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디스 위더는 심해 생물 발광을 본 짜릿한 첫 경험을 잊지 못하고 힘들고 위험한 해양생물학자의 길을 계속 가는 사람이다. 저자는 심해 생물 발광을 불꽃 놀이 같다고 표현한다. 저자는 "불꽃은 여러 형체를 띤다. 그중 이전 것과 동일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똑같은 형상을 볼 수 없다. 반복은 시각적 메아리를 만든다. 그것은 음악적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구현되는 주제의 변주다." 라고 말한다. 차가운 빛이라는 심해의 생물 발광은 지질학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심해의 생물 발광이란 유황, 메탄 등의 화학적 연료를 기반으로 형성된 열수구라는 지질학적 환경에 생물체가 적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화석연료를 태워 방출하는 막대한 이산화탄소의 상당량을 바다가 흡수해 탄소순환의 균형을 유지하지만 그로 인해 바다가 산성화되고 있음을 우려 한다. 저자는 이 행성은 살아 숨 쉬는 물의 세계이지만 그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히 생경한 생물들이어서 그들을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깊은 바닷속까지 이어진 반짝이는 생명의 그물을 알지 못한 채 수면 위만 바라보는 것은 바다의 경이로움과 우리 존재를 가능케 하는 바다의 역할에 눈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동물을 수면 가까이로 데려오면 급격한 수압 변화로 죽는다고 오해하지만 정작 더 치명적인 요인은 수압이 아니라 수온 변화라고 말한다. 부레처럼 공기로 채워진 공간이 있어서 부피가 폭발적으로 변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기관을 갖고 있지 않는 많은 동물들에게는 압력의 변화는 그렇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반면 바다 부피의 약 90%를 차지하는 심해수는 매우 차가워서 평균 수온이 0 - 3°C밖에 안 된다. 그물로 심해 동물을 포획하여 따뜻한 표층수로 끌어올리면 그 동물들은 더운 수온에 익어버리고 만다.(83, 84 페이지)

 

생물 발광은 빨강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등 온갖 색을 띠지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해(open sea)에서는 파란색 빛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속에서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파란색의 물속에서 가장 멀리까지 전달되는 색이기 때문이다. 다른 색들은 파란색보다 먼저 분산되거나 흡수되어 점차 사라진다.(87 페이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물의 색은 어떤 빛을 흡수하지 않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예를 들어 엽록소가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적색광과 청색광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녹색 광자가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쓸모가 없어져 내버린 광자라는 뜻이다.

 

우리가 취하는 시각 정보 대부분은 거부된 광자 즉 반사된 빛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스스로 광자를 방출하는 생물 발광에는 이 일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생물 발광의 절대 다수가 푸른색이라는 사실은 왜 그렇게 많은 심해 동물이 붉은색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해수를 뚫고 내려온 햇빛도 청색광이고 생물 발광도 대개 푸른색이므로 심해 동물 대부분의 눈은 청색광만 볼 수 있게 진화했다.

 

인간이 잠수정을 타고 심해에 내려간 것은 뉴욕 동물 학회의 윌리엄 비브와 엔지니어 오티스 바턴이 최초였다. 그들은 1930년대 초 버뮤다 해역에서 바턴이 설계한 구() 모양의 철제 잠수정을 타고 35차례 심해를 탐험했다. 저자는 생물 발광이라는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빛을 만들어내려면 에너지가, 그것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는 생명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결코 실없이 소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어마어마한 지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장소는 왜 여기였을까?"(105 페이지)

 

표층수와 해저 사이의 허허벌판 같은 중층수에서는 포식자로부터 숨을 방도가 없다. 발각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재빨리 어둠을 은신처로 삼았다가 해가 진 후에 다시 해수면 근처로 올라와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바다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이 이 전략을 쓴다. 그들은 일몰 후에 해수면으로 수직 이동했다가 해가 뜨기 전에 다시 내려간다. 이러한 동물 층이 너무 조밀하여 선박의 음파탐지기를 확인하면 수심이 얕아졌다가 다시 깊어지는 것처럼 나타날 정도다.(109 페이지)

 

처음으로 고감도 광 탐지장치를 해저로 내려 보낸 1950년대에 과학자들은 광 검출기에 기록된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중에 투과된 햇빛만 측정할 줄 알았던 조도계가 수심 300m 밑으로 내려가자 다른 빛을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지만 결국 그것이 생물 발광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밝혀진 것은 잔잔한 바다보다 거친 바다에서 더 많은 섬광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발광은 하나의 유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식자를 일시적으로 실명하게 하기, 먹이 유인, 짝짓기 등에서 서로 다른 밝기와 지속 시간, 패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잠수정에 앉아 칠흑 같은 어둠을 보는 것)이 정말 심해 생물체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행동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심해에 관한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잠깐 화젯 거리가 될 뿐 장기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물론 소련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라는 점에서 생물 발광 연구 분야에 투자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는 우주 사업과 비슷하다. 우주 사업을 일으킨 시발점은 대중의 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였다. 1960년대에 NASA가 백지 수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이겨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고 NASA는 대중을 겨냥한 최고의 광고와 마케팅에 그 자금 일부를 할애했다.

 

생물 발광은 잠수함의 존재를 노출시킬 수 있다. 따라서 소련과 미 해군은 언제 어디서나 아군 또는 적군의 잠수함이 탐지에 가장 취약해지는지 알기 위해 생물 발광 현상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눈에 띄는 장벽이 전혀 없는 외해(外海; open sea)에서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짝짓기다. 유성 생식의 성공 열쇠는 더 좋은 짝을 더 많이 유인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짝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위장 수단으로 등장한 생물 발광이지만 짝을 유인하는 추가적인 용도가 개발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유전적 격리의 경로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대중에게 과학을 효과적으로 알리려면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200 페이지) 그런데 과학자들도 연구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알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텔레비전이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해줄 강력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러나 텔레비전을 신뢰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과장이 흔하고 그러한 과장은 대개 과학적 사실과 반대되기 때문이다.(196 페이지)

 

육지에서는 적외선 조명과 적외선 카메라의 조합으로 유용한 결과를 내지만 적외선이 물에 완전히 흡수되어 무용지물이 되는 심해는 사정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겁이 많은 동물을 먼 거리에서 촬영하기 위해 망원렌즈를 사용할 수 있지만 물에서는 불가능하다. 빛을 산란시키는 물의 특성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얻으려면 피사체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해야 한다.

 

저자는 귀 기울일 말을 많이 한다. 자연사 다큐멘터리의 명목상 목표는 시청자에게 자연세계에 관해 알려주는 것이지만 제작을 가능케 하는 상업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시청자의 이목을 끌고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자연사적 사실의 열거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206 페이지) 자연사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잃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는 지루함과 부정직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통계적으로 편성에 더 치명적인 것은 전자다. 즉 제작자는 가능한 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

 

그들은 왜 얼지 않나요?” 이것은 햇빛도 없고 수온이 0°C 가까이 내려가는데 왜 물고기들이 얼어 죽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이에 답하려면 지구의 뜨거운 핵과 얇은 해양 지각, 해류의 순환 패턴, 염분에 의한 어는점 내림 현상 등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즉 예리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말할 수 있는 점은 해양지각이 대륙지각보다 얇은 지질학적 이유다. 해양지각은 섭입 작용을 통해 두께가 무한정 커지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지각에 비해 얇다. 얇은 지각은 지구 내부의 열이 해수로 훨씬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요인이다.

 

1998년 미국과 쿠바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해양 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제한적인 협력이 이루어졌다. 카리브해 해양연구소(CMRC)1998년부터 미국에 기반을 둔 다른 NGO보다 앞장서서 쿠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쿠바 해안 지역에서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책에는 저자가 흡반이 발광포로 진화한 문어를 목격한 기록이 나온다. 이를 계기로 카리브해 심해 탐사를 하게 된 저자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왜 얼지 않나요?“는 바로 카스트로가 한 질문이다.

 

저자 일행이 쿠바 해역 수중 탐사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촬영감독 엘 기딩스와 피델 카스트로의 개인적 친분 덕분이었다. 그 친분은 스쿠버 다이빙과 해양 탐사에 대한 공통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216 페이지) 저자는 카스트로가 지식을 과시할 때도 많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219 페이지)

 

생물 발광으로 짝을 유인하는 방법은 그 빛이 포식자에게도 쉽게 눈에 띈 단점이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 빛 구름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여 빛과 자신의 몸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게 할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저자는 수백 개의 생물 발광에 둘러싸이면 빛의 교향곡에 푹 빠져 있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성 플랑크톤 형태의 식물은 표층수에서 생장하다가 죽으면 깊은 곳으로 가라앉거나 해파리, 갑각류, 오징어, 어류 같은 포식자에 의해 심해로 운반되어 사체나 배설물의 형태로 다른 생명체들에게 귀중한 식량이 된다.

