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마음속 기록, 난중일기 처음 만나는 고전
이진이 지음, 이광익 그림, 한명기 감수 / 책과함께어린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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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여수는 이순신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우리동네 도서관 이름도 이순신 도서관이고, 우리집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이순신 어머님이 사시던 곳도 있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익숙한 여수 지명과 장소가 나올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이순신 장군이 오래 전에 이곳을 거닐고, 지켜주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뭉클해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이순신 장군이(이하 장군 호칭은 빼겠다) 일본과의 전쟁 준비 기간은 불과 12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류성룡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뒤, 짧은 기간 동안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전란 중에 쓴 일기라는 뜻의 <난중일기>는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고, 연도별로 구별해서 총 7권의 일기를 남긴다. 이 책에는 이순신의 일기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일기에는 없는 장계(전투 결과를 임금과 조정에 보고)를 통해 임진왜란의 상황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중일기>가 더 궁금해져서 책장에서 원본 <난중일기>를 꺼냈다. 임진왜란의 흐름을 읽었으니 더 상세한 전쟁에 대한 기록과 이순신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었다.

 

<난중일기>를 읽는 내내 이순신의 고독과 외로움에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나이가 들기 전에 읽었던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위대함과 일본을 물리쳤던 짜릿한 전투에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전쟁의 많은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이순신의 힘듦이 오히려 더 잘 보였다. 개인적인 결정 하나를 할 때도 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한 뒤에 하는 것도 벅찰때가 많다. 그런데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의 한 가운데서 이순신의 고충은 감히 이순신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격뒤에 병사들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또 다른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도 읽고, 영화 <명량>,<한산>,<노량>도 모두 보았다. 이 책도 두 번째 였고, 그렇게 많은 이순신에 관한 작품들을 만나면서도 만날때마다 너무 가엽다. 할 수만 있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이순신과 병사들에게 뜨뜻한 국밥을 실컷 먹여주고 싶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데, 환경이 너무 어려웠다. 군량미가 도착하지 않을 때 병사들을 걱정하는 마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들을 알리기 위해 신분을 따지지 않고 기록하고 장계를 올리는 모습에 이순신의 노고와 애씀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전쟁이 7년 동안 이어지고, 때론 나라도 이순신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몸이 아픈 와중에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을 때도 이순신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따뜻하게 대했으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너그러웠던 이순신도 꼭 잊지 말았으면 해. 또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인간 이순신의 모습도 <난중일기>를 통해 꼭 기억해 주길 바랄게. 160

 

이 모든 게 <난중일기>에 녹아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 중에도 일기를 남긴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기라도 쓰지 않으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숨통이 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덕분에 후손들은 전쟁과 이순신의 개인적인 감정들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얼마나 무모하고, 많은 피해를 낳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느껴졌다. 7년 동안 이어진 이 전쟁을 자신이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서 시작된 노량 해전에서 결국 마무리 짓긴 했지만 끝까지 병사들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감히 이순신의 근처도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순신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 뿐이지만 그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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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마지막 잔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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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여는 순간 낯이 익었다. 책날개에 익숙한 작가와 그린이 소개를 보는데 너무 익숙했다. 그제야 책 제목을 다시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 블로그를 검색했다. 분명, 이 책의 단행본은 없어서 신간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검색결과에 『중국행 슬로보트』 단편집에 실려 있던 작품이었다. 이미 읽은 책을 또 구입한 모양이었지만 안자이 미즈마루가 오로지 이 소설을 위해 20편의 일러스트를 실어 따로 출간한 책이라고 하니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타계 10주년을 맞아(2024년) 온전한 한 권의 책이 탄생했으니 그것 또한 기념일 것 같다.

