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던 시간이었다. 기억으로 뜨겁고 건조한 고기압이 하늘을 덮어 낮 기온이 극단적으로 치솟는 형태였던 1994년 여름도 숨막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바다가 막대한 수증기까지 공급함에 따라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역대급 열대야가 동시에 타오르는 양상을 보인 올해는 1994년 더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기후학자들은 2026년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했다. 2026년이 실제로 시원했다는 뜻이 아니라 가속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다가올 여름은 올해보다 무조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이다.

 

이럴 때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로 빚어진 풍경을 그리게 된다. 당시 화산 분화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퍼져 다음 해 지구 평균 기온이 0.5°C~0.7°C 떨어졌다. 이산화황이 산소, 수증기 등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미세 액체 방울 또는 입자 형태의 황산염 에어로졸을 형성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우주로 반사한 결과다. 1991년의 피나투보 대분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던 지구온난화 흐름을 약 2년 동안 완전히 멈추게 했다. 1992년을 기점으로 약 2년이 정점이었던 냉각 효과는 1994년 피나투보 화산의 우산 효과가 완전히 끝나며 지구온난화 열기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이산화탄소는 상온·상압의 지구 대기 환경에서 액체나 고체 입자로 뭉치지 않고 오직 안정된 기체 상태로만 존재해 햇빛을 반사할 수 있는 알갱이(입자) 상태가 되지 못한다. 화산재는 짧은 기간 빛을 가리고, 이산화황은 성층권에 오래 머물며 기후 변화(냉각)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맨틀 깊은 곳의 유황 성분이 풍부한 해양 지각이 섭입하면 지각이 녹으면서 안산암질이나 유문암질 마그마가 생성된다. 이런 화산대에서 이산화황이 많이 나온다. 석회암 등 탄산염 암석이 많은 대륙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화산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온다.

 

화산재가 많이 나오는 화산은 이산화규소 함량이 높은 화산이다. 안산암질(중성), 유문암질(산성)이 그것으로 마그마가 너무 끈적끈적해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 갇힘에 따라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올라올수록 가스 주머니가 팽창하며 압력이 극도로 높아진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끈적끈적한 마그마가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내부의 가스 주머니들이 풍선처럼 일제히 펑펑 터지며 마그마 전체를 잘게 찢어놓는다. 찢어진 마그마 파편들이 공기 중에서 급격히 식으면서 유리에 가까운 미세 돌가루가 된다. 이것이 화산재다.

 

지각 밖에서 식는 중성 마그마가 안산암질이라면 내부에서 식는 중성의 마그마는 섬록암질이다. 지각 밖에서 식는 산성 마그마가 유문암질이라면 내부에서 식는 산성 마그마는 화강암질이다. 지각 밖에서 식는 현무암은 이산화규소 함량이 낮은 염기성으로 분류된다. 내부에서 식는 염기성 마그마는 반려암이다. 지질에서 말하는 염기성, 중성, 산성은 이산화규소 함량에 따른 분류다.(52%까지; 염기성, 52~66%; 중성, 66% 이상; 산성)

 

미래의 여름은 올해보다 무조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경고는 1) 온실 가스 누적 효과와 풍선 효과, 2) 한계에 다다른 바다라는 온수매트, 3) 역설적인 '맑은 하늘'의 부작용 등에 근거를 둔 경고다.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최소 수백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축적된다. 이산화황 대방출처럼 일시적으로 햇빛을 가려 기온을 낮춰주는 자연의 우산이 매년 생겨주지 않는 한 대기 중에 켜켜이 쌓인 온실가스는 매년 지구 밖으로 나가는 열을 더 촘촘하게 가두게 된다. 다음 해의 온실가스 농도는 올해보다 높을 것이므로 지구가 머금는 열에너지의 총량은 매년 늘어나게 된다.

 

지구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열의 90% 이상을 대신 흡수하며 방패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한반도 주변 및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바다가 뜨거워지면 대기 중으로 엄청난 양의 수증기(열을 품는 온실가스 역할을 함)를 뿜어내며, 기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거대한 온수매트'로 돌변한다. 이 가열된 바다는 단기간에 식지 않기 때문에 다음 해 여름의 기초 온도를 더 높여 시작하게 만든다.

 

수증기의 짧은 생명은 별 의미가 없다. 개별 수증기 분자는 비나 눈으로 쉽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존 기간이 평균 약 10일로 매우 짧다. 하지만 바다에서 끊임없이 리필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즉 개별 분자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뜨거운 바다가 공급하는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는 수증기의 총량이 계속 유지되거나 늘어나면서 강력한 보온 효과를 낸다. 이산화탄소의 생존 기간은 수백 년에서 수만 년에 달할 정도로 매우 길다. 즉 한 번 배출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가디시 슈클라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바다가 거대한 열 흡수원으로서 지구 온도를 방어하는 동안 육지 표면 역시 기후 체계를 조절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인자임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바다가 양적인 방패(90% 이상의 열 흡수)라면 슈클라 박사가 주목한 육지는 기후의 방향과 변동성을 결정하는 질적인 조절자에 가깝다. 슈클라 박사에 의하면 육지 역시 토양 속 수분을 통해 기후를 기억하고 조절한다.

 

슈클라 박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몬순(계절풍) 예측을 현대화한 것이다. 몬순은 대륙(육지)과 바다가 햇빛을 받았을 때 데워지는 속도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육지 표면이 얼마나 뜨거워지느냐에 따라 바다로부터 습한 바람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의 강도가 달라지며 이는 수억 명의 생존이 걸린 비의 양을 결정한다. 육지의 상태가 기후 예측의 핵심 경계조건이 되는 것이다. 슈클라 박사의 논의에서 지질학적 의미도 길어올릴 수 있다. 지각의 가장 바깥층(토양과 식생)은 멈춰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대기층과 동기화되어 실시간으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조절하는 거대한 지질학적 기관(Organ)이라는 것이다.

 

2026년 우리는 그래도 유럽보다 나았다. 유럽의 여름 기후는 기상 관측 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다섯 차례의 살인 폭염'과 초대형 산불로 얼룩졌다.

