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다양한 해석과 해설을 할 수 있는 많은 알레고리들을 구석구석에 숨기고 있다. 교회, 악마, 이단, 기적.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중세 유럽을 해석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소설 속 여러 공간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소는 수도원의 장서각이다. 이곳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관해 논한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이 숨겨져 있고, 필사본의 실체를 궁금하게 여긴 수도사들이 연속적으로 살해당한다.

 

어느 체제이든 그 체제가 꺼리는 지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힘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의 유포를 금지하기도 한다. 중세의 대변자인 호르헤 수도사에게 웃음은 악마의 유혹이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동이다. 결국, 사탄의 마약인 웃음을 인간이 찬미한다는 것은 곧 기독교를 능멸하는 행위다. 그래서 호르헤 수도사는 《시학》 제2권을 금서로 규정한다. 그러나 금기가 영원한 법은 없다. 언젠가는 해제되고, 아니 세상을 지배하는 견고한 체제가 갈라지는 틈 사이에 성경 외의 지식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델모는 이단으로 규정되는 성경 외의 지식에 일찌감치 눈 뜬 인물이다. 그는 양피지 사본을 제작하는 채식가(彩飾家)였는데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는 아델모의 죽음으로 미완성이 된 아델모의 성경 「시편」 채식사본을 확인한다. 그런데 윌리엄과 아드소는 아델모의 채식사본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사본에는 정체불명의 괴물 그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뱀 모가지의 네 발 짐승, 사지가 없는 인간, 말 대가리 인간,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괴물. 성스러운 기도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물 그림을 아드소는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는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은 상상력과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괴물은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형상이다. 아델모의 채식사본은 호르헤 수사가 싫어할 만한 ‘공허한 그림’이다.

 

 

 

 

 

 

 

 

 

 

 

 

 

 

 

 

 

호르헤 같은 중세 사람들이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부정적으로 봤다면, 동양은 상상의 동식물을 해학적이고 비유적으로 기록하는 문화를 오래전부터 선호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문헌이 바로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가장 오래된 동양 신화집으로 보는 편이지만, 사실은 분류하기가 어려운 문헌이다. 머리는 동물이고 몸통은 사람이니 하는 괴물들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판타지 문학의 특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지리서와 의학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세계를 방향별로 나누어 그 해당 구역별로 제목처럼 산과 바다, 나아가 신비한 효능이 있는 식물 및 광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해경》에 우스꽝스러운 내용은 많아도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하늘·땅·물 세 개의 주요 공간과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 존재 즉 초자연적 존재(신, 괴물)와 인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뤄져 있다.

 

상상력은 이미지로 살아나고 이미지는 다시 상상력을 환기한다. 《산해경》은 텍스트와 함께 있는 강렬한 이미지들로 인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많은 지식인이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박지원과 이덕무는 《산해경》을 흉내 내는 글을 남겼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유학이 지배하는 조선 사회에서 상상력의 보고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산해경》이 《초사》라는 역사서에 환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실을 다룬 문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종교 및 학문 헤게모니의 사슬에 묶였던 금지된 지식은 상상력의 날개를 다는 순간 급작스레 해방된다. 성경 이외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던 중세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다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어서 하나의 답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분명한 것은 12, 13세기 무렵부터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델모와 같은 채식사들은 금지된 지식을 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중세에 드리워진 기독교의 장막이 걷어지게 되자 세계를 이해하려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대항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인식의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산해경》처럼 상상력과 자연 세계를 결합한 서적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존 맨더빌의 여행기다. 《맨더빌 여행기》(오롯, 2014)는 동방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등장으로 인해 콜럼버스와 같은 대항해 시대의 탐험가들이 신비의 세계로 알려진 동방을 찾으러 모험을 감행했다.

 

《맨더빌 여행기》와 《산해경》은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상상력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백과사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괴물이 나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두 권의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서로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산해경》 해외서경(海外西經)편에 여자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국은 이름 그대로 온통 여자만 사는 나라다. 여자국에는 들여다보기만 하면 임신이 된다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고 한다. 또 여자가 목욕하고 나오면 저절로 임신이 되는 못도 있다. 만약에 여자국에 남자가 태어난다면 세 살이 될 때 죽여 버린다. 《맨더빌 여행기》도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조니아는 여성 전사들이 살고 있으며 남자의 지배권을 부정한다. 아마조니아 사람들은 가끔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남자와 짧은 기간 동안 사귀기도 하는데 임신해서 남자아이를 낳으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부친에게 보내거나 죽였다. 신분이 낮은 여자는 오른쪽 유방을 잘라 궁수가 되고, 신분이 높은 여자는 반대로 왼쪽 유방을 잘라 방패를 드는 전사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

 

 

 

 

 

《산해경》에 언급되는 목이 없는 거인 형천은 중국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형천이라는 이름에 ‘머리를 베어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선조 황제(黃帝)와 맞짱 뜨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그 벌로 머리가 잘렸다. 잘려나간 머리는 상양(常羊)산에 묻혔는데 형천은 포기하지 않고 젖가슴을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고 있다고 전해진다. 머리는 없고 몸통에 눈, 코, 입이 달린 형체는 《맨더빌 여행기》에도 나온다. 《산해경》과 《맨더빌 여행기》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의 유사함을 그냥 우연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맨더빌이라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유럽인은 1322년부터 1356년까지 바다 건너 세계를 여행하고 난 뒤에 이 여행기를 썼다고 알려졌다. 그가 정말로 여행을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여행하는 도중에 동양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접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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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크래커 2015-05-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하의 박학다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재미있습니다.

cyrus 2015-05-06 19:14   좋아요 0 | URL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우연히 발견하고 글로 정리했을 뿐입니다. 늘 모자람이 많아서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피북 2015-05-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의 뜻대루 대단하세요 어쩜 소개하시는 책들을 관통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막힘없이 술술하실 수 있으신지!
읽는동안 오~~아~~하는 감탄사만이 ㅋㅡㅋ,, 특히 이덕무, 박지원 이야기에선 띠용~~ >~<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낼수 있는 글 솜씨에 빠져 재밌게 읽었습니다

