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
데브라 N. 맨코프 지음, 김잔디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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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네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


모네가 사랑한 정원 -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정원에 관한 에세이

데브라 N. 맨커프 (지은이), 김잔디 (옮긴이),  중앙books(중앙북스), 2016-03-30.

 

 

  86세에 사망한 모네는 생애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다. 거기다 2,500점이 넘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그만큼 모네의 이야기는 많을 테다. 그래서 모네에 대한 책을 보면 본 적 없는 그림이 계속 나온다. 모네 생애와 작품을 이야기하는 저자마다 지면이 허락하는 한, 대표적인 것 이외 더 소개하고픈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네에 대한 책은 한 두 권으로는 미진한 느낌이다. 물론 모네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모르는 것이 약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조금 아니까 아직 힘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모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공간 정원을 중심으로 한 모네의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정원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 정원은 그냥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네가 창조한 공간이다. 모네 자신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라고 말했고, “자기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했을 정도다. 모네의 정원을 가본 많은 이들도 모네의 정원에 대해 찬사했다. 어떤 이는 모네를 이해하려면 정원을 보라고, 그림보다 정원이 낫다고 했을 정도다.

  처음 모네가 정원을 가꾼 곳은 1871년 파리와 떨어진 아르장퇴유다. 이곳 테라스에 화분을 놓고 화단을 장식, 정원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때 정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들을 그리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이때의 정원은 전원주택에서 꽃을 가꾸는 것처럼 소소한 형태였고 대규모의 정원으로 확대하게 된 건 지베르니에 정착하고서다. 1883년 파리 북서쪽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처음 정착하고서도 모네는 빛을 그리는 화가로 자연 풍경을 그리기 위해 노르망디 해안, 루앙, 리비에라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곧 자신의 정원에 자신이 그리고픈 세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 세계를 위해 정원을 창조했다


그는 화단을 색과 높이에 따라 분류한 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규모의 정물화처럼 꾸몄다. 강렬한 자연광 아래에서 꽃을 관찰하여 싱그러운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무성한 풀과 나무, 꽃을 심고 굽이치는 둑을 만들었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어 물의 정원을 조성했다. 

 

  이렇게만 보면 실제 모네가 정원을 창조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가늠되지 않는다. 모네는 정원과 관련한 서적을 찾아 읽는데 시간을 더 들였고 정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카유보트와 소설가 옥티브 미르보, 비평가 귀스티브 프루아 등)과 교류하고 온실을 두 개나 만들고 정원사를 여섯 명 고용했다. 1893년 초 초지와 연못이 있는 땅을 추가로 구입해 앱트 강의 지류인 루강이 더 잘 흘러 나가도록 공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웃들의 다툼과 복잡한 행정절차를 모두 감내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모네의 정원은 물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모네는 습지와 같은 이 땅을 밝은 색 수련이 잔잔한 수면에 떠 있고 주위에는 갈대와 버드나무, 아이리스가 자라는 연못정원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실현시켰다.

  모네는 19세기 후반 자포니즘(Japonisme)‘의 열풍 속에 우키요에에 매료된 대표적인 화가다. 우키요에는 모네의 화풍과 정원 조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물의 정원은 우키오요에 판화에 등장하는 전통 풍경과 일본식 아치형 다리를 본따 설계하였고, 로저 마르크스가 당신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하자, 내가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꼭 찾아내야겠으면 옛 일본식이라는 정도로 해두시오.”라고 말했을 정도다.

  모네의 대표작으로 수련연작이 꼽힌다. 이 정원의 수련을 관찰하여 그린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네는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 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순간 수련에 매료된 모네는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장일치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수련> 연작이 탄생한다.