 

자가디시 슈클라는 나비 효과에도 불구하고 계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우상향(지구온난화) 추세 속에서도 자가디시 슈클라의 계절 예측은 여전히 매우 강력한 의미와 실용성을 갖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계속 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절 고유의 '오르락내리락(변동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선이 올라간 상태에서도 여느 해보다 더 혹독한 폭염이 오는 여름이 있고 온난화 중에도 일시적으로 지독한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있을 수 있다.

 

슈클라의 계절 예측 덕분에 올해 장마철에 비가 너무 안 와서 가뭄이 들지,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날지를 몇 달 전에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수억 명의 식량 생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올해 유럽을 덮친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알프스의 거대 빙하가 폭포수처럼 녹아내리는 재난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이 유독 폭염이 심한 것은 주변의 북극 해빙과 대륙의 눈(Snow) 커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육지의 햇빛 반사율(알베도)이 무너진 결과다. 하얗게 빛을 반사해 주던 눈과 얼음이 사라진 자리를 어두운 맨땅과 바다가 채우면서, 유럽 대륙 전체가 태양열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빙하가 녹는 현상은 단순히 물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지구의 고체 땅을 움직이고 전 세계 바다의 높이를 비틀며 거대한 지형을 순식간에 바꾸는 연쇄적인 지질학적 폭주를 일으킨다. 빙하가 녹으면 지진이 나기도 하고, 주변이 아닌 다른 지역 수위가 올라가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빙하, 하면 프랑스의 빙하학자 클로드 로리우스 생각이 난다. 1965년 남극 탐사 당시 위스키에 빙하 얼음을 넣어 마시다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지는 기포를 보고 이 기포가 수십만 년 전 지구의 대기를 그대로 간직한 타임캡슐임을 직감한 인물이다.

 

[빙하여 안녕]은 지구 기후 시스템의 거대한 브레이크이자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안녕(Peace)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뜻하는 슬프고도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후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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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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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인력으로 인해 지구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며 바닷물이 부풀어 오른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이 바닷물과 해저면 사이에 강한 마찰이 일어나 지구 자전이 느려진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가 달로 전달되어 달의 공전 궤도가 넓어진다. 이 때문에 지구와 달의 거리는 매년 약 3.8cm씩 멀어진다. 개빈 프레터피니의 [파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조석파(潮汐波)를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라 정의한다. 그것은 달과 태양의 인력(引力)이 작용해 지구 전체의 바다를 이동시키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크다는 것은 외형의 크기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라 범위와 스케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쓰나미가 가장 큰 파도라면 조석은 지구 반 바퀴에 달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에 작용하기에 크다는 것이다.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란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구름과 파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현상은 파동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하나다. 파도와 구름은 물질 자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매질(媒質)을 타고 흐르며 만들어내는 형태다. 또한 두 현상 모두 물과 공기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 두 현상 모두 끊임없이 변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에너지가 앞으로 나아갈 때 물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파도가 칠 때 물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한다. 저자는 구름관찰자(cloudspotter)는 파도관찰자(wavewatcher)이기도 하다고 말한다.(11 페이지) 흥미롭게도 spotter은 숨겨진 것을 찾아내거나 포착한다는 의미가 강하고, watcher는 시간을 두고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본다는 의미가 강하다. 저자는 파도를 갓난 아기기(잔물결), 아동기(풍랑), 성인기(성숙한 파도), 원숙기(너울), 종말기(쇄파) 등으로 분류했다.

 

에너지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파도가 자갈에 밀려와 부서질 때 에너지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소리도 파도처럼 일종의 파동이다. 다만 물이 오르내리는 파동이 아니라 기압이 변동하는 파동이다. 저자는 파도가 지구에 가하는 맥동이라는 이름의 진동을 지진으로 발생하는 충격파의 미약한 버전으로 본다.

 

보이지 않지만 파동임에 분명한 것은 소리다. 반사, 굴절, 회절은 파동이 방향을 바꾸는 세 가지 방식이다. 파동은 무엇인가에 부딪히면 튕겨 나온다. 이것을 반사라고 한다. 파동은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방향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굴절이라고 한다. 굴절은 파동이 가진 비장의 무기다. 파동이 방향을 바꾸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파동이 경계면에 직각이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도달해야 한다. 둘째 파동이 두 물질에서 자연적으로 진행하는 속도가 서로 달라야 한다.

 

빛 같은 것이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파동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과 속도 차이는 관련이 있다. 속도가 바뀌기 때문에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결합 구조가 단단할수록 소리의 속도가 빨라진다. 금을 통해서는 초속 3240m, 다이아몬드를 통해서는 무려 초속 12000m에 이른다. 저자는 파동 관찰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파도를 바라보는 것에서 충분히 낙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고의 명상법이 될 수 있지만 더 넓은 의미의 파동 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119 페이지)

 

파동은 작은 장애물을 만나면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완전히 감싸며 돌아 나간다. 좁은 틈을 통과할 때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회절은 파동의 이치 중 하나이지만 소리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회절의 효과는 온갖 종류의 파동에서 나타난다. 날카로운 낚시꾼이 눈으로 수면의 파문을 읽어 물고기의 위치를 파악하듯 우주 학자들은 마이크로파를 감지하는 우주탐사체를 이용해 과거의 중요한 우주 교란에 관한 증거를 찾는다.

 

탐지된 마이크로파 덕분에 우주의 기원과 구성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수십 년간 이어졌던 우주의 기본 성분에 대한 논쟁이 종결되기도 했다.(137 페이지) 자신이 만든 파동 탓에 존재를 들키는 것은 물고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움직이는 교란체여서 본의 아니게 늘 이런저런 형태의 파동을 발산하므로 감지할 줄 아는 상대에게 정체를 들키고 만다.(139 페이지)

 

뜻하지 않게 발생한 파동 신호 탓에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은 참 불운한 일이다. 하지만 동물이 파동을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진화의 막다른 길 끝에서 굉장히 외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번식이란 본질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일이니 모종의 소통은 모든 종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책의 원제인 [The wavewatcher's companion]에서 wavewatcher은 파도 관찰자라기보다 파동 관찰자라고 해야 더 좋을 것 같다. 파도뿐 아니라 파도의 상위 범주인 파동 일반을 다룬 책이니 [파동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라 해야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재미 이상의 의미도 느낄 수 있다.

