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일을 한다면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이야.
‥‥‥
그것 봐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방편이라면 먹고 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갈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내지는 순서가 다른 것의 간섭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
그러니 말일세. 말하자면 의식주에 곤란을 겪지 않는 사람이 흥미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진실되게 일을 할 수 없는 거지.

107,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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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싫어요.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툭하면 논쟁을 벌이더군요. 아무런 결론도 없는 얘기를 어쩜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모님의 말은 약간 매서웠다. 하지만 어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사모님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인정받고 거기서 자부심을 느낄 만큼 현대적인 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았다.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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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를 뚫고 달려 순수한 사람들 몇을 만나 미팅하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왔다.

내일 저녁,  수필낭송회에서 첫 번째 순서로 낭송하는데 배경음악으로 이 음반을 골라둔다.

내가 좋아하는 최민자님의 수필 '달빛과 나비'를 3분 정도 낭송 용으로 정리했다.

마음 같아선 덩실덩실 가야금 소리자락에 맞춰 어깻짓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저 황병기 선생의 침향무 가락에 내 목소리가 조화롭게 녹아들길 바란다.

내일은 비가 안 오면 좋겠는데 어떨지... 비 오면 머리카락이 힘 없이 가라앉고 부스스해진다구 ㅠ

 

 

 

달빛과 나비

 

 

글 / 최민자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 청아한 그의 가야금 연주는 댓잎에 듣는 빗방울이었다가, 빠르게 일어나는 구름이었다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였다가, 이윽고 고요한 달빛이 되어 천지간에 흐뭇이 내려앉는다. 잦아지는가 싶다가 사뿐 살아나는 산조의 선율은 천상의 궁궐에 사는 요정이 서둘러 은하수를 건너가는 작고 날랜 걸음새도 같고, 그 요정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열사흘 달빛 같기도 하다.

 

선생의 가야금 소리에서 나는 노을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만나고, 결 고운 비단치마가 풀숲을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른 봄, 꽃들이 벙글어 터지는 소리와 늦가을 들녘의 바람소리를 만난다.

 

신새벽 호숫가, 이제 막 번데기에서 깨어난 나비가 달빛에 젖은 날개를 턴다. 조금씩 조금씩 푸드덕거리며 서툰 날갯짓을 시작한다. 달빛 사이로 나비가 날아오른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노랑 바탕에 까만 무늬가 찍힌 호랑나비, 보랏빛 작은 날개를 가진 부전나비, 모시나비, 제비나비, 배추흰나비, 꼬리명주나비...... 하늘은 오색 날개로 눈부시고, 날갯짓 소리로 세상이 현란하다. 연주가와 악기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지는 신비스런 법열의 춤사위. 도도한 악흥이 빛의 꽃가루가 되어 칠흑의 세상 위에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나비들이 하나둘 내려앉는다. 술렁이는 축제도 막을 내리고 호수에는 달빛만 교교하다. 제의를 치르듯 숙연하게 줄을 뜯던 선생의 손길도 멈추어 있다.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고즈넉한 정적이 깃든다. 밝은 달무리를 삼킨 것처럼 비로소 가슴이 환하게 트여온다.

 

    

 

- 최민자 수필 <달빛과 나비>에서 낭송용으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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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7-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맛~~`침향무`는 저희 가족들도 즐겨 듣던 황병기님의 연주.^^
덕분에 큰 아들이 가야금을 배웠지요~


침향무,를 배경음악으로 낭송하시는 `달빛과 나비`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조화롭고 아름다운 프레이야님의 낭송, 서재에서도 들려주세욤~~*^^*

프레이야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7-21 08:39   좋아요 0 | URL
역시 가족이 모두 멋진 정취를 즐기시군요. 아드님이 가야금을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니 대단해요. 서양악기만 많이들 시키는데‥ 탁월한 선택입니다. 울작은딸은 장구를 잘 두드려요. 사물놀이에 푹 빠져서 3년을 보냈거든요. 고교생이 되고는 뜸하지만 그때의 열정을 종종 떠올리며 스스로 뿌듯해한답니다. 과음했는지 목소리가 좀 잠겼어요. ㅎㅎ 몇 번 연습해봐야겠네요^^
 

 

 

 길과 걷기,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산문집

 내용과 어울리게 배치한 낡은 흑백사진들도 영감을 준다.

