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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무딘 감동으로 들리는
나이 사십 줄에 시를 읽는 여자

따뜻한 국물 같은 시가 그리워
목마와 숙녀를 읊고는
귓전에 찰랑이는 방울소리에
그렁한 눈망울 맺히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더 뭉클해
정성스런 다림질로 정을 데우고
학위처럼 딴 세월의 증서
가슴에 품고 애 닳아 하는

비가 오면
콧날 아리는 음악에 취하고
바람불면 어딘가 떠나고 싶고
아직도 꽃바람에 첫사랑을 추억하며
밥 대신 시를 짓고 싶은
감수성 많은 그녀는

두 열매의 맑은 영혼 가꾸면서
꽃이 피고 낙엽이 질 때를 알아
오늘도 속절없이
속살보다 더 뽀얀 북어국을 끓인다

아...
손톱 밑에 가둬 둔 스무 살 심정이
불혹에 마주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김춘경·시인, 1961-)


18년 전 오늘 올린 글이라며 뜬다.
방금 책읽는나무 님 페이퍼를 보고 응원의 마음으로 댓글을 쓰고 왔는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18년 전에 내가 올린 시에 책읽는나무 님과 나눈 댓글과 답글을 만나다니. 반가워라. 그때도 난 호기심과 도전, 사소한 것에 대한 경이감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소중히 여겼구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뽀얀 북어국도 탕국도 잘 끓이고 가지가지 나물도 조물조물 잘 무친다. 꾸준히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나누고 여행하고 …

18년 전 오늘 난 스케이트를 막 시작해 인생선배 언니들과 초급반에서 타고 있었다. 2년반 정도 신나게 타고 그만 두었는데 지금도 올림픽 스케이트 종목은 보는 편이다. 그땐 제법 물찬 제비처럼 스케이팅 했는데 이제 못한다. 무릎이 후들후들 ㅎㅎ
그리고 독서지도사를 하며 대학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 등록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지금은 나름 제몫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성인이 되었다. 5년 터울 자매가 같은 고교와 대학교를 졸업해 감회가 남다르다. 오랜 객지생활이 짠하기도 하고. 큰애 때와는 달리 작은애는 이번에 온라인 졸업이라 교정에서 학사복 입고 자유롭게 사진 찍고 오후엔 아이의 제안으로 처음 스튜디오에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기적으로 찍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을 어색해 하는 큰아이를 보며 스튜디오에 안고 가서 백일사진 찍던 때 사진사가 딸랑이를 흔들어주자 이도 없는 연분홍 무른 잇몸을 아래위 활짝 내보이며 까르르 까르르 웃던 뽀얀 얼굴이 내내 생각났다. 지금은 서른을 앞두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며 열심히 또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 하는 여리고 또 강한 딸. 올해 말에는 10년의 서울 생활 접고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가치관이 서로 다른 딸들, 행복하길 무조건 응원한다. 작은딸은 로스쿨 입학,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자식 이야기 하는 거 아니랬는데 노친네처럼 해버렸네. 아무튼 주말에 혜화동으로 이사한다. 이사에 정리까지 돕고 집에 오면 3월이 훅 다가와 있을 듯.

18년 후 우리는 무얼 하며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화가들의 자화상을 눈여겨 보길 좋아한다. 얼마전 미술책이 많은 갤러리카페에서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혼자 세잔을 만났다. 햇살 좋은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아뜰리에와 소담한 정원의 산들바람을 추억하며… 그때의 추억은 다음에 세잔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하기로...
우리 가족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화상이지 않을까. 소중한 날들 가슴 벅찬 나날. ^^


세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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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2 10: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8년 전에도 알라딘 서재가 있었군요 ㅋ 완전 놀랍네요. 아직까지 꾸준하신 프레이야님은 대단하신거 같아요 ㅋ 저도 18년 전에 알라딘 했으면 좋았을텐데 ㅜㅜ

프레이야 2022-02-22 10:31   좋아요 5 | URL
새파랑 님 지금부터 18년 주욱~^^

청아 2022-02-22 10: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꽤 오래되었네요?
추억을 되살려주는 알라딘! ^^*

프레이야 2022-02-22 10:31   좋아요 4 | URL
글쵸. 추억 소환해 줘서 땡큐더라구요 ^^

stella.K 2022-02-22 1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18년 전에 전 뭐하고 있었을까요? 짝수 년이라 나름 좋은 해를 보내고 있었을 것 같긴한데 전반적으로 하던 일 지겨워 코에 바람 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프레이야 2022-02-22 10:34   좋아요 5 | URL
ㅋㅋ 코에 바람은 뿜기도 들여보내기도 해야죠 자주.

책읽는나무 2022-02-22 14:23   좋아요 3 | URL
오 천 원!!!
맞아요..오천 원 한 번 받아 볼꺼라고 기를 쓰고 서재폐인 노릇 했었어요. 이제 서서히 기억납니다.
그땐 리뷰 당첨금도 오 만 원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것도 어떡하면 받을까? 기를 썼던 열정이 넘치던 때였단 걸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열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분들의 열정 넘치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적으니 너무 노친네 같은 소리 같군요?ㅋㅋㅋ

프레이야 2022-02-22 15:19   좋아요 3 | URL
ㅋㅋ 책읽는나무 님 노친네라굽쇼.
라떼타령이지만 당첨금이 컸죠 ㅎㅎ 당시 넘사벽 지존들 생각납니다. 서재폐인,이라는 말도 새삼 다시 보니 반갑네요. 밤샘하며 폐인 노릇했어요 저도. 어찌나 다이나믹했던지.

stella.K 2022-02-22 16:19   좋아요 2 | URL
ㅎㅎ 책나무님도 기억하시는군요!
저도 기억이 나는데 그게 주 장원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주 장원에게 그렇게 많이 줬나? 아리까리 하더라구요.
한 다섯 명인가? 10명 줬던 것 같은데...
여기서 또 가려서 월 장원인지 기 장원(?)인지 뭔지해서
10만원도 준적 있어요. 저 그때 딱 한 번 10만원 받아 본 적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알라딘이 통이 참 컸구나 싶어요.
5만원이든 10만원이든 그때 벽돌책은 거의 만5천에서 2만원 정도면
샀거든요. 지금 15000원 하는 책은 250페이지 정도 밖엔 안 되죠.ㅠ

프레이야 2022-02-22 17:17   좋아요 2 | URL
그때보다 지금은 상금을 낮추고 넓게 주는 걸로 바꾼 거 같아요. 당선작이 지금보다 적었더랬죠. 스텔라 님 거금을 받으신 적도 있었군요 와우. 그때 리뷰 당선 관련해서도 논란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 사는 동네 어디든 그렇겠지만요.

stella.K 2022-02-22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금도 늦지 않았슴다. 알라딘 못해도 18년 이상 건재할 겁니다. 제가 알기론 2001, 2년 그 무렵에도 알라딘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블로그가 생기고 주간 단위로 순위를 매겨 30위 안에 들면5천원도 주고 그랬던 믿기지 않은 시절도 있었죠.🤭
앗, 이거 파랑새님 댓글에 다는 글인데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프레이야 2022-02-22 10:44   좋아요 4 | URL
그랬죠. 제가 어린이책 리뷰 여기 올린 게 1990년도 후반부터였던 거 같아요. 지금도 종종 그때 쓴 리뷰에 좋아요가 오더군요. 우린 서재 1세대였죠. 묵은지들 ㅎㅎ 스텔라 님 짝수년도에 좋은 기운 들어오나요? ㅎㅎ
그렇담 올해도!!

프레이야 2022-02-22 15:21   좋아요 2 | URL
ㅎㅎ 🤣 파랑새 님은 누구신가요.
새파랑 님이 파랑새 님으로!! 스텔라 님 때메 완전 빵터져요. 데굴데굴~~~

stella.K 2022-02-22 16:24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가끔 이래요.
예전에 이매지님을 이지매님이라고 한 적도 있었죠.
글자 위치를 제가 막 바꿔요.ㅠㅠ

프레이야 2022-02-22 16:28   좋아요 2 | URL
ㅎㅎ 이매지 님도 생각이 납니다.
쑥떡같이 알아들으니 괜춘해요. 저도 요새 무슨 고유명사가 얼른 생각 안 나고 뭐더라뭐더라 하다가 그다음날 생각나요 ㅎㅎ

페넬로페 2022-02-22 10: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8년전부터 서재에서 활동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때 저는 yes** 에서만 책을 구입했거든요.
두 분처럼 계속 서재에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2-22 10:34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 님도 지금부터 18년 이상 주욱요~^^

