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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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Michael (1968)

 

 

그녀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한나 그린바움 고넨이본 아줄라이. 한나 그린바움이라는 이름이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평범한 일상에서의 진짜 이름이라면, 이본 아줄라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다. 그녀의 일상은 기묘한 이중생활의 연속이다. 내성적이면서 유머 센스가 없는 미카엘 고넨과의 결혼 생활에 지루함을 느낀다. 지루하고 따분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거의 매일 꿈을 꾼다. 한나는 ‘이본 아줄라이’가 되어 자유를 만끽한다. 그녀는 이런 답답한 일상에 견디기에는 완벽하게 모질지도, 그렇다고 아주 순진하지도 못하다. 그 혼란스러움에 그녀의 비극이 있다. 마음의 공허함을 풀기 위해 한나는 낭비벽을 부려보고, 자신이 ‘이본 아줄라이’가 되는 환상을 좇아보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삶은 더욱 사면초가에 빠져든다.

 

아모스 오즈의 소설 《나의 미카엘》은 사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상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 조금씩 참을 수 없는 결핍에 시달린다. 한나는 남들과 다름없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점점 감정의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일탈을 부추길만한 매너리즘을 스스로 감지한다. 한나는 정서불안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쉴 새 없이 환상의 세계를 드나든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그 균열에서 비롯되는 허전함을 ‘환상’이라는 감정을 통해 메우려고 한다. 미카엘은 아내 한나 고넨이 아니라 이본 아줄라이를 만족하게 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그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산다는 이유로 한나는 남편의 모습에 낯설어한다. 미카엘은 한나가 원하는 강인한 남성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최대한 그녀와 가까이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역시나 그녀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다. 소설 후반부에 한나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미카엘에게 떠넘김으로써 체념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회상하는 한나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그저 우리네 살아가는 쓸쓸한 인생 풍경을 사심 없이 보여준다.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한나는 ‘발목’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청년 미카엘에 호감을 느끼면서 사랑이 성립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사랑은 붕괴한다. 생애 처음으로 타인과의 내밀한 친밀감을 경험한 사람은, 이 행복한 시간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오랫동안 가지 못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한나는 미카엘과의 관계의 거리를 조정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투정부린다. 현실에 도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임무를 미카엘에 떠넘기는 한나의 무책임한 태도에 몇몇 독자는 짜증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쓸쓸하게 무너져가는 한나가 측은해보이기도 한다. 한나가 미카엘을 처음 만나 결혼을 결정할 때 당시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한창 청춘의 자유를 만끽해야 할 나이다. 미카엘의 청혼을 성급하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한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했던 히브리 문학 공부를 포기한다. 결국 한나는 자신만의 인생 목표를 정하지 못했고,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 한나 그린바움이 ‘한나 고넨’이 되는 순간, 청춘의 문은 너무나 허무하게 닫히고 만다. 어쩌면 한나는 청춘에 대한 동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일찍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마음껏 여행할 수 있었다. 청춘의 거침없는 열정이 불쑥 그녀를 덮쳤다. 열정은 그녀의 머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을 뿐, 그녀의 삶을 새롭게 전환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한나는 틀에 박힌 일상을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말해 봐요, 미카엘」 나는 혐오감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나의 미카엘》 중에서, 265쪽)

 

한나가 독자에게 묻는다.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삶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미카엘은 한나의 질문이 무의미하며 사람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서글프지만, 미카엘의 대답은 진실이다. 우리는 한번쯤 원대한 꿈 하나를 설정하여 그걸 바라보면서 살기를 원한다. 어떤 가수의 노랫말처럼 젊은이는 타오르는 꿈을 안으면서 꿈을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젊음을 불태울 수 있어도 현실의 장벽을 감당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을 먹기는커녕 앞으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진부한’ 교훈에 공감하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바쁘다. 나는 한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홍영철 시인의 시로 대신하겠다.

 

 

눈을 떠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먹어야 한다.
입어야 한다.
닦아야 한다.
나가야 한다.
일해야 한다.
나와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미워해야 한다.
마셔야 한다.
싸야 한다.
잠들어야 한다.
아아,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홍영철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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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짝 2015-10-0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처음 아모스 오즈를 알게 해 준 책인데 제목의 달콤함과 달리 갈라져버린 이들에 맘이 툭 떨어져 버렸어요! 읽은지 10년도 넘어서 내용이 남아있지 않네요^^

cyrus 2015-10-12 17:50   좋아요 0 | URL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이 워낙 독특해서 며칠 전에 읽어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ㅎㅎㅎ

안녕반짝 2015-10-1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보단 계속 텔아비브란 도시 이름만 남나 있어요! 어느날 문득 텔아비브가 떠오르기에 찾아보고는 아모스 오즈 때문이었구나 그랬던 일도 있어요^^

cyrus 2015-10-13 15:57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를 읽었는데, 기대한 것과 달라서 실망했습니다.

간서치 2015-10-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왜 사는지 네 아이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고 싶다.. 는 생각에 답답하거든요..

cyrus 2015-10-13 15:56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읽기 시작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결혼하고 난 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부로서 공감되는 장면을 나옵니다.

안녕반짝 2015-10-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책은 팬심으로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여자를 안다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cyrus 2015-10-13 20:27   좋아요 0 | URL
발표 연도순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첫사랑의 이름>, <블랙박스>, <여자를 안다는 것> 순으로요. 제목으로만 보면 <여자를 안다는 것>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안녕반짝 2015-10-1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박스>도 특이한 소설이었어요. <여자를 안다는 것>은 내용이 기억이 안나요 근데 좋았어요 밝은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좋았어요^^

안녕반짝 2015-10-1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아야기하니 신간이 나왔네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2권짜리네요~ 이렇게 긴 책은 없었는데 기대돼요^^

cyrus 2015-10-14 21:00   좋아요 0 | URL
안녕반짝님의 서평이 기대됩니다. 천천히 읽고 난 뒤에 서평 올려주세요. 오즈의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군요. 아흑...

에이바 2015-10-1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아모스 오즈 소설도 읽어야겠어요. ㅎㅎ

cyrus 2015-10-14 21:01   좋아요 0 | URL
청소년 독자를 위해 쓴 <첫사랑의 이름>부터 읽으셔도 좋고요, 초기작인 <나의 미카엘>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에이바님의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