 발현되기 쉽다. 저자는 이를 유럽 왕가들이 근친혼으로 인해 혈우병 같은 유전병을 앓았던 것에 비유하며 초기 인류 무리 역시 이러한 유전적 결함 누적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어떤 전염병이 돌 때 누군가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창시자 효과 때문에 모두의 유전자가 비슷해진 인류 집단은 치명적인 전염병,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한 번에 전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도 창시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의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 등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창시자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저자의 창시자 효과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아주 먼, 내가 사는 연천 전곡리에 살았던 에렉투스들은 어땠을까?

 

전곡리 주변에 살던 에렉투스는 많아야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씨족 무리였을 것이다. 대륙은 너무 넓고 다른 무리는 없었기에, 이들은 수만 년 동안 그 좁은 무리 안에서만 짝을 짓는 극심한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근친교배가 지속되면 해로운 열성 유전병이 고착화된다. 전곡리인들은 겉으로는 뼈가 튼튼하고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강인한 사냥꾼이었을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뼈나 장기, 혹은 면역계에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한 약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곡리 유적에서 뛰어난 주먹도끼가 8,500여 점이나 나왔지만 인골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화석이 만들어져 전해지기가 어렵기도 한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들이 매우 적은 수로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남긴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위대한 유산이지만 머나먼 타향에서 외롭게 버티다 사라져 간 인류 조상들의 슬픈 흔적이라 할 수 있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기후 변화로 사바나 초원이 확장되면서 먹이(동물 미트)를 추적하던 일부 사냥꾼 무리가 우연히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로 넘어왔다. 이때 대다수의 에렉투스는 기후가 익숙하고 살기 좋은 아프리카 본토에 그대로 남아 진화를 이어갔다. 이 남겨진 본가 집단이 훗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거쳐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200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무리들은 검치호랑이가 먹다 버린 고기 찌꺼기를 찾아, 그리고 이동하는 초식동물 무리를 따라 초원 길을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버린 외로운 사냥꾼들이었다. 지리학 박사 박정재 교수에 의하면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오자 아프리카는 예전보다 추워지고 건조해졌다. 이 변화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냥감을 따라 아프리카를 탈출한 무리들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춥고 혹독한 유라시아의 진짜 추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남은 이들은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졌을지언정 얼어 죽을 일은 없는 온화한 피난처에서 버틴 셈이다. 정리하면 200만 년 전 에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추워지고 건조해져서 먹이를 찾아 쫓기듯 탈출해 유라시아의 추위에 고생하다 멸종했고, 10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이 따뜻하고 습윤해져서 초록 사막 고속도로를 타고 편하게 탈출했으나 기후가 다시 건조해지며 대부분 정착에 실패했다.

 

6만 년 전 사피엔스는 가뭄과 인구 압박을 뚫고 획기적인 언어와 상상력(인지혁명)을 무기로 탈출을 해 현대 80억 인류의 진짜 조상이 되었다. 유전적인 결함과 질병, 농경생활에도 불구하고(사실은 농업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지구에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근근히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살 수 있는 인간은 고작 천만 명 정도였다. 농경은 이 땅이 인간을 부양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을 키웠고 그렇게 인구의 수와 밀도가 증가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 부족을 낳고 결국 세계 경제를 악화시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아기를 낳으려는 여성의 수, 아빠가 되고 싶은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인구 과잉의 뒤에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이주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이주는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보(173 페이지)이지만 모두가 이주를 선택하지는 않는다(174 페이지)고 결론짓는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의 출생률 감소에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적 인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의 다른 모든 호미닌의 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가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궁극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생인류가 그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떼로 몰려든 새 이웃에 밀려났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우주 식민지 개척이다.(198 페이지)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주 식민 개척의 전제 조건은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변하는 것이다. 이유는 현재 상태의 인류는 유전적으로 너무 취약해 우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당장 죽지 않고 굴러갈 정도의 어설픈 땜질만으로도 40억 년을 버텨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광호흡에 대해 들어보자. 광호흡은 식물이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잘못 먹어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상이다. 광합성을 돕는 핵심 효소인 루비스코가 문제였다. 이 효소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과거 지구에는 산소가 없어서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덥고 건조해지면 식물은 수분을 지키려 숨구멍(기공)을 닫는다. 잎 안에 산소만 가득 차자 루비스코가 산소를 덥석 붙잡는다. 그 결과 영양분 대신 독성 물질이 만들어진다. 식물은 이 독을 없애려고 여러 세포 기관을 돌며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한다. 루비스코의 오류는 광합성 오류다. 식물은 루비스코를 바꾸는 대신 오류가 나면 뒷수습을 하는 보조 공장(페록시좀, 미토콘드리아)을 옆에 새로 지었다. 저자는 식물의 광합성이 40억년에 가까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 말한다.(227 페이지)

 

저자가 광합성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리라. 저자는 1) 완벽한 설계자(마스터플랜)는 없다, 2) 우연은 비극과 기적의 양면성을 낳는다, 3) 인간도 어설픈 땜질의 결과물일 뿐이다 등의 말을 한다. 광합성을 하던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자를 얻기 위해 주변에 흔한 물을 분해하다 보니 우연히 치명적인 독성 가스인 산소(O)가 뿜어져 나왔다.

 

이 어설픈 시스템 부작용으로 당시 지구 생명체의 99%가 전멸하는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일어났고,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우리가 누리는 산소 호흡은 그 재앙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다. 각 종()은 자기의 생태적 지위를 창조하거나 건설한다. 생태적 지위는 아주 작을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할 수도 있다.

 

저자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원하는 이유로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것들에는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감상적인 이유가 더 많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왜 우주에 정착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이유로 우주에 가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갈래다.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1만 년 이내에 멸종하거나 우주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우주로 확장해 잠재적으로 수백만 년을 살거나.

 

이것은 다음 세기, 늦어도 200년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종의 장기적인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266, 267 페이지) 모두(冒頭)에서 말했듯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다. [인간 제국 쇠망사]를 읽은 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단백질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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