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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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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의 해석과 실천


 라캉, 푸코. 그리고 르장드르.

 명확성, 명료함과는 상관없이 라캉과 푸코에 빠져든 때가 있다.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집착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줄곧 내 스스로 이해하는 것으로 텍스트를 읽어가라고. 이해되지 못하면 반복하고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위안하며 독려하면서 놓지 못하던 텍스트들. 그리하여 타인에게 라캉이나 푸코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 줄 깜냥과는 별개로 오로지 끌림으로서 글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사사키 이타루의 야전과 영원도 그 연속선상에 있다.

  그 때문일까, 생각보다 가벼운 맘으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어떤 텍스트에 대한 해석, 그에 따른 논쟁들은 항상 재밌는 요소이니까. 나의 이해와 타인의 이해를 이리저리 비교해가며 책을 읽는 맛은 또다른 난해함에 허덕이는 결과를 낳지만,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기 그지없다. 내가 이해한 텍스트를 다른 이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는 눈앞에 상대를 앉혀 놓고 토론하는 듯이 여겨지며 그래서 더 끙끙 앓기도 하게 되는.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이 책은 밤새 쌓인 눈을 처음 밝는 듯한, 사각이는 촉각과 사각하는 청각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문체의 영향이 큰 듯하다. 대부분의 철학서, 사상서들이 지적용어를 곁들인 채 만연체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면 이 책은 매우 간결하다. 그래서인지 읽는 순간에는 이상하리만치 명료함을 느낀다. 무언가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듯이 책장의 넘김이 자연스러워진다. 덧붙여 시적인 느낌까지. 거듭 밤사이 쌓인 눈을 처음 밟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가게 되는 책이다. 책의 제목마저도 야전과 영원이라니. "영원“한 ”밤“의 ”투쟁“에 바치는 책.

  

시계는 어둡고 도통 믿음직스럽지 않다. 그것의 승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쓰는 일의 우연성이야말로,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도박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야전과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책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다. “영원한 야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일된 시점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영원한 야전”이다.(p17)


 야전과 영원은 푸코, 라캉, 르장드르의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의 텍스트 해석은 이렇게 이야기된다. “통일된 시점”이라거나 “필연성” “전체성”을 보장하는 “끝(종언)”을 무슨 이이 있어도 부정한다고. 텍스트의 존재 방식을 갱신해야 한다고. 거기에 끝도 없고 새로운 시대도 없으며 단지 “다른 형식의 요청”에 답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고안해내야 한다. <준거>와의 다른 관계를. 어떻게 쓰면 될까? 어떻게 춤추면 될까? 어떻게 노래하면 될까? 어떻게 그리면 될까? 어떻게 낳으면 될까? 어떻게 이야기하면 될까? 어떻게 먹으면 될까? 갖가지 고안이 혁명의 긴 도정을 위해, 그 자체가 혁명인 도정을 위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중세 해석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직전까지 유스티니아누스와 트리보니아누스의 가공할 서적 50권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무엇인가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p434)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단순히 활자에 대한 탐욕을 넘어서 내가 글을 읽는다는 행위가 종국에는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단순한 지적욕망과 자기만족, 그리고 덧붙여진 습관을 통해 책을 읽으며 결국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끊임없이 이해하고자 하는 텍스트에 매달리는 것은 그 자체에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 삶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내 삶의 양분으로 지속되어 나를 키우는 것이라면 나 또한 저자가 말하듯이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야 하리라. 개념에 대한 문장에 대한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넘어선 실천에 대한 의지까지를. 라캉이 푸코가 르장드르가 소쉬르가 한 말에 대한 텍스트의 이해를 저자의 생각과 비교하고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함의에 대한 현실적인 적용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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