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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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 여름 첫 휴가였다. 오롯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단 하루. 나름 계획은 세워뒀다. 아침에 운동만 하고 바로 카페로 달려가서 글도 쓰고, 책도 실컷 읽고, 거기서 밥도 다 해결하고 오겠다는 계획. 하지만 아침 일찍 수영장이 정전되어서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문자를 시작으로 녹록치 않은 하루를 보냈다. 자잘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았고, 모든 걸 챙겨서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데, 마음이 급해서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읽다 만 책부터 완독하고 싶어서 이 책이 눈에 띄자마자 들고 왔다. 그렇게 호기롭게 카페에 왔건만 스마트폰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배터리는 간당간당하고,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도 챙겨와놓고 손톱을 깎고 오지 않아서 키보드 위에 내 손톱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도착한지 30분쯤 지나자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버렸고, 집에를 갈까 하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카페같이 백색소음이 있는 곳은 복잡한 소설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에세이가 제격이다. 물론 혹시 몰라 소설책도 챙겨오긴 했지만 에세이를 먼저 읽고 싶었다. 그렇게 읽다 중단한 「번역: 황석희」를 꺼내 읽었고, 완독을 조금 남겨두고 너무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서 밥도 먹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떼우다 보니 이대로 있다간 하루가 그대로 저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일으키기 싫은 몸을 세워 다시 버스를 타고 카페에 왔다. 이번에는 충전기를 꼭 챙겨서. 그렇게 힘들게 와서 노트북을 켰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도 그대로 들고 왔기에 다시 이 책을 꺼냈고 금세 읽어버렸다. 그런 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노트북을 열었지만 이미 저물어 가는 내 휴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해 무슨 감정이 담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황석희 번역가에 대한 소문(?)은 듣고 있었다. <데드풀> 영화도 안 봤지만 ‘병맛’을 살린 번역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몇 개의 짤을 알고 있었다(이 책을 읽다가 <데드풀 2>에서는 원문 속 ‘Pumkin fucker’를 표현할 말이 딱히 없어서 글자 크기를 이용해 표현한 적이 있다며 ‘씨박 새끼’란 번역을 보고 혼자 빵터져서 왜 사람들이 번역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대부분 글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은 습관답게 저자의 번역으로 된 영화를 보려는 게 아닌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3~4쪽의 해당하는 분량의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의 양을 조절하는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글을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을 때도 있고, 더 적을 때도 있을텐데 균일한 양의 글을 읽도록 하는 게 글을 조절하는 걸로 보였다. <띄어쓰기좀틀리면어때요>란 글에서 ‘공적인 문서가 아닌 이상 띄어쓰기를 갈캍이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 자막에서 그러지 않는 건 스페이스를 한 칸이라도 줄여서 가독성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크다.’고 밝혔는데, 글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 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100쪽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성격이라던지 성향을 파악해보기도 하는데, 황석희 번역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건 곁을 잘 주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일에 대한 정확함에 대한 고집도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소심하고 여린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혼자 하는 번역은 없다’란 제목의 글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특수함에서도 나름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게 글에서 묻어났다.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건 이 책이 다이기 때문에 나의 느낌이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고, 나중에 또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글에 따라 저자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여전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도 좋다. 저자와의 만남이 나로서는 처음이기 때문에 글로 만나는 저자가 어떨지 기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알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어를 못하지만 번역서를 나름 많이 읽어서 저자가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책 번역으로 대입해 보았다. 물론 두 분야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새로 번역이 되어서 출간되면 다시 구입해서 읽는 것처럼 영화번역도 ‘못해도 5년은 숨이 붙어 있게 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완벽한 번역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처럼 짧은 대사 하나를 번역하기 위해 뉘앙스까지 고민하고 온라인상의 모든 밈을 수집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단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 정도가 되려면 정말 운명이든, 밥벌이의 목적이든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적절한 선을 지키며 자신을 드러낸 저자의 글에 나또한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며 읽었다. 그 선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느낌은 분명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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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전집 4
레이첼 카슨 지음, 표정훈 옮김, 닉 켈시 사진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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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아이의 새벽 단잠을 깨워서라도 바깥으로 나가보자. 100

