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사후 400주년이라 셰익스피어 관련 책을 읽고 싶어,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을 손에 들었으나,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멍청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덩달아 내 시간까지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결론은 셰익스피어 희곡은 셰익스피어가 썼다는 것. 나는 사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셰익스피어가 썼건, 베이컨이 썼건, 달걀이 썼건, 외계인이 썼건 관심 없다. (달걀이 썼다면 쬐끔 관심이 생길 듯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을 실패하고, 다시 집어든 셰익스피어 관련 책이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였다. 이런 책일 줄 몰랐다. ......성인이 읽기엔 쬐끔 민망하기도..... 중학생 정도가 타깃 독자층이라고 할까.

 

셰익스피어 희곡의 내러티브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희곡이 오해오인의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독창적인 이야기도 없다. 오늘날로 치면 셰익스피어 전 작품이 거의 다 표절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사는 정말이지......셰익스피어 희곡을 영국 본토인의 발음으로 들으면 무릎이 후들거린다.

 

작가는 셰익스피어 희곡 중 아홉 편의 작품을 소설처럼 요약했다. 셰익스피어 극의 멍청한 플롯을 요약하곤 싶진 않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대사들만 정리해 본다. 역자 송태욱의 번역은.....무난한 편이지만.... 나로선 전혀......원문을 찾아 읽는 수밖에.

 

책을 읽으며, 가장 다시 읽고 싶은 희곡은 역시나 <햄릿>이었다. ‘To be or not to be’를 이 책에선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로 번역했다. 아마도 역자의 번역이라기보단 오다시마 유시의 번역일 것이다. 한국 번역가들은 언제까지 오욕과 오역의 번역사를 이어갈 것인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명명백백한 오역이다. 햄릿은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한국 셰익스피어 번역가들,.... 죽고 잡냐? (옛날엔 오역하면 죽었다.) 오다시마 유시의 번역이 원문의 뜻에 가깝다. ‘죽느냐, 사느냐는 마치 햄릿이 자살을 고민하는 것처럼 들린다. 햄릿은 3막에서 전혀 자살할 생각이 없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해야 함에도, 죽음을 두려워해 행동하기를 머뭇거리는 자신의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문맥을 따르자면, ‘to be’왕권도 소중한 목숨도 잔학무도한 놈한테 빼앗긴 부왕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뜻한다. ‘not to be’는 당연히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하는 행위를 뜻한다. 만일 나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복수를 결행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정도로 해석하겠다.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의 번역은 햄릿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거나 멍청해 보일뿐더러 무슨 뜻인지 애매모호하다.

 

셰익스피어 사후 400년이 되었건만, 아직까지도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역 투성이 <햄릿>을 읽어야 하다니! 한국의 학자, 번역가라는 것들은 왜들 이리 책임감도 없고 게을러 터졌을 뿐만 아니라 지독히도 멍청한 걸까. 살무사의 알들. 타성에 찌든 이 걸어 다니는 그림자들!

 

셰익스피어 번역 경연 대회라도 열어야 할까. 한국에서는 방법이 없다. 전체 드라마의 문맥에 유념하여 각자가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것 말고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 입술은 당신 입술로 죄가 씻기었소.”

그럼 저는 당신 입술에서 죄를 받은 건가요?”

제 입술에서 죄를요? 오오, 부드러운 힐책. 그럼 그 죄를 돌려주시오.”

 

단 하나의 내 사랑이 단 하나의 미움에서 태어났다니.”

 

잠깐, 저 창문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빛은 뭘까? 동쪽에서 빛이 나니, 그럼 줄리엣은 태양인가.”

 

사랑이라는 가벼운 날개로 이 담을 날아 넘었소

 

맹세하겠소. 저 과일나무 우듬지를 온통 은빛으로 물들이는 달을 두고.”

 

오호, 행복하고 행복한 밤이로다. 밤이라 해도 모든 게 꿈은 아니겠지?”

 

빨리, 빨리, 불꽃 발의 어린 말들이여, 태양신을 오늘 밤의 숙소까지 데려오라. 오라, 아름다운 밤이여, 그리고 로미오를 내게 보내줘. 로미오가 죽으면 돌려줄게. 잘게 썰어 작은 별로 만들면 돼. 그러면 로미오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지상의 사람들은 모두 밤을 사랑하게 되겠지.”

 

이 가슴이 너의 칼집, 거기서 잠들어라.”

 

한 여름밤의 꿈

 

잔디 덩이 하나면 베개로 충분할 거야. 마음은 하나, 침대도 하나, 가슴은 두 개라도 사랑의 진실은 하나니까.”

 

혀야, 빛을 거두어라.

