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
아모스 오즈 지음,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 Touch the Water, Touch the Wind (197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물과 기름에 비유되는 두 나라 간의 유혈충돌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들의 다툼은 삶의 터전을 둘러싼 생존의 문제였기에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5세기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으나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대부분 해외로 이주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왔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유대인들은 고향 땅인 팔레스타인과 미국으로 줄을 이어 이주했고 그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이용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것을 요구했다. 유엔은 1947년 마침내 유대인들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팔레스타인 땅의 52%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우고 나머지 48%에는 아랍 국가를 수립한다는 분리된 국가건설 방안을 제시했다. 유대민족으로서는 2,000년 만에 약속의 땅에 돌아온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교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셈이 됐다. 그 뒤 이 땅을 두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4차례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은 1967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점령한 요르단 강 서안과 가지 지구 등에 유사시에는 전진기지역할을 할 수 있는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왔다. 유대인들은 키부츠(집단농장)로 상징되는 개척자로서의 이스라엘이란 이미지를 버리고 홀로코스트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은 점령지 전부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자신의 관할 하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을 읽으려면 이스라엘 건국 역사를 먼저 이해해두는 것이 좋다. 아모스 오즈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거나 제4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 사회 모습 등을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해왔다. 이스라엘 역사를 파악하지 않고, 오즈(Oz)문학나라로 들어가면 독서의 여정이 순탄치 않게 된다.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를 펼치는 순간, 독일군을 피해 도망치는 주인공을 만난다. 엘리샤 포메란스는 수학을 가르치는 유대인 교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이 디아스포라(유랑)를 계속하는 유대인의 여정을 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엘리샤의 아내 스테파도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엘리샤는 생사가 걸린 유랑을 선택한 남편과 반대로 자신의 집에 끝까지 남는다. 그녀의 첫 등장 또한 예사롭지 않다. 집밖에 울려 퍼지는 독일군의 총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예 전쟁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녀의 이력도 독특하다. 철학자 하이데거와 텔레파시로 의견을 주고받은 적 있으며 괴테 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뒤숭숭한 상황 속에서도 스테파는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닫은 채 너무나도 평온하게 지낸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수를 자신의 집에 불러들여 함께 살기도 한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고 건너나 비밀 첩보원의 수장이 된다.

 

 

 

 

 

서경식 《시의 힘》 (현암사, 2015)

 

 

 

엘리샤와 스페타는 전쟁에 직면하는 유대인(혹은 유대인 출신 지식인)의 상반된 태도를 상징한다. 이들의 모습을 서경식 선생이 표현한 동심원의 패러독스로 설명할 수 있다. 전쟁의 중심부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곳 비극의 진실을 상상할 수도 없고,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면 전쟁의 중심부에 가까이 있을수록 인간은 공포를 느끼는가. 서경식 선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비극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런 구조가 장기화하면 비인간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인식이 형성된다.

 

엘리샤는 전쟁의 중심부를 벗어나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수학, 특히 무한을 주제로 하는 연구에 몰두한 끝에 누구도 풀지 못한 수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또 음악을 멜로디가 있는 수학으로 본다. 그러면서 음악이 난폭함을 없애고, 조화로운 세계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를 번역한 정영문 작가는 엘리샤가 믿는 음악의 힘이 스테파와의 극적인 재회로 이끌게 하는 화해의 힘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엘리샤가 수학과 음악 연구에 매달리는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정영문의 해석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 피난길 도중에 엘리샤가 자신의 하모니카 연주에 흠뻑 취하는 장면은 생사 벼랑으로 내몰리는 전쟁 피란민의 현실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한 감이 있다.

    

 

독일군의 사냥이 가까이서 이루어질 때면 그는 하루 종일 황량한 마을 외곽에 있는 헛간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해가 지면 은신처를 떠나 어둠 속에서 여윈 몸을 꼿꼿이 세운 채로 서서 완전히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드럽게 하모니카를 불었다. 폴란드의 공기는 그 즉시 음악에 젖어들었다. 포메란스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손으로 때리며 힘을 가다듬고 트림을 했다. 그는 땀을 흘리며 팔꿈치를 자신의 주위에 내보낸 음악에 기댔다. (중략) 그는 몸을 일으켜 어두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애를 쓰다 지쳐 축 늘어진 그의 몸은 숲과 초지 위로, 교회와 오두막과 들판 위로 높게 그리고 조용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장애를 뛰어넘었다.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중에서, 16~17)

    

 

엘리샤는 디아스포라의 비극에 휘말린 피해자이면서도 가혹한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수학과 음악 세계에 탐닉한다. 디아스포라의 운명이라는 해일에 맞서려는 고민의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전쟁으로 인해 비극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디아스포라 문제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일군 공습에 도망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머무르는 스테파의 모습은 위험한 지역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전쟁의 비극을 외면하는 소극적 자세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도 행복하게 살지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들의 이야기가 더 진행된다면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또 어떻게 그릴 것인지 궁금하다. 과연 음악의 힘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적대적 갈등을 잠재우고 평화를 염원하는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 점점 커지고 있는 중동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동화 같은 소설이 중동 분쟁의 희생자들에게 거짓 위로를 주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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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1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도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열에 오르긴 했던 문동카페기준으로인지 몰라도!

cyrus 2015-10-14 20:31   좋아요 1 | URL
노벨 문학상 발표 전에 해외 도박 사이트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유력 후보 배당률을 공개하는데, 가끔 순위권에 아모스 오즈가 언급됩니다. 이번에 오즈의 소설이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나오기 때문에 출판사 측은 오즈의 수상을 기대해봤을 겁니다. ^^

[그장소] 2015-10-14 21:15   좋아요 0 | URL
그런건..참..소치.(수치?)스러워...요.어쩐지...그래선지 국가가 이번 그녀를 조명하는데 지난 출신지들부터 못박는 느낌. 이름은 명백히 러시아 인데..우리나라에선 러시아에 뭐 좋을리 없으니...