옛날에 `여인국`을 소재로 했던 단막극도 있었고 제주도 쪽을 그런 나라로 인식했던 글도 본 적있는거 같은데 이런 문헌에서 시작된거군요 참 재밌어요^~^

cyrus 2015-05-06 19:17   좋아요 0 | URL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라서 `여인국`에 대한 문헌들을 모아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국 하니 갑자기 엉덩국`이 생각나네요..ㅎㅎ

cyrus 2015-05-06 19:20   좋아요 0 | URL
곰발님도 엉덩국의 만화를 아시는군요. ㅎㅎㅎ

돌궐 2015-05-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cyrus님 덕분에 이번에 장수철역 산해경을 샀는데요. 정재서 역 산해경보다 삽화가 많아서 좋습니다. 저도 형천 이야기 좋아해요. 형천 그림을 비교해 봤는데 두 번역서에 사용된 그림이 다르더라구요.

cyrus 2015-05-06 19:23   좋아요 0 | URL
저는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로 복간된 장수철 역 <산해경>을 읽었어요. 산해경 삽화가 여러 가지 판본이 많은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누락된 것도 있어서 원본 그대로 보는 게 쉽지 않을거예요.

AgalmA 2015-05-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해경 그림들이 책마다 수록된 게 다른가봐요. 제 산해경도 예전 cyrus님 소개한 산해경과 좀 다르더라고요. 출판사마다 수록과 누락이 있나 싶어 그림이 전부 원형으로 다 있는 걸 갖고 싶고 그러네요

cyrus 2015-05-06 19:29   좋아요 0 | URL
산해경 삽화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삽화를 비교해보면 묘사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아갈마님 말씀처럼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그림은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측해요.

transient-guest 2015-05-06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reference로 나오는 것을 봤는데, 책이 있네요. 나중에 구할 책이 또 늘어났네요.ㅎㅎ

cyrus 2015-05-06 19:31   좋아요 0 | URL
guest님이 구하고 싶은 책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 글에 소개된 <산해경>은 절판되었어요. 그래도 정재서 교수 번역본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따뜻해야 할 5월의 날씨답지 않게 어제는 보슬비가 온종일 지루하게 내렸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폭풍 주먹 제대로 날리지 않은 채 지루하게 경기를 끝냈다. 허무함만 남긴 먹튀 대결에 된 이 경기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사 가는 친구가 이삿짐 옮기는 일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이 경기를 TV로 끝까지 봤을 것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링 위에서 지루한 주먹 교환만 하고 있을 때 나는 친구의 짐을 새집에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고등학생 때부터 처음으로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10년 지기 친구의 부탁이라서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친구는 며칠 전에 여자 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제부터 그들은 부부가 된 것이다.

 

 

 

 

 

 

 

 

 

 

 

 

 

 

 

 

 

친구도 나처럼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즐겨 읽는 책은 다르다. 친구는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는다. 가지고 있는 판타지소설의 양은 많지 않지만, 시리즈 전권을 모은 것도 꽤 있다. 반면, 제수는 만화책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만화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고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00% 공감할 것이다. 이사를 할 때 많은 양의 책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집의 공간이 좁더라도 자신이 모은 책을 끝까지 보관하고 싶은 것이 애서가의 마음이다. 《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 2014)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이사야말로 책을 처분할 기회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팔고 남은 돈으로 새 책을 산다. 이처럼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장서량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책장은 좁디좁기 때문이다. 특히 각각 다른 공간에서 생활했던 남녀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질 때 책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앤 패디먼의《서재 결혼 시키기》(지호, 2002)는 ‘책의 결혼’이 극적으로 성사되기까지 겪게 되는 갈등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앤과 남편 조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결혼을 하면서 자신이 혼자 살 때 가지고 있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장서를 보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앤은 자신이 정한 분류에 맞춰서 책을 꽂는 ‘세분파’라면, 조지는 분류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이나 책을 꽂는 ‘병합파’다. 두 사람은 분류 방식을 통일하기 위해 합의를 봤고, 그 과정에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하지만, 조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발표 연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앤의 장서 보관 방식을 반대한다. 

 

어제 친구와 제수는 새 보금자리에서 ‘책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 거행에 앞서 나는 주례사를 자처하여 두 사람의 서재를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원하는 장서 보관 방식을 알아봤다. 친구와 제수가 원만하게 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친구는 조지처럼 병합파다. 그가 가진 책들은 전부 다 판타지소설이라서 주제를 분류하면서까지 책을 꽂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제수의 생각은 달랐다. 세심파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만화책이 눈에 띌 수 있도록 꽂히기를 원했다. 보기 좋게 깔끔히 정리된 서재를 선호했다. 두 사람 다 고집이 센 편이라서 이들을 만족하게 해줄 타협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최대한 형수의 취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책을 정리하기로 했고, 완결된 판타지소설과 만화책은 책장 맨 위 칸에 꽂을 것을 제안했다. 형수는 황미나의 《레드문》구판 시리즈 전권(2000년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구판의 권수는 총 18권이며 애장판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졌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만화에 문외한이지만, 황미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2004년에 나온 애장판마저 절판인 데다가 이미 오래전에 판이 끊긴 구판 전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으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레드문》 시리즈를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띌 수 있는 칸에 꽂고 싶었다. 책장 맨 위 칸의 높이는 보통 어른 키만 하므로 책장을 볼 때 시선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 옆에는 친구가 아끼는 판타지소설 시리즈를 꽂았다. 신기하게도 친구와 제수의 애장도서가 처음으로 만나서 합방한 맨 위 칸에 남은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책들이 딱 맞게 꽂혔다.

 

제수는 《레드문》 18권을 첫 번째 칸에 보관하는 나의 제안에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이 책에 두 사람 간의 애정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추억이 숨어 있었다. 친구와 제수가 한창 뜨겁게 연애를 하고 있던 시절에 제수는 《레드문》을 소장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녀의 소원을 알고 있었던 친구는 수소문 끝에 구하기 힘든 그 만화책을, 그것도 전권을 사는 데 성공했다. 제수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 친구의 모습에 무척 감동했고, 지금도 이 《레드문》을 가장 아끼는 만화책으로 여기고 있다.

