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어플에 접속해서 아래에 보면 ‘10분 독서-동영상 리뷰 OPEN’이라는 이벤트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이걸 보면서 동영상 형식으로 리뷰를 올리는 기능이 생기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알라딘이 제작한 동영상 리뷰를 말한 것이었다. 동영상 리뷰를 보고나서 소감 댓글을 남긴 500명은 적립금 1천 원, 추첨으로 뽑힌 두 명에는 적립금 1만 원을 지급한다. 

 

 

 

 

 

 

언젠가는 알라딘에 동영상 리뷰를 올리는 기능이 나올지도 모른다. 많지는 않지만,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있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다가 알라딘/북플에 동영상 리뷰를 올리는 한 분이 있다. Eunju님은 일주일에 두 편의 동영상 리뷰와 책 소개 동영상을 올린다(http://blog.aladin.co.kr/Eunjubook). 동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는 작업은 까다로운 편이다. 동영상 편집에 능숙한 솜씨를 가진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동영상 한 편을 제작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길게 나열된 텍스트로 이루어진 서평을 읽기가 지루하면 동영상 리뷰를 보면 된다. 책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동영상 리뷰는 문자로 된 서평의 단점을 보완한다. 동영상 리뷰를 통해 책 표지와 디자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문자 형태로 ‘이 책은 이렇게 생겼고요, 표지가 이런 형태입니다’라고 구구절절하게 써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책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어렵다.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로 문자 텍스트를 읽으면서 집중하는 시간이 1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SNS에 발달할수록 문자 텍스트가 점점 짧아지고, 사진 및 동영상 텍스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A4 용지 한 장 반 정도로 쓰인 글은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니다. 종이신문에 실리는 칼럼의 분량은 딱 A4 용지 한 장을 채운다. 하지만 이런 글도 스마트폰으로 보면 끝까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접하는 횟수가 많아진 이후로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다. 6년 전만 해도 컴퓨터 모니터로 독자 서평을 정독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북플을 접속하면 짧은 글 위주로 보는 일이 많아졌다.

 

수십 년 후 알라딘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과연 십년 후에도 알라딘은 국내 굴지의 온라인 서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을까? 알라딘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서점에 동영상 리뷰를 올릴 수 있는 기능이 따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동영상을 편집하고 업로드하는 방법을 숙달하면 누구나 동영상 리뷰를 올릴 수 있다. 특히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은 동영상 리뷰로 자신의 책 관심사를 마음껏 표출한다. 특별한 방식으로 동영상 리뷰를 만들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유명 동영상 리뷰어가 등장한다. 동영상 리뷰어가 점점 많아지자 부작용이 생긴다. 동영상 리뷰어가 책 소개를 하는 도중,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거듭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본래 목적에 어긋나는 내용을 소개하는 불량 동영상 리뷰가 속출한다. 책을 제대로 안 읽었으면서 책 표지 달랑 보여주고, 대충 책 소개하는 동영상 리뷰어는 읽은 척하면서 자랑하는 독자와 같다. 늘 새로운 먹잇감을 찾으려는 악플러들은 동영상 리뷰어를 노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책 소개에 전혀 관심이 없고, 동영상 리뷰어의 외모를 비하한다. 

 

지금까지 동영상 리뷰가 유행하는 미래의 모습을 생각나는 대로 써봤다. 동영상 리뷰어가 많아진다고 해서 우리나라 독서열이 높아질 거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알리고 싶은 독자들의 참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글을 쓰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 친구들을 위해 편안하게 책을 권유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책을 소개하면 된다. 동영상 리뷰어가 많아지는 날이 오면, 나는 글쓰기를 그만둘 것이다. 매일 글 한 편 쓰는 일이 버겁다. 동영상 리뷰어로 전향할 생각도 없다. 내 외모는 방송용으로 부적합하다. 그냥 평범하게 책 읽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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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2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22 13:34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제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군요. 동영상으로 만든 다이제스트가 많아질 수 있겠어요.

:Dora 2016-05-2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읽다가 막판에 조금만 웃었어요 ...동영상 싫은 일인 추가요

cyrus 2016-05-23 17:14   좋아요 0 | URL
동영상을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좋은 방식이긴 한데, 요즘은 부작용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그런지 동영상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거 같아요.
 

