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적 초조함을 이해합니다
뤄전위 지음, 최지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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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지적 초조함은 해결이 되었지만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가닥이 잡혀 오히려 더 초조해지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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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이덕무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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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덕무의 책만으로도 반가운데 정민 선생님이 옮기셨다니!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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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 김개미 동시집
김개미 지음, 최미란 그림 / 토토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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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똥 냄새를 맡는 것도 싫고/똥 싸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누가 똥 싸냐고 떠드는 소리는 더 싫어./문밖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으면/나오던 똥도 도로 쏙 들어가.//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혼자 똥 싸는 게 좋아./수업 시간에 똥 싸는 게 좋아./눈치 안 보고/마음껏 똥 싸는 게 좋아.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시를 읽다가 너무 공감이 가서 큰 소리로 웃어 버렸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한 개라 유난히 쟁탈전이 심하다. 남편이 먼저 들어간 화장실도 싫고, 진지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수시로 문을 열어대는 것도,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도 싫다. 그래서 정말 웃지 못 할 일들이 많다. 오죽하면 심각하게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되냐는 말을 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땐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울어대는 통에 화장실 문을 열어놓는 건 기본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경쟁 상대(?)는 남편 뿐이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부터 경쟁 상대가 둘로 늘어났고, 서로 가겠다고 우겨(생리 현상이 조절이 안 되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없다)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화장실 가는 횟수를 체크하게 되어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먹고, 싸고, 먹고 싸고’가 되어버렸다. 정말 화장실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이상하게/선생님이 말을 시키면 부끄러워진다./특히 일어서서 말하라고 하면/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그렇다고 선생님이 질문할 때/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애들 모두 손을 드는데 혼자 안 들면/선생님이 꼭 나를 쳐다본다.//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모를 거다./선생님 앞에서 말하는 게 어떤 건지./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도 나는/대답할 말을 한참 생각한다. <대답>

나는 중학생 때까지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걸 너무 힘들어 했다. ‘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는 말에 공감을 넘어 심장이 내 귓가에서 뛰는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못 마주치고 다른 곳을 보며 겨우 발표를 마치고 들어오면 한참동안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왜 못했지?’라며 후회하곤 했다. 그러다 서서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부끄러움이 더 커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튀지 않고 군중에 묻혀 있고 싶은 마음, 발표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내연한 척 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른인 내게도 전해져 괜히 찡해졌다.

“이빨 닦았어?/안 닦았으면 얼른 닦아.”/“닦았어.”/“요게 누굴 속이려고?/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닦은 이를 또 닦는다./이러다 정말/이가 다 닳아 없어지겠다./내 이가 홀랑 다 없어지면/엄마가 내 말을 믿을까?//그럴 리가 없다./엄만,/내가 이가 하나도 없어도/이빨 닦으라고 할 거다. <잔소리 ①>

충치로 고생을 하진 않았지만 6년 동안 교정하면서 양치질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아이한테 자기 전에는 양치질을 꼭 하라고 한다. 내가 해보니 너무 귀찮고, 힘들다는 걸 알아서 아이한테 잔소리가 덜 해지는 편이다. 대신 아빠가 꼬박꼬박 하지만 치아도 어느 정도 타고 난다는 걸 알게 된 터라 좀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잔소리에 못 이겨 닦은 이를 또 닦으며 이빨이 홀랑 다 없어진다는 아이의 말에 어쩔 수 없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이가 하나도 없어진 다음에도 엄마가 이를 닦으라고 잔소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엄마의 잔소리도 들을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표현이 다르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을 때마다 시인의 시선은 정말 다름을 느낀다. 동시지만 쓰는 이는 어른(아이의 과정을 거쳐 왔더라도)인데 어쩜 이런 시선과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늘 경이롭다. 이 동시집을 읽으며 웃다가, 그리워하다, 씁쓸해하다, 행복한 마음을 모두 느꼈다. 또한 시심은 우리의 마음에도 충분히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게 서툴러 동시를 읽을 때 조금씩 들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치 이렇게 내 마음을 대신 드러낸 시들을 만나면 그저 즐겁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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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 높아진 자아, 하나님을 거부하다
팀 켈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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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민족 사랑과 애국심은 선한 것이었지만 잘못되었다. 그의 민족사랑은 편협함으로 변질되었고, 이스라엘이 국제적 권력 투쟁에서 이길 가망이 사라지자 그의 삶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273~274쪽


오늘 주일 예배 대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제대로 전하고 있다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기도의 바탕에는 나, 내 가족, 내 교회, 내 지역의 안락함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거란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나는 복음의 의미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런 마음 상태에서 만난 요나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둘째가 책에 관심을 한참 가질 때, 밤마다 어린이 성경 중에서도 요나 이야기를 가져와 매일 읽어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길이가 짧아 매일 읽다 보니 아예 외워버려서 어둠 속에서 아이에게 들려줄 때가 있었다. 큰 물고기가 등장해 요나를 삼키는 부분에서 아이는 가장 흥미로워했는데, 나 역시 요나의 이야기를 흥미 위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니느웨로 가기 싫었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바다에 던져지는 벌을 받고 결국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끌어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 싫어했던 이유가 잘못된 애국심과 민족 사랑이라는 해석 앞에서 내 안의 나름대로 쳐 놓았던 여러 가지의 벽들이 ‘퍽’ 하고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여 그들을 너그럽고 정의롭게 대하기를 원하신다. 48쪽