거리의화가 2022-02-22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가입은 2001년에 했는데 서재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이제야 좀 활동하고 있는 저로서는 놀랍습니다 그때부터 굳건히 활동한 북플러들이 있어서 알라딘의 명맥이 유지되는게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프레이야 2022-02-22 11:25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화가님. 알라딘서재라는 이름의 둥지가 2003년인가 생겨서 우리는 작은 방을 분양받은 셈이죠. 북플의 전신이랄지요 ^^ 앞으로 더 좋은 시스템으로 진화할거라 믿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책읽는나무 2022-02-22 14: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8 년!!!!!^^
2 년을 더하면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시간이 되네요?
그런데, 왜 제겐 2 년 정도 지난 시간처럼 생각되는 걸까요?^^
무슨 얘긴가? 싶어 링크를 클릭하니, 아...제가 저런 댓글을 남겼군요?
새삼스러워 순간 얼굴이 빨개질 뻔했어요ㅋㅋㅋ
저는 저렇게 날아 오는 제 글들을 읽으면 매번 화들짝 놀라 누가 볼까? 무섭더군요.
어찌나 글을 못썼던지??ㅜㅜ
지금도 늘 그 부분이 고민이긴 합니다만~^^
프레이야님은 18 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에 또 감탄 했습니다.
오히려 더 발전하셨군요? 나물도 조물조물, 북어국, 탕국까지~^^ 저도 한 번씩 놀란답니다. 18 년이 지났더니 내가 이렇게 요리를 즐기며 하고 있을 줄이야?? 하면서요. 아...즐기며.는 빼겠습니다. 하기 싫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ㅋㅋㅋ
암튼 저도 잠깐, 그때와 내가 많이 변한 부분도 있고, 달라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 생각하느라 하던 일 멈추고 앉았네요.
암튼 추운데 따님 살뜰하게 챙겨 드리고, 같이 시간 많이 나누시고 내려오시길요~^^
이 와중에 저는 모카롤 케잌 사진에 군침 흘리는 중입니다.ㅋㅋㅋ
둘째 따님이 희령이었나요? 이름이 이뻐 기억에 남는데...큰 따님의 이름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합니다. 암튼 그림책 읽던 아이들이 벌써 서른이 목전이고, 둘째는 로스쿨을 가게 되고...모두들 대단합니다.
18 년 전 저도 서른이었던 것 같네요?
그때 저도 큰 따님처럼 좀 심란했던 것도 같고...그러네요?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프레이야 2022-02-22 15:14   좋아요 4 | URL
진짜진짜 소중한 댓글이죠. 서로 위로하고 힘을 주고 같이 으샤으샤 하며 토닥거렸던 시간들. 고맙습니다. 요리 잘 못하는 울엄마 덕에 한때 요리는 제가 못하는 종목인 줄 알았는데 관심 가지고 팁을 기억하며 해보다 보니 느끈히 해낼 수 있다 뭐 그런 기본적으로 묵은지주부의 배짱이 생겨요. 제가 나름 맏며느리다 보니 어제도 시조부 기일 음식을 했답니다 에고. 둘째가 희령이 맞아요. 그걸 기억하시다니 괌동이네요. 덩치는 크지만 씩씩한 막내랍니다. 님 18년 전 서른이었다구용. 우와! 암튼 그림책 같이 보던 아이들이 어느새 요래 커설랑은… 대견 ㅎㅎ
아 저거 얼그레이롤인데 은은한 단맛에 부드러움이 카페라떼랑 잘 어울렸어요. 저 카페는 부산이에요.
삼월의 어느 좋은 날을 기다리며~^^

oren 2022-02-22 1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살이 몇 해였던지 이젠 손꼽아 헤아려봐도 몇 해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이 흘렀네요.
네이버에서 블로그 기능이 처음으로 생겼던 때가 대략 2002년쯤으로 기억하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라딘 서재 블로그도 생겨났던 듯해요. 저도 2003년부터 알라딘에 ‘서재‘라는 걸 마련했었고요. 알라딘 초창기 시절 프레이야 님의 열정 넘치는 리뷰와 페이퍼에 달렸던 (여러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야 했던) 수백 개의 댓글돌도 새삼 떠오르네요.^^ 시도때도 없이 알라딘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던 그 옛날의 그토록 열정 넘치던 알라디너 님들은 다들 어디로들 사라졌는지도 문득 궁금하네요. 다들 안녕하시겠지요? 원시 마을 같았던 알라딘 초창기 시절, 댓글이 달리면 꼬박꼬박 이메일이 오고, 그걸 보고 나서야 댓글을 달던 추억도 떠오르네요.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나서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도 댓글을 확인하고 답글을 달면서 신기해 했던 생각도 나고요. 주말이면 아이들 데리고 어딜 다녀올까 고민했는데, 이젠 주말에나 볼 수 있는 직장인 아들을 기다리는 처지로도 변했고요. 사람이 50 고개를 넘으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씩 궁금할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 나이도 청춘으로 여겨질 때도 있어요. 자화상도 내 꺼보단 과거에 살았던 인물들을 더 살펴보게 되고요.^^
* * *
나는 25세와 35세 때의 내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미 몇 갑절이나 내가 아니게 되었던가!
- 몽테뉴

프레이야 2022-02-22 15:03   좋아요 3 | URL
그때 그사람들 진짜 어디로 가셨을까요. 어디선가 제자리에서 또 좋은 삶을 꾸리고 계실 거라 여깁니다. 북적북적 주고받고 이벤트도 자주 하고 날밤 새며 비댓 주고받으며 마음 나누고 그랬죠. 어떤 사인에 논쟁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상처입고 떠난 분들은 아쉽구요. 좋은 책벗들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지금도 여전하지만 말이에요. 50은 생각지도 못했던 숫자인데 오렌 님도 비슷한 감정이시죠. 청춘입니다 아직. 늘 깊이 있는 독서를 하시는 님 덕분에 몽테뉴의 문장을 또 만나네요. 길을 걷다 종종 뒤를 돌아보는 일, 필요한 것 같아요. ㅇ전의 초상화나 초상사진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은 그렇다해도 표정이나 얼굴의 분위기는 자신이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생각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거니 싶어요. 추억소환 감사합니다 😊

잉크냄새 2022-02-22 1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1기라 불리던 시절이었죠. ㅎㅎ
알라딘을 쓱쓱 문지르니 18년전의 추억을 가져오는군요. 감사해야겠어요. 그 오랜 세월 빛바랜 흔적을 간진해준것만으로도.

프레이야 2022-02-22 14:55   좋아요 3 | URL
잉크냄새 님도 같은 기수지요. 반갑습니다. 간혹 게으름 부릴 때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소중한 램프지요. 쓰담쓰담 해주면 추억이 슝~ 하고 떠오르니 말이죠. 빛바랜 것들이 새로이 살아나는 마법 같은. ^^

水巖 2022-02-22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1기 알라디너 있어요.ㅋㅋ
그때도 할아버진데. 아직까지 할아버지를 계속하고 있군요.
2003년부터 알라딘 서재 문을 열었는데 프레이야님이 도움을 많이 주셔서 안착을 했죠. 고마워요.

프레이야 2022-02-22 15:51   좋아요 2 | URL
우왓 수암 님 진석이 외할아버지의 서재지기 님이시죠. 건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특히 미술과 사진 관련해 풍부하고 깊은 혜안을 갖고 계셔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평생 하나의 길로 정진하신 점도 그렇고 고매한 감식안도 존경합니다. 중절모 쓰고 베이지 트랜치코트에 따스한 미소 못 잊지요. 인사동 떡카페가 처음 만남이었는데요. 그때로부터도 14년은 흐른 거 같아요. 오래 건강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수암님.

stella.K 2022-02-22 16:28   좋아요 3 | URL
와, 수암님 여기서 또 뵙네요. 잘 지내시죠?
오늘 프레이야님 페이퍼 덕분에 동창회 하네요.
그 시절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어요.ㅠㅠ

mini74 2022-02-22 1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18년 우와. 18년전이면 애 업고 일하러 다닐때네요 ㅎㅎㅎㅎ 그 땐 꼬물꼬물 귀여웠는데ㅠㅠ 그 시절엔 알라딘에서 유아그림책을 제일 많이 샀던 거 같아요. 프레이야님 나무님 등 알라딘의 시조새? ㅎㅎ 같은 분들이군요 영광입니다 ㅋㅋ 공부라는게 참 지칠만도 한데 작은 따님 대단하세요. 파이팅입니다 ~

프레이야 2022-02-22 18:15   좋아요 3 | URL
파이팅 고맙습니다 ^^
저를 안 닮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미니 님 애 업고 일하러 다니셨다니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씩씩하게 막 뿜뿜 상상되면서 미소가 지어집니다. 꼬물꼬물 귀여운 것들이 이제 늙어가네요 같이 ㅎㅎ 그 시절 어린이책과 그림책 무지하게 사면서 리뷰 쓰게 되었고 그렇게 알라디너로 발을 들였지요. 시조새 ㅋㅋ 그림책은 언제나 참 좋아요. 요새도 가끔 책장에서 눈에 드는 대로 골라 봅니다.

희선 2022-02-23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는나무 님과 프레이야 님은 열여덟해 된 사이군요 열여덟해가 지났을지... 오랫동안 사이를 이어가시다니 대단합니다 열여덟해 뒤는 어떨까요 길게 느껴지지만 열여덟해가 지난 뒤엔 벌써 그렇게 지났나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이곳이 있을지, 있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바뀔지... 많이 바뀌지 않으면 좋겠네요 열여덟해가 지났으니 따님도 많이 자랐군요 따님 둘 다 앞으로 멋지게 살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02-23 01:41   좋아요 3 | URL
희선 님 늦은 밤에 댓글 반가워요.
저도 책 좀 보다 늦어졌어요. 자기 전에 보게 되었네요 희선 님의 발자국을. 어떤 것도 단정짓지 말고 일희일비하지 않기로요. 앞날은 아무도 모를 일이고 날씨는 매일 바뀌지요. 어느 날이든 나름 괜찮으니 즐길 수 있는 마음이면 좋겠다 정도에요. 시조새 알라디너 1세대들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누고 그랬어요. 그림책 보며 같이 아이들 키운 느낌 ㅎㅎ 그땐 지금을 예상이나 했을까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 굿나잇 ~

transient-guest 2022-02-24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8년 전이면 전 무려 이십대의 나이였어요 그때도 알라딘 서재가 있었다니 신기합니다 제가 서재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대충 11년 정도가 되니 아직 7년이 더 남았네요 그 즈음엔 요즘 꿈꾸는 것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지 궁금하고 막 걱정도 되네요

프레이야 2022-02-24 19:42   좋아요 3 | URL
2011년이었군요. ^^
7년 후, 적지 않은 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꿈꾸고 계신 것들에 가까이, 즐기고 계실 것 같습니다.
덩달아 무작정 고무되는 느낌이에요.

페크pek0501 2022-02-25 14: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 서재의 문을 연 게 2009년이었으니 13년째네요. 프레이야 님이 선배네요.ㅋㅋ
18년 뒤에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그때도 서재에 제가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 예상은 반반이에요. ^^ 오늘이 제일 젊은날이 되겠습니다. 이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2-25 15:51   좋아요 4 | URL
오모나 2009년이면 전 좀 힘들 때였어요. 불혹이라는 나이로 이미 접어들었는데 불혹은커녕 혹이 번성해서는 ㅎㅎ 그런 것들의 과정이 마음에 굳은살이 된 점도 있지만요. 반반메뉴처럼 인생은 늘 반반 ㅎㅎ 18년 후에도 우리 여기서 살아요. 페크님 글을 그때도 볼 수 있기를. 오늘이 최고 젊은날 맞습미돠!

