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이제는 분기도 아니고 상반기, 하반기로 독서기록을 쓰고 있다. 올해는 좀더 분발해야지. 좀더 기록하는 한해가 되길. 


이 소설은 1869년에 일어났던 라리카마리와 오뱅의 대규모 탄광 파업 사건을 소재로 쓰여졌다. 그때까지 다루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노동자와 부르주아간의 계급 투쟁이라는 사회문제를 제기하는데 탄광촌의 묘사, 탄광내 작업 환경에 대한 묘사가 실로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문제의식을 갖고 투쟁을 하는 민중들 사이에도 서로 분열되어, 생계를 위해 다시 일을 하러 갱도로 들어가는 무리와 이런 이들을 배신자라며 죽이려는 무리들 사이의 갈등이 중반부 이후 소설을 이끌어간다. 결국 수바린이 방수벽을 무너뜨려 수갱은 붕괴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에티엔과 카트린이 도망치는 마지막 장면 묘사는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제르미날은 '싹이 나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투쟁에 앞장서면서도 부르주아로의 도약을 꿈꾸는 에트엔의 성장과정을 보며 한 사람의 마음에 싹이 어떻게 트는가,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다. 

(탄광 안에서 평생 일만 하면 보냈던 말 두마리에 대한 묘사가 다소 충격적으로 기억된다.)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생의 전 과정을 나에게 들려준다. 1934년 1939년에 전쟁 발발 직전 어린이 수습작전으로 프라하를 떠나게 되는 일로 시작해 아우스터리츠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추적해 자신의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우스터리츠에게로부터 듣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사람들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장면이다. 테레진의 게토 박물관에서 어머니 아가타가 수감되고 제거된 순간의 기록이나 영상물에서 우연히 어머니(와 비슷한?)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들. 자신의 생의 부침만큼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살아낼 수 없어 아우스터리츠는 정신병원을 드나들며 겨우겨우 생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기억이고 기억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것에 할 말을 잃는다. 경외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은 처음이라 뭐지 싶었는데 이 책은 아주 천천히 읽었지만 강하게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집중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주는 즐거움. 




동시에 읽는 책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지나치게 평범한 극적인 사건이랄 것도 없는 사람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인물의 감정변화를, 나의 감정변화를 느끼는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소설이 아닐까.. 박연준의 에세이에서 처럼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다는 말, 옳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끝>의 원제는 Love and Summer인데 정말 제목이 딱이다. 그리고 표지의 푸른 사과 깎는 이 사진. 오랜동안 기억이 남아서 이 책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을 보지 말아야겠다, 품격(?)을 지키자는 생각이 나이들수록 강해진다. 매사에 끝을 조심하자. 신경이 곤두서지만 서두르지 않고 시간에 마음이 무뎌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천만이 남았다. 역시 마음에 흠결이 있어야 문학이든 예술이든 진하게 와닿는다. 


끝을 보지 말자. 끝을 보더라도 끝이 아닌 듯 굴자. 마음에 안 들더라도 집에 가서 욕하자. 극단에 서지 말자. 그렇습니다. 마음은 이제 누울 자리를 봅니다. (....)

가서 생각하자. 저 사람과는 안 맞는 군. 좀 돌아가는 게 낫겠어. 손톱을 물어뜯으며 궁리하지요. 궁색한 궁리랍니다. 그렇습니다. 매사에 '끝'을 조심합니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p.200




나의 모든 여행, 다른 나라에 대한 동경은 함정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묘지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고 난 뒤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었었다. 작가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고 그것을 읽기 전과 후는 같을 수가 없다는 말에 책장 한켠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토마스 만의 책을 꺼내 들춰보았다. 역시....


이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밖에. 




이 소설은 로마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로마의 중산층 시민, 이주민, 불법체류자, 유학생, 관광객 등이 공존하는 혼종의 도시 로마. 총 9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지만 끝으로 갈 수록 다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이 편에서는 주인공이 되고 섞여 있다는 느낌을 점점 받는다.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민자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작가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짓지 않을 수 없다. 로마에 살지만 결코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 그 불안정함이 줌파 라히리의 글에서 늘 느끼는 매력같다. 

마지막 단편을 읽고는 단테의 <신곡>이 읽고 싶어졌다.




헨리제임스의 단편들을 읽고 뒤쪽의 해설을 읽어본다.


​오호라 내가 느꼈던 것!

작품의 길이는 상당한데 사건들이 별로 없다거나, 말하려는 주제가 애매모호, 작중 인물의 정확한 심리상태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렸고 그의 작품은 다시 평가되기에 이른다.

기억에 남는 작품 <네번의 만남>, <나사의 회전>

특히 나사의 회전은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읽으니.. 그 공포의 맛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요즘은 <보스턴 사람들>을 읽고 있는데 150쪽이 지나도록 정말 딱히 사건은 없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작가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후로 솔직히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음을 인정한다. 한국 문학 만세!!