달아, 이제 그만 말하라,

이제 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

 

베니스의 상인

 

내가 유대인이어서? 유대인을 뭐로 보는 거야? 유대인한테 눈이 없어? 손이 없어? 오장육부, 사지오체, 감각, 감정, 정열이 없기라도 하다는 거야? 그리스도교도와 어디가 다른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날붙이에 상처 입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으로 낫고, 같은 겨울의 추위, 여름의 더위를 느끼지 않기라도 한다는 거야?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나고, 간지럼을 피워도 웃지 않고, 독을 먹어도 죽지 않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가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면 안 되기라도 한다는 거야?”

 

당신의 눈에 제 마음은 둘로 갈라지고 말았어요. 절반은 당신 것, 나머지 절반도 당신 것,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 것은 당신 것, 그러니 모두 당신 것....”

 

그러니 외양의 아름다움은 내용물을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비란 의무에 의해 강제되는 게 아니오. 하늘에서 내려와 저절로 대지를 적시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오. 당신은 정의를 요구하는데, 생각해보시오. 정의만을 요구하면 누구 한 살마 구할 수가 없소.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바라며 기도하고, 기도 자체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겠소?”

 

 

꼭 이런 밤이었지. 트로일로스가 트로이 성벽 위에 홀로 서서 크레시다가 잠자고 있는 그리스 진영을 향해 한숨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 것은.”

 

저렇게 작은 등불이 이렇게 멀리까지 빛을 비추다니! 아마 좋은 행위는 나쁜 세상을 저렇게 비추겠지.”

 

줄리어스 시저

 

난 나와 같은 인간을 무서워하며 사는 인생이 질색이네.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난 시저와 마찬가지로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자네도 마찬가지네.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고, 마찬가지로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지. 그런데도 어떤가? 시저는 로도스 섬의 거인상처럼 세계가 좁다는 듯이 우뚝 서서 가로막고 있고, 우리들처럼 자그맣고 보잘것없는 사람은 그 거대한 다리 사이를 헤매면서 마땅히 부끄럽게 여겨야 할 묏자리를 찾고 있는 데 지나지 않지. ”

 

오늘이여, 너는 오욕의 시대다!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 사람의 인간이 모든 영예를 독점한 시대가 있었나?”

 

살무사가 기어 나오는 것은 반드시 화창한 날이다. 시저는 이를테면 살무사의 알이다. 일단 부화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따라서 알일 때 죽여야 한다.”

 

겁쟁이는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죽는 생각을 하지만 용감한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것은 한 번뿐이오.”

 

썩 물러가라. 올림포스 산을 움직일 생각이냐?”

 

, 몸을 굽혀 손을 피에 적십시다. 천 년 후까지도 우리의 이 장렬한 장면은 되풀이되어 연출될 것이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들에서,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언어로.”

 

브루투스의 연설.

 

로마 시민, 우리 동포,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이 군중 속에 혹시 시저의 친구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한테 말하겠소. 시저를 사랑하는 브루투스의 우정은 그 사람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고 말이오. 또 그가 시저를 죽인 이유를 듣고 싶어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오. 그건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로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오. 시저는 날 총애해주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소. 시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기쁘지 않을 수 없소. 시저는 용감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소. 하지만 시저는 야심을 품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시저를 찌르지 않을 수 없었소. 시저의 사랑에는 눈물을, 시저의 행복에는 기쁨을, 시저의 용기에는 존경을, 그리고 시저의 야심에는 죽음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거요....”

 

안토니의 추도사.

 

내 친구, 로마 시민, 동포 여러분, 들어주시오. 내가 온 이유는 시저를 묻기 위해서지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나는 여기서 부루투스와 여러분의 허락을 받고 이렇게 시저의 추도사를 하게 되었소.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고 여러분도 공명정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시저는 나에게 성실하고 공정한 친구였소. 하지만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시저는 로마로 많은 포로를 데려왔소. 그 몸 값은 모조리 국고로 환수되었소. 그런 시저에게 야심의 그림자가 보였을까요? 가난한 사람이 굶주림에 울 때 시저도 눈물을 흘렸소. 야심이란 좀 더 냉혹한 것으로 만들어졌을거요. 하지만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하오. 그리고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여러분은 모두 루페르칼리아 축제 때 목격했을 거요. 나는 시저에게 세 번 왕관을 바쳤으나 시저는 세 번 다 거절했소. 그게 야심이오? 하지만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하오. 그리고 물론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나는 인생을 시작한 날 인생을 마치려 하고 있네. 나는 인생의 결승점을 지나쳤어.”

 




























십이야.