 

심해 서식자들에게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만나와도 같다. 그러나 해저까지 내려오는 도중에 많은 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에 처음에는 폭우처럼 쏟아지지만 바닥에 도착할 때는 이슬비처럼 되고 만다. 따라서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동물의 수와 크기가 줄어든다. 바다 눈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윌리엄 비브다. 저자는 바다 눈 역시 발광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 원인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세균에 의한 것이다.

 

심해 해저에는 바다눈 외에 또 다른 식량 공급원이 있다. 죽은 생물의 유해다. 이 먹이 선물 세트는 데드폴(deadfall)이라고 불리며 그 중 가장 큰 선물인 웨일 폴(whale fall)은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노다지다. 한 조각의 바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지구라는 우주선(宇宙船)이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발명가, 건축가, 시스템 이론가, 미래학자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진 벅민스터 풀러의 이 표현은 한정된 자원을 가진 하나의 생물계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유지장치를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렸다면 아슬아슬한 순간에 보급선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 줄 가능성은 없다. 그렇게 우리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역사를 이미 숱하게 경험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는 실로 불행한 경험을 반복해 봤다. 전 세계적인 어업 붕괴는 그 수많은 예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관점을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우리는 세포의 내부작용이나 원자보다 작은 입자의 역학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시야를 확장하여 무한한 우주를 상상할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초점을 조정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의 초능력이다. 바로 지금 지구에 사는 우리가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무엇이 생명을 가능케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생명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해전쟁
사라 치룰 지음, 박미화 옮김 / 엘도라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심해의 천연자원은 지구의 마지막 천연자원으로 여겨진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메탄 하이드레이트와 망간 단괴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미생물의 분해로 생긴 메탄의 가스 분자가 기온이 낮은 심해에서 강한 압력을 받아 얼음과 같은 고체 상태로 변한 것을 의미한다. 로스트 시티와 같은 열수구 주변의 심해저 퇴적층에는 메탄을 포함한 가스가 풍부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열수구는 지구 내부의 메탄을 심해로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로스트 시티는 일반적인 화산 열수구와 달리 탄산염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타는 얼음으로 알려져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섭씨 4°C까지만 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4°C가 넘으면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녹는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분출되어 바닷물의 화학적 균형이 파괴될 것이고 대기 중으로 대량의 메탄가스가 방출될 것이다. 그러면 지구온난화가 몇 배로 가속화될 것이다. 물이 4°C에서 가장 무거운 것과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4°C까지에서 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묘한 관계가 있다. 물이 온도가 낮아질수록 육각형의 구조가 많이 생겨 메탄 분자를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고체 상태인 하이드레이트는 퇴적물 입자 사이를 채워 해저 지반을 단단하게 한다.

 

물 분자가 다른 물질의 분자와 결합한 수화물(水化物)을 의미하는 하이드레이트란 흔히 저온, 고압 상태에서 가스와 물이 결합한 고체 형태의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의미한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미래의 해저 전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심해라는 낯선 세계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사라 치룰(Sarah Zierul: 1978-)[심해전쟁]은 이런 문제를 다룬 책이다. 심해는 왜 깊은가? 지구의 지각판이 서로 충돌하거나 한판이 다른 판 아래로 들어가는 곳에서 땅이 꺾이며 끔찍한 깊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통일된 정의는 없지만 해양학자 대다수가 수심 1000m부터를 심해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관리국은 대기 밖의 우주 공간인 outer space에 견주어 심해를 innee space라고 칭했다. 연구원들은 잠수 로봇을 ROV라고 부른다. 원격조정 이동장치를 뜻하는 remotely operated vehicle의 약자다.

 

Bathyal은 수심 200m 이상의 심해를 일컫는다. 수심 200m 지점부터는 바람과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양 식물이 자랄 수 없다. 따라서 수심 200m 이상의 바다에서는 동물과 박테리아, 바이러스, 단세포 동물들만 산다. 해양학자들은 수심 1000m 지역을 abyss 즉 심해라고 부른다. 어비스는 심해 또는 바닥이 없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아비소스에서 유래했다. 1000m 부근까지의 바다는 보라빛이 감도는 짙푸른 색이었다면 1000m 이하부터는 칠흑 같이 까맣다.

 

수심 6m 이상의 바다는 hadal 즉 초심해 대라고 부른다. 지하 세계를 의미하는 hades에서 유래했다. 1934년 윌리엄 비브는 구형(球形) 잠수함을 타고 수심 923m까지 잠수했다. [반 마일 아래에서]라는 책에서 비브는 "이 세계를 직접 본다면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추위와 외로움, 영원한 어둠, 무엇보다 그곳에 사는 생명체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에"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비브의 기록을 과장된 상상력의 결과라고 폄하했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비브는 해가 비치지 않아 어둡지만 발광 생물로 인해 드문드문 빛이 나는 심해를 어둡지만 드문드문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비유했다. 1977Alvin호에 의해 블랙 스모커가 발견된 이래 해양학은 변혁에 변혁을 거듭했다. 심해저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동물들은 먹잇감을 찾아 사냥을 나서거나 표면에서 가라앉는 것(marine snow; 바다의 눈)을 먹고 살 수밖에 없다. 바다의 눈이란 바다 표층에서 살다가 죽은 플랑크톤, 물고기, 동물의 사체, 배설물, 점액들이 뭉쳐 심해로 떨어지는 찌꺼기를 의미한다.

 

블랙 스모커 주변의 박테리아는 황화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탄소 물질로부터 유기적인 결합물을 생성한다. 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화학합성이라고 부른다. 화학합성의 발견으로 지구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장이 열렸다. 대륙판이 갈라진 화산지대는 블랙 스모커가 형성되기에 좋은 곳이다. 학자들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블랙 스모커가 많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한다. 이 책에는 오류도 있다. 대서양 중앙해령의 열수구를 로스트 시티가 아닌 블랙 스모커라고 부른다고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블랙 스모커가 화산활동에 의해 가열된 고온(400°C)의 검은 유체를 뿜어내는 곳이라면 로스트 시티는 하얀 탄산염 구조로 사문석화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곳으로 70~90°C에 이르는 맑은 알칼리성의 물을 뿜어낸다. 사문석화 작용이란 맨틀에서 올라온 초염기성 암석인 감람암이 저온에서 물과 만나 사문석 광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수소와 메탄, 수산화이온이 발생한다. 수산화이온이 물을 강알칼리성으로 만든다.

 

오피올라이트에도 감람암이 있다. 원래 상부 맨틀 즉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하여 물과 거의 만나지 않으나 지질학적 변동을 통해 물과 만난다. 지각 하부의 맨틀(감람암)이 상승하여 해수와 만나거나 지각의 균열을 통해 해수가 스며들어 물과 만난다. 2007년 러시아가 4000m 깊이의 북극점 심해에 자국 국기를 꽂은 일이 있다. 미국이 달에 자국 국기를 꽂은 것에 비유되는 사건으로 북극권 자원 경쟁에서 우위를 과시하려는 의미를 지닌 행동이다.

 

러시아 탐사대는 국기만 꽂은 것이 아니라 해저에서 지질학적 표본을 채취하기까지했다. 북극 해저가 러시아 영토에 속한다는 사실을 국제법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 러시아는 유엔에 북극해에 대한 영유권 신청을 제출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블랙 스모커가 금과 은 산업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라면 망간 단괴는 전자와 철강 산업의 새로운 희망이다.(120 페이지)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마음대로 망간 단계를 조사하거나 채취할 수 없다. 1994년부터 발효된 국제해양 법 협약은 공해 해저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을 확 바꿔놓았다.

 

해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관도 창설되었다. 바로 국제 해저기구다. 상업적 채굴 규칙이 최종 완료되지 않아 상업 채굴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2026년경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망간 단괴에 붙어 있는 미세하고 고운 입자의 슬러지(강이나 바다 물 밑에 퇴적되어 있는 부드러운 흙)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공 장치로 빨아들인 뒤 깨끗이 씻어 다시 바닷물에 집어넣는다. 이 고운 흙은 물속에서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킨다. 심지어 100km 떨어진 곳에서도 해저 흙먼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흙먼지 무리가 햇빛을 가려 플랑크톤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바닥에 가라앉는 속도가 아주 느린 해저 슬러지가 물고기의 아가미나 위에 흡착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슬러지는 바다 전체에 확산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해양생물이 떼로 죽을 수도 있다. 망간 단괴를 채취하기 위해 포착 장치와 흡입 펌프가 움직일 때마다 넓은 지역에서 흙먼지가 일어난다. 그 결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대형 해양 슬러지가 생긴다.

 

해양학자들은 단지 망간 단괴 아래의 해저 토양을 갈아엎었을 뿐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망간 단괴 개발이 진행되면 해저 토양이 파괴될 뿐 아니라 망간 단괴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망간 단괴에 붙어 사는 동물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생물들이 멸종할 것이다. 심해에서 학자들은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수천 m 아래 암흑 속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발견하곤 한다.