사실은 다 읽은 한강의 작품인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이 주는 후광을 무시할 순 없다.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데 모든 문장을 허투루 읽을 수는 없다고 집중, 집중한다. ㅎㅎㅎ

눈이 멀어가는 남자와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 그 사이에 지금은 쓰이지 않고 형식만 남은 희랍어라는 매개. 한강의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는 한국민인게 얼마나 영광인가!!









어른이 된 이후에 프랑스어를 처음 접하고 아이처럼 배우며, 제2의 모국어가 되도록 갖은 노력을 하며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문화를 낳는다. 프랑스말과 우리말의 차이나 프랑스 문화와 우리 문화의 차이를 읽는 것이 재밌었다. (오 어려운 취향평가여! ) 타국에서 살아가는 삶의 애잔함과 힘듦이 군데군데 짐작이 된다. 그러나 계속 그 나라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구체적인 그 나라 사람, 누군가 한명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에게는 일단 프랑스인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구체적인 프랑스인들. 프랑스는 평생 주치의 개념이 있어서 의사와 같이 늙어간다고 한다. 나의 몸에 대해 상의하고 잘 알아주는 의사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편안한 그것은 모국어 우리말이라니... 스무살까지 함께한 모국어의 부드러운 속살만큼 위대한 것도 없구나.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단하나의 모국어. 그 편안함. 속에서 사는 것이 때때로 언제, 어딘가에서는 큰 위로가 된다.




언제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땐 꼭 가봐야지 메모하게 된다.


한국가구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허준박물관


앞쪽의 우리 근대 문학의 발자취나 역사문화공원으로 거듭난 망우리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계속 출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남에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어느 인터넷강의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경험있는 선배들로 부터 들을 수 있는 값진 조언들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풍토가 된 것 같다. 사회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것이 득이고 실일까. 꼰대라는 말은 어쩌면 기성세대가 더 싫어하는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ㅎㅎ 내가 젊었을 때 꼰대들한테 너무 당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ㅋㅋㅋ







​여름에 읽었던 파리에 관한 책들은 아마 올림픽과 맞물려 출간된 것 같다. 무정형의 삶에서 언급된 이지은 작가의 책은 예전에 나도 재밌게 읽은 책이라 다시 찾아보았더니 신간도 나왔더라. 

누구에게나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지난한 이곳에서의 현실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마침내 작가는 그토록 바라던 미래에 자신 자신을 데려다놓았다. 한 곳을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짧은 두 달이어서 가능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나도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메모해 놓았다. 

살면서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감동할 수 있는 마음 같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표현해내는 능력. 작가에게는 분명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오일파스텔 사는 장면에서 빵 터졌는데, 어머나 나도 일단 72색을 구매하고(비록 문교 오일파스텔이지만), 128색까지 다시 구매..... 



현재 독서 중인 책들은 


<2024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난처한 미술이야기8>

<보스턴 사람들>, 헨리제임스

<허송세월>, 김훈

요즘은 동시에 읽는 책의 권수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

12월부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우울함이 깔려있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이 기도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모두들 평안한 2025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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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파피필름 2025-01-04 22:11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자목련님도 올 한 해 좋은 책들 많이 만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새파랑 2025-01-06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렬독서를 하시는군요~! 저는 한권 다 읽기전까지는 다른 책으로 못넘어가겠더라구요. 포크너 작품을 읽는데 재미는 있으나 진도가 안나간다는 ㅜㅜ

<여름의 끝> 완전 좋아합니다~!!

독서기록을 꾸준히 남기는게 쉽지 않더라구요~ 25년도 화이팅 입니다~!!

스파피필름 2025-01-07 03:39   좋아요 1 | URL
저는 예전부터 늘 병렬독서 했던거 같아요. 집중력도 더 안좋아져서 한권을 오래 못 읽는다는... ㅜㅜ 올해는 그래서 좀 벗어나보려구요. 25년도 독서 화이팅입니다!! ^^
 

오랜만에 읽은 책들을 정리하려고 보니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냥 읽었다는 느낌만 있는 책도 있고, 블로그에 끄적거린 것도 있고.. 기억을 소환해서 세어보니 네 달 동안 읽은 책은 20여권. 약소하지만 기록으로 남겨봐야지.



폴 오스터

(1947.2.3.~2024.4.30.)