서니데이 2022-03-0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년 전이라고 하면 한참 전 같은데, 그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오래전 같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읽으면서 저는 18년 전을 생각하니 특별한 것이 없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네요.
프레이야님 오늘은 날씨가 많이 따뜻했어요.
편안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3-03 18: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올해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삼월이 사흘 지나네요. 아직 바람이 좀 차갑지만 봄기운은 완연하네요. 마음이 먼저. 이월엔 서울을 세 번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새로운 계절 기운차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이래저래 정신없이 페이퍼가 밀렸다. 일단 미뤄두고 간단히라도 한 가지만 기록하자. 설날을 맞이하야 내일은 음식준비를 하고 뭐 마음이 또 분주해진다. 


방전된 느낌이랄까, 뭔가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 연료를 채울 필요성이 느껴졌다. 훌쩍 2박 3일의 제주 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일상은 그대로 나를 반겨주었다. 물론 우리집 고양군 모꾸 일명 꾸돌이도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서 내려와 슬쩍 내 바지에 부비적거렸다. 잘 다녀왔냐옹. 제주에서 길냥이들을 볼 때마다 요 녀석 생각이 나서 말도 걸고 그랬는데 간식을 들고 가지 않아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특히 성격 좋던 하북포구의 뚱냥이 녀석, 미안하다. 뭐 좀 내놓고 가라고 그렇게나 애옹거리며 다가왔는데 ㅜㅜ 


이번엔 조천 쪽에 숙소를 두고 다닐 생각이었다. 제주에 내린 첫날은 보슬비가 내렸다. 공항에서 우산을 사고 렌터카 찾으러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금방 빗방울은 잦아들었고 함덕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만춘서점에 들렀다. 1호점과 2호점이 나란히 조금 간격을 두고 있는데 2호점에서는 구매한 책을 창가 테이블에 앉아 읽을 수 있다. 나처럼 혼자 온 아짐이 열심히 책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인지는 모름.


 김승옥의 <차나 한 잔>

 한 권만 골랐다. 민음사 쏜살문고. 부피가 작아 가볍게 여행에서 읽기에 좋다. 

 단편 4개가 실려 있다. 서울의 달빛, 야행, 차나 한 잔, 서울 1964년 겨울.

 숙소에서 자기 전에 읽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성감수성이 어떻고 할 대목들이 많지만 60년대 중반이란 걸 감안하고   흥미로운 단편들. 현대 지식인의 허약한 민낯을 심연에서 건져올려 까발리는 느낌이다.

 비단 이런 부류에게만 국한된 것일까나. 뭔지 모를 힘에 떠밀려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섬 뜩한 두려움...  젊음이란 게, 여생이란 게 어두운 미로를 더듬어 나아가야 하는 일이지. 두려움은 삶의 종결지점까지도 가시지 않을걸.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 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 서울 1964년 겨울, 중




서점을 나와 바다쪽으로 걸어가는데 비를 맞아 털옷이 축축한 고양이 한 마리가 음침한 눈으로 소나무 아래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서서 바라보니, 나를 잠시 쳐다보다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한다. 추워 보이고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울집 냥이와 달리 길냥이들에게서 느끼는 공통점은 눈빛이 흐리고 눈을 바로 뜨지 못한다는 사실. 몸이 좋지 못하면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불쌍한 녀석들.



전이수 카페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이수와 동생 우태의 글과 그림에 놀랐다. 2008년생 물고기자리 이수는 동화작가로 이미 알려져 있다. 현재 15살인데 미래가 기대되는 공감능력 천재다. 사람의 마음 곁에 이토록 따듯하게 다가가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결국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것이어야 하리. 이수는 글을 항상 먼저 쓰고 그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우태는 이수보다 좀더 활달하고 느긋하고 당당하다. 이수는 4남매의 맏이답게 진지하고 의젓하고 섬세하다. 배우 김고은과 류준열을 섞어 닮은 얼굴에 눈웃음이 밝고 귀엽다. 머리는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른다고 한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의 교육관도 범상치 않은데 어른에게도 존대어를 강요하지 않고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우리는 무슨 말이든 생각이든 표현하지 않고 삼가는 게 몸에 배었는데 참 괜찮은 방식이다. 그림이 하나같이 밝고 따뜻해서 마음을 토닥여준다. 어른들이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온기있고 진지하게 표현할 줄 안다. 그림 옆에 놓인 글은 더욱 그렇다. 사전 예약하고 인원수대로 입장.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은 한 달 전에 예약을 하고 와야했다.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온세상이 음소거된 듯 조용한 아침을 맞이한 다음날 산굼부리에 올랐다.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며 제법 나긋한 풍경을 연출했다. 몸도 마음도 시원했다. 점심을 먹고 1100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 서서 바라본 한라산과 고지에서 본 맑은 하늘, 잔설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눈여겨 봐두었던 카페, 내려오면서 '고도500'에 들러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측 옆에는 신비의 도로다. 좌측 옆 신축 타운빌리지가 꽤 괜찮아 보였다. 훗날 이런 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날이 따스해 테라스로 나와 앉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냉장고 언제 오냐고. 오래된 냉장고 탓인지도 모르고 식혜가 자꾸 상한다고 하셨던 엄마다. 어제 숙소에서 주문을 하고 며칠 후 배송받기로 했는데 기다려지는지 또 확인을... 전화기 단절이 안 된다. 검색도 하고 전화도 받고 카톡도 받고 북플도 보고...


1100고지에서( 2022. 1. 26.아이폰12)



납읍초등학교 바로 앞의 원시림에 혹해서 세 번 갔던 납읍 난대림. 그보다 규모면에선 훨씬 큰 활엽수림 동백동산을 가려고 예정했다. 동백군락이었던 시절이 있어 이름이 동백동산이지만 전체적으로 동백보다 화산암 위에 활엽수림이 형성된 선흘리 곶자왈 지역이다. 이곳도 제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 곶자왈은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곶은 숲, 자왈은 바위. 그러니 제주에 곶자왈이 여러 곳이었던 것. 마스크를 벗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올랐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누워 있었다. 뿌리 쪽에 박인 돌덩이들이 곶자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래 사진) 동백동산 입구에서 먼물깍 쪽으로 올라서 한 바퀴 걷는 데 100분 정도 걸렸다. 사람손이 닿지 않은 숲이고 사람도 없어 살짝 무서웠지만 올라가다 보니 그런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먼물깍을 지나고 부터 가끔 한두 명이 맞은 편에서 내려왔다. 곳곳에 뱀조심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뱀은 겨울이라 그런지 한 마리도 안 보여 다행이었지.


동백동산, 쓰러진 나무 (2022.1.27.아이폰12)



동백동산에는 도틀굴이라는 지하 굴 입구가 있다. 4.3사태 때 양민이 숨어 있었던 곳 중의 하나이다. 숲을 빠져나와 낙선동 4.3성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포구, 화북포구를 둘러 곤을동 환해장성과 4.3유적지로 갔다. 조천은 특히나 당시 엄청난 핍박과 희생이 따랐던 곳이고 그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당시 쫓겨났다가 허락을 받고 들어오면서 직접 돌을 날라 쌓은 낙선동 4.3성에는 붉은 눈물처럼 동백이 처연하게 떨어져 있었다. 너븐숭이 기념관에서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와는 좀 다른 전시가 되어 있었다. 강요배의 그림 '젖먹이'가 입구에 걸려 있고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초판본과 번역본까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북촌마을에서 사태의 기점이 되었던 구체적 연월일 시간과 사건이 적혀 있다. 음력 1948년 12월 19일. 이후에도 침묵을 강요당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국제법상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제노사이드는 금지되어 있다. 기념관 맞은편에 애기무덤들 그리고 추모비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무거워진 마음을 덜어주려는지 북촌포구로 이어지는 바다가 무심하게 찰랑거리고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흰 구름이 시시각각 변주하며 하늘에 붓칠을 해대었다. 




애기무덤을 지키는 수선화(2022.1.27. 아이폰12)



너븐숭이로 간다니 그전날 귤을 한 그릇 갖다준 펜션 주인장이 친절하게도 인근 카페를 추천해 주셨다. 아라파파 a la papa. 프랑스어로 천천히, 한가로이라는 뜻. 바다가 바로 눈앞. 카페에 가면 비치해둔 책을 보는 편인데 여긴 과월호 채널예스가 여러 권 있었다. 주인장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대목. 정유정 소설가 인터뷰가 마음에 들어왔다. 인간심리에 관심이 많고 <완전한 행복>은 욕망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고. 2년 후 나올 두 번째는 미래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한다. 계획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강단이랄까 배짱이 느껴졌다. 세상의 비위를 맞출 생각은 없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이 좋아해주길 바라지 세상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쫓아다니며 쓸 생각은 없다는 작가다. 불안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다 써 놓고 아름다운 문장은 지워버린다는 인터뷰를 본 적도 있다. 이거 저거 좀 보면서 바다멍도 하고 화북마을 곤을동으로 달렸다. 화북포구에 잠시 차를 대자마자 붙임성 좋은 치즈냥이가 애옹대며 다가왔지만 줄 게 없었다. 그걸 눈치채고는 저만치 가서 야속하다는 듯 쳐다보네. 에고 맨날 깜박하지 말고 간식 넣어다녀라 좀!! 




아라파파 앞마당(2022.1.27 오후 1시경)




 














곤을동4.3유적지에서 나와 화장실 갈 겸 근처 카페에 갔는데 뜻밖의 이런 책. 

우지현 작가가 명화와 함께 나란히 짧은 글을 실어 놓았다.

우지현 님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표지를 그린 분이네.


<풍덩!> 책장을 넘겨보다가 골라놓은 그림들에 마음 끌렸다.

특히 모네의 스승이자 인상주의 시초, 외젠 부댕의 에트르타 바다가 6년전 추억을 불러 주었다. 모네는 5살 때 부댕을 만났다.