 

 

이틀 전에 민음사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축하할 일이다. 여기에 맞춰 민음사는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시인선’ 15권을 새롭게 출간했다. 세계시인선을 모으는 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네 번째 작품은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다. 비용은 프랑스 중세 말기에 활동했던 시인이다. 백년전쟁의 열기가 식지 않은 143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비용은 필립 세르모아라는 신부와 언쟁을 벌인 끝에 단검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사실 피를 부르는 싸움의 발단은 세르모아였다. 그가 느닷없이 비용 일행에게 다가가서 시비를 걸었다. 처음에 비용은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르모아는 단검을 빼내어 비용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비용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세르모아를 공격했을 것이다. 비용은 칼에 찔린 세르모아의 머리에 돌을 던졌다. 길바닥에 쓰러진 세르모아를 내버려둔 채 비용 일행은 부리나케 도망갔다. 싸운 지 3일 뒤에 세르모아는 사망했다. 살인자가 된 비용은 가명을 사용하면서 7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 비용의 범죄 이력은 이게 끝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 돈을 훔친 사실이 발각되어 또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몇 차례 투옥되기도 했지만, 운 좋게 풀려났다. 비용은 짧지 않은 방랑 생활을 보냈는데, 그간의 행적에 대해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비용 주변에는 행동이 불량한 친구들이 많았다. 비용이 그들과 같이 다니면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다. 비용 일행 중 한 사람이 싸움을 걸어 사람을 죽이고 말았는데, 억울하게도 비용이 그 자리에 긴급 체포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자는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자를 엄하게 처벌하기로 악명 높았다. 비용은 물고문당한 후에 교수형 선고를 받는다. 억울한 비용은 판결에 불복상고를 신청했다. 다행히 그는 교수형을 면했고, 10년간 파리추방의 선고를 받았다. 파리를 떠나는 횟수만 해도 세 번째였다. 1463년 1월에 파리를 떠났는데, 그 이후 비용이 여생을 어떻게 보냈는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다.

 

비용은 1456년 말 혹은 1457년 초에 <유증시>(Lais)를 썼고, 이를 개작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유언시> 혹은 <유언의 노래>(Le Testament)다. 비용은 그 당시 유행한 발라드(ballade) 형식을 따랐는데, 발라드란 자유로운 형식의 담시를 의미한다. <유증시>는 비용이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자신의 물품을 유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장시다. <유언시>는 <유증시>를 개작한 것이다. 1461~1462년 수감되었을 때 쓰였을 거로 추정한다. <유언시>는 비용의 심적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전반부에서 비용은 자신에게 내려진 처벌이 가혹하다고 호소하지만, 끝내 신 앞에서 회개할 것을 다짐한다.

 

 

나는 죄인이로다, 그것을 잘 알고 있거늘
그러나 신은 내 죽음을 바라지 아니하고
죄에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실을 고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도다.
내가 죄로 인하여 죽는다 하더라도
신은 산다고 하셨기에
내 양심이 가책을 느낄 때
그 자비로움은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리라.

 

(<유언시> 문학과지성사 77~78쪽)

 


후반부에 <유증시> 내용 일부가 다시 등장하는데, 전반부에서 보여주던 회개하는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회를 향해 신랄한 조롱을 퍼붓는다. 창녀, 떠나버린 연인을 비난하는 냉소적인 분위기의 발라드가 있다.

 

 

 

 

 

 

 

 

 

 

 

 

 

 

 

 

 

 

자신의 삶에 회한을 무수히 느끼면서도 갑자기 냉소적인 태도로 돌변하여 세상을 향해 악담하는 비용의 정서적 태도는 훗날 보들레르와 아폴리네르로 이어진다. 보들레르와 아폴리네르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시인들이다. 비용과 아폴리네르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다. 두 사람 다 실연으로 큰 아픔을 겪었고, 시를 통해 떠나간 여인들을 원망하는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아폴리네르는 루브르에 전시된 다 빈치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휘말려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폴리네르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전혀 관련이 없었다. 뚜렷한 직업 없이 파리에 머무는 이탈리아인이란 이유로 절도 범죄자로 몰렸다. 이로 인해 아폴리네르는 상테 감옥에 일주일 동안 수감되었다. 그는 당시 억울함 심정을 담아 ‘상테 감옥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감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알몸이 되어야 했으니
어느 불길한 밤새 소리 울부짖는다
기욤 너 이게 무슨 꼴이냐고