내가 좋아하는 작가하면 떠올릴 수 있는 폴 오스터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예감했었는지 모르겠다. 우연찮게도 <4321>을 한참 읽던 중이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에는 한 곳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의 인생이 그려진다. 나의 이십대 역시 그러했기에 폴 오스터의 소설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의 책을 읽어온 결과 이십대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우리 인생도 어딘가에 정착되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다양한 선택으로, 우연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퍼거슨의 네 가지 인생은 다른 종착지를 향해 내달린다. 처음에는 이런 서술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너무 헤깔려서 다시 1.1 2.1 3.1 순으로 읽었다. 아직도 퍼거슨의 인생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폴 오스터의 새로운 책들은 볼 수 없지만 그의 작품 안에서 작가는 살아 숨쉬고 있으니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책임지지 못할 연민은 상대방에게는 독이 된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값싼 연민을 함부로 품지 말자. 츠바이크 특유의 한달음에 내달리는 심리묘사는 역시 대단했다. 



이 책은 몇 년전 속초 동아서점에 갔다가 산 책. 오랫동안 책장에 자리 잡고 있다가 읽게 되었다. 서점 주인의 어머니이신 듯 한데 아이가 이 책 저 책 만지니까 신경질적으로 나무라셨던... 기억이 있다. ㅠㅠ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있냐고 물었더니 신간이냐며 반문하셨던... 





시작은 펠리시아의 여정이었다. 연애 문제 때문에 가출한 소녀가 위태롭게 거리를 헤매는 이야기. 그러다가 힐디치의 살아온 여정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진다. 힐디치는 펠리시아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을 죽인 살인범인가? 어...어... 아니다. 그냥 과대망상의 정신병 환자인가. 이야기는 다시 펠리시아로 돌아오고 그녀를 둘러싼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를 테면 종교를 전파하려는 사람들. 숙소를 제공하거나 음식을 배풀거나 무료 진료소 같은. 정교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윌리엄 트레버. 사둔 <마지막 이야기들>도 읽어야겠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한 줄기 빛, 매트에 대한 이선 프롬의 말과 행동이야 수십년간 반복되어온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 예상되지만.. (그런데도 읽는 순간 몰입하게 된다)

썰매 사고 이후 (썰매라는 시대적 산물이 연상되어 우끼고 재밌다 ㅎㅎㅎ) 더 불행해진 두 여자와 이선 프롬의 기이한 삶에 할 말을 잃는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충격은 지나가 그렇게 자리에 누워버린 매트를 돌보게 되면서 생의 활력을 찾는 장면.


사실 이선 프롬과 결혼하게 된 이유도 그의 어머니를 병간호 하는 것이었지. 좀 극단적이지만 어쩌면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보면서 생의 의지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순수의 시대>도 읽어봐야겠다.




소설집을 이렇게 처음부터 부담없이 쭈욱 읽은 게 오랜만인 것 같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처음 전하영의 소설을 접하고 좋게 기억하고 있다고 만난 작가의 첫 소설집 역시 좋게 읽었다. 이제는 그 기분들을 떠나왔지만(소설에서 읽었던 어떤 시절에 많이 했던 생각들) 다시 떠올리면 조금은 쓸쓸했고 좀더 많이 걱정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것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어서 이 소설들에게 고맙다. <남쪽에서>에 나오는 그 소설가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보이지 않아도 쓰이는 어떤 삶들. 독서라는 것이 내가 이야기 속에서 만날 누군가의 삶의 여정을 수집하는 일 같다. 다음 작품도 많이 기다릴 것 같다. 





오.. 이토록 사랑스러운 관찰일지라니. 읽는 것 만으로도 주변의 동식물을 찾아 가벼운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은. 












엄마의 어떤 말, 행동 양식들은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닌다. 제목처럼 애착은 사납기도 해서 나의 정신을 지배해버린다.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저자처럼 치열하게 쓰지는 못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게다가 유년기라니) 기억하지도 못하고, 쓰기 시작하며 들여다보게 되는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가슴 아픈 것도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여성의 삶 아니 인간의 삶이라는 게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제대로 살지도 못했는데 세월이 가버린다. 이건 엄마가 할 소리가 아니라 이젠 곧 나에게도 닥칠 일. 그런 과정에서 이런 책을 만나 다행이고 조금 위안이 된다. 

고닉의 책 두 권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행복할 일!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p.153


예술을 통해서 나의 고통을, 주변의 사람들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이야기, 음료는 모두 내돈내산이었다고 한다.

별 모으기 같은 건 나는 정말 관심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제주 유기농 녹차 까지는 아니고 오설록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깔끔하고 커피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 티의 세계로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은 생각보다 번역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아쉬웠다.

모든 글에는 딸 정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더불어 치매인 노모의 이야기에도 마음이 가 가슴이 아리기도 했고 재밌기도 하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에는 친구와 떠나는 동유럽 패키기 여행을 재밌게 읽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사이가 좋은 시절에 처음으로 유럽 패키지 여행을 떠났는데... 