[그장소] 2015-10-14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 방식으로 보았는데 앨런 튜링이 2차 세계 대전의 복판에 있으면서 수학에 공식에 빠져있었죠. 에니그마 라고 하는 지금과는 형태와 본질이 좀 다르게 변형이 되었지만 해독의 기술이
단순히 아녔어요.
음파를 가지고 독일 쪽에선 특히나 묘하게 숨기는 암호만들기에 집착을 많이 보인 걸로 알거든요.
음악의 종류이기도 하고요.그게 보이는 눈이 있는 거죠.모두 어떤 기하학이나 숫자.혹은 그림의 형태로..영화에선 제대로 잘 전달이 안되어서 결국 나타낸 모양이 에니악같은 모양새가 되버렸지만
ㅡ그런 기호와 그림에서 읽어낸 같은 흐름의 반복적 규칙을 도식화 했고 기계는 사람이 계산하면 그 인원이 수년을 매달려야 할 일을 줄여 줬어요. 여기까진 영화의 이야기라면 이제 그 유대인의 피와 살..을 이은 그녀가 집착해 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전 으로 옮겨 가 볼 수 있어요. 모든 것이 암호의 세계이고 무궁무진한 신비로 가득하다는 것을 저는 느꼈는데..수학에 아주 정확한 답이 나온다는 것 만큼이나 그 반대로 미지수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는 걸..알잖아요.
불협화음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도 알고 말예요. 뭐 단적인 예일 뿐입니다. 폭풍의 핵 .그 안은 오히려 고요 하다죠...그렇다고 사정권 밖이냐 면 그것도 아니면서요.중심에 있으니..쓸데없이 길게 떠들어서 죄송하고요.저는 안타깝긴 하지만
이해불가영역이 ..아니라고..말하고 싶었네요.

cyrus 2015-10-14 20:45   좋아요 1 | URL
미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

제가 앨런 튜링의 영화를 보지 못해서 소설 속 주인공과 튜링을 비교할 자신은 없지만, 수학의 반복적 규칙이 음악과 유사하다고 보는 그장소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수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피타고라스가 최초로 수학의 원리를 음악에 적용하여, `피타고라스 음계‘를 만들었어요. 오늘날의 화음과 비교하면 이 음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수학이 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 공로는 인정합니다.

[그장소] 2015-10-14 21:11   좋아요 0 | URL
그 피타고라스의 음계를 최적으로 사용한 이가 저는 바흐라고 생각해요.
그.평균율을 놓고 고민하면서..ㅎㅎㅎㅎ
음악하는 이들이 천재적이고 다분야에 걸쳐 재능이 있는걸 악기를 만드는 것..공명을 ..조율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잡아 내는 기술까지..물론 세대간 에 차이는 엄청 큽니다만..뭐 제 생각일 뿐..ㅎㅎㅎ피타고라스정리가 거짓이라는 지식채널을 얼핏보기까지..해서..

cyrus 2015-10-15 21:26   좋아요 1 | URL
피타고라스가 제자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기가 독창적으로 발견한 것으로 꾸몄다는 설이 있어요. 이게 사실이라면 피타고라스의 공은 바흐가 가져가야 합니다. ^^

[그장소] 2015-10-16 04:02   좋아요 0 | URL
아이쿠 ㅡ기원전 과 그 시간차를 놓고 보면 제가 우겨도 많이 우기는 거죠. ^^ 중간에 뭐 저같은 생각을 하는 분은 비슷하게 다른 사례로도 없나..궁금했어요.^^ 하하하..피타고라스의 공은 ..던지면..개가 달려나가는.물어오는 ...역.ㅎㅎ
제자의 몫 ㅡ그럴테죠.맞다면 ? ! 얼렁뚱땅 우기는 얘기 잘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읽은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민음사의 새 번역본이 나오기 한창 전에 읽었으니 당연히 내가 읽은 번역본은 문학세계사 판이다. 문학세계사 번역본이냐 민음사 번역본이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세대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문학세계사 번역본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며, 젊은 사람들은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것이다. 솔직히 민음사 번역본이 새로 나왔을 때 ‘노르웨이의 숲’이 원제임에도 무척 낯설었다. ‘상실의 시대’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 탓이리라. 이웃의 블로그를 접속하면 하루키 소설에 관한 서평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루키의 소설을 안 읽어서 댓글로 남기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노르웨이의 숲》 줄거리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간다. 그렇지만 《상실의 시대》와 관련된 이상야릇한 비화만큼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군 복무 시절 같이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하나둘씩 잊혀도 그때 읽었던 《상실의 시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입대했을 때부터 군인들이 머무는 방의 명칭인 ‘내무실’이 ‘생활관’으로 변경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생활관에는 세 칸짜리 책꽂이가 있고, 책장 절반은 국방부가 지정한 ‘진중문고’로 채워져 있었다. 딱히 읽을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아서 고심 끝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땐 지루했지만, 책 중반부에 이를수록 이야기에 점점 몰입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낀 독서의 몰입은 오랫동안 가지 못했다. 책 중간에 있는 2~3쪽의 책장이 뜯긴 채 사라졌다. 책의 낙장이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네다섯 군데 낙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낙장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라지고 없는 책장에 나오게 될 장면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서야 그 장이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선임이 《상실의 시대》를 읽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 책 재미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크게 재미있진 않지만, 시간 때우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임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네가 좀 더 일찍 입대했으면 《상실의 시대》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거야.” 나는 선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임은 《상실의 시대》 중간에 뜯긴 부분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있다고 대답하자 선임은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선임을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선임 XX가 미쳤나?’ 좀 더 자세히 선임의 말을 듣고 보니 선임이 했던 말과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자대 배치를 받지 않았던 시절, 선임도 《상실의 시대》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뜯긴 부분이 없는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군인들이 많아서 《상실의 시대》는 생활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난 뒤에 《상실의 시대》 중간에 뜯긴 사실을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군 선임들은 책의 낙장 사실에 당황했다. 왜냐하면, 하필 뜯겨 나간 책장에 야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임들은 이 중요한(?) 장면만 뜯은 범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사람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낙장 흔적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를 한 번이라도 읽은 군인이 워낙 많아서 범인을 찾기가 불가능했다. 선임이 과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상실의 시대》는 야한 소설이라서 군대에 반입돼선 안 되는 책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책의 야한 장면만 뜯은 범인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군대 같은 폐쇄적인 장소를 생활하다 보면 군인은 성적 욕구를 풀 수 없는 방법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군인들이 군대 반입 금지 물품에 포함된 ‘맥심’ 같은 남성 잡지를 휴가 나오는 후임에게 사오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있다. 여성이 나오는 사진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간혹 남성 잡지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일 때가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상실의 시대》를 읽다가 그 얼마 안 되는 성행위 묘사를 보자마자 성적 흥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묘사가 있는 부분만 뜯어서 야심한 밤에 혼자 몰래 읽었을 수도 있다. 어떤 선임은 낙장의 범인이 군 간부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간부 중에 누군가는 《상실의 시대》가 어떤 책인지 알았고, 병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야한 장면이 있는 부분을 뜯었다고 본다. 아무튼, 이상한 낙장 사건 이후로 《상실의 시대》를 읽는 사람이 팍 줄어들었다고 한다. 《상실의 시대》보다 재미있는 책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야한 장면이 없는 소설이 재미없던 것일까.