 

파동과 진동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그 중 하나다. "파동과 진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진동이 파동을 만들지만 그 관계는 단방향이 아니다. 파동 역시 진동을 만든다. 특히 주기적인 파동은 결국 진동의 움직이는 패턴이기에 더욱 그렇다."(149 페이지)는 글이 그 중 하나다. 지진 역시 진동-파동-진동의 순서로 진행된다. 진행파를 progressive wave라 하고 정상파(定常波)standing wave라 한다.

 

정상파는 한 자리에 머무는 파다. 저자는 풍성 지형학자를 찾아 나섰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 자연 지리학과의 안드레아스 바스 교수가 주인공이다. 저자가 안드레아스 파스 교수를 찾은 이유는 물살이나 바람 속에서 나타나는 모래의 움직이는 굴곡이 비록 느리고 입자 형태이긴 해도 파동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안드레아스 바스는 "저희 지형학자들은 사구(沙丘)를 파동으로 간주하기를 항상 아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사구의 형성 메커니즘 자체가 바다의 파도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란 말을 했다. 저자는 불변하는 존재를 찾는 과정에서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에너지라고 말한다.(211 페이지)

 

충격파는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파동이든 너무 격심해져서 평소의 순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충격파라 부른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 표면은 여러 개의 거대하고 단단한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들의 상대적 위치는 계속 서서히 변한다. 지진은 판들이 맞닿은 경계에서 엄청난 마찰력이 갑자기 해소되면서 주로 발생하며 이때 판들이 격렬하게 엇갈리면서 발생하는 충격파는 지구의 겉과 속에 울려 퍼진다.

 

지진 피해의 대부분을 일으키는 것은 실체파가 아니라 표면파다. 지진이 나면 빠른 P파가 도착해 작게 위아래로 덜컹거리고, 뒤이어 S파가 도착해 좌우로 흔들린다. 그 직후 가장 느리지만 가장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표면파가 도달하면서 본격적인 지상파괴가 시작된다. 표면파의 하나인 러브파는 파동이 좌우로 흔들리고, 레일리파는 위아래로 출렁인다. 레일리파는 바다의 파도와 비슷하다.

 

표면파는 지각 내부를 통과하던 실체파가 지구 표면과 부딪혀 굴절하고 반사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상호작용하여 새롭게 합성하여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 하지만 하루에 한 차례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 멕시코만과 남중국해 등이다. 일반적인 바다는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생기지만 대륙으로 꽉 막혀 입구가 좁아진 만 형태의 바다에서는 지형과 물의 출렁임 주기가 맞물려 하루에 한 번만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 생긴다.

 

일반적인 파도는 해안에 다가오면서 심해파에서 천해파로 바뀐다. 파도 속의 물은 원래 원운동을 하지만 수심이 얕아질수록 원운동을 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찌그러져 타원이 되고 결국엔 왕복 운동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친숙한 해변에 밀려왔다가 쓸려 나가는 파도의 움직임이다. 수심이 파장의 약 20분의 1 이하로 얕아지면 심해파가 천해파로 바뀐다. 일반적인 파도는 바다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서로 겹치기 때문에 해안에 상당히 불규칙한 패턴으로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조석파는 철저하게 태양과 달의 규칙적인 운동을 따르므로 훨씬 더 규칙적이다. 조석 현상이 거의 없는 바다도 있다. 이유는 바다 자체가 크지 않아서이다. 조석이란 달과 태양의 인력과 지구의 자전 및 공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원심력이 합쳐져 일어나는 해수면의 주기적인 상승 및 하강을 의미한다.

 

조석이 지구의 생명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되던 시기에 화성 정도의 크기인 테이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날아와 충돌했다고 본다. 이른바 거대충돌 가설로 크게 퍽 후려침 정도를 뜻하는 빅 웩(big wh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닷물이 대륙을 휩쓸며 땅을 깎아내려 미네랄을 바닷가로 운반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책은 빛이 가진 파동 입자 이중성과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자연스럽게 전자현미경 이야기도 다루어진다. 전자현미경은 전적으로 전자들의 흐름이 갖는 파동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주사(走査) 전자현미경(SEM: Scaning Electron Microscope)은 가늘게 집중된 전자빔을 시료에 쏘아 시료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튀어나오는 전자들을 검출하는 방식으로 상을 얻는다.

 

투과 전자현미경(TEM: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은 비교적 굵은 전자빔을 극히 얇은 시료에 쏘아 상을 얻는다. 전자현미경이 엄청난 배율로 확대된 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입자의 흐름에 따른 파동인 물질파 덕분이다. 모든 미세한 입자는 충분히 빠르게 가속하면 파동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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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세계사 - 미래의 자연재해에 맞서기 위한 과거로부터의 교훈
루시 존스 지음, 권예리 옮김, 홍태경 감수 / 눌와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지질학 박사 루시 존스의 [재난의 세계사]는 지진, 화산분출, 홍수, 허리케인 등의 재난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지진을 말해주는 여성(Earthquake Lady)이라는 별명을 가진 지진학자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기도 한 저자는 지진학과 지질학 연구에서 얻은 방대한 수치 데이터를 음악의 음정(Pitch)과 선율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저자에게 비올라 다 감바 연주는 지구의 진동인 지진과 기후 변화를 인간의 언어와 감성으로 번역해내는 또 다른 형태의 재난 연구이자 대중 강연인 셈이다.

 

저자는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지구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이 될지 아닐지는 우리 공동체의 준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재난 관계를 말해주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대한 원뿔 모양의 산이다. 이는 용암이 침식 작용으로 깎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흘러나온다는 뜻이므로 활화산이라고 한다. 땅이 침식작용으로 깎여 없어지는 속도보다 단층이 땅을 밀어 솟아오르게 하는 속도가 더 빠를 때 생기는 것이 산이다.(100 페이지) 땅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아래에서 주기적으로 강력한 압축력이나 비트는 힘이 누적되다가 지진을 통해 방출되고 있음을 뜻한다.(화산활동을 통해서도 땅은 솟아오른다.)

