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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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일까

 


어떤 동사의 멸종-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시대의창, 2024-06-17.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니까

  광고를 듣다가 모든 동사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는 세상을 떠올렸다. 단어 하나에 책제목이 연상되어 참으로 쓸데없이 이어지는 잡다한 생각들.

  이 책은 네 가지 직업에 대한 저자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콜센터 상담원,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원을 저자는 각각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라는 동사로 이야기한다. 무수한 직업 중 위 네 가지 직업을 경험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일하는 이야기를 쓰기위해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대규모 단종이 예고된 인간의 노동이라는 카메라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보려 한다. 인간에게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AI 노동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일찌감치 고효율을 따지며 동사 형태가 더 어울리는 노동은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사무직 노동이 AI로 대체되고 것이 더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여러 보고서를 인용하여 AI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을 표시하고 있는데, 저자가 참고한 보고가 다소 오래된 자료인만큼 책이 출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떤 대체확률이 높은 직업의 순위는 또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 네 개의 노동을 통해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는 특정한 종류의 인간 특성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어갔을까. ’직장‘, ’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을 생각하더라도, 이 직업군이 속한 에 대한 보도는 긍정적인 내용들이 없었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 외에 가해지는 특성이 이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직업들은 사라진다는 동사에 아주 걸맞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현장 경험은 생생하기에 왜 이 직업의 대체확률이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원은 사라져야 할 직업이라고 꼽고 있다.

 

돼지의 배설물은 따뜻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씻어낼 수 있지만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은 1, 2년이 지나도 말끔히 사라지는 법이 없고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그러나,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소위 까대기업무를 하는 사람 중에서 우울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얘기에 갸웃한다. 어떤 일터의 분위기가 문제인건가. 사람이, 문제인 건가.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 점잖은 척하면서 쏟아놓는 오물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결국 직업이라는 종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는 존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람을, 직업으로 상하를 나누며 나는 보다 너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우월감. 다른 사람을 낯추며 본인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그런 사람‘. ’그런 인간

 

  최근 흑백요리사의 열풍으로 요리‘, ’셰프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과거에는 식당 아줌마‘, ’밥 해주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던 요리사셰프라는 외국어로 명명하면서 다르게 인식되고 대우받고 있다. 한편으로 그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 이야기한다. 특정한 몇 명만이 열광적인 지지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 그거야 어디든 무엇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결국 의 좋고 나쁨이란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아닌가. 직업의 세계에 귀천이 있음을 제도와 인식이 강화하며, 오로지 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런 인간들이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아름답지 않고 천한것으로 취급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이 노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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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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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조금새끼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20-06-15.


 

  문득, 눈을 떠보니 목련이 절정이었다. 벚꽃은 꽃망울이 나뭇가지에 몽울몽울 모여 준비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 피려 한다. 어제 내린 비가 멈추고 햇살은 어제보다 더 따스해졌고 어김없이 봄은, 와 있다. 내가 더디게 느꼈을 뿐. 2026년도 벌써 3월 중순이 한참 지나있으니 짧게 피고 지는 꽃들처럼 어김없이 봄도 금세 지나갈 테다. 늦게 느낀 만큼 이 봄은 얼마나 짧게 느껴지려나.

예전엔 해가 바뀌기만 해도 겨울보다 봄이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 2월이면 아, 봄이다! 하고 외쳤더랬는데 계절의 변화가 쉬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의 변화때문인건가. 봄이 느껴지는 봄비와 봄꽃. 목련이 활짝 피었을 때마다 와 있는 봄을 알지 못하고 올해는 이렇게 시간이 흘렀고, 문득 이 책의 그림들이 생각났다.