 

불빛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물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는 말이 잇따른다. 1930년대에 심해를 잠수했던 윌리엄 비브는 어둠에서 빛을 발하는 횃불을 보았다고 묘사했다. 현대적 실험 장비의 도움으로 수수께끼 같은 현상의 비밀이 풀렸다. 우리는 이 현상을 생물 발광이라 부른다. 생물 발광은 동물의 몸 속에서 발생하는 화학적 반응에서 생긴다. 빛을 발산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공생하는 박테리아의 작용에 의해 빛을 발산하는 동물도 있다. 육지에서 나타나는 반딧불이의 생물 발광 현상보다 심해의 생물 발광 현상은 더 다양하고 강하다.

 

심해 동물의 발광 현상은 생존 수단이자 의사소통 수단이다. 심해 동물의 80 ~ 90%가 빛을 발산하지만 발견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해 생물 대부분이 앞을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앞을 못 본다면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사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해양생물의 종류가 수억 아니 수천만이라고 해도 그 수는 육지 생물의 여덟배나 된다. 육지는 16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그 중 50만 종은 생물이고 동물의 80%는 곤충이다.(185 페이지)

 

해양학자들은 환경 오염은 물론 기후변화가 바다에 미치는 영향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수온과 해저 온도의 상승으로 산호초가 죽고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수온이 낮은 지역으로 영역을 넓혀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며 메탄 하이드레이트도 용해될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함유된 공기를 다량으로 흡수하여 바다의 수소 이온 농도가 산성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껍질과 뼈를 만들기 위해 약알칼리성의 물이 필요한 패류와 갑각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증가로 바닷물이 탄산수처럼 변했다. 바닷물이 산성으로 변한 탓에 바다 동물들은 뼈를 만들 수 없게 되었고 바다 동물의 먹이사슬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저자는 지금까지 경계선을 둘러싼 분쟁은 대부분 육지에서 발생했으나 이젠 바다로 무대로 옮겼다고 한다. 접근할 수 없던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새롭게 유전이 발견될 때마다 해안 경계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다고 한다.

 

21세기 초반부터 누가 바다 속 보물을 차지하느냐를 두고 천연자원에 굶주린 국가들끼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망간 단괴가 집중 분포하는 지역의 해류의 움직임은 1초당 4cm 정도로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 해저 퇴적층이 쌓이는 속도보다 망간 단괴의 성장 속도가 훨씬 느린데도 망간 단괴가 해저 퇴적층 위에 있다. 그 이유는 해저 면에서 사는 작은 생물들이 퇴적물을 파헤치거나 섭식 활동을 하기 때문이고, 심해의 느린 해류가 단괴 주변의 퇴적물을 쓸어가 버리거나 단괴를 가볍게 뒤집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해저에는 육지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해저 미생물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그들은 얼음 같이 차가운 북극에서도, 뜨거운 블랙 스모커의 열광에서도 살고 있다. 넓은 심해저와 산호초에서도 산다. 한 마디로 어디서나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다. 미생물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여 생물체가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해양 미생물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밝혀내는 것이다. 유전자 코드를 알면 효소와 유효 성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실험실에서 유효 성분을 재생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심해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실험실에서 심해의 생물학적 원료를 키울 수 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심해의 생물학적 원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심해개발이 광물 및 석유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해저 열수 유체 및 광물화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 코넬 드 롱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해저에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영해 면적의 1.6%만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이뤼삭이 들려주는 물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88
임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은 스스로 깨끗해질 수 있다. 오염되었다 해도 흐르면서 호기성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정화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땅과 대기로 순환하면서도 정화된다. 지구는 커다란 정수기인 셈이다. 게이뤼삭(1778-1850)은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수소와 산소가 물을 생성할 때 반응 부피 비가 21이라는 사실을 찾아낸 과학자다. 증발은 바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물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계속 순환한다. , , 우박 등을 모두 합해 하늘에서 내리는 물의 양을 강수량이라 하고 지구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난 물의 양은 증발량이라 한다.

 

너무 오염이 많이 된 물은 죽은 물이 되어 증발하지 않고 순환도 못하게 된다. 사용한 물을 자연으로 돌려주고 다시 사용하려면 순환이 잘 일어나도록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대기권은 크게 네 개의 층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지표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주로 생활하는 곳은 대류권이다. 대류권에서는 지표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져서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면 찬 공기는 하강하고 더운 공기는 상승한다. 차가운 공기가 아래층에 있고 더운 공기가 위층에 있는 것이 정상적이어서 안정층이라고 한다.

 

위층의 기온이 더 낮고 아래층의 기온이 더 높은 곳을 불안정 층이라고 한다. 불안정층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자신들의 정상적인 위치로 가기 위해 위아래로 순환을 하게 된다. 이를 대류 현상이라고 한다. 대류 권에서는 대류 현상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 , 우박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우리는 기상 현상이라고 한다. 기상 현상도 대류권의 특징이다. 대류권보다 더 높은 성층권 이상에서는 구름이 없다.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는다. 성층권, 중간권, 열 권에서는 구름이 없어 비나 눈도 내리지 않는다.

 

기상 현상은 대류권에서만 일어난다.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물이다. 물이 구름을 만들고 비도 내리게 한다. 지구에 물이 없다면 기상 현상은 없는 것이다. 구름과 비와 눈은 모두 물인데 서로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볼까? 증발과 끓음은 어떻게 다를까? 증발은 물의 표면에서 수증기가 되는 것이고 끓음은 물의 내부에서 끓는 온도가 되어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이다. 빨래가 마른다든가 마당에 뿌린 물이 없어지는 것을 증발이라고 하고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경우를 끓음이라고 한다.

 

지구 곳곳에서는 증발이 일어난다. 물론 지구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에서 가장 많은 양의 물이 증발한다. 물은 증발하면 공기 중으로, 하늘로 여행을 간다. 지표면에서 증발로 인해 수증기가 된 물은 공기를 타고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면서 조금씩 기온이 낮아지게 된다. 기온이 낮아져서 찬 공기와 만나게 되면 수증기는 다시 물이 된다. 하늘에서 수증기가 다시 물이 되는 현상을 수증기 응결이라고 한다. 수증기들이 올라가다가 어느 높이에서 응결이 되면 다시 물이 된다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이 된 수증기들은 서로 뭉쳐서 구름을 이루게 된다.

 

구름은 하늘에 떠 있는 물방울들인 셈이다. 구름을 이루고 있는 물방울들이 서로 뭉쳐서 무거워지면 지표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비라 한다. 지역에 따라 구름의 상층부는 물일 수도 있고 얼음 알갱이로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서 하늘로 여행을 하던 수증기가 물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온이 영하일 경우에는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된다. 구름이 물방울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작은 얼음 알갱이들인 빙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빙정이 내리게 되면 눈이 되는 것이다. 빙정은 내리다가 녹을 수도 있다. 하늘에서 빙정이 떨어지다가 녹게 되면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것이다.

 

얼음이 떠 있는 찬 얼음물을 생각해 보자. 공기 중의 수증기가 차가운 컵 표면을 지나가면서 물방울이 된다. 안개가 생긴 새벽은 전날과 비교하여 일교차가 큰 편이다. 전날 증발이 활발하여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는 새벽이 되면서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면 수증기를 다시 공기 중으로 돌려줘야 한다. 공기는 기온이 높으면 수증기를 많이 머금을 수 있지만 기온이 낮아지면 수증기를 조금만 가져야 한다. 새벽에 기온이 낮아져서 공기 중에 수증기가 응결하여 생긴 물방울이 이슬이다.

 

해가 떠오르게 되면 기온이 다시 올라가게 되고 이슬과 안개는 공기 중으로 다시 돌아간다. 수증기는 기체이다.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지듯 바위 틈에 고인 물도 얼게 되면 부피가 커져 바위를 조금씩 부서지게 한다. 바위 틈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의 뿌리도 바위에 작은 균열을 생기게 한다. 너무 거대하고 단단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 같은 바위도 물, 식물 뿌리 등에 의해 부서진다. 지역에 따라 지하수에는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아 있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는 지하수는 바위를 조금씩 녹일 수 있다. 비가 와서 한 곳에 똑똑 떨어지는 빗물이 바위를 파이게 할 수도 있다.