 

새벽 6시에 일어나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서둘러 깨우고 텐트를 접었다. 새벽부터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는 시끄러울 정도로 새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거기다 텐트가 날아갈 것 같은 바람 소리와 마치 내 머리맡에서 출항하는 배의 엔진 소리까지. 잠은 거의 한숨도 못 잔 게 맞다. 그럼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비몽사몽해 하는 아이들을 겨우 차에 데려다 놓고, 남편과 텐트며 의자며 많은 짐들을 부지런히 정리했다. 여름 아침이었지만 꽤 쌀쌀했고,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노동의 댓가는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장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볼 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안다. 아마도 어른인 우리보다 작아서 땅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87

 

도시에서 아이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발견해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라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아예 그런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 바쁜 스케줄, 공부 등등 아이들이 흙으로 된 길을 보고 걸을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오히려 평일보다 더 방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집에만 있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텐트를 비롯한 캠핑용품을 사서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수고롭지만 좋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만족한다면 기꺼이 해도 되는 수고로움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데서 오는 평안함이 그 모든 과정을 힘든 줄 모르게 해치우게 했다.

 

늘 자연과 가까이하는 그러한 기쁨은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생명의 경이에 자신을 기꺼이 내맡길 줄 아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126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먼스 홈 컴패니언>이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단행으로 펴낸 것이다. 제목을 의역하면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Helping Your Child to Wonder)’ 정도라고 하는데 옮긴이는 ‘Helping’이라는 표현이 부모가 강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레이첼 카슨도 이 글을 통해 아이들을 돕는 것, 거드는 것을 말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카슨이 조카의 아들인 로저와 집 주변의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밤에도 서슴없이 자연을 관찰하는 모습이 평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생전에 꼭 마무리 짓고 싶어 한 바로 그 책이다.’라는 초대의 글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이 책에 전념하면서 이 책을 접하는 어른과 어린이 들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풍부하게 기르기 바랐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생명 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삼가리라 믿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이 뭉클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늘 자연을 파괴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자연을 느끼고 싶은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가족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캠핑을 떠올렸고, 긴 수고로움이 될지라도 조금 더 자연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자연을 이용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연과 융화되어가는 시간들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수성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갖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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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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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서 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1층이어서 그런지 풀 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얼마 전에 화단 풀을 깎은 듯한데 그래서인지 풀냄새가 더 좋았다. 간단하게 주방과 거실 정리를 하는데, 문득 '음악을 좋아하면 좋은 나를 위해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들어보라!'는 말이 떠올라서 책장 맨 아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디오를 꺼냈다.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중고 오디오인데 음악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스피커 소리가 좀 왔다 갔다 하지만 잘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오디오 세트를 거실 텔레비전 옆으로 꺼내서 음악을 틀었다. 오디오 안에 클래식 음반이 들어가 있기에 그대로 재생시켰다.

음악을 들으며 집안 여기저기 묵은 먼지를 닦아내니 나름대로 능률이 올라왔다. 간식을 조금 먹고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이 책을 꺼냈다. 오래전에 읽다 만 책이었는데, 현재 모든 상황들이 이 책을 떠오르게 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이었는데도 마치 얼마 전에 읽다 만 책처럼 저자의 글은 친근했고 좋았다. 오래도록 관찰해서 식물을 세밀하게 그려내야 하는 저자의 차분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게 마치 식물 곳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하루처럼 어디선가 식물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기록들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한여름 숲속에서, 제각기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작은 풀 한 폭의 기록 일지라도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는 것을, 긴 관찰의 여정에서 배운다. 107쪽

처음에는 저자의 직업이 생소했다.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식물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자가 관찰하는 식물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해 준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만으로도 충만할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는데 ‘식물을 소재로 사유를 담거나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고 그린 그림이 식물화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 안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해부도라고. 그러니 오로지 식물의 형태에만 집중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내가 해부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물들에게 배울만한 점이 많은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객관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살아온 삶을 거리낌 없이 낱낱이 드러내는 반면, 내 삶의 오점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 같은 기분에 자꾸 나를 식물화하는 혼란스러움이 우습기도 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겼다며 좋아하거나, 무섭게 생겼다며 기피하는 벌레잡이식물의 형태가 내게는 어쩐지 참 슬프게 느껴진다. 다른 식물들에선 보지 못했던 그들의 기이하고 생소한 형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66~167쪽