 

나는 어찌 되나요 오 내 고통을 아시는 신이시여
 그 고통을 주신 그대여
불쌍히 여기소서 눈물 없는 내 눈을 내 창백한 얼굴을
 사슬에 매인 내 의자 삐걱대는 소리를

 

울고 있는 이 시간을 네 울며 한탄할 날 있으리
어느 시간이나 그렇듯이
너무나 빨리 지나갈 이 시간을

 

(‘상테 감옥으로’ 중에서, 《알코올》 175~179쪽)

 

 

아폴리네르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파리 사회는 무국적자인 그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국외 추방의 위협을 받은 아폴리네르는 작가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그가 프랑스군에 자원입대했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지 닷새 만에 아폴리네르가 소속된 사단이 최전방에 투입되었다. 전쟁터에 들어가기 전에 아폴리네르는 약혼녀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대에게 유증합니다. 만일의 경우, 이것을 나의 유언으로 간주하시오.” (《알코올》 348쪽)

 

 

불행하게도 아폴리네르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오랜 수술 끝에 극적으로 살아남으나, 부상 후유증으로 약간의 마비 증세를 겪어야 했다. 비용과 아폴리네르는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저주받은 시인이었다.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한 두 시인은 시집으로 자신들의 삶을 알리려고 애썼다. <유언시>와 《알코올》은 시인들의 회한의 자취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묘비명이다. 

 

 

 

 

사진출처: 민음사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minumworld/220712963719)


 


프랑스 중세 시인의 작품이 소개돼서 기쁘지만, 출판사 창립 기념의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더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민음사 공식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시집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들이 있다. 민음사는 《유언의 노래》를 ‘국내 최소 소개’한 시집으로 소개했다.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에 비용의 시집이 완역된 적이 있다.

 

 

 

 

 

1980년 플로베르 연구의 권위자이자 불문학자인 송면 교수가 번역한 적이 있다. 번역본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다. 송 교수는 동서문화사판 《레 미제라블》과 198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클로드 시몽의 《플랑드르로 가는 길》 등을 번역했고,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이듬해에 나온 유고집이 《프랑수아 비용 : 그 생애와 시 세계》(동문선)이다. 송 교수가 비용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특별하다. 송 교수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할 당시 일본인 지도교수로부터 비용 연구를 권유받았고, 비용 연구는 송 교수의 부전공이 되었다. 그의 지도교수가 비용 연구의 권위자였다. 만약 송 교수가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비용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시기가 엄청 늦어졌을 것이다.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 1권에 송 교수가 번역한 <유언시>를 참고하여 일부 문장을 인용한 적 있다.

 

 

저는 가난하고 늙은 여인입니다
아주 무식해서 읽을 수도 없어요
그들은 저희 마을 교회에
하프가 울려 퍼지는 천국과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서 보여주었어요
하나는 내게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줍니다.

 

(《미학 오디세이》 1권 구판 150쪽)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쌍한 늙은 여자외다.
제가 속하고 있는 성당에는
수금과 비파가 그려진 천국의 그림과
죄인들이 업화에 타는 지옥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저를 무섭게 하고 하나는 저를 기쁘고 즐겁게 하나니
하늘의 거룩한 성모여 죄인은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가식도 거짓도 없이 당신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은즉
그 기쁨 저로 하여금 느끼게 해주소서.
그러한 신앙으로 살다가 죽으오리다.

 

(<유언시> 문학과지성사 128쪽)

 


진중권은 이 문장을 ‘어머니를 위한 발라드’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으나 송 교수의 번역본에 보면 시의 제목이 ‘성모에게 기도하기 위한 발라드’로 되어 있다. 진중권이 책을 쓰는 과정에 성모를 ‘어머니’로 착각한 것일까.