 

모래알이나 흙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도 바위를 가만 두지 않는다. 자꾸 자꾸 바위를 작은 돌멩이가 되도록 부서뜨리려고 한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일어나는 작용이다. 바위가 모래알이 되어가는 과정을 풍화라고 한다. 풍화는 바람 때문만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풍화의 원인은 물과 공기이다. 비가 내리면 물은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게 된다. 구름에서부터 지표면으로 떨어진 물들의 바다를 향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들은 조용히 흐를 때도 있고 무섭도록 빠르게 흐를 때도 있다. 돌멩이들을 움직인다. 사람들이 옮겨주지 않아도 돌들은 그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은 운반작용도 하는 것이다. 물의 운반작용으로 인해 아래로 내려가던 돌들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더 작아지고 매끈해진다. 처음에는 모가 난 돌이었지만 모가 난 부분이 먼저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매끈한 돌이 되는 것이다. 물은 돌이나 흙을 조금씩 움직여서 어디로 데려다 놓으려고 하는 것일까? 산 위에서 출발한 물의 목적지는 바다이니 바다에 데려다 놓는 것이다. 산 위에서 바다로 갈수록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물과 함께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입자가 작아지니까 바다에는 모래와 같은 흙이 많은 것이다.

 

물의 속력이 빨라지면 주변의 작은 돌이나 흙과 부딪히는 힘이 커지게 된다. 그러면 물이 흐르면서 주변을 깎는 작용을 하게 된다. 이를 침식작용이라고 한다. 침식작용은 흐르는 물이나 빗물, 바닷물, 빙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바람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에너지가 작아지기 때문에 운반하기에 힘이 들어 운반하던 것들을 내려놓는다. 물은 상류를 지나 중류와 하류로 가면서 평지를 지나가게 된다. 평지에서는 하천의 기울기가 급하지 않으므로 물의 속력은 느려진다. 하류 쪽으로 가면서 운반하던 알갱이들을 어느 한 곳에 내려놓게 된다. 이를 퇴적이라 한다.

 

한곳에 모인 알갱이들은 서로서로 엉겨 붙고 다져지면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 수 있다. 침식작용에 의한 지표의 변화는 주로 상류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다. 폭포와 V자 계곡이 그것이다. 이들은 물이 아래쪽으로 급하게 흐르면서 깊게 패인 것이다. 퇴적 작용에 의한 지표의 변화는 하류 지역에서 주로 많이 발견된다. 삼각주가 그 한 예다. 삼각주는 지류에 있던 물이 해양으로 유입되면서 토사가 삼각형 모양으로 퇴적되는 지형을 말한다. 중류지역에서 침식과 퇴적이 함께 일어나는 예도 있다. 곡류의 안쪽은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바깥쪽은 빨라진다. 느린 곳은 퇴적이 일어나고 빠른 곳은 침식이 일어난다.

 

지하수도 동굴을 만들 수 있다. 석회암 지대에 이산화탄소가 녹은 지하수가 흐르게 되면 석회암이 용해되어 석회암동굴이 생긴다. 지하수뿐 아니라 빙하, 해수, 바람도 침식과 퇴적 작용을 통해 지표를 변화시킨다. 지표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흐르는 물이다. 식물이 물을 너무 많이 마셨을 경우에는 잎의 뒷면에 있는 기공을 통해 물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물은 하늘, 대기, 지표, 지하에 존재하며 세상을 감싸고 있을 뿐 아니라 기상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지형을 바꾸기도 한다.

 

세포의 주성분이어서 생물체의 몸을 이루기도 하고 체온 유지와 같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들을 수 있는 상태와 딱딱하게 굳은 상태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흐를 수 있는 상태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굳어진 상태는 모양이 일정하다. 물이 수증기로 변할 때 부피는 거의 1700배 증가한다고 한다. 물은 얼음이 될 때, 수증기가 될 때 모두 부피가 증가한다. 분자끼리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분자 운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고체 상태의 물질을 가열하면 물질은 에너지를 흡수한다. 분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분자끼리 서로 당기는 인력은 약해지고 분자 운동은 활발해진다. 기체를 냉각시키면 물질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에너지를 방출함에 따라 분자 운동이 둔화된다. 분자끼리의 인력이 강해지고 분자와 분자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은 액체 상태다. 그 액체 상태의 물방울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면서 수증기가 되는 것이다. 고체가 액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체가 되는 것을 승화라고 하고 기체가 액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체가 되는 것도 승화라고 한다.

 

나프탈렌은 승화성 물질이다. 고체에서 바로 기체가 되어 옷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방충제 역할을 한다. 만일 나프탈렌이 고체에서 액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흘러 옷을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냉동실의 성에는 기체가 바로 고체가 되는 것이다. 어떠한 상태 변화든지 반드시 동반되는 과정이 있다. 열의 출입이다. 우리가 마당에 뿌리는 물은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지만 이글루 위에 뿌리는 물은 이누이트들을 훈훈하게 해준다. 더운 여름에 뿌린 물은 곧 증발한다. 하지만 이글루에 뿌린 물은 얼게 된다. 기온이 영하일테니까. 여름에 마당에 뿌리는 물은 기화하는 것이니까 열을 흡수한다. 이글루에 물을 뿌리면 물이 언다. 물이 얼면서 열을 방출한다. 이글루 안은 방출된 열 때문에 훈훈해진다.

 

겨울철의 서리는 승화에 해당한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액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언 것이기 때문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온도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자들은 수증기가 되면서 훨씬 자유로운 분자 운동을 하게 된다. 분자 운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분자끼리 서로 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분자 간의 인력이 끊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분자 간의 인력이 끊어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해진 열에너지를 다른 일에 사용하니까 온도가 상승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일이라는 것은 상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녹는점에서도 얼음이 분자끼리의 인력을 끊고 물이 되어야 하므로 녹는점에서의 온도는 일정 하고 변화가 없다. 어는 점 역시 일정하다. 물을 많이 끓여야 할 경우 끓는 온도가 높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열 시간이 길어져야 한다. 압력에 따라 끓는점은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물의 끓는점을 100°C라 하고 녹는점을 0°C라고 할 때 기압은 1기압이 기준이다. 얼음의 녹는 점도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 압력과 온도에 따라 세 가지 물질의 상태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물의 경우 세 가지 상태가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이 있다. 얼음, , 수증기가 모두 한 곳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의 삼중점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온도는 0.01°C이고 압력은 0.006 기압일 경우이다. 게이뤼삭은 물을 전기분해하면 플러스 극에서는 산소가 발생하고 마이너스 극에서는 수소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 분자는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루어진 분자다. 수소와 산소가 이루는 각도가 104.5도가 되는 굽은 구조이다. 한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물질을 이룬 상태에서 서로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특별한 결합이 필요하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리저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원자핵이 아니라 전자다.

 

그러므로 원자와 원자 사이를 전자들이 연결하여 주는 것이다. 원자가 가지고 있는 전자들 중 결합에 관여할 수 있는 전자들은 원자핵과 가까운 전자들일까? 아니면 원자핵과 가장 멀리 떨어진 전자들일까? 원자핵과 가까운 전자들은 원자핵과의 인력 때문에 멀리까지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전자들을 최외각 전자, 원자가 전자라고 한다. 수소 원자는 원자가 전자가 한 개이고 산소 원자는 원자가 전자가 여섯 개이다. 루이스라는 과학자는 원자를 둘러싼 원자가 전자가 8개를 이룰 때 안정된다고 주장했다.

 

원자가 전자를 여덟 개 이루려는 것을 옥테트 규칙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것처럼 물질들도 마찬가지다. 자연계에서 존재할 때 물질들도 안정된 상태로 존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원자를 둘러싼 원자가전자가 여덟 개가 되어 안정을 이루려고 한다. 수소는 원자가 전자가 한 개이고 산소는 원자가 전자가 여섯 개이다. 여덟 개가 되려면 각각 가지고 있는 전자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서 수소와 산소는 결합을 이루면서 서로를 충족시켜주기로 했다. 서로 부족한 대로 전자들을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산소 원자에 수소 원자 두 개가 다가온다. 수소 원자는 원자가 전자를 한 개 가지고 있다. 원자가전자가 한 개인 수소 원자가 두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산소 입장에서 보면 산소 원자에 수소 원자가 두 방향에서 다가오면서 각각 전자를 한 개씩 내밀면서 온다. 산소 원자는 여섯 개의 원자가 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수소 원자 둘이서 원자가전자를 한 개씩 내밀면서 다가오니까 산소 원자의 중심에는 모두 8개의 원자가 전자가 생긴 것이다. 수소 원자의 원자가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중심에 있던 산소 원자의 전자는 8개가 되었고 안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수소 원자는 전자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산소와 공유된 상태다. 수소 원자는 가질 수 있는 전자의 수가 적다. 수소 원자의 원자가 전자는 두 개일 때 안정되다. 수소 원자는 산소 원자와 전자를 공유하여 모두 두 개의 전자를 갖게 되었다. 산소나 수소 입장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산소 원자는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매우 강하고 수소 원자는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수소와 산소가 공유한 전자는 산소 쪽으로 더 치우치게 된다. 산소 원자 쪽에 마이너스 전하의 세기가 더 세진 것이다.