로저 마르크스는 예술 잡지 <가제트 데보자르(Gazett des Beaux-Arts>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평단이 가장 대담하다고 평가한 요소를 소개했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그리면서 지상의 닻에 얽매여 있던 풍경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땅도 하늘도 그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잔잔하고 비옥한 물이 캔버스의 들판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빛이 넘쳐흘러 녹청색 잎의 표면에서 활기차게 뛰논다. 화가는 원근법의 피라미드식 선이나 단일 초점을 추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서양의 전통적인 회화규칙에서 벗어났다.˝

 

  모네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났다. 평단이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 모네의 기본을 달라질 리 없는데 평단이 변한 건가. 시간의 흐름과 모네의 끝없는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 빚어낸 것일테다. 인상파를 조롱하던 때, 루이 르루아의 평론이 실린 때가 1874년이고, <수련> 연작이 전시되던 때는 1909년이니 무려 35년의 시간이 흐른다. 물론, 그 사이에 모네는 런던의 안개 연작도 <건초더미(1890~1891)> 연작도 호평을 받았다.

 

유명 신문 <르 샤리바리>의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를 풍자하여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에서 이렇게 썼다. “대체 뭘 그린 걸까? 어디 보자. ’인상이라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나 역시 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렇다고 이 그림에 인상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조롱하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르루아의 발언은 화가들의 모임에 인상파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인상파 화가들은 이후 11년에 걸쳐 전시회를 일곱 번 더 개최했으며 1886년에 마지막 행사를 가졌다.

 

  ’인상파화가로서 찰나의 순간을 화폭에 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빛의 흐름을 표현하려 했던 모네는 강렬한 햇볕에 노출된 탓에 극심한 눈의 피로와 고통이 있었고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수술 후에도 심한 부작용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잘 보이지 않거나 사물의 색이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을 겪는 건 자연을 그리는 화가로서 얼마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럼에도 모네는 기억과 감각에 의지해 붓을 놓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린다.

  이때 그린 그림들을 보면 이전에 그렸던 색채보다 훨씬 강렬하다. 원래 그의 붓터치처럼 거칠고 생략된 표현도 더욱 두드러진다. 이때 모네가 그린 그림들을 많이 보게 되니 비로소 모네가 추상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두 그림만으로는 알 수 없는 변화된 그림의 색채, 그 색채의 강렬함이 노년 모네의 고통 강도 같이 느껴진다.

  모네의 그림과 정원이 유명해지고 이곳에 많은 화가들이 모네와 교류하고자 찾아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화가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이들 중 모네가 교류한 사람도 있지만 전혀 교류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한다. 오랜 시간 이웃에 살면서도 전혀 교류가 없을 수는 있지만, 모네의 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크고 모네에 대한 유명세도 있었을 텐데, 굳이 관심두고픈 세계가 아니었는지, 단순한 사람 사이의 인사들도 없이 완전한 단절이었는지, 특별히 그러한 관계가 된 연유도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 마음을 나누는 일, 사람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웃과의 일을 떠나 모네 자체는 오랜 생을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모네를 돌보아 준 이들이 많았던 건 모네의 복일 게다.

  꽃을 좋아하고 사랑한 모네가 죽을 때 관에 검은색 천이 덮여 있어서 이것을 걷어내고 창문에 걸려 있던 화사한 꽃무늬 커튼을 덮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꽃을 사랑한 모네가 마지막 쥐고 있던 꽃은 무엇일까 했는데 모네의 이런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꽃이나 화환은 절대로 원하지 않아. 꽃으로 장식하는 건 헛된 일이야. 내 정원에 있는 꽃을 이런 일에 쓰려고 꺾는 건 신성모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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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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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박송이, 빅피시, 2026-05-27.

 

 

  모네는 ’, ‘인상이라는 단어들로 소개된다. 이 책은 빛의 순간들이라는 이름으로 모네의 대표작 100점을 연대기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다. 2016년부터 파리에서 거주한다고 하는데, 미술관이나 모네의 자베르니 정원에서 모네의 작품을 책에 쓴 것처럼 설명하겠구나 싶었다.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화가와 작품 이야기다.

  ‘인상주의하면 파스텔톤 풍경화가 떠오른다. 모네의 작품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의 활용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로서는, 미술책에서 본 그림만으로는 의 흐름이나 머묾을 세세히 잡아내기 어려웠다. 설명을 듣는다 해도 예민한 그 감각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그러니, 어쩌면 그림은 한 순간의 인상이고 그림이나 화가의 이야기에 더 관심갖게 되는 것 같다. 신화나 성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은 어떤 내용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게 되니 풍경 그림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궁금해하는 것하고는 좀 다르니까. 그래서인가. 미술계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 나올 때면 화단계 영향력있는 이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비난과 비판을 주로 하는 것이.