 

‘국내 최초 소개’한 작품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다. 하지만 책을 만들기 전에 이미 나온 적이 있는지 사실을 꼼꼼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출판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국내 최초’의 수식어를 내세우는 일은 옳지 않다. 출판사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책의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 서평은 단순히 감상 수준에 그치는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선 오랫동안 책의 존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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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2016-05-2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 세계시인선을 20여권 모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잘 보이지 않더군요. cyrus님이 아니었다면 이번에 새로 나왔는지 몰랐을 거에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새로운 디자인도 끌리지만 내용면에서도 번역이나 다른 부분도 만족스러웠으면 합니다.

cyrus 2016-05-22 08:16   좋아요 0 | URL
저보다 많이 모으셨는데요. 저도 이미 다른 분들이 소개한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민음사 창립 50주년도 같이 알았고요. ^^

yamoo 2016-05-2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코올, 저도 있는데, 도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ㅜㅜ

저는 시 선집은 취급안하는지라, 패쑤할게욤^^;;

cyrus 2016-05-23 17:18   좋아요 0 | URL
시인선에 포함된 <악의 꽃>이 기존의 김붕구 번역에서 황현산 번역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완역은 아닙니다. 그게 좀 아쉬워요. 황현산 교수가 완역한 <악의 꽃>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nomadology 2016-05-2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게 세계시인선은 원본과 번역이 같이 나왔던가요? 아니면 번역만 나오나요??

cyrus 2016-05-24 14:13   좋아요 0 | URL
원문과 번역문 같이 나왔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쪽 다 언론에서는 아쿠타가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했고, 주위 사람들도 수상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앞서 말한 그런 이유로 나로서는 수상을 놓친 덕분에 오히려 안도했을 정도입니다. 나를 떨어뜨린 심사위원들의 기분에 대해서도 ‘뭐, 그렇기도 하겠지’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원망스럽게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 생각도 없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6쪽)

 

 

아쿠타가와상을 두 차례나 놓친 심정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하루키의 태도를 보시라. 하긴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니 두 번의 고배를 가볍게 잊을 수 있었나 보다. 하루키는 작년 11월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을 받았다. 하루키가 받은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한다. 세계 아동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최전성기 작가에게 수여한다. 칠순을 코앞에 둔 하루키는 지금도 젊은 작가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한 놈이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오래 사는 놈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하루키는 ‘오래 사는 놈’에 가깝다. 하루키는 오랫동안 꾸준히 글 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를 제쳐두고 뽑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만일 수상작이 번역되었으면 하루키의 소설과 한 번 비교해보고 싶었다. 아쿠타가와상(芥川償)은 1년에 두 번 시상한다. 즉 상반기(12월~5월)와 하반기(6월~11월)로 나뉜다. 일본판 위키피디아 ‘아쿠타가와상’ 항목에 들어가면 역대 수상작과 작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1979년 7월에 발표되었다. 그러면 이 작품은 제82회 1979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 된다.

 

 

 

 

제8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모리 레이코(森禮子)의 《모킹버드가 있는 거리》(モッキングバードのいる町)다. 참고로 알라딘에 ‘모리 레이코’를 검색하면, 자수 전문가 ‘모리 레이코’의 책이 나온다. 《1973년의 핀볼》은 1980년 6월에 나온 소설이다. 제84회 1980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다. 수상의 영광은 오츠지 카츠히코(尾辻克彦)에게 돌아갔다. 수상작은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 두 편의 수상작은 함께 묶어 1982년 태창문화사라는 출판사가 펴낸 적이 있다. 오래된 책이라서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힘들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작가뿐만 아니라 전방예술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미술에 눈길을 돌리면 카즈히코는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가 된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겐페이의 필명이다.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볼 수 없지만, 본명으로 발표한 예술 분야 책은 네 권이나 번역되었다. 뜻밖의 발견이다.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사실은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다는 일을 하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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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1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부분을 읽으면서 강자의 여유를 느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벨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낄까도 궁금합니다. 상에 얽매이지 않는건 물론 필요하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는 상당히 스트레스 받으실듯해요.