 

애서가에게 책은 ‘사랑’의 대상이다. 애인 다루듯 소중하게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나 독서 행위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러나 책에 대한 취향만큼은 모든 애서가가 다 똑같을 순 없다. 책을 다루는 습관이 서로 다르면 갈등이 드러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독서 취향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경의 표시를 보이면서 무시하는 반응은 애서가가 경계해야 할 자세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을 포용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책을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신이 애서가라면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나는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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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대필작가가 4명이란 소리도 있던데, 작품 진위여부까지 따지는 부부가 있다면 서재이혼소송까지 갈지도요ㅎㅎ
그러니까 이삿짐 옮기는 것보다 책정리 전문가로? 이거 괜찮은 직업일수도ㅎ

cyrus 2015-05-05 15:33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서 그런지 책정리는 귀찮게 생각하지 않아요.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15-05-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독서 취향의 존중... 깊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독서를 하는 그 날이 먼저 오길 기대해 봅니다.

cyrus 2015-05-05 15:39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요즘 책이 많은 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에이바 2015-05-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디먼 글에서 책을 다룰 때 궁정파 연인이랑 육체파 연인으로 나누는 것도 감명 깊었어요. 전 궁정파인데 싸이러스님은 어떤 연인이신가요 ㅎㅎ

cyrus 2015-05-05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궁정파입니다. 책에 조금이라도 접히는 걸 싫어합니다. ^^;;

게으른독서가 2015-05-04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결혼식이라, 책을 다루는 습관이 달라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정말 그러네요. 합의점을 찾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4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란 말을 들을지도... ㅎ

cyrus 2015-05-05 15:45   좋아요 0 | URL
<서재 결혼 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도 남편과 장서 보관 방식에 대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부부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고백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혼할 때 앤의 경험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수이 2015-05-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 보지 못했는데 어쩐지 승리한 기분이라니 ㅋㅋ 음 좋은 일 했는데_ 결혼해서 책 처음 뒤섞고 정리할 때 생각나서 잠깐 짜릿했어. 신혼 기분을 만끽해주는 이 페이퍼 아주 굿이오!

cyrus 2015-05-05 15:48   좋아요 0 | URL
누님은 형님이랑 책 보관 때문에 싸운 적 없어요? 형님도 책 엄청 좋아하잖아요. 지민이도 두 분처럼 책 좋아하면 이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겠어요. 앞으로 책 정리하기가 힘들어질 거예요. ㅎㅎㅎ

수이 2015-05-05 23:42   좋아요 0 | URL
지민이도 책 욕심은 많아_ 아직까지는 괜찮은데_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 다만 난 다시 읽을 책이 아니다 싶으면 선물도 하고 중고서점에도 잘 갖다 파는데 비해 남편은 일단 자기 품에 들어온 책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조차 싫어하는 소장파?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도 내 책은 많이 처분했지_ 네 매형이 알면 난리법석 피울 거 알아서 조용히 팔았는데 눈치챈듯_ 책이 왜 이렇게 조금이야? 하더라고 ㅋ

transient-guest 2015-05-05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이웨더-파퀴아오 경기를 재미있게 봤어요. 다만 메이웨더가 너무 도망다니기 바쁘고, 둘 다 뚜렷산 우세가 없었기 때문에 UFC였다면 아마 무승부로 처리되었을 것 같습니다. 6년전, 파퀴아오가 전성기 때 싸웠다면 메이웨더는 KO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분 부부의 이야기는 사람과 서재가 모두 각각의 상대와 결혼하는 듯해서 재미있습니다.ㅎㅎ 그걸 도운 님도 대단한 듯..

붉은돼지 2015-05-0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결혼식의 주례(?)를 보시다니 정말 멋지고 보람찬 일입니다 ㅋㅋㅋ
레드문도 빨리 재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5-05-05 15:53   좋아요 0 | URL
게스트님은 복싱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사실 저는 세기의 대결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무척 궁금해서 경기를 보려고 했던 복싱 문외한입니다. ^^;;

저는 그 날 이삿짐 정리를 얼른 끝내고 집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두 사람도 이 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5-0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문 저렇게 귀한 책인줄 모르고 20년지기 친구한테 선물로 줘버렸죠~ 오래되서 누렇게 변했는데도 주라고 계속 졸라대서 ㅎㅎ

cyrus 2015-05-05 15:5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후회 많이 했겠어요. 귀한 책이라서 중고가도 높아졌을 겁니다.

2015-05-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5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5-06-2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던 두 권입니다. cyrus님의 글을 통해 보니 더 반갑네요.

cyrus 2015-06-20 22:54   좋아요 0 | URL
두 권의 책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봤을 것입니다. ^^
 

 

 

 

 

 

 

 

 

 

 

 

 

 

 

 

 

제임스 조이스는 극심한 녹내장에 시달렸는데 평생 열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한 왼쪽 눈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안대를 착용한 채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실명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속에서도 조이스는 펜을 손에 놓지 않았고 《피네간의 경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오감 중의 하나가 발달하지 않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다른 감각이 일반 사람의 감각보다 훨씬 뛰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시각장애인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청각과 촉각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물체를 시각화할 수 없어도 감촉만으로 물체 모양이나 사람을 인지할 수 있다. 조이스는 청각이 뛰어났다. 그의 소설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이스는 청각으로 세상을 느끼고자 했고, 청각에 의지하여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율리시스》에는 아일랜드 민요, 오페라, 유행가, 성가(聖歌) 등 노랫말을 인용한 대사가 많다. 이러한 조이스의 서술 방법은 이야기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텍스트를 읽는 것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어떤 노랫말은 소설에서 진행되는 특정 상황이나 주인공의 내적 심리를 암시하고 있지만, 그 외 나머지는 이야기 진행과 상관없다. 그러므로 독자는 노랫말이 삽입된 텍스트에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

 

조이스는 사물, 인물의 움직임이나 모습을 의성어와 의태어로 묘사하는 표현도 즐겨 사용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들어간 텍스트를 읽노라면 사실감과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이스는 자신의 소설은 단순히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말한다. 조이스가 시키는 대로 하면 《율리시스》는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귀로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된다. 청각이 발달한 조이스다운 독특한 발상이다. 어쩌면 조이스는 《율리시스》처럼 귀로 읽는 소설 혹은 귀로 듣는 소설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을 했을 것이다. 이는 곧 오디오북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율리시스》는 분량이 많은데다가 방대한 지식이 함축되었고, 독자의 기를 빠지게 만드는 ‘의식의 기법’ 방식으로 인해 읽으면 지루하고 어렵다는 평이 많다. 그렇지만 끝까지 참고 읽다보면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조이스가 당부했던 대로 아일랜드 어가 그대로 실려 있는 원문을 낭독한다면 조이스가 구사한 언어유희가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 원문은 아니지만, 원문에 있는 의성어를 우리말로 옮겨진 조이스의 문장을 인용해서 소개해본다. 

