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출근 길에는 항상 한겨레 테마 섹션 "책과 지성 18℃"를 읽는다.
월급쟁이들이 금요일을 기다리는 건 당근이지만
18℃가 있기에 금요일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한겨레를 정기구독 하는 것도 바로 이 섹션 때문이다.

이틀 전 금요일에는 안치운 교수의 [세설] "길 잃은 아빠들"에 필이 확~꽂혔다.

※ [세설] 길 잃은 아빠들 전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98070.html

전혀 "꼰대"스럽지 않은 안교수의 솔직하고 가감 없는 글은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글쟁이들의 삶의 유형을 생각하게끔 했다.

"글을 쓰는 직업이라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집은 삶이 이루어지는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장소였다.
함께 사는 식구들은 이것을 큰 불만으로 느끼고 있었다.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을 서재로 삼고, 그 곳에 들어앉아 일을 하노라면 가족들도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월급쟁이들은 퇴근하면 끝이다.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이 있어도 퇴근을 하며 생각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그런데....글쟁이들은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제대로 쉬지를 못한다.
원고 마감의 압박감, 글이 써지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는 계속 쓰다만 글을 생각하고 있다.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아 출근도 없지만 퇴근도 없다. Open 24hours!
주말에 대한 개념도 흐릿하다.
어찌 보면 항상 빈둥거리는 것 같고,
어찌 보면 1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헉헉 거리는 글쟁이들.

알면 사랑한다! 고 누가 말했지?
내 주위의 글쟁이들을 "naive"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통근 버스를 타야 하고,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려야 하고,
때로는 상사의 호통에 고개를 떨구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일도 시키면 해야 하고,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우면서도 일 얘기를 해야 하는 회사원들에 비하면
그들의 생활이 헐렁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주말에도 집에서 뭉개는,
낮잠 자느라 전화를 받지 않는 그들이 게으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생각한 거다.
그들에겐 출근 시간도 없지만 퇴근 시간도 없다.
퇴근 시간이 없는 그들은 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들이야 말로 하루 종일 긴장하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시체놀이를 하면서도 마음은 분주할 텐데....

안치운 교수를 우연히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회사 근처 허름한 곱창집에서.

내가 들어갔을 때
그와 그의 일행은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곱창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 테이블의 곱창이 노릇노릇 잘 구워졌을 때
그들의 테이블에는 생고기가 잔뜩 든 김치찌개가 양철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사람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글을 읽으며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지,
<길 잃은 아빠들>을 몇 번씩 곱씹으며 읽었다.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준 글이다.

쌩뚱 맞은 마무리)

출근시간이 있는 월급쟁이들은
글쟁이들을 따라 하지 말고 늦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간과 돈을 바꾸는 샐러리맨들은
자기 싫을 때도 자야 하고
일어나기 싫을 때도 일어나야 한다. 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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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7-03-2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퇴근 시간 없는건. 집이 일터이자 쉼터인건.

시비돌이 2007-03-2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는 일이라는게 예전에는 한나 아렌트가 얘기한 '가난한 자유인'의 느낌이 강했던 것 같은데요. 요즘 신세대 글쟁이들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김영하 같은 작가도 샐러리맨처럼 출퇴근 시간 정해서 일정하게 글을 쓰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긴 조정래 같은 대작가도 작품을 할때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꼭 그 분량을 채워넣었다더군요.
근데 이 글보니 웬지 서글퍼지네요. 저 같은 나이브한 유사 글쟁이도 사실 마음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죽어라고 일해본 적도 없는 것 같고...

비로그인 2007-03-2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힘든 생활과 할랑한 생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생활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이지요. 이쯤에서 전혀 시류가 다른 마크 렌튼(트레인스포팅)의 말이 생각납니다. I'll choose not to choose life.

릴케 현상 2007-03-2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경험한 어느 출판사는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시간은 없더군요. 어디서든 쪽잠이 들면 잠깐 퇴근한 걸로 쳐야 할까^^

moonnight 2007-03-2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러네요.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확연히 구분지어지는 것이 더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하루왼종일 사람 상대 않고 책 읽고 글쓰면 좋겠다. 고 막연히 부러워했더니만. ;; 참, 저도 한겨레신문 금욜 섹션 소문듣고 정기구독하려다 집에서 저지당했어요. 그냥 금요일만 한 부씩 사서 보라고 하는데 그게 또 괜히 쉽지가 않더라구요. 이번주는 꼭 사봐야지.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