cyrus 2016-05-20 16:15   좋아요 0 | URL
뭐 하루키 본인이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믿어야죠. ^^

2016-05-19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20 16:17   좋아요 1 | URL
다른 알라딘 이웃님들이 한강 소설의 번역에 대해서 이미 언급했지만, 번역이 문학상 수상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5-20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는 앞으로도 아쿠타가와상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거기나 한국이나 파벌싸움도 있고, 심사위원의 고집이랄까, 곤죠랄까,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cyrus 2016-05-20 16:23   좋아요 0 | URL
만약 제가 소설가였다면, 파벌이 주름잡는 문단에 발 딛기 싫어서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문학상을 당당하게 거부해서 더 유명해지는 작가도 있으니까요. ㅎㅎㅎ

보물선 2016-05-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세계적인 독자를 확보한 하루끼가 그깟 상에 뭐 그리 연연하겠어요~ ㅋ (노벨문학상 한번 받아서 끄읕! 찍어주면 좋겠습니다만~)

cyrus 2016-05-20 16:24   좋아요 1 | URL
작가가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이 소설 한 편 쓰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이 아니라 문학상 수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일 것 같습니다. ㅎㅎㅎ

양사나이 2016-05-2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뭐랄까요. 하루키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일본 문단에서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마이웨이거든요. 하루키가 굳이 이 챕터를 쓴 건 상에 대해 오해가 너무 커져버려 정리를 하고 싶었나봅니다. 오랜 하루키 팬으로 이런 글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진 않네요. 그냥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말이죠. 역으로 보자면 변명 아닌 변명처럼 보여지기 때문이죠. 이 부분 하루키 역시 알고 있을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쓴 하루키가 대단해보입니다. (역의 역으로 보자면)


제가 생각하는 하루키는 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맥주 거품만큼 신경쓰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이거든요.

cyrus 2016-05-20 16: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학상에 연연하지 않는 하루키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문학상에 대한 스트레스 없고, 심지어 글 쓰는 일마저 즐겁다고 했으니 하루키는 천상 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6-05-20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110쪽)

˝하루에 원고지 20매씩 규칙적으로 쓴다˝는 하루키.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존경스러운 점입니다.

cyrus 2016-05-21 17:05   좋아요 0 | URL
표현이 참 좋은데, 정말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이 써질까요? 하루키의 능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ㅎㅎㅎ
 

 

 

동생이 일하는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독서지원금을 준다. 예전에 한 번 이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써서 밝힌 적이 있다. 독서지원금은 2만 원. 무조건 2만 원 이내 가격의 책을 사야 한다. 2만 원으로 책 두 권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책을 사고 나면 독후감을 써서 회사 인트라넷에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독후감을 대신 써줬다. 독후감을 잘 쓴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동생이 카톡으로 회사의 독서지원금 제도가 변경된 사실을 알려줬다. 독서지원금 액수는 변경되지 않았지만, 고를 수 있는 책의 분야가 확 줄어들었다. 이번 달부터 요리 관련 책만 사야 한다. 웃긴 건 회사가 직원의 독후감 제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생이 요리책 독후감을 어떻게 쓸 것이냐고 말했다. 나는 ‘줌마체’로 쓰겠다고 대답했다.

 

 

줌마체는 전업주부들이 블로그, 육아 카페 등에서 사용하는 말투를 의미한다. 줌마체의 가장 큰 특징은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쓴 내용을 줌마체로 변경하면 이렇게 된다.

 

 

 

이번 달에도 울남푠이 회사에서 주는 독서지원금을 받았다고 하네요. 무조건 2만 원 이내 가격의 책을 살 수 있답니당~ 그래서 2만 원으로 책 두 권을 살 수 없어요ㅠ 흑흑 ㅠㅠ 아유~ 저는 왜 이리 책 욕심이 많은걸까용??? *^^* 책을 다 읽었으면 리뷰를 써야 해요. 제가 리뷰를 대신 써준답니다. 리뷰 잘 쓴 직원에게 뽀나스 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

 

 