 

 

코크 호반으로부터 긴 올가미를 이루며 물이 넘쳐흘렀다. 모래의 푸른 황금 빛 개펄을 덮으며, 솟으면서, 흐르는 것이다. 나의 물푸레나무 지팡이도 떠내려가겠지. 나는 기다리리라. 아니야. 그들은 계속 흘러 갈 거야. 통과하며, 낮은 바위에 부딪치며,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이다. 이 일은 재빨리 해치워야겠다는 듯이. 귀를 기울어봐요: 네 마디 파도의 언어를: 쉽슈, 허스, 르세이스, 우우즈. 바다뱀들, 뒷발을 디딘 말(馬). 바위 사이의 파도의 격렬한 숨결. 바위 컵 속에 물이 쏴 쏟아진다: 풍덩 인다. 쏟아진다. 찰싹인다: 통 속에서 출렁인 채. 그리하여, 지쳐, 그의 언어가 멈춘다. 물은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넓게 흐르며, 웅덩이 거품일게 하며, 꽃 펼치면서. (《율리시스》 제3장 프로테우스 중에서, 김종건 역, 122쪽)

 

 

코크 호로부터 긴 올가미 모양을 이루는 물줄기가 황록색 모래늪 위로 굽이치며 힘차게 흘러갔다. 나의 물푸레나무 지팡이가 떠내려갈 것이다. 나는 기다리리라. 아냐, 물은 지나갈 것이다. 낮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소용돌이치며. 어서 일을 끝내는 편이 좋겠다는 듯이. 저 소리를 들어 봐. 네 단어로 된 물결의 언어. 시이슈우-, 스스스스-, 크르르르-, 우우우 - 바다뱀, 뒷발로 선 말들, 바위 틈에서 나는 격렬한 물의 숨결. 바위의 잔에 물이 넘친다. 철벅, 철벅, 철벅 하고. 술통 안에서 술이 출렁이듯이. 그러고 나서 물은 피곤해져 지껄이기를 그만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잔물결을 이루며 넓게 흐르고 웅덩이처럼 펼쳐진 꽃 같은 거품을 부글거린다. (김성숙 역, 93쪽)

 

 

 

《율리시스》 3장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는 샌디마운트 해변을 혼자 거닐면서 자유로운 명상에 빠진다. ‘율리시스’는 그리스어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영어식 표기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모델로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19년 동안의 방랑 끝에 귀향하는데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하루 동안 더블린 시내를 걷는 것으로 압축했다. 프로테우스는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변신에 능한 신이다. 여러 가지 짐승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프로테우스처럼 스티븐의 명상은 쉴 틈 없이 다양한 주제와 관념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가 이야기 종반부에 스티븐은 파도 소리를 듣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조이스는 스티븐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를 단, 네 마디의 언어로 묘사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은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속에 나오는 거친 파도 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청각을 중시하는 성격답게 조이스는 독자에게 파도 소리에 귀 기울어보라고 말한다. 조이스가 묘사한 파도 소리는 큰 바위를 부술 듯한 거친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격렬한 숨결’이 느껴지지만, 파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물은 바위 웅덩이 안에 고여 물거품만 잔뜩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코크 호숫가의 ‘코크(cock)’를 주목해보자. ‘cock’가 얼핏 지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남성 성기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cock’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면, 바위 사이에 흐르는 파도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파도 소리라고 이해한 독자가 있다면 조이스의 장난을 알고 나면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당신이 문장으로 들은 파도 소리는 사실 소변이 볼 때 나오는 소리였으니까. 바위 웅덩이에 거품을 일면서 흐르는 물이 스티븐의 소변이다. 《율리시스》는 내용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외설 판정을 받아 출판이 지연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율리시스》 읽기의 또 다른 재미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조이스의 성적 농담이다. 레오폴드 블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콩팥을 사러 밖으로 나가다가 하숙집 처녀의 엉덩이를 보고 성적 충동을 느끼는 장면(《율리시스》 4장 칼립소)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한 대사도 있고, 별것 아닌 문장 속에 성적 의미를 은밀하게 숨겨 놓기도 했다. 내용이 어렵고, 엄청 지루해도 《율리시스》 속에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이래서 《율리시스》 를 안 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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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5-0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딱 그런 책이군요.

cyrus 2015-05-03 21:04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를 완독했다면 다이제스터님이 남기신 댓글 내용처럼 한줄평으로 썼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5-05-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cyrus님 덕분에 공부 많이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5-05-03 21:04   좋아요 0 | URL
맨땅에 헤딩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

수이 2015-05-0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프로젝트는 뭐야?

cyrus 2015-05-03 21:10   좋아요 0 | URL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에 나오는 작품들을 다 읽어보기 위한 제 개인적인 독서 계획이에요. ^^

blanca 2015-05-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무려 율리시스를 완독하신 겁니까. 소리 위주의 표현 기법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제임스 조이스의 눈 관련 문제가 간혹 나오더라고요. 의외로 작가들 중에 시력을 잃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cyrus 2015-05-03 21:14   좋아요 0 | URL
아니요. 7장까지 읽었어요. ㅎㅎㅎ 《율리시스》를 그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읽어보면 기존에 나왔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 나와요. 그래서 줄거리를 알면서도 다음 장이 궁금해져요. 조이스의 글쓰기에 감탄합니다. ^^

stella.K 2015-05-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 게 숨겨져 있었구나. 이걸 발견하다닛! 대단하다 시루스.
너의 글을 읽으니까 나도 제임스 조이스에 도전해 볼까?
그런 무모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ㅋ

