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대자연의 길 - 사랑하는 국선도 지도자 여러분에게, 도운집 1
허경무 지음 / 밝문화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 도운 허경무 / 밝문화미디어

 

 

 

여름 최고의 피서지가 녹음실인데 점자도서관에 자주 가지 못했다. 여름방학 땐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 시간에 맞춰 챙겨줘야 할 것들도 있고 해서 시간 내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해 7, 8월 통틀어 한 권밖에 못 읽고 9월 들어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은 회원신청도서 중에서 따로 뽑아두고 있었는데 여름을 다 보내고 나서 9월에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 두 권의 책인데 나는 1권을, 또 다른 봉사자가 2권을 하기로 했다. 내리 다섯 시간을 녹음했다. 2009년 녹음한 책이다.


국선도 도종사 도운 허경무 선생이 집필한 책이다. 국선도는 9,7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심신수련법이다. 대자연을 완전한 경전으로 삼아 자연을 보고 배우며 수련한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국선도 지도자와 회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주내용으로 엮은 지침서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니 국선도 지도자가 아닌 나에게도 마음닦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전문 작가의 문장이 아니라 그런지 매끄럽지 못한 문장에 비문도 있어 낭독의 흐름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문장을 읽는 동안 자주 호흡이 거칠고 숨이 좀 찼다. 이런 경우 낭독의 즐거움이 덜하지만 내용에 충실히 읽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숨소리가 유독 많이 들어갔더라는 녹음실장의 말과 함께 편집에서 노이즈랑 거친 숨소리 모두 제거했다고. 지금 읽는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흡도 노이즈도 숨소리도 수정할 부분이 차츰 적어지고 오독도 녹음 중 즉시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수정한다.

 

특히 아래의 글은 생각을 붙잡는다.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하여 세상이 변한다. 우리는 그런 분들 덕분에 점점 변화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항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편리하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돌다리가 하나 생길 때도 누군가 찬물에 발을 적시며 징검다리를 놓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큰물을 건너다 많이 떠내려가 죽어야 돌다리가 하나 생겼으며, 오늘날 신호등이 하나 생길 때도 성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어야 신호등이 생기듯이 누군가가 큰 대가를 치러야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6)

 

신뢰감에 금이 살짝 가는 사람을 들라면 나에겐 세 가지가 있다

혀가 발보다 앞서는 사람, 다락방이 없는 사람, 입이 귀보다 바쁜 사람

첫 번째는 말을 해놓고 실행하지 않거나 말만 내세우는 사람이다. 실행하지 않을 거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두 번째는 늘 지나치게 밝기만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그늘이 없어 보이는데 그게 좀 믿기지 않아서다. 마음의 다락방에 고개를 숙이고 가끔 올라가 낮게 엎드려 보자. 미세한 어둠과 먼지 냄새 품은 공기가 아래에서 수런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한결 밝게 들려준다. 세 번째는 말을 선점,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람이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내도 나는이나 내가로 전환해 버리는 기...‘’. 부류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참 재주도 용하다 싶고 일면 부럽기도 하다. 뭐 나도 그럴 때가 있고 그러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앗, 혀고삐를 늦추어 주저앉혀야한다.


말로써는 우주라도 족히 다스릴 수 있겠다, 말로 무슨 이야기를 못합니까? 바닥에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를 줍고 휴지 하나를 줍는 사람, 말없이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에 의해 세상은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논리나 혀나 꾀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이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속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말을 꺼냈다 하면 자기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그 이뤄진 것은 나의 힘이야.', '', '', ''가 나오는 사람에게는 여러분들 얼른 뒤를 보이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변화란 그런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지요. 자기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여들고 어떤 개선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지 불평과 불만과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게 되고 갈등과 분리만 조장될 것입니다. 그런 때 여러분의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7)


말마다 나는으로 시작해 상대의 말을 자르고 말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며 자기 이야기를 해버리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반면교사로 나를 돌아보며 입을 좀 더 자주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를 놓아라, ‘는 잠시 미뤄두어도 좋다. ‘는 나서지 않을 때 가장 빛난다

침묵은 금이고 경청은 다이아몬드다. Lose Yourself.

