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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대자연의 길 - 사랑하는 국선도 지도자 여러분에게, 도운집 1
허경무 지음 / 밝문화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 도운 허경무 / 밝문화미디어
여름 최고의 피서지가 녹음실인데 점자도서관에 자주 가지 못했다. 여름방학 땐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아이들 시간에 맞춰 챙겨줘야 할 것들도 있고 해서 시간 내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해 7, 8월 통틀어 한 권밖에 못 읽고 9월 들어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은 회원신청도서 중에서 따로 뽑아두고 있었는데 여름을 다 보내고 나서 9월에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 두 권의 책인데 나는 1권을, 또 다른 봉사자가 2권을 하기로 했다. 내리 다섯 시간을 녹음했다. 2009년 녹음한 책이다.
국선도 도종사 도운 허경무 선생이 집필한 책이다. 국선도는 9,7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심신수련법이다. 대자연을 완전한 경전으로 삼아 자연을 보고 배우며 수련한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국선도 지도자와 회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주내용으로 엮은 지침서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니 국선도 지도자가 아닌 나에게도 마음닦이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전문 작가의 문장이 아니라 그런지 매끄럽지 못한 문장에 비문도 있어 낭독의 흐름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문장을 읽는 동안 자주 호흡이 거칠고 숨이 좀 찼다. 이런 경우 낭독의 즐거움이 덜하지만 내용에 충실히 읽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숨소리가 유독 많이 들어갔더라는 녹음실장의 말과 함께 편집에서 노이즈랑 거친 숨소리 모두 제거했다고. 지금 읽는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흡도 노이즈도 숨소리도 수정할 부분이 차츰 적어지고 오독도 녹음 중 즉시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수정한다.
특히 아래의 글은 생각을 붙잡는다.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하여 세상이 변한다. 우리는 그런 분들 덕분에 점점 변화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항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편리하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돌다리가 하나 생길 때도 누군가 찬물에 발을 적시며 징검다리를 놓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큰물을 건너다 많이 떠내려가 죽어야 돌다리가 하나 생겼으며, 오늘날 신호등이 하나 생길 때도 성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어야 신호등이 생기듯이 누군가가 큰 대가를 치러야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게 보이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6쪽)
신뢰감에 금이 살짝 가는 사람을 들라면 나에겐 세 가지가 있다.
혀가 발보다 앞서는 사람, 다락방이 없는 사람, 입이 귀보다 바쁜 사람.
첫 번째는 말을 해놓고 실행하지 않거나 말만 내세우는 사람이다. 실행하지 않을 거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두 번째는 늘 지나치게 밝기만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그늘이 없어 보이는데 그게 좀 믿기지 않아서다. 마음의 다락방에 고개를 숙이고 가끔 올라가 낮게 엎드려 보자. 미세한 어둠과 먼지 냄새 품은 공기가 아래에서 수런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한결 밝게 들려준다. 세 번째는 말을 선점,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람이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내도 ‘나는’이나 ‘내가’로 전환해 버리는 기.승.전.‘나’. 부류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참 재주도 용하다 싶고 일면 부럽기도 하다. 뭐 나도 그럴 때가 있고 그러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앗, 혀고삐를 늦추어 주저앉혀야한다.
말로써는 우주라도 족히 다스릴 수 있겠다, 말로 무슨 이야기를 못합니까? 바닥에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를 줍고 휴지 하나를 줍는 사람, 말없이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에 의해 세상은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논리나 혀나 꾀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이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속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말을 꺼냈다 하면 자기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는데...',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그 이뤄진 것은 나의 힘이야.', '나', '나', '나'가 나오는 사람에게는 여러분들 얼른 뒤를 보이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변화란 그런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지요. 자기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여들고 어떤 개선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지 불평과 불만과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게 되고 갈등과 분리만 조장될 것입니다. 그런 때 여러분의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국선도 대자연의 길 1, 207쪽)
말마다 ‘나는’으로 시작해 상대의 말을 자르고 말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며 자기 이야기를 해버리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반면교사로 나를 돌아보며 입을 좀 더 자주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놓아라, ‘나’는 잠시 미뤄두어도 좋다. ‘나’는 나서지 않을 때 가장 빛난다.
침묵은 금이고 경청은 다이아몬드다. Los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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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_ 3년간 부산수필문예 편집장일을 마쳤다. 그동안 조용조용 맡은 일 완벽히 해내느라 수고했다고 인사를 전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조촐한 찻집에서 연상의 후임자에게 일을 인계했다. 그분의 글을 좋아하는데 단둘이 대면해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해보긴 처음이었다. 염려와 겸양의 말을 자꾸 하셨지만 야물딱지게 잘하시리라 확신한다. 편집위원으로 속해서 또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 권유해 드릴 것이다. 오늘아침에 단톡방을 보니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250여 명이 속한 곳이니 생각도 제각각이겠으나 말은 줄일 수록 '나'는 나서지 않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간 봉사할 선생님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나 보내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의 서재, 지기이신 수암 님께서 손수 찍으신 민화 판화를 보내주셨다.
좋은 기운 받으라는 마음 고이 받아 올 한 해 잘 살아야겠다.
여러분들에게도 까치호랑이 기운이 전해지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