  전국 구멍가게의 풍경을 그린 동전 하나로도 따뜻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처럼 이 책 또한 전국의 또다른 구멍가게를 그렸다. 여기서 그린이란 실제로 그림으로 그렸다는 말이다. 책 속에 가득한 목련 나무와 벚꽃 나무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이끄는 책이다. 대부분의 구멍가게 앞에서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나무들 대부분이 목련이나 벚꽃 나무다. 그리하여 봄의 느낌이 강한 책이다. 우리집 구멍가게에도 목련이나 벚꽃나무가 있었더라면, 아니 다른 나무라도 있었더라면 이 구멍가게 속에 그림으로 남았으려나……. 아무튼 출판사도 남해의 봄날이라서인지 봄날이면 떠오르는 책.



  구멍가게 2탄격인 이 책을 보며, 전국에 이렇게 많은 구멍가게가 있었나 생각했다. 어쩌면 한번쯤 지나쳤을지 모르는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진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 주변 풍경과 더불어 정겹고도 쓸쓸하다. 작는 구멍가게가 낯설지 않아서 정겹고, 언제 이 가게가 문을 닫을지 몰라 쓸쓸한. ‘오늘도 문을 연구멍가게들. 풍경뿐만 아니라 구멍가게의 이야기도 귀기울여 본다. 어찌어찌해도 세상은 변하고 구멍가게도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지금은 사라진 마을 앞 째보선장이 고깃배와 어부로 북적였을 때, 가난한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가면 동네 아낙네들은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며 남정네들을 기다렸습니다. 고기가 안 잡히는 조금 때가 되면 어부들은 잠시 집으로 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고 나면 아낙네들의 배가 점점 불러 오고 열달 후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이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부른다 하네요. 꽃 같은 나이에 혼인해 바닷물보다 짜디짠 세월 속에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를 얻은 할머니들이 바닷가 산비탈에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 전남 목포의 온금슈퍼 속에서는 조금새끼라는 단어를 만난다.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면 바닷가 마을은 아주 북적였을 듯. 생각해보면 조금새끼는 2002년의 월드컵 베이비와 같다. 비록 그 단어 속의 정서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말이다. 조금새끼는 목포 바닷가의 고즈넉함과 짠기가 그득하다. 하지만 월드컵베이비는 케이크의 단 맛이 그득하다. 그런 느낌이다. 어느 순간 똑같은 간판 몇 개 수백개 즐비한 편의점처럼 줄지어 선 조각 케이크 같다고나 할까. 너무 달아서 머리가 울릴 정도인.

  내 눈 앞에는 편의점이 수두룩하지만 이 봄날에는 저자가 그린 슈퍼를 찾아가 보고 싶다. 인스턴트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한아름 품고 있는 그런 곳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문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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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김덕일 지음 / 상상창작소 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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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

 

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김덕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아득하다’. 위에서 무언가를 보는 일은 잦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벅찬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공간과 시각의 한계로 사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풍경에 넋을 잃으면서 너무 크고 넓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주 작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풍경을 보기 위해 왜 그토록 위로 오르고 싶은지를 알게 한다.

  그럴진대, 사선이 아니라 정면으로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어떨까.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늘에 누워 아래를 바라볼 때 보이는 그 풍경. 비행기에서 창문으로 보는 것이나 높은 곳에서 내 눈 아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광경.

  이 책은 그러한 풍경을 보여준다.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의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작가가 드론으로 찍은 숲의 풍경이 담긴 책이다. 작가는 '새의 눈(버드 아이 뷰)'라고 표현한다. 책을 펼치면 숲이 풍경보다 무덤이 더 도드라지게 보인다. 이쯤 재목이 사라진 숲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난 신문기사 속 무덤 사진을 보고 이 책을 찾았으니, 왜 제목이 무덤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더 했고 숲보다 많은, 숲이든 땅이든 어느 곳에든 자리한 무덤 사진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렇다. 책에는 삶의 가까이에 있는 무덤 사진이 많은데 작가는 사진을 찍다보니 이곳이 숲이 있었을 장소인데 싶었고, 숲이 어디로 갔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경작지가 늘어가는 것 또한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만, 경작지에 있는 무덤은 숲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작지의 한 부부처럼 느껴진다. 경작지든 경작지에 있는 무덤이든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들이긴 할 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홀로 남겨진 시간을 맞이한다. 사라지는 숲과 어느새 잊힌 추모의 파편 사이에서 무심한 자연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흔적에 발을 딛고 있으면 평행선처럼 맞물릴 수 없는 감각의 표상이 머릿속에 맴돈다. 숲이 묘를 만들고, 묘는 더 이상 사람들이 파헤칠 수 없는 일정한 지대를 만든다. 그 구역을 따라 뻗어가는 사선들과 불규칙한 굴곡의 이끌림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 앞에 앉아, 또는 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며 맞닿을 수 없는 시간을 사색한다.