이 글에 나온 그 장소들을 다녀왔던 것일까...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예전에 권남희 에세이 중 한권을 집어들었다가 내 취향이 아니라면서 내려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처 3권을 읽을 정도로 재밌었다. 취향이 변했나보다.. ㅎㅎㅎ

다음 에세이가 나온다면 바로 읽을 태세..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맺음말의 마지막 판이 도착된 다음날 영면하신 서경식 선생님. 그 무슨 운명의 장난같은 일인가. 평생을 개인사적 고통으로 힘들게 사셨고, 어쩌면 그로 인해 타자의 고통에 더 예민하게 사셨던, 선생님의 인생은 역자의 맺음글에서 표현된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파리에서 날아와 현재는 익산에 살고 있는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

어느 부분에서 새벽에 읽다가 눈물을 훔쳤다. 


왜 아무도 우리에게 꿈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무엇을 하든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p.72









육아에 지쳐 피곤이 짓누르고 할 일은 늘 산더미며 진척은 없고...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거장들도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정말이지 금정연은 너무 피곤했다. ㅎㅎㅎㅎ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일기책들을 나도 꽤 읽었네? 나는 다른 사람의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보다. 


사랑스러운 너대니얼 호손의 육아일기?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내가 줄리언을 눕혔을 때 시계는 저녁 일곱 시를 향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처음으로 아이의 세상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낀다.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테지. <줄리언> p.23 


하하... 빵 터졌다.





그 밖에 현대문학의 <헨리 제임스> 어떤 계기로 헨리 제임스에 입문하게 되었나 ㅎㅎ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 좋게 읽었는데 메모 해 두지 않아서 기억이 잘... (죄송해요 권여선 작가)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작가에 따라 편차가 조금 있다.)

이소영의 <식물에 관한 오해>

에밀 졸라 <제르미날>

을 읽었거나 읽는 중이다. 


너무 심한 병렬독서로 인해 머릿속 생각들이 분산적이다. 더운 여름에 들어섰지만 에어컨 바람 쐬며 심기일전 독서에 좀 더 매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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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마음으로 몇 자라도 적어야 (나의) 역사가 된다는 생각에 끄적여본다. 



처음에 소년, 소녀가 만나는 심쿵한 연애의 떨림? 이 부분만 지나면 그 이후에 도서관장으로 업을 바꾸고 일어나는 일들은 충분히 읽을 만 했고 좋았다. 


매일 '노란 잠수함' 요트파카만 입는 소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할 처지가 아니다.그렇지만 옷차림에 관심이 없어졌다고 내 일상생활이 흐트러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 몸의 청결에 충분히 신경을 섰다. 아침마다 말끔히 면도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매일 머리를 감았다. 하루에 세 번은 이를 닦았다. 나는 여전히 습관을 중시하는 깔끔한 독신자였다. 다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속 같은 스웨터와 바지만 입었더라는 얘기다. 그렇게 같은 옷차림을 유지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어떤 쾌감마저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p.486


같은 옷차림을 유지하는데서 어떤 쾌감이 느껴졌다는 문장을 실천하고 싶어졌다. 

안 입는 옷을 대거 가져다 버리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만 남긴채 열심히 빨아 돌려입는다. 당연히 색도 비슷한 무채색 계열... 어떤 루틴을 갖는 다는 것에는 확실히 희열이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요트파카 소년도 그런 일환으로 이해한다면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지식욕으로 책을 집어삼킬 듯이 도서관 책장의 책들을 순서대로 읽어가는 모습.. 이런 묘사만 읽는 것으로도 나는 이 소설이 좋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이든 하루키의 마음을 짐작하려 나는 자꾸 앞날개의 사진과 문장들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술탄은 베네치아 총독에게 오스만 제국의 힘과 부, 군사력을 과시한 책을 선물하기 위해 에니시테에게 책 제작을 맡기게 된다. 에니시테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장인 오스만과 그의 제자들의 관계가 얽히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범인을 찾는 과정을 아주 자세히 그려낸다. 서양화의 기법을 받아들이고 세밀화가들만의 스타일(개인의 화풍)을 그림에 나타낼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스타일은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옛 방식 그대로 전통을 이어갈 것인가,의 갈등이 이 소설을 크게 이끌어가는 힘이다.


서술방식이 독특하게 나는 ~이다.라고 각 꼭지가 구성되면서 각 인물의 입장이 서술 된다. 그래서 사실 범인이 누구인가하는 것은 크게 궁금하지 않고 그림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이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게도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세밀화가들이 한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마지막에는 눈이 멀게 되기 까지 하는 인생의 집중, 헌신의 방식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결국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몇 해 전 들었던 김영하의 강연에서 언급되어 찾아본 아주 오랫동안 머리 속에 언제고 읽어야지, 했던 책을 끝낸 후련함.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


인생에 우여곡절(이라 하기에는 좀 더 어려운)은 있지만 온유하게 타고난 천성으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던 펄롱에게 어느 날 그가 살아온 인생의 행로와는 다른 무언가가 가슴에 차 오른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지도 모르는 용기의 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펄롱의 인생을 자잘하게 채우던 일상의 것들. 사소한 것에 눈길이 가고 생각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고.. 인생이 바뀌고.. 얇지만 쉬이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우리를 뚫고 지나갈 타인의 감정들을 관찰하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내 자신에게만 매몰되어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내 자신을 잘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기를...


