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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자유는 팍팍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젊음의 나라, 손원평, 다즐링, 2025-08-08.
“넌 늙어봤냐, 난 젊어 봤다.”
이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노인들 영상은 드라마 속에서 꽤 경쾌하였건만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오래전이었는데, 가사도 풍경도 왜인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이 듦, 늙음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인 건가. 늙음은 젊음을 대척점에 두고 얘기된다. ‘늙음’이 ‘늙음’으로 서기 위해선 젊음과 비교하여 그 가치가 정립되지 않아야 한다.
『젊음의 나라』는 ‘늙음’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젊음’을 부각하고 있다. 청년인 ‘나(유나라)’의 일기에서 그려내는 ‘늙음’, 이 책을 지금 이 시대 젊은이가 바라보는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으로 바라보아도 좋을까. 언뜻 보면 ‘청년’에게 닥친 문제는 모두 ‘늙음’으로 인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늙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젊음’에게 닥친 문제는 해소될 수 있는가.
이 책은 가상의 미래공간 “시카모어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섬은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35세 이하의 청년 60퍼센트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슈퍼 리치 시니어 30퍼센트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고의 삶을 누리는 꿈의 섬”이다. 아니다. 유토피아 같은 이 섬에 살기 위하여 현실을 살아가는 29세의 ‘나’가 위치한 곳은 ‘유카시엘’이니 이곳이 진짜 배경이라고 해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나’가 보는 현 세계는 저출생 고령화시대로 노인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인간보다 로봇의 기능이 더 확대되는 사회다.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혐오와 차별이 증가한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자신보다 “더 젊고 어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계에게 밀려나고”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룸메이트인 이주 2세대 ‘엘리야’를 ‘사회적으로 공인된 약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약자가 강한 존재이자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하루하루가 조바심나고 버겁다. 친밀감이 덜하고 인간관계도 좁은 ‘나’는 어린 시절 빛이었던 연락도 닿지 않는 ‘민아 이모’에 대한 그리움과 오직 ‘시카모어 섬’에 가고픈 열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시카모어 섬에 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유카시엘 상담사로 일하게 된다.
‘나’가 일하는 유카시엘은 어떤 곳인가. 시카모어 섬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는 국내 최대의 노인 복지 시설로 사회적 위치외 경제적인 상황(어쩌면 균질성)에 따라 유닛 A부터 F까지 다섯 곳으로 분류된다.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 모였을 때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뭔지 알아? 바로 균질성이야.
비슷해야 해. 모든 면에서 서로의 수준이 맞아야 갈등이 줄지. 최소한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위치라도 비등하면 분란의 여지가 적어.
‘나’는 좌천되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카시엘의 모든 유닛을 경험한다. 유닛 A인 ‘사파이어 레이크’에서 ‘선샤인 마운틴’, ‘뉴시티 필드’, ‘아리아드네 정원’, ‘프리 하우스’ 순으로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의 시설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는 곧 ‘사는 곳’에 따라 다른 노인들의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유닛 A ‘사파이어 레이크’는 “여기 올 수만 있다면 자신이 가진 젊음을 늙음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 들 만큼 “모든 게 완벽”한 곳이다. 거주 노인들은 “사회의 중심을 이끌면서도 긴 세월 동안 재력을 유지한 사람들”로 그들은 “주류에 속해 있는 동시에 이 나이 되도록 가진 걸 잃지 않고 꼿꼿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남들 눈에는 세상 편해 보일지 몰라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 유닛 F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마지막으로 맡아주는’ 곳으로 노인들은 숙식을 제공받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하는 일조차도 기계로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결국 세상에서 가장 싼 건 사람”이기도 하다.
유닛 B ‘선샤인 마운틴’의 거주 노인들을 상담할 때 나이가 들어 습진 때문에 손끝이 자꾸 갈라지는 것이 불편함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삶의 끝자락에 다다라 마음에 품은 고민이 손끝의 습진 정도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닛 C ‘뉴시티 필드’에선 꿈을 꾸기도 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제자리인 노인, ‘선 넘지 않고 함부로 꿈꾸지 않은’ 채 살아온 노인, ‘자기연민’ 가득한 삶을 보며 “어제의 행복이 비참함과 불행으로 전환되는 오늘이 진저리나게 서글프다”고 느낀다. 유닛 F의 전단계인 유닛 D ‘아리아드네 정원’의 노인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경직된 인상을 풍겼”는데 벌점을 받으면 퇴출되는 유니시엘 시스템에서 아무도 유닛 F에 가길 원하지 않으므로 벌어진 풍경이다. ’나‘는 “강한 법규 아래에서 인간이 얼마나 고분고분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며 씁쓸함을 느낀다.