 

산은 중력의 중심 방향과 반대로 높게 솟아 있는 거대한 흙과 암석의 덩어리다. 단층 운동으로 산이 가팔라질수록 중력이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에너지도 극대화된다. 지질학적 시각에서 산은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단층의 솟구치는 힘과 중력의 끌어내리는 힘이 격렬하게 싸우는 전쟁터다. 화산이 분출하면 화산재, 용암, 돌멩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때 물질들은 무한정 멀리 퍼지지 않고 중력과 돌멩이들끼리의 마찰력으로 인해 특정 경사각을 이루면 멈춰 선다.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똑같은 힘이 작용하여 물질이 쌓이므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은 원뿔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화산이 분출하는 곳에서는 원뿔 모양의 산이 만들어지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거대한 성벽이나 계단 모양의 산이 만들어진다. 화산이 만들어지는 곳은 세 가지다. 1) 중앙 해령, 2) 섭입대, 3) 열점이다. 폭발만 하지 않는다면 화산은 무척 살기 좋은 환경이다. 화산토는 투과성이 높아 물이 잘 빠지고 새로운 영양소가 많아서 작물이 잘 자라는 기름진 경작지가 된다. 화산 주변의 변형된 암석은 천연 요새가 되어 방어에 유리한 골짜기를 만들어준다. 폼페이는 활화산 베수비오에서 남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위험한 곳에 세운 도시였고 결국 멸망했다. 베수비오는 변함 없는 활화산이다.

 

지진파에는 두 가지가 있다. P파와 S파가 그것이다. P파는 지각을 압축시키고 S파는 지각을 비튼다. 지각은 비트는 힘에 더 약하다.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도 S파 때문이다. 압축할 때는 암석 내부의 미세한 틈새나 균열들이 서로 단단히 맞물려 닫힌다. 힘이 분산되어 버티는 힘이 강해진다. 비트는 힘은 암석의 내부 균열을 찢어 열어 젖히는 인장력을 발생시킨다. 균열이 쉽게 벌어지며 파괴로 이어진다.

 

비트는 힘이 발생시키는 인장력은 정단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각이 양옆으로 잡아당겨지는 인장력으로 인해 지각이 벌어지면서 쪼개지고 중력의 영향으로 한쪽 블록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정단층을 형성한다. 정단층의 정()은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기준으로 볼 때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에 정상이라는 뜻이다.

 

역단층을 발생시키는 힘은 압축력이다. 암석이 양방향에서 강한 압축을 받으면 약 30°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가진 대각선 모양의 단층면(파괴면)이 생긴다. 경사면 위에 얹혀 있는 암석 블록이 양옆에서 밀어붙이는 힘에 의해 중력을 거슬러 경사면을 타고 위로 밀려 올라간다. 이 강력한 압축력은 대륙판끼리 부딪히는 수렴형 판 경계에서 생긴다. 역단층의 역()은 중력을 거슬렀다는 뜻이다.

 

P파와 S파의 시간차는 두 지진파가 8 km를 이동할 때마다 1초씩 벌어진다. 어느 지점에 P파가 도착하는 시각과 S파가 도착하는 시각의 차이가 30초라면 지진이 시작된 곳이 240km 떨어져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대기의 수분 함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인공위성들이 쏘아 올려진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대기 중에 좁고 긴 수분 기둥(대기의 강)이 있어서 적도 근처의 열대지방에서 중위도로 수분을 운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보통 길이는 수천에서 수만 km, 폭은 수백 km에 이른다. 이런 대기의 강이 캘리포니아주 연안으로 넘어오면 폭우가 내린다. 폭우는 대개 하루나 이틀이면 지나간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대기 조건 때문에 폭우가 더 오래 머물고 홍수가 난다.

 

저자는 인간은 포식자와 기근의 위협과 같은 단기적 위기에 대한 신속한 반응이 생존의 필수적인 세계에서 진화했다고 말한다. 위험은 도처에 만연해 있었고 임박한 위험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후손을 남겼다. 우리 대다수는 홍수를 급박한 위험으로 여기지 않는다. 직접 경험한 적이 있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기억하고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개인적인 의미가 없다면 자연재해가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그리고 위험을 가늠할 때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좌우된다.

 

홍수는 큰 인명 피해와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홍수의 근원인 비를 친숙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를 다른 자연재해보다 온건하다고 여긴다.(117 페이지) 우리는 땅 위에서 살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과 강, 호수, 바다 밑에 잠겨 있는 것이 애초부터 다르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강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땅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강 기슭을 이루는 흙을 땅의 흙과 특별히 구별할 수 없고 강바닥의 지각에도 독특한 점이 전혀 없다. 다만 주변의 땅보다 고도가 낮을 뿐이다. 물은 중력이 잡아끄는 곳으로 흘러내리므로 고도가 낮은 곳에 고인다.(154 페이지)

 

저자는 물과 땅 사이, 강물이 흐르는 곳과 흐르지 않는 곳, 강의 액체 상태와 땅의 고체 상태 사이에 절대적인 경계선을 그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강에 물만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흐르는 물에는 많은 것을 품고 운반할 수 있는 힘이 있다.자연이 작고 가벼운 물질일수록 운반하기 쉽고 물의 흐름이 빠를수록 더 많은 물질을 운반할 수 있다. 미시시피 강의 별명이 빅 머디(Big Muddy; 거대한 흙탕물)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모든 강이 그렇듯 미시시피 강의 강물은 이동하면서 모래알과 흙을 침식해 바다로 가져간다.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품고 있던 퇴적물의 일부를 바닥에 떨어뜨리는데 크고 무거운 모래알이 먼저 떨어진다. 이 두 원리를 종합하면 자연 제방이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이 중력에 의해 강으로 흘러갈 때 종종 다량의 진흙과 실트를 운반해 간다. 눈 녹은 물과 비는 강의 특정 구간의 수위를 높인다. 그곳의 고도가 하류보다 높아졌으니 낙차가 심해진다. 그러면 수량이 증가해서 더 많은 실트를 운반할 수 있게 된다. 강 기슭을 넘어설 정도로 수위가 높게 올라가면 물은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이제는 바다를 향해서 뿐만 아니라 강 바깥으로, 강을 둘러싼 땅으로도 흘러내린다.