에공~ 깜빡할뻔 했네요. 또 하나 중요한 사실!!! 이제부터 요리책만 살 수 있대요. 리뷰를 써야겠지만 마음에 드는 요리책을 살 수 있어서 넘 좋아요. 호호호 *^^* 요리책에 나온 음식 만들어서 울남푠이랑 딸램에게 제 실력 함보여줘야겠네요. 잇님들~ 제가 사는 요리책이 뭔지 기대해주세용~ *^^* 열씨미 읽고 리뷰랑 음식 인증샷 올릴께용~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구럼 20000 총총~~ ^^

 

 

※ 울남푠 : 우리 남편

뽀나스 : 보너스

딸램 : 딸내미

함보여줘야겠네요 : 한 번 보여줘야겠어요

잇님들 : 이웃님들

 

 

어떤 이들은 줌마체가 오글거려서 싫다고는 하지만, 나는 줌마체를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줌마체를 따라서 읽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가끔 너무 과할 정도로 오글거리는 표현이 있지만, 딱딱한 문체보다 읽기가 편하다. 그런데 시험 삼아 줌마체로 글을 써보니까 은근히 어렵다. 줄임말을 쓰는 게 어색하다. 역시 나는 ‘아저씨’였다. 그나저나 요리책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난감하다. 사진까지 첨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알라디너 잇님들은 요리책 리뷰를 어떻게 쓰는지 참고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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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9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2만원가지고 요리책은 좀 약한데요.ㅎㅎㅎ요리책은 두껍고 사진이 많이들어가서 30000원되야.ㅋ 그런데 서평제출이라 아고.ㅎㅎㅎㅎ

cyrus 2016-05-19 18:19   좋아요 0 | URL
사진집을 읽으라고 하면 정성을 담아서 쓸 것입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6-05-19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줌마체가 글씨체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런 의미였군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모르는 단어도 있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하루되세요.

cyrus 2016-05-19 18:21   좋아요 1 | URL
주부들만 사용하면서 공유하는 줄임말이 엄청 많아요. ‘~체’로 시작하는 양식이 꽤 많습니다. 서니데이님, 편안한 밤 보내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잇님들 가내 평화가... ㅋㅋㅋㅋㅋ

cyrus 2016-05-19 18:22   좋아요 0 | URL
줌마체에서만 사용하는 재미있는 줄임말이 많습니다. 진짜 ‘잇님’은 대박입니다. 어떻게 ‘이웃’을 줄일 생각을 했을까요? ㅎㅎㅎ

stella.K 2016-05-19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사면 되는데...
근데 왜 요리책만 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짱나겠다.
근데 줌마체 웃기긴 하다.ㅋㅋ

cyrus 2016-05-19 18:24   좋아요 0 | URL
살 수 있는 조건이 엄청 까다로워요. 신간인데도 못 사는 책이 있어요. 그리고 중고책으로 살 수가 없어요. 독서지원금이 회사 내 서점에 주문해야 써야 되거든요. 진짜 짜증납니다. 차라리 이런 제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수이 2016-05-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 난 싫던데;;;; 나도 모르게 줌마체 썼던 적 있나 뒤돌아보게 되네;;;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카페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면 줌마체를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ㅎㅎㅎ

boooo 2016-05-1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는걸요-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singri 2016-05-1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줌만데 줌마체 못쓰고

cyrus 2016-05-19 21:13   좋아요 0 | URL
아유~ 안 써도 됩니다. ㅎㅎㅎ

보물선 2016-05-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귀여우셔라~

cyrus 2016-05-19 21:14   좋아요 1 | URL
예상하지 못한 반응인데요. ㅎㅎㅎ

찔레꽃 2016-05-1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 마음에 온기가 있어야 나올 것 같아요. 왠지 쉬울 듯 하면서도 쉽지 않을 듯...

cyrus 2016-05-20 16:27   좋아요 0 | URL
줌마체를 잘 쓰려면 친근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

감은빛 2016-05-2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마체가 뭔가 했더니 인터넷에서 자주 접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투로군요.

어제도 누군가랑 얘기하다가 인터넷 상에서 읽는 글의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더니, 오히려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구요.