모네의 일출과 부댕의 일몰을 대조해 보는 것도 재미나다. 평생 어딘가에 빠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의 바다에 빠져 평생 그 바다 풍경을 그린 부댕은 말년에 자신이 태어났던 항구마을 옹플레흐에 머물며 항구와 바다를 그렸다. 부댕의 그림에는 격정적이거나 평화로운 하늘과 바다와 구름이 살아 있다. 한시도 같은 풍경이지 않다. 항구가 그림 같던, 항구를 그리는 화가들이 캔버스를 놓고 서서 열심이던 옹플레흐에는 에릭 사티 박물관이 있다. 항구에서 목조 까트린성당을 지나 조금 오르막 골목으로 걸어 한 바퀴 돌아내려와 에릭 사티 생가가 있는 골목으로 내려왔다. 


에트르타에 닿았을 때는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며 항구마을의 분위기를 흠뻑 적셔 주었다.

외젠 부댕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던 르 아브르의 앙드레 말로 미술관 MuMa는 오르셰미술관 다음으로 인상주의 그림을 많이 보유한다. 그 때 보았던 외젠의 그림 속 바다와 항구, 폭풍과 구름 그리고 풍경 속의 고독하거나 강인한 사람들의 평범한 인상이 강렬하다. 지금은 다소 흐릿해진 추억을 한 장의 그림이 소환해 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지. 미술관에서 눈여겨 보였던 건 부댕의 그림만이 아니었다. 노인분들이 유독 눈에 띄었고 모두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에트르타의 이 코끼리바위를 배경으로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하는데 우지현의 <풍덩!>에서 발견한 이 그림은 그때 미술관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 그림이다.




2016. 7월초 앙드레말로미술관 외젠 부댕 특별전(윗층에서 아래로, 아이폰 촬영)



르 아브르 항구의 일몰/외젠 부댕/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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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30 22: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모네의 스승격이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고 읽은 기억이 나요. 프레이야님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를 가보셨군요. 부럽습니다 ㅎㅎ제주도의 풍경도 좋고 ~ 강요배의 그림엔 늘 제주의 바람이 담겨있는거 같아요. 애기무덤은 넘 먹먹했고.~ 프레이야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 저도 낼 음식해야 하는데 ㅎㅎ 맘은 바쁘고 몸은 느긋하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2-01-30 22:38   좋아요 7 | URL
그림 좋아하시는 미니 님이라 더 잘 아시지요^^ 자연, 특히 바다와 하늘과 구름은 사람에게 무한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저는 바다를 더 좋아했는데 요즘은 숲 또한 좋아집니다. 나이 들어가는 증거인가 봐요. 강요배작가의 <풍경의 깊이>를 만지작거리다 살포시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어요. 작년에 제주의 어느 책방에서요. 눈에 삼삼해서 아무래도 영접해야할 것 같아요. 애기무덤들 ㅠㅠ 설날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맛난 것도 많이 드세요^^ 저도 현재는 몸이 느긋합니당. 뭐든 닥쳐야 하는 사람이라.ㅎㅎ

scott 2022-01-30 22: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부댕의 그림보다 제주 아라파파 앞 마당 풍경이 더 멋져 보입니다!
설 연휴 제주 기행 프레이야님 겨울 바다 향기 가득!!

즐거운 명절 새해 福 마뉘 ^ㅅ^

프레이야 2022-01-30 22:45   좋아요 6 | URL
와락~ 그동안 수다 못 떨고 좀 어수선했어요.ㅎㅎ 지금도 그렇지만.
본 것들이 좀 있는데 집중 안 되어 못 쓰고 자꾸 밀려버렸네요.
앗참, 사울레이터 다큐도 절묘하게 찬스가 왔지요.
24일에 이곳 영화의 전당에서 하루 딱 한 차례 마지막으로 상영했어요.
횡재한 기분!! 지각해 전반 10분을 못 보았지만 ‘사람‘이 보여서 참 좋았어요.
옆지기도 노년에 그러고 있을 것 같아 필름 잘 보관해두라고 했어요.ㅎㅎ
아라파파 괜춘했어요. 발효차도 좋았고요.
님, 건강하게 해피설날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1-30 22: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제주의 소식을 들으면 공감대가 많아 반갑습니다~^
겨울 제주에 다녀오셨군요~~
아라파파 앞마당에서 보는 버다가 넘 좋았겠어요.
저는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해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합니다^^
책을 읽는 분들은 어디서나 책과 함께라서 좋습니다**

프레이야 2022-01-30 23:15   좋아요 6 | URL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제주는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 보이고 돌아오면서 그다음을 예정합니다. 바다 좋아하시는군요. 저두요. 인자도 지자도 아니지만 바다든 숲이든 마냥 좋습니다. 책처럼 숲도 바다도 시절인연이라^^ 설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님.

희선 2022-01-30 23: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멋지지만 아라파파 앞마당에서 담은 풍경이 더 멋지네요 카페 이름처럼 천천히 한가롭게 지내기에 좋을 곳이겠습니다 제주에 다녀오셔서 좋으셨겠네요 슬픈 역사가 있는 곳에도 가셨지만... 1100고지에 있는 건 흰 사슴이군요 찾아보니 심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백록이 바로...

프레이야 님 설 잘 쇠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31 00:22   좋아요 5 | URL
희선 님 마음 담은 말씀 늘 고맙습니다.
백록이 그런가요 ^^ 좋은 뜻이 담겼군요.
설날 보낼 연료 좀 채우고 왔어요.
까치까치 설날 즐겁게 마음 편히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 2월 1일네요 설날이. 우리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에요. ^^

책읽는나무 2022-01-31 06: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주 여행의 동행인은 곧 책이었군요?
어쩜!!!^^
아름다운 풍경과 프레이야님이 올려주신 책들의 풍경이 너무 잘 어우러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집사님 본능!!!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명절 잘 쇠시구요, 건강하고 행복하시길요♡

프레이야 2022-01-31 06:59   좋아요 6 | URL
와락 책나무 님 댓글 보려고 눈이 떠졌나 봐요. 홀로여행 좋아요. 가는 곳마다 날 기다리는 책과 고양님들 ㅎㅎ 집사본능 제대로 하려면 먹거리 잘 챙겨다녀야 해요. 허술해 ㅠㅠ
귀여운 둥이랑 민이랑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새파랑 2022-01-31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제주도 다녀오셨군요? ㅋ 완전 부럽습니다 ㅜㅜ 사진 보니까 너무 멋지네요. 역시 사진은 아이폰!

프레이야님이 가보신 곳을 전 한군데도 안가봤군요 😅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음식은 조금만 하세요 ^^

프레이야 2022-01-31 13:20   좋아요 3 | URL
넵 음식은 조금만 먹을 만큼만 해야지요 ㅎㅎ 불 앞에 있으면 안구건조증 심해지고 완전 뻑뻑해요. 아직은 안 바쁘고 어정거리고 있어요. 제주는 갈 때마다 다른 게 보이고 다음에 갈 곳도 내정하고 그맛에 자꾸 가나 봐요.
새파랑 님 연휴 느긋하게 건강히 보내세요 ^^

청아 2022-01-31 12: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거문오름 갔을 때 세계자연유산 투표가 한창이어서 저도 한 표 넣었는데 이제 한 달전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군요. 어쩐지 씁쓸하네요. 그래도 이곳저곳 다니시며 충전이 듬뿍 되셨을것 같아요!! 다음에는 프레이야님 냥이 간식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2-01-31 13:08   좋아요 6 | URL
넵 냥님 간식 챙겨 나가기!
미미 님 가보셨군요. 전 두어 갈 후 예약해야겠어요 ㅎㅎ 그렇게 인원 제한하여 출입하고 관리를 잘하나 보더라구요. 연료탱크 만땅에서 2프로만 덜 채우고 왔어요. 훌쩍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해요. 해피 설날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1-31 12: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냥 확 떠나 버릴까요?
ㅋㅋ
부러워요~

프레이야 2022-01-31 14:57   좋아요 6 | URL
떠날 때는 이거저거 재지 말고 확~ ㅎㅎ 님 피아노 페이퍼 보고 저도 추억 소환했는데 댓글 못 남기고 피아노 좋아하는 작은딸 픽업해 와서 점심 먹고 앉았네요.
해피설날 보내세요 그레이스 님.

페크pek0501 2022-02-04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라파파 앞마당 사진이 너무 좋네요. 한참 보게 만들어요.
19호실로 가다, 김승옥 작가, 순이 삼촌은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순이 삼촌은 읽었는데 오디오북으로도 나와서 최근 들었어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이죠.
책 구경, 이야기 구경, 사진 구경을 실컷 하고 갑니다.^^

프레이야 2022-02-05 14:28   좋아요 2 | URL
페크 님 들으시는 오디오북 어떤 건지 좀 가르쳐 주세요. 오디오는 진짜 집중해서 들어야 하지요. 듣다 옆길로 새기 일쑤라 좀 멀리했는데 이제 좀 가까이해 볼까 싶어요. 이 페이퍼에 사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간략히 줄였어요. ^^

2022-02-06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6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6 0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2-06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제주여행 다녀오셨군요. 얼마전에 연휴 시기에 제주도 여행 가는 분들 많다고 뉴스에서 봤습니다. 여행 잘 다녀오셨나요. 제주도도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진 속에서 차가운 느낌이 묻어나요.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2-08 23:12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 님 어느새 2월도 2주차네요.
제주에 갔던 날은 따스했어요. 저는 추울까봐 생전 안 입던 내복까지 입고 가설랑 ㅎㅎ
날마다 좋은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서니데이 2022-02-16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연휴 지나고 페이퍼 읽었는데, 잠깐 사이에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났네요.
조금 늦긴 했지만, 오늘(15일)이 정월대보름이예요.
프레이야님,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세요.^^

프레이야 2022-02-16 08:05   좋아요 2 | URL
어제 대보름날이었는데 달 보는 걸 깜빡했어요. 오늘 봐야겠어요. 하루 지나서 보면 더 둥글대요. 만월이 되려면 하루가 더 필요하다고. 서니데이 님도 보름달처럼요^^
 
국선도, 대자연의 길 - 사랑하는 국선도 지도자 여러분에게, 도운집 1
허경무 지음 / 밝문화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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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 도운 허경무 / 밝문화미디어

 

 

 

여름 최고의 피서지가 녹음실인데 점자도서관에 자주 가지 못했다. 여름방학 땐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 시간에 맞춰 챙겨줘야 할 것들도 있고 해서 시간 내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해 7, 8월 통틀어 한 권밖에 못 읽고 9월 들어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은 회원신청도서 중에서 따로 뽑아두고 있었는데 여름을 다 보내고 나서 9월에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 두 권의 책인데 나는 1권을, 또 다른 봉사자가 2권을 하기로 했다. 내리 다섯 시간을 녹음했다. 2009년 녹음한 책이다.


