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뉴웨이브는 대략 세 단계를 거치며 발흥하고 몰락했다. 첫 번째,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젊은 영화인들이 새로운 중·단편영화를 상영하는 ‘프리시네마’를 프로그램하면서 기존 영화산업에 대항한다. 두 번째, 1958년 이후 프리시네마의 주역들이 장편영화 작업으로 옮겨오며 영국 뉴웨이브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 번째, 모드족의 발랄함과 중산층의 성해방을 다룬 영화들이 인기를 얻자 영국 뉴웨이브는 일막을 내린다. 2월22일부터 3월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은 위 두, 세 번째 단계의 대표작을 통해 영국 뉴웨이브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다. 연극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원작자와 연출자였던 존 오스본과 토니 리처드슨이 설립한 우드폴 영화사는 ‘성난 젊은이’와 ‘키친 싱크’ 영화의 본산으로 이번 프로그램의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 <꿀맛> <장거리 주자의 고독>이 그것이다. 이외에 칸영화제 주연상 수상작인 <꼭대기 방> <욕망의 끝>, 존 슐레진저의 데뷔작이자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사랑의 유형>이 소개되고, 영국 뉴웨이브의 여파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하드 데이스 나이트>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여자를 유혹하는 요령>과 <만약에…>가 상영된다.
영국 뉴웨이브는 다른 나라 영화운동의 성과라 할 혁신적인 미학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전복적인 주제 등 작가적 시선을 찾기 힘들고,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내부로부터 몰락한 영화운동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군의 영화가 암담한 현실과 잿빛 미래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와 하층민의 곁을 거친 호흡과 분노로 일제히 다가간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그들과 그들이 삶을 꾸려나가는 주거지, 산업지대, 놀이공원 등의 공간은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생생하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비틀스도, 펑크 음악도, 켄 로치도 없었을지 모른다. 영국 대중문화를 말할 때, 기름때 묻은 노동자 곁에 서 있는 성난 얼굴의 지미 포터와 아서 시튼을 기억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ack In Anger/ 감독 토니 리처드슨/ 1964년
‘키친 싱크’와 ‘성난 젊은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대학 졸업 뒤 노점에서 사탕을 파는 남자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자신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서서히 파괴해나간다. 언뜻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영화의 마지막은 데이비드 린의 <밀회>의 한 장면을 기억하게 하지만 거기엔 더이상 키스도 로맨스도 없다. 하층민 거주지에 사는 거친 남자와 순박한 아내 그리고 그들을 방문하는 지적이고 신경질적인 여자와 그들 곁을 맴도는 약한 남자의 구조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비슷한 구석이 없지 않은데, 주연을 맡은 리처드 버튼은 내심 말론 브랜도와의 경쟁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30대 버튼의 외모는 20대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았고, 스타로서의 위치는 뉴웨이브의 분위기를 벗어나는 것이었으나, 연극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존 오스본의 역할 제의에 선뜻 응했다고 한다.