 

----------- 


사족_ 3년간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일을 마쳤다. 그동안 조용조용 맡은 일 완벽히 해내느라 수고했다고 인사를 전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조촐한 찻집에서 연상의 후임자에게 일을 인계했다.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데 단둘이 대면해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해보긴 처음이었다. 염려와 겸양의 말을 자꾸 하셨지만 야물딱지게 잘하시리라 확신한다. 편집위원으로 속해서 또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 권유해 드릴 것이다. 오늘아침에 단톡방을 보니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250여 명이 속한 곳이니 생각도 제각각이겠으나 말은 줄일 수록 '나'는 나서지 않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간 봉사할 선생님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나 보내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의 서재, 지기이신 수암 님께서 손수 찍으신 민화 판화를 보내주셨다.

좋은 기운 받으라는 마음 고이 받아 올 한 해 잘 살아야겠다.

여러분들에게도 까치호랑이 기운이 전해지질 바랍니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6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1-15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없다˝는 뜻을 음미하게 해주셨네요^^ 프레이야님, 글 쓰시고 책 내시고 사진 찍으시고 간병하시고 플친 이웃 챙겨주시고 사회 봉사에, 3년간 편집장 일도 하시고^^ 글만으로도 나눔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프레이야 2022-01-15 13:32   좋아요 3 | URL
얄라님 기쁨은 우리 마음속에! 고맙습니다.^^
다락방도 우리 마음속에요.
북플에는 다락방님이 있어 참 좋지요.
어릴 적 다락방, 지금도 생각하면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다음에 만약 집을 짓게 된다면 저는 꼭 다락방을 만들고 싶어요 ^^

책읽는나무 2022-01-15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뢰감에 금이 가는 세 사람!!!
제게도 경종을 울리는 글귀입니다^^
해당되지 않게 행동하며 살아야 할 일이네요.
편집장일을 3 년이나 하시면서 애 많이 쓰셨겠습니다. 자리를 맡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해 낸다는 건, 아~~ 생각만 해도 참 대단해 보이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암님의 호랑이 민화 판화 사진은 정말 멋집니다. 얼마 전 서재에 미술관 나들이 글을 올리셨던데 반갑고, 찡~ 했습니다.
호랑이 해라 그런지 더욱 감동적이군요!!!

프레이야 2022-01-15 17:23   좋아요 3 | URL
책을 사고 책을 보는 일이 다락방에 기어들어가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라는 말씀에서 역시 울책나무님 심안이 다감하다는 걸 느껴요. 고맙습니다. 못다 한 말들은 가슴에 ^^
수암님 더 판화가 무려 1973년작이더라구요.
대단하신 분. 진석이 외할아버지로서도 얼마나 살가우신지요. 여전히 미술관 나들이 하시고 내내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까치호랑이 어쩐지 귀엽죠^^

잉크냄새 2022-01-15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맞추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는데,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변해왔다고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겹쳐지네요.

프레이야 2022-01-15 17:1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잉크냄새 님.
너무 현명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오늘아침 또, 새삼 그런 생각을 했어요.

stella.K 2022-01-15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알라딘에선 잘 못 뵈어서 문득 궁금했는데 잘 계신가 봅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방에 걸을 달력이 없다고 서재에 징징댄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시고 수암님 남는 달력있다고 친히 전하러 한 번 뵌적이 있었죠.
가끔 소식 전해주시면 좋을 텐데.
수암님이 판화가셨군요.사진 근사하네요.^^

프레이야 2022-01-15 19:17   좋아요 1 | URL
2019년 가을에 그동안 해오신 판화와 관련 소품과 자료들 전시를 북촌에서 하셨어요. 제가 그때 마침 서울 갈 일도 있고 해서 잘됐다 하고 갔거든요. 예상보다 더더 얼마나 꼼꼼하게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놓으셨는지 놀랐어요. 노트까지 꼼꼼히. 오랜 세월 한 우물 파시며 삶을 밀고 나간 사람의전형을 본 것 같아 감격했답니다. 그쪽 관련 일 하시는 분들과 따님이랑 가족들도 계셨는데 그중 아마도 진석이 모친도 계셨을 것 같아요. 더더 전에 임사동에서 처음 뵙고 두번째였어요. 오래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판화박물관도 있던데요^^

희선 2022-01-16 0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일 세해 동안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다음 사람한테 넘겨서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기도 하겠네요 신뢰감에 살짝 금이 가는 세 가지... 저도 잊어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말은 거의 안 하지만, 이런 댓글도 말이라면 말이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레이야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16 08:24   좋아요 4 | URL
댓글도 성격이 드러나지요.
희선님이 자신과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차분하고 다정하게 주시는 말 고맙습니다. 말은 부메랑이라 위로는 타인에게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도 하는 게 되어요. 작년엔 또 다른 단체에서 7년간 했던 비슷한 일을 인계하면서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섭섭은 잠시였고 시원이 오래. 어떤 일도 자리도 물 흐르듯이…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은 언제나 있고요. 좋은 기억으로 또 남아요^^
내일부턴 전국적으로 영하라고 하네요.
감기조심요^^