잇님들은 이 글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단어군요.

cyrus 2016-05-21 17:06   좋아요 0 | URL
젊은 사람들이 주부들의 줄임말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이러다가 특정 세대만 사용하는 줄임말이 계속 생길 것 같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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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은 쇼다’. 우리나라 1세대 프로레슬러 故 장영철의 발언으로 우리나라의 프로 레슬링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WWE는 쇼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WWE는 아주 잘 짜인 쇼다. 트릭(trick)과는 다르다. 프로레슬링은 영화나 연속극처럼 자신의 배역에 따른 역할(entertainment)을 수행하는 것이다. WWE의 모든 경기의 승패는 경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을 문제 삼는 팬들은 거의 없다. WWE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킨다. 악역을 하는 선수가 선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동료 프로 레슬러 선수와의 급작스러운 갈등으로 인한 배신, 혹은 현 WWE 회장인 빈스 맥마흔과 그의 가족을 직접 각본상에 포함하며 권력에 놀아나는 레슬러들 등 실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펼쳐진다. 물론 그러한 모든 과정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팬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몸을 사리지 않은 선수들의 고난도 묘기에 열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프로레슬링 무대와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는 프로레슬러에 해당한다. 누구나 링 위에 오를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링 한가운데에 선 소설가는 다음 상대를 기다린다.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쇼.” 그렇지만 링 위의 현장, 즉 문단(文壇)은 냉혹하다. 링이 널찍해도 거기에 올라오려는 소설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링은 포화 상태다. 소설가가 소설로 먹고살려면 끝까지 버티어 살아남아야 한다. 레슬링에 관심 없는 독자는 하루키의 표현이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짜고 치는’ 프로레슬링이 소설과 같다고 말하다니.

 

나는 하루키가 소설가의 세계를 아주 적절하게 비유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독자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렸다면 원고지에 옮겨 써 내려 가면 된다. 소설이 다 완성되었으면 문단의 링 위에 오를 준비한다. 자신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다. 사각 링 주변에는 곧 무대에 등장할 선수를 기다리는 수많은 관객이 있다. 선수가 링 위에 올라서면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은 문단의 링 위에 들어서게 될 신진 작가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가 쓴 소설이 마음에 들면 찬사를 보낸다. 반면, 소설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야유를 한다. 아무리 유명한 선수라도 레슬링 경기가 지루하게 진행되면 실망한 관중들이 ‘우~~’하는 야유 소리를 낸다.

 

 

 

 

 

소설가의 세계는 ‘배틀 로열(battle royal)’이다. 배틀 로열은 레슬링 경기 방식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10명 혹은 20명이 동시에 링 위에 경기한다. 링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순간, 탈락한다. 탈락한 선수는 패자 대열에 합류한다. 배틀 로열의 승자가 되려면 동료 선수들을 링 밖으로 몰아내면서 끝까지 링 위에 살아남으면 된다.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 용기가 대범한 신진 작가는 자신이 배틀 로열에 당당히 우승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얼마 안 돼서 링 밖으로 떨어진다. 링 위에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의 선수에게는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영광이 주어진다. 문단의 링 위에 오래 살아남으면서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고,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은 작가에게는 명예로운 ‘문학상’이 주어진다.

 

레슬러의 선수 생활은 길어봤자 평균적으로 10년이다. 그만큼 전성기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상대 선수들의 공격에 끄떡없던 튼튼한 육체가 점점 노쇠화되면 경기에 뛸 수가 없다. 운동 신경이 상당히 좋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는 레슬링 선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전성기는 얼마나 될까. 하루키는 ‘소설가로서의 유통기한’을 10년으로 잡았다. 작가 생활 10년째로 접어들면 창조력이 감퇴한다. 이 슬럼프를 극복하려면 이전보다 더 나은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하루키가 말하는 ‘영속적인 자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가는 물고기처럼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소설가의 숙명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역설적인 말이지만, 소설 한 편 잘 쓰려면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야 한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 몹시 둔해 빠진 일이라고 말한다. 소설가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원고지 속으로 들어간다. 사각의 원고지는 작가 혼자만 올라서는 링이다. 문단의 링에 오르기 전 작가는 원고지 한가운데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심한다. 여기에 대해서 하루키는 글을 지속해서 쓰려면 끈질기고 다부진 기본 체력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전하는 하루키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가의 링에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오래 버티는 건 아니란다.’ 그런데 정작 하루키 본인은 지금까지 소설을 쓰면서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문장을 만들 때가 항상 즐겁단다. 이 사람 뭐야, 무서워!