 

 

 

 

 

 

 

 

 

 

 

"세계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파악하기 어려워질 때 그 지주로서 남는 것은 몸이다. 몸은 알쏭달쏭하여 감이 잡히지 않는 삶 속에서 살을 다시 찾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몸을 다듬는 것은 세계에 매달리는 하나의 방식으로 변했다. 몸은 무한히 재조정되는 어떤 아이덴티티의 부대사항으로 승격했다. 외관은 가장 밀도 짙은 깊이의 장소가 되었다. 폴 발레리가 말했듯이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그래서 <걷기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 김화영 '옮긴이의 말' 중에서

 

 

 

 

걷기는 언제는 미완상태에 있는 실존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불균형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보행자는 규칙적 리듬으로 바로 앞서의 운동에 그와 상반되는 또 하나의 운동을 즉시 연속시켜야 한다....... 보행은 세상을 향한 자기개방이므로 겸손과 순간의 철저한 파악을 요구한다. (88p)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 (237p)

걷는 사람은 낭패감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물들과 육체적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온몸이 피로에 취하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저곳으로 간다는 보잘것없지만 명백한 목표를 간직한 채 그는 여전히 세계와의 관계를 통제, 조절하고 있다. 물론 그는 방향감각을 잃기도 하지만 아직은 알지 못할 어떤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걷기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어 불행을 기회로 탈바꿈시킨다. 인간을 바꾼다는 영원한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길의 연금술이 인간을 삶의 길 위에 세워 놓는다.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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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5-2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참 좋으네요.
저도 걷기를 좋아하니 더 와닿아요^^

새벽녘 이슬 머금은 길을 걷는 느낌은 마치 나니아 연대기로 들어가는 느낌이어요^^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5-21 17:28   좋아요 0 | URL
표지 사진 멋지죠. 걷기를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좋은사람들과 걸으면 다르겠죠. 때론 혼자걷기도 필요하구~^^

아무개 2015-05-2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거 좋아하는데
요샌 미세먼지땜시
쫌만 걷고 와도
콧물 줄줄줄 ㅡ‥ㅡ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5-21 22:25   좋아요 0 | URL
알레르기 비염 있으시나 봐요. ㅠ
환절기에 특히 심하던데요.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복면을 쓰나 본데
갑자기 보면 식겁합니다. ㅎㅎ
저는 다행히 미세먼지에는 그닥 예민하게 반응하진 않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5-05-2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걷는 것 즐겨요. 요즘도 매일 걷고요.
해질 무렵에 산책하러 나가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많이 걸어 지루할 땐 폰에 이어폰 연결하여
음악을 들어요
처음엔 소화불량 때문에 매일 한 시간씩 걷기 시작했던 게 이젠 습관이 되었어요.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지켜야 할 수칙 중 하나는,
`매일 걷는 시간을 가져라`가 될 것 같아요.
걷기가 건강에 참 좋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걷기에 관련한 에세이가 많더라고요. ^^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5-23 21:30   좋아요 0 | URL
네 소화 때문에 산책하신단 말씀 기억나요. 저는 사실 잘 안 걷는데 요즘은 일상에서라도 조금씩 걷는 걸 늘려가려고해요^^

처음처럼 2015-05-2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았어요. 이 책....
걷기에 관한 글을 쓸 때면 꼭 한 번은 다시 뒤적이곤 하지요.
^^*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5-26 20:38   좋아요 0 | URL
통했어요. 님 ^^ 마음이 고요해지더군요
 
호란하 이야기
샤오홍 지음, 원종례 엮음 / 글누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샤오홍이 홍콩의 병원침대에서 쓸쓸히 죽어가기 전, 유년의 호란하를 자주 추억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사람과 풍경,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묘사가 지극하다.

`호란하`
이 작은 도시에 전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사셨고 지금은 우리 할아버지가 묻혀 계신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 60여 세셨다. 내가 네댓 살이 되었을 때에는 거의 70에 가까우셨다.
‥‥‥
전의 그 집 뒤 화원의 주인들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늙은 주인은 돌아가셨고, 작은 주인은 황무지로 도망쳐 버렸다. 그 화원의 나비와 메뚜기와 잠자리 등은 어쩌면 아직도 해마다 그대로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제는 완전히 황량해졌는지도 모른다. (중략)
이상에서 내가 쓴 것은 결코 무슨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내 유년의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고 잊기가 어려워서 여기에 적어본 것이다.
1940년 12월 20일
홍콩에서 탈고함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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