 


  작가는 전북 고창의 풍경을 주로 담았다. 이 지역은 옛 삼한의 모로비리국이라나. 숲이나 들판의 고인돌뿐만 아니라 붉은 황토밭 사이에 자리한 무덤 사진. 붉은 황토밭, 아직 무언가를 심어놓기 전 갈린 붉은 황토밭 한켠에 자리한 묘를 보고 있으면 묘라기보다는 그냥 밭의 한부분으로만 생각된다. 무덤은 산 속에나 자리하는 것만 같았는데 옛 고인돌이나 무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황토밭, 경작지 속의 묘지는 묘하게 이질적이지 않다. 차라리 어느 산 속에서 마주한 웃고 있는, 스마일 스티커와 같이 보이는 무덤이 더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넓은 경작이 한켠, 묘의 풍경이 스마일 모양으로 여겨지는 건 작가가 버드 아이 뷰로 찍었기에 볼 수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심스럽고 무서움을 주는 무덤이 아니긴 한데, 붉은 황토밭 속의 무덤은 그 붉은 색깔 때문인지 더더욱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인지 숲에 있을 때보다 더더욱 무덤으로 인식된다고 할까. 숲속에 초록색과 익숙하거나 겨울의 메마른 숲 속에 희미하거 푸석한 모습이 익숙해서 몰랐던 너무나 또렷한 경계. 붉게 테두리쳐 놓은 듯한 저,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공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공간.

과거와 미래의 공간. 하늘과 땅의 공간. 선주민과 미래 주민의 공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공간. 가시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세계.

그래서 한쪽을 더 자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

 

  

  이러한 사진집을 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무덤 사진 외에 개간으로 황폐한 산의 모습 또한 담겨 있다싱크홀처럼 초록색이 뭉텅 비어버린 산숲의 모습그러나 산은숲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치유력으로 오랜 시간 동안 그 푸르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파괴한 산의 모습을 통해 숲의산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끔 하려는 것이다작가는 미래 세대에 빌려온 자연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기록을 했다고 얘기한다.


 

새의 눈으로 사람들의 숲을 본다. 숲이 사라지는 대신 경작지는 늘어만 간다. 늘어난 경작지만큼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곳도, 도시도, 경제적 경작지는 늘어만 가는데 그 빌딩 숲에서 신선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바람과 숲의 동무였는데

 


  이 책 속에서 명징하게 살아남은 말은 푼크툼(punctum)’이다. 이 말은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진을 감상할 때,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마다 사진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나의 푼크툼은 처음 적은 그 느낌처럼 아득하다’, 그리고 슬프다’. 숲에 자리한 무덤, 경작지 그리고 또렷한 무덤의 경계, 그건 숲의 파괴인 걸까. 인간과 자연은 대립인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인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산의 숲의 무너짐과 회복을 보고 있는 저 무덤은 생명력이 있는 건가.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난다는 것은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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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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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La litterature, ca paye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긴이), 뮤진트리, 2025-04-17.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 박인환(1926~1956)<목마와 숙녀>에서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라고 한 지 70년이 흘렀다. 종이 활자보다는 영상 시대, 그 영상에서도 쇼츠가 더욱 흥행하는 시대, 문학은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아서 어느 새는 흥했다가 또 어느 때는 존재감이 없는 듯하게, 오래도록 그 쓸모가 다해 가는 듯해도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문득문득 내 존재의 쓸모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세상에 내 쓸모를 증명하는 일들이 버겁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 쓸모의 몇 할은 문학에서 얻어오고 있다. 이 사회에서 쓸모의 기준이 되는 ‘, ’어느 정도의 돈벌이를 하는가가 아니라 문학에 내 쓸모를 빗대는 일, 아니 어쩌면 존재를 찾는 일은 가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미운 오리 새끼의 그것처럼 애달프고 멋쩍기도 한. ’돈이 되는지돈이 되지 않는것의 대표인 문학으로 말하는 것, 발버둥 같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리는 방법인 것도 같다.

