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혜화동 서점 나들이
2022. 2. 28
작은딸 이사정리를 돕고 나서 가보았던 서점들이다.
이제 다시 서울 가보려면 언제가 될지 모른다.
지난 겨울부터 올해 2월까지도 노령의 아빠가 편찮으셔서 마음이 좀 번다했다. 어느 것도 손에 안 잡히고 집중이 안 되었다. 1월엔 그와중에 영화도 보고 잠시 여행도 다니며 숨통을 틔우려 했고 지난 2월을 돌아보면 또 많이 다녔구나 싶다. 나, 나름 자유로운 영혼! 대학 졸업식을 몇 주 앞두고 예술의전당에서 작은딸과 황정민 주연의 "리처드3세"도 관람하고 부암동에서 조금 자리를 옮긴 라카페갤러리에서 친구랑 박노해 사진전 “내 작은방”도 보고 작은딸 졸업기념으로 스튜디오에서 울가족사진도 처음으로 찍고 또다른 길을 향해 열공을 다짐하고 출발한 작은딸 대학원 가까이로 이사까지 다 돕고 나서라 얼마나 다행한지...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순간순간 당연히 주어진 건 없었다는 걸 느낀다. 3월 들어 다친 다리 잘 낫기를 바라는 마음 조심스레 다진다. 시간이 가야 나아지는 게 있으니 느긋해지자고 스스로 타이른다. 아빠는 다행히 걷지도 못하던 분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서 지하철도 타신다고 병원에 있는 동안 알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아흐레가 지나고 보니 사고가 일어난 그날이 마치 꿈인 듯하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필의 어머니 대사, 아무리 달디단 과일맛도 먹고나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문장이 기억나는데, 마찬가지로 아무리 쓰디쓴 날도 지나면 꿈인 듯 금방 잊어버린다. 망각의 축복!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들고 휠체어를 굴려 올라온 11층 옥외정원에서 빗방울이 데크에 촉촉히 스미는 걸 바라보며 글벗의 전화를 받았다. 긴 여정의 그날 12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두 시간을 통화했다. 물방울 또그르르 구르는 것 같은 목소리, 고마워요 ^^
에리히 프롬, 역시나 명징한 목소리에 머리가 개운해지고 힘이 돋는 느낌이다.
다 읽고 페이퍼 쓰도록.
1. 동양서림과 위트앤시니컬
동앙서림은 혜화동로터리 1층 창밖으로 거리가 바로 보이고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다. 1953년 개점, 서울미래유산 지정되었다. 아기자기하게 도서를 잘 비치해 놓은 동양서림은 도서 구매하면 5퍼센트 할인해 준다.편안하게 책을 둘러보다 눈에 들어오는 한 권 <글쓰는 여자의 공간> 구매.
표지의 여자는 다 아시다시피 사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의 빛나는 순간과
문장들!' 여성 작가 35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만듦새도 좋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책장이랑 노랑 액센트, 풍부한 사진 등 보기에 만지기에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책에는 다양한 공간과 환경에서 글을 썼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글을 썼던 여자들도 있다. 분명 책상이 세 개나 있는 나와 같은 특권을 누리지 못했던 여자들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모두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는 법이다. 바로 머릿속이란 공간이다.
- 독일소설가 엘케 하이덴라이히, 추천의 글 중 15쪽
동양서림 안에서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층에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별도의 서점이다. 최승자 시인의 문학동네 포에지 “연인들”이 한가운데 보인다. 그옆 코너엔 주인장이 소장하는 시집과 소품을 전시한 작은 코너가 쪽창가에 귀엽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층 창밖으로 낮게 혜화동 거리가 보이는 소박한 분위기에 시 특강이나 토크, 스터디와 시낭송회를 하기 좋아 보이는 공간이 긴 우드테이블과 함께 비교적 넓게 마련되어 있다. 동양서림과는 구매도서 계산도 따로.
<인연들> 개정판 시인의 말
절판되었던 시집을 다시 펴본다
절단되었던 다리가 새로 생겨나오는 것 같다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달려왔던 시간
무지막지한 고통 속을 헤매었던 시간
그 순간들이 점철되어 있는 이 시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숨겨져 있을 수 있는지
가히 참, 아름답다.
2022년 1월
최승자
/
누가 펼쳐놓았나.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이 빈 공책.
그 위에 깊은 눈이 내려 침묵조차,
침묵이 걸어간 발자국조차 지워져버린
이 태초의 빈 공책을.
- 최승자, 빈 공책 중
/
저 20세기의 상점으로 변해버린 바오로 흑염소 사당. 저 몇천 년 전의, 저 이방의 상징이 아직도 살아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을 증거한다.
상징이란 지독하게 살아낸, 살아 달이고 우려낸 삶의 이미지이다. 살아내지 않은 것은 상징이 될 수 없다.
- 최승자, 바오로 흑염소 중
2. 풀무질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lifenculture&logNo=222136932267&proxyReferer=https:%2F%2Fm.blog.naver.com%2Fsci0000%2F222639196502 성균관대 교문에서 가깝다. 1985년 처음 생겼다. 허름해 보이는 지하1층으로 내려가면 제법 빽빽한 책꽂이에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꽂혀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제주에도 세화리에 풀무질 서점이 생겼다. 입구에 동물해방물결, 이라는 글자가 특이하다. 오래된 서점이고 주인장의 색깔이 선명하다. 부채만 안고 폐업 위기에 있던 서점을 비거니즘 전방위 예술가 전범선이 펀딩을 통해 인수했다. 전범선의 이 책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기를”을 읽다가 책갈피 끼워두고 나와서 나는 공간이동을 한듯 여기 생각지 못한 곳에 와 있다. 나름 슬기로운 입원생활을 해보려 한다. 몸이 마음 같이 안 된다. 아흐풀무질은 차 한 잔 시켜 자유롭게 보고 나가도 되는 분위기인데 지하라 갑갑한 공간을 싫어하는 사람은 오래 못 있을 둣. 전체적으로 은은한 조명에 음악이 깔리고 코너별로 유니크한 공간을 꾸며 놓았다.“동네서점베스트콜렉션”은 동양서림과 풀무질, 모두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