이런 면은 슬프게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각자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내면의 몸부림은 각자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이 되었든, 습관이 되었든 나도 그런 모습이 하나쯤 있지만 식물처럼 매 순간 치열하지는 못했다. 기이한 형태가 될까 겁내거나 타인을 의식하느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식물 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이렇게 부끄럽고 작아지는 기분만 들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참질경이에 대한 부분을 읽는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가 작업실 근처의 질경이를 관찰하다, 잎맥이 특이해 잎을 반으로 자르니 그 안에서 다섯 개의 실줄기가 액체와 함께 나왔다고 했다. 시골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놀잇감이 없어서 자연에서 늘 찾곤 했는데, 질경이의 그 질긴 실줄기를 이용해 제기를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질경이의 줄기를 잘라도 실줄기가 나오는데 여러 잎의 실줄기끼리 엮으면 단단한 재기가 되었다. 누가 더 풍성하고 단단한 제기를 만드는지 내기도 하고, 잎이 시들때까지 반나절은 너끈히 놀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내 어린시절 한 부분을 차지해준 질경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는 식물만큼이나 인간도 다른 생물의 공격을 당하기 쉬운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며,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여 지능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고 한다. 또한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에 저자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직업의 특성상 저자와 나의 관점은 다르지만 다른 의미로 질경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공통점으로 충분히 위안을 얻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잘 못하기에 바라는 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식물들도,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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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페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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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 책을 들고 다녔다. 책이 읽히지 않은 시기였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랬으니 아무리 책을 들고 다녀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고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저자의 그림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주말 저녁 혼자서 이 책을 들고 카페에 갔다. 평상시 같으면 후루룩 읽어 버릴 책을 얼마 동안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달랑 이 한 권만 들고 갔는데, 금세 읽어버렸다. 문득 시계를 보니 카페 문 닫을 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여분의 책을 들고 오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 책을 읽을 힘을 생겼다.

 

이 책은 그가 자주 찾았고, 어쩌면 일생을 보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97

 

옮긴이의 설명처럼 여기에 실린 삽화들은 예전에 그려진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상페가 쓴 글이 아닌 상페와 함께 일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상페에 관해 쓴 글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상페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삽화들인 센트럴 파크를 그려낸 작품들이었다. 지금 보고 있으면 너무나 당연한 풍경 같은데 상페가 이 삽화들을 그려낼 당시만 해도 센트럴 파크는 우범지대였다고 한다. 그래서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는 상페의 이런 삽화가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센트럴 파크의 리모델링을 담당할 그룹이 생는데, 그들이 상페가 보여 준 삽화와 비슷하게 공원을 탈바꿈 했다고 한다. 상페가 센트럴 파크에 엄청난 꿈을 심어준 셈이다.

 

오늘날 그리니치빌리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안다. 보보스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다. 모든 것은 변했다. 본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 재기 넘치는 상페의 그림과 노래는 길이 남아서 이 전설적인 거리에, 우리의 젊은 날의 거리에 여전이 울려 퍼질 것이다 78

 

이 책은 장자크 상페 별세 1주기를 추모하며, 상페가 미국을 여행하며 그려 낸 작품과 그를 기리는 칼럼들을 함께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배경만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상페 특유의 매력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좀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이란 나라에서 기꺼이 도전한 것이다. 1969년의 여름, 미국이 달 표면에 내딛는 첫발자국의 현장에도 상페가 있었다. 케이프케네디 특파원의 글의 끝에는 , 상페, 자네의 펜과 붓으로 자네가 경험한 아폴로호를 우리에게 보여 주게나.’라고 되어 있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상페 역시 자기만의 색깔로 드러내는데, 상페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인의 감동을 끌어내는 무언가가 아니라 상페가 해석한 달 탐사에 대한 그림들은 상페다웠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에게 우주는 현재의 우리그리고 인간이 연결된 것으로 느껴졌다. 우주도 내가 존재해야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으니까. 내 멋대로의 해석일지라도 인간의 존재감을 소소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우주라는 공간보다 더 광활했다.