 

어느 정도 흘러내리면 경사가 원만해져서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물에 떠 있던 실트 알맹이가 바닥에 퇴적된다. 큰 알갱이일수록 강에서 가까운 쪽에 먼저 쌓이고 대부분 알갱이는 원래 강바닥에서 더 먼 곳에 쌓인다. 그 결과 큰 모래알로 이루어진 자연 제방이 형성된다. 이 자연 제방은 강기슭을 높여 미래의 홍수 가능성을 낮춘다. 하지만 수백년의 미시시피강 홍수 내륙이 보여주듯 자연 제방 또는 인공 제방 위로 넘치는 홍수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155, 156 페이지)

 

일본 열도는 네 개의 판 사이의 계속되는 충돌로 형성되었다. 서쪽의 유라시아 판은 북동쪽으로 태평양판, 남동쪽으로 필리핀 해판과 충돌하고 있고 그 사이에 북아메리카 판의 작은 부분이 끼어 있다. 네 개의 판이 서로 충돌해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을 서쪽 위로 밀어 올렸다. 물론 마그마도 솟아올라서 후지산과 같은 화산이 만들어졌다.

 

여러 종류의 판 경계 중에서도 이런 섭입대에서 지진이 가장 자주 일어난다. 판끼리 멀어지거나 옆으로 스치는 대신에 서로 밀면서 생기는 강한 변형력 때문에 마찰력도 더 크고 쌓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지진을 통해 발산된다. 네 개의 판이 충돌하는 복잡한 구조 때문에 일본의 지진은 판 경계에 국한되지 않고 열도 전역에서 일어난다.(132 페이지)

 

하나의 지진이 일어나면 추가로 지진들이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층의 움직임은 주변의 모든 곳에 힘을 가하고 변형력을 집중시켜 지각의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새로 만든다. 이 새로운 변형력을 해소하기 위해 잇따라 지진이 일어난다. 이런 지진들은 바로 전에 일어난 본진의 직접적인 결과이므로 그 지진의 여진으로 분류한다.

 

단층의 움직임은 에너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각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기에 새로운 불균형이 생기고 바로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지진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거대한 본진 이후 몇 차례 여진이 발생하지만 결국 그치는 것은 지각이 새로운 역학적 균형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200412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해안에서 일어난 규모 9.1의 남아시아 지진은 움직인 단층의 길이가 1,500km가 넘었다. 파열면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9분이나 되었다. 지질학 박사 케리 시(Kerry Sieh)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을 예측한 사람이다. 저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야기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은 자연재해 앞에서 너무나 흔한 반응이어서 거의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고통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의해 유발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안심하기 위해 피해자를 책망한다. 이 본성은 자선을 베풀려는 충동 만큼이나 인간답고 따라서 없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를 인식함으로써 우리도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고 적어도 다음 재난이 닥쳤을 때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256, 257 페이지)

 

인간은 무작위성을 무척 싫어하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만들기 위해 종종 극단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인간은 패턴을 찾기 원하는 강한 욕구와 확증 편향 때문에 패턴에 부합하는 사례를 강렬하게 기억하고 부합하지 않는 사례를 무시하기 쉽다.(261, 262 페이지) 1920~1930년대에 지진 데이터를 처음 수집하고 패턴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대다수 과학자는 지진을 예측하는 대신 지진이 왜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적어도 1975년 중국 랴오닝성 하이청 지진에서 뭔가가 맞아떨어져 예측에 성공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전까진 말이다.

 

그때 미국, 일본, 소련 정부는 마침내 이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희망을 품고 공식적으로 지진 예측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본진이 있기 전 규모 5.0 안팎의 미소(微小) 지진들이 수일 동안 연속적으로 발생했고, 한겨울임에도 뱀과 나비 등이 땅으로 나와 얼어 죽었고, 거위들이 날아다니고, 우물 및 지하수의 수위가 급변하거나 흙탕물이 되는 등의 이상 현상이 있었다. 행정력의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져 안전지대로 대피한 주민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다음 해인 19767월 가까운 탕산 지역에서 아무 전조 현상도 없이 규모 7.5의 강진이 일어나 25만 명이 사망했다.

 

지진 예측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진의 절대적 강도를 나타내는 릭터 규모(리히터 규모)를 고안한 미국의 지진학자 찰스 릭터는 오직 바보, 거짓말쟁이, 그리고 사기꾼들만이 지진을 예측한다(Only fools, liars, and charlatans predict earthquakes.)란 말을 했다.

 

지진에는 한참 동안 꽤 규칙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예측할 수 없다는 본성이 있다.(268 페이지) 저자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지금도 지진의 작동 메커니즘을 연구할 지진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왜 어떤 지진의 단층은 수m를 미끄러지다가 멈춰서 규모 1에 그치고 어떤 지진의 단층은 수백 km를 미끄러져 규모 7의 지진이 되는지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지구 내부에서 일어난 일의 결과인지 아니면 지진이 일어난 중에 무언가에 부딪히거나 부딪히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후자라면 지진학자는 사람들이 원하는 종류의 예측을 영원히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과학자가 지진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지식은 전진, 여진, 그리고 지진이 다른 지진을 유발하는 현상뿐이다.(283 페이지)

 

남아시아 지진은 도호쿠 지진보다 7년 앞서 일어났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가장 큰 피해는 육지의 흔들림이 아니라 해저면의 이동에 의해 일어난다. 도호쿠 지진에서는 400km 길이의 암석 덩어리가 최대 80m 미끄러졌으므로 막대한 양의 물을 이동시켜 필연적으로 쓰나미를 초래했다. 일본에서 쓰나미는 지진처럼 삶의 일부이고 대부분의 마을에 대비 시설이 세워져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처럼 질량 수가 큰 원자의 핵을 붕괴시킬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이용해서 증기를 만든다.

 

이 증기로 전기 터빈을 돌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런데 이런 핵 반응에서 생성된 열은 핵연료에서 재빨리 분리시키고 주의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핵연료가 녹고 핵연료가 담긴 원자로가 폭발한다. 따라서 핵연료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그 둘레에 냉각수를 순환시킨다. 냉각을 쉽게 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는 항상 물이 많은 곳 종종 바다 가까이에 짓는다. 그리고 냉각 체계가 중단되지 않도록 여분의 예비전력을 갖춘다.