  모네 또한 파리 유력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한 대표적인 화가다. 모네가 활동하던 초창기, 당시 화단에서는 전통적인 역사화나 신화적인 주제를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모네의 그림은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가 주관하는 공식 전시회에 입선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조롱받거나 거부당했다. 물론, 모네는 1866년 살롱전에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출품하여 수상했다. 이는 모네가 입선을 목표로 하고 그린 그림, 그러니까 현재로 생각한다면 입시용이나 공모전 수상 패턴을 분석하여 이에 맞게 그려서 수상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고 모네 자체는 의 표현에 더 관심을 두었기에 이 그림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네를 의 표현으로 이끈 이가 모네의 스승 외젠 부댕이다. 15세 모네가 그린 캐리커쳐에 매료된 외젠 부댕이 모네를 자연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외젠 자신이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함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모네는 이 경험 이후로 야외에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이해함과 동시에 풍경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나아가 모네에게는 빛의 표현”, “밖에서 보고 기억한 관념적인 색채가 아니라 야외의 자연광을 받은 지금 눈에 보이는 색이야말로 그의 관심사였다.”

  모네는 1866년 살롱전 입선 후, 바로 파리 근교의 빌 다브레에서 정원이 딸린 집을 빌려 2.5m가 넘는 큰 캔버스를 야외에 설치하고 대규모 인물화를 제작한다. 캔버스가 너무 커서 윗부분에 손이 닿지 않아 정원의 땅을 파고 도르래를 설치해 캔버스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렸다. 이 그림이 모네의 연인 카미유 동시외가 그려진 <정원의 여인들>이다.

 

살롱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림에 주제가 없다’, ‘붓질의 마감이 거칠다는 이유로 모네는 그해 살롱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모네의 전작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비평가이자 소설가 에밀 졸라는 모네는 살롱의 문을 열었지만, 그가 들고 온 이 너무 눈부셔 심사위원들은 서둘러 그 문을 닫아버렸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평가는 또 있다. <까치(1869)> 또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살롱 출품을 거절당했다. 이유는 그림이 지나치게 밝아서 눈이 멀 것 같다는 것.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나는 평이다. 주제가 없다라니, 내가 보기에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 또한 무슨 큰 주제가 있나 싶은데 말이다. ‘빛이 너무 눈부셔 서둘러 그 문을 닫아버렸다라는 에밀 졸라의 평이 너무나 인상깊다!

  이렇게 화가로서 초기부터 평단으로부터 외면받았기에 모네의 삶은 어려웠다. 모네의 일대기를 보면 평생 가난과 궁핍하다는 설명들이 있기에 정말 아주 가난한 거리의 화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모네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고 어린 시절은 풍족하게 보냈던 것 같다. 모네의 궁핍은 화가가 되어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한 것과 카미유 동시외와의 결혼을 아버지가 반대함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인 카미유는 아들을 낳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1867년 아들 출산 시에는 카미유의 곁에 있지도 못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모네는 20대 후반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충분히 독립하였을 나이인데 아버지가 된 상황에서도 모네는 여전히 어린느낌이다. 부유한 집안의 철없는 아들 같은 느낌이랄까.

  화가로도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한 가정을 가졌으니 경제적인 궁핍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모네는 계속된 경제적 궁핍에도 철학이 있었으니, 열 병의 저렴한 와인 대신 단 한 병의 좋은 와인을 택하는 삶이 그것이다. 모네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항상 어느 정도의 안락함 속에서 살아야만 하네. 그래야 네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을 수 있기 때문이지

  모네는 빚을 지거나 임금을 체납하면서도 고용인들을 해고하지 않고, 돈을 잘 벌 때도 아끼고 저축하기보다 저명한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와 함께 모네에 대한 많은 글 중엔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호소하는 내용이 많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그의 그림은 <여름(1874)>과 같이 햇빛이 비치는 풍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듯한 상쾌함이 깃든 그림들이다. 글쎄, 이것은 좀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안정화하기 위한, 지난 어떤 경험으로 인해 쌓인 방어기제였을까. 모네는 18686월, 강물에 몸을 던진다. 곧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는데, 모네는 화가 프레데릭 바질(Frédéric Bazille)에게 보낸 편지에 이를 실수라고 표현했다. 모네의 전기학자들은 이를 모네의 자살 시도라고 얘기한다. 이때, 모네의 상태는 아버지의 후원 중단으로 인한 지속된 궁핍,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에 그림까지 압류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고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실감도 있었을 테다.