페크pek0501 2022-01-18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승.전.‘나’. 부류다.- 빵터졌어요. 꼭 저한테 하시는 말씀도 같고요. ㅋㅋ
저는 친구 만나면 너무 신나서 말이 많았다가 점점 기운 빠지면서 그리고 듣기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때부터 쭉~~ 듣기만 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상대방은 저를 기다려 줘야 하는 거예요.하하~~

프레이야 2022-01-18 16:42   좋아요 1 | URL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애교 수준이죠 ㅎㅎ 사실 말하는 게 에너지 엄청 드는 일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분들 대단해요.

scott 2022-01-20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마다 ‘나는’으로 시작해 상대의 말을 자르고 말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며 자기 이야기를 해버리는...]
나날이 저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이들의 모습이 여기에 뙁! ㅜ.ㅜ

sns시대에 ‘나‘가 우선이 되었습니다.ㅎㅎ

프레이야님 3년동안 250명을 편집하고 통솔하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까치 호랑이 기운 잔뜩 받고 2022년 힘찬 한해!를 ^^

프레이야 2022-01-20 01:00   좋아요 2 | URL
스캇님에게도 까치호랭이 기운 한껏 뻗치길 바랍니다. 북플 좋은 사람들이랑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지욤. 매일매일 마음 가운데 즐겁게요 ^^

2022-01-23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22-02-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갈 때마다 오름 한 개씩은 다녀오자 생각해요.
1월 중순에 동백 여행가서 1100고지 보려고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통제되어 못가봤죠.
거문오름, 사진으로 보니 좋습니다. ^^

프레이야 2022-02-08 17:3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1월 중순에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저는 눈이 많이 오면 못 가고 눈이 안 오면 덜 붐빌 것이니 가보자
그러고 갔는데 다행히 날이 따뜻해서 눈도 안 오고 사람도 적고
드라이브해서 가볼 만 했어요. 오름 하나씩 괜찮네요.
저는 다음에 거문오름 한 달 전에 예약하고 도전하려구요.
사진은 1100고지 입구에용. 백록 뒷모습.
 

https://www.dongsuh.co.kr/03_maxwell/scrap.asp?idx=668

동서커피 사외보 기자가 인터뷰하고 가서 실은 내용.
5년 전 기록을 새삼 여기에 기록해 둡니다. 이런 때가 있었네요. 

코로나 사태로 도서관 강의와 녹음도 한동안 봉쇄하여
점자도서관 낭독녹음도 뜸한 지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제 위드 코로나로 가면서 내년부터는 
아니 빠르면 12월 정도부터 다시 열심히 하기로 스스로 약속합니다. 
눈이 좀 안 좋으니 무리되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면서.
김훈의 <연필로 쓰기>
절반 정도 녹음하고 중단한 상태인데 어서 마저 해야겠습니다.
236쪽 중간 10번 파일 중간쯤에서 멈추었네요.
문학동네 이연실 편집자의 책입니다.


 













나는 세종로 네거리에서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그리고 북악산, 북한산 쪽을 바라보는 내 고향 서울이 경관을 사랑한다. 이 경관 속에서 인공의 구조물들은 산하의 리듬에 안겨 있어서, 거칠게 돌출하지 않는다. 인간세의 핵심부가 자연의 한가운데 둥지를 틀면서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데, 이 절서는 억압적이지 않다. 거듭되는 난세에도 나는 이 경관을 바라보면서 정의롭고 강성한 공화국의 앞날을 생각한다. 이 경관은 음풍농월하는 유산객의 산수가 아니고, 은밀한 향토의 명승지가 아니다. 이 공간은 지속과 생성의 힘이 분출하는 서울의 정치적 공간이다. 조선 개국의 엘리트들은 이 공간을 왕조를 버티는 존재의 축선으로 삼아서 북악의 산세가 낮아지는 남쪽 사면에 경복궁을 건설했다. 500여 년 후에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을 헐어서 이 축선의 노른자위 부분에 조선총독의 집무실과 관저를 지었다. 역대 조선총독들과 해방 후에 진주한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 중장, 그리고 이승만 이후의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이 자리에서 집무하고 기거했는데, 여기가 바로 지금의 청와대이다. 역사의 지층은 단순명료하지 않다.