 

지진과 쓰나미가 항상 일어나는 일본에서 바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때에는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쓰나미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로스엔젤레스는 지진 덕분에 존재하는 도시이다. 무척 건조한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로스엔젤레스는 도시를 둘러싼 산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활성 단층들이 밀어 올려 생긴 산들은 바다에서 온 구름에서 비가 내리게 한다. 이 단층들은 또한 지하수를 가둔다. 초기 정착민들은 그 덕분에 생긴 샘에서 물을 내서 농사를 지었다. 20세기 초 석유가 발견되면서 로스엔젤레스는 현대적인 도시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석유 역시 단층 때문에 고인 것이었다. 단층은 로스엔젤레스를 존재할 수 있게 하지만 언제라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자산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1) 더 많이 배운다, 2) 정부가 알아서 보호해줄 것이라고 안심하지 않는다, 3) 지역 지도층과 교류한다, 4) 공동체와 함께 일한다, 5) 자연재해는 일어난 순간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6) 스스로 생각하라 등이다. 인상적인 말은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주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 정보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연재해 발생 시점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33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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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태완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도킨스는 케냐에서 태어난 영국 혈통의 진화생물학자다. 도킨스는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상상력 넘치는 방법, 그리고 진화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방법은 진화의 전 과정을 유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소유하고 실어 나르는 신체를 교묘하게 조작하며 감독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화법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단순히 개체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생물체들은 모두 유전자로 환원되고 유전자들은 다시 디지털 정보들로 환원된다. 도킨스는 동물을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시키기 위해 모든 동력을 사용해 자신에게 부여된 지시 사항을 실행해 나가는 기계로 보았다. 도킨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상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본문에 찰스 다윈과 윌리엄 페일리 이야기가 나온다. 1743년에 태어나 1805년에 사망한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였다. 페일리는 저서 [자연신학](1802)에서 시계공 비유(Watchmaker Analogy)를 주장했다.

 

길을 가다 정교한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만든 시계공이 있음을 당연히 알 수 있듯 눈(Eye)이나 심장처럼 정교한 생명체를 보면 이를 설계한 위대한 설계자(하나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캠브리지 대학교 시절 신학을 공부했던 젊은 다윈은 페일리의 이 정교하고 합리적인 복음주의 논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페일리의 책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으며, 그의 서술 방식은 나에게 유일하게 유익했던 학문적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다윈은 그러나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탐험하며 자연을 관찰한 끝에 생명체가 정교한 디자인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신의 일시적인 창조가 아니라 수억 년 동안 일어난 변이와 자연선택의 결과라 주장했다.

 

저자 맥그래스는 서문에서 자신은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으로부터 도출시키는 종교와 지성의 확장된 결론들을 다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진화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심적인 단위가 유전자다. 멘델로부터 유전자의 현대적 개념과 유전 법칙의 토대가 도출되었으나 멘델 자신은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멘델은 유전이 특정한 단위 또는 인자(因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 단위 또는 인자는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유전자의 발견을 가져다 주었으며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발견은 다윈주의 세계관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에 있어서도 근간(根幹)이 될 만큼 중요하다. 유전자라는 용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덴마크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빌헬름 요한센(Wilhelm Johannsen; 1857~1927)이다.

 

유전자와 DNA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DNA가 책의 종이와 글자라면 유전자는 책 속에 적힌 하나의 이야기(챕터)에 해당한다. DNA는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길고 긴 화학 물질의 사슬 그 자체다. 하나의 DNA 분자가 수개월 이상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D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통해 이론상으로 사본의 형태로 1억 년 이상 살 수 있다. 이에 반해 생물 개체 또는 집단은 짧은 시간을 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천천히 축적되는 변화를 영속시킬 수 없다.

 

맥그래스는 "유전적 변화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 우선 보자면 도킨스가 강조하는 복제자의 충실한 복제와 변화의 발생 사이에는 명백하고도 치명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복제자가 그렇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어떻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충실한 전달은 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정적인 상황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성공적인 복제자(Replicator)로 정의하며, 세대를 거쳐도 정보가 깨지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되는 높은 복제 충실도(Fidelity)를 생명의 핵심 속성으로 간주했다.

 

이에 맥그래스가 만약 유전자가 100% 완벽하게 정보를 복제하고 전달한다면 세상은 처음 태어난 생명체의 상태 그대로 멈춰 있어야 한다고 반론을 편 것이다. 정보의 변동이 없으므로 새로운 형질이나 종이 탄생하는 진화(동적 상황)는 불가능해진다. '완벽한 복제자''진화의 발생'은 논리적으로 정면충돌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를 비롯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모순을 완벽을 지향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류로 해명한다. 유전자는 우수한 복제 메커니즘과 오류 수정 기능을 가지고 있어 복제 충실도가 극도로 높으나 100% 완벽한 복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유전자를 마치 스스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능동적인 주체처럼 묘사한다고 비판하며 이는 도킨스가 물리적 화학 물질에 불과한 유전자를 신격화(의인화)하는 것이라 결론 짓는다. 맥그래스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우연히 발생한 타이핑 실수의 반복이 단백질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인간의 의식 같은 '고차원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본다. 맥그래스는 페일리의 기계적 지적설계론(시계공 유추)을 그대로 옹호하지 않고 '유신진화론(창조적 진화론)'을 지지한다.

 

맥그래스에게 신은 완벽한 시계를 만들어 세상에 던져둔 시계공이 아니라 진화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 법칙과 환경을 창조한 존재다. 도킨스로부터 확장된 표현형이 도출되었다. 빌헬름 요한센이 생물체가 가진 유전 정보가 겉으로 드러나 실제 관찰 가능한 모든 물리적, 생리적, 행동적 특성을 뜻하는 표현형을 제안했고,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을 제시했다. 논점은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다.

 

도킨스는 요한센이 만든 전통적인 표현형 개념을 생물 개체의 몸 바깥 영역으로 확장시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자신만의 혁신적인 이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출판 6년 만인 1982년 확장된 표현형이란 개념을 제시한 이유는 진화의 진짜 주인공은 개체(생물 몸)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의식적으로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다양한 모습은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자를 닮았다고 말했다.(88 페이지)

 

유전자는 뇌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인 목표나 의도를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진화와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유전자의 작동 방식은 마치 치밀하고 영리한 독재자가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도킨스가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부른 것은 유전자의 마음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복제본만을 세상에 남기려 드는 유전자의 기능적 결과를 문학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유전자는 아무 생각이 없지만 진화의 냉혹한 법칙은 유전자를 가장 완벽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으로 빚어냈다.