 

소설가 겸 PD 이재익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야한 소설’로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정사 장면은 자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야한 장면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재봉 한겨레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키의 소설들은 ‘몽환적 에로티시즘’을 구현하고 있다. 사실, 작년에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적 색채에 어울리는 상을 받을뻔 했다. 그 상은 바로 ‘Bad Sex Fiction Award’, 일명 ‘배드 섹스 상’이다.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잡지인 리터러리 리뷰(Literary Review)는 문학 작품 속에 불필요하게 묘사된 성 묘사를 자제하기 위해서 1993년부터 배드 섹스 상을 수여하고 있다. 과도하게 성 묘사가 많은 소설을 쓴 작가가 이 상을 받는다. 단, E.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노골적인 포르노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상자 발표는 연말에 한다. 작년에 벤 오크리의 <The Age of Magic> (2014년 작)이 선정되었다. 오크리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 중에 하루키도 포함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전날에 배드 섹스 상 수상자가 발표된다면, 문학상의 ‘골든 라즈베리’(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에 열리는,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시상식)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도 예외일 수 없다. (오크리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새로 거론되는 작가다) 맨 부커상,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도 배드 섹스 상 최종 후보에 오르거나 (재수가 없으면) 수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배드 섹스 상을 받은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93년 : 멜빈 브래그 《A Time to Dance》

 

 

1994년 : 필립 후크 《The Stonebreakers》

 

 

1995년 : 필립 커 《Gridiron》

 

 

1996년 : David Huggins 《The Big Kiss: An Arcade Mystery》

 

 

1997년 : Nicholas Royle 《The Matter of the Heart》

 

 

1998년 : 시배스천 폭스 《Charlotte Gray》

 

 

1999년 : A. A. Gill 《Starcrossed》

 

 

2000년 : 션 토머스 《Kissing England

 

 

2001년 : Christopher Hart Rescue Me

 

 

2002년 : Wendy Perriam Tread Softly

 

 

2003년 : Aniruddha Bahal Bunker 13

 

 

2004년 : 톰 울프 《I Am Charlotte Simmons》

 

 

2005년 : Giles Coren 《Winkler

 

 

2006년 : Iain Hollingshead 《Twenty Something

 

 

2007년 : 노먼 킹슬러 메일러 《숲 속의 성》

 

 

2008년 : Rachel Johnson Shire Hell

 

 

 ※ 공로상 : 존 업다이크

 

 

2009년 : Jonathan Littell The Kindly Ones

 

 

2010년 : Rowan Somerville The Shape of Her

 

 

2011년 : David Guterson Ed King

 

 

2012년 : 낸시 휴스턴 《Infrared

 

 

2013년 : Manil Suri The City of Devi

 

 

2014년 : 벤 오크리 《The Age of Magic

 

 

 

※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원서 제목을 그대로 썼다. 배드 섹스 상 수상작을 제외한 작품 번역본이 있는 작가는 한글로, 국내 번역본이 단 한 개도 없는 작가는 원어로 표기했다. 

 

 

 

 

 

 

 

 

 

 

 

 

 

 

 

배드 섹스 수상 작품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것이 노먼 메일러의 《숲 속의 성》(뿔, 2007)이다. 존 업다이크는 세상을 떠나기 일년 전에 공로상을 받았다. 업다이크의 소설은 농도 짙은 에로티시즘 묘사로 유명하다. 특히 1968년 작 ‘Couples’(1994년에 ‘커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은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짜릿한 소설 베스트 10’(Top 10 Racy Novels)에 포함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배드 섹스 상은 업다이크가 생전에 받은 마지막 상이 되었다. (업다이크는 2009년 1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작가들은 입에 부르기도 민망한 이 상을 영원히 받고 싶지 않을 테지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배드 섹스 상 때문에 야한 장면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책의 정체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러면 배드 섹스 상의 취지가 어긋나게 된다. 성 묘사가 있는 부분만 골라 읽는다거나 무척 좋아한 나머지 그 부분만 뜯는 별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이해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책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사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특정 여성 연예인이 좋다고 해서 그 연예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만 자르고 사라지는 얌체 독자와 같은 몰상식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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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10-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우리 소설에 그런 상을 줄 법한 책들이 좀 있는데 공교롭게도 90년대 소설이 대부분이네요. 가령 <경마장 가는 길>.