국선도 도종사 도운 허경무 선생이 집필한 책이다. 국선도는 9,7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심신수련법이다. 대자연을 완전한 경전으로 삼아 자연을 보고 배우며 수련한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국선도 지도자와 회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주내용으로 엮은 지침서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니 국선도 지도자가 아닌 나에게도 마음닦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전문 작가의 문장이 아니라 그런지 매끄럽지 못한 문장에 비문도 있어 낭독의 흐름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문장을 읽는 동안 자주 호흡이 거칠고 숨이 좀 찼다. 이런 경우 낭독의 즐거움이 덜하지만 내용에 충실히 읽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숨소리가 유독 많이 들어갔더라는 녹음실장의 말과 함께 편집에서 노이즈랑 거친 숨소리 모두 제거했다고. 지금 읽는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흡도 노이즈도 숨소리도 수정할 부분이 차츰 적어지고 오독도 녹음 중 즉시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수정한다.

 

특히 아래의 글은 생각을 붙잡는다.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하여 세상이 변한다. 우리는 그런 분들 덕분에 점점 변화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항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편리하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돌다리가 하나 생길 때도 누군가 찬물에 발을 적시며 징검다리를 놓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큰물을 건너다 많이 떠내려가 죽어야 돌다리가 하나 생겼으며, 오늘날 신호등이 하나 생길 때도 성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어야 신호등이 생기듯이 누군가가 큰 대가를 치러야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6)

 

신뢰감에 금이 살짝 가는 사람을 들라면 나에겐 세 가지가 있다

혀가 발보다 앞서는 사람, 다락방이 없는 사람, 입이 귀보다 바쁜 사람

첫 번째는 말을 해놓고 실행하지 않거나 말만 내세우는 사람이다. 실행하지 않을 거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두 번째는 늘 지나치게 밝기만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그늘이 없어 보이는데 그게 좀 믿기지 않아서다. 마음의 다락방에 고개를 숙이고 가끔 올라가 낮게 엎드려 보자. 미세한 어둠과 먼지 냄새 품은 공기가 아래에서 수런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한결 밝게 들려준다. 세 번째는 말을 선점,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람이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내도 나는이나 내가로 전환해 버리는 기...‘’. 부류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참 재주도 용하다 싶고 일면 부럽기도 하다. 뭐 나도 그럴 때가 있고 그러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앗, 혀고삐를 늦추어 주저앉혀야한다.


말로써는 우주라도 족히 다스릴 수 있겠다, 말로 무슨 이야기를 못합니까? 바닥에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를 줍고 휴지 하나를 줍는 사람, 말없이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에 의해 세상은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논리나 혀나 꾀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이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속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말을 꺼냈다 하면 자기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그 이뤄진 것은 나의 힘이야.', '', '', ''가 나오는 사람에게는 여러분들 얼른 뒤를 보이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변화란 그런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지요. 자기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여들고 어떤 개선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지 불평과 불만과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게 되고 갈등과 분리만 조장될 것입니다. 그런 때 여러분의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7)


말마다 나는으로 시작해 상대의 말을 자르고 말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며 자기 이야기를 해버리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반면교사로 나를 돌아보며 입을 좀 더 자주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를 놓아라, ‘는 잠시 미뤄두어도 좋다. ‘는 나서지 않을 때 가장 빛난다

침묵은 금이고 경청은 다이아몬드다. Lose Yourself.

 

----------- 


사족_ 3년간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일을 마쳤다. 그동안 조용조용 맡은 일 완벽히 해내느라 수고했다고 인사를 전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조촐한 찻집에서 연상의 후임자에게 일을 인계했다.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데 단둘이 대면해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해보긴 처음이었다. 염려와 겸양의 말을 자꾸 하셨지만 야물딱지게 잘하시리라 확신한다. 편집위원으로 속해서 또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 권유해 드릴 것이다. 오늘아침에 단톡방을 보니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250여 명이 속한 곳이니 생각도 제각각이겠으나 말은 줄일 수록 '나'는 나서지 않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간 봉사할 선생님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나 보내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의 서재, 지기이신 수암 님께서 손수 찍으신 민화 판화를 보내주셨다.

좋은 기운 받으라는 마음 고이 받아 올 한 해 잘 살아야겠다.

여러분들에게도 까치호랑이 기운이 전해지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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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1-1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없다˝는 뜻을 음미하게 해주셨네요^^ 프레이야님, 글 쓰시고 책 내시고 사진 찍으시고 간병하시고 플친 이웃 챙겨주시고 사회 봉사에, 3년간 편집장 일도 하시고^^ 글만으로도 나눔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프레이야 2022-01-15 13:32   좋아요 3 | URL
얄라님 기쁨은 우리 마음속에! 고맙습니다.^^
다락방도 우리 마음속에요.
북플에는 다락방님이 있어 참 좋지요.
어릴 적 다락방, 지금도 생각하면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다음에 만약 집을 짓게 된다면 저는 꼭 다락방을 만들고 싶어요 ^^

책읽는나무 2022-01-15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뢰감에 금이 가는 세 사람!!!
제게도 경종을 울리는 글귀입니다^^
해당되지 않게 행동하며 살아야 할 일이네요.
편집장일을 3 년이나 하시면서 애 많이 쓰셨겠습니다. 자리를 맡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해 낸다는 건, 아~~ 생각만 해도 참 대단해 보이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암님의 호랑이 민화 판화 사진은 정말 멋집니다. 얼마 전 서재에 미술관 나들이 글을 올리셨던데 반갑고, 찡~ 했습니다.
호랑이 해라 그런지 더욱 감동적이군요!!!

프레이야 2022-01-15 17:23   좋아요 3 | URL
책을 사고 책을 보는 일이 다락방에 기어들어가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라는 말씀에서 역시 울책나무님 심안이 다감하다는 걸 느껴요. 고맙습니다. 못다 한 말들은 가슴에 ^^
수암님 더 판화가 무려 1973년작이더라구요.
대단하신 분. 진석이 외할아버지로서도 얼마나 살가우신지요. 여전히 미술관 나들이 하시고 내내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까치호랑이 어쩐지 귀엽죠^^

잉크냄새 2022-01-15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맞추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는데,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변해왔다고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겹쳐지네요.

프레이야 2022-01-15 17:1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잉크냄새 님.
너무 현명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오늘아침 또, 새삼 그런 생각을 했어요.

stella.K 2022-01-15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알라딘에선 잘 못 뵈어서 문득 궁금했는데 잘 계신가 봅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방에 걸을 달력이 없다고 서재에 징징댄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시고 수암님 남는 달력있다고 친히 전하러 한 번 뵌적이 있었죠.
가끔 소식 전해주시면 좋을 텐데.
수암님이 판화가셨군요.사진 근사하네요.^^

프레이야 2022-01-15 19:17   좋아요 1 | URL
2019년 가을에 그동안 해오신 판화와 관련 소품과 자료들 전시를 북촌에서 하셨어요. 제가 그때 마침 서울 갈 일도 있고 해서 잘됐다 하고 갔거든요. 예상보다 더더 얼마나 꼼꼼하게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놓으셨는지 놀랐어요. 노트까지 꼼꼼히. 오랜 세월 한 우물 파시며 삶을 밀고 나간 사람의전형을 본 것 같아 감격했답니다. 그쪽 관련 일 하시는 분들과 따님이랑 가족들도 계셨는데 그중 아마도 진석이 모친도 계셨을 것 같아요. 더더 전에 임사동에서 처음 뵙고 두번째였어요. 오래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판화박물관도 있던데요^^

희선 2022-01-16 0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일 세해 동안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다음 사람한테 넘겨서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기도 하겠네요 신뢰감에 살짝 금이 가는 세 가지... 저도 잊어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말은 거의 안 하지만, 이런 댓글도 말이라면 말이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레이야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16 08:24   좋아요 4 | URL
댓글도 성격이 드러나지요.
희선님이 자신과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차분하고 다정하게 주시는 말 고맙습니다. 말은 부메랑이라 위로는 타인에게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도 하는 게 되어요. 작년엔 또 다른 단체에서 7년간 했던 비슷한 일을 인계하면서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섭섭은 잠시였고 시원이 오래. 어떤 일도 자리도 물 흐르듯이…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은 언제나 있고요. 좋은 기억으로 또 남아요^^
내일부턴 전국적으로 영하라고 하네요.
감기조심요^^

페크pek0501 2022-01-18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승.전.‘나’. 부류다.- 빵터졌어요. 꼭 저한테 하시는 말씀도 같고요. ㅋㅋ
저는 친구 만나면 너무 신나서 말이 많았다가 점점 기운 빠지면서 그리고 듣기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때부터 쭉~~ 듣기만 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상대방은 저를 기다려 줘야 하는 거예요.하하~~

프레이야 2022-01-18 16:42   좋아요 1 | URL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애교 수준이죠 ㅎㅎ 사실 말하는 게 에너지 엄청 드는 일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분들 대단해요.

scott 2022-01-20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마다 ‘나는’으로 시작해 상대의 말을 자르고 말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며 자기 이야기를 해버리는...]
나날이 저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이들의 모습이 여기에 뙁! ㅜ.ㅜ

sns시대에 ‘나‘가 우선이 되었습니다.ㅎㅎ

프레이야님 3년동안 250명을 편집하고 통솔하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까치 호랑이 기운 잔뜩 받고 2022년 힘찬 한해!를 ^^

프레이야 2022-01-20 01:00   좋아요 2 | URL
스캇님에게도 까치호랭이 기운 한껏 뻗치길 바랍니다. 북플 좋은 사람들이랑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지욤. 매일매일 마음 가운데 즐겁게요 ^^

2022-01-23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22-02-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갈 때마다 오름 한 개씩은 다녀오자 생각해요.
1월 중순에 동백 여행가서 1100고지 보려고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통제되어 못가봤죠.
거문오름, 사진으로 보니 좋습니다. ^^

프레이야 2022-02-08 17:3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1월 중순에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저는 눈이 많이 오면 못 가고 눈이 안 오면 덜 붐빌 것이니 가보자
그러고 갔는데 다행히 날이 따뜻해서 눈도 안 오고 사람도 적고
드라이브해서 가볼 만 했어요. 오름 하나씩 괜찮네요.
저는 다음에 거문오름 한 달 전에 예약하고 도전하려구요.
사진은 1100고지 입구에용. 백록 뒷모습.
 