 

맥그래스는 도대체 우리가 왜 태어나는가? 다윈주의의 대답은 자연선택이다. 사실 이것이 모든 것에 대한 다윈주의의 유일한 대답이다.“라고 말한다.(92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 같은 강경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재, 도덕, 예술, 종교까지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설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다윈은 갈림길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사유 방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다윈 이전에는 세계는 신이 설계한 어떤 곳으로 볼 수 있었지만 다윈 이후에 설계를 내세우는 것은 모두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세계에서 진화의 과정은 신을 위한 개념적 공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신적인 창조자에게 호소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다윈주의의 틀 속에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윈 이후에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104 페이지) 맥그래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이후 저작들은 18세기의 생각(당시의 지도적인 기독교 저자들이 이미 거부했던)에 대한 19세기의 논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논박일 수는 없고 단지 영국 국교회가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논박일 뿐이라고 말한다.(137 페이지)

 

맥그래스는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도킨스식의 프레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다윈은 단지 당대에 유행했던 생명이 다한 18세기 영국식 신학을 논박했을 뿐으로 기독교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진화론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다윈이 1840년대의 어느 시점에서(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른바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다는 것은 여지가 없지만 정통 기독교 신앙의 거부와 무신론의 수용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이론적인 틈이 있다고 말한다.(143 페이지)

 

다윈이 정통 기독교 신앙을 떠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를 떠난 다윈의 종착지는 신은 절대 없다고 확신하는 적극적 무신론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겸손한 불가지론이었다. 맥그래스는 이 지점에 착안해 현대 무신론자들이 다윈을 무신론의 교조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다윈주의를 무신론으로 가는 지적 고속도로라고 본다고 말한다.

 

도킨스가 세밀하게 계획을 잡은 궤도는 불가지론에서 그 바퀴 작업을 멈추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자리를 잡고 계속 머물고 있다. 다윈주의와 무신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논리적 틈이 있다. 도킨스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증거가 아닌 레토릭으로 다리를 놓으려 하고 있다.(156 페이지) 도킨스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신빙성 있는 지식은 과학적 지식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입장을 확장시켰을 때 철학자, 변호사, 신학자 등은 과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된다.

 

맥그래스는 공격적 무신론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으나 종교적 회심을 거쳐 신학박사가 된 분자생물학 연구자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도킨스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을 거짓으로 간주한다. 도킨스는 불가지론이 지적으로 나약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생물학적 논증이 논리적으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이 결국 불가지론 뿐이라고 말한다.(180 페이지) 맥그래스는 누구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누구도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그 어느 누구도 확실성을 가지고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불가지론에서 무신론으로 비약을 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구가 평평한지 또는 DNA가 이중나선의 형태를 취하는지 등의 질문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나은지와 같은 문제에 더 가깝다. 이런 문제는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하지만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결론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맥그래스는 "아마도 도킨스는 요즘 종교에 반대하는 책을 쓰기에 바빠서 종교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가끔 고전 신학자들을 인용할 때 보면 2차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같고 그래서 위험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화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가 자연과학자는 후에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현재의 믿음들 가운데 어떤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채)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도킨스는 무슨 자신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204 페이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과학적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한 도킨스에게 불가지론은 무신론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주장인가, 과학 외적 주장인가? 전자라면 과학은 잠정적이라는 전제를 무시하는 것이고 후자라면 진정한 지식이 아닌 것이 된다. 맥그래스는 자신은 과학에 완전히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은 오직 증거로만 말한다고 생각했던 맥그래스는 자신은 여전히 과학을 사랑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떤 자연과학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용 가능한 한계를 넘는 수준까지 레토릭을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넘어설 때 또는 실험 증거가 부족해서 그 부분을 가리고자 할 때 더욱 그러하며 문화 비평이 텍스트에 숨어 있는 교묘한 술책을 보여주기 위해 문학과 함께 자연과학 논문부터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무신론은 진화론을 포함하는 어떠한 과학에 의해서도 결코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다른 모든 인간의 활동과 생각처럼 종교도 개혁 되어야 하고 재평가받아야 하고 수정되어야 하지만 제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26 페이지) 도킨스는 문화 복제자란 의미의 밈(mem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과학자다. 도킨스는 종교를 가장 중요한 밈의 사례나 간주한다.

 

도킨스는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밈의 사례들로서 음악의 선율, 생각, 유행어, 패션, 건축 양식, 노래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신 역시 여기에 포함시켰다. 도킨스는 사람들이 신이 없는데도 신을 믿는 이유를 신이라는 밈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e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37 페이지) 맥그래스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작동 메커니즘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245 페이지)

 

맥그래스는 유전자는 처음에 이론적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후에 완전한 증거에 의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받았으나 밈은 어떤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유전자는 생물학적 수준, 화학적 수준, 그리고 물리학적 수준에서 잘 정의되어 있는 관찰 가능한 실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 부분이며, 화학적으로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리학적으로는 읽을 수 있거나 번역될 수 있는 유전자 코드를 표현하는 뉴클레오티드 서열로 구성되어 있는 이중나선 구조다.(247, 248 페이지)

 

맥그래스는 유비 논증은 심각한 오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양자 이론이 아무데나 적용되는 식의 잘못된 유비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때문에 낭패를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맥그래스는 모든 인간문화는 이미 동시대인과 후속 세대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명확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책, 의식, 제도, 구전 등이 그것으로 이렇게 유전자와의 유비를 통해 방어되고 있는 밈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필요 없는 잉여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254 페이지)

 

맥그래스는 밈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모델을 통해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며 밈만이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복잡한 현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제기하는 신이라는 바이러스를 문제 삼기 위해 바이러스는 탐색될 수 있고 그래서 엄격한 경험적 조사의 대상이며 유전자 구조 역시 정밀하게 분석 가능한데 마음의 바이러스는 가설적이라고 비판한다.(260 페이지) 맥그래스는 매우 용감하게도 도킨스가 지지하고 있는 과학과 종교의 전투라는 대중적 신화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의 대중과학 저서는 현재 학문의 동향을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267 페이지)

 

