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그랬지만 어쩌다보니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동시다발이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감정들과 비슷한 상황인데,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겠다.
두꺼운 분량, 1/5 정도 읽어나가다 보니, '케빈'은 '미국'과 동일 선상에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압축해 보여주자니 영화에서는 적당히 생략한 부분과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에바와 프랭클린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걸 고심하는 장면에서 가장 미국적인 이름 '케빈'을 프랭클린이 주장한다. 사랑하지만 이질적인 두 사람이 케빈을 두고 양극성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둘은 미국을 두고도 그렇다. 프랭클린은 에바에게 반미주의자라고 쏘아붙인다.
소설 <케빈에 대하여>는 강요된 모성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가 본 '미국에 대하여'로 읽힌다. 미국에 대한 냉소와 성찰일 확률이 높다. 케빈이 소시오패스로 태어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구체적인 날짜와 상황을 한 페이지 분량으로 열거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이고, 욕망과 자의식이 무척이나 강한, 살이 찌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중성적 얼굴이 개성있는 자유모험가 에바의 편지로. 케빈 캇차두리안은 왜? 미국은 왜? 캇차두리안은 에바의 姓이다.
'여행할 권리'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후 김연수의 산문에 좀 낙담하여 심드렁했었는데
서평단 도서로 읽고 있다. 절반 쯤 읽었다. 한 마디로, 좋다!! 다시 애정이 가는 작가.
책을 읽을 당시의 상황과 마음상태에 좌우되는 일이 흔하니 아마도 그런 탓이겠거니.
요령은 간단하다. 그냥 믿어버리는 거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남는 건 그걸 얼마나 더 세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뿐이다. ...... 어쩌면 우리는 이 삶에 '칭커'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말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요령은 간단하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93p)
통나무집 복층에서 다리 뻗어 올리고 읽은 책.
휴가지에서 읽으면 딱 좋을 정도의 가벼움과 여유와 농담이 적절한 하루키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새하얀 바탕색 표지가 마음에 든다.
사람을 신뢰하면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것 역시 때로는 고독한 것이다.
그런 미묘한 틈, 괴리 같은 것이 통증을 초래하여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이런 건 그냥 미트 굿바이잖아'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55p)
미트 굿바이... 무리 모두에게 필요한 뭔가 살아갈 의지가 될 만한 밝고 긍정적인 신화!
조금 남겨둔 상태에서 서평단 도서와 다른 일들로 잠시 쉬고 있는 중.
사뒀던 책인데 영화 '미드나잇 파리'를 보고 당장 읽고 싶었다.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1920년대 초중반에 파리에 머물며 습작했던 시기의 기록이다.
흥미로운 건 거투르드 스타인과 핏츠 제럴드를 비롯해 문인들과의 소소하거나 솔직한
이야기, 뒷담화, 글쓰기에 대한 헤밍웨이 자신의 신조와 태도, 방식 같은 것.
책 뒷쪽에는 '사진으로 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흑백사진을 많이 실어뒀다.
상당한 식욕과 삶의 에너지를 지닌 작가 헤밍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내겐 너무 좋은 책.
그때 내가 쓴 작품은 <계절에 뒤늦은>이라는 아주 간단한 단편이었는데, 나는 그 작품을 쓰면서
노인이 스스로 목을 매는 결말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이론에 따른
결정이었다. 생략한 부분이 글의 내용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을 계기로 독자가 단순한 이해 이상
의 뭔가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이든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86p)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쑤퉁의 소설집.
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 중이다. 절반 155쪽까지 완료.
쑤퉁 문학의 백미로 불리는 <처첩성군> <이혼 지침서> <등불 세 개>가 실려있다.
'처첩성군'은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홍등'으로 유명하다.
거침없는 표현, 생생한 묘사 등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쑹렌은 단박에 흥미가 식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란 얼마나 무료한 것인가. 그건 역시 너가 나를, 내가 너를 속이는 게 아닌가.
사람이 입을 열면 바로 가식적으로 변한다.
(처첩성군, 44p)
1차 편집 중. 175쪽까지 완료. 편집하며 한 번 더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역시 원작이 더 좋더라는 결론.
소비자신용은 일본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 그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해마다 몇 만명씩 되는
사람기둥을 세우는 어리석은 짓, 자살, 가족동반자살, 야반도주, 범죄로 까지 다른 사람을 끌어
들여 비극을 초래하는 사태로 내몰리는 다중채무자라는 인간 기둥을 세우는 짓은 그만둬야한다는 미조구치 변호사의 변. 그러기 위해선 비정상적인 고금리를 단속하자는 것.
"이것은 이 자제한법과 개정출자법 틈에 끼어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일이 탓할 수는 없다'는, 이른바 그레이 존에 속하는 금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채무자 개개인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1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