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
김동훈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민음사 / 2025년 2월
평점 :
상처받은 내면 아이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
김동훈 (지은이),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민음사, 2025-02-05.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인 듯 ‘고흐’와 관련된 책이 정말 많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인지 어느 책에서 읽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일본이 그렇게 ‘고흐’를 좋아한다는 말이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서 ‘고흐’의 작품이 다른 화가들에 비해 ‘대단한’ 작품인 듯이 교육하고 강조했다고. ‘일본풍’의 그림을 좋아하고 많이 그린 고흐였기에 일본은 그토록 열광했겠구나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고흐의 그림은 어디서나 쉽게 접했다. 일본의 고흐 열광으로 인해서이기도 하겠고, 고흐의 그림과 그가 남긴 편지들이 많이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어쩌면 예술가의 특징처럼 여겨지는 고흐의 ‘기행(?)’도 큰 몫을 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도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고흐’의 심리, 나아가 일반적인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다. 익히 들어본 심리학 용어들이 고흐의 그림을 통해 예시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다. 고흐의 그림도 보고, 고흐의 심리 상태도 보고, 이와 더불어 어떤 날들에 내 행동의 이유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고흐는 히스테릭, 우울증, 광기로 대표되는 화가다. 고흐에 관한 책들을 제법 봤음에도 저런 단어들만이 늘 머물렀는데 새삼스레 이 책을 보면서 고흐가 가진 우울의 근원이나 사랑 등 다른 것들을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메시아 콤플렉스’다. 히스테릭한 고흐에게 기대한다거나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기에, 재밌는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이 메시아 콤플렉스의 기저에도 고흐의 상처가 내재해 있다.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메시야 콤플렉스’, 즉 구원자를 자처하는 심리라고 한다.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해결자로 나선다.
이렇듯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면, 적어도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과거에 그런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고흐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우울과 광기는 어릴 적부터 ‘상처받은 내면 아이’ 때문이다. 저자는 고흐의 이러한 심리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고흐 이전에 태어난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고흐를 고흐가 아니라 형으로 ‘대체’하여 바라보았기에 고흐는 늘 어머니의 사랑이 결핍된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같은 여인에게 마음을 주기도 했고, 창녀 ‘시엔’의 불쌍하고 힘든 모습을 보며 결혼으로 시엔을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엔이 점차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고흐는 시엔을 떠난다.
이 책을 통해서 보는 고흐 역시도 ‘안타깝다’가 우선한다. 부모와의 관계, 동생 테오와의 관계, 고흐가 했던 사랑, 고흐와 고갱의 관계는 왜 이다지도 어긋나게 흘러가는지, 삐꺽거리는지. 저자는 고흐에게 있는 ‘강박’이 상처와 더불어 이를 더욱 강화한다고 본다.
어찌 됐든 그런 상태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면서 점점 더 외골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가족과 사랑하던 여인들, 동네 사람들마저 숱한 충돌과 갈등으로 고흐를 외면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박증에 빠진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에게 ‘실재’의 것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한다. 누구에게는 시기심으로, 누구에게는 열등감으로, 또 누구에게는 괜한 ‘갑질’로 표출되지만, 억압한 욕망 때문에 일평생 결핍(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실재만 있다면 그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블로그, 유튜브, 책,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오히려 적극 활용할 것이다. 표현할 실재만 있다면 표현할 것만 있다면 인상파이든 초현실주의든 다다이든 추상표현주의든 미니멀리즘이든 개념미술이든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고흐의 이 히스테릭한 성정이 올리브 나무나 아몬드 나무 등을 그리며 자연에 대한 환기와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그림이 대표적인데, 이를테면 ‘주의회복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이다.

*반 고흐,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1899년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굳건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사람을 모델로 삼지 않고 그 대신 아몬드나무나 올리브나무와 같은 자연을 그리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회복 이론’은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자연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산만하게 흩어졌던 주의를 다시 집중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그것은 탈주(Being Away), 확장(Extent), 끌림(Fascination), 융합(Compatibility)이다.
첫째, 탈주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확장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더 멀리 더 높게 보는 것, 셋째, 끌림은 억지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것, 넷째, 융합은 자신의 취향과 적합하게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연유가 있어서인지, 나 또한 고흐의 그림 중에서 인물을 그린 그림보다도 자연을 그린 그림을 보는 것이 더 편하다. 올리브나무, 밀밭, 별이 비치는 밤…. 그리고 그가 병원에서 그렸던 그림을 보면 애잔하다. 병원에 있을 때 그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적잖이 슬퍼진다.
고흐는 “상처받은 삶이라도, 새로운 생명과 희망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흐의 생명과 희망이 그림 속에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내 방에 걸린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여전히 쓸쓸해 보이긴 한다. 고흐와 관련된 책을 보았어도 딱히 고흐에게 감흥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심리학 이론과 함께 보아서인지 고흐에게 좀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알려진 대표적인 그림 외에 고흐의 그림을 새롭게 보고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 ‘고흐’를 생각해본다. 저자가 고흐를 통해 얘기하고 있는 많은 심리학 이론이 고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내 생에도 순간순간마다 이러한 심리적인 질곡이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