cyrus 2015-10-13 15:35   좋아요 0 | URL
저도 하일지의 소설이 배드 섹스 상 수상작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stella.K 2015-10-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이런 상이 있었구나. 자세하게 써 놨네.
그런데 이런 상이 좀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들어.
섹스를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풍토에서 작가들의 성묘사는
에로스, 즉 예술의 표현일뿐일텐데 뭐 이런 상을 제정해서
자기네들의 짖궂음을 드러내나 싶어.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말야.ㅋ

그런데 이달의 당선작 어느 부문에도 니 글이 없네.
이상한 일이야. 이번에도 좋은 글이 많았는데...
좀 아쉽겠어.ㅠ

cyrus 2015-10-13 15:41   좋아요 0 | URL
판매 부수를 올리려고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성적 묘사가 있는 소설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런 상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만큼 영국이 표현의 자유가 우리나라보다 보장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우리나라는 아예 음란한 문장이 있는 책을 판매 금지시키잖아요. ㅎㅎㅎ

추석 연휴 때 글 쓰는 일에 권태기를 많이 느꼈는데, 이제부터 다시 열심히 쓰려고요. 당선작이 안 뽑혀서 아쉽지만,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의 자극제로 받아들어야겠습니다. ^^

stella.K 2015-10-13 17:41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럴 필요가 있겠군. 거 잘하는 거네.^^

2015-10-12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1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실의 시대로 더 익숙한 독자네요~ 그 때는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노르웨이의 숲도 있긴 한데 아직 읽어보진 못 했어요~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저런 상이 있다는 것 처음 알았는데 호기심이 확~~ 일어나는데요 ㅎㅎ

cyrus 2015-10-13 15:44   좋아요 0 | URL
올해는 누가 받을지 궁금하긴 한데, 왠지 생소한 작가가 받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간서치 2015-10-1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상실의 시대를 읽고 너무 우울하고 허무해져서 우울증 올뻔 했어요.. 20살때 읽었거든요. 스무살이라는 나이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상황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 어쨋든 .... 제 가슴에 깊이 남은 책이에요

cyrus 2015-10-13 15:47   좋아요 0 | URL
저도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을 때, 분위기가 너무 음울해서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결국 다 읽긴 했는데,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여러 잡생각이 많았어요. 군 복무만 아니었으면 소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그게 다행한 일인 것 같습니다.

물고기자리 2015-10-1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의 묘사는 성적 긴장감이 느껴지질 않아서 야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더라고요ㅎ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행위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거나 이동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전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면 첫 장면이 제일 먼저 생각나요.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잃어버린 기억들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요. 사람들보단 오히려 당시엔 눈여겨보지도 않던 배경과 풍경들만 기억나서 서글퍼지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감정이 뭔지 알 것 같아서 굉장히 몰입되었었죠. 빈 상자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상실의 느낌말이죠.

하루키는 마음의 정경을 정말 잘 표현해서 글을 읽다 보면 나의 빈 상자를 다시 채우는 느낌이 들어요. 맞아, 그런 것도 있었지.. 하면서요. 번역자가 다르니 노르웨이의 숲으로도 언젠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아무튼 작가를 하려면 이런저런 상도 받아야 하니 보통 멘탈은 아니어야 할 것 같습니다ㅎ

cyrus 2015-10-13 15:49   좋아요 0 | URL
소설 속 묘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에 대한 느낌까지 언급하시는 물고기자리님은 하루키 소설을 제대로 읽으신 분 같아요. 저는 야한 장면만 빼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10-1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 독자이니 나이가 좀 있는 사람입니다. ^^ 전 하루키는 너무 야해서... 성적인 요소를 조금 배제하고서 읽어야 합니다. 감당하기가...@@

cyrus 2015-10-13 15:53   좋아요 0 | URL
저는 <상실의 시대> 완전판을 군 제대하고 난 뒤에 다시 읽었습니다. 역시 야한 장면만 뜯긴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

표맥(漂麥) 2015-10-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실의 시대...^^
읽을 맛이 쫄깃쫄깃~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쩜 이런 글을 쓰실 수 있는지... 늘 감탄합니다...^^

cyrus 2015-10-15 21:27   좋아요 0 | URL
예전 추억을 오랜만에 회상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어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10-14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를 많이 먹고서 하루키를 읽어서 그런지 특별히 성적묘사에 대한 거부감이나 야하는 느낌은 없구요, 그저 장면의 일부 같기도 하고, 풋풋하기도 합니다. 글자만 놓고 보면 꽤 야한데 말이죠. 그런데 이런 풋풋함이랄까, 이걸 갖고 강신부 박사 같은 분은 하루키를 `포르노`소설이라고 비판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몽상이라는 취지 같아요. 좀 다른 각도로 보는 듯 합니다만, 전 그저 있는 그대로, 너무 행간을 짚지 않고 읽으니 즐겁기만 합니다. 아련한 추억의 느낌도 받구요. 상실의 시대는 5-6번은 읽은 듯 하네요.

cyrus 2015-10-15 21:30   좋아요 0 | URL
강신주의 평가는 너무 심하군요. 이래서 대중을 자극시키는 듯한 발언으로 평가하는 강신주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요. 포르노 소설만 써대는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면, 강신주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