 

어머, 난 그렇게 차가운 여자가 아니에요. 내 아름다움을 명세서로 작성하여 이 세상에 남겨두기로 하죠. 하나, 상당히 붉은 입술 두 개. 하나, 푸른 눈 두 개, 눈꺼풀 딸림. 하나, 머리 한 개. 하나, 턱 한 개 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엉클어진 실을 나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 아아, 시간이여, 매듭을 푸는 일은 너의 손에 맡기겠다. ”

 

신분이 낮은 사람을 사랑하면

루크레티아의 명검처럼

침묵은 내 가슴을 찌르는,

목숨이다. “

 

내 운명의 별이 그대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고귀한 신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어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고귀한 신분을 획득하는 사람도 있고 고귀한 신분을 내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대의 운명이 손을 내밀고 있어요. 결연한 용기로 그 손을 잡으세요.”

 

사랑의 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습니다.”

 

남자는 연하의 여자를 애인으로 두어야 하네. 여자란 장미꽃, 그 아름다움은 덧없는 생명. 지는 것도 한순간, 피었나 싶으면 지는 거라네.”

 

더러움을 모르는 봄날의 장미에 걸고 처녀의 지조, 명예, 진실, 이 모든 것을 걸고 당신을 사랑해요.”

 

저에게도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옷, 두 개의 몸, 자연이 만들어낸 거울이로군.”

 

어떻게 당신은 두 사람이 되었나?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도 이 두 사람만큼 닮지는 않겠어.”

 


햄릿

 


아아, 너무나도 단단한 이 육신이 녹아내려 이슬로 사라져주지 못하는 걸까! 적어도 자살을 금한 신의 율법만이라도 없었다면, 아아, 어찌하면 좋을까! 나한테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성가시고 지겹고 쓸데없는 것으로만 보이는구나. 싫다, 싫어. 이 세상은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나 황폐해진 채 내버려진 정원이고 역겨운 것만이 설치며 만연해 있다. “

 

마음이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겨우 한 달 만에, 아니, 아버지의 유해에 달라붙어 니오베처럼 눈물에 잠겨 묘지까지 따라간 어머니의 그 신발이 닳기도 전에,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아, 사리분별을 못하는 짐승이라도 좀 더 슬퍼할 텐데.”

 

아아, 어쩌면 그토록 무엄하게 빠르단 말인가, 그토록 재빨리 불의의 잠자리에 뛰어들다니! ”

 

요즘 세상은 관절이 삐어 있어. 우울한 이야기지. 그걸 바로 잡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니!”

 

자네들은 무슨 나쁜 짓을 한 건가? 운명의 여신이 이 감옥에 쳐넣다니 말이야.”

길든스턴이 감옥?”하고 반문하자 햄릿이 대답했다.

덴마크는 감옥이네.”

 

나는 설사 호두 껍데기에 갇혀 있어도 무한한 우주를 지배하는 왕이라고 믿는 사람이네.”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 그것이 문제로다. 과연 목적이 훌륭한 삶인가? 이대로 마음속에 포학한 운명의 화살과 탄알을 맞으며 가만히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밀려드는 노도와 같은 고난에 감연히 맞서 싸워 그것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죽는 것은 곧 자는 것, 그뿐이다. 자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마음의 괴로움에도, 육체에 따라다니는 갖가지 고통에도, 그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종지부 아닌가? 죽는다, 잔다. 잔다, 아마도 꿈을 꾸겠지. 거기다, 발이 걸리는 건, 이 세상의 걱정에서 간신히 벗어나 영원히 잠드는데, 거기서 어떤 꿈을 꾸는 거지? 그게 있으니까 망설이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언제까지고 괴로운 인생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참으랴.

 

세상 사람들이 퍼붓는 비난, 권력자의 무법적인 행동, 오만한 자의 모멸,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랑의 고통, 재판의 지연, 관리들의 횡포, 훌륭한 인물이 하찮은 놈에게 견디는 굴욕, 이런 무거운 짐을 누가 견디겠는가? 그저 단검으로 한 번 찔러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데. 괴로운 인생에 신음하면서 땀을 흘리며 걷는 이유도 그저 사후에 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사후의 세계는 미지의 나라다. 사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자는 한 사람도 돌아온 예가 없다. 그래서 결심이 약해지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저 세상의 고생에 뛰어드느니 익숙한 이 세상의 근심을 견디려 하는 거다. 이처럼 번민하는 마음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이처럼 결의의 색조는 고뇌의 핼쑥한 도료로 덮인다. 생사가 걸릴 만큼 중대한 일도 그 때문에 어느새 나아갈 길을 잃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끝나고 마는 것이다.....”

