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다양한 해석과 해설을 할 수 있는 많은 알레고리들을 구석구석에 숨기고 있다. 교회, 악마, 이단, 기적.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중세 유럽을 해석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소설 속 여러 공간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소는 수도원의 장서각이다. 이곳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관해 논한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이 숨겨져 있고, 필사본의 실체를 궁금하게 여긴 수도사들이 연속적으로 살해당한다.
어느 체제이든 그 체제가 꺼리는 지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심한 경우, 힘을 가진 자가 그 지식의 유포를 금지하기도 한다. 중세의 대변자인 호르헤 수도사에게 웃음은 악마의 유혹이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동이다. 결국, 사탄의 마약인 웃음을 인간이 찬미한다는 것은 곧 기독교를 능멸하는 행위다. 그래서 호르헤 수도사는 《시학》 제2권을 금서로 규정한다. 그러나 금기가 영원한 법은 없다. 언젠가는 해제되고, 아니 세상을 지배하는 견고한 체제가 갈라지는 틈 사이에 성경 외의 지식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아델모는 이단으로 규정되는 성경 외의 지식에 일찌감치 눈 뜬 인물이다. 그는 양피지 사본을 제작하는 채식가(彩飾家)였는데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는 아델모의 죽음으로 미완성이 된 아델모의 성경 「시편」 채식사본을 확인한다. 그런데 윌리엄과 아드소는 아델모의 채식사본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사본에는 정체불명의 괴물 그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뱀 모가지의 네 발 짐승, 사지가 없는 인간, 말 대가리 인간,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괴물. 성스러운 기도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물 그림을 아드소는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는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은 상상력과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괴물은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형상이다. 아델모의 채식사본은 호르헤 수사가 싫어할 만한 ‘공허한 그림’이다.
호르헤 같은 중세 사람들이 ‘거꾸로 뒤집어진 세계’를 부정적으로 봤다면, 동양은 상상의 동식물을 해학적이고 비유적으로 기록하는 문화를 오래전부터 선호했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문헌이 바로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가장 오래된 동양 신화집으로 보는 편이지만, 사실은 분류하기가 어려운 문헌이다. 머리는 동물이고 몸통은 사람이니 하는 괴물들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판타지 문학의 특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지리서와 의학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세계를 방향별로 나누어 그 해당 구역별로 제목처럼 산과 바다, 나아가 신비한 효능이 있는 식물 및 광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해경》에 우스꽝스러운 내용은 많아도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하늘·땅·물 세 개의 주요 공간과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 존재 즉 초자연적 존재(신, 괴물)와 인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뤄져 있다.
상상력은 이미지로 살아나고 이미지는 다시 상상력을 환기한다. 《산해경》은 텍스트와 함께 있는 강렬한 이미지들로 인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많은 지식인이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박지원과 이덕무는 《산해경》을 흉내 내는 글을 남겼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유학이 지배하는 조선 사회에서 상상력의 보고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산해경》이 《초사》라는 역사서에 환상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실을 다룬 문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종교 및 학문 헤게모니의 사슬에 묶였던 금지된 지식은 상상력의 날개를 다는 순간 급작스레 해방된다. 성경 이외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던 중세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다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어서 하나의 답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분명한 것은 12, 13세기 무렵부터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델모와 같은 채식사들은 금지된 지식을 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중세에 드리워진 기독교의 장막이 걷어지게 되자 세계를 이해하려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대항해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인식의 씨앗이 발아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산해경》처럼 상상력과 자연 세계를 결합한 서적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존 맨더빌의 여행기다. 《맨더빌 여행기》(오롯, 2014)는 동방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등장으로 인해 콜럼버스와 같은 대항해 시대의 탐험가들이 신비의 세계로 알려진 동방을 찾으러 모험을 감행했다.
《맨더빌 여행기》와 《산해경》은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상상력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백과사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괴물이 나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두 권의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서로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산해경》 해외서경(海外西經)편에 여자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국은 이름 그대로 온통 여자만 사는 나라다. 여자국에는 들여다보기만 하면 임신이 된다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고 한다. 또 여자가 목욕하고 나오면 저절로 임신이 되는 못도 있다. 만약에 여자국에 남자가 태어난다면 세 살이 될 때 죽여 버린다. 《맨더빌 여행기》도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아마조니아는 여성 전사들이 살고 있으며 남자의 지배권을 부정한다. 아마조니아 사람들은 가끔 다른 나라를 침입하여 남자와 짧은 기간 동안 사귀기도 하는데 임신해서 남자아이를 낳으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부친에게 보내거나 죽였다. 신분이 낮은 여자는 오른쪽 유방을 잘라 궁수가 되고, 신분이 높은 여자는 반대로 왼쪽 유방을 잘라 방패를 드는 전사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
《산해경》에 언급되는 목이 없는 거인 형천은 중국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형천이라는 이름에 ‘머리를 베어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선조 황제(黃帝)와 맞짱 뜨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그 벌로 머리가 잘렸다. 잘려나간 머리는 상양(常羊)산에 묻혔는데 형천은 포기하지 않고 젖가슴을 눈으로, 배꼽을 입으로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고 있다고 전해진다. 머리는 없고 몸통에 눈, 코, 입이 달린 형체는 《맨더빌 여행기》에도 나온다. 《산해경》과 《맨더빌 여행기》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의 유사함을 그냥 우연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맨더빌이라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유럽인은 1322년부터 1356년까지 바다 건너 세계를 여행하고 난 뒤에 이 여행기를 썼다고 알려졌다. 그가 정말로 여행을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여행하는 도중에 동양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접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