 

수소 원자는 플러스 전하를 띠게 돼 있다. 분자 내의 결합을 넘어서 물 분자끼리의 결합 즉 분자 간 결합에 대해 알아보자. 물 분자를 이루는 두 개의 수소 원자는 부분적으로 플러스 하나를 띠고 산소 원자는 마이너스 전하를 띠는 구조다. 이러한 물 분자들이 서로 모여 있게 되면 어떤 물 분자의 수소 원자는 다른 물 분자의 산소 원자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야 이웃하는 물 분자의 산소와 수소 원자는 강한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결합이 형성되는데 이를 수소 결합이라 한다.

 

물이 얼음이 될 때에도 얼음을 이루는 분자들이 수소 결합을 하며 육각형 구조를 만든다. 이때 육각형 안쪽으로 빈 공간이 생기므로 얼음의 부피는 물보다 커지게 되는 것이다. 물 분자가 이루는 결합은 공유 결합과 수소 결합이다. 공유 결합은 하나의 분자 안에 있는 원자들 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수소 결합은 분자들끼리의 결합으로 분자 간 인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합을 의미한다. 물에 얼음이 잘 뜨는 것은 무게 때문이 아니라 밀도 때문이다. 밀도는 단위 부피에 해당하는 질량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물질이 있을 경우 같은 부피가 갖게 되는 질량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무게가 가볍고 무거운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아무리 철을 가루 내어 조금만 물에 넣어본다고 해도 철의 단위 부피당 차지하는 질량 값은 일정하므로 물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얼굴만큼 큰 자동차와 금속으로 만든 엄지손가락만큼 작고 가벼운 자동차를 물에 넣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스티로폼 자동차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물에 가라앉는 것은 아니며 금속 자동차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가라앉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위 부피에 해당하는 질량은 어떤 물질이든 간에 일정한 값을 갖는다. 물질의 특성이다. 물의 밀도는 1g/ cm³. 1cm³를 취해 질량을 재어 보면 1g이 되는 것이다. 얼음의 밀도가 물보다 커서 호수의 바닥부터 언다고 한다면 호수의 물고기들은 겨울을 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호수가 윗부분부터 얼게 되니까 오히려 얼음이 찬 대기로부터 물속의 생태계를 보호해주는 것이다. 물질 1g1°C 상승시키기 위해 필요한 열량을 비열이라고 한다. 비열이 큰 물질 일수록 가열하거나 냉각하여도 온도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냉각되고 천천히 가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은 비열이 큰 편에 속한다.

 

겨울이 되어서 기온이 하강하여도 지표 만큼 빠르게 냉각되지 않는 이유가 물의 비열이 크기 때문이다. 물은 온도 변화가 크지 않으므로 물속 생물들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수소 결합을 하여 분자끼리 강하게 끌어당긴다. 이 분자 간의 강한 인력 때문에 물은 표면적을 최소화하려는 힘을 작용시킨다. 이를 표면장력이라고 한다. 물 분자가 서로 강하게 끌어당겨 표면적이 최소화가 되려면 둥근 구 형태가 되어야 한다. 같은 부피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기하 구조 중에서 둥근 구가 가장 표면적이 작다.

 

물보다 밀도가 큰 바늘도 물 위에 잘 떨어뜨리면 뜰 수 있다. 물에는 바늘이 가라앉으려는 밀도를 이겨내려는 힘인 표면장력이 있다.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녹는점이나 끓는점도 높은 편이고 비열도 큰 편이며 표면장력도 가지고 있다. 이는 물 분자가 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수소 결합을 하고 있어서 분자들끼리 서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염된 물의 양이 적으면 물은 스스로 깨끗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물 속에 사는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미생물들은 물에 유입된 오염물질들을 분해해 준다.

 

그런데 너무 많은 오염물질들이 강으로 흘러 들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분해시킬 물질들이 많아졌으므로 미생물들은 빠르게 번식하며 오염물질을 분해할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도 생물체이므로 호흡을 하여야 하고 호흡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미생물이 모여 있게 되면 물 속에 산소는 부족하게 된다. 미생물들은 오염물질을 분해시키는 일을 끝마치기 전에 호흡을 하지 못하여 죽게 된다. 깨끗한 물은 용존 산소량은 높고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은 낮은 상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 - 대멸종의 시대, 자연의 기억보관소가 들려주는 전시실 너머의 이야기
잭 애슈비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사박물관을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이 얼마나 경이롭고 중요한지 알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동물학자, 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물학박물관 부관장인 잭 애슈비의 책이다. 설득력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저자는 자연사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별한다. 자연사박물관은 소장품 규모에서 미술관보다 훨씬 방대하고 전시에서 끝없이 다양한 주제와 엄청나게 긴 역사를 다루는 데도 보편적인 관람 코스를 짤 수 있을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저자는 말한다. 박물관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자연과 닮지도 않았다고. 공룡에 쏠리는 관심이 과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공룡만 부각하느라 자연계의 다른 모든 생물이 구석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목록은 방대한 자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선별이 필요하다. 선별은 편향이 드러나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편향 가운데 하나는 서양의 비중이 꽤 크다는 점이다. 자연사박물관이 예부터 항상 과학을 증진하는 곳이었다고 주장하기 힘들다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참한 자의식과 탐욕, 식민주의까지 집약된 곳이 자연사박물관이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이 관리하는 동물, 식물, 균류를 비롯한 생물 표본은 현재 우리 지구가 맞닥뜨린 심각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귀중한 근거 자료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을 공유하고 영감을 주는 것은 박물관의 핵심 기능이지만 지구 생물에 관한 최상의 기록, 가장 확실한 자료를 잘 관리하는 것 또한 박물관의 핵심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기도 한다. 죽음은 자연 현상이지만 죽은 동물의 표본은 자연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엄청나게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표본은 사실상 인공물에 가깝다. 생각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박제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았다.

 

박제동물 제작은 엄청난 수준의 예술적 비전과 기술, 해부학적 지식을 요하는 일, 결과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저자에 의하면 박제는 동물을 가장 생생하게 보존하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짜 동물과 가장 거리가 멀다.(64 페이지) 흑곰의 털 가죽을 표백해 대왕판다의 박제 모형을 제작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공(人工), 연출, 타협의 산물이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 당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동물 박제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새의 암수가 함께 전시된 경우 대체로 암컷은 더 낮은 선반에 있거나 아예 수컷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고 수컷은 몸을 잔뜩 부풀린 지배적 모습을 만드는 것은 동물의 실제 행동 특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위계서열만 중시한 연출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나와 관계되는 지질박물관은 어떤가 생각해 보게 된다. 연출이나 편견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 지질박물관이 아닐까? 어떻든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우게 된다. 몸집이 워낙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의 경우 골격표본을 만들 때 뼈만 깨끗이 남기는 단계에서 보통 자연의 힘을 빌린다. 사체를 흙이나 분뇨, 모래에 묻어두고 미생물, 균류, 무척추 동물이 연조직을 다 먹어 치우게 놔두는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에는 오류도 많다. 직접 본 적이 없는 공룡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이나 다른 동물의 골격표본에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박물관이 곧바로 수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화석 뼈나 복제 모형은 망가지기 쉽고 표본을 다시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액침(液浸) 표본이 가장 진짜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새롭다. 동물이 전시를 위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전시는 관람객의 기분을 망친다. 부가된 것도 없고 사람이 조작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해석도 개입되지 않아 정확성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는 진짜 생물들이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이러니다.

 

저자는 이를 실제 생물과 한 단계씩 멀어질수록 더 파격적이고 관람객의 관심과 흥미는 커진다는 말로 설명한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은 진짜 생물과의 일치성과 관람객이 느끼는 따분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사 표본에는 성비(性比) 차이가 꽤 난다. 동물을 잡고 수집하는 사람의 편향성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에서 표본은 유전학부터 기후변화, 분류학, 해부학, 독성학 기생충학, 진화학, 생물 다양성 감소, 생태학 등 방대한 과학탐구에 두루 활용된다. 박물관에 연구할 표본이 아무리 많아도 수컷의 비중이 훨씬 크면 수컷의 행동이 그 생물의 일반적인 행동으로 왜곡되어 관람객들은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하게 된다.

 

암컷에게 드러낸 것과 같은 편견이 최초로 발견된 생물의 이름을 붙일 때 여성 전체를 향한 편견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는 저자의 지적은 예리하다. 현존하는 모든 조류의 90% 이상이 새끼 돌보는 일을 수컷이 담당한다. 그런 사실은 조류(鳥類)가 키티파티, 오비랍토르와 생물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류 역시 먼 옛날 조상들처럼 수컷이 새끼의 양육을 담당하는 게 당연한 결과라는 말이다. 저자는 자연에서는 동성간 짝짓기가 매우 흔하지만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그런 사실을 아예 알리지 않거나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저자는 인간의 편향된 고정관념을 잣대로 동물의 행동을 해석한다면 동물의 자연사는 물론 더 넓게는 인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 동물계에서 또는 다른 어디에서든 근거가 발견되어야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중생대는 파충류의 시대,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라는 말은 엉터리라고 말한다. 나도 한 지질학자의 글에서 이런 구분을 보았다. 저자에 의하면 150만 종 가운데 7천 종도 되지 않는 포유동물은 비중은 약 0.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어느 자연사 박물관을 가든 전시실에는 포유동물이 가득하다.