애둘러 말하지 않는 글쓰기. 요즘 읽으니 참 좋다. 차가운 겨울에 어울리는 책. 









우연히 읽었다가 마음에 충격이 가해졌던 책. 그는 가난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자아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지요, 라고 위로했던 택시기사님의 순진한 위로가 어느 날 나에게도 필요했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했다.











미국인 100명의 포로에 끼어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빌리 필그림은 시간 여행을 통해 미래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제목은 곧 도살할 돼지들을 가두어 두려고 지은 건물(포로 수용소)의 번호. 재밌다고 말해서는 안될 이런 책들은 읽고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내가 건축 관련 책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형태의 기원이 어떤 문화 때문에 형성된 것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 서두에서 언급하였듯 저자는 우리 건축과 전통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의 특성을 다루고자 했다고 하는데, 그 점이 흥미로웠다.








올해는 가을 무렵에 오무라이스 잼잼이 나오지 않게 왜 출간이 늦어지나, 걱정까지 했더랬다. 다행히 해를 넘기지 않고 나와 12월의 선물처럼 주문한 책. 300화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오무라이스이다. 독자들의 축하댓글이 참 따뜻하다. 

몇년 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 밀로(마일로)를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음료냐고 직원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유년기에는 밀로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나이가 있다보니 맛있는 음식도 몸을 생각하게 되는 자기검열이 있는데 ㅎㅎ  이런 문장을 보면 건강은 그냥 타고 나는 것 같다. 


한편 토마스 아저씨는 매일밤 따스한 마일로를 한 잔씩 꼭 마셨고 93살까지 건강하게 사셨단다. p.520


그 밖에 나를 스쳐간 책으로는...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4321>, <펠리시아의 여정>, <사나운 애착>... 권수에 집착하지 않고 적은 책도 오래 생각하며 읽자라는 핑계를... 걷어치우고 우선은 많이 읽어보겠다는 결심을 올해도 세워봅니다 ^^;;; 더불어 집에 사둔 책 5권 읽으면 신간 1권 사기도 실천해보려고 해요 ㅠㅠ


늦었지만 제 서재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북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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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18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3월 오는 게 마음 무겁고 조급했는데 스파피필름님께서 새해인사 해주시니 다시금 돌려서 시작으로 가는 마음가짐 됩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스파피필름 2024-02-19 07:04   좋아요 0 | URL
저도 마음이 무겁고 조급하네요 ㅠㅠ 그래도 봄이 오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행복한 것들을 많이 만끽하시는 올 한해 되시길 빌어요 ^^

그레이스 2024-02-19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들 반값네요.
스파피필름님의 오래 생각하며 하는 책읽기 응원합니다.
더불어 원하시는 일자리도!

스파피필름 2024-02-19 07:06   좋아요 1 | URL
앗.. 그레이스님 반갑습니다! 예전보다 읽은 권수가 현저히 적어져서 천천히 읽기라고 변명을 해봅니다. 올 한 해 책과 함께 늘 마음 따뜻하시기를 빌어봅니다 ^^ (뒤늦게 새해 인사 느닷없네요 ^^;;)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서성?였던 습관을 없애고 잠을 좀 더 많이 자도록 노력했더니 읽은 책 정리할 기회가 없어졌다. 어른들이 왜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절대적인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 알라딘의 이 공간은 실세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아무도 모르는 공간이라 혼자만 있을 때 후다닥 글을 올린다. 얼마전엔 오래 사용했던 컴퓨터가 고장나 내 컴퓨터도 없는 상황. 컴퓨터가 없으니 또 그것대로 매력이 있어서 고치지도 않고 있다.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 속에서.. 그래도 독서는 계속되었으니, 기억을 더듬어 읽었던 책들을 소환해본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십 년 동안, 약 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서독으로 향했다. 이 책은 파독간호원(혹은 파독간호보조원)이라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시대의 어떤 그룹으로 불리워지나 사실은 알고보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개인들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읽는 내내 설렘이 가득했다. 타국의 오랜 친구 레나, 한수 뿐만 아니라 어쩐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들 때문에... 독일의 G시가 어느 도시일지 궁금하다. 모호한 K.H.의 존재도... 소설가라는 직업은 쓰는 직업이지만 그에 앞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동네 북클럽 이달의 책으로 구매해서 코멘터리 북을 읽으면서 든 생각. 백수린 작가가 소설을 쓰고 거꾸로 독일의 G시를 확인하러 가는 부분을 읽으니 비로소 독서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읽고 오래전에 사두었다가 (아마도 문학동네 북클럽??) 눈에 띄어 읽었다. 영혼의 집처럼 지루할 틈 없는 스토리 전개로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었다. 글쎄 이 소설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한 사람이 오랜 동안 집착해왔던 것에 대해 그것을 떨치고 자유롭게 되는 과정, 다 부질없다? 좀더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엘리사: 젊은 날의 불같은 사랑의 호아킨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을 건 모험을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이란 것도 한때의 목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의 사랑 타오치엔!


