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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방향을 바꾼 과학자들
올리버 로지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25년 8월
평점 :
저자 올리버 로지(1841-1950)는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전자기 이론과 전파통신의 선구자다. ‘세상의 방향을 바꾼 과학자들’에서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과 비범한 사람들을 나눈다. 저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자는 자연현상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 만족해 하고, 자신들의 이동 수단, 건강, 오락, 지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과학 연구나 과학적 성과에 대해 늘 어느 정도는 무관심하다. 후자는 세상의 소란과 조급한 활동을 보면서도 그에 물들지 않고 남들이 부와 쾌락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이 세계와 우주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깊게 생각하고 연구해야 하는 하나의 사실, 우연히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중요하고 불가사의한 사실로 본다.
저자의 책은 과학의 개척자이자 세상에 큰 도움을 선사한 학자들을 다룬 책이다. 저자가 논의한 인물들은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등이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체계론은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자 역시 그랬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학술적인 논문이어서, 부분적으로는 성직자가 제시한 이론이어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구체(球體)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구체를 받아들인다 해도 대척지(對蹠地)를 생각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웠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이의 사고가 전통과 권위에 지배받고 의심하는 것 자체가 죄로 여겨지던 시대에 그런 체계를 의심하고 새로운, 더 나은 체계를 추구했다. 그것은 위대한 지성과 높은 인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도사 코페르니쿠스는 “수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이 문제들을 판단하려 들고, 성경 구절 하나를 제멋대로 끌어다 붙여 내 작업을 비난하고 트집 잡으려는 잡담꾼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을 개의치 않으며 그들의 판단을 거리낌 없이 경멸할 것”이라 말했다. 자정 무렵에는 태양의 위치가 항상 북쪽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 남쪽 하늘에 정중앙으로 떠 있는 별자리나 떠오르거나 지는 별자리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43, 44 페이지) 저자는 인류는 오랫동안 진리를 비웃고 저항하다가 결국 너무도 무비판적이고 상상력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면 물체들이 뒤처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대기가 물체를 앞으로 밀어줘서 지구와 함께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란 답을 했다. 지구의 운동이 성경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성직자들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졌다. 흥미로운 사실이 금이 태양과 연결되었다는 점이다.(57 페이지) 금은 귀금속이다. 귀한 금속이란 의미가 귀족(noble) 금속이라는 의미다. 산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 금속이란 의미다. 금 외에, 백금, 이리듐 등도 귀금속이다.
티코 브라헤의 지도를 받은 사람 가운데 케플러가 있다. 브라헤는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기계적 창의력과 실험 능력이 뛰어났지만 이론적, 수학적 능력은 평범했다. 케플러는 가난하고 병약하며 실험적 재능이 거의 없고 정밀한 관측에도 적합하지 않았지만 추상적 사유의 정교함과 타고난 수학적 직관력에서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케플러는 천문학 강사가 되었다. 당시 천문학은 오늘날의 광물학이나 기상학처럼 부차적인 학문으로 여겨졌다. 케플러는 본래부터 사유하고 추론하는 사람이었다.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 원인에 대해 사색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하고 자연스러운 운동은 원운동뿐이라고 가르쳤으며 따라서 하늘의 천체들도 반드시 원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84 페이지) 케플러가 발견한 사실은 원과 타원 사이의 최대 차이가 반지름의 429/ 100,000이라는 값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는 화성의 광학적 불균형도 이와 거의 같은 값 즉 반지름의 429/ 100,000이라는 값을 가진다는 것을 떠올렸다. 케플러는 태양이 타원의 한 초점에 위치한다면 면적이 일정하게 그려진다는 조건이 정확히 충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케플러에 의하면 S가 태양이고 어떤 행성 또는 혜성이 P에서 P1까지, P2에서 P3까지, P4에서 P5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면 빗금 친 면적들도 서로 같다는 것이다. SPP1, SP2P3, SP4P5는 삼각형이다.