 

  이 책은 형이상학적 논리로 전개되리라는 생각을 뒤집고 문학은 돈이 되는가로 시작한다. 이런, 원제가 “La litterature, ca paye!”란다. 시는 수익성이 가장 높은 예술이다가 책의 첫 소제목으로 흥미를 돋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셈만 알고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고, 아무것도 설득할 수 없다”. 문학의 쓸모는 다른 이다.

 

  문학이 탐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는 않으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가까운 이웃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크고 작은 사물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 삶의 균형을, 삶에서 사랑의 자리라든가, 그 힘과 리듬을, 또한 죽음의 자리를 찾는 그 방식, 그밖에 다른 일들, 냉혹함, 연민, 슬픔, 아이러니, 유머 등, 필요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그 방식 등

   *이탈로 칼비노 사자의 골수‘, 1955

 

  문학이란 건 작가에게 이 되지도 독자에게도 시간을 낭비하는무용한 일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순수문학을 덜 열광한다. 활자는 사람들에게 독인 듯, 시간낭비인 듯 여겨지고 있다. 사람들은 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 줄 수 있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무용함의 대표적인 책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거론되고 있어, 마구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한편에 프루스트와 소파, 졸음, 낮잠, 예술을 위한 예술, 고치 속의 삶이 있다. 다른 편에 카버, 셀린, 거리, 분주한 삶. 문제의 정서적 지하철이 있다. 카버나 셀린을 읽는 게 프루스트를 읽는 것보다 더 많이 남는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고 투자금 회수도 더 빠른 것이다.

 

  시간낭비. 수익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쓸모없는 문제작인 문학. 문학은 왜 필요한가. 일부 문학으로 을 버는 이들이 일부있지만 대부분은 해당하지 않는다. 문학은 오래도록 실용적인 학문과 비교해 경쟁이 밀리고 밀려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은 전면에 드러내지도 않은 채로 현재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고 있다. 성공적인 주식투자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스토리를 갖춘 이야기가 먹혀들고, 권력을 쥐고픈 정치인들이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서 사람들은 문학적 소양을 찾는다. 어느 분야에서건 문학적 소양을 찾고 있으니 문학은 유용함이란 쓸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 자체는 외면하면서 또한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시대에 맞게 유용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글을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의 저자다.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

 

   영상으로 인해 문자는 사라질 것처럼만 보였지만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과 함께 SNS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내 이야기만 하기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어떡하든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면 문학은 오래도록 그 쓸모를 이어가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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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
김동훈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민음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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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 아이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

김동훈 (지은이),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민음사, 2025-02-05.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인 듯 고흐와 관련된 책이 정말 많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인지 어느 책에서 읽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일본이 그렇게 고흐를 좋아한다는 말이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서 고흐의 작품이 다른 화가들에 비해 대단한작품인 듯이 교육하고 강조했다고. ‘일본풍의 그림을 좋아하고 많이 그린 고흐였기에 일본은 그토록 열광했겠구나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고흐의 그림은 어디서나 쉽게 접했다. 일본의 고흐 열광으로 인해서이기도 하겠고, 고흐의 그림과 그가 남긴 편지들이 많이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어쩌면 예술가의 특징처럼 여겨지는 고흐의 기행(?)’도 큰 몫을 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도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고흐의 심리, 나아가 일반적인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다. 익히 들어본 심리학 용어들이 고흐의 그림을 통해 예시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다. 고흐의 그림도 보고, 고흐의 심리 상태도 보고, 이와 더불어 어떤 날들에 내 행동의 이유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고흐는 히스테릭, 우울증, 광기로 대표되는 화가다. 고흐에 관한 책들을 제법 봤음에도 저런 단어들만이 늘 머물렀는데 새삼스레 이 책을 보면서 고흐가 가진 우울의 근원이나 사랑 등 다른 것들을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메시아 콤플렉스. 히스테릭한 고흐에게 기대한다거나 생각할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기에, 재밌는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이 메시아 콤플렉스의 기저에도 고흐의 상처가 내재해 있다.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메시야 콤플렉스’, 즉 구원자를 자처하는 심리라고 한다.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해결자로 나선다.