청각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종편에서 방영하고 있는
<실종느와르 M>이란 드라마가 있는데 어제 재방송을 보니
박희순이 소리 식별하는 장면이 나오드라.
저건 남자가 소변 보는 소리라고 그러더라. 낙차가 (여자에 비해) 크다나?
그리고 이 소린 여자가 브래지어 내리는 소리래.ㅋㅋㅋ
어떻게 소리만 듣고 그런 상상이 가능한지 드라마니까 저렇게 썼겠지
하다가도 그렇게 쓸 생각을 한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 싶기도 하더군.
혹시 안 봤으면 한 번 봐. 나름 꽤 잘 만든 드라마 같드라구.^^

cyrus 2015-05-03 21:21   좋아요 0 | URL
조이스는 《율리시스》에 수수께끼를 감추어서 앞으로 대학교수들이 이 소설을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율리시스》를 조이스가 만든 방대한 문장 암호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율리시스》가 어려워요. ㅎㅎㅎ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소리를 식별하려면 동물적 청각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드라마 한 번 봐야겠어요. ^^
 

 

 

 

 

 

 

 

 

제임스 조이스의 후원자를 자처했던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조이스의 소설이 난해하다고 혹평한 비평가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조이스는 작가다, 이 장님들아. 조이스는 작가라고!” 파운드가 조이스의 소설을 읽고 나서 당최 무슨 말인지 1도 모르겠다는 독자의 불평을 들었다면 혀를 차면서 그 독자를 한심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조이스가 세계적으로 훌륭한 작가임은 분명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의 시선을 무시하고 문학적 실험을 감행했다. 의식의 흐름 묘사와 신비로움이 더해지는 다양한 문체 속에는 수많은 수수께끼 혹은 의미심장한 실험적 의도가 감춰져 있다. 배경 지식 없이는 조이스의 문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무턱대고 읽었다가는 조이스가 완벽하게 설치한 이야기의 함정 속에 허우적거리기 쉽다. 조이스의 소설은 솔직히 어렵다. 여러 번 읽어도 불명확한 문장이 자꾸 눈에 걸린다.

 

 

 

 

 

 

 

 

 

 

 

 

 

 

 

 

 

 

조이스의 더블린 삼부작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는 더블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게임과 같다. 독자는 소설에 나오는 더블린 사람이 되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디덜러스가 된다면 독자는 넓은 예수회 학교 교정을 거닐면서 친구와 함께 예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왠지 모범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주인공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독자는 스티븐처럼 이를 참고 넘어서야 한다. 강경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아버지와 기독교 윤리를 강조하는 어머니의 잔소리 종합 세트를 듣게 되면 집에 오랫동안 머물기 싫어진다. 이러한 간접적 경험을 통해 독자는 어린 시절 조이스의 내적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외톨이 모범생을 그냥 가만히 놔두지 않는 친구들의 놀림감에 맞서야 한다. 학교도 스티븐을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3장에 지옥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교하는 신부의 목소리를 끝까지 참고 들어야 한다. 엄청나게 긴 장면이라서 비기독교인 독자에게는 무척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클리어 리드(Clear read)했다면 다음 스테이지 《율리시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조이스가 제작한 ‘더블린 삼부작’ 게임의 끝판왕이다.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스티븐, 레오폴드 블룸이 되어 더블린 시가지 전체를 둘러본다면 클리어 리드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달리 《율리시스》 속에는 언어의 고어, 폐어, 속어, 비어, 은어 등 무려 3만 개의 어휘가 뒤섞여 있고, 동서고금의 문학, 철학, 역사, 신학, 예술 등에서 축적된 지식이 모자이크처럼 교묘하면서도 치밀하게 얽혀 있다. 《율리시스》의 주석은 독자가 미궁 같은 소설에 헤매지 않게 하려고 역자가 친절히 건네주는 실타래다. 《율리시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타래 같은 주석이 너무 많은 게 흠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역자의 실타래를 잘 잡는다면 스티븐과 블룸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다.  

 

《율리시스》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독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어렵고도 분량이 만만치 않은 소설을 읽어서 무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율리시스》가 오늘날 현대의 고전으로서 떳떳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단순하게 ‘고전’이라는 이름을 믿고 이 책을 읽었다가는 실패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율리시스》를 죽기 전에 한 번 읽어볼 만한 고전이라고 생각해서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3장을 읽었다. 《율리시스》 1장부터 3장까지는 스티븐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다음 장부터 레오폴드 블룸이 등장한다. 앞으로 읽어야 할 장은 총 15장. 이제 고작 3장을 읽었을 뿐인데 후회가 밀려온다. ‘고전’이라고 해서 함부로 덤벼들면서 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 처음에는 김종건 선생의 번역본(생각의나무, 2011)으로 시작했다. 이 책을 직접 실물로 보게 된다면, ‘이런 책을 누가 읽겠냐?’고 생각하게 된다. 전체 쪽수가 1300쪽을 족히 넘는다. 책도 쓸데없이 크게 만들었다. 독자가 읽으라고 만든 건지 아니면 책 베개로 삼아서 독자의 수면을 유도하려고 만든 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조이스 작품에 평생 연구와 번역에 열정을 바친 선생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책의 크기에 경외감이 느껴진다. 책 뒤편에 등장인물 소개, 줄거리, 작품 해석 그리고 1933년 《율리시스》 해금 조치에 결정적 영향을 준 울지 판사의 판결문도 실려 있다. 아쉽게도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율리시스》는 서점에 구할 수 없다. 어문학사에서 나온 《제임스 조이스 전집》은 특별 한정판이라서 구입하고 싶어도 가격이 부담스럽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범우사 《율리시스》(1997)는 여전히 구할 수 있지만, 출판연도가 꽤 오래됐고 세 번째 개정 번역본인 생각의나무 《율리시스》와 비교하면 번역상 큰 차이가 있다. 김종건 선생은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아 개정판을 내놓았다. (첫 번째 번역본은 1968년 정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비록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조이스의 문장을 우리말로 꼼꼼하게 번역한 선생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말에 없는, 원문의 구두점(:)까지 그대로 살려서 번역했다. 

