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겨를이 없을거라 짐작해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대해 황급히 100자 평을 적었다.
‘아, 이런 저급한 책을 독자들이 안사면 좋겠는데’
급하게 적은 탓일까. 100자평을 다시 읽어 보니 비판의 이유가 불충분해 보였다.
기득권과 재벌에 아부하기 바쁜 버러지같은 지식인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공모씨, 이모씨, 김모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페이퍼는 이들을 까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한편 기득권에게 아부하기보다 눈치만 살살보는 지식인 부류가 있다. 특히나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강단 철학자들. 이 책의 저자 최진석이 대표적이다. 이번 책을 포함해 그의 책 세 권을 읽었지만 신자유주의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대를 말하겠다고? 현 시대의 비판 없이 무슨 철학을 하겠다는 건가? 독자에겐 입으로는 비판하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시대에 대해 입도 뻥긋 안한다. 독자에겐 구체적 현실을 바라보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애써 외면한다. 책 전체가 온통 이런 식이다.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우리는 여태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아온 후진국민이었다는 것이다. 고로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국민이 되자는 거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과연 그럴까?
최진석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각국의 고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미국은? 미국은 프래그머티즘이 있었기 때문에 강대한 국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다. 프래그머티즘 덕택에 미국은 후진국의 독재자들을 막후 지원해 수 억명의 인류를 학살한 건가? 한국은 그런 철학이 없어서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이고? 경험주의의 영국은? 고유의 철학이 있어서 마약 안 산다고 전쟁을 벌인거고? 독일 철학을 내세워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최진석은 문화 사대주의에 찌들대로 찌들었다. 왜 노자 철학을 할까? 프래그머티즘을 해야지.
사실 프래그머티즘이 철학인가?
최진석의 주장과는 달리 고유의 철학 때문에 어떤 나라가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다. 중세시대 철학이 종교의 시녀였다면 현대에 들어와 철학은 국가의 시녀 역할을 했을 뿐이다.
도대체 이 책의 어디가 어떻게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건지? 자기 책에 저런 제목을 붙이면 민망하지 않을까?
제목도 참 저급하긴.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김준산, 김형섭의 <철학 듣는 밤>을 연이어 읽었다. 저자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 검색해보니 <두 남자의 철학 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시는 자칭 ‘철학도’다. 이들이 하는 사유의 깊이와 폭에 어찌나 놀랐던지. 이런 게 탁월한 거다.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