 

내가 왜 상페의 그림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다. 엮은이는 거창하고 고매한 세상이 아니라 소소하고 자잘한 소시민적 세상인 만큼, 많은 독자와의 공감 가능성은 더욱 커 보인다.’라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공간적, 문화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상페가 우리나라의 정서를 그려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상페가 전달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행복. 게으름을 피우며 느지막이 일어나 과일을 조금 먹고,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정경화(바이올린)’의 연주를 들으며 다시 상페의 삽화를 들춰보고 짤막한 느낌을 쓰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오늘 하루의 행복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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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버텨!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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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손길을 주지 않았던 책장에서 네 권의 책을 뺐다. 그리고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다. 책 제목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책 제목이 오늘따라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 특유의 유머와 그림들이 나를 평안하게 해주었다. 내가 요즘 들어 방황했던 이유가 일상을 잃어버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오롯이 마주할 힘. 그 힘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다.

난 요즘 들어 혼자서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어. 22쪽

혼자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집에서도 혼잣말을 자주 하지만 밖에서도 종종 내 생각에 빠져 혼잣말을 하다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지하 주차장에서 무언가를 기억해 내서 큰 소리로 말했는데, 입구에서 사람이 걸어왔다. 또 중얼거리며 분리수거를 하는데 경비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던 때처럼 혼자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단단해진 내 마음을 예전에 느꼈던 평안함이 비집고 들어와 빈틈을 만들어 주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배경을 내세워 돋보이게 만드는 일. 그들의 얼굴과 내면을 모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거리의 일상을 그대로 그려낸 것 같아 그 모든 게 삶의 일부분처럼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 특이한 동작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부인이 하는 “난 어째 몸이 좀 얼얼해.” 라던지 사람이 바글바글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를 멀찍이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어쨌거나 굉장히 프로 같긴 하네!” 라는 글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위안을 받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평범함에서 오는 공감일지는 몰라도 생각이 돋보일 수 있음에 생기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획일화되지 않은 감상평에서 살아있음을 경험했다면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저자가 그려내는 일상의 매력이고, 특별함이다.

뭐라고? 이제 겨우 시작되어 외울 것도 없는데, 역사 시험에서 빵점을 받았다고? 37쪽

이런 그림과 글은 허를 찌른다. 구석기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에서 아빠가 아이의 시험지 같은 무언가를 보며 하는 말이다. 그 아래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저 시대에 시험과 종이와 글이 있었냐, 역사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는 걸 어떻게 아냐는 의문의 진지함을 제외한다면 방심하고 있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는 독자에게 한 방 먹이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런 신선한 발상만 표현한 것이 아닌 인간 내면의 속물적인 부분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림도 있는데, 그런 기질을 나 또한 버릴 수 없어서인지 오히려 시원하게 드러내는 그들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아무런 글도 없는 몇몇 그림도 독자로 하여금 대화하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처럼 온 들판이 녹음으로 뒤덮인, 시골길 어디선가 보았을 그런 풍경에 죽어가는 나무가 서 있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 정원사 같은 사람이 그 나무를 쳐다보며 조리개를 들고 발을 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무런 말이 없지만 여러 가지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 평범하게 따지면 “저 나무는 왜 죽어가지?”부터 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너무 일찍 옷을 벗었군!” 정도가 될까? 익숙하지만 낯섦을 맞닥트리는 시선이 공존하는 듯한 기분도 좋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정서에 맞지 않는 대화와 생각의 나열들이 있어도 그대로 수용한다. 저자의 모든 글과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며, 이해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게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꺼내보아도 평안한 게 저자의 작품집이고, 그런 평안한 분위기가 내 기억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분간은 구매하고 읽지 않는 저자의 작품을 좀 아껴서 만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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