타오치엔: 명의가 되겠다는 열망, 린과의 추억. 엘리사를 구렁텅이에서 구하는 인물. 한때 지식, 학문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인물.


"당신은 뭐를 찾고 있었는데요?"

"지식, 학문,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것들이지. 하지만 난 싱송 걸즈를 찾았고, 내가 지금 얼마나 공경에 처해 있는지 보라고."


미스 로즈: 오빠의 숨겨진 딸 엘리사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여성에게 숙명지어진 운명에 따라 엘리사를 키우지만 그 엘리사에게 배신당한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찾았던 과거의 날들.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연륜이 쌓이길. 방황했던 순간의 어설픈 나를 사랑하는 지금의 나이길. 


오랜동안 그런 나를 좋아해주었던 그런 사람 한 명 내 인생에 있다면 참 괜찮은 인생아니겠는가. 


"좋아요?"

"나는 늘 너를 좋아했어." p.301
















정말 오랫동안 읽었다. ㅠㅠ 일단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힘들어 역자 해설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소설에는 1840년대와 1960년대 사이의 세대 갈등, 자유주의와 허무주의의 대립,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 학대받는 여성과 오만한 여성의 대비 등 다양한 주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관계와 갈등의 중심에는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

이처럼 모든 인물의 중심에는 스타브로긴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있는데 다른 인물들은 스타브로긴을 스승, 군주, 태양으로 부르고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한다. 

샤토프, 키릴로프,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19세기 중엽 러시아 젊은 지식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리고 하다... 라고 해설이 되어있다. ^^;;

그런데 소설에서 스타브로긴은 꽤 뒷부분에 나오고 심지어 부록 '티혼의 암자에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진다.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혼돈스런 상황을 따라 읽다가 스타브로긴에게 귀결되는 그런 구조랄까... 2년 전에 사둔 알라딘 특별판으로 읽었는데 가독성이 높음에도 큰 독서의 재미는 못 느꼈던 도스토옙스키의 대작이다. 암튼 나도 악령을 읽었다는데 의의를.



미즈무라 미나에의 소설 <본격소설>을 오래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기존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변형한 것이 독특했다. <어머니의 유산>은 평생을 애증의 관계로 살아온 두 딸과 어머니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어머니는 몇년의 노화로 인한 투병 끝에 유산을 남기고 죽는다.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오십대 여성의 심리 묘사가 중반까지 이어지다가 신물난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하코네 산속에 폭풍우가 치던 날 밤, 어두운 기억만 되살아났던 일이 거짓말 같았다. 지금 되살아나는 기억은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빛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의 이상함,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사는 것이 허락된 것의 이상함이 미쓰키를 쳤다. p.536


빛도 어둠도 아닌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인생의 가을쯤에 와 있다는 이상함...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미쓰키의 몸부림에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인생도 이해되어질 그런 순간이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모두에게 온다는 것이 생의 비밀인 것처럼 느껴진다.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 50여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쓴게 여름인데 찾아보니 오늘이 마지막날...뜨아..)


이 책은 그런 작품들중 중요한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러 작품이 어떤 주제로 묶여져서 전시된 것은 아니라 다소 산만하게 서술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작품들을 한국에서 실견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인것 같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썼지만 미술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우리는 미술이라는 물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액자가 주는 느낌이라든지, 매끈한 표면이 아닌 물감의 질감이라든지..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은 티치아노의 <달마티아 여인>과 고야의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이다. 

특히 후자는 저자의 유학경험에서 나오는데.. 화집으로 몇십년 가지고 있던 표제작을 실제로 한국에서 마주하는 기쁨은 상상만 해도 애틋하고 저자의 인생에서 어떤 큰 의미를 가질지 짐작하게 된다. 

나도 전에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8월 초에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도 다녀왔는데 느낀 것은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그 탄탄한 기본기가 거장에게도 당연하게 기본이 된다는 진리를 느끼고 왔다. (어쩌면 유명한 그림들보다는 스케치가 더 많이 와서?) 호퍼, 젊은 날에 내가 참 좋아하던 화가였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유명한 그림들보다도 데생, 스케치 같은 것들에 더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결국 이 전시회는 보러가지 못했네요;; 언젠가 어떤 기회로 이 그림들을 눈 앞에서 마주할 날이 올 것인지...