 

아아, 햄릿, 넌 이 가슴을 둘로 찢어놓았구나.”
그렇다면 나쁜 쪽을 버리고 좋은 쪽만 남겨 맑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세요.”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신의 섭리. 올 것이 지금 오면 나중에는 안 오네. 나중에 안 온다면 지금 오겠지. 지금이 아니어도 올 것은 반드시 오는 것이네. 무엇보다 각오가 중요하지.”

 

오셀로.

 

번쩍이는 칼을 거두어라. 밤이슬에 녹슬겠다. 각하, 명령은 연세로 내리면 충분합니다. 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명예로운 살인자라고 불러주시오. 내가 한 짓은 증오 때문이 아니라 모두 명예 때문이었소.”

 

리어왕

 

바람아, 불어라. 너의 뺨을 찢어놓을 때까지 마구 불어라! 비야, 내려라, 폭포가 되고, 맹렬한 회오리가 되어 우뚝 솟은 탑, 수탉 모양의 풍향계마저 삼켜버릴 때까지 마구 쏟아져라!”

 

내게는 길이 없다. 그러니 눈도 필요 없어. 눈이 보였을 때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곤 했어. 아아, 에드거, 사랑스러운 아들아, 속아 넘어간 아버지의 분노에 네가 희생되었구나!”

 

아아, 지금이 최악의 상태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게 최악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동안은 진정한 최악의 상태가 아니다.”

 

참지 않으면 안 되네. 사람이 태어날 때 우는 이유는 이 광대들의 무대에 끌려나온 것이 슬퍼서야.”

 

도망치는 거예요, 아버님, 사람은 참아야 해요. 이 세상에 나올 때도 떠날 때도 사람한테 자유는 없어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각오가 중요해요.”


맥베스.

 

좋은 건 나쁘고 나쁜 건 좋다네

 

겉은 무심한 꽃으로 가장하고 그 뒤에 뱀을 숨기는 거예요.”

 

저는 갓난아기를 키운 적이 있어요. 제 젖을 빠는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지 알지요. 하지만 저는 미소 짓는 갓난아기의 부드러운 잇몸에서 제 유두를 강제로 떼어내고 머리를 부숴버릴 수도 있어요. 조금 전의 당신처럼 일단 한다고 맹세했다면요.”


, 얼굴을 환하게 펴시오. 아무리 밤이 길더라도 반드시 날이 새는 법이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렇게 시간은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걸아가 끝내는 역사의 마지막 한 순간에 이른다. 어제라는 날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이 먼지가 되는 죽음으로 가늘 길을 비쳐왔다. 꺼져라, 꺼져라, 한 순간의 등불!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다. 무대 위에서 과장된 몸짓을 해도 차례가 끝나면 사라진다. 어리석은 자가 말하는 이야기다. 아우성치는 소리와 분노는 무시무시하지만 의미는 전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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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4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6-1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좋습니다~^^
전 닥치고, 뉴트롤스 아디지오나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투 다이, 투 슬립, 메이 비 투 드림~~~~~^^

시이소오 2016-06-14 10:12   좋아요 0 | URL
오, 햄릿이군요. ^^

마키아벨리 2016-06-1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근 교수 강연에서 (그대로 있으면서) 왕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라고 말하신 것을 들은 기억이 나네요

시이소오 2016-06-14 10:53   좋아요 0 | URL
아, 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네요.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 왕의 관점이지 햄릿의 관점은 아닌 듯 합니다. ^^

syo 2016-06-1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이느냐 살리느냐였군요ㅡㅡ세상에

시이소오 2016-06-14 11:06   좋아요 0 | URL
ㅋ 그런뜻이죠.바로 이해하시는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퍼 식으로 표현하자면 라임과 플로우를 살려서


˝ 할까 말까, 그게 문제니까... ˝


뭐. 이런 거네요..

시이소오 2016-06-14 13:39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그런거죠.

cyrus 2016-06-14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죽느냐, 사느냐’와 유사하게 번역한 분이 故 최재서 평론가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의 <햄릿> 번역본이 한정판매로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최재서 평론가는 햄릿의 대사를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라고 번역했어요.

시이소오 2016-06-14 18: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최 재서 평론가역이 앵무새 번역가들 역보단 낫네요.^^

페크pek0501 2016-06-1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갖고 있는 책도 사느냐, 죽느냐~ 인데
덕분에 중요한 것 얻어 갑니다.