 

 

 

 

 

 

 

 

 

 

 

 

 

 

 

 

김성숙 선생이 번역한 《율리시스》(동서문화사, 2011)는 가독성이 좋다. 김종건 교수의 명성을 믿고 그의 번역본을 무조건 읽으라는 법은 없다. 책 소개에 의하면 김성숙 선생은 ‘율리시스 학회’ 창학에 참여했으며, 김종건 선생과 마찬가지로 《율리시스》 번역과 연구에 인생의 절반을 바쳤다고 한다. 나는 사소한 것마저 궁금하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 ‘율리시스 학회’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런데 김성숙 선생 프로필과 마찬가지로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김종건 선생은 한국 조이스학회 명예회장이다. 율리시스 학회와 한국 조이스학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율리시스》를 이렇게 읽는다. 물론 내 독서 방식이 옳다는 건 아니다. 각자 편한대로  《율리시스》를 읽으면 된다. 일단 김성숙 선생의 번역본으로 하루에 한 장씩 읽는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다음 장도 읽는다. 한 장을 다 읽었으면 김종건 선생의 번역본으로 주석만 따로 읽는다. 두 가지 번역본을 번갈아서 다 읽은 뒤에 참고서 격으로 《제임스 조이스 문학 읽기》(어문학사, 2015)의 상세한 해설도 읽는다. 해설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다시 김성숙 선생의 번역본을 훑어본다. 번거롭지만 이렇게 읽어야 반복적인 독서가 이루어진다. 여러 번 읽으면 어느 정도 텍스트 속에 숨겨진 조이스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고,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김종건 선생은 책의 머리말에서 지나치게 어려운 문장이나 추상적인 해석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상황도 복잡하게 진행되듯이 《율리시스》가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읽게 되면 진짜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조이스의 소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읽기 위한 소설’이 아니다. 조이스의 소설을 어렵게 생각하는 작가의 지인과 후원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조이스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 소리 내서 읽으라고 당부했다. 특히 아일랜드 악센트로 읽을 것을 권했다. 그러므로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제대로 읽으려고, 아니 속는 셈 치고 조이스의 당부대로 문장을 듣기 위해서는 원서도 챙겨두어야 한다. 그리고 《율리시스》를 이제 막 읽는 사람으로서 당부하건대 《율리시스》를 읽을 땐 혼자서 읽지 마시길. 정말 힘든 일이다. 《율리시스》를 읽기 시작한 나 또한 《율리시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장님이나 다름없다. 혼자 읽기보다는 원서, 해설서를 갖추고 조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율리시스》를 읽는 것이 편하다. 단, 《율리시스》 완독 목표가 뚜렷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한 두 명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율리시스》 독서에 좌절감을 느끼는 동료들을 도와줄 수 있다. 한 사람이 독서를 포기하면 다른 사람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인내심 많은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멱살을 잡아서라도 《율리시스》 완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아무리 《율리시스》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인내심이 부족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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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5-0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히 읽기가 두려운 책이군요 ㅠㅠ
하지만 고행은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의도적이고 자발적 고행은 더욱...
분명 득도하시는 부분 있으실걸로 짐작됩니다.
머리 식히시기 위해 요즘 베스트셀러도 읽고 서평 남겨 주세요.

cyrus 2015-05-02 13:03   좋아요 0 | URL
요즘 제가 신간보다는 예전에 사놓고 안 읽은 책들 위주로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신간도서정보는 북다이제스트님을 포함한 이웃님들의 서평이나 책 소개 글을 통해서 참고하고 있습니다. ^^

수이 2015-05-0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께가-.-;;;;;;

cyrus 2015-05-02 13:04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이 오면 책 베개로 사용할 수 있어요 ㅋㅋㅋ

fledgling 2015-05-01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 독서 스터디를 꾸려야할까봐요ㅋ 강신주는 프루스트와 같이 10번 넘게 읽었다더군요... 더블린 사람들이랑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고나서 슬슬 도전해봐야겠다는!

cyrus 2015-05-02 13:08   좋아요 0 | URL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조이스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과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종건 선생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원형인 미완성 작품 <영웅 스티븐>은 <젊은 예술가>를 먼저 읽고 난 뒤에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강신주의 프루스트 읽기는 정말 대단해요. 저는 1권만 10번 넘게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많아요. ㅎㅎㅎ

표맥(漂麥) 2015-05-0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요즘의 저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의미있는 독서행 이군요. 부럽습니다.^^

cyrus 2015-05-02 13:09   좋아요 0 | URL
정말 고행에 가까운 독서입니다. 줄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딱 한 번이라도 완독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

해피북 2015-05-0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독서편력이세요 같은 주제의 다양한 책을 읽으며 꼼꼼하게 비교와 이해과정을 거치시니 올리시는 페이퍼마다 깊이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거 같아요 화이팅하시구 꼭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하셔서 성과있으시길 바랄께욧 파이팅입니닷^~^

cyrus 2015-05-02 13: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율리시스>를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없다는 마음으로 완독해야겠습니다. ^^

붉은돼지 2015-05-0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즈`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정말 필생의 숙제입니다요^^

cyrus 2015-05-02 13:14   좋아요 0 | URL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생의 과제가 바로 <잃어버린 시간>과 <율리시스>일 것 같습니다. 하필 두 작품의 표현 방식이 읽으면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의식의 기법이네요. 또 분량도 많고요. 죽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하나 2015-05-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작가들이 율리시즈 언급 굉장히 많이 하더라구요. 판본을 뭘 골라야 하나 고민했는데 조언 감사합니다 ^^

cyrus 2015-05-02 13:15   좋아요 0 | URL
김종건 선생의 번역본은 워낙 유명해서 많은 독자분들이 찾긴 한데, 이미 단행본으로 나온 생각의나무 판본은 절판이라서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지금으로선 시중에 구해서 읽을 수 있는 판본이 동화문화사 판본이 유일합니다.