서서히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에 이 책을 읽으니 아직은 무덥고, 땀이 뻘뻘 난다기 보고 잔디를 깎는 장면이 싱그러워 보였다. 아직 나를 덮치지 않는 더위 때문인지 반듯하고 가지런히 잘려 나가는 잔디를 상상하며 오로지 푸르름만 떠올렸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특유의 시니컬함과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인물의 내면과 생각의 파편들에 깊게 다가가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인식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이 잔디 깎는 일을 그만 두었을 때, 한낮의 꿈처럼 내 기억속에서 마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연인과 여행을 가려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헤어지자는 연인의 편지가 도착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계속 하게 된 잔디 깎는 일은 주인공에게 적격이었다. 가장 먼 거리의 집을 택해서 느긋하고 꼼꼼하게 잔디를 깎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의식을 치르듯 행해진다. 당연히 고객들 입장에서는 평이 좋을 수밖에 없고, 사장은 이 일을 오래 하길 바라지만 주인공은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했고, 또한 딱히 돈을 벌어야 할 목적도 상실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집의 에피소드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일을 하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들 또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연인과의 잠자리가 기억나다가도, 잔디 깎는 일을 하면서 딱 한 번 갖게 된 그 집 부인과의 잠자리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잔디 깎는 일이 주인공을 지탱해 준다는 느낌까지 사라지게 했다.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과 ‘다른 표현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지배할 때 철저히 관찰자가 된다. 어떤 작품은 깊이 몰입하다가도 무언가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작품에서 한 발 짝 튕겨 나온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그 기억들이 솟아났다.

이런 감정을 ‘나쁘다’, ‘옳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분명 오래전에는 불쾌감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쓰는 작가는 내가 아니므로 가타부타 끼어들 수 없기에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내가 예견한 길에서 곁길로 빠져나가는 이야기의 흐름과 주인공의 행동들이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40대 중반을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소설 하나도 맘 편히 읽을 수 없다는 피로함이 몰려오다가도, 어쩌면 저자는 인간 내면의 이런 복잡하고 숨기고픈 감정을(나만 숨기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을 빌려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는 장면들과 표현들을 마주하면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불쾌한 감정을 지나, 솔직한 감정의 표현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저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 집에서의 그 평범하지 않는 상황들처럼 말이다. 첫 만남에서 여주인의 담배 요구, 술을 건네주고, 맘에 들게 깎인 잔디를 보며 죽은 남편을 떠올리다가 먹을 것을 챙겨주며, 보여 줄게 있다며 자신의 딸의 방을 보여주며 성격을 물어보고, 마지막에 팁을 받는 그 모든 과정들을 그저 받아들이게 된다. 분명 소설을 읽으면서 서걱거리던 낯섦들이 내 일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종종 일반적이지 않는 요구를 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때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주인공처럼 무덤덤하게 그 상황에 그저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나서 되짚어 봤을 때,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상황들이 많다. 이 이야기도 헤어진 연인과 잔디 깎는 일, 그리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흘러가는데, 일부분만 보며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굳이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주인공처럼, 그저 일상의 흐름이라고 여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일상이 쌓여 한 사람의 자아가 만들어 지겠지만 그 자아 또한 이러면 어떠하며, 저러며 어떠하리. 그저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오후에 마지막 잔디 깎는 일을 들여다 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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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그래 - 파리 여행그림책
이병률 지음, 최산호 그림 / 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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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 달 전, 2주 동안 뉴욕 여행을 갔었다. 모국어를 쓰지 못한 철저한 이방인에 불과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맨해튼을 걷고 있으면서도 움츠러드는 건 어쩔 없었다. 동선이 제약적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정보들은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집을 떠나 이 먼 곳에 와서 낯선 곳을 걷고 있고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에 현실감은 없었지만, 이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은 두렵고,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은 제한적일 테지만 분명 집으로 돌아가면 생각이 날 것 같았다.
 
