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 : 록스타의 삶
찰스 R. 크로스 지음, 이경준 옮김 / 1984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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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 없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연주하던 꼬맹이가 훗날 세지도 못할 돈을 벌어들이며 기타를 부수기로 작정했을 땐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 뭐, 그러거나 말거나 불멸에 가까운 히트곡 <Purple Haze>나 <Foxy Lady>가 너무 말랑말랑한 탓에 차라리 느려 터진 <Angel> 혹은 <Dolly Dagger> 같은 곡에 구미가 당기는 건 나 뿐만은 아닐 거다. 그런데 <Dolly Dagger>의 창작 뒤에 숨은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노래는 데본(데본 윌슨: 지미가 만나던 여자들 중 한 명)이 믹 재거를 유혹하는 걸 목격하고서 만들어졌다는데, 노랫말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she drinks the blood from a jagged edge(그녀는 날카로운 칼날로 피를 마셨지).」 믹 재거가 손가락을 찔렸을 때 응급처치를 해주기보다는 상처를 입으로 빨아서 깨끗하게 해주겠다던 데본을 언급한 것이란다.(p.473)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진정한 애인이라 할 만한 캐시 에칭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여성들과의 만남과 섹스(물론 약물도 포함된다)에 빠져들던 헨드릭스였으니 저 데본이란 여성에게 또한 질투심을 표할 법도 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지미 헨드릭스: 록스타의 삶』에는 맨 처음 언급했듯 기타 하나가 궁했던 시절, 돈이 없어 팔고 남아 버리는 햄버거를 구걸하던 시절, 아버지가 경제적 이유로 여러 명의 지미 형제들을 입양 보내던 시절을 지나ㅡ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의 주인공 겐지처럼 빗자루를 이용해 에어 기타를 치던, 객석에서 <Foxy Lady>를 외치자 「'foxy lady'는 여기 다 앉아 있는데 뭘.」이라 되받아치는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되기까지의 삶이 담겨 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즐겨 듣던 헨드릭스의 노래는 「Angel」, 「Red House」, 「Little Wing」, 「Machine Gun」 정도가 다인데, 그것은 책을 읽고 난 지금에도 바뀌지 않았다) 600쪽에 달하는 다소 빡빡한 분량이긴 하나 수십 수백 번의 부침이 오가는 매 순간이 흥미롭기 그지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타인의 삶(더군다나 지금은 죽고 없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실소를 흘리거나 하는 것이 썩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excuse me while I kiss this guy'로 오해받기도 했던 <Purple Haze>의 가사ㅡ원래 노랫말은 'excuse me while I kiss the sky'ㅡ처럼 당장이라도 하늘을 향해 점프할 것만 같은 그의 밴드 EXP의 첫 스튜디오 앨범 재킷의 박쥐 같은 모습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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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떼리블 창비세계문학 48
장 콕토 지음, 심재중 옮김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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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하다며 비난 받았던 무서운 아해들ㅡ무서워하는 아해들.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 바에야 서로를 무서워하던 뽈과 엘리자베뜨가 선택한 죽음이 찬사를 받거나 무시 당하거나 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결론지어져 있었다. 지저분하고 잔혹한 세계를 구축한 프랭크(『말벌 공장』)가 자신의 섬 여기저기에 구슬, 돌, 볼트, 올무 등을 숨기며 부비트랩을 완성한 것처럼 콕토의 아이들 또한 뗄 수 없는 연대를 느끼며 집 안과 테두리 속에 그들만의 습성을 채워 간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지극히 흉물스럽고 잔혹해서 외려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이 소설과 작가의 안중에 존재할 수 없는 거다. '그들만의 게임'이라 불리는 것도 실은 정체가 불확실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야말로 어린 애새끼들의 그것이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집과 방을 지배하는 공기와 물건들 역시 어딘가로 올라가거나 벗어나는 지렛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ㅡ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과 저들의 생활 양식(그리고 공간)을 두고 비정상이라 손가락질하는 것은 철저하게 그들의 삶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물론 소설에는 뽈과 엘리자베뜨가 이처럼 은밀하고도 위험한 생활 방식을 택한(그런 생활에 놓인) 이유로 아주 작고 간접적인 요소밖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리로 하여금ㅡ이들이 삶의 습속의 거대한 시공간적 흐름을 너무나도 급격히 건너뛰어ㅡ예컨대 영악한 어린아이들의 돼먹지 못한 연출, 강렬하지만 비이성적 의식에만 함몰되도록 몰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콕토의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아이들의 소설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성인으로서의 자각과 각성 혹은 부수적인 이런저런 항목들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설령 그와 비슷한 의도가 있었다 한들(절대 그럴 리 없으나)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지는 않으리라. 일종의 교훈이나 훈육하기, 더 생각을 곱씹어 아이들에게 무관심에 가까운 정성만을 들이미는 어른들의 자화상 등을 상기하게 만드는 소설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부조리함의 한복판에 있는 것인가?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 또한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자살뿐이라던 카뮈에겐 뽈과 엘리자베뜨의 '삶에의 무저항'이 마뜩잖게만 여겨질 터다) 콕토는 아무것도, 모든 것도, 허용되는 동시에 허용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삶, 그저 그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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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감각 : NASA 57년의 이미지들