 

 

 

 

 

하루키를 프로레슬러로 비유하면 ‘WWE의 아이콘’ 존 시나(John cena)에 가깝다. 그는 경기에 쉽게 지지 않는다. 경기 우승 횟수가 많다. 그는 의료진조차 최소 6개월의 회복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을 내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과 3개월도 안 돼 링으로 복귀한 적이 있다. 꾸준함의 대명사로 인정받은 존 시나는 헐크 호건을 이은 ‘WWE의 선역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 프로레슬러 팬들이 만든 존 시나의 별명이 ‘존 나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존 나쎄’다.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소설을 쓰고 있다. 문단의 링 위에 서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고독한 글쓰기를 놓치지 않는 그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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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6-05-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ㅎㅎ

cyrus 2016-05-19 15:59   좋아요 0 | URL
알라딘 북플에 진짜 재미있게 글 쓰시는 몇 몇 분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님, 마태우스(서민)님 블로그 즐찾 해두세요. ^^

보물선 2016-05-1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존나쎄^^

cyrus 2016-05-19 16:00   좋아요 0 | URL
띄어쓰기를 잘 해야 됩니다. ㅎㅎㅎ

수이 2016-05-1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팬은 아니지만 팬이었던 적이 있었는데_ 현역 작가라는 점에서 역시 존경심.

cyrus 2016-05-19 16:01   좋아요 0 | URL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열심히 쓰잖아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호빵 2016-05-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나쎄였군요 ㅋㅋㅋ

cyrus 2016-05-19 16:02   좋아요 0 | URL
하루키가 마라톤을 즐겨 하는 이유도 기초 체력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

yamoo 2016-05-1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문학상은 돌려먹기 같다는..^^;;
근데, 워째 하루키의 비유가 좀 거시기 하네요. 소설가는 1:100의 싸움이 아닌 거 같습니다. 누구나 복수로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루키가 비유로 든 그로레슬링은 녹다운 방식인 거 같은데..


어쨌거나 타이틀은 정말 재밌네요~ㅎ 존 나쎄..ㅋㅋ

cyrus 2016-05-19 16:08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은 10% 부족한 서평입니다. 제가 약 빨면서 글을 쓰는 바람에 하루키의 표현을 제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저는 하루키의 ‘프로레슬링’ 발언 의미를 경쟁 관계로 해석했어요. 그렇다 보니 뜬금없이 WWE, 존 시나 얘기까지 나오게 됐어요. 그러니까 하루키는 링 위에 혼자 서 있는 레슬러(소설가)가 스스로 지쳐가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

yureka01 2016-05-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문학은 타고난 글의 근육이 있어야 되더군요..ㅎㅎㅎㅎ

cyrus 2016-05-19 16: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소재의 생각을 영양분으로 삼아 글의 근육을 만들어야합니다. ^^

비로그인 2016-05-18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초고를 쓰고 다시 일본어로 자신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하루키의 집필방식이 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ㅜㅜ 진정 `존 나쎄`다니!! ㅎㅎㅎ

cyrus 2016-05-19 16:12   좋아요 0 | URL
그 내용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영어로 초고를 써서 다시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 지 궁금했어요. 정말 하루키는 대단한 능력자입니다. ^^

보슬비 2016-05-1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질투나요. 존 나쎄서...

cyrus 2016-05-19 16:14   좋아요 0 | URL
소설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쓰기가 어렵다고 말해 놓고선, 자기는 글쓰기가 힘들지 않다고 했으니 질투가 날 만합니다. ^^

transient-guest 2016-05-19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을 읽고 문단은 배틀로얄 같구나 했는데, 바로 쓰셨네요.ㅎㅎㅎ 하루키와 존 씨나...재미있는 비교 같습니다.

cyrus 2016-05-19 16:15   좋아요 0 | URL
간만에 약 빨고 썼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