케플러는 각각의 행성들이 태양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와 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하면 거리의 세제곱은 공전 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점도 알아냈다. 케플러는 “...너희가 나를 용서한다면 기쁘고, 분노한다 해도 나는 견딜 수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책은 쓰였다. 지금 읽히든 후대에 읽히든 개의치 않는다. 신께서 관찰자를 6천년 동안 기다리셨듯이 독자를 100년 동안 기다릴 수도 있다.”고 썼다. 케플러의 상상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상상력보다 훨씬 풍부하고 자유롭게 펼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엄격한 검증을 통해 자신의 가설과 사실을 비교하고 통제했다. 케플러가 치른 노동은 막막하고도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계산, 가설, 또 계산, 또 가설.. 그리고 이론과 사실을 어떻게든 조화시키려는 절망적이고 어두운 탐색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무게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갈릴레오는 무게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모든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돌과 깃털조차도. 공기 저항만 없다면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물체는 같은 시간에 땅에 도달한다고 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가장 먼저 정밀하게 관찰한 대상은 당연히 달이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달의 모습이 지구와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과 계곡, 분화구와 평지, 바위 그리고 얼핏 보기에 바다처럼 보이는 부분까지 있었다. 이런 발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들 특히 갈릴레오가 떠나온 피사의 교수들 사이에서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에게 달은 순수하고 매끄럽고 수정체의 하늘 즉 완전무결한 천상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그 고결하고 숭고한 천체의 얼굴을 거칠고 울퉁불퉁한 지구처럼 하찮고 천한 세계로 만들어버렸다. 저자는 갈릴레오와 동시대인인 조르다노 브루노가 이단 혐의로 화형에 처해진 것을 언급하며 그들의 잘못은 잔혹함에 있지 않고 자신들이 영원한 진리의 심판자라고 믿은 데 있었다고 말한다.(146 페이지) 갈릴레오는 태양 흑점에 대해서도 업적을 남겼다. 갈릴레오는 결코 회의주의자가 아니었다. 성경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했고 특히 신앙과 도덕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그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적 사실에 대한 성경의 진술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 의미를 오해하기 쉬우므로 과학적 진실은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확인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직접적인 관찰 결과와 성경의 문구가 충돌할 경우 그것은 우리가 어느 쪽이든 혹은 양쪽 모두를 잘못 해석한 탓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조화론자였다.
갈릴레오는 여호수아의 기적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지구의 자전을 잠시 멈추는 것이 옛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처럼 태양과 달은 물론 하늘의 모든 천체를 멈추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고 생각했다.(156 페이지) 우리가 아니 내가 알던 갈릴레오와 다른 부분이다. 그는 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인다. 생각 이상으로. 저자는 다윈을 뉴턴과 비교하거나 함께 언급하는 말을 들으면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거북함이 든다고 말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수학이 과학에 쓸모없다고 단정지은 로저 베이컨에 대해 논한다.(194 페이지)
갈릴레오의 죽음과 뉴턴의 전성기 사이의 과학사의 공백을 메운 인물로 저자가 든 사람은 르네 데카르트다. 그는 과학적 연구에만 몰두하고 인문학적, 문학적, 미적 학문에 대해서는 다소 경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 예술, 역사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카르트는 훌륭한 정신을 위해서는 게으름이 팔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동물들은 의식도 감각도 없는 자동기계라는 가설을 세웠다. 데카르트가 해석기하학을 발명하지 못했다면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뉴턴이 창안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 생애의 많은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천문학에서 소용돌이 이론의 창시자다. 그는 공간을 온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 즉 빈틈없이 충만한 플레넘으로 보았다. 데카르트는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은 우주 공간이 완전히 유체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며 이 유체는 확실히 소용돌이 운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상상되는 소용돌이는 데카르트가 말한 것 같은 행성 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아니라 원자보다 훨씬 작은 차원의 미세한 회전운동이다. 