이영준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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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먹을 영화들 때문에 우주와 관련된 시설 일체가 휴스턴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시절과 달리, 이 빌어먹게 아름다운 사진들 덕분에 이제는 별의별 기계장치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허블 천체망원경을 보수하고 귀환하며 태양을 가로지르는(정말이지 외롭게만 뵈는)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 달에 착륙하는 순간을 '터치다운(touchdown)'이라 명명한 아폴로 11호 비행 계획도, 이런 게 정말 있었나 싶을 만큼 어안을 막히게 만드는 미스 나사 선발 대회, 내 정강이께 난 터럭 같은 유로파의 자잘한 표면들……. 이영준의 표현대로 망막에 일어난 빅뱅일는지 모르겠다. 내 눈앞에 보이고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 적도 없고 가볼 수도 없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달과 우주에 기계를 보내고 사람을 태워 보내는, 참으로 신통방통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갖가지 물체들과 연구들. 얄팍한 책 한 권이지만 내겐 우주 삼라만상을 죄다 보여주는 것만 같다. 「현재 스마트폰은 1969년 나사가 보유했던 슈퍼컴퓨터보다 고성능이다. 하지만 나사는 그 슈퍼컴퓨터로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냈고, 나는 돼지에게 새를 쏘아 보내고 있다.」 모바일게임 앵그리 버드의 어느 유저가 한 말이란다. 연필의 흑연 가루가 전자기기를 망가뜨릴 우려가 있어 우주에서만 사용할 볼펜을 따로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코웃음을 쳤는데, 위의 모바일게임을 빗댄 유머를 들으니 기분이 한없이 묘해지기만 한다. 쿠키와 스테이크 등이 마련된 우주 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더 기기묘묘하다. 사진 위쪽에 음식물이 떠다니지 않도록 고정할 수 있는 스프링이 보이고, 포장을 뜯는 용도로 여겨지는 가위 때문에 꼭 수술대를 보는 것만 같다ㅡ말미에 위치한 안형준의 한국 로켓 붐 관련 글까지 읽고 나면 '외국엔 인공위성이 있고 한국엔 거수기가 있다'라는 50년대 후반 신문 만평의 뜨악함이 뒤미처 따라온다. 그리고 종종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엊그제 일어난 일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저 옛날 우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 수가 있는 거지, 하며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이 모든 것들은 쇼였으며 허구였다', '어떻게 사람이 달에 갈 수가 있겠나'라는 양심선언을 할 때가 올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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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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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가 남자라는 종족에 얼마나 구애되었으면 일곱 편(후기를 대신해 쓴 작품마저)의 단편 제목 끄트머리에 죄다 '남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애교 섞인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독서를 마친다.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유일한 단편집. 멱살잡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좀처럼 작품을 내놓지 않는 하라 씨의 색다른 글쓰기. 소년, 소녀들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 일본의 어느 독자는 이 단편집 제목의 '천사'를 어른이 되지 못한 위태로운 인간들일는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책 뒷날개에 적힌 카피('그들은 어쩌면 모두 도시의 그늘을 닮은 천사는 아니었을까')를 다시금 읽고 나니 그럴싸한 풀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금털털한 블루버드와 피스. 판에 박힌 듯한, 특정 인물을 설명하고 상기시키는 데에 좋을 만한 물건들, 그것들도 이제는 새롭게 보일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사와자키다. (뭐, 후기를 대신한답시고 수록한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는 대화 일색이긴 하지만 사와자키가 탐정이 된 과정을 담고 있으므로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무턱대고 거액의 현금을 녹슨 우편함에 넣고 사라진 어린 의뢰인, 자식을 잃었고 동시에 자식을 찾는 남자, 딸의 뒷조사를 의뢰받고 미행하는 도중 그 딸이 재차 아버지를 미행하는 현장을 따라가는 사와자키, 그리고 잘못 걸려온 전화로 자살 예고를 들은 뒤 이튿날 석간신문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는 사와자키. 하나같이 현실 속에서라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이 천사들에겐 탐정이 필요하다. 사와자키가 필요하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와타나베가 자신이 아님을 끊임없이 설명하는 바로 그 사와자키, 서늘한 잿빛 속에서 천사들을 보듬어 줄 사와자키가(종이비행기로 안부를 전하는 와타나베가 등장한다면 그쪽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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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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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다. 리베카 솔닛이 누군지 모른다. 그간 어떤 책을 펴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수필이 여성의 언어를 이해하기에 유익하다는 어떤 네티즌의 말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얼어있는 호수에다가 구멍을 뚫은 다음 아무것도 낚지 못할 낚시꾼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는 기분이 들 뿐이다. 내 삶과 당신의 삶엔 경계선이란 건 없고 서로 평행을 달리지도 않는다. 내 생활과 당신의 생활이 동작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며 그것들을 비교하고 대조한다는 것 또한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것을 저렇게 생각하고 저것을 이렇게 생각해보며, 내 주변에서 이동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사색과 그 첨삭의 정도 차이만 있다. 제목인 ‘멀고도 가까운’은 과연 그런 뜻일는지도 모른다. 나와 당신의 사이, 나와 이 세계의 사이, 내 살의 죽어있는 신경이라도 일절 신경 쓰지 않고는 지낼 수 없는, 반드시 거기에 존재할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만 더 가깝게 한 발자국 더 들어가 생각해보는 작업. 솔닛의 작업은 바로 그것일 터다. 따라서, 미안합니다, 내 삶이 너무나도 치열해서 당신의 사유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요, 라고 볼멘소리를 해도 상관없다. 이 글 자체가 멀고도 가까운 곳에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므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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