시이소오 2016-06-15 11:11   좋아요 0 | URL
제 책, 펭귄판도 그러네용
이 부분을 제대로 번역한
햄릿이 과연 있을지 궁금합니당 ^^
 

알라딘 이웃님이신 찔레꽃님이 쓰신 책이다. 길에서 주운 한자로 이 정도의 분량의 책을 쓰시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자의 한자 사랑에 경외심을 느낀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걸 왜 읽고 있지?’ 나는 한자가 아니라 독자와 저자에 대해 고민했다. ‘읽는 사람이 있고 쓰는 사람이 있다. ‘읽는 사람의 목적이 있다면 쓰는 사람의 목적이 있다. 저자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이 책은 분명 쓰여 질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만일 저자가 저자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썼다면 독자인 나로선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저자가 독자를 위해 쓰고 싶고, 책이 좀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길 바란다면 실례를 무릅쓰고 몇 가지 제안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자는 두 번째 책을 준비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한자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들이 아니라면 나 같은 한자 문외한으로선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아무런 목적을 찾을 수 없었다. 텍스트는 있으나, 컨텍스트가 없다. 즉 끝까지 읽어야 할 아무런 맥락이 없다. (리뷰를 쓰는 모든 책은 읽고 쓰지만, 이 책만은 읽는 와중에 쓴다. 한자 문외한으로 언제쯤 완독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1. 스토리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몇 명이나 될까? <미움 받을 용기>가 대화 형식이 아니라 단지 강연 형식이었어도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김정선님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얇은 분량이지만 쉽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책은 끝까지 읽도록 독자를 추동한다. 나는 문법 소설이란 별명을 붙였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 가요?>는 문법과 저자의 이야기가 챕터마다 번갈아 교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법의 피로함을 이야기가 해소해준다. 이야기는 문법으로 숨이 막힐 즈음, 숨을 쉬게 해준다. 만일 소설이 삽입되지 않고 오로지 문법만 있었다면??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2. 이미지

 

최근엔 표지 디자인에 공을 들인 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독자로선 반길만한 일이다. 박솔뫼의 <머리부터 천천히> 같은 경우, 그냥 사고 싶다.

 

저자도 포장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책은 독자를 유혹하기 위한 아무런 포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에 게재된 모든 사진들을 명함보다 작은 크기의 흑백 사진으로 채워 넣다니! 아무래도 제작비 때문일까?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을 읽고, 어찌나 사고 싶던지.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라 그런지 사진 한 장 한 장 허투루 찍은 사진이 없다. 이 정도만큼의 공을 들일 순 없을지라도 사진을 크게, 컬러로 실을 순 있지 않을까.

 

3. 염궁, 생각의 화살을 쏘다.

 

내용을 대폭 삭감하더라도 이미지에도 관심을 두신다면? 최근 발간된 숱한 한자 책들을 보더라도 한자 자체를 이미지화 시켜 좀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추세다. 책에 들어가는 사진 역시 칼라로 큼지막하게 넣어주면 좋겠다.

 

은 너무 방대해 보인다. 내용들이 너무 파편화되어 있어 책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파편화되어 있는 내용들을 어떤 식으로든 엮어야 하지 않을까. (, 여름, 가을, 겨울은 저자의 관점이지 독자의 관점이 아니다. 독자의 관점에서 엮어야 한다.)

스토리를 가미하는 여러 방식을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 예를 들면 아이와 엄마, 아빠, 한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 혹은 여행 기간 동안 만나는 한자를 소개한다면?

 

여행기와 결합하는 방식은 어떨까? 궁궐이면 궁궐, 절이면 절, 혹은 어느 지역만으로 한정한다면? 혹은 전국 맛 집을 대상으로 삼고, 음식점들마다 대표 메뉴 사진도 큼지막하게 넣는다면? 또는 서울 지하철 역 이름 만으로 한정해도 책 한권은 나올 것 같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따라 여행하며 거기에 나오는 한자들만 추려도? 한국화나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만을 다룬다면? 혹은 한자 급수에 나오는 한자를 전부 다룬다면?

책을 읽어야 할 목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저 주례사 비평으로 써야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과연 그게 독자에게, 또한 저자에게 도움이 될까? 첫 책은 저자를 위해 썼다면 두 번째 책부터는 독자를 위해 쓰시는 건 어떨지. 어찌되었건 저자는 이제 자신의 책을 가지게 되었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스토너>를 읽고 독자인 나는, 저자들이 부러웠다.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 동반자가 있다니

자신의 책을 펼치며 느끼는 짜릿함을 나는 느낄 수 없다니.


 

저자는 자신의 책에 대해 자부심과 짜릿함을 누리시고

부디 건필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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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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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6-1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꼭 사서 읽어야 겠군요. 불끈!