  모네 인생을 보면 동료와 후원자를 비롯하여 인복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네의 경제적 궁핍 호소에 그의 그림을 사주거나 경제적 지원을 하였던 이들이 많다. 그들은 화가로서 모네를 보았을까. 인간 모네를 보았을까.

  모네는 빛이 매 순간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는 눈부신 대화들을 기록할 뿐이며 이것이 그가 꿈꾸던 화가의 삶이라고 했다. 그저 낯선 구도를 중시하며 과감한 붓질을 통해 빛의 표현하던 모네는 그의 아내이자 모델 카미유가 사망하는 순간에도 사별의 아픔을 겪는 남편이기보다 빛의 변화를 포착해야만 하는 화가라는 실존적 숙명을 깨달았다. 임종의 안색에서 푸른색, 노란색, 회색의 조화를 분석하는 본능을 자각한 순간, 그는 슬픔을 앞서는 예술적 관찰력에 경악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고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1879)를 완성해냈다. 모네는 단순히 정적인 풍경을 담기보다는 빛의 산란이나 구도를 위해 거칠고 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예술적 집착이 정점에 달했던 18905월 초, 모네는 봄이 오면서 돋아난 초록빛 나뭇잎들이 겨울의 황량한 구도를 망치자 기상천외한 지시를 내렸다. 인부들을 고용해 그림 속 참나무의 잎을 일일이 다 따 버리게 하기도 했다. 사진작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구도로 대상을 촬영하기 위해 자연에 험한 짓을 하는 일이 있다는데 잠시 이 상황이 동일시되어 순간…… 문화해설사인 저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의 시간마저 자신의 캔버스에 맞추려 했던 이러한 행위는, 화가를 넘어 창조주로서 대상을 통제하고자 했던 모네의 광기 어린 집착을 여실히 보여준다.


  광기 어린 집착이라, 예술가들에게 필연적이고 오히려 이런 면모가 유명한 예술가라는 인정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건초더미(1890~1891)>를 그리던 때에는 이웃 농부들의 사유지를 최적의 각도를 찾기 위해 수시로 농작물이 심어진 구역을 가로질렀고”, “농부들의 대화 소리나 마차의 굉음이 자신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며 항의하기도 했으며 이에 농부들과 갈등이 멈추지 않았다. 탈곡을 위해 건초더미를 치워야 하는 시기가 되자 모네는 농부들에게 탈곡을 늦추는 대가로 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다. 또한, 연작이 많았던 만큼 갤러리에 천창을 설치해 외부 날씨와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의 색채가 실시간으로 변하게하거나 작품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어, 전체의 흐름과 공간까지를 모두 작품으로 여길 수 있게 전시되도록 갤러리도 직접 구상하고 기획하기도 했다.

  삶의 안정기, 모네는 1899년부터 1901년까지 매년 작업을 위해 런던을 찾았다.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머물던 시절 매료된 안개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안개를 불편하고 성가진 존재로 여겼는데 모네가 그림을 그리고 나자 안개가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모네는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많은 화가들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네는 86세까지 생존했다. 자연의 을 중시하는 화가로서 일찌감치 으로 고통받았는데 말년에는 백내장과 수술 후 부작용으로 색채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 이때 모네는 기억과 감각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으며 사망한 해에는 폐암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 86세의 화가는 신체적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첫 번째 아내 카미유, 두 번째 아내 알리스와의 사별, 아들과 의붓 딸,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때문에도 슬픔과 아픔 속에 있었다. 모네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모네의 그림을 국가가 소장해야 한닥 강력하게 주장한 친구와 모네의 그림을 사랑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모네의 그림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까지,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클레망소도 대표적인 사람이다. 모네가 사망할 당시 모네의 관 위에 검은 천이 덮여 있었다. 이때, 클레망소는 안 돼! 모네에게 검은색은 안 돼! 검정은 색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관 위의 검은 천을 치우고 창문에 걸려 있던 화사한 꽃무늬 커튼을 뜯어와 덮었다고 한다. 검은색을 싫어하고 꽃을 사랑한 친구의 마지막을 진정 꽃길이 되도록 해준 것이다.