나도 돌아올 거야. 이 정도의 여기라면. 85쪽
 
두려움과 막막함이 가득했던 뉴욕 여행이어서 그런지,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지하철과 길거리의 온갖 냄새로 강렬하게 기억되는 뉴욕은 한국과 자꾸 비교하게 만들었다. 비싼 물가, 전 세계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거리의 사람들, 도시의 소음과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단일 언어는 나를 더 혼미하게 했다. 그랬기에 다시 뉴욕에 올 일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파리를 좋아하고, 그곳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람들과 자잘한 인연을 맺고, 다시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모습이 나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도시를 사랑하고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걸까? 파리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라고 해도, 예술가들만 파리를 사랑하는 건 아닐 텐데 나는 왜 그토록 낯선 도시가 낯설게만 느껴지고 즐기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시간이 우리를 잠시 막고 있을 뿐.
시간은 당신의 모든 가능성을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21쪽
 
파리에 있는 ‘카페 팔레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근처 국립고등미술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아지트라고 한다. 저자는 이 카페 주인이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를 가난한 학생들에게 주인은 가끔 와인과 음식을 건넸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들에게 가진 것은 그림뿐이고, 줄 수 있는 것 또한 그림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곳을 오가는 수많은 잠재적 예술가들에게 ‘시간은 당신의 모든 가능성을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말해준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그 가능성에 부디 나에게도 와 닿았으면 싶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지만 마흔에 겨우 파리에서 첫 책을 출판한 헨리 밀러처럼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라고, 나에게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거라는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다만 내가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지, 구체적이지도 않고, 시도도 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소용돌이 치기를 조금은 무모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렴풋이 뉴욕에서 저자처럼 여유롭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관광객임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 충분히 맘 놓고 즐겼을 법도 한데 나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자체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내 능력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내 안의 수많은 가능성과 뉴욕 도시가 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접목 시키지 못했다. 여행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꼭 무언가 결과가 드러나지 않아도 되는데,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고 그 자체를 여유롭게 바라보지 못했다. 나도 저자처럼 뉴욕을 여러 번 경험하면 골목골목을 기억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곳이 생길까?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 없이 오롯이 파리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익숙해야만 편안한 것이 아닌 낯섦과 익숙함이 주는 설렘과 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와인부터 창가에 심겨진 꽃 이야기, 공원에서 받은 낯선 이의 달콤한 생일 선물까지 꼭 저자의 경험만 녹아 있는 게 아니라 파리 시내에 바람처럼 흘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노래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수다 같은 이야기를 몽롱하면서도 편안하게 들었다. 잔뜩 움츠러든 강직성 대신 유연하고 어떤 상황이든 내면을 거쳐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여유와 편안함과 마주했다.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간다 해도 저자처럼 이런 시선으로 그 도시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각자 자신만의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이 천차만별로 쌓이는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러다 렌즈 안에 더 기억되게 하고, 간직하고 싶은 세상이 있을 것이고 그럴 때 다시 돌아올 거라는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여운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보다, 어느 날 선물처럼 남겨진 여운이 현실과 이어진다면 그게 더 행운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현실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후회 없이 하루를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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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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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눈물이 났다. 저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음에도 전작 <긴긴밤>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렘과 기대와 슬픔이 가득한 마음을 웅켜쥐고 있다 결국은 눈물을 터트렸다. 전쟁터에 나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기다렸던 나나. 그리고 나나의 딸 파티마의 남편도 징집되어 결국 돌아오지 못했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집을 떠나지도 못하고, 문을 닫을 수도 없었던 나나. 전쟁이라는 무모함 속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어갔을 남자들과 할 수 있는게 기다림 밖에 없었던 나나와 그 집에 머물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을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먹먹했다.