AgalmA 2015-05-01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란 무엇인가에서도 누누히 얘기되고 있듯이, 혁신적인 소설들은 스타일이 주제며, 형식이 곧 내용이지요.
화이팅 안해도 잘 하시고 계시니ㅎ...그나저나 올해 제 목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였는데....흠. 이번 달 정리 좀 되면 남은 반년 노력해봐야겠어요^^

cyrus 2015-05-02 13:16   좋아요 0 | URL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몇 년 전부터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했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독서를 시도하면 마치 <수학의 정석> 1장만 푸는 느낌이에요. ㅎㅎㅎ

에이바 2015-05-0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율리시스> 읽으려고 다른 작품들부터 조금씩 읽고 있는데요, 생각의 나무 판은 중고도 고가라;; 동서문화사 걸로 찜해뒀습니다. <피네간의 경야>는 더 아스트랄해서 버킷리스트로... 우리나라가 4번째 번역국가래요. 한자어까지 동원해 번역에 수고하신 김종건 선생님께 감사드릴뿐입니다.ㅎㅎ <율리시스> 읽기 전에 아일랜드 역사랑 그리스 고전도 한 번 더 보려고 했는데 어쩌면 cyrus님처럼 하루에 한 두장씩 꾸준히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부터 읽고 도전해야겠습니다. 이쪽은 1권은 읽었거든요.

cyrus 2015-05-02 13:18   좋아요 0 | URL
<피네간의 경야> 주석본 가격이 원작의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싼 게 함정이에요... ^^;; 생각보다 프루스트 읽기를 시작하시는 이웃님들이 많군요. 저도 얼른 재도전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5-05-0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존경한다 시루스!
처음엔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이런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냐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니 마음 알 것도 같다.
더블린은 매년 더블린 사람들을 읽은 축제를 한다고 들었어.
지금도 하고 있겠지? 조이스는 확실히 대단한 사람 같아.
부디 이 극한의 독서를 잘 마무리하길 바래.
저 김성숙 번역 나도 참고할게. 읽을지는 모르겠지만...ㅋ

cyrus 2015-05-02 13:26   좋아요 0 | URL
집에 있는 책들 절반은 한 번도 안 읽은 것인데 <율리시스>도 그 중의 한 권이에요. 그래서 조이스를 읽게 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감이 듭니다. ㅎㅎㅎ

매년 6월 16일에 `블룸즈데이`라는 이름으로 더블린에 조이스를 기념하는 행사가 펼쳐져요. 조이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블린은 평범한 도시로 남았을거예요.

단발머리 2015-05-03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헉!` 소리가 절로나는 두께예요.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읽기로 마음속에 다짐을 했는데, 그 다짐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cyrus님께서 읽으시는대로 페이퍼 올려주시면 그걸로 <율리시스>는 살짝쿵 넘어가고 싶군요.
앞으로도 리뷰 계속 올려주시어요~~~~~~``

cyrus 2015-05-03 21:22   좋아요 1 | URL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있으면 소개할께요. 《율리시스》에 대한 편견을 깨보고 싶습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15-05-03 21:26   좋아요 1 | URL
<율리시스>에서 재미있는 내용 찾기와 편견 깨기라는 중대한 임무가 cyrus님 어깨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주세요^^

cyrus 2015-05-03 21:31   좋아요 1 | URL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배경지식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혼자 읽는 상황이라서 전문적인 수준의 내용은 아니지만 언젠가 《율리시스》를 읽으려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단발머리 2015-05-03 21:37   좋아요 1 | URL
저는 언젠가 <율리시스>를 읽어야겠다는 야무진 꿈은 없지만 cyrus님의 페이퍼를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혹시 제게도...!?! 하는 생각이예요~ 저와 같은 소박한 사람들을 대표해 cyrus님 응원합니다!

Bibliotheca 2015-05-25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더블린부터 도전해야겠네요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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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남성에게 담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담배 연기에 고민거리들을 실어 보내고 나면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흡연은 술과 함께 대표적인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꼽힌다. 매년 새해맞이와 함께 금연을 다짐하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담배를 두고 백해무익하다고 말하지만, 어찌 됐든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옛날에 담배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망우초(忘憂草)’다. 시름을 잊게 해주는 풀이라는 뜻이다.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공초란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초월한다’는 큰 뜻이지만, 사실 궐련을 피우고 남은 꼬투리를 이르는 ‘꽁초’를 고상하게 바꾼 것이다. 오상순은 아침에 담배를 물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는 애연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로 알려진 장유는 어전회의를 할 때도 담뱃대를 손에 놓지 않았다. 담배 냄새를 참다못한 인조가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장유에게 지적을 할 정도였다.

 

요즘 흡연자들의 처지야말로 장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건물에 들어서거나 길을 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처량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흡연자들을 보게 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외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죄를 지은 것처럼 잔뜩 움츠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늘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다 꽁초를 잘못 버리면 핀잔은 물론 망신당하기에 십상이다.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흔히 서두로 꺼내는 말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이 말은 과연 어느 때를 가리키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말이 처음으로 나온 시기는 구한말이다. 1910, 20년대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내용의 민담과 전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절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알려면 구한말 이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통 담배는 임진왜란 이후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헌마다 그 정확한 시기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를 남쪽에서 들어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의미로 남령초(南靈草)라고 불렀다. 그 후 개화기 때까지 ‘담바고’로 불렸는데 ‘Tabacoo’라는 외래 음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처음 담배가 선보였을 때 조선시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유몽인이 쓴 「담바귀설」이라는 글에서 담배를 즐겼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장안의 남녀가 어린애고 늙은이고 가리지 않고 병이 있거나 없거나 즐겨 태워서 연기를 마셔대니 코를 비트는 악취가 거리에 가득했다. 때때로 못된 소년배가 “아름다운 여자와 맛좋은 술을 참아도 담바괴는 참을 수 없네”라는 노래를 앞다퉈 부르고 다녔다. (33쪽)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서 건너온 담배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로 알려져 순식간에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다. 일본 상인들은 담배를 약으로 팔았다. 여자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조선 시대는 그야말로 ‘담배 천국’이었다. 정조는 인조의 핀잔과는 반대로 백성들에게 흡연을 노골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정조도 골초였는데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금연을 주장하는 상소가 줄을 이었다. 이에 발끈한 정조는 ‘남령초 책문’을 내린다. 책문이란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리던 논술시험이다. 정조는 앞으로 담배 정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각자 생각하는 바를 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정조가 책문을 내린 이유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자신이 내린 책문으로 담배를 배척하려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해서 담배 옹호론을 밀고 나가려고 했다. 남녀노소 모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반층들에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담배 피우는 행위를 금지할 수는 없는 일. 담뱃대의 차이를 통해 신분 귀천을 구분토록 했다. 담배를 담는 대통과 물부리를 연결하는 설대의 길이가 신분을 상징했는데, 양반은 설대가 긴 장죽을, 서민은 설대가 없거나 짧은 장죽이나 곰방대를 사용했다.