 

다양성에서 진정한 최강자는 현재까지 90만 종이 알려진 곤충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챕터의 제목이 '곤충한테 왜 그래'란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박제 동물은 피부가 유연한 동물로만 제작할 수 있으며, 골격표본은 뼈가 있는 동물로만 만들 수 있다. 동물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곤충은 이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 무척추동물은 액침 표본으로 보존하기도 하지만 곤충은 표본 상자에 핀으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가장 많이 보존된다.(159 페이지) 저자는 박물관은 사람들에게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려줌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방식을 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부화한 뒤 성체가 되기 위해 20만 마리의 곤충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만나기 어려운 지식이다. 곤충이 없으면 지구의 삶은 무너진다. 생물 수백만 종이 멸종하고 동물의 사체가 우리 주변에 가득할 것이라고 한다. 곤충은 지구 역사에 지금까지 총 다섯 번(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찾아온 대규모 멸종 사태마다 비교적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듯 했지만 현재 곤충 개체수가 감소하는 속도와 규모를 볼 때 지구의 한계를 거듭 위반한 인류가 빚어낸 여섯 번째 멸종에서는 곤충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175 페이지)

 

저자는 고생물학자이자 유명 저술가 리처드 포티의 책에서 곤충의 부정적이거나 기괴한 모습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리처드 포티는 나도 읽은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의 저자이다. 그의 고생물학 저서인 [삼엽충]은 어떤지 읽어보고 싶다. 저자는 건강한 지구 생태계에 막대한 역할을 하는 식물과 균류가 자연사박물관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식물맹(植物盲)이란 말이 있다. 새보다 훨씬 중요한 식물에 대해 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소홀한 것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류 관찰은 엄청난 규모의 거대 산업(130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식물은 자연사박물관에서도 홀대 당한다. 동물들의 소품 정도로 취급되는 것이다. 식물에 대해 우리는 참 무심하고 마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대해왔다는 생각을, 저자의 지적을 통해 반성하듯 하게 된다. 식물과 조류(藻類)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저자는 인상적인 말을 한다. 표본으로 남아 있는 모든 최후 개체는 하나하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멸종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말(246, 247 페이지)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에는 권력과 계층 구조, 값어치의 영향이 깊게 배어 있다. 과학도 문화의 한 부분이다. 과학계가 던지는 질문은 특정 시대와 지역의 사회적 규범, 정치, 우선순위, 금기시되는 것의 영향을 받는다.

 

인류학 전시회에 자주 활용되는 디오라마에는 박제된 야생동물과 원주민을 대놓고 동일시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박물관의 탈식민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박물관의 모든 소장품이 한곳에 모일 수 있었던 힘은 제국주의 시대의 불균등한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탈식민지화가 필요한 대표적 예가 도도새이다. 과학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협력이라 불러도 힘의 구도는 불균형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저자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탐험대가 박물관에 전시할 만한 것으로 무엇을 찾아오느냐에 따라 그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을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자연사박물관이 발전한 시기는 식민지 사업이 성장한 시기와 겹친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박물관은 제국이 거둬들인 전리품의 보관소이자 식민지에서 추출, 착취할 천연자원이 있는지 판단할 만한 표본들을 보유하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 연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이 획득된 과정이 사회사의 측면에서 부적절한 사건과 엮여 있다면 그 이야기까지 관람객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가하며 벌어들인 돈이 자신이 속한 박물관(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물학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에 쓰인 셈이라는 사실을 말할 정도로 진지하다. 저자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논란 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을 비교하는 것은 자연사의 거의 모든 세부 분야에서 필수적인 연구 방식이지만 다양한 표본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생기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세계 각지에서 나온 표본들이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의 이중고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 지배를 받은 것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나라에서 유래한 표본들이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들에 있는 현실이다. 물론 그 국가들이 표본이나 문화재를 가져가 보관하지 않았다면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저자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고고학, 예술, 자연사, 그 밖의 어떤 분야든 소속을 둘러싼 논의는 결국 바로 그것이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큰 의미가 있는가라는 한 줄기로 모이는 듯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삶이란 참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다. 표본이 수집된 후 새로운 종으로 밝혀질 때까지 소요되는 지체 시간이 평균 21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발견된 새로운 포유류 종의 4분의 3은 자연서식지가 아니라 박물관 수장고에서 표본으로 발견되었다. 새로운 종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채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는 생물 중에는 자연서식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 있다. 지금 수집되는 표본들은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정의 주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박물관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지 않고 표본을 수집하는 방안을 꾸준히 찾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사박물관이 자연의 기억 보관소라는 사실을 토대로 박물관의 표본과 그 표본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하면 생물을 지키는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새로운 길이 나타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남아 있는 오래전 기록은 지역의 멸종 생물을 복원하는 데 활용된다.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은 생물 보존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보존 방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박물관 일은 여러 직업 중 하나이지만 이 직업에는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

 

지구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을 기록하는 것은 자연사박물관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줄곧 핵심 과제다. 전시실에 놓을 표본 하나를 결정하는 것은 수백만점의 다른 표본이 제외되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으로부터 편향성은 불가피하며 박물관 일에 막중한 책임감과 균형감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시설이라는, 부당하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오해를 벗으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이 책은 감사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연사박물관에 대해 알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전해진 새로운 정보의 선물상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윌슨이 들려주는 판구조론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48
좌용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이아의 향기]에서 지구를 일종의 목수로 비유하고, 지구는 판이라는 널빤지로 헌 집의 여기저기를 고쳐 새집으로 단장하듯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설명한 좌용주 교수의 [윌슨이 들려주는 판구조론 이야기]란 책이다. 윌슨이란 캐나다의 저명한 지구물리학자이자 지질학자인 투조 윌슨(1908~1993)을 의미한다. 윌슨은 판구조론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판구조론은 플룸 구조론과 함께 지질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론이다. 저자는 지구뿐 아니라 태양계를 이루는 지구형 행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데도 판구조론은 분명한 탐구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을 한다. 최근 열수구, 오피올라이트 등을 공부하면서 이들은 모두 판구조론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고 판구조론을 뒷받침하는 개념임을 알았다. 


저자는 두 지각을 이야기한다. 해양지각, 대륙지각이 그것이다. 해양지각은 대부분 현무암으로 이루어졌다. 두께는 평균 5km다. 반면 대륙지각은 화강암, 섬록암, 반려암, 사암, 이암, 편마암 등 여러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평균 두께는 약 35km다. 대륙지각이 여러 암석으로 이루어진 것은 40억 년 이상의 오랜 지질 시대 동안 판의 충돌, 마그마 활동, 풍화·퇴적 등 다양한 지질 작용이 복합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륙지각은 해양지각보다 두껍지만 밀도가 낮다. 감람암은 맨틀을 이루는 암석이다. 지각은 맨틀보다 밀도가 낮다. 그래서 맨틀 위에 떠 있는 것이다. 맨틀 아래에는 핵이 자리한다. 핵은 밀도가 가장 높다. 


암석권, 연약권, 중간권은 핵은 논의하지 않고 지각과 맨틀 부분만을 설명한 것이다. 지구 표면의 새로운 층을 암석권이라 한다. 100km에 이른다. 이는 지각과 최상부 맨틀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연약권은 맨틀 중 비교적 상부에 속한다. 지하는 온도가 녹는 점보다 크게 높지 않기에 맨틀은 일부만 녹는다. 부분적으로 녹고 무른 성질을 보이기에 연약권이라 한다. 연약권의 두께는 100~250km에 이른다. 연약권 아래의 나머지 맨틀을 중간권이라 한다. 중간(지구 표면의 운동 무대인 연약권까지와 핵 사이에 놓인) 부분이라는 말이다. 상부 맨틀은 모호면이라 불리는 지각과 맨틀의 경계에서부터 약 670km까지의 깊이를 말하고 하부 맨틀은 그보다 깊은 부분을 말한다.


어떤 판은 대륙을 짊어지고 있고 어떤 판은 해양지각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대륙을 가지는 판을 대륙판이라 하고 해양 지각을 가지는 판을 해양판이라 부른다. 한국이 위치한 유라시아 판은 대륙판이고 넓은 태평양을 둘러싼 태평양판은 해양판이다.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대륙과 해저가 이동하는 것과 판이 이동하는 것을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서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이 바로 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륙판은 대부분 대륙 지각이지만 해양 지각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대륙판이 곧 대륙 지각인 것만은 아니다. 지각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지각과 가장 상부의 맨틀이 합쳐진 암석권이 움직이는 것이다. 