18세기 영국에서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눈부신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뉴턴의 천체역학은 조화로운 우주의 창조자인 신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와 최소한 양립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최대한은 그 견해에 대한 영광스러운 확장으로 이해되었다.(269 페이지) 맥그래스는 기독교 신학은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인식을 결코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학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면 신적 의미가 제거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맥그래스는 신비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하려는 인간 이성의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비가 이성과 서로 반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91 페이지) 신비를 다루는 영역은 신학만이 아니다. 자연과학도 신비를 다루기에 적절하다. 양자역학이 신비의 범주에 딱 들어맞는 탁월한 과학 영역의 사례라고 말하는 맥그래스는 과학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 모두 우리의 사유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증거의 역할 때문에 생기는 지적 난제를 인정하면서 관찰된 것에 대한 최선의 가능한 설명으로 수용된 것을 제시하며 경험의 모호함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을 한다.(292, 293 페이지)

 

프린스턴 대학의 과학 철학자인 반 프라센은 "삼위일체, 영혼, 개별성, 보편성, 1 질료, 잠재성의 개념들 때문에 당혹스러운가. 닫힌 시공간, 사건 지평, EPR 역설, 붓스트랩 모형이 보여주는 기상천외의 낯설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프라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험 세계와 현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참여는 간단하지 않은 이론적 개념들을 만들어내며 그 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신]은 도킨스가 26살 때이던 1979년 처음 제안받고 25년이 지난 2004년 완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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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가뭄 때문에 경북 포항 형산강에 바닷물이 역류해 와 수돗물에서 짠맛이 난다고 한다. 형산강의 감조(感潮) 구간은 포항 송도동 하구(영일만 유입부)로부터 상류로 약 10~12km 내외 구역이다. 독일의 세계적 지리학자 헤르만 라흐텐자흐(1886-1971)[코레아](1945년 출간)에서 형산강을 남한의 동해안 유일의 가항하천(可港河川)으로 보았다.([코레아]는 라흐텐자흐가 한반도 전역을 직접 답사하고 남긴 방대한 지리서다.)


가항하천은 수심이 충분히 깊고 폭이 넓어 배가 안전하게 통항하며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하천을 말한다. 서두에서 말한 바닷물 역류는 내가 사는 연천의 주요 두 강 중 하나인 임진강과도 관련이 있는 현상이다. 임진강의 실질적 감조구간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 하구(교하)로부터 상류로 약 40km 구역까지다그곳보다 더 상류쪽인 연천 호로고루 아래의 고랑포는 수위만 상승, 하강하고 염도(鹽度)는 변함없는(바닷물이 직접 유입되지 않는) 감조 담수(淡水) 구간이다


폭염과 가뭄으로 강의 수량이 줄어 바닷물이 역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은 모든 물질이 맞물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공백(진공) 없는 세계라는 데카르트의 와동(渦動; 볼텍스; vortex) 이론이 떠오른다. 25년전 수련 당시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아리조나주 세도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가 강한 곳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내 기 수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지질 해설을 한 지 6년이 넘은 지금은 세도나의 사암(砂巖) 지대는 약 27천만 년 전 페름기 지구의 역동적 환경 변화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자연의 걸작이자 기() 학문과 지질학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뿐이다. 세도나의 거대한 바위산과 절벽들은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빛을 띤다. 사암 속에 포함된 적철석(Iron Oxide; 산화철) 성분 때문이다


당시 읽던 책이 곽내혁 저자의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이고 수련 종료 후 같은 저자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었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곽내혁 저자가 올해 초 [기론 입자에서 으로]이란 책을 낸 것을 확인했다. 정독해야 알겠지만 이번에 나온 [기론- 입자에서 으로]는 내가 읽기에 버거울 것 같다. 앞의 두 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침에 AI와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대립에 대해 대화를 했었다. 그것은 세상을 지속(持續)으로 본 베르그송과 불연속으로 본 바슐라르의 대립이다. 베르그송의 지속은 시간을 시계 바늘처럼 쪼갤 수 있는 공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질적인 흐름이자 변화 그 자체로 보는 사유 방식이다. 바슐라르의 불연속은 베르그송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적 지속에 정면으로 맞서는 개념이다


과학은 과거의 상식, 일상적 경험, 잘못된 전통을 과감하게 부수고 단절(Rupture)할 때만 진보하다는 바슐라르의 과학사 및 인식론의 불연속인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때도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일상적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슐라르는 우리가 과학 개념을 마주할 때 친숙한 이미지나 비유에 의존하려는 무의식적 습관을 경계했다. 가령 우리는 원자를 이해할 때 흔히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모습(보어의 원자 모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 양자역학에서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도는 알갱이가 아니라 확률적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 뉴턴 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서 저절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책을 읽듯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나는 베르그송의 지속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바슐라르의 불연속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얽히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한 행위의 시작, 진정한 의미의 시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베르그송에게 어떤 근원적인 창조의 순간들 - 예컨대 베르그송이 회상한 바 있듯이 어느 화창한 봄날 그의 뇌리 속에서 지속의 개념이 홀연히 떠올랐던 그 창조의 순간은 그의 지속 이론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1999년 출간 [담론의 공간])


1999[담론의 공간]을 읽고, 2001[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을 읽고, 2006[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던 때가 내가 인식적으로 가장 활발하던 때다. 흥미롭게도 곽내혁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에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이라는 시적인 에세이집이 소개되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바슐라르는 물리학자, 시인, 철학자다


바슐라르는 [초의 불꽃]에서 나는 촛불을 통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일체감을 노래합니다. 나를 가두던 현실의 불연속적인 벽들이 허물어지는 치유의 순간입니다.“란 말을 했다. 곽내혁은 기의 감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우주를 상식과 다른 내용으로 만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에게 상식이 된 우주가 좌뇌로 인식된 것일 뿐 우주의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우주를 우뇌로 떠올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란 말을 했다.([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 159 페이지)


바슐라르의 불연속적인 벽들의 허물어짐과 곽내혁의 좌뇌와 우뇌의 통합은 같은 맥락이다. 최근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규정하는 지질학이야말로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한 학문이다. 지질학은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바위, 대륙)의 이미지와 단절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간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재구성해 낸 학문이다. 가장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지구)을 마주하고서 가장 유연하고 역동적인 불연속적 도약(시간과 판의 이동)을 사유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기론]을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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