익히 알고 있듯이 앗수르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국이었다. ‘요나의 생애 내내 유대인들의 왕국을 계속해서 위협했’고,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과 사마리아를 침공하여 파괴’한다. 그런데 그런 곳으로 요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요나가 결국 도망치게 된 의문 즉,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앗수르와 같은 민족에게 그분의 자비를 경험할 일말의 가능성’을 주신 것일까? ‘가령, 1941년에 한 유대인 랍비가 베를린 거리에 서서 나치 독일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면 그는 얼마나 오래 목숨을 부지했을까?(25쪽)’만 생각해봐도 요나가 했던 고민에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했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배를 탔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요나보다 훌륭하게 처신하는 이교도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부터 종교, 민족을 떠나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그건 요나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비신자들에게 배울 것이 많음을 알고 모든 사람의 수고에 감사해야 한다. 요나는 이 사실을 어렵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59쪽

요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마지못해 하나님의 명령에 이끌려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인 줄 알았다. 그랬기에 박넝쿨 사건에서 하나님과 논쟁하는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 싫어서 엉뚱한 배를 타고 가다 폭풍을 만나고, 이교들이 요나보다 더 훌륭히 처신하고, 절대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은 그 사실을 요나를 비롯해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복음을 전하면 된다. 그리고 복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며,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려야 한다. 때론 희생이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요나서를 깊이 마주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는 시간들이 참 감사했다.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다양하게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한 해석이 인상 깊었다. 요나가 제비뽑기로 바다에 던져져야 할 사람으로 뽑혔을 때 뱃사람들이 물음에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라며 민족에 관한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다. 이에 저자는 ‘요나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믿음은 민족과 국적만큼 그의 정체성에 깊고 근본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던 모양(71쪽)’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와 다르면 타자화 시켜 지역, 교회, 소속으로 분류하고 나누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우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는 자신 안에서 길을 잃고 결점 많고 자격 없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흠모하는 분이 용납하시고 기뻐하시는 존재이다.(278쪽)’라고 했다. 지금껏 나만 그러하다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요나서를 읽으면서 단지 복음을 받아들이고의 차이일 뿐, 하나님에게 이 세상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구분 짓고 나누고 규정하는 모든 경계가 허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그게 요나서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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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여행 : 중1 시 - 중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 시 작품선 스푼북 청소년 문학
신보경 엮음 / 스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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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에 배우는 무슨 법이니, 운율이니 이런 말들은 다 버리고 시작하세요. 뭐 우리가 그런 걸 다 외우고 시인의 마음을 다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마음을 알기도 힘든데 말이에요. 6쪽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묶어 놓은 책을 펼치자마자 엮은이가 해주는 말이 참 좋았다. 괜히 ‘재미없겠구나!’ 싶었는데 안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정말 그런 염려를 내려놓고 시를 읽었더니 시가 즐거웠다. 너무 재밌는 시도 있었고, 묘사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하고, ‘시인은 역시 다르구나!’ 느끼면서 시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나무들이/샤워하고 있다//진달래는 분홍 거품이/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영산홍은 빨강 거품이/보글보글 일고 있잖아//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의 목욕> 중 _정현정

시의 일부지만 봄을 이렇게 거품으로 묘사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 신선했다. 봄에 꽃으로 만발한 산과 들을 보면 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움트다, 자라다, 맺다로 이뤄진 책의 구성을 바탕으로 시를 따라가다 보니 시를 통해 사계절을 모두 겪은 기분까지 들었다.


소낙비는 오지요/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이 바쁜 때 웬 설사> _김용택

한참 계절을 느끼며 시심에 젖어 있을 때 예기치 않게 이런 시를 만나면 피식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바작(발채의 전라도 방언)도 알고, 저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인물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 말을 베낀 시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당시의 상황이 더 사실적이고 급박(?)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너라고 불리고//너는 나로부터 당신으로 불리지만//그대는 같이 불러도 다르면서 또 같다.//이것을 가리키면 이것이 되어 버리고//저것을 가리키면 저것이 되고 마는//문장의 광장 안에서 우뚝 선 깃발인 너. <품사 다시 읽기 - 대명사> _문무학

“‘품사’를 사전적으로 풀면 ‘낱말을 기능, 형태, 의미에 따라 나눈 갈래’라는 의미를 갖는데, 그래서 품사를 낱말 사회의 씨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라며 9품사에 관한 시를 읽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시의 소재는 무궁하구나, 그리고 품사에 인격을 부여할 때 새로운 대상이 되어 시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품사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역할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이 세상/온 우주 모든 것이/한 사람의/‘내’것은 없다. <밭 한 뙈기> _권정생

시를 쓰든, 인생을 살아갈 때든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세상을 좀 더 분별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라고 해서 약간의 긴장과 지루함을 가지고 읽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시를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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