  모네의 삶은 꽃길이었을까. 모네가 사랑하고 가꾼, 그의 예술의 공간인 자베르니는 개방된 곳이라고 한다. 화창한 여름, 그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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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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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김광우 (지은이), 미술문화, 2017-10-23.


  2026년 클로드 모네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란다. 모네는 마네와 함께 거론되는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화가다.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것 외에, 학창시절 기억에 의존해도 마네와 모네는 늘 헷갈렸고 대표적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도 가물해지는 때, 2025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전시회가 있다고 하여 오직 모네작품만을 생각하며 전시회를 갔다. 모네 작품은 어디에를 연발하며 그저, 모네 작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아예 잊어버린 채 돌아왔다. 전시회 제목에 딱 쓰인 것이 모네인지라 모네의 수많은 작품이 어느 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 모네의 작품은 1점이었다. 모네는, 그러니까 미끼였던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 JAG)’의 주요 소장품 143점에 모네 작품이 하나일 줄 어찌 알았겠는가.

  사실 대부분이 그렇지만 모네, 마네는 화가의 일대기도 그림도 제대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 조그맣게 있었던 그림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외에는 다른 책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접해 보지 못한 화가였다. 우리나라는 고흐에 관한 책은 정말 많은데 생각보다 다른 화가들에 대한 책들은 많지 않다. 아니, 고흐에 관한 책이 너무 절대적인가. 두 화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둘 다 같은 제목으로 그린 그림 때문에도 헷갈렸고 주의깊게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전시회에서 본 모네의 그림은 팸플릿에서는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전시회에서는 인상적인 기억이 되지 않았다. 작품이 한점이기에 오히려 더더욱 모를 화가로 남았는데 이 책을 보고 모네와 마네를 명확히 구분한다.

  마네와 모네는 대조적이구나. 비슷한 화풍이었던 것 같다며 마네, 모네를 한 유형 한 묶음으로 생각했는데, 두 화가의 그림과 일대기를 보며 어쩌다 이런 혼란을 고정시켰는가 싶었다. 미술 수업을 제대로 안 들었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때문이었을까!

  인상주의라는 이름 하에 간단한 인상을 말하자면 마네는 선명함, 모네는 흐릿함이다. 두 화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화가로 마네가 모네보다 연상이며, 동일한 제목으로 그린 그림이 몇 있지만 마네가 인물에 중심을 둔 사실주의적 그림을 주로 그렸다면 모네는 풍경에 중심을 둔 인상주의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대충 요약하는데 저자는 세련되게 이들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마네는 의도적 구성이나 생략으로 화가 자신만의 느낌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게는 모델이 매우 중요했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으로,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를 살며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책은 이런 마네와 모네의 삶과 작품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동일한 제목의 그림이 각각의 특성을 가진 채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풀밭 위의 오찬>(대체로 그림 제목이 풀밭 위의 식사, 풀밭 위의 점심 식사, 풀밭 위의 오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책은 풀밭 위의 오찬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오찬표현이 이상하게 별로다.), <생리자르역>을 비롯하여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마네와 모네의 그림들도. 앞의 두 작품이 마네오 모네의 명확한 차이점을 보여준다면 모네가 살고 있던 아르장퇴유에서 모네 부부를 그린 마네의 그림은 아르장퇴유에서 모네가 그린 그림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두 화가를 알게 되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에밀 졸라를 비롯한 평론가이기도 했다. 두 화가는 파리 화단의 인정을 위한 살롱전(국전)에 끊임없이 출품하였지만 대체로 평단으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이 때마다 두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여 그림을 해석하고 화가의 의도를 설명하며 그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은 에밀 졸라였다. 전통적인, 익숙함에 길들여지고 그것만이 옳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틀린것으로 치부하는 다른 평단을 향해 제대로 된 비평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당시에도 누드 그림은 성행했는데, 그러고 보면 왜 그다지도 누드그림에 열광하였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만은 적나라하게 공격받았다. 모두들 외설적이라 비난했고 황제는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이 그림은 그래도 낙선전에 전시되었고 황제의 비난 덕분에 홍보가 되어 인기가 좋았다.