시이소오 2016-06-10 13:27   좋아요 0 | URL
한참전에 사신줄 알았는데요
ㅋ ㆍ 반전있어요 ㅎ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는 와중에 리뷰를 썼다가 시작과 끝의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경우도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너무 좋아서 설레발치며 읽는 중간에 리뷰 썼다가... 나중에는 정반대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시이소오 2016-06-10 14:00   좋아요 0 | URL
그래서저도 절대로 다 읽기전에는 리뷰를 안 씁니다만
ㅋ 그렇게 됐네요 ^^;

stella.K 2016-06-1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머리부터 천천히 표지 그림 정말 예쁘군요.
전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가 표지가 별로더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교유서가 책들이 대체로 표지가 썩 그렇더군요.
책을 사는데 표지가 반인데 말입니다.ㅋ

시이소오 2016-06-10 14:22   좋아요 0 | URL
표지 중요한데 말이죠 ^^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젼차로ㅋ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를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도 좋습니다

시이소오 2016-06-10 15:10   좋아요 0 | URL
워크룸 프레스가 뭔가요? 출간 예정책들에 대한 독자의 제안같은 걸까요 ? ^^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워크룸 프레스는
출판사 이름이구요.
제안들은 울 나라에 많이 소개 안된 책들을 번역해 소개 하는걸루 알고 있습니다..
책 표지가 깔끔하고 컬러도 이쁘고 활자도 시원시원해서 모으고 있어요^^

시이소오 2016-06-10 15:32   좋아요 0 | URL
아, 글쿤용ㆍ덕분ㅇㅔ
새로운 걸 알게 되었네요. 저도 워크 프레스 출판사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강요님, 고마워요 ^^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배수아. 황정은 작가님
덕분에 ...
황정은 작가님은 제안들 시리즈를 저랑 같은 이유로(이뻐서 ㅋ)
모으고 있다하고 배수아님은 제안들에 참여 하시고 있는걸루 알고 있어요^^

시이소오 2016-06-10 16:08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들이네요. 지금은 배수아 역 불안의서를 읽는중이랍니다 ^^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안들1 이 배수아작가님이 옮긴 프란츠 카프카의 꿈 입니다^^

시이소오 2016-06-10 16:39   좋아요 0 | URL
ㅋ 저도 사고싶네요.
참고 빌려 읽어야겠어요^^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
시이소오님을 설득하지 못했어~~ㅋ

시이소오 2016-06-10 17:35   좋아요 0 | URL
설득 됐어요
. 단지 책 살 돈이 없어서 (쿨럭)

돈 생기면 한번에 왕창
살거에요.ㅋ ㅋ




yureka01 2016-06-1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득 실패 ㅎㅎㅎㅎ^^..

깊이에의강요 2016-06-10 17:58   좋아요 1 | URL
ㅠ ㅋ

시이소오 2016-06-10 18:13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ㅋ ^^

2016-06-10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madology 2016-06-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기획자분이 보시면 좋겠네요. (아니면 시이소오님이 관계자시던가요?)

시이소오 2016-06-11 09:49   좋아요 0 | URL
노마돌로지님, 저는 순수한 독자입니당.
^^
 

**** 경고 : 본 페이퍼에는 다수의 욕설이 포함되어 있으니 고상하고 우아하신 분들은 클릭을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학 시절, 과에서 영화 소모임 활동을 했다. 축제 때, 영화제를 주최했다. 이른바 <섹스 & 파시즘 영화제>. 다섯 편의 영화를 틀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 두산 마카비예프의 <유기체의 신비>,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피에르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제는 대박 났다. 매 상영회마다 학생들로 강의실이 꽉꽉 들어찼다. 지금이야 어디서건 야동을 다운 받아 볼 수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이 위에 상영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루트가 별로 없었다. 신세계였으리라.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강신우, 이상용의 <30금 쌍담>은 네 편의 영화를 토론의 소재로 삼는다. 영화제에 소개한 영화들과 세 편이 겹친다. <감각의 제국>, <살로, 소돔의 120>, <시계태엽 오렌지>, 그리고 루이스 부뉴엘의 <비리디아나>

 

이 네 편의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상담한 내용들이 책으로 엮였다. 강신주의 조언들은 젊은이들에게 유용해 보인다. 강신주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사랑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자라고 충고한다. 자고 났는데 이성과 섹스 말고 뭔가 다른 걸 해 보고 싶다면 사랑을 느끼는 거란다. 고개가 끄덕끄덕. 일단 자고 보시라.

 

언급한 여섯 편의 영화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지만,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 120>은 그야말로 위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파시즘이 종말을 고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네 명의 파시스트는 아홉 명의 소년, 소녀를 납치해 자신들만의 제국을 만든다. 민병대들이 소년, 소녀들을 감시한다. 한국 군인들과 견찰들은 민병대가 아닌가. 네 명의 파시스트는 누구일까? 색누리당 ,도살자의 딸과 같은 정치인, 개독같은 종교인, 삼성 같은 재벌, 양승태 같은 판사와 떡검 같은 법률가들 아닐까. 이들이 작당하여 국민의 삶은 지옥이 된다. 이 영화는 권력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야 한다. 파시스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우리가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건 단순히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소년 소녀들에게 서로의 똥을 먹으라고 강요한다. 죽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똥을 먹는다.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 희생자들은 같은 희생자들을 고발한다. 파시스트들은 사랑을 금지한다. 그러나, 흑인 하녀와 사랑을 나누던 남자가 파시스트 앞에 서서 한 팔을 당당히 든다. 영화 속에서 네 명의 파시스트들이 유일하게 움찔한 순간이다.