저자는 지식이 깊어질수록 가장 기묘하게 보이는 주장 속에서도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음을 점점 더 자주 깨닫는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공식적으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부정하고 대신 지구는 물과 공기와 함께 하늘의 에테르가 만들어내는 더 큰 운동에 실려 다니는 것이라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연구 방식은 순수한 연역적 방법이다. 유클리드의 방식처럼 몇 가지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하여 그것들로부터 일련의 추론을 통해 결과들을 도출하고 그렇게 해서 조금씩 연계된 지식의 구조를 쌓아올리려 한 것이다. 이 점에서 데카르트는 뉴턴의 선구자였다. 엄격하게 실행될 경우 가장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방법이었다. 실험을 통해 이루어진 단편적인 정복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인 과학 영역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방법을 안전하고도 만족스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누구도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이 방법만으로 충분히 다룰 수 없다.(212 페이지)
데카르트의 중대한 업적은 자연이 수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모든 결론은 결국 언젠가는 실험이라는 시험대에 올려야 하며 실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이론 자체를 다시 검토하여 오류를 찾아내거나 이론을 버려야 한다. 케플러, 데카르트, 갈릴레오 등은 광학과 천문학을 연구했고, 티코 브라헤를 비롯한 이전 학자들은 연금술과 천문학을 함께 연구했으며 뉴턴 역시 이 분야를 조금 다루었다. 케플러는 행성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밝혔지만 그들이 왜 움직이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밀어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케플러는 행성들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속도 자체가 아니라 면적을 그리는 속도가 일정하고 시간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224, 225 페이지)
케플러는 행성의 거리와 주기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거리의 세제곱은 주기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이다. 갈릴레오가 불멸의 이름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실험, 추론, 관찰에 근거하여 역학의 기초를 처음 확립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원고를 태운 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다만 토리첼리, 비비아니 덕에 역학에 관한 원고는 화를 면했다. 갈릴레오가 발견한 세 가지 운동 법칙 즉 공리가 있다. 관성, 가속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뉴턴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초는 갈릴레오가 세웠다.
어떤 돌을 O 지점에서 OA 지점으로 던졌을 때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1운동 법칙에 따라 1초 후에는 A, 2초 후에는 B, 3초 후에는 C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중력이 작용하면 1초 후에는 A 지점에 도달할 무렵까지 수직으로 16피트 떨어지게 되어 실제로는 P 지점에 있게 된다. 2초 후에는 수직으로 64피트를 떨어져 Q 지점에, 3초 후에는 C 지점보다 144피트 아래인 R 지점에 있게 된다. 이처럼 돌의 실제 경로는 곡선이 되며 이 경우 그 곡선은 포물선이다. 뉴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포함한 고대의 색 이론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으며 색은 물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255 페이지)
세상은 핼리에게 커다란 신세를 지고 있다. 첫째 ’프린키피아‘를 발견한 공로, 둘째 그것을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도록 끝까지 책임진 것, 셋째 그 인쇄비를 넉넉지 않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충당한 것 등이다. 저자는 ’프린키피아‘ 같은 책은 한 문장씩 곱씹으며 필사해보는 것이 가장 유익한 독서법이라 말한다.(270 페이지) 저자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지를 결코 자각하지 못하며 자신의 진정한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뉴턴이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뉴턴은 과학에 있어서 오직 영감을 받은, 초인적인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뉴턴은 ’어떻게 그런 발견을 했습니까?‘란 물음에 “항상 그 생각만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주제를 끊임없이 내 앞에 두고 그것의 첫 희미한 윤곽이 조금씩 완전하고 명확한 빛으로 열릴 때까지 기다립니다.”란 말을 했다. 조용하고 꾸준하며 끊기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사색이 그의 방법이다. 그런 조건에서는 많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조건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유의 작업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뷔퐁은 “천재란 인내”란 말을 했다. 뉴턴은 “내가 이 방면에서 대중에게 어떤 봉사를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근면과 인내하는 사색 덕분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