1권에 이어 역시나 감탄하게 만드는 만화. 

독서 덕후라면 어떤 페이지에서 스르르 마음 녹게 만드는.

어린 딸아이가 자기전에 침대에서 김연수의 새로 나온 단편집을 읽고 있는데 "왜 하루 종일 책을 읽는거야?"라고 말해서 전시적 시점에서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살짝 충격이 왔다. 









작가는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되기 이전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게 참 재밌다. 예를 들어 , 절에서 총부 알바를 할 때는 IT보살님으로.. 

지금은 사라진 커피발전소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다. 카페를 열었던 것도 같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 같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


그런 우울한 날들도 글의 소재가 되고, 현재의 작가가 있게 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 힘을 느끼는 과정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있어서 두 책 모두 좋았다. 그리고 나도 어떤 힘을 받은 것 같았다. 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원 동영상 촬영, 절 총무, 인천공항에서 동선 측정하는 알바는 참 신선했다. 




재미있게 읽은 외국어 배우는 에세이. 이탈리아어를 완전한 초보에서 부터 1년 동안 배우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 삶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매주 토요일 외국어를 1년 배우면 이렇게 삶의 변화가 온다!) 나 또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한 로망이 늘 있어온 터라... 피렌체는 정말 가보고 싶다. 볼로냐도 추가. 우리도 정년 이후에 이 책에 나오는 노년의 모습이라면 참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다가 읽는 김연수의 글은 이 얼마나 말랑말랑한 모국어의 속살이란 말인가. 한번 읽고 다시 읽고 있다. 다정하고 따스해서... 


잘못된 선택은 정말 없는 걸까요. 목숨을 버리는 것 같은 일도요.. 힘들고 더운 올 여름이었는데 가족을 잃은 누군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하며 이제는 차가워진 가을 바람을 맞는다.


모두들 곁에 이유 없는 다정함이 가득한 가을, 겨울 맞이하시길.






*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은 하루키의 신간과 (요즘 제목이 잘 안 외워지는 현상이...)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어느 경로로 우리집에..?), <내 이름은 빨강> (와... 얼마나 오래 눈여겨본 책인가), 최은영의 새 단편집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책들을 매일 조금씩 읽으며 오늘은 책을 한아름 가져다가 중고서점에 팔 생각입니다. 모두들 행복한 가을날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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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본격적으로 앞두고 읽은 책들을 정리해본다. 마음이 스산할 때는 뭔가를 정리하고 싶은데.. 정리할 것이 유일한 취미인 독서뿐이므로..



함정임의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나오면 바로 사서 다 보는데 소설은 처음 읽는 것 같다. 단편 소설들의 제목이기도한 많은 장소들은 방랑하는 작가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꺼내기 힘들 것 같은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담담히 글로 표현해낸 단편들도 있다. 행간에 숨은 의미가 있을까, 다시 읽고 다시 읽는 순간들이 소중하고 좋았다. 연민의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해온 사랑은 사랑을 사랑해온 것이라고 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읽으면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게될까. 








책 마지막 부분에서야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쎄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디 늦가을 숲 속을 하루종일 지치도록 헤매고 다닌 듯한 기분. 나른한 피곤함. 그런대도 너무나 지치지 않고 푹 쉰 느낌?


늘 너무나 빠르게 살려 노력하고, 너무나 많이 보고 읽고, 너무나 많이 먹고... 그런 것들을 다 훌훌 털어버리고 단순하게 이 책의 묘사와 같이 살고 싶다. 써놓고도 너무 추상적이네;;;







사실 시는 잘 읽지 않지만, 신형철의 이 책은 참 좋았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을 보며 느끼게 된 점들이 글에 많이 녹아 있는데 나 역시 그런 과정을 지나고 있어서 인지 아주 자주 뭉클하게 되는 그런 지점들이 있었다고나 할까. 내가 기다리던 문장들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명철함. 그게 신형철의 매력인 것 같다. 문학이지만 수학 같은 아주 오묘한.... 











