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발표된다. 매해 10월 목요일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관례가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설 중에 오른쪽 귀가 간지러우면 칭찬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매번 노벨상 수상 유력 작가로 언급되는 몇몇 사람들은 오른쪽 귀가 자주 간지러울 것이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노벨상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평소에 안 하던 고은 시인의 문학을 줄기차게 칭찬하면서 자택에 조용히 기거하는 그를 찾는다. 이상하게 국내 언론사들만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바라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내 반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가인 만큼 하루키의 수상 소식을 바라는 국내 독자가 꽤 있다. 책, 특히 문학에 관심 많은 독자는 자신이 좋아한 작가가 노벨상을 받길 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특정 작가를 향한 독자들의 팬심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네이버캐스트에서 올려진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글에 남긴 어느 분의 댓글을 보라. 밀란 쿤데라 팬이 아니더라도 이 댓글 한 줄을 보는 순간, 독자의 절실한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아쉽게도 독자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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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특정 작가가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할 이유까지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끔 이런 댓글들을 보면 은근히 재미있고, 나름 유익한 내용을 건질 때가 많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작가들을 알게 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더라도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나 같은 사람처럼) 미국, 유럽 문학에 편중된 독서를 하면 아시아, 제3세계 국가, 기타 대륙 문학의 현 수준을 감지하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를 알려면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참고해도 좋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조중동을 포함한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관련 기사 대부분이 외국 도박사이트가 공개한 배당률을 참고하고 있다. 그래서 후보군에 형성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고은, 밀란 쿤데라, 하루키, 아도니스(시리아 출신의 시인) 같은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들이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자주 거론되는 사실을 안다. 언론과 도박사들은 노벨상 발표일이 다가오면 의례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들을 언급하는데, 그들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갈 때가 많다.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떠올려 보시라. 도박사이트 배당률 순위에서조차 나오지 않은 파트릭 모다이노가 상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올해도 전 세계 독자, 언론의 예상을 확 뒤엎는 수상 소식이 나올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다름없는 도박사들의 뻔한 예상에 흥미가 떨어진다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을 참고해도 좋다. 박경리 문학상은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토지문화재단이 제정한 문학상이다. 박경리 문학 정신에 부합되고, 세계문학으로서도 높은 문학성과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내외 작가에게 주어진다. (제1회 시상은 국내 작가로 한정되었다가 제2회부터 ‘한국의 세계문학상’을 표방하기 시작하면서 국외 작가들도 후보자로 추천받게 되었다) 노벨위원회는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지만, 박경리 문학상 위원회는 두 달 동안 비공개 심사를 진행하여 5명의 수상 후보를 선정하여 공개한다. 시상식은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1억5천만 원이다. 2011년에 박경리 문학상 시상식이 처음으로 열렸으면 제1회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다. 최인훈은 1992년에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거론된 적이 있다. 제1회부터 올해 선정된 제5회까지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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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표기는 알라딘 검색 표기를 따랐다. 작가명을 알라딘에 그대로 검색하면, 국내 번역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적은 작가가 태어난 곳으로 소개했다.
주1) 이때 당시 최인훈을 포함한 5명의 후보 작가가 공개되었는데 며칠간 열심히 검색해도 이들을 소개한 뉴스를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2회 시상 때부터 언론은 후보 작가들을 릴레이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2)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출신 작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사람(‘로자’ 이현우 님은 당연히 잘 아실 테고)이라면 한번쯤은 이 작가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2012년에 박경리 문학상 작가 후보로 소개되었을 때 당시 마카닌의 나이는 75세. 작가에 대한 정확한 출생연도를 찾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생략했다. 관련 기사 링크)
재미있게도 토머스 핀천을 제외한 ‘미국 현대 문학 4대 작가’가 제3회 수상 작가 최종 후보에 함께 올랐다.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는 두 번이나 최종 후보로 올랐음에도 아쉽게 수상을 놓쳤다. 그래도 이들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은 쟁쟁한 작가들이다. 수상작가 그리고 최종 후보 작가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노벨문학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발표되기 때문에 ‘미리 보는 노벨문학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박경리 문학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유일한 세계문학상이 있는지 모르면서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김칫국 마시는 격이다.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인 아모스 오즈가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일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누리게 될 작가가 누구인지 정말 기대된다. 나는 특정 작가의 전작 독서를 하지 않아서 어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되는지 딱히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밀란 쿤데라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독자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여기서 언급된 작가를 제외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라.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기에 ‘OOO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OOO 작가’가 수상자로 결정된다면 당신의 댓글은 ‘성지글’이 될 것이다.
※ 성지글 : 크게 주목을 받았던 소식이 공론화되기 전에 미리 그 사실을 예고하거나 예측했던 온라인상의 게시글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