  이 책은 마네와 모네에 대한 평단의 비난에 대한 에밀 졸라의 비평이 잘 담겨 있다. 에밀 졸라의 시각으로 그림에 대한 비평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이 두 화가를 대표하는 평들이 에밀 졸라에게서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평을 저자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번역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이를 보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그림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뭔가를 느끼거나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어떤 점이 포인트가 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두 화가의 작품을 다룬 책인데도 에밀 졸라만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두 화가의 공통점은 평단에 비난 단골이라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비난에는 기존과 다르다’, ‘새롭다’, ‘낯설다라는 평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형태로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오늘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바로 과거의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하고 미술 자체의 본질과 순수성을 추구했던 혁신적 태도모더니즘이다. 저자가 처음 설명하고 있듯이 마네는 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인상파를 연(물론 본인은 인상파이기를 거부했다 한다) 화가로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로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자 추상 미술을 연 화가로 대표되고 있다.

  이처럼 훗날에도 이름을 날리며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되기까지 이들에게 온갖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동료, 평단, 친구, 화단,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두 화가를 둘러싼 반응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 ( 더더군다나 예술가라면)’ 를 알아주는 이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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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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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존재들


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문학동네, 2026-04-10.

 


  책을 덮고 나면 번역이란 단어가 둥둥 떠오르는데 아, 이주혜 작가가 번역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소설집 속에 반복된 번역이란 언어와 언어만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 동식물, 기억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낯선 곳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공간에 대한 번역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 ‘언어가 아닌 것을 의미화하여 해석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한편으론 이 낯선 곳에서 여행하면서 번역으로 인한 어려움이 전혀 없다. 안개의 기분에 등장하는 사슴 키리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어찌 이다지도 소통이 어려움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번역으로 힘든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든 어떻든 소설 속 인물들은 여행을 떠나는데 이 여행 장소는 주로 일본이다. 일본은 또한 번역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언어를 이해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왜 굳이 여행의 장소는 일본인 걸까. 세계화가 된 지 오래, 점점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배경은 이제 한국소설에서 아주 기본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일본이라는 공간이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일까. 분명 우리나라와는 심리적정서상 이질감과 거리낌이 있는 일본이란 나라, 꼭 이 나라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가, 필연성이 있는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젊은 세대에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가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을 본 것도 같다. 굳이 배척할 필요야 없지만 굳이 더 챙기고(?) 그럴 것까지야 있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아직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하여. 하지만, 그런 점에서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이 주는 소설적인 요인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래서 일본이 배경인 소설들이 주는 이미지, 정서가 대체로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소설에서 일상을 벗어나고픈 이들은 자신의 언어가 닿지 않는 낯선 곳을 선택한다. 여행은 보다 낯선 방향으로가서 익숙함을 발견하고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여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낯선곳으로 가, ‘낯선 것 이상의 기묘한 것을 만나고 과거를 기억하고 온다. 과거의 기억을 괄호 밖으로 끄집어내어 해석하고 온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타인에 의해서든 자이로든 단단히 갇혀 두었던 그 기억 속 말들을 끄집어낼 때, 그것은 적어도 해석되고 해체되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끔 만든다. 그렇다면 이건 치유의 과정인 건가. 안개의 기분에서 마주치는 말하는 사슴 키리를 보자. 느닷없이 나타난 키리는 마음을 다하면 저절로 상대방의 말을 할 줄 아는존재다. 소설집에서 이런 존재는 불쑥 나타난다. 여행을 떠난 는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놓은 언어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된 걸까. 그것을 위해 작가는 툭툭, 여행 속에서 이러한 존재들을 내밀고 있는 것인가.