Total Eclipse / 아그네츠카 홀랜드




바다로 간 태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스물한 살에 연기한 랭보는 그냥 살아 있는 랭보. 데이빗 듈리스가 연기한 폴 베를렌도 못지않다. 광기 어린 두 시인의 이단아 같은 삶을 보면 우리 삶의 머리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죽은 랭보를 그리워하며 그들이 자주 마셨던 초록 압생트 두 잔을 주문하는 베를렌. 그는 나의 위대하고 찬란한 죄악을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고 회상한다.


18719월 랭보는 베를렌을 만나러 파리역에 도착한다. 이미 문단의 인정을 받고 있었던 상징주의 시인 27살 베를렌과 스스로 천재이길 선택한 16살 랭보의 만남은 시작부터 위태롭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처음부터 서로를 깊이 이해한다. 세기를 앞서 서구 문명과 종교를 비판하는 혁명적인 시를 쓴 랭보에게 베를렌은 유일한 지지자이며 후견인이었다. 베를렌은 다들 혐오하는 랭보의 난해한 시를 두고 한마디로 ‘something new’라며 녹슨 자신의 영감에 자극을 얻고자 한다.


보들레르를 숭배한 랭보는 재능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힘겨운 여정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다. “감각의 타락을 통한 선지자 - 견자(見者), 절대자 - 가 시인이라고 말하는 랭보는 세상 모든 경험을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랑하며 거친 자유의 세계를 추구한다. 자신은 미래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베를렌의 장인이 아끼는 개 조각상을 깨어버리고 추궁하는 부자 영감에게 개들은 원래 제멋대로예요(Dogs are liberal).”라고 말하고 수정으로 만든 십자가 따위를 절도하며 자비심 없는 종교를 조롱하는 자도 랭보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후 유난히 엄격한 어머니의 굳은 얼굴과 목까지 단추를 채운 검은 옷에 숨 막혔던 그는 종교뿐만 아니라 가진 자들의 위선에 분노했다.


랭보는 자신의 시를 스스로 낭송하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꾸한다. 수사적 기교에 치우치는 당시의 낭만시를 반격하듯 그의 시어는 과격하고 생경하고 남성적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도 그냥 말일 뿐이라고, 말은 말일 뿐이라고 쏘아붙인다. 누구의 비평도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베를렌이 이제 떠나겠다는 랭보에게 권총을 쏘고 동성애가 발각되어 200프랑의 벌금을 내고 2년간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랭보는 시골로 돌아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쓴다. 불과 몇 개월 동안 파격적인 산문시를 줄줄 써 내려가고 일부는 선별하여 불에 태운다. 격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랭보는 인간의 내면을 독파하는 예민하고 조숙한 눈을 지녔다. 사랑이나 결혼, 연애의 심층까지 십 대의 나이에 그토록 예리하고도 냉소적인 눈으로 보는미소년 랭보는 3년간의 미친 듯한 시작(詩作)으로 분노와 격정에 종지부를 찍고 1875년 절필을 선언하며 스스로 침묵의 대가(Master of Silence)’라고 호명한다.


저주받은 시인이자 시인의 왕으로 뽑혔던 베를렌의 시는 충동적인 행적과는 달리 곱고 애절하다. 특히 감옥에서 나와 쓴 시집 예지에서는 신을 찬양하고 회개한다. 베를렌이 검은 숲에서 랭보를 만나 마지막 작별을 하며 충고한 한마디는 재능은 있지만 비현실적인 면만 좀 벗어난다면이었다. 신비하고 몽상가다운 천재 랭보는 누구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듯 베를렌의 충고 또한 쓸모없는 것으로 내다 버린다. 랭보는 사랑을 담은 눈으로 베를렌에게 말한다.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 줄 알고 당신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 줄 안다.”

 

천사의 날개인 양 하얀 깃발을 매단 장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랭보는 바다로 들어간다. 그는 평생 동경했던 태양을 발견했고 태양이 바다와 만나는 그곳이 바로 영원(Eternity)’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나눈 편지의 내용이 베를렌의 내레이션으로 흐르고 태양이 바닷속으로 뒤섞여 녹는다. 바다는 영원한 모성본능, 거친 자유의 상징으로서 빛난다. 자신의 험악한 언행을 받아주고 미래를 보는시의 세계를 이해한 유일한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랭보의 가엾은 영혼을 영화는 그렇게 바다로 안치해 위로한다. 서른일곱 살에 목발을 짚고 더러운 파리의 거리에서 암세포가 전신에 퍼진 생을 마감한, 태양처럼 뜨거웠던 랭보는 수식어 없이 그냥 인간 랭보로 이세상에 속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사회를 비판하던 저항시인 랭보는 생의 말기 10년을 에티오피아에서 무기 매매상으로 살았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남들을 도와야 한다.”고 동생 이사벨에게 호소한다. 이사벨은 랭보의 과격한 시를 실제로 고치기도 하고 없애기도 했지만 냉정한 어머니가 보는 데서 죽어가는 오빠를 손수레에 태우고 태양을 보여주려고 데려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랭보가 죽은 후 베를렌을 찾아와 오빠의 원고를 돌려달라고 하지만 베를렌은 이사벨이 주고 간 주소를 찢어 버린다. 베를렌이 지켜낸 랭보의 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견자(見者)의 시를 완전히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압생트 두 잔을 앞에 둔 베를렌 앞에 랭보가 마치 살아 돌아온 것처럼 앉아 그의 손바닥에 입맞춤한다. 고통을 수반한 진정한 사랑을 위로하듯 오래전 랭보가 칼끝으로 찔렀던 그 손바닥에... 개기일식처럼, 예술도 사랑도 어둠처럼 찬란할 것이라는 듯, 스스로 바다에 흡수되어 버린 천생 시인!


두 영혼의 완전한 잠식과 합일을 그린 폴란드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1995)를 보면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만들어간 시인, 타인의 잣대에 맞춰 자신의 재능을 소모하지 않은 오만하고 영감이 번득이는 영혼이 그리워진다.



- 배혜경 / 부산수필문예 2021겨울(45호)






꼬리_














예지Sagesse / Paul Verlaine


1873년 7월 10일 브뤼셀에서 폴 베를렌과 아르튀르 랭보는 관계의 급전환점을 맞는다. 이날의 사건은 그들 생의 물길을 돌린다. 선회한 그 물길로 두 사람은 결정적으로 이별하고 각각 <예지>와 <지옥에서의 한철>을 낳는다. 다른 공간 같은 시간에서 시의 배아를 잉태한 건 훨씬 오래전이다. 각자 나름의 결핍된 환경에서 싹튼 기질이 훗날 빚어낸 시어에 놀라울 따름이다. 어머니에게도 아내에게도 광포했던 베를렌의 시는 <예지> 이전 마틸드를 만나고 감각적인 시어를 낭만적으로 쏟아낸다. 1881년 발간한 <예지> 이후의 시는 다소 도덕적 훈계로 들릴 수도 있지만 회한과 회억, 기독교 신으로의 복귀를 소망하며 단순함과 정결함에 복무한다.


1844년 출생한 베를렌은 1858년 최초의 시 <죽음>을 빅토로 위고에게 보낸다. 1862년에는 법과대학에 등록한다. 이후 보험회사와 시청에 근무한 베를린은 1866년 <우수 시집>을 출간하고 1869년 마틸드와 약혼, <고운 노래>, <사랑 축제>를 출간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밀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결혼 후 일 년도 안 되어 드러난 그의 난폭함은 아내 마틸드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1871년 랭보를 집에 처음 맞이해 들이고 첫 아들도 출생했으나 랭보와의 어울림은 부부간의 불화를 가져왔다. 


베를렌 시의 극명한 전환점 <예지>는 사생활에서 엉망이었던 절망적인 베를렌에게서 시적으로 남다른 영혼의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과오를 회심하고 단순함에 귀의하고자 하는 신실한 마음이 가만히 전해져온다. 그것이 개인적인 반성이라 해도 보편적으로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건드리기에 기꺼이. 감옥에서 세상을 향해 신을 향해 건네는 예술가의 비전이 그의 광기와 폭력마저 애틋한 것으로 만든다. 여생이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누군들 오욕으로 점철한 후회의 나날을 돌아보지 않을까. 하지만 베를렌은 서른 즈음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했다는 사실. 요즘 서른이야 어린애이지만 시대적인 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젊은 나이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는 오지만 놓치고 외면하기 십상이다. 그게 편하니까. 위대한 영혼은 자신의 타고난 결함과 오점과 만행을 도마 위에 올리고 살코기 다지듯 자근자근 다져서 예술적으로 승화한다. 수구초심이랬는데, 우리 삶의 머리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지난날? 앞날? 1995년 나온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랭보보다 베를렌이 다시 보인다.



하늘은 지붕 위로 



하늘은 지붕 위로/ 저렇듯 푸르고 조용한데,

지붕 위에 잎사귀를/ 일렁이는 종려나무,


하늘 가운데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우는데,

나무 위에 슬피/ 우짖는 새 한 마리,


아하,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예지, 10쪽>




오, 희어지라, 그리고 이곳을 떠나라, 천천히, 두 손을 잡고 

그 어제의 나날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내일의 나날들을 삼켜 버린다면? 