보물선 2016-06-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상실의 시대>읽었는데, 야한게 있었는지도 생각이 안나는거보면 저는 뭘 읽은걸까요? ㅋㅋ 다시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고 야한가 아닌가 봐야겠어요^^

cyrus 2016-06-26 16:34   좋아요 0 | URL
보물선님이 아직 마음이 순수하셔서 보지 못했던 겁니다. 저처럼 마음이 오염된 사람은 음란마귀에 늘 달라붙어 다닙니다. ㅎㅎㅎ

alummii 2016-07-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역시 정곡을 찌르는 리뷰였네요 ㅎㅎ 이 소설이 발간 후 젊은 층의 사랑 받았던 이유 중에 야한 장면 묘사 부분도 한 몫했다고 생각되었거든요...ㅋㅋㅋ뜯긴 부분...뿜고가네요 ㅎㅎㅎ

cyrus 2016-07-10 16:56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책과 관련된 경험담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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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Michael (1968)

 

 

그녀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한나 그린바움 고넨이본 아줄라이. 한나 그린바움이라는 이름이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평범한 일상에서의 진짜 이름이라면, 이본 아줄라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다. 그녀의 일상은 기묘한 이중생활의 연속이다. 내성적이면서 유머 센스가 없는 미카엘 고넨과의 결혼 생활에 지루함을 느낀다. 지루하고 따분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거의 매일 꿈을 꾼다. 한나는 ‘이본 아줄라이’가 되어 자유를 만끽한다. 그녀는 이런 답답한 일상에 견디기에는 완벽하게 모질지도, 그렇다고 아주 순진하지도 못하다. 그 혼란스러움에 그녀의 비극이 있다. 마음의 공허함을 풀기 위해 한나는 낭비벽을 부려보고, 자신이 ‘이본 아줄라이’가 되는 환상을 좇아보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삶은 더욱 사면초가에 빠져든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 《나의 미카엘》은 사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상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 조금씩 참을 수 없는 결핍에 시달린다. 한나는 남들과 다름없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점점 감정의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일탈을 부추길만한 매너리즘을 스스로 감지한다. 한나는 정서불안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쉴 새 없이 환상의 세계를 드나든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그 균열에서 비롯되는 허전함을 ‘환상’이라는 감정을 통해 메우려고 한다. 미카엘은 아내 한나 고넨이 아니라 이본 아줄라이를 만족하게 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그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산다는 이유로 한나는 남편의 모습에 낯설어한다. 미카엘은 한나가 원하는 강인한 남성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최대한 그녀와 가까이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역시나 그녀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다. 소설 후반부에 한나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미카엘에게 떠넘김으로써 체념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회상하는 한나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그저 우리네 살아가는 쓸쓸한 인생 풍경을 사심 없이 보여준다.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한나는 ‘발목’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청년 미카엘에 호감을 느끼면서 사랑이 성립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사랑은 붕괴한다. 생애 처음으로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감을 경험한 사람은, 이 행복한 시간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오랫동안 가지 못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한나는 미카엘과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투정부린다. 현실에 도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임무를 미카엘에 떠넘기는 한나의 무책임한 태도에 몇몇 독자는 짜증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쓸쓸하게 무너져가는 한나가 측은해보이기도 한다. 한나가 미카엘을 처음 만나 결혼을 결정할 때 당시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한창 청춘의 자유를 만끽해야 할 나이다. 미카엘의 청혼을 성급하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한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했던 히브리 문학 공부를 포기한다. 결국 한나는 자신만의 인생 목표를 정하지 못했고,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 한나 그린바움이 ‘한나 고넨’이 되는 순간, 청춘의 문은 너무나 허무하게 닫히고 만다. 어쩌면 한나는 청춘에 대한 동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일찍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마음껏 여행할 수 있었다. 청춘의 거침없는 열정이 불쑥 그녀를 덮쳤다. 열정은 그녀의 머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을 뿐, 그녀의 삶을 새롭게 전환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한나는 틀에 박힌 일상을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말해 봐요, 미카엘」 나는 혐오감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나의 미카엘》 중에서, 265쪽)

 

한나가 독자에게 묻는다.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삶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미카엘은 한나의 질문이 무의미하며 사람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서글프지만, 미카엘의 대답은 진실이다. 우리는 한번쯤 원대한 꿈 하나를 설정하여 그걸 바라보면서 살기를 원한다. 어떤 가수의 노랫말처럼 젊은이는 타오르는 꿈을 안으면서 꿈을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젊음을 불태울 수 있어도 현실의 장벽을 감당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을 먹기는커녕 앞으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진부한’ 교훈에 공감하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바쁘다. 나는 한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홍영철 시인의 시로 대신하겠다.

 

 

눈을 떠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먹어야 한다.
입어야 한다.
닦아야 한다.
나가야 한다.
일해야 한다.
나와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미워해야 한다.
마셔야 한다.
싸야 한다.
잠들어야 한다.
아아,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홍영철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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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짝 2015-10-0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처음 아모스 오즈를 알게 해 준 책인데 제목의 달콤함과 달리 갈라져버린 이들에 맘이 툭 떨어져 버렸어요! 읽은지 10년도 넘어서 내용이 남아있지 않네요^^

cyrus 2015-10-12 17:50   좋아요 0 | URL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이 워낙 독특해서 며칠 전에 읽어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ㅎㅎㅎ

안녕반짝 2015-10-1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보단 계속 텔아비브란 도시 이름만 남나 있어요! 어느날 문득 텔아비브가 떠오르기에 찾아보고는 아모스 오즈 때문이었구나 그랬던 일도 있어요^^

cyrus 2015-10-13 15:57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를 읽었는데, 기대한 것과 달라서 실망했습니다.

간서치 2015-10-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왜 사는지 네 아이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고 싶다.. 는 생각에 답답하거든요..

cyrus 2015-10-13 15:56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읽기 시작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결혼하고 난 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부로서 공감되는 장면을 나옵니다.