 

여자는 음성언어 외의 언어 소통에 능숙했다. 오직 손짓과 몸짓, 표정만 동원할 뿐인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절로 이해되었다. 여자는 마임 배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동작이 섬세하고 표현력이 뛰어났다. 몸에서 출발한 언어는 의식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게 단단한 괄호에 담겨 곧바로 내 몸에 도착했다._괄호 밖은 안녕

 

괄호 밖은 안녕속 비오는 날에 만난 맨발의 여자도 그렇다. 사슴 키리처럼. 그러나 이런 존재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 이들을 마주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환상처럼 유령처럼 마주한 이들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그들 너머의 기억을 소환하니까.

  어떤 기억들을 소환하느냐, 안개의 기분에서는 민해라는 이름이 민중해방의 민해인지를 묻는다거나 외할머니와 엄마와 아들이 성이 같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기억을, 괄호 밖은 안녕에선 가정폭력에서 도망친 이웃집 여자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가족사를, 초록 비가 내리는 밤에선 남성 가부장제의 피해자를, 여름 손님입니까에서는 내가 질투한 엄마의 조카인 영란 언니를, 순영, 일월 육일 어때에선 결혼과 임신을 이유로 수은의 인생에서 사라진 언니다. 대체로 가족에 관한 기억이다. 위안이 되는 존재로서의 가족인지 상처를 주는 가족인 것인지.

  「초록 비가 내리는 집은 인상적이다. 가부장적인 남편 박천일에게 40년이 넘는 세월을 순종하며 살아야 했던 양순덕이 병으로 사망하며 화분 100여개와 그 식물을 키워낸 기록을 적은 노트를 남긴다. ‘박천일은 아내의 기록을 읽어내지도 식물을 키워내지도 못하고 손우정에게 집을 세주는데 사회에서의 또다른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손우정양순덕의 기록을 보며 식물을 되살리고자 한다.


손우정은 비를 피하는 게 화분에 이로울지 맞는 게 이로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 저 많은 화분 중 초록으로 살아난 식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손우정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식물들이 번개와 폭우를 견뎌내리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화분들 간 틈이 거의 없게 바짝 붙여주고 가장자리의 아주 작은 화분들은 창고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아놓았다. 손우정은 화분 백 개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우리 꼭 살아남자.

 

  식물을 가꾸는 아내와 함께 산 남편이 전혀 해내지 못하는, 아내의 기록마저도 무슨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남편과 다르게 타인인 손우정양순덕의 식물에 대한 기록을 읽어내고 해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이 당한 억압에서 해방되고 치유하고자 하는 손우정은 서로 본명도 모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할리와 로사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싱글맘의 서사, 가정폭력 피해자, 돌봄 노동에 갇힌 여성들 등 가부장제, 남성 피해에 맞선 여성의 상처에 대한 공유와 연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꼭 살아남자".

  생각해보면 마음을 다하면될 일인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존재하는 관계들이 있는 법. 그리하여, 낯선 여정이 해방이 되고 이소를 꿈꾸는 이들이, 괄호 밖으로 나가기 위한 존재들이 소설에 가득 차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이 현실에서는 환상의 존재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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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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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설의 삶


복자에게, 김금희, 문학동네, 2020-09-09.

 


  고고리섬이 어디메쯤 있는지 찾아본다. 가장 닮았을 섬으로 상상하며 섬 찾기를 멈춘다.

제주의료원 산재 사건을 찾아본다. 제법의 기사들이 검색된다. 10, 재판은 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읽게 되면, 사실 먹먹함이 더 배가된다. 여기에 그들이 살았었구나, 어딘가에 살고 있겠구나, 좀더 실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문장을 빌려오자면 습설의 삶이 내게로 옮겨오는 듯하다. 내 삶은 옮겨가지 못하고 겹겹이 습설이 되어가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 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습설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사는 동안 무엇을 털어내어야 했을까.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거나 푹 파묻힌 습설의 삶을 사는 이로써 새삼 묻게 된다. 털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작가는 소설을 다 쓰고 나서 한 문장을 떠올린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라는 문장이라고 했다. 순간 난 생각했다. 누구의 실패일까. 무엇을 실패라고 보는 걸까. 내겐 습설의 삶이 기억나는 한 문장이다. 돌이켜 보니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라면 그 삶 내내 실패와 실패의 거듭이겠구나 싶다. 다만, 저 말은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말이다. 우리나라 판사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정말로 습설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듯이 습설의 삶을 느끼는 판사들도 분명 있겠지. 이영초롱 판사는 어떤가.