<꼭대기 방>
Room At the Top/ 감독 잭 클레이튼/ 1959년
존 브레인의 소설을 각색한 <꼭대기 방>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시골 하층민 출신인 조 램튼은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의 대상인 여자와 욕망 실현 도구로서의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그는 개츠비의 후예에 다름 아니다. 비극적 인물로 분한 로렌스 하비의 실감나는 연기가 뇌리에 남는 작품. 형식적인 면에서 옛 영화의 티를 벗지 못한 <꼭대기 방>이 영국 뉴웨이브 영화의 역사에서 줄곧 다뤄지는 건 해외에서 크게 주목받은 첫 영화라는 사실 때문이다. <꼭대기 방>은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주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영국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 시몬 시뇨레가 여우주연상을, 닐 패터슨이 각본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영국 뉴웨이브를 먼저 인식하고 발빠르게 대처한 건 세계영화제와 영국 영화산업이 아닌 미국 아카데미와 할리우드였다.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감독 카렐 라이츠/ 1960년
프리시네마 운동에 참여한 알랭 태너, 클로드 고레타 같은 외인부대의 일원이었던 카렐 라이츠는 이후 영국에 남아 영국 뉴웨이브의 시작과 종말을 지키게 된다. 그는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으로 노동자 주인공의 전형을 제시한 몇년 뒤 영국 뉴웨이브의 씁쓸한 뒷이야기인 <모건>을 완성한 인물이다. 원작자 앨런 실리토와 토니 리처드슨이 각색과 제작을 맡아 라이츠의 연출을 지원한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은 영국 뉴웨이브의 주역 우드폴 영화사의 야심작이었다. 노팅엄 산업지구의 노동자 아서 시튼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지미 포터에 비해 삶의 철학이 뚜렷하고 즐길 줄 아는 청년이다. “녀석들이 널 속박하게 놔두지 마. 이미 경험해서 알잖아. 난 즐겁게 살고 싶어. 나머지는 전부 거짓 선전일 뿐이야”라는 대사는 영국 뉴웨이브와 불만에 찬 노동자의 선언이 되었고, 주인공을 맡은 앨버트 피니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꿀맛>
A Taste of Honey/ 감독 토니 리처드슨/ 1961년
영국 뉴웨이브를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토니 리처드슨은 다소 의외의 선택을 한다.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돼 호평받은 셸라 딜레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꿀맛>은 단조롭던 영국 뉴웨이브를 풍성한 인물들로 채운 작품이다. 분노한 남자들 대신 그동안 소외된 미혼모, 동성애자, 흑인을 전면에 배치했던 것. 엄마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집시처럼 옮겨다녀야 했던 십대 소녀 조는 엄마의 재혼 뒤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혼자 살아간다. 어느 날 손님으로 만난 제프와 친해지면서 둘은 함께 살게 되는데, 조는 얼마 전 사귀다 떠나보낸 흑인 선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게이 청년 제프는 유사가족을 제안한다. 대부분 반어적인 제목을 사용한 영국 뉴웨이브 영화 중에서도 <꿀맛>은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는, 매번 쓴맛으로 가득 찬 생활로 돌아오게 되는 소녀가 출구없는 삶에서 탈출하기를 빌게 된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욕망의 끝>
This Sporting Life/ 감독 린제이 앤더슨/ 1963년
<욕망의 끝>은 1960년에 발표된 데이비드 스토리의 사회적 리얼리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광부이자 럭비팀 스타인 프랭크는 하숙집을 운영하는 미망인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폭력 외에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그녀를 죽음으로 몬다.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과 뒤늦은 후회 그리고 비참한 현실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스포츠의 유혹이 제시된다는 설정에서 <꼭대기 방>과 <장거리 주자의 고독>과 연결해서 보면 좋은 작품이다. <욕망의 끝>은 관계와 계급문제에 대한 예리한 해석을 보여준 진지한 심리극이었으나 문제는 1963년이란 시간이었다. 프리시네마 기수였던 린제이 앤더슨을 연극무대에서 영화로 끌어낸 랭크영화사는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삶을 다룬 영화가 더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따름이다. 발랄하고 가벼운 영국영화가 빛을 발하던 시기에 뒤늦게 영국 뉴웨이브 무대를 찾은 앤더슨은 다시 방향을 바뀌어야만 했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여자를 유혹하는 요령>
The Knack… and How to Get It/ 감독 리처드 레스터/ 1965년
굳이 따지자면, 이것은 영국 뉴웨이브의 종말에 바치는 유쾌한 묘비명이다. 전작 <하드 데이스 나이트>를 통해 청년문화의 변화를 감지한 리처드 레스터는 이어 새 관심사인 성해방을 다룬다. 선생이며 집주인인 콜린은 카사노바 세입자인 톨런의 능력을 내심 부러워한다. 둘 앞에 런던에 처음 온 시골 소녀와 색채 이상심리를 가진 남자가 등장하자, 야수의 손길로부터 순수한 여자를 구하려던 영화는 상상 성폭행을 주장하는 여자에게 판타지를 가장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구세대의 젊은이를 향한 시선이 반영된, 세 남녀가 침대를 끌고 집으로 가는 7분간의 길고도 낭만적인 장면이 인상적이다. 당시 독창적인 영화 형식으로 호평받았으며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자를…>은 그러나, 모드족의 찬가이자 기록이지 성난 젊은이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시대는 너무 빨리 변했고, 성난 젊은이들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