각 유닛을 거칠 때마다 ‘나’는 거주 노인과 상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그때마다 엘리야와 자신의 ‘노인’에 대한 시선과 삶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다. 요양병원 간호사인 엘리야는 ‘노인 세대’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 유닛을 철폐하고 청년을 위한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급진파’에 속한 엘리야는 ‘나’에게 집회에 참가할 것을 권유한다. 노인들은 소비도 생산도 하지 않아 “뭔가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삐거덕거리게 하고 느리게 만드는 존재들”, “사회와 경제가 굴러가는 데 하등 보탬이 되지 않는. 그냥 시스템의 얼룩 같은” 존재라고. 그렇기에 “적어도 새로운 소비 주체, 미래의 납세 주체를 만들어 낸, 최소한 젊었을 때 아이라도 한 명 낳은 사람이 더 당당”한 거라며 ”평생 자기의 개인적인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개, 고양이만 키우다 늙어버린 사람의 노후“를 지탱해줘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다. ‘나’는 ”차별이란 단어를 무기로 써서 속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이민자 엘리야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노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다“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젊은이들의 막대한 세금을 빨아먹고 있다“고 생각하며 방관자에서 벗어나 집회에 참여한다.
더불어 여러 유닛을 거치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죽음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일지 모르나 “죽음의 형태는 그 사람의 계급을 드러낸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유니시엘에서 그것을 명확히 확인하게 된다. 존엄한 죽음에 이르는 방법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선전하지만 사실은 재력이 넘치는 유닛 A나 B의 시니어들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였으니까. “자유는 팍팍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고 했는데 재력이 없는 유닛 F의 이름은 ’프리 하우스‘이다. 무엇이 프리한 걸까.
이 소설은 ’나‘를 비롯한 청년세대, 젊은이가 고령화시대에 느끼는 늙은이,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설에서 ‘나’가 바라는 것이 한가지 있다. 시카모어 섬을 만든 카밀리아 레드너가 ‘나’가 아는 ‘민아 이모’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다시 만나고픈 순수한 열망,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금수저’이고픈, ‘권(재)력에 연을 만들고픈’ 염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것이 혐오와 자기연민과 더불어 청년들의 꿈꾸는 세계인가. 소설에선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진 않는데 청년세대의 언어는 지극히 공격적이고 극단적이다. 엘리야를 비롯해 유카시엘 고액 연봉자 선택사 담당 의사 재희, 남북 개방 후 북에서 내려온 브로커 수현까지 정형화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청년과 노인에 대한 갈등과 대비를 너무 작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요즈음 현실이 그렇긴 하다. 극단적인 혐오의 표현을 더 쓰지 못해 안달이지 않은가.
이러한 현실에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유카시엘 유닛을 거치면서 어떤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가. ‘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것이 이 소설의 핵심적인 화두일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시카모어 섬의 면접장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소설은 ‘나’의 일기를 통해서 이 모든 사회의 모습과 ‘나’의 생각과 행동 ‘내면’을 속속들이 기록한다.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져 있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일기를 끄적”인 ’나‘는 ’사카모어 섬‘에 갈 수 있는가. ’민아 이모‘는 만났는가. ’민아 이모‘는 사카모어 섬의 창시자가 맞는가. 설렘을 주었던 의사 재희와는 어떻게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나‘가 선택한 결정에 만족하는가. 유토피아가 만들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카모어 섬”이 유토피아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좀더 고급버전의 유카시엘 아닌가 싶은데, 가보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유카시엘 유닛별로 나타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편으론 ’나‘가 유닛 A에서 유닛 F의 노인들을 만나는 과정이 아니라 유닛 F에서 유닛 A의 노인들을 만나는 과정이었다면 ’나‘, ’유나라‘의 인식은 어떠한 형태가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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