  소설은 나, ‘이영초롱1999년 열세 살 한때 살았던 고고리섬에 좌천되어 오면서 어린시절 만난 복자와의 시간을 회상하고, 또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고고리섬 고모에게 맡겨진 이영초롱은 씩씩하고 많이 웃고 더 진취적인 아이 복자를 만남으로써 섬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섬 어른들 사이 갈등에 휘말린 상황에서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로 이영초롱은 복자의 간절한 부탁을 거부함으로써 상처를 주고 화해하지 못한다. 이 이후로 이영초롱은 편지를 쓴다.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복자야, 복자에게…… 끝나 버린 그들의 관계처럼, 부치지 못하고 폐기되어 버린 편지들이다.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이영초롱은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가 연상되었는데, 필시 훗날 제 이러한 행동을 후회할 것이다 싶었다. 일찌감치 고모로 인해 미안함을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기억으로 간직했기에, 이영초롱은 눈을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판사가 되었다고 본다. 눈은 빨리 털어내지 못했는데 법정에서 욕설은 내뱉으면서 이영초롱 판사는 고고리섬으로 가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복자는 힘든 삶 속에 있었고…… 그건 어린 시절 그때 이영초롱이 한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영초롱 판사는 어톤먼트의 브라이오니가 그랬던 것처럼 복자의 삶에, 사건에 개입하여 복자를 위해 힘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복자는 실제 사건이 모티프가 된 제주의료원 산재 사건의 당사자다. 병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한 수많은 간호사들이 유산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했고, 간호사로 근무하다 유산한 복자는 이들과 함께 산재소송을 진행 중이다. 허나, 익숙하듯 병원대형로펌이라는 거대 자본 골리앗 연합에 이들은 작은 돌조각 하나도 제대로 쥐지 못한 다윗일 뿐이다.

  소설은 산재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재판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이영초롱과의 연결이 이루어져 전개된다. 하지만 사건이 중심이 된 소설이기보다는 고고리섬을 중심으로 이영초롱의 고모, 복자에게 엄마같은 이선 고모, 친구 고오세, 그리고 이영초롱의 동료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삶 속에서 각자의 빛과 어둠을 품고 살아가며 복자의 산재 사건도 이의 한 부분이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연상되는. 소설은 오세가 드론을 띄워 찍은 고고리 영상을 통해 이러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오세는 드론을 띄워서 찍은 고고리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바다 위에 그 작은 고고리섬이 떠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연속해서 몰아치는 파도를 견뎌가며 섬은 마치 가지를 뻗듯 선착장과 부두를 만들고 꽃처럼 다채로운 지붕의 집들을 피우고 보리밭과 해바라기밭을 보듬으며 거기에 있었다. 해안의 거친 바위들, 섬의 유일한 공장인 보리 도정공장과 밭둑의 고인돌들까지, 그렇게 위에서 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드론이 점점 내려앉아 지붕의 시점이 되고 잠자리들의 시점이 되고 우리의 눈높이가 되고 갯강구들의 자리까지 내려와 착륙하면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참,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슬픔을 지는 존재들일 것도 같다. 살아간다는 건 사실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본능을 감당하는 일도 억제하는 일도 힘겹다. 지성과 이성을 끊임없이 담금질하여 문명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끊임없이 사람들과 관계맺음 속에서 감정을 교류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마냥 어렵다, 버겁다, 힘들다고만 할 수 없으니마냥 우울하고 슬플 수가 없어서“, 복자처럼 할망! ! ! ! ! 소리치고 나면 슬픔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듯하고 그냥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괜찮은 듯살아가는 거겠지. 그조차 하지 못했던 이영초롱은 그러한 삶을 깨달아가는 것일테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냉소적인 이영초롱이 유년의 상처와 죄책감을 털어가는, 나 슬펏저라고 외치는, ‘실패를 용인할 줄 아는 이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인생에서 복자인지, ‘이영초롱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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