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양쪽 다 언론에서는 아쿠타가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했고, 주위 사람들도 수상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앞서 말한 그런 이유로 나로서는 수상을 놓친 덕분에 오히려 안도했을 정도입니다. 나를 떨어뜨린 심사위원들의 기분에 대해서도 ‘뭐, 그렇기도 하겠지’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원망스럽게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 생각도 없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6쪽)

 

 

아쿠타가와상을 두 차례나 놓친 심정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하루키의 태도를 보시라. 하긴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니 두 번의 고배를 가볍게 잊을 수 있었나 보다. 하루키는 작년 11월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을 받았다. 하루키가 받은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한다. 세계 아동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최전성기 작가에게 수여한다. 칠순을 코앞에 둔 하루키는 지금도 젊은 작가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한 놈이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오래 사는 놈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하루키는 ‘오래 사는 놈’에 가깝다. 하루키는 오랫동안 꾸준히 글 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를 제쳐두고 뽑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만일 수상작이 번역되었으면 하루키의 소설과 한 번 비교해보고 싶었다. 아쿠타가와상(芥川償)은 1년에 두 번 시상한다. 즉 상반기(12월~5월)와 하반기(6월~11월)로 나뉜다. 일본판 위키피디아 ‘아쿠타가와상’ 항목에 들어가면 역대 수상작과 작가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1979년 7월에 발표되었다. 그러면 이 작품은 제82회 1979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 된다.

 

 

 

 

제8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모리 레이코(森禮子)의 《모킹버드가 있는 거리》(モッキングバードのいる町)다. 참고로 알라딘에 ‘모리 레이코’를 검색하면, 자수 전문가 ‘모리 레이코’의 책이 나온다. 《1973년의 핀볼》은 1980년 6월에 나온 소설이다. 제84회 1980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다. 수상의 영광은 오츠지 카츠히코(尾辻克彦)에게 돌아갔다. 수상작은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 두 편의 수상작은 함께 묶어 1982년 태창문화사라는 출판사가 펴낸 적이 있다. 오래된 책이라서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힘들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작가뿐만 아니라 전방예술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미술에 눈길을 돌리면 카즈히코는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가 된다. 오츠지 카즈히코는 겐페이의 필명이다.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볼 수 없지만, 본명으로 발표한 예술 분야 책은 네 권이나 번역되었다. 뜻밖의 발견이다.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사실은 다른 후보작과 비교해가며 이러니저러니 토를 다는 일을 하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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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5-1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부분을 읽으면서 강자의 여유를 느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벨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낄까도 궁금합니다. 상에 얽매이지 않는건 물론 필요하지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는 상당히 스트레스 받으실듯해요.

cyrus 2016-05-20 16:15   좋아요 0 | URL
뭐 하루키 본인이 상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믿어야죠. ^^

2016-05-19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20 16:17   좋아요 1 | URL
다른 알라딘 이웃님들이 한강 소설의 번역에 대해서 이미 언급했지만, 번역이 문학상 수상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5-20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는 앞으로도 아쿠타가와상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거기나 한국이나 파벌싸움도 있고, 심사위원의 고집이랄까, 곤죠랄까,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cyrus 2016-05-20 16:23   좋아요 0 | URL
만약 제가 소설가였다면, 파벌이 주름잡는 문단에 발 딛기 싫어서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싶습니다. 문학상을 당당하게 거부해서 더 유명해지는 작가도 있으니까요. ㅎㅎㅎ

보물선 2016-05-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세계적인 독자를 확보한 하루끼가 그깟 상에 뭐 그리 연연하겠어요~ ㅋ (노벨문학상 한번 받아서 끄읕! 찍어주면 좋겠습니다만~)

cyrus 2016-05-20 16:24   좋아요 1 | URL
작가가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이 소설 한 편 쓰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이 아니라 문학상 수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일 것 같습니다. ㅎㅎㅎ

양사나이 2016-05-2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뭐랄까요. 하루키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일본 문단에서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마이웨이거든요. 하루키가 굳이 이 챕터를 쓴 건 상에 대해 오해가 너무 커져버려 정리를 하고 싶었나봅니다. 오랜 하루키 팬으로 이런 글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진 않네요. 그냥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말이죠. 역으로 보자면 변명 아닌 변명처럼 보여지기 때문이죠. 이 부분 하루키 역시 알고 있을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쓴 하루키가 대단해보입니다. (역의 역으로 보자면)


제가 생각하는 하루키는 상에 대한 스트레스는 맥주 거품만큼 신경쓰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이거든요.

cyrus 2016-05-20 16: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학상에 연연하지 않는 하루키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문학상에 대한 스트레스 없고, 심지어 글 쓰는 일마저 즐겁다고 했으니 하루키는 천상 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6-05-20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110쪽)

˝하루에 원고지 20매씩 규칙적으로 쓴다˝는 하루키.

인터넷에서 본 글입니다. 존경스러운 점입니다.

cyrus 2016-05-21 17:05   좋아요 0 | URL
표현이 참 좋은데, 정말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이 써질까요? 하루키의 능력이 부럽기만 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