 

엔딩의 민병대 청 년 두 명이 클래식 음악을 끄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지옥 한 가운데에서 파솔리니는 희망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닐까. <살로, 소돔 120>은 회고적이면서 현재적이고 예언적인 작품이다. 한편의 묵시록이다.

 

똥이 나오니 더럽고 욕설을 하니 우아하지 못하다고? 클래식을 들으며 눈앞에 버젓이 드러나는 파시스트들의 온갖 추악한 행태를 보지 않으려는 게 우아한 걸까? 똥을 쳐 먹고 있으면서 똥인지 된장인줄 모른다. 나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욕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니, 그러고 싶지가 않다. 개새끼를 개새끼라 하고 쌍년을 쌍년이라 하지 그럼 뭐라 불러야 할까? ‘개새끼님이라고 할까?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사랑을 재발견할 것을 주장한다. 강신주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너나할 것 없이 안락하고 편안한 것만 추구한다. 위의 영화들은 포르노가 아니다. 오늘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우리가 포르노다. 우리에게 똥을 먹이는 자본주의 앞에서, ‘신비로운 공명을 바탕으로 한 사랑만이 저항의 출발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에로스는 영혼을 조정한다. 에로스는 영혼의 모든 부분, 즉 충동, 용기, 이성을 지배한다. 에로스의 날개짓은 우리가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할 때 마다 우리를 건드리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강해지자.

사랑을 재 발명할 수 있도록.

 

 

 

원망하는 게 가장 쉽거든요. 그 순간 나는 뭐가 되느냐 하면 바로 선한 자가 되는 겁니다. 니체는 이걸 ‘노예 감정’이라고 말했어요. ‘주인’은 원망하지 않아요. 주인은 문제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원망하기보다 해결하고 타계할 길을 궁구하죠.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쓴 책 중에 <미니마 모랄리아>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뜻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도덕적인 부분도 ‘최대성’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보다, 최소한의 것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할 필요가 없거든요.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개선책은, 글을 쓰는 거예요. 욕망을 배설할 방법이 필요한 거예요. 자, 이제 여기 무대 앞으로 나와 보세요. 한번 욕해 보세요. 욕하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 있죠? .....사실 욕은 굉장히 건강한 거예요. 그런데 이처럼 건강한 욕조차 못 하니까 내면에 막 쌓이는 거예요.

따라서 완전한 약자나 완벽한 강자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전자는 폭력을 행사할 힘이 없고, 후자는 그것을 굳이 행사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중간에 있는 어정쩡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강자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약자인 사람 말이다. 그러니 압도적으로 강해져라. 내면뿐 아니라 외면까지도!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폭력적 성향,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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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6-0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내가 다 본 영화들이로군요. 저 영화들은 영화제 때마다 항상 대박이 터지는 영화들입니다. 볼 기회가 이런 영화제 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ㅎㅎㅎ 그나저나 저는 강신주가 지나치게 좀 뭐랄까요... ㅎㅎㅎ 하튼 저와는 케미가 안 되는 인물입니다..

시이소오 2016-06-04 13:26   좋아요 0 | URL
요즘도 그런가요
다운받아 볼법도 한데요 ㅋ
강신주 글쿤용 ㅎ ㅎ

cyrus 2016-06-04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 때 파졸리니의 영화 <살로 소돔>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비위가 강한 편이라서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영화를 다운 받은 제 친구는 충격적인 영화 장면 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까지 갔습니다. ㅋㅋㅋㅋ 그 친구랑 같이 본 또 한 편의 영화가 모니카 벨루치가 나오는 <돌이킬 수 없는>이었습니다. 그땐 철 없는 시절이라서 벨루치가 강간당하는 장면만 돌려 보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짓이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입니다.

시이소오 2016-06-04 18:52   좋아요 0 | URL
영화 메시지를 제대로 캐치했다면 다시 보셔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

moonnight 2016-06-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돔은 예전에 불법다운만 받아놓고 결국 못 봤던 영화입니다. 책만 읽고도 충격이 커서요^^; 시이소오님 글을 읽고보니 이참에 다시 시도해볼까 싶어지네요.^^

시이소오 2016-06-05 08:55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강추합니다. 위대한 영화에요. ^^
 

작가의 책 도나 타트 존 어빙 헤밍웨이

 

내가 소설 전체를 통째로 필사한 유일한 작품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다. 필사하는 내내 즐거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열권을 뽑자면 한 손가락은 <위대한 유산>에 바쳐질 것이다. 가장 디킨스다운 현대 소설가는 단연 존 어빙이다.