안녕반짝 2015-10-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책은 팬심으로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여자를 안다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cyrus 2015-10-13 20:27   좋아요 0 | URL
발표 연도순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첫사랑의 이름>, <블랙박스>, <여자를 안다는 것> 순으로요. 제목으로만 보면 <여자를 안다는 것>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안녕반짝 2015-10-1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박스>도 특이한 소설이었어요. <여자를 안다는 것>은 내용이 기억이 안나요 근데 좋았어요 밝은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좋았어요^^

안녕반짝 2015-10-1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아야기하니 신간이 나왔네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2권짜리네요~ 이렇게 긴 책은 없었는데 기대돼요^^

cyrus 2015-10-14 21:00   좋아요 0 | URL
안녕반짝님의 서평이 기대됩니다. 천천히 읽고 난 뒤에 서평 올려주세요. 오즈의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군요. 아흑...

에이바 2015-10-1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아모스 오즈 소설도 읽어야겠어요. ㅎㅎ

cyrus 2015-10-14 21:01   좋아요 0 | URL
청소년 독자를 위해 쓴 <첫사랑의 이름>부터 읽으셔도 좋고요, 초기작인 <나의 미카엘>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에이바님의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
 

 

 

내일이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발표된다. 매해 10월 목요일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관례가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설 중에 오른쪽 귀가 간지러우면 칭찬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매번 노벨상 수상 유력 작가로 언급되는 몇몇 사람들은 오른쪽 귀가 자주 간지러울 것이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노벨상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평소에 안 하던 고은 시인의 문학을 줄기차게 칭찬하면서 자택에 조용히 기거하는 그를 찾는다. 이상하게 국내 언론사들만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바라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내 반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가인 만큼 하루키의 수상 소식을 바라는 국내 독자가 꽤 있다. 책, 특히 문학에 관심 많은 독자는 자신이 좋아한 작가가 노벨상을 받길 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특정 작가를 향한 독자들의 팬심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네이버캐스트에서 올려진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글에 남긴 어느 분의 댓글을 보라. 밀란 쿤데라 팬이 아니더라도 이 댓글 한 줄을 보는 순간, 독자의 절실한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아쉽게도 독자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특정 작가가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할 이유까지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끔 이런 댓글들을 보면 은근히 재미있고, 나름 유익한 내용을 건질 때가 많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작가들을 알게 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더라도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나 같은 사람처럼) 미국, 유럽 문학에 편중된 독서를 하면 아시아, 제3세계 국가, 기타 대륙 문학의 현 수준을 감지하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를 알려면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참고해도 좋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조중동을 포함한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관련 기사 대부분이 외국 도박사이트가 공개한 배당률을 참고하고 있다. 그래서 후보군에 형성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고은, 밀란 쿤데라, 하루키, 아도니스(시리아 출신의 시인) 같은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들이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자주 거론되는 사실을 안다. 언론과 도박사들은 노벨상 발표일이 다가오면 의례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들을 언급하는데, 그들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갈 때가 많다.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떠올려 보시라. 도박사이트 배당률 순위에서조차 나오지 않은 파트릭 모다이노가 상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올해도 전 세계 독자, 언론의 예상을 확 뒤엎는 수상 소식이 나올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다름없는 도박사들의 뻔한 예상에 흥미가 떨어진다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을 참고해도 좋다. 박경리 문학상은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토지문화재단이 제정한 문학상이다. 박경리 문학 정신에 부합되고, 세계문학으로서도 높은 문학성과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내외 작가에게 주어진다. (제1회 시상은 국내 작가로 한정되었다가 제2회부터 ‘한국의 세계문학상’을 표방하기 시작하면서 국외 작가들도 후보자로 추천받게 되었다) 노벨위원회는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지만, 박경리 문학상 위원회는 두 달 동안 비공개 심사를 진행하여 5명의 수상 후보를 선정하여 공개한다. 시상식은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1억5천만 원이다. 2011년에 박경리 문학상 시상식이 처음으로 열렸으면 제1회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다. 최인훈은 1992년에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거론된 적이 있다. 제1회부터 올해 선정된 제5회까지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 작가명 표기는 알라딘 검색 표기를 따랐다. 작가명을 알라딘에 그대로 검색하면, 국내 번역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적은 작가가 태어난 곳으로 소개했다. 

 

주1) 이때 당시 최인훈을 포함한 5명의 후보 작가가 공개되었는데 며칠간 열심히 검색해도 이들을 소개한 뉴스를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2회 시상 때부터 언론은 후보 작가들을 릴레이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2)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출신 작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사람(‘로자’ 이현우 님은 당연히 잘 아실 테고)이라면 한번쯤은 이 작가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2012년에 박경리 문학상 작가 후보로 소개되었을 때 당시 마카닌의 나이는 75세. 작가에 대한 정확한 출생연도를 찾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생략했다. 관련 기사 링크)

 

 

 

재미있게도 토머스 핀천을 제외한 ‘미국 현대 문학 4대 작가’가 제3회 수상 작가 최종 후보에 함께 올랐다.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는 두 번이나 최종 후보로 올랐음에도 아쉽게 수상을 놓쳤다. 그래도 이들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은 쟁쟁한 작가들이다. 수상작가 그리고 최종 후보 작가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노벨문학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발표되기 때문에 ‘미리 보는 노벨문학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박경리 문학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유일한 세계문학상이 있는지 모르면서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김칫국 마시는 격이다.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인 아모스 오즈가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일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누리게 될 작가가 누구인지 정말 기대된다. 나는 특정 작가의 전작 독서를 하지 않아서 어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되는지 딱히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밀란 쿤데라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독자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여기서 언급된 작가를 제외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라.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기에 ‘OOO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OOO 작가’가 수상자로 결정된다면 당신의 댓글은 ‘성지글’이 될 것이다.