지난날의 광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면?//

그 기억들은 다시 죽여야 할 것인가?

이 미친 듯한 유혹의 공격, 아마도 더 이상 없을!

오, 저 뇌우와 싸우기 위해 기도를 드려라, 기도를 드려라.

                 <거짓된 아름다운 햇살이, 일부 / 예지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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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1-14 15: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만난 영화네요.

이제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네요.
근데 이 때 레오디카가 21살이었
다구요... 와우 ! 정말 리즈 시절
이었나 보네요.

프레이야 2022-01-14 17:48   좋아요 5 | URL
네. 많이 오래되었지요. 1995년 작이니. 중후하게라기보다 터프하게 변한 레오 보면 저때도 그런 내면이 잠자고 있었던 거 같아요 저 아름다운 얼굴에요. ^^

mini74 2022-01-14 16:04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기억납니다. 정말 강렬하고 사실 좀 충격이기도 했던. 디카프리오 미모가 정말 열일했지요 ㅎㅎ

프레이야 2022-01-14 17:51   좋아요 6 | URL
미모가 어쩜 지금의 모습 보면 상상도 안 되게요. 그런데 강한 내면의 소유자 연기를 잘해서 그런 면을 저 얼굴에 갖고 있다는 게 더 매력입니다. 마빈의 방, 보셨어요 미니 님?
안 보셨으면 추천드려요. ^^

mini74 2022-01-14 17:54   좋아요 4 | URL
마빈의 방 ~ 저도 좋아해요 ㅎㅎ 레바넌트 보면서 디카프리오 정말 아카데미상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꽃미모가 ㅎㅎㅎ

프레이야 2022-01-14 18:04   좋아요 4 | URL
영화 많이 보셔서 보셨을 거라 생각했어욤 ㅎㅎ 메릴 스트립도 좋았지만 차갑지만 여리고 강인하려고 하는 레오와 조야하지만 정 많은 메릴의 조합이 좋더라구요. 레바넌트도 보셨네요. 꽃미모에 연기까지 진심!

단발머리 2022-01-14 16:1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 때가 디카프리오 미모가 리즈 시절이었다죠. 저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카프리오 보다 랭보 디카프리오를 좋아했는데, 극장에서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보았던 영화는 무척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프레이야님 글 읽으면서 잠깐 감상에 빠져보네요.
저도 젊었고 디카프리오도 젊었었다는...

프레이야 2022-01-14 17:53   좋아요 6 | URL
저때 정말 우리도 젊었죠.
단발머리 님은 지금도 젋어요 ^^
저 시절 극장에서 보셨군요. 극장에서 봐야 진국이죠. 친구들이랑 허걱 놀랐겠어요. 전 한참 후 디비디를 소장해 집에서 보았어요.

새파랑 2022-01-14 17: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디카프리오 정말 잘생겼네요 ㅋ 랭보 그 자체군요~! 저는 이 영화를 안봤는데 궁금해지는군요 ㅋ
프레이야님 글 너무 좋네요~!!
베를렌과 랭보의 관계를 이렇게 써주시니 이해가 확 됩니다~!!

프레이야 2022-01-14 18:01   좋아요 7 | URL
디카프리오 랭보 저 사진 외에도 이 영화에서 빛나는 장면들 많아요. 좀 과격한 장면도 나오지만 놀라지 말고 보세요. ^^
실제로 베를렌이 어머니와 임신한 아내 마틸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에 비하면 ㅠ 에구 정신병증이 두 시인 모두. 천재들은 그런가 봐요. 뭔가 현실에 타협되지 않아 스스로 고통을 떠안는 게 불쌍합니다.

stella.K 2022-01-14 20: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캬~! 저 때만해도 참 풋풋했죠.
저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소년으로 나왔을 때 첨 봤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절정은 아닌가 해요.
지금은 완전 아저씨. 왜 사람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 것인지...흐흑~

프레이야 2022-01-14 21:32   좋아요 6 | URL
흐흑.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기본은 하잖아용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 에서 빵피트랑 투탑으로 나오는데 완전 재미납니다. 추천요^^ 여기선 비쥬얼은 빵한테 밀리지만요

기억의집 2022-01-15 02:17   좋아요 4 | URL
저는 저 정도면 잘 늙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돈룩업 보니 괜찮었어요!!!

프레이야 2022-01-15 09:51   좋아요 2 | URL
기억집님 동감이에요.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여 우리도. ㅎㅎ

기억의집 2022-01-15 0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때 토탈 이클립스 본 거 생각납니다. 그 때 신인급이라 지금처럼 클 줄 몰랐는데.. 미소년이라 연기가 꺽일 줄 알었어요!!

프레이야 2022-01-15 09:53   좋아요 2 | URL
미모에 가려지지 않는 연기력^^
요즘은 중후하고 유머까지요. 돈룩업 보다가 일시정지했는데 이어서 봐야겠어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기억의집 2022-01-15 10:09   좋아요 4 | URL
프님도요~ 즐주말!!! 저의집 식구 다 나가 오늘은 자유예요 ㅎㅎ

희선 2022-01-16 0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빛으로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다니, 그런 만남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시대가 안 좋아서 두 사람 사이는 끝이 보였겠지만... 서로가 쓴 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겠습니다 좀 다른 식으로 썼다 해도... 이 영화를 처음 보셨을 때는 랭보를 보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베를렌이 보였군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16 08:07   좋아요 3 | URL
오래전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랭보와 랭보의 시도 알게 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베를렌에게 초점이 가네요. 베를렌은 예지 이후에도 어머니를 목 조르고 병원도 몇 번 들어가고 참 힘들게 살았어요. 랭보도 그렇지만 예술가들의 평범하지 않은 생은 오래 이야깃거리가 되네요.

2022-01-18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8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2-01-20 0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랭보!
다시 찍게 된다면 티모시 샬라메가 잘 어울릴것 같습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1-20 00:56   좋아요 2 | URL
티모시 랭보 그럴싸한걸요 스캇님 ^^

그레이스 2022-01-20 0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잘 모르겠고..^^
랭보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갖고 있어요.
파리에서 유명한 사건도 알고 있구요
저는 그림을 통해 그의 얼굴을 봤는데 영화 주인공이랑 정말 비슷한데요?!

프레이야 2022-01-20 07:31   좋아요 2 | URL
지옥에서 보낸 한철, 어렵지만 어떤 먼에선 딘순하게 읽히는 부분도 있고요. 얼굴은 성인이 된 후의 사진을 보면 다른 느낌이지요. 생을 참 벅차게 살다간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있겠지요 랭보도 베를렌도. ^^

leepapggot 2022-01-23 07: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베를렌과 랭보의 교감 우선은 축복이네요. 사회의 잣대로 비판은 받았겠지만 시인으로서의 통찰력은 서로를 깊게 발전시켰을 것 같습니다. 영화, 책 다시 봐야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1-23 09:59   좋아요 3 | URL
무언가를 소환해 드렸군요. 반갑습니다. 모든 경험을 통한 견지가 되고 싶었던 랭보의 비전과 그걸 알아본 베를렌의 영감이 접점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어요. 천재는 어떤 면에서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수이 2022-01-25 14: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관에서 이 영화 봤어요, 친구들이랑. 와 그때 그 충격은 어떻게 표현 불가했는데 영화 보고난 후에 랭보 사서 읽었던 기억 납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해요.

프레이야 2022-01-25 16:14   좋아요 5 | URL
이 영화 진짜 여러가지로 충격이었네요.
덕분에 랭보랑 베를렌을 모시게 되고요. 세월 지나 보면 다른 게 보일 것도 같아요^^

mini74 2022-02-10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추억을 소환해주셨던 글이네오 ~ 프레이야님 감축드리옵니다 *^^*

프레이야 2022-02-10 18:17   좋아요 3 | URL
엇. 감사합니다 미니 님

이하라 2022-02-10 1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너무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2-10 19: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당선 경축 드려요~!! 이 페이퍼 너무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2-02-10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2-10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독서괭 2022-02-10 2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당선 축하드려요^^

scott 2022-02-11 0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다로 간 태양이 프레이야님에게 이달의 당선작으로!ㅎㅎ
2월의 부산은 포근 하쥬!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프레이야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thkang1001 2022-02-11 0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필드 2022-02-13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아주 오래전에 봤는데 책과 이렇게 연결되는 군여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여 프레이야님 공유 감사합니다 ☺️ 이달의 당선작 추카드립니다

프레이야 2022-02-13 16:45   좋아요 2 | URL
다시 영화를
보시면 두 시인의 시집으로 손이 자동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무라카미 하루키




시계 깨우기 / 배혜경



오렌지색 둥근 벽시계가 또 멈추었다. 시곗바늘이 12199초를 가리킨다. 오전일까, 오후일까. 시곗바늘을 피하다가 노려보다가 두어 달째 그러는 중이다.


꼼꼼한 아버지는 잘 보이는 벽마다 시계를 걸었다. 집 안 곳곳에서 시계가 우리를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시곗바늘이 섰거나 정확하지 않으면 칼같이 맞춰 두었다. 어른이 되고 내 살림을 꾸리며 나도 시계를 늘려 갔다. 특히 앤티크 시계에 마음을 빼앗겨 사 모았다. 언젠가부터 시곗바늘이 자주 멈추었고 전지를 갈아주면 한동안 가다가 서길 반복하더니 아예 걸음을 멈추고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전지 가는 일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책장 위에서 두 번째 칸에 잠든 탁상시계 세 개를 나란히 올려 두었다. 가끔 쳐다보면 정물로 박인 시계가 나를 보는 건지 내가 시계를 보는 건지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편으론 정체한 삶의 테두리, 그 바깥의 세상마저 정지한 것 같았다.


