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농성
구시키 리우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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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을 맞아 진행된 작가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소년 농성>이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했다는 걸 완독한 뒤에야 문득 느낀다. 인식하지 못했는데 쪽수를 확인하니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었으니까. 그만큼 가독성이 좋고 지루할 틈이 없다.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경찰 쪽의 상황과 교차되며 시선이 분산되고 그때그때 분위기의 환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리라.

소설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시작하다가 <네고시에이터>의 모습을 띠고 나아간다. 살해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최우선으로 소환되는 용의자('유주얼 서스펙트'라는 단어 자체가 이를 의미한다 — 해당 지역 내의 전과자 등)로 한 불량 소년이 지목되고, 그는 경찰의 권총 한 자루를 탈취해 또래의 종범과 함께 식당을 점거, 농성에 들어간다.

그 닫힌 장소는 불우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인질은 식당 주인과 아이들 몇. 흥미로운 포인트는 탈취한 총을 든 소년의 '요구 조건'과 '음식 조리'다. 어떤 장치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소년 농성>에는 식당 주인의 요리 과정이 심심찮게 묘사되고 있다. 장시간의 농성에 따른 허기라는 측면에서, 또 무대가 음식점이니만큼 이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건 앞서 언급한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예컨대 학대를 받으며 지낸 아이들 — 평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 불우한 아이들에게 잘 차려진 정식 같은 음식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 따라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무대라는 것과 잘 맞아떨어지며 가정 학대, 돌봄과 빈곤 문제 등이 소설의 주제로서 자연스레 연착륙한다.

동시에 소년은 요구한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니 진범을 찾아내라고. 이 지점에서 빤한 결과로 가는 건 아닌가 하고 내심 염려가 됐다. 그러니까 그 말대로 진범을 찾고, 인질들의 스톡홀름 증후군과 함께 용의자 소년의 불우한 성장 과정의 부각…… 물론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런데 <소년 농성>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교집합 속 미묘한 위치에 서 있다. 위에 적었듯 두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찰의 조사로 속속 드러나는 추하고 안타까운 탁상행정과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청소년 문제 등이 기묘한 맥놀이가 되어 그려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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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이 소설에는 욕설이 꽤 많이 나오는데 해당 일본어 표현이 좀처럼 없거나 한국보다 무미건조(?)한 관계로 이걸 어떻게 살리는가 하는 것을 번역의 주안점에 둘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말맛을 살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우니 — 하물며 최근 청소년의 그것이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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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지 말 것 - 미니어처 왕국 훔쳐보기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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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모형 정원의 순례자들'. 내용은 한국어 번역 제목처럼 공포나 호러 분위기를 띠진 않는다. 상자 속 미니어처 정원을 들여다보며 관찰하는 것으로 첫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는 판타지 세계로의 진입이라 봐야하겠다.

수록작들에는 일종의 '도구' — 도라에몽의 도구처럼 — 가 등장한다. 영화 <맨 인 블랙>의 캐비닛 속 세상 같은 미니어처 세계가 펼쳐지는 상자, 시간을 이동하는 은시계, 일정 시간만 지속되는 접착제, AI 로봇 머리의 프로펠러…… 이런 도구들을 이용해 소설 속 세계가 비틀린다(단 이 방식이 모든 단편에 뚜렷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작가 본인이 이 소재를 포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매력적인 것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보다 더 유기적인 재미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각 이야기들은 현실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거나, 혹은 아예 본격적으로 판타지를 표방한다(한국판 제목처럼 첫 번째 단편의 주인공이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이야기는 없다).

그러면서 단편 사이마다 '이야기의 조각'이라는 이름의 브릿지(라는 표현이 어떨는지)랄까, 막간에 삽입된 짧은 이야기가 윤활유 역할을 하며 소설의 전체상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들끼리도 서로 이어져 끝에 가서는 대단원의 막을 멋지게 닫을 수 있도록 소설 전체를 조율한다.

첫 이야기 '상자 속 왕국'에서 시작된, 상자 속 미니어처 세계로 들어간 어린 소녀로부터 촉발된 이후의 세월들, 은시계를 이용해 마음대로 시간을 이동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있다는 듯 정체 모를 것들에 쫓기는 남매, 첫 번째 단편에 등장했던 인물의 자손이 발명한 기이한 물건, 이상하리만치 직감이 좋은 소년, 메모리만 이동하며 겉모습을 갈아치우는 AI 로봇…… 그리고 그 끝에 선 인류의 실패와 도전, 바로잡음, 다시 또 공존.