 

 

 

※ 성지글 : 크게 주목을 받았던 소식이 공론화되기 전에 미리 그 사실을 예고하거나 예측했던 온라인상의 게시글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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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0-0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지글이 되기를...ㅎ ㅎ

cyrus 2015-10-08 19:24   좋아요 0 | URL
통치약님의 대표작을 소해주십시오. ㅎㅎㅎㅎㅎㅎ

blanca 2015-10-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아니면 하루키일 것 같아요. 성지글은 안되겠지만요^^;;

cyrus 2015-10-08 19:2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로스와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신 적이 있으시죠? 예전에 블랑카님의 블로그에서 서평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

비로그인 2015-10-0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작가 이창래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호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한글번역이 맘에
썩 들진 않지만 좋은 작가라 생각합니다.
2011년도인가 후보에 올랐다지요. 그때
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 댓글은 허사가
되겠네요.ㅎ

cyrus 2015-10-08 19:28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지인도 이창래 작가 팬인데, 그 분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창래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창래 작가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충분히 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

에이바 2015-10-0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요. 그냥 떠오른 생각이지만요 ㅎㅎ

cyrus 2015-10-08 19:31   좋아요 0 | URL
루슈디가 받게 되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루슈디는 상 받을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항의할 것 같아요. ㅎㅎㅎ


세실 2015-10-07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경리가 받았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10-08 19:33   좋아요 0 | URL
박경리 작가가 오래 사셨더라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자주 거론되었을 겁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0-0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수상자 발표날이군요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하루키의 팬이라 하루키씨가 받았으면 하네요ㅎ

cyrus 2015-10-08 19:36   좋아요 0 | URL
오늘 밤 8시에 수상자가 발표됩니다. 발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발표 5분 전에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는 수상자 발표 생중계를 볼 예정입니다. 수상자 발표하는 데 고작 3분도 채 안 되는데 그거 하나 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수이 2015-10-0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필립 로스 :)

cyrus 2015-10-08 19:36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필립 로스, 하루키가 제일 많이 거론되네요. ^^

AgalmA 2015-10-08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가 이젠 받을 때가 됐죠~ 근데 최근작으로 봐선 필립 로스 아닐까 싶네요?
토마스 베른하르트, 장 지오노, 파스칼 키냐르가 받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10년 안에 파스칼 키냐르는 받지 않을까 합니다~후후))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더 먼저 받을 듯...흑.
참 보르헤스는 왜 아직도! 밀란 쿤데라보다 더!!

cyrus 2015-10-08 19:44   좋아요 0 | URL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은 노벨상 수상 자격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워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장 지오노, 보르헤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 세 사람들은 생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 한번쯤 거론되었을 겁니다. 차라리 공로상 비슷하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에게 수여하는 ‘명예 노벨 문학상’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아요. ㅎㅎㅎ 이러다가 정말 쿤데라 옹께서 노벨상 못 받고 세상을 떠나면, 쿤데라 팬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할 거예요. 보르헤스도 생전에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매번 거론되었는데도 못 받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파스칼 키냐르. 작가 이름을 기억해두겠습니다. ^^

AgalmA 2015-10-08 19:50   좋아요 0 | URL
하긴 베른하르트는 준다 그래도 안 받을 거지만;;
노벨상엔 그닥 흥미가 없어서 몰랐는데 고인에겐 안 주는 거군요! 그렇다면 쿤데라 옹 돌아가시기 전에 꼭 받으시길 응원해야 할 듯!

해피북 2015-10-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신문보면서 작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때문이였군요. 요즘은 네이버에서 봤던 기사들이 대부분 아침 신문에 실려있어서 구독해지하기도 했어요. 신문만에 개별화된 정보도 없고해서 말이죠. 무튼 저 역시도 밀란쿤데라를 살짝 응원해봅니다. ㅋㅂㅋ

cyrus 2015-10-08 19:45   좋아요 0 | URL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자주 보게 되면 작가 이름을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작가가 거론되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5-10-0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좀 그렇지 않나...? 섹스 얘기로 항상 뒤범벅이라 난 별로 감흥이 없던데...
이런 얘기하면 욕먹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공동수상이긴 하지만 이미 일본 사람이
두 개 분야를 석권했어. 노벨상이 설마 일본에게 3관왕을 허락할까?
우리가 받으면 오죽 좋을까만 별로 기대는 안 되고...

cyrus 2015-10-08 19:53   좋아요 0 | URL
일본 노벨상 3관왕이 이루어진다면 일본 언론은 ‘열광’, 한국 언론은 시무룩한 분위기로 보도문을 작성하겠어요. 누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에요. 영국에 성적 묘사를 지나치게 묘사한 작가에 주는 문학상이 있어요. 상 이름이 ‘Bad Sex in Fiction Award’이에요. 하루키가 이 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어요. ^^

stella.K 2015-10-09 10:54   좋아요 0 | URL
와우, 그런 상이 있단 말야? 놀랍다.ㅋㅋㅋ
그런데 노벨 문학상은 왠 알지도 못하는 작가가 받았더군.
로쟈님 서재에 가 보니 번역된 게 있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번역이 된 것 같아.
그것도 논픽션 작가에게 줬네. 그러기는 또 처음 아닌가?
뭔가 평화상적 수상이란 느낌도 드네.ㅋ

가만 보면 노벨상도 짓궂은 데가 있는 것 같아.
나름 대중에게 알려진 작가에겐 잘 안 주는 것 같아.
저 알지도 못하는 벽안의 작가를 발굴해 주기를 좋아하나 봐.
작년 파트릭 모디아노만 제외하면...

cyrus 2015-10-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우크라이나 출신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입니다. 밀란 쿤데라 옹과 필립 로스 옹은 다음 기회에... 하루키도...