지각이 움직이지만 그 아래의 맨틀도 함께 움직인다. 사람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면 사람만 건너는 것이 아니라 뗏목도 같이 움직인다. 사람이 지각이라면 뗏목은 맨틀에 해당한다. 사람을 실은 뗏목은 암석권이고 강물은 연약권이다. 판과 암석권이 같은 것이라면 왜 하나로 부르지 않을까? 암석권은 지구 겉에서 맨틀의 바닥까지 암석권, 연약권, 중간권 등의 새로운 층으로 나눌 때 사용하는 구분이다. 하지만 지구 표면에서 무엇이 움직인다고 할 때는 운동을 나타낸다. 운동하는 물체를 부를 때는 암석권 대신 판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판이 이동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지각뿐 아니라 가장 상부의 맨틀을 포함하는 암석권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확장 경계는 많은 경우 해저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대륙 내부에서 확장 경계가 발견되기도 한다. 확장 경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맨틀의 상승류가 암석권을 들어올린다. 해저의 확장 경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저 지각이 높아져 있고 이런 높은 지형을 해령이라 부른다. 해령에서 상승한 맨틀 물질이 해양지각을 만든다. 수렴 경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수렴 경계 중 하나는 침강 경계다. 다른 하나는 두 판이 충돌하는 충돌 경계다. 침강 경계는 한 판이 다른 판 아래로 내려가는 경계를 말한다. 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해양판이 다른 해양판 아래로 침강할 수도 있다. 더 오래되고 더 무거워진 해양판이 젊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해양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두 판이 서로 접근하여 침강경계를 이룬 곳에서는 표면보다 아주 깊은 골짜기가 생긴다. 이런 지형을 해구라고 한다. 침강 경계의 대표적인 지형이다. 충돌 경계는 오직 충돌하기만 하는 경계를 말한다. 이런 곳에서는 대륙판끼리 부딪힘에 따라 하늘 높이 솟구치게 된다. 충돌 경계를 대표하는 것이 산맥이다. 충돌이 끝은 아니다. 대륙 지각끼리는 충돌해서 높아졌지만 지각 아래의 맨틀 부분은 계속 움직인다. 한쪽이 다른 쪽으로 계속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계속되는 한 산맥은 계속 솟구쳐 오른다. 대륙지각은 위아래로 균형을 이룬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맨틀 쪽 뿌리도 깊어야 한다. 이 뿌리가 깊어진다면 산맥의 높이도 더 높아질 수 있다.


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경계가 생기는 것을 단층이라 한다. 단층을 만드는 운동이 생기면 땅은 아래로 수직 이동을 할 수도 있고 좌우로 수평 이동을 할 수도 있다. 단층이 해령을 만난다는 것이 샌안드레아스 단층이 육지의 보통 단층들과 다른 아주 결정적인 증거다. 이런 단층은 해령과 해령 사이에 존재한다. 이런 단층을 변환단층이라 한다. 두 땅의 이동이 항상 반대이고 땅이 이동하기 때문에 이동한 땅의 뒷부분에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 육지의 일반 단층들의 모습이다. 변환 단층의 경우 빈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령에서 끊임없이 해양 지각을 만들기 때문에 빈 공간이 생길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해양 지각은 해령을 중심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지구 해양에 분포하는 해령의 축은 항상 연속적이지 않고 끊어져 있다. 


끊어져서 만들어진 해령과 해령 사이에서 해양 지각의 움직임이 반대가 되는데 여기에 변환 단층이 생겨나는 것이다. 해령들을 좌우로 끊고 있는 선들이 단층으로 이것이 바로 변환단층이다. 해저에는 무수히 많은 변환 단층이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샌안드레아스 단층은 육지에 나타난 변환단층이다. 해령들은 왜 끊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지구의 표면이 평면이 아니라 둥근 구면이기 때문이다. 평면과 달리 구면에서는 점토가 휘어지는 정도가 위아래에서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해령에서 만들어진 해양지각은 양쪽으로 이동한다. 이동시키는 중심이 지구 내부에 있다. 지구 표면이 둥글기 때문에 모든 장소에서 이동하는 정도가 같지 않다. 그래서 해양지각은 해령에 수직인 방향으로 쪼개진다. 이를 변환단층이라 한다. 


맨틀 위에는 대륙이 있고 대륙은 맨틀의 순환과정에서 생기는 수평 이동에 실려 움직일 수 있다. 이를 맨틀대류설이라 한다. 맨틀이 대류한다는 홈즈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옳다. 하지만 홈즈 자신도 맨틀이 지구 내부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로, 또 어떤 모습으로 대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많은 과학적인 발전이 있고 나서야 우리는 맨틀 대류의 모습이 어떤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는 표현은 맨틀이 대류하는 모습에 대해 아직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해령에서 순환의 흐름이 상승하고 해구에서 하강하지만 해령과 해구 사이에서는 수평적인 흐름을 하고 있다. 


해구에서 하강한 흐름은 맨틀과 핵의 경계를 따라 수평으로 흐르고 해령에 가까워지면 다시 상승한다. 이렇게 볼 때 맨틀의 대류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순환이 된다. 그런데 이런 커다란 순환에 의문을 가지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 아래 위의 맨틀 성분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맨틀 성분 중에는 방사성 원소와 같은 성분도 있다. 과학자들이 이 방사성 원소의 양이 맨틀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만약 대류가 맨틀 전체에 걸쳐 일어난다면 대류 순환은 맨틀의 성분을 일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맨틀의 성분이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되면 이런 순환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대류가 맨틀 전체에 걸쳐 일어난다는 모델을 한 층 모델이라 한다. 


대류가 맨틀 상부에서만 일어난다고 하는 모델을 두 층 모델이라 한다. 두 층 모델이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맨틀이 한층으로 대류한다는 모델에 문제가 생기자 과학자들은 다른 모델을 생각해 냈다. 맨틀 대류가 상부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때 맨틀을 상부 맨틀과 하부 맨틀로 나누는데 그 경계는 지하 약 670km에 있다고 생각한다. 맨틀 전체의 두께가 약 2,700km이니 상부 맨틀은 하부 맨틀에 비해 얇은 층이다. 맨틀을 두 개의 층으로 나누고 대류가 상부 맨틀에서만 일어난다고 하는 모델이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딱딱한 고체의 맨틀 중에서도 연약권은 무르기 때문에 보다 쉽게 대류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층 모델에도 약점이 있다. 하부 맨틀에서도 상당히 복잡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맨틀 대류가 판들 이동시키는 기본적인 힘을 제공하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현상들은 판의 움직임이 조금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맨틀의 순환과 판의 이동이 관계한다면 해령과 해구는 맨틀의 상승부와 하강부로 고정된다. 과학자들은 여러 곳에서 해령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맨틀의 대류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맨틀 대류만이 판을 이동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설명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해령 자체가 움직이고 해령이 해구 아래로 침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판의 이동은 맨틀 대류뿐 아니라 침강하는 판의 잡아당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해령에서 만들어진 해양지각은 해령에서 멀어질수록 차가워지고 따라서 무게도 증가한다. 


해구에 접근하면 침강하는 해양지각은 아주 무거워진 상태이며 가라앉으려는 성질이 강해진다. 이때 침강하는 판은 뒷면에 있는 판들을 세게 잡아당기려는 성질이 생긴다. 이 때문에 해령도 끌려오면서 이동한다. 해령에서 산맥을 이루던 해양지각이 서서히 높이가 낮아진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생기면 그 사이에 있는 물체는 미끄러지지 않을까? 해령과 해구 사이의 해양지각은 수천 미터의 높이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 때문에 해령 부근의 지각이 계속 해구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해령 역시 해구 쪽으로 끌려 간다. 


세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1) 맨틀의 수평적 흐름, 2) 해구 쪽에서의 잡아당김, 3) 해령에서 해구쪽으로의 미끄러짐 등이다. 판이 움직이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어느 하나의 경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세 가지 경우 중 두 가지 또는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할 수도 있다. 판이 움직이는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할 수 있다. 기본은 판 아래의 맨틀이 대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맨틀은 대류하고 그 위의 판은 맨틀의 흐름을 타고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판의 무게 변화, 해저 높이의 변화 등이 함께 어우러져 판을 이동시키는 힘을 만드는 것이다. 정리하면 맨틀 대류, 해령 밀어내기, 해구 끌어당기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1) 맨틀 대류는 지구 내부의 뜨거운 열로 인해 맨틀이 서서히 대류하며 그 위에 떠 있는 판을 밀거나 끄는 것이다. 2) 해령 밀어내기는 해령에서 마그마가 솟아나와 새로운 지각이 형성될 때 차가운 판이 기존의 판을 옆으로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3) 해구 끌어당기기는 무겁고 차가워진 해양판이 밀도 차이로 인해 맨틀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뒤따르는 판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판 이동의 원동력은 해구 끌어당기기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부딪혀 만들어진 히말라야는 습곡 산맥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판의 윗부분 즉 대륙 지각들은 서로 충돌하여 솟구쳐 올랐지만 지각 바로 아래의 맨틀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인도판을 이루는 암석권의 맨틀 부분은 지금도 계속 유라시아판 아래로 기어 내려가고 있다. 아주 느린 속도이긴 해도 지금도 인도판은 유라시아 판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해양판이 침강하면서 다른 해양판과 부딪히는데 여기에서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는 침강하는 해양판의 암석과 다른 해양판의 암석이 부딪힐 때 아주 강한 마찰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마찰의 힘이 지진을 발생시킨다. 