이 유구한 시간의 흐름은 결국 끊임없이 구르는 수레바퀴마냥 윤회의 그것을 표현하려는 것일까. 소설 말미의 맺음말로 보건대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좋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환상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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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터 스켈터 - 맨슨 살인 사건의 진실 걸작 논픽션 31
빈센트 부글리오시.커트 젠트리 지음, 김현우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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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간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잔뜩 기대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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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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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사장이기도 했던 하워드 스트링거는 '경험의 공유야말로 텔레비전의 가치'라 했다. 나는 이 문장을 살짝 바꿔 '뉴턴 운동 제3법칙이야말로 청킹맨션의 가치'라 하고 싶다.

작용과 반작용, 호혜(互惠), 상호간의 신뢰(의 창출과 동시에 결여). 청킹맨션에 모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다만 이것은 다소 느슨하게 해석해야 할 텐데, 반드시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겸사겸사 할 수 있으면 하고, 여의치 않아도 서로 실망하지 않는다는 뜻. (혹 청킹맨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경삼림>의 독특한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인간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는 그때그때의 한정적 신뢰는 소위 '뜨내기'의 모습을 떠올리게끔 하니까.

그런데 이 얼기설기하게만 보이는 연결이, 소제목 '동료와 살아간다는 것과 독립독행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틈새에서'처럼, 그들의 청킹맨션을 굴러갈 수 있게 해준다. 외려 이런 시스템이 마굴(魔窟)이라 불리곤 했던 이 공간을 깨어있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는지도 모를 일.

허구의 세계를 사는 것만 같은 홍콩 거주 탄자니아인(들)의 삶은 고단하기도 하고 덜되 보이기도 한, 그러나 현명함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만의 교환과 재분배 관계를 구축하며 카오스 속의 코스모스를 지속시킨다.

"홍콩의 마굴 청킹맨션, 비공식 경제, 아프리카계 브로커, 성 노동자, 지하 은행 등, 이 책의 키워드를 늘어놓고 보면 정말이지 수상쩍다."

저자의 양심고백(!)처럼 수상쩍은 사람들이 수상쩍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그런데 거기에 인생의 힌트가 있는, 정말이지 수상쩍게 재미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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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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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스터리의 '도서(倒敍)'는 도치 서술을 줄인 것인데 말 그대로 차례나 위치 등을 바꾸었다는 의미다. (심지어 '세계 3대 도서 미스터리'라는 것도 있다) 이것이 추리/미스터리에 적용되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바로 초반에 범인이 공개된 뒤 탐정이나 형사가 그/그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는 셈으로, <매듭의 끝>이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발단은 모성애. 소설은 아들의 살인 고백 후 그의 어머니가 시체 처리를 도맡으며 시작되는데, 아들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의 발로에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나가면 놀랄 만한 반전이 나타난다. 제목처럼 내용도 배배 꼬인 매듭이 지어져 있는 까닭. 도서 미스터리는 이미 범인이 특정되었다는 건데 <매듭의 끝>에서는 그것이 한 번 더 꼬아져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인공인 형사의 삶에도 달갑지 않은 매듭이 있다(이쪽도 모성애가 간섭). 물론 결말에 가서는 모두 풀리긴 하지만…. 따라서 제목의 매듭은 등장 인물들에게 얽혀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입장에서도 풀어내야 할 과제인 것.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와 <붉은 손가락>이 떠오르는 건, 어쩐지 <매듭의 끝>과 비슷한 구조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범인 제시, 그리고 형사의 의심. 양쪽 다 범인의 거짓 행적을 추적하는 형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재미있다는 것도 매한가지고.

p.s. …그래서 말이지만 이따금 삶의 끈이 돌돌 말아지고 뒤엉키곤 하는 거기 계신 독자님들, 올해 분기점인 6월이 가기 전 잔뜩 꼬인 매듭을 풀러 가지 않으시렵니까. 여기 분홍빛 매듭도 있고 재미있는 미스터리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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