 

<작가의 책> 존 어빙 편을 들춰볼까.

 

당신의 삶을 바꿔놓은 책이 있다면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그리고 가장 핫한 디킨스는 도나 타트가 아닐까.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곧장 디킨스를 떠올리게 한다. 골동품 점의 호비 아저씨는 <위대한 유산>의 조 가저리다

최근에 디킨스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읽고서 그런 추측은 점점 강해졌다.

 

<작가의 책>의 도나 타트 편을 참고해볼까.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들은, 제가 작가가 되고 싶게 만들어준 이들인데, 대부분 19세기 작가들이에요. 디킨스, 멜빌, 헨리 제임스, 콘래드, 스티븐슨,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들인데, 그 목록에서 맨 앞 자리를 차지하는 이는 아마 디킨스일 겁니다. 20세기 소설가들이라면, 나보고프, 에벌린 워, 샐린저, 피츠제럴드, 돈 드릴로이고, 21세기 소설가들 중에서 지금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에드어드 세인트 오빈과 폴 머리예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가장 과대평가된 책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두 작가는 똑같은 작가를 뽑았다.

누굴까?

 

 

헤밍웨이다.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줬으면 좋겠다.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라면 누가 있을까요?”

 

그럼 이렇게 답할텐데.

 

헤밍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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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못미 헤밍웨이 -_- ㅠㅠ

디킨스 좋죠.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위대한 유산 짱짱 조음..

시이소오 2016-05-13 11:32   좋아요 0 | URL
작가의 선호야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 아닐까요?
나보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 싫어했잖아요. ㅋㅋ

위대한 유산 넘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무진장 싫어했죠.. 전 나보코프도 좋고 도스토도 좋습니다.

시이소오 2016-05-13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둘 다 좋네요. ㅋㅋ

blanca 2016-05-1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유산>을 필사를 다 하셨다고요? 우아!! 저는 영화부터 봐서 너무 많은 간섭 현상이 일어나더라고요. 저는 <두 도시 이야기>도 좋았어요. 헤밍웨이는 ㅋㅋ 너무 많은 작가들이 부정적인 면을 거론해서 뭔가 넘치거나 부족한 면이 도드라진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시이소오 2016-05-13 15:0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는 두 도시 이야기는 아직이네요. ^__^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의아했었답니다.`뭐지, 이게` ㅋ 헤밍웨이는 선호가 갈릴만한 작가 같아요 ^___^
 

칸트처럼 나도 산책을 나가볼까...... 정처없이 걷다보니 모란 공원이었다. 


'오늘 419니까 모란 공원에 사람 많겠네'...... 착각이었다. 

(419니까 419 묘지에만 사람들이 가는걸까?) 


그 넓은 민주화 열사 묘역에 오로지 나 혼자 뿐이었다. 


눈치 볼 필요없이 이소선 어머님, 전태일 열사님, 조영래 변호사님 묘지에 참배했다. 


전태일 열사 무덤 앞 벤치에서 멍때리고 한참을 앉아 있었지만 


결국 나올때 까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공간에 나 혼자뿐이라니. 

마치 흑백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삶이란 이토록 허망한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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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20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미를 찾는 시간!~멋찝니다.....

시이소오 2016-04-20 12:59   좋아요 2 | URL
저는 그냥 산책간건데요 ^^

2016-04-20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0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묘역에 찾아가볼 생각해본 적 없는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

시이소오 2016-04-20 16:27   좋아요 1 | URL
저도 집 근처 아니었으면 생각 못했을 거에요^^

2016-04-20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4-20 16:28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Dora 2016-04-21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시의 쩜 멋진 산책..

시이소오 2016-04-21 12:13   좋아요 1 | URL
오후 시간인 줄 어케아셨는지요 ㅋ ^^

:Dora 2016-04-21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트님 그 시간에 산책하셨다고 읽은 거 같음ㅠ

시이소오 2016-04-21 12:17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칸트는 4시에 나갔대요. ^^:

:Dora 2016-04-21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계몽적이시다 역시

깊이에의강요 2016-04-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이소님^^V
같이 산책하고 싶다.
좋은 말씀도 듣고...

항상 깨어 있으시네요

시이소오 2016-04-23 13:49   좋아요 0 | URL
벚꽃 엔딩인가요? ㅋ 저는 단지 그냥 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