또 다른 현상은 침강하는 해양 지각이 기어 내려가면서 압력을 받고 또 열을 받아 부분적으로 녹기도 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물을 방출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녹은 지각이 바로 마그마를 만들 수도 있고 방출된 물이 지각 위쪽의 맨틀을 녹여 마그마를 만들기도 하다. 침강하는 해양 지각과 그 위쪽의 맨틀에서 만들어진 마그마는 지표로 올라와 화산으로 분출한다. 그렇게 되면 해양 지각 위에는 화산섬들이 생겨난다. 하나 둘이 아니라 화산섬들이 쭉 늘어선 모습이다. 이렇게 해저에 뿌리를 둔 화산섬들이 줄지어 나타나 무리를 이룬 것을 호상열도라 한다. 평면으로 볼 때 섬들이 직선으로 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 표면이 둥글기 때문에 섬들의 배열은 활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그래서 활 호(弧)자의 모양이라고 해서 호상 열도라 부른다. 


일본의 태평양 쪽에도 이런 호상열도가 분포하고 있다.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침강하는 경우에는 마그마가 분출하는 장소가 해양이 아니기에 섬이 생기지는 않고 대륙지각 위에 화산들이 생겨난다.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침강할 경우 해구로부터 대륙 지각이 가까울 경우에 해양판의 밀어붙이는 힘과 활발한 마그마의 분출 때문에 대륙 지각의 가장자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해양 지각이 운반한 해양 퇴적물들이 대륙 지각에 쌓여 올라가면서 지각의 가장자리를 마치 산맥처럼 두껍게 만들기도 한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서쪽에 남북으로 솟아 있는 안데스 산맥은 바로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산맥이다. 태평양판 동쪽의 나스카 판이 남아메리카 판을 밀어붙이고 많은 양의 해양 퇴적물을 거기에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물론 엄청난 양의 마그마를 지표에 쏟아 붓기도 했다. 


지진은 해구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생하지만 그보다 깊은 장소에서도 일어난다. 아프리카 판을 자세히 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열곡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곡이란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지형이 움푹 패어 낮아진 곳을 뜻한다. 아프리카의 동쪽에 있는 이런 열곡의 연장을 동아프리카 열곡대라 한다. 아프리카의 유명한 호수들이 이 열곡대 주변에 모여 있다. 동아프리카 열곡대가 앞으로 생길 커다란 섬의 서쪽 경계가 될 것이다. 열곡대가 땅을 벌어지게 하는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원래 열곡이란 판의 확장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특징적인 지형이다. 맨틀의 대류가 상승해 와서 옆으로 이동하는 확장 경계에서는 맨틀 위의 암석권 즉 지판을 찢어놓게 된다. 그리고 암석권이 맨틀 대류의 흐름을 타고 좌우로 이동해 가면 대류의 상승류가 있는 장소의 땅이 아래로 꺼지게 된다. 이렇게 움푹 팬 지형을 열곡이라 부른다. 


열곡이 생기는 확장 경계의 중심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해양 지각에 있는 해령들에서는 그 중심부가 꺼진 열곡을 찾아보기 쉽다. 해양 지각이 아닌 아프리카라는 대륙 지각에서 열곡이 발견된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해양 지각에서는 보통 판의 경계에 열곡대가 생기는데 동아프리카 열곡대는 아프리카판의 내부에 발달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동아프리카 열곡대는 판의 내부에 생겨난 확장 경계라 할 수 있다. 해양판들 사이의 확장 경계와는 모습이 여러모로 다르다. 아프리카 열곡대를 만든 것은 일반적인 맨틀 대류가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상승류 즉 뜨거운 플룸이다. 


하와이 열도(列島)를 설명할 때 열점 이야기가 나온다. 뜨거운 상승류가 만들어지는 장소는 고정되었지만 판이 움직이기에 지각이 움직이고 그렇기에 섬들이 열(列)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화산섬들의 배열이 ㄴ자다. 하와이 열점에서 만들어진 오래된 화산섬들인 엠퍼러 해산군(海山群)은 북쪽으로 이동하는 태평양판을 따라 움직였고 약 4천만 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태평양판을 따라 하와이 열도가 줄을 짓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판 사이의 상대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하나의 판이 나타내는 절대적인 움직임을 알고 싶어 했다. 가령 태평양판을 생각할 때 이 판이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의 속도로 움직이는가를 밝히려 한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다. 


지구상의 모든 판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된 출발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출발점인 열점이 있기에 모든 판들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구상에 열점은 하와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많다. 갈라파고스도 열점이다. 판의 경계부에 위치하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판의 내부에 있다. 판구조론은 대륙이동설로부터 시작해서 해저 확장설을 거쳐 완성된 이론이지만 수십년 동안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로부터 얻은 자료의 축적이 없었다면 만들어지 수 없었을 것이다. 판구조론이 1960년대 후반에 완성되었다 해도 이론으로서의 발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지구 내부의 모습을 좀 더 확실히 들여다보게 된 것이 주효했다. 


지진파는 지구 내부 구조를 밝힐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지면 처음에 두레박은 물 위에 떠 있다. 그러나 두레박을 이리저리 젓게 되면 물이 채워진다. 무거워진 두레박은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때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670km까지 내려간 판의 운명도 우물 속의 두레박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판을 움직이는 대류 운동은 상부 맨틀의 대류이고 그 아래의 하부 맨틀과의 경계는 약 670km 정도다. 그런데 670km까지 내려간 해양판은 그 자리에 머문다. 우물 속의 두레박이 물이 채워져 무거워질 때까지 물 위에 머무는 것처럼. 해양판의 침강이 계속 일어나도 670km 지점에서는 밀려드는 해양판들이 어느 정도의 무게가 될 때까지 체류하게 된다. 


그러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불안정해진다. 충분히 무거워진 해양판은 더 깊은 곳으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물이 가득 채워진 두레박이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낙하하는 판의 무리는 계속 가라앉아 맨틀과 핵의 경계에 쿵, 하고 떨어진다. 그러면 그 주변에 있던 뜨거운 맨틀 물질이 반동적으로 상승을 시작하여 상승류를 만들게 된다. 뜨거워진 맨틀 물질의 상승류는 차가워진 해양판의 무리가 맨틀 - 핵의 경계에 떨어져 생기기도 하지만 맨틀과 핵의 온도 차이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아주 뜨거운 핵은 그 위에 놓인 맨틀을 가열시킨다. 그러면 맨틀은 가벼워져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차가운 판이 낙하하고 뜨거운 맨틀이 상승하는 현상을 플룸이라고 한다. 차가운 판의 낙하를 차가운 플룸, 뜨거운 맨틀의 상승을 뜨거운 플룸이라 한다. 우리가 지진파를 통해 밝힌 지구 내부의 온도 차이는 바로 차가운 플룸과 뜨거운 플룸의 존재를 나타낸다. 지구 내부의 저온부는 차가운 플룸이 하강하는 곳이고 고온부는 뜨거운 플룸이 상승하는 곳이다. 하와이 열점이 뜨거운 플룸이 상승하는 곳이다. 아프리카 내부로 상승하는 뜨거운 플룸은 아프리카의 동쪽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플룸구조론은 판구조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 보충해준다. 지구 표층의 운동은 판구조론이, 더 깊은 내부에서의 운동은 플룸 구조론이 설명하고 있다. 지구 심부(深部)에서는 뜨거운 플룸의 상승과 차가운 플룸의 하강이 일어난다. 지구의 표층에서는 상부 맨틀의 대류에 의해 판이 이동한다. 이런 움직임들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지배한다. 지구의 심장은 핵이다. 핵과 맨틀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마치 심장 박동과 같다. 이 박동에 의해 지구의 에너지가 나가고 돌아온다. 그 에너지는 뜨거운 플룸을 동맥으로, 차가운 플룸을 정맥으로 하여 계속 순환한다. 이 순환이 지난 46억년 동안 대륙을 모으고 떨어지게 한 동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