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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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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사람은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저기 쓴 글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책을 쓰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는 내용을 아는 방식으로 쓴다면, 그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괄적인 계획은 있다. 오랫동안 작성해온 노트도 있다. 자료도 충분히 모아왔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모르는 내용, 알 리가 없는 내용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해하는 일이다. 깊이 자실하는 일이다. 얕게 고동치며 하루하루를 혼탁하게 만드는 건망과 편집광적인 기억에 괴로워하는 일이다. 자신의 몸도 혼도 아니나 그 경계에 있는, 이 구분을 허용하는 그 어디인가에 조금씩 번지는 잉크로 문신을 새기고, 그 문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에게 또 경악하는 일이다. 아련하게 광기와 열기를 머금은 볼, 그리고 망설임에 차가워지고 시들어가는 손가락 끝 사이로 엉켜 있는 신음 소리를 울리게 하는 일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 신음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따라서 처음부터 책 전체의 구성을, 그 논지를, 그 논리를 명징한 도식으로 뇌리에 떠올릴 수 있다면 책을 쓸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안다면 왜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것을 안다면 음습한 환상 속에 계속 취해 있을 것이라면. 이는 지식의 복사에 불과하다. 오만한,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지식의 ‘교수’다. 그러나 이런 것이 과연 쓴다는 행위일까? (p15)


저자가 가장 마지막에 썼다는 이 두꺼운 책의 서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려운 책인줄 짐작하면서도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두근두근했다. 이런 멋진 서문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 다음에 펼쳐질 내용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를 잘 모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제1부의 제 1장을 읽었을 때 내 기분이란.... 준비운동도 안 하고 겁도 없이 선수용 풀에서 수영하겠다고 풍덩 뛰어들었다가 물의 깊이에 놀라서 뛰쳐나온 초보 수영 강습생의 기분이었다. 나는 준비운동 삼아 라캉과 푸코가 나오는 (르장드르의 저서는 번역서가 없으니까) 쉬운 구조주의 입문서를 찾아서 먼저 읽었다;;;


옮긴이의 말에 “이 책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아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을 논하는 도정에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므로 독자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라고 한 말은 무참하게도 내게 해당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이 책은 누가 뭐래도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이 말인즉슨, 박사가 될만큼 공부한 사람만 읽어야 하는 수준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이 일본에서는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것도 사상가나 비평가, 전공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뭔가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작가, 음악가, 미술가, 디자이너, 활동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나의 독서수준이 의심스러워져서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푸코의 『말과 사물』이 출간 당시 모닝빵(!)처럼 팔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큼 기죽었다. 근데 이 책은 『말과 사물』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이 책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는 1차원적인 독서만 했고, 텍스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2차원적인 독서는 거의 불가능했으며 나의 관점을 투사해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의 의견을 더하는 3차원적인 독서는 엄두도 못냈음을 책 위에 손을 얹고 고해한다. (사실 면벽수행에 가까웠다. 진정 텍스트가 벽처럼 느껴졌다;;;)


구조주의자들이 쓰는 문장들이 원래부터 읽기 쉽지 않다고는 누누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사사키 아타루의 독특한 문체가 주는 쉬운 듯 어려운 듯 묘한 방식의 설득력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을 때처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될 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는 독특한 문체 때문에 구조주의자들의 문장을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거기다 분량 때문에 호흡도 너무 길고!  웬만큼 어려운 책도 진득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거나 다 읽고 난 후에 이해 못한 부분을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깨치는 그런 독서 경험을 해왔는데 이 책은 진정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어려웠다. 그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에 깊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도, 아니 이건 어디 가서 다 읽었다고 하긴 무안하니 훑었다고 말해야겠다. 어쨌든 그러고도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을 내 머리로는 포착하지 못했다. 좀더 공부하고 내공을 쌓은 후에야 제대로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어쩌면 가슴으로 포착했거나 어설픈 감상에 불과한 내 깨달음이라도 한 줄 남겨보려고 한다. 저자가 밝힌 바대로 라캉과 르장드르, 푸코에 대한 “통일된 시점”이나 “이 셋을 논할 필연성”은 없어 보였기에 나는 이들이 속한 구조주의의 대의와 대략이나마 이해한 기본적인 논지를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혹은 상보적으로 병치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리하여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전에 푸코가 말년(죽기 1년 전)에 했던 말을 인용해보려한다.


철학자의 일, 그것은 오늘이란 무엇인가 논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우리”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유래 없는 파멸의, 밤의 함몰지대라거나,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아침이라거나, 그런 단언을 하고 마는 드라마틱하고 연극적인 안이함에 몸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이거나, 오히려 다른 날들과 완전히 똑같지 않은 하루인 것입니다. (p739)


그리고 저자의 결론, 혹은 결론을 대신한 문장도 인용해봐야겠다.


그렇다. 오늘은 다른 어떤 날과도 다를 바 없는 하루이고, 그 어떤 날들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 이 하루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끝이 없다. 우리가 태어나 죽는 찰나의 영겁, 짧은 영원 속에서 몇 번이나 밤은 도래할 것이다.(생략) 가자. 우리는 가자. 우리는 글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유하자, <거울>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3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근거율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손에 쥐기 위해. 지키기 위해. 굶주림에 저항하고 추위에 저항하고 죽음에 저항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죽음과 위험의 선동을 웃어넘기기 위해. 전진하기 위해. 옆으로 한 발 나가기 위해. 소격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직조하기 위해. 투쟁하기 위해. 독박하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기 위해. 승리하고 패배하는 기쁨을 위해. 이윽고 이로는 다했다. 붓을 놓을 때가. 그러나 끝은 없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p773)


나는 라캉과 르장드르와 푸코의 ‘관계’에서, ‘오늘’이라는 하루의 연속성이 가져다주는 짧은 영원 속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영원한 야전’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꼬리를 문 원형의 뱀인 ‘우로보로스’를 떠올렸다. 라캉과 푸코와 르장드르가 공명하는 시공, 그들의 논리가 한순간에 소생하는 시공 속에서 내가 본 것은 “거짓은 요새의 안쪽에 숨어 있고 순간적이지만, 진실은 바깥의 야전에 있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전의 허물을 벗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듯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고, 시작이 없는 끝, 끝이 없는 시작, 시작과 끝이 연대하는 ‘영원한 야전’은 바로 우로보로스의 형상을 한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나 또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재독할 때는 더 발전한 나를 만나고 싶다.


- 별점은... 너무 어려웠으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만큼의 글쓰기 수준으로 독자를 만나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때문에 별 세 개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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