<내 이름은 루시 바턴>과 <오, 윌리엄!>을 연달아 읽었다. 드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소중한 이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랑하며 죽게 되는 것일까. 함께 살며 무언가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지만 그 뒷면에 감춰진 생의 이면들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일까. 그저 짐작하고 애처로워하고 때론 분노하며 살아갈뿐 너는 내가 아니므로... 그 감춰진 생의 이면을 이해하려 하는 인물들의 마음만을 생각해도 나는 쉽게 아픔이 밀려온다. 어쩌면 루시 바턴의 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p.293



맛있는 것만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책


요즘 한국소설 특히 단편소설을 읽는 게 재밌어졌다. 함정임의 단편을 읽으며 역시 모국어가 좋지. 그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김애란의 <홈 파티>를 읽으면서는 소설가로서의 존재감, 김애란의 소설은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좋게 읽고 검색해보니 <초급 한국어>가 있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왔다. 그러고보니 나는 유학파? 소설가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마침 <중급 한국어>도 나왔네!! 더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가 발견.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도 좋았다. 나는 평범하지만 무언가 열심히 반복하는 일들을 하는 캐릭터에 매료되는 것 같다. 평론은 잘 안 읽지만 작가의 말을 읽는 것은 좋다. 부록처럼. 보너스처럼.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런 시가 가장 애매한데... 


아마도 작가는 바르게 단정하게 살아온 사람일꺼라 짐작된다. 그 바름이 글에서 묻어난다. 생활의 냄새가 되풀이 되는 일상이.. 글에 녹아 있다. 삶의 어떤 반짝이는 부분에서 위트가 돋보이는게 참 좋았다. 크게 좋은 일은 없어도 이런 순간이 많다면 힘든 순간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응원하고 싶다. 문지혁 작가... 당신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겠다. 



아주 오래전에 <이런 사랑>으로 나왔을 때도  읽었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인상적인 앞부분을 읽어가니 어렴풋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소설로 기억이 났다. 실제로 있는 '드 칼레랑보 증후군'이라는 병을 가진 남자에게 스토킹 당하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데... 견딜 수 없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복복서가에서 새로 펴낸 책인데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소설을 탐독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에 한 여행까지 짧은 인상을 적어놓은 메모들. 오래된 사진.

나이가 드니 여행, 경험, 체험(?)의 누적이 만만치 않다. 기록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머릿속에 어떤 인상으로만 여행들이 저장되어 있다. 일상에서는 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은 좋다. 올 여름엔 코로나로 하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더 즐겁다. 더 많이 다니자 더 많이 경험하자 더 많이 생각하자. 

*한국에서 먹은 간식거리중 편의점에서 파는 해바라기씨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해서 웃었다. 참 귀여운 마스다 미리씨... 특별한 맛은 아니었던듯한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장강명의 직업이 기자였던 것이 큰 영향이었을 것이다. 등단이라는 시스템이 우리만의 독특한 것이라는 것도 장강명의 이전 책들에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산물을 내는 소설가라는 사람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작업을 해가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등등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신경숙의 표절 문제 등과 같은 출판계 비화(?), 인세 정산 문제 (이 시대에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썪는다니.. 놀라움) 등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다른 책에 대해 얘기도 많이 나와 다음번에 찾아보려고 메모도 해 두었다. 정작 나는 장강명의 소설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데, 그래서 <재수사>도 읽으려고 사두었다. 문장보다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소설가 답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도서관 검색순위 상위에 계속 보여 읽게 된 책. 주인공은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빨치산의 딸로 살아야만 했던 자신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자라는 거창한 이데올로기 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좀더 젊어서 우리 부모가 좀더 젊었다면 나는 아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불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글을 읽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만은 않은 그런 나이.... 죽음도 태어남과 같이 인생의 일부일테지만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며 이 책을 읽는 마음이 어떤 면에서는 가슴 아프고 불안하기도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

그리고 요즘은 2년 전? 사두었던 도스토옙스키 전집의 <악령> 하권과 이사벨 아옌데 <운명의 딸> 그리고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를 읽고 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삶에는 힘든 순간이 있어왔다. 지금이 그 한복판이라면 잘 이겨내보자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두 세달 후 글을 쓸 때쯤에는 가벼운 마음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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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6-12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힘든 순간을 맞이하는 게 삶인 것 같아요.
제가 읽은 책도 많이 보여요. 저도 <이런 사랑>으로 읽었는데 내용은 생각이 안 나요 ㅎ
문지혁의 장편은 기회가 되면 만나보고 싶어요. <눈부신 안부> 즐겁게 만나시고 눈부신 하루 보내세요!

스파피필름 2023-06-13 06:0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힘든 순간이 있으니 좋은 나날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거겠죠. 생각하지 않으면 자꾸 잊게 되네요. <눈부신 안부> 읽는데 설렘이 마음 한가득이에요.. 결말이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행복한 날들 되세요 자목련님^^

2023-08-0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파피필름 2023-08-03 09:57   좋아요 1 | URL
스캇님 이제는 소설까지!! 투비 익숙치 않아서 방문을 잘 안하게 되지만 스캇님 소설은 꼭 읽어보겠습니다 ^^ 휴가중인데 너무 더워서 리조트 안에만 있네요 ㅠㅠ 스캇님 건강한 8월 보내세요 ^^ 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