이렇듯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면, 적어도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과거에 그런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고흐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우울과 광기는 어릴 적부터 상처받은 내면 아이때문이다. 저자는 고흐의 이러한 심리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고흐 이전에 태어난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고흐를 고흐가 아니라 형으로 대체하여 바라보았기에 고흐는 늘 어머니의 사랑이 결핍된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같은 여인에게 마음을 주기도 했고, 창녀 시엔의 불쌍하고 힘든 모습을 보며 결혼으로 시엔을 구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엔이 점차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고흐는 시엔을 떠난다.

  이 책을 통해서 보는 고흐 역시도 안타깝다가 우선한다. 부모와의 관계, 동생 테오와의 관계, 고흐가 했던 사랑, 고흐와 고갱의 관계는 왜 이다지도 어긋나게 흘러가는지, 삐꺽거리는지. 저자는 고흐에게 있는 강박이 상처와 더불어 이를 더욱 강화한다고 본다.


어찌 됐든 그런 상태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면서 점점 더 외골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가족과 사랑하던 여인들, 동네 사람들마저 숱한 충돌과 갈등으로 고흐를 외면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박증에 빠진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에게 실재의 것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한다. 누구에게는 시기심으로, 누구에게는 열등감으로, 또 누구에게는 괜한 갑질로 표출되지만, 억압한 욕망 때문에 일평생 결핍(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실재만 있다면 그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블로그, 유튜브, ,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오히려 적극 활용할 것이다. 표현할 실재만 있다면 표현할 것만 있다면 인상파이든 초현실주의든 다다이든 추상표현주의든 미니멀리즘이든 개념미술이든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고흐의 이 히스테릭한 성정이 올리브 나무나 아몬드 나무 등을 그리며 자연에 대한 환기와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그림이 대표적인데, 이를테면 주의회복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이다.

*반 고흐,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나무 숲, 1899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굳건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 사람을 모델로 삼지 않고 그 대신 아몬드나무나 올리브나무와 같은 자연을 그리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회복 이론은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자연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산만하게 흩어졌던 주의를 다시 집중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그것은 탈주(Being Away), 확장(Extent), 끌림(Fascination), 융합(Compatibility)이다.

첫째, 탈주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확장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더 멀리 더 높게 보는 것, 셋째, 끌림은 억지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것, 넷째, 융합은 자신의 취향과 적합하게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연유가 있어서인지, 나 또한 고흐의 그림 중에서 인물을 그린 그림보다도 자연을 그린 그림을 보는 것이 더 편하다. 올리브나무, 밀밭, 별이 비치는 밤. 그리고 그가 병원에서 그렸던 그림을 보면 애잔하다. 병원에 있을 때 그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적잖이 슬퍼진다.

  고흐는 상처받은 삶이라도, 새로운 생명과 희망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흐의 생명과 희망이 그림 속에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내 방에 걸린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여전히 쓸쓸해 보이긴 한다. 고흐와 관련된 책을 보았어도 딱히 고흐에게 감흥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심리학 이론과 함께 보아서인지 고흐에게 좀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알려진 대표적인 그림 외에 고흐의 그림을 새롭게 보고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 고흐를 생각해본다. 저자가 고흐를 통해 얘기하고 있는 많은 심리학 이론이 고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내 생에도 순간순간마다 이러한 심리적인 질곡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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