2015-10-08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8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데일리’, ‘미래한국’, ‘미디어펜’ 등과 같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을 들여다보면 종종 놀랄 만한 글을 보게 된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이 언론의 이름만 언급해도 ‘꼴통 보수’들이 좋아할 만한 언론을 봐서 뭐하냐는 의미로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아예 이쪽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안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 생각이 싫다고 해서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저절로 달라질까? 올바른 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면 ‘자유’를 오용하는 자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잘못된 점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황순원, 최인훈, 신경림... 헬조선 조장하는 문학교과서] 미디어펜, 2015년 9월 26일

 

 

다음 링크로 소개된 기사는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6일에 처음 게재되었다. 미디어펜을 구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내용의 기사를 잘 모를 것이다. 기사를 한 번 읽어보시라. 어이가 없을 것이다. 기사 읽기가 귀찮은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 역사교육연구소 대표라는 사람이 몇몇 문학교과서 속 작품들이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작품을 읽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문학교과서도 ‘좌편향’으로 치우쳤으니 다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소 대표가 의심하는 작가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총 9편의 작품인데 여기서는 5편만 소개하겠다.

 

 

1.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연패를 거듭하는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팀이 가장 아름다운 야구팀으로 설정한 내용은 ‘경쟁’이 주는 풍요로운 장점을 배제한 채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견해와 비슷하다.

 

2. 최인훈 《광장》

남한을 게으르고 방탕한 곳으로 묘사된 부분은 학생들에게 남한이 북한과 같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3. 신경림의 시 《농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농촌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묘사한 시가 산업화 과정을 왜곡할 수 있다.

 

4.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1960년대 낙동강 유역의 조마이 섬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나오는 갈밭새 영감은 섬을 지키기 위해 섬을 차지하려는 국회의원의 앞잡이를 물속에 빠뜨려 살인죄라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다. 섬을 지키기 위해서 저지르는 살인 행위를 정당화될 수 없다. 약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 수 있다.

 

5.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

작품에 나오는 촌장은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이리떼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파수꾼 ‘가’의 행동을 눈감아준다. 남북한의 군사 대치를 이용하여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안보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잘못 해석할 수 있다.

 

 

문학교과서마저도 이념 논쟁에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교과서 논란이 많이 알려진 탓에 문학교과서 문제는 언론의 수면 위로 잘 떠오르지 않는 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이 문학교과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역사교과서 논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금도 보수주의자들은 사회, 경제, 윤리 과목 교과서에 드러난 좌편향 시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무관심만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교과서 이념 논쟁이 생길 거라는 보장은 없다.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교과서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 일이 지속될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역사교과서가 정식으로 국정화된다면 보수주의자들이 노리는 다음 타깃은 문학교과서로 향할 수 있다.

 

 

 

 

 

 

 

 

 

 

 

 

 

 

 

 

 

 

 

 

 

만약에 문학교과서가 역사교과서처럼 국정화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먼저 시장경제 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이 있는 작품이 교과서에 삭제된다. 미디어펜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교과서 퇴출 작품 일 순위에 가깝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하니 줄거리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1979년에 나온 작품이 지금도 나올 정도로 스테디셀러로서 그 위엄을 떨치고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이 소설이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다음으로 교과서에 퇴출당할 수 있는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활동했던 사회주의 문학 작가들이 쓴 것이다.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이다. 신경향파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사회주의 경향의 문학쯤으로 보면 된다. 낭만주의 문학을 거부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여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는 의식을 드러낸다. 《탈출기》의 주인공은 궁핍한 삶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 간도로 향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가난에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궁핍의 원인을 부조리한 현실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표출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에 불평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경제 상황은 지금과 너무나도 많이 달라서 ‘헬조선’과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작가가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해서 교과서에 퇴출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우습다. 과거에 월북 작가들의 작품을 금지했던 시절이 있었고,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여당의 태도를 봐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또 한 번 일어날 수 있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라는 유행어가 있다. 특정 대상을 희화화한 개그였을 뿐인데, 그 대상을 비하하고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보수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문학작품을 심각하게 읽는다. 사회 현실에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을 보면 꼭 마치 ‘죽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심정인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그 사람’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 완벽한 신이란 말인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기실 완벽하지 못하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왜 자꾸 손바닥으로 세상의 그늘을 가리려고 하는가. 사회현실의 문제점을 묘사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들의 행태는 자유주의의 원칙에 어울리지 않는다.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이념의 색안경으로 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폴 오스터의 말을 알려주고 싶다.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은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1》에서,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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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0-0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는 일이지.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예전에 박통 때와 전통 때 가요 금지곡이 있었잖아.
근데 그게 알고보면 웃기는 게 많았지.
오죽하면 전두환 닮은 연예인은 출연도 못했잖아.
뭐 그 보단 거대담론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진영논리에 빠져 자유롭지가 못한 것을 반증하는 꼴이지.
울나라가 하는 짓이 이래. 쩝

cyrus 2015-10-02 23:37   좋아요 0 | URL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일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몰라요.

yamoo 2015-10-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엔날에는 문학 교과서도 국정교과서였슴돠~ㅎ

모 역사연구소에 있는 넘들은 무뇌아인가 보죠..ㅋㅋ
근거가 금서를 지정하는 국방부나 교황청의 논리와 비슷해 보입니다..ㅎ

제 생각에는 저런 작품들이 아주아주 많이 읽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럼요~ㅎ

cyrus 2015-10-02 23:3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이 고마워요. 덕분에 이런 좋은 문학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페크pek0501 2015-10-0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읽어 봐야 한다는 점에서 금서란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양쪽 다 읽어 봐야 시각의 균형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이쪽에서도 볼 수 있고 저쪽에서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세상 같은 것.
뭔가를 억압하거나 통제하려고 들지 않는 세상 같은 것.
선택권을 스스로 갖게 하는 세상 같은 것.

정치 세력에 따라 금서가 바뀌기도 하니 웃어야 할까요?

cyrus 2015-10-07 18:52   좋아요 0 | URL
금서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득권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금서목록을 만들어요. 그러다가 기득권자의 얼굴이 달라지면 금서목록도 변경되죠. 금서목록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