 (235-236쪽)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일을 한다면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이야.
‥‥‥
그것 봐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방편이라면 먹고 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갈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내지는 순서가 다른 것의 간섭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
그러니 말일세. 말하자면 의식주에 곤란을 겪지 않는 사람이 흥미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진실되게 일을 할 수 없는 거지.

107,1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쟁은 싫어요.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툭하면 논쟁을 벌이더군요. 아무런 결론도 없는 얘기를 어쩜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모님의 말은 약간 매서웠다. 하지만 어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사모님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인정받고 거기서 자부심을 느낄 만큼 현대적인 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았다.

16,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슬비를 뚫고 달려 순수한 사람들 몇을 만나 미팅하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왔다.

내일 저녁,  수필낭송회에서 첫 번째 순서로 낭송하는데 배경음악으로 이 음반을 골라둔다.

내가 좋아하는 최민자님의 수필 '달빛과 나비'를 3분 정도 낭송 용으로 정리했다.

마음 같아선 덩실덩실 가야금 소리자락에 맞춰 어깻짓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저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 가락에 내 목소리가 조화롭게 녹아들길 바란다.

내일은 비가 안 오면 좋겠는데 어떨지... 비 오면 머리카락이 힘 없이 가라앉고 부스스해진다구 ㅠ

 

 

 

달빛과 나비

 

 

글 / 최민자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 청아한 그의 가야금 연주는 댓잎에 듣는 빗방울이었다가, 빠르게 일어나는 구름이었다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였다가, 이윽고 고요한 달빛이 되어 천지간에 흐뭇이 내려앉는다. 잦아지는가 싶다가 사뿐 살아나는 산조의 선율은 천상의 궁궐에 사는 요정이 서둘러 은하수를 건너가는 작고 날랜 걸음새도 같고, 그 요정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열사흘 달빛 같기도 하다.

 

선생의 가야금 소리에서 나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만나고, 결 고운 비단치마가 풀숲을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른 봄, 꽃들이 벙글어 터지는 소리와 늦가을 들녘의 바람소리를 만난다.

 

신새벽 호숫가, 이제 막 번데기에서 깨어난 나비가 달빛에 젖은 날개를 턴다. 조금씩 조금씩 푸드덕거리며 서툰 날갯짓을 시작한다. 달빛 사이로 나비가 날아오른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노랑 바탕에 까만 무늬가 찍힌 호랑나비, 보랏빛 작은 날개를 가진 부전나비, 모시나비, 제비나비, 배추흰나비, 꼬리명주나비...... 하늘은 오색 날개로 눈부시고, 날갯짓 소리로 세상이 현란하다. 연주가와 악기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는 신비스런 법열의 춤사위. 도도한 악흥이 빛의 꽃가루가 되어 칠흑의 세상 위에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나비들이 하나둘 내려앉는다. 술렁이는 축제도 막을 내리고 호수에는 달빛만 교교하다. 제의를 치르듯 숙연하게 줄을 뜯던 선생의 손길도 멈추어 있다.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고즈넉한 정적이 깃든다. 밝은 달무리를 삼킨 것처럼 비로소 가슴이 환하게 트여온다.

 

    

 

- 최민자 수필 <달빛과 나비>에서 낭송용으로 발췌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15-07-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맛~~`침향무`는 저희 가족들도 즐겨 듣던 황병기님의 연주.^^
덕분에 큰 아들이 가야금을 배웠지요~


침향무,를 배경음악으로 낭송하시는 `달빛과 나비`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조화롭고 아름다운 프레이야님의 낭송, 서재에서도 들려주세욤~~*^^*

프레이야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프레이야 2015-07-21 08:39   좋아요 0 | URL
역시 가족이 모두 멋진 정취를 즐기시군요. 아드님이 가야금을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니 대단해요. 서양악기만 많이들 시키는데‥ 탁월한 선택입니다. 울작은딸은 장구를 잘 두드려요. 사물놀이에 푹 빠져서 3년을 보냈거든요. 고교생이 되고는 뜸하지만 그때의 열정을 종종 떠올리며 스스로 뿌듯해한답니다. 과음했는지 목소리가 좀 잠겼어요. ㅎㅎ 몇 번 연습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