 

담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기호품으로 애용됐다. 차(茶)나 술 대신 손님 대접용으로 담배를 내놓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담배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인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담배를 오래 피우면서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비옥한 논까지 돈 되는 담배재배에 매달리는 현상이 생기면서 사회문제로 번졌다.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흡연론과 금연론이 맞붙었다. 조선 후기 들어 박지원과 이덕무 같은 학자들은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곰방대를 물고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진 민화 속에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서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 속에는 금연론이 나오기 전, 남녀노소 누구나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흡연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멋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이 애연가에게는 담배의 해악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평화로운 시기였다.  

 

나라 곳간 때문이든 건강 때문이든 우리나라 담배의 역사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뒤엉켜 수세기에 걸친 논쟁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흔적이다. 담배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해도 끝내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담배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근심을 덜어주는 벗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건강에 위협적이라고 경고해도 요지부동인 흡연율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여전히 담배 연기를 날리고 있다. 만약에 정조가 환생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좁은 흡연실에 갇힌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백성들의 후예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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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4-3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녀노소가 다 피웠다니 이런!
어릴때 담배 농사 짓는 집 참 많기는 했어요.

cyrus 2015-05-01 15:44   좋아요 0 | URL
옛날에도 담배 농사 짓는 일이 흔했어요. 담배 피는 사람이 많아서 밭농사보다도 수입이 좋았다고 해요.

붉은돼지 2015-05-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망한 풀` ㅋㅋㅋㅋ
저도 담배 한 20년 훨 넘게 피웠는데요,,, 작년부터 끊었습니다. 저는 뭐 금연주의자는 아니고 담배도 피고 싶을 때는 한대씩 피워도 된다는 그런 조금 희미한 주의인데요
작년말에 담배 끊은 것도 생 용을 써서 끊은 건 아니구요....그냥 담배 좀 줄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안 피우니 어렵지 않게 끊어지더라구요...참 신기하게...

그런데 지금도 술마시고 하면 가끔 한대씩 피워요. 4월달에는 3대 정도 피운거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매연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 담배 한대 핀다고 뭐 어떻게 되겠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05-01 15:49   좋아요 0 | URL
20년 흡연했으면 끊기가 엄청 힘들텐데 아무 일 없이 금연한 붉은돼지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비흡연자라서 금연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금연하자는 생각만 한다고 해서 담배를 멀리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stella.K 2015-05-0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나 어렸을 때는 담배 냄새가 지금같이 독하지 않았어.
어린 코에도 오히려 구수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울엄마도 그러시더군.
옛날엔 담배 냄새가 좋았는데 지금은 담배 피우는 사람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그 사람이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더라도
담배가 몸에 베어서 불쾌해.
요즘엔 공공장소에서 못 피니까 길거리 걸어 다니면서 피우더라.
그게 더 나쁜 거 같아. 그냥 흡연 장소 정하고 거기서만 피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해.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어떤 남자는 여자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연애를 했다나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그 남자 지금도 잘 사는지 모르겠어.ㅋㅋ

cyrus 2015-05-01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버지가 비흡연자라서 집에서 간접흡연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흡연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담배 냄새에 적응했는데 저도 담배 냄새를 안 좋아해요.

어제 인터넷 기사에서 본건데 어느 중국인 영화감독이 탕웨이는 촬영 준비 전에 대사를 보면서 담배를 핀다고 기자회견 때 말해가지고 탕웨이 팬들한테 비난을 받았더군요. 감독이 무슨 의도로 그런 발언을 한건지 모르겠지만 탕웨이가 담배를 핀 것에 대해 혐오감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담배 피면서 대사를 외우는 모습도 예쁠 것 같아요.. ㅎㅎㅎ

stella.K 2015-05-01 17:58   좋아요 0 | URL
헉, 그거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지?
그 나란 울나라 보다 더 보수적인가 보다.
그게 기호식품처럼 인식되어버린지 오랜데 무슨...
그런데 여자든 남자든 담배 안 피는 게 좋긴하지.
특히 여자는 더 안 좋다고 하잖아.ㅠ

해피북 2015-05-0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담배천국 이였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구 정조임금님은 역시 논박으로 다스리시는 정책은 어떤 경우에서도 빛을 바라네요 ㅋㅋ

cyrus 2015-05-01 15:57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 절반은 담배와 함께 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흡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인지 흡연과 관련된 우리나라 문화사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

oren 2015-05-0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재털이`가 달려 있었지요. 방학때마다 서울에서 안동으로 오고 갈 때 차멀미 때문에 고생할 때면 고속버스 좌석 등받이마다 달려 있는 `재털이`가 참 미웠더랬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재털이`는 어딜 가나 꼭 있었어요. 소파와 함께 놓인 테이블 위는 물론이고 각자 자신의 책상 한귀퉁이에는 버젓이 재털이를 모셔 놓고 담배를 피워대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다 싶네요. ㅎㅎ

cyrus 2015-05-01 19:09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한 풍경입니다. 시내버스 좌석 등받이에 재떨이가 있었다니... ㅎㅎㅎ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담배가 술보다 인기가 많은 기호품이었다가 요즘은 흡연 건강 문제 때문에 위상이 줄어들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