시곗바늘이 멈춘 시계가 집에 있으면 좋은 운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오래도록 잠자는 시계 세 개를 모두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내어주었다. 총총걸음을 더 이상 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시계와 때가 되었다는 듯 가뿐하게 헤어졌다. 다른 데 가서는 또 툭툭 털고 일어나 걸음을 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별을 고한 그 시계의 바늘 중 하나는 105139, 또 하나는 72922, 다른 하나는 8932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또한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따로 묶어 보관해 둔 것도 아닌데 나는 이 시간이 어쩌면 훗날의 안녕을 위해 유예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미래의 열매에 과즙이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믿었다. 시곗바늘들을 쳐다볼 때마다 시간을 상기했다. 하루하루 잊고 지내다가도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남아 달랑거리면 새삼 그 존재를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멈춰 선 그 시곗바늘은 나를 지켜보며 역설적으로 말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도도한 나를 좀 보란 말이야.


철도 녹슬게 하는 시간이라는 괴물은 생각보다 강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자비롭지도 않다. 시간의 정체를 나는 모른다. 무엇보다 영원한 미스터리인 시간이 이렇게나 스피드광인 줄 그땐 미처 몰랐다.


그 무렵 나는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고 안자이 미즈마루가 삽화를 그린 이 쿨한 에세이 시리즈는 서울-부산 고속철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빠르게 스치는 창밖 풍경에 눈을 씻고 넋을 잃어도 다 읽기에 무리가 없는 두께다. 하루키의 개인적 에피소드마다 나도 하나둘 추억과 상념이 따라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묻혔던 기억에 잠시 빠졌다가 돌아와도 완독하기에 너끈한, 내용이 아니라 포장이 가벼운 책이다.


'시계의 조촐한 죽음' 편을 읽다가 "전지식 시계의 죽음에 차갑고 무거운 어떤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라는 글귀에 잠시 정차했다. 서른일곱 살 아는 여자의 죽음과 동시다발로 예전에 그 여자에게서 받은 시계가 새벽 두 시 십오 분에 정지해 있더라는 사연이다. 우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삶의 정교한 암시를 등한시하지 않는 세심함이 마음에 들어왔다. 고양이 밥을 주고 커피를 끓이는 안온한 일상의 스케치에 이어서 이런 문장이 따라온다.


“ ... 그러고 보니 그 애도 이제 죽고 없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시계는 마치 삶의 여운에 마지막 쐐기를 박듯이 딱 멈춰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 2월에 본 박제된 시간의 원형이 떠올랐다.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 있는 집필실 시계는 박경리가토지를 마무리한 새벽 두 시에 시곗바늘이 멈추었다. 깊은 잠에 빠진 오래된 그 시계는 목숨줄을 끊고 박제한 동물의 형상처럼 으스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중성을 띠고 야릇한 인상을 풍겼다.


파릇한 시절의 나는 가난한 문학도에게서 약혼의 의미로 전지식 손목시계를 받았다. 그 시계는 우리의 첫 번째 분신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건네주었다. 전지식 시계는 우선 편리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지를 교체하는 일이 꽤 성가시다. 전지 수명이 다된 시계는 유한성이라는 생의 한계를 냉정하게 빗대는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기계식 시계에 마음이 기운다. 기계식은 전지를 갈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지만 태엽이 다 풀리면 발걸음을 멈춘다. 태엽이 풀리는 과정을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궤도가 떠오른다. 태엽의 마지막 힘겨운 한 걸음까지 다 풀리면 삶의 여행자로서 우리의 지친 걸음도 쉬어가라는 듯 시계는 단잠에 빠진다. 언제든 다시 태엽만 감으면 잠에서 깨어나고 태엽이 서서히 풀리면서 시곗바늘을 생기발랄하게 되살려준다. 시간은 무한하고 영원하다는 태도를 즉각 취하고 행동에 옮겨준다. 전지식이든 기계식이든 시계는 시간의 유한을 반복해 무한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든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지난 일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삶은 없다. 과거를 다독여 현재와 미래로 나아간다. 삶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어가는 것이다.


손목시계를 찰 때마다 태엽을 감고 시곗바늘을 맞춘다. 처음엔 번거롭더니 시나브로 이 작은 의식이 썩 마음에 든다. 태엽을 감고 시곗바늘을 2분 정도 앞서도록 맞추면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기분에 빠진다. 백일몽 비슷한 기분이라 해도 잠자는 시계를 내 손으로 깨우고 시간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착각을 즐긴다. 잠자는 공주의 시간을 깨운 멋진 이웃 왕자가 되어...


잠자는 오렌지색 벽시계를 내려서 책장 아래 깊숙이 넣어 둔다. 태엽을 감는 기분으로 언제든 전지를 갈아주면 잠에서 깨어나리라.



- 월간 <수필과비평>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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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08 15: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멋진 글이네요. 이 글을 <수필과 비평>에 실으셨군요~!! 완전 멋집입니다. 어느순간 스마트폰이랑 워치 때문에 벽시계를 안쓰게 되더라구요. 저도 이 글을 보니 기계식 ⏰ 가 가지고 싶네요 ㅋ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

프레이야 2022-01-08 21:58   좋아요 3 | URL
한때 뻐꾸기 벽시계가 살림템이었죠.
오래된 벽시계 좋아합니다. 요샌 편리하게 뭐든 변해가는데 오히려 아날로그가 더 편할 때가 있더라구요. 연식이 드러나는 건지. ㅎ 고맙습니다 새파랑 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mini74 2022-01-08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정에 있던 커다란 괘종시계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시계밥 준다하시면 막 구경했던. 봐도뵈도 질리지 않던 풍경입니다 그시계가 매년 어느 순간조금씩 느려지고 초침이 떨어지고ㅠㅠ우리도 그 시계도 그 집에서의 그 시간을 잡고싶었던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니 전 첫번째 시계가 미키전자시계였습니다 ㅎㅎㅎ 그것도. 제가 커서 번 돈으로 처음 산. 어릴 적 너무 너무 갖고 싶었거든요

프레이야 2022-01-08 21:57   좋아요 2 | URL
시계 밥 준다고 말했었죠. ^^ 미니 님 아빠도 시계 밥 잘 주시던 부지런한 분이시군요. 미키시계 로망이었죠. 전 중학교 들어가서 아빠가 사 주신 카시오 전자시계가 첫 시계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멋 없는 시계였지만 그당시엔 나름 검소한 아빠의 시계사랑이 제게도 전해졌던 거 같아요. 미니 님은 내돈내산하셨군요. 야무지고 대단하세요.

stella.K 2022-01-08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전지식 시계는 편하긴한데 갈아끼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요.
지금은 시계점도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도 쉽지가 않은 것 같더군요.
그런 거 생각하면 기계식이 나은 것도 같은데 그건 하루에 한 번씩 태엽을 말아줘야하고.
예전에 그걸 두고 시계에 밥 준다고 하기도 했었죠.
어렸을 때 그 얘기 듣고 시계가 어떻게 밥을 먹는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가 어리둥절 하기도 했었다능.ㅋ

몇년 전 시계 라디오를 사서 쓰고 있는데 쭝국산이라 그런지
시간이 잘 안 맞더군요. 항상 앞서가요. 전기식인데 그것도 앞서가서 좀 벙쩠다능.
지금은 거의 제 시간에 맞쳐놓고 있는데 얼마 안 있으면 또 앞서갈 거예요.
2, 3분 앞서가면 마음이 좀 느긋하긴 하죠.^^

프레이야 2022-01-08 21:56   좋아요 4 | URL
우리집 시계는 모두 시곗바늘이 제각각이라 신경 안 쓰다가 불현듯 시계가 걸려 있다는 것만으로 그냥 무슨 의미인지 싶어서 벽시계를 좀 없앴어요. 건전지 갈아주는 것도 귀찮고 탁상시계도 마찬가지고요. 디지털시계가 정확하고 간편한 면이 있지만 어쩐지 시계는 저렇게 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한 거지 싶어요.
스텔라 님 시계도 좀 빠른 걸음이라 몇 분힉 앞서가나 봅니다. 그럼 그런대로요 ㅎㅎ 시계 밥은 제때 줘야 하지만 간헐적으로 줍니다 저는.
시간은 조금 밀고 당기고 그렇게 살자구요^^

2022-01-09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9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1-11 2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들은 소설도 좋지만, 이전에 썼던 에세이도 좋았어요.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고요.
이제는 휴대전화를 많이 쓰지만, 그래도 벽시계가 없으면 답답한 걸 보면 정해진 공간에는 시계가, 달력이 있는 게 익숙한 생활 같기도 합니다. 얼마전 탁상시계가 고장이 났는데, 고치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 보던 생각도 나고요.
프레이야님, 날씨가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22-01-11 22:22   좋아요 4 | URL
하루키 에세이 좋아하죠 대부분. ^^
시계를 좋아하는 건지 시곗바늘을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전. 추워지네요 또. 감기 조심하시고요 굿나잇 ~

희선 2022-01-12 0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멈춘 시계가 집에 있는 것도 별로 안 좋군요 멈춘 벽시계는 없지만... 시간은 흘러가니 멈춰 있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습니다 소설 같은 데 그런 거 쓰였을 듯도 합니다 시계가 멈췄는데 그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같은... 태엽을 감아주는 시계, 멋질 듯합니다 손목시계도... 지금은 거의 전지식이잖아요 멈춘 시계를 다시 깨울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12 01:15   좋아요 2 | URL
집에 걸렸거나 놓인 시계 갯수를 좀 줄였어요. 왠지 마음도 좀 느긋해지더군요. 여백이 생기니까요. 그게 2020년 봄에 대정리를 할 때였어요. 시간의 압박에서 놓여나도록 잘 조절해야겠지요. ^^
하루키의 태엽감는새, 생각납니다.
아 그리고 정리컨설턴트 말이 시계만 그런 게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모든 물건은 좋은 기의 흐름에 별로랍니다. 고장난 게 있으면 고쳐서 쓰거나 아니면 처분하거나 해서 미니멀하게요. 미니멀이 무조건 버리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소유해서 충분히 잘 쓰는 것이라는 말이죠. 공감되었어요 이말이 제일. 막힘없이 잘 흐르고 통하게!! 시계든 뭐든 안 쓰고 쟁여둔 게 얼마나 많은지. 책도 그렇겠죠.

2022-01-1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