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문단으로 튀어나와버린 송곳. 자신의 동성애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등단한 퀴어. 할복은 말할 것도 없고,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미치다'라는 동사가 잘 어울리는 록스타. 어쩌면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연기하고 있었는지도.'도시 산책 시리즈' 두 번째로 출간된 <미시마의 도쿄>는 결핍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금각을 불태우고 본인이 생각하는 미(美)와 죽음을 완성하고자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흔적을 훑는다.도쿄 곳곳을 산책한 저자는 미시마가 "사무라이 도덕에 기입된 의례로서의 자살, 죽음의 '형식'을 육체로 반영하며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할복은 당대의 일본에서 '미적 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며 그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했다. 물론 이 저돌적이고 노골적이며 동시에 자신의 문학을 뒤집어쓰려 했던 미시마의 삶은 그렇다. 그러나 그가 펜으로 써냈던 파격과 미성숙함, 덧없음 그리고 비극적인 미를 두고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미적인 건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소설 <금각사> 中 미조구치의 읊조림)----------특히 그의 소설 <금색(禁色)>은 아름다움과 자기연민을 버력으로 하여 영영 화해할 수 없는 욕망들을 그리고 있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 육욕과 이상, 통념 앞에 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거리를 배회하고 부유하는 것뿐.----------"미시마에게 사회 체제 내부에서 게이가 점유하는 이 '무목적성'이야말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퀴어 판타지를 가능케 하는 원리다. 가족 제도와 사회 체제 내부에서 어떤 기능과 협력도 수행하지 않고, 이를 생래적으로 거부하거나 적어도 그로부터 이탈해 방황하는 자인 게이의 아름다움."(본문 이곳저곳에있는 QR코드로 저자의 또 다른 글을 읽을 수 있다)----------미시마의 인물들은 늘 좌절하는 — 그래서 자신을 좌절케 하는 그 무엇을 소멸시켜 버린다 — 것만 같다. 바다의 세계와 남성다움을 찬미했던 <오후의 예항>의 소년 노보루도 그랬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대상을 불살라버린 뒤 한 것이라곤 담배 한 모금을 빠는 것뿐이었던 <금각사>의 미조구치도 그랬다. 거기에 냉소를 지을지 그 투명성에 공감할지는 우리 자유이나, 어리고 유약한 소년의 정신에 일종의 '(번듯하지만 실은 처절한)형식'을 입힘으로써 꾀하고자 했던 '미의식과 죽음'은, 미시마에게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남아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미시마가 실험했던 작품들은 철저하게 비극의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인물들로 하여금 삶을 달리게 하고 '한계라는 영광'을 맛보게 한다. 이토록 강박적일 수가 있을까. 이다지도 위험천만한 폭로로 그들을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세워야만 했을까. 우리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이미 죽고 없는데.
분명 산속의 불곰과 사냥 이야기로 출발했는데 어느덧 <에일리언>, <전설의 고향>의 '내 다리 내놔', 일본 신화의 '요모츠시코메', 로빈 쿡스러운 의학 호러가 한꺼번에 믹스돼서 흘러간다. 띠지 문구처럼 무서워도 너무 무섭다….(띠지는 보통 버리는데 이 블랙핑크 띠지는 색감이 이뻐서 일단 킵)원제는 '요모츠이쿠사'ヨモツイクサ(黃泉軍)영화 <사랑과 영혼>(원제: ghost)과 <미녀 삼총사>(원제: charlie's angels)처럼 국내로 들여오며 제목 바꾸기 모범 사례 중의 하나가 될 것.민속학 호러를 아궁이 삼아 불을 때서는, 테크노 스릴러를 총총 썰어 넣고 이토 준지 풍 양념으로 간을 한 뒤에, 내가 정녕 이 결말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맺음으로 끝내버리고 만, 기이한 소설. 개인적으로 최근 읽은 <긴키 지방의…> 보다는 좋았다.공포의 매력은 '안전하게 그것을 추체험할 수 있는 것'이란 작가의 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은 현재 '안전한 상태'에 있으므로 — 감상자가 직접적으로 위험에 빠져있지 않기 때문에 — 공포 그 자체를 매력으로 느끼고 거기서 무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낀다는 뜻일 터.상당히 오래된 영화 <아라크네의 비밀> 이후 매력적인 '거미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치넨 미키토의 <이메르의 거미>는 그중에서도 꽤 수작이라 생각한다. 홑눈 8개, 다리도 8개… 읽는 내내 괜히 몸 여기저기가 가려운 것 같아서 혼나긴 했지만 근래 읽은 호러 중 거침없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