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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무딘 감동으로 들리는
나이 사십 줄에 시를 읽는 여자
따뜻한 국물 같은 시가 그리워
목마와 숙녀를 읊고는
귓전에 찰랑이는 방울소리에
그렁한 눈망울 맺히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더 뭉클해
정성스런 다림질로 정을 데우고
학위처럼 딴 세월의 증서
가슴에 품고 애 닳아 하는
비가 오면
콧날 아리는 음악에 취하고
바람불면 어딘가 떠나고 싶고
아직도 꽃바람에 첫사랑을 추억하며
밥 대신 시를 짓고 싶은
감수성 많은 그녀는
두 열매의 맑은 영혼 가꾸면서
꽃이 피고 낙엽이 질 때를 알아
오늘도 속절없이
속살보다 더 뽀얀 북어국을 끓인다
아...
손톱 밑에 가둬 둔 스무 살 심정이
불혹에 마주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김춘경·시인, 1961-)
18년 전 오늘 올린 글이라며 뜬다.
방금 책읽는나무 님 페이퍼를 보고 응원의 마음으로 댓글을 쓰고 왔는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18년 전에 내가 올린 시에 책읽는나무 님과 나눈 댓글과 답글을 만나다니. 반가워라. 그때도 난 호기심과 도전, 사소한 것에 대한 경이감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소중히 여겼구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뽀얀 북어국도 탕국도 잘 끓이고 가지가지 나물도 조물조물 잘 무친다. 꾸준히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나누고 여행하고 …
18년 전 오늘 난 스케이트를 막 시작해 인생선배 언니들과 초급반에서 타고 있었다. 2년반 정도 신나게 타고 그만 두었는데 지금도 올림픽 스케이트 종목은 보는 편이다. 그땐 제법 물찬 제비처럼 스케이팅 했는데 이제 못한다. 무릎이 후들후들 ㅎㅎ
그리고 독서지도사를 하며 대학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 등록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지금은 나름 제몫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성인이 되었다. 5년 터울 자매가 같은 고교와 대학교를 졸업해 감회가 남다르다. 오랜 객지생활이 짠하기도 하고. 큰애 때와는 달리 작은애는 이번에 온라인 졸업이라 교정에서 학사복 입고 자유롭게 사진 찍고 오후엔 아이의 제안으로 처음 스튜디오에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주기적으로 찍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을 어색해 하는 큰아이를 보며 스튜디오에 안고 가서 백일사진 찍던 때 사진사가 딸랑이를 흔들어주자 이도 없는 연분홍 무른 잇몸을 아래위 활짝 내보이며 까르르 까르르 웃던 뽀얀 얼굴이 내내 생각났다. 지금은 서른을 앞두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며 열심히 또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 하는 여리고 또 강한 딸. 올해 말에는 10년의 서울 생활 접고 집으로 오겠다고 한다. 가치관이 서로 다른 딸들, 행복하길 무조건 응원한다. 작은딸은 로스쿨 입학,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자식 이야기 하는 거 아니랬는데 노친네처럼 해버렸네. 아무튼 주말에 혜화동으로 이사한다. 이사에 정리까지 돕고 집에 오면 3월이 훅 다가와 있을 듯.
18년 후 우리는 무얼 하며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화가들의 자화상을 눈여겨 보길 좋아한다. 얼마전 미술책이 많은 갤러리카페에서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혼자 세잔을 만났다. 햇살 좋은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아뜰리에와 소담한 정원의 산들바람을 추억하며… 그때의 추억은 다음에 세잔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하기로...
우리 가족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화상이지 않을까. 소중한 날들 가슴 벅찬 나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