  약 7년 전쯤, 친정집 가다 30년 전 학교에서 집을 오가던 길을 차로 가 본 적이 있었다. 굉장히 멀고, 큰길이었던 나의 통학로는 너무 작은 오솔길이었고, 여전히 길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30년이나 지난 뒤에 그 길을 다시 가봤다는 것 자체에 깊은 추억에 잠겼다. 그 길 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이 나를 스치듯 지나갔고,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길 위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 볼 수 있었던 통학로였는데, 매끄럽지 않다는 이유로 그 길을 돌아서 편안한 길로 친정집에 가곤 했다. 그리고 그 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리스도 우연히 막내의 그림을 보고 올리브 나무를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발판이 되어준 ‘나나 올리브’를 잊고 있었고, 그렇게 30년 만에 찾아간 집에서 나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만약에’라는 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코흘리개’가 수없이 반복한 ‘만약에’를 나도 대입해 본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올리브나무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 내가 굳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만나지 못해도 좋으니, 그저 평범하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상처를 회복할 일도 없었을 테고, 나나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삶을 따라 살려는 ‘코흘리개’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나는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어버리지만, 그녀는 항상 열려있는 문으로 사람들을 맞이했고,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내 집’이라는 이유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을 과연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그녀가 잊히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집에서 따뜻한 추억이 많았고, 그 추억을 30년이 지난 뒤에라도 찾아와서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치 나나가 올리브나무의 기둥처럼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올리브나무 집에 찾아온 이들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나나가 받아들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게 된 삶에 대해서도. 숨을 들이켜듯이 받아들이고, 다시 내쉬듯이 체념해 버린 우리의 삶을요. 보고 싶어요, 할머니. 52쪽


  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그 슬픔과 절망감이 과연 괜찮았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린 체념 속에서 제발 한순간이라도 그녀가 괜찮았던 순간이 있었길 빌고 빌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녀가 괜찮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흘려보낸 ‘사랑’이 결코 올리브나무 집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다. 나나의 사랑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 ‘코흘리개’를 살렸고, 월터와 다리스, 카릴라와 메이를 살렸다. 그리고 개 조로와 배트맨은 그 사람들을 모두 올리브나무 집으로 인도했다. 올리브나무 집을 스쳐 간 사람들은 모두 쉼을 얻고 각자 가야 할 길로 갔다. 수많은 이별과 아쉬움 속에서 조로는 끝까지 나나와 올리브나무 집을 지켰다. 조로의 마지막을 ‘코흘리개’가 지켜서 다행이었고, 그 끝에서 다시 배트맨을 만난 게 다행이었다. 헤어짐 뒤에는 무언가가 꼭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야. 그렇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언제나 남아 있는 것들이지. 그렇지? 193쪽


  올리브나무는 무엇이었을까? ‘옛날 옛날에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마주쳐 사랑에 빠진 연인이’ 집을 지었고, 남자는 돌아오지 못했고, 그 집에 남아 있던 여자와 딸과 손녀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 주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올리브나무 집이 입에 오르내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가장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리브나무 집은 사람들이 잠깐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했지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적인 곳이기도 했다. 폭격으로 올리브나무는 휘어졌고, 집은 망가졌지만 그곳을 스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을 얻고 떠나갔다. 오로지 나나와 조로가 지키고 있는 집이었지만 그 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주는, 기억이라는 게 존재했기에 그 집은 사라지지 않았다.


  책의 말미에 잎이 풍성해 햇볕이 잔뜩 내리쬐는 올리브나무 그림은 이 집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 같았다. 휘어진 가지가 모두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줄 것 같았다. 사람들의 희망이 틔어 올린 이파리가 결국 올리브나무를 살리게 한 것 같았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모든 가족은 아니지만 올리브나무 아래 나나의 가족이 함께 있기에 더이상 올리브나무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저 반짝이는 것들은 하늘의 난 작은 구멍들이라고 나나가 그랬죠. 지상에서의 시간이 다하면 그 영혼이 저 구멍을 메꾸러 가는 거라고요. 69쪽


  나나의 가족은 하늘의 난 작은 구멍을 메꾸면서 올리브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집이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에 분명 뿌듯해 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남아 있는 것들을 붙들면서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을 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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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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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이메일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막상 쓸 곳이 없는 현실과 나의 수많은 평범하고 실수투성이 이메일을 싹 뜯어고치고 싶어진다. 왜 이제 출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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