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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한 지 한 달 보름, 그러니까 6주가 지났다. 만우절에 집으로 돌아와 보름도 훌쩍 지났다. 창밖으로 밝은 햇살 마주하며 사사로운 페이퍼를 쓴다. 기억을 정리해두고 싶다.


오늘부터 앞쪽을 살짝 디뎌보라고 하셨는데 해보니 무리다. 겁도 나고. 아직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하는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수술 후 첫 드레싱 할 때 본 흉한 몰골에 비하면 완전 사람 됐다. ㅎㅎ그보다 수술하기 전 붓기를 빼야 해서 붕대를 감은 채 진통제에 의지해 누워 있던 사흘의 고통에 비하면 살 것 같고 나아질 일만 남았다. 물리치료사에게 운전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니 오른쪽이라 운전은 아직이고 제대로 걷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테니 조급해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렇겠거니 한다. 이만하면 됐고 이만하면 복도 많지.


외상진료센터로 들어가 거의 한 달을 병원에 있는 동안 의외로 견딜 만했고 담담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니 기대지 말자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들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나한테 벌어진 일이 무슨 의미를 띠는지 곰곰 되짚어 보았다. 몸이 살려고 그러는지 밥과 반찬도 맛있게 먹혀 삼시세끼 싹싹 다 비웠고 한번도 우울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와 있는 요즘 심장이 조이고 불쑥불쑥 눈물이 난다. 살 만하니 또 생각이 많아지나 보다. 30여 년 전, 나보다 조금더 이른 나이에 비슷한 상해사고로 같은 쪽 다리 수술을 했던 엄마. 그때 철없던 나는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던 게 이제야 생각났다. 나는 집에서도 좋은 도구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지만 당시 엄마는 깁스한 다리로 앉은뱅이처럼 집 안을 움직였다. 딱히 아빠가 도와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도움의 손을 내밀지 않고 가사를 어쨌거나 혼자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계절도 좋은 때이지만 엄마는 한여름이어서 샤워도 자주 해야 했는데... 퇴원 후 아빠가 엄마와 함께 두 번 다녀가셨다. 다행히 다시 회복하신 아빠. 올해 초에만 해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봄이 되면 나들이 가게 어서 일어나도록 하자고 했는데 동생 차로 나를 보러 오셨다. 두 분 모두 노령이지만 내 다리로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라도 건강하시길... (엄빠집이 4층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지금의 나로선 ㅠ)


실밥을 뽑고 퇴원준비를 하는 날 아침, 옆지기가 확진을 받았다. 단둘이라 옆지기 케어를 받아야 하는 형편인데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걸 어떡해야 하나 난감 황당, 급히 다른 곳을 알아보았다. 몇 가지 옵션이 있는데 모두 사정이 맞지 않았다. 복도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가끔 인사를 나누던 다른 병실의 남자분이 지나가다가 보고 자기도 내일 퇴원인데 집으로 안 가고 다른 병원으로 바로 가 더 가료할 거라며 병원을 권유했다. 그런 방법이 있구나.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고 바로 그 병원을 알아보았다. 동생네가 퇴원을 도우러 와서 짐꾸러미와 나를 싣고 그 병원으로 바로 갔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 후, 입원실로 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신의 한수였다. 바로 집으로 왔다면 옆지기도 나도 서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다음날 이 병원에 와서 양성으로 검사결과가 나와 정작 입원하지 못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사람일 참 알 수 없다.


수술한 병원에서 17일, 재활의학과병원에서 12일, 이렇게 병원에서 29일간 지내며 여러 사람을 보았다. 적지 않은 걸 알게 되었고 느꼈으며 봄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독였다. 돌이켜보면 꿈만 같은데, 나름 나쁘지 않았다. 대체로 절망하지 않았고 새로운 환경에 호기심도 생겼고 단순하고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나쁘지 않았다. 제왕절개 수술 이후로 이렇게 환자로 병원에 있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시간을 최대한 아깝지 않게 보내자 생각했다. 다리를 올리고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해 노트북은 갖다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미루고 있던 책을 갖다달라는 주문을 식구에게 자주 했다. 마음에 당기는 책 제목과 위치한 자리를 좌표 찍듯 정확히 알려주면 옆지기가 드립한 따끈한 커피와 모 빵집의 갓 구운 베이글과 함께 배달해 주었다. 보호자 출입이 금지되었기에 1층 안내데스크에 맡기면 간호사가 전달해 주었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책과 영화가 없었다면 그 지리멸렬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다. 북플과 플친도 위안이 되었다. 단지 나만의 방이 없이 개방된 공간에서 비자발적으로 오픈된 채 살아야 하는 건 생각보다 불편하고 심난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고 수시로 간호사와 보호사가 들락거리고 화장실문이 바로 앞에 보이고 무엇이든 손에 바로 닿도록 내 몸 주위로 이것저것 어지러이 널려 있고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도 못 감고 붕대 감은 다리도 올리고 있어야 하는데, 커튼을 치면 궁시렁거리는 말이 들렸다. 왜지? (특히 코로나 확진자 급증하던 때라 공지문도 붙어있듯이) 커튼을 치는 게 원칙이고 배려인 것 같은데, 생각이 다르구나! 대통령선거일 전후론 듣기에 너무나 거슬리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아,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슬며시 책을 들고 휠체어를 굴리고 나가면 뒤에서 새댁이는(헉!) 커튼 치면 안 답답한가, 나는 아들이 책 갖다드릴까요 묻는 걸 마 필요없다 놔둬라 했다는 둥 말소리가 들렸다. 60세 이상의 여성들은 한 공간에서 커튼으로 단절되는 느낌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엄마가 자주 입원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시야가 갑갑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렇구나. 종일토록 그렇게 열려 있는 공간에서 눈 뜨면 먹는 이야기, 자식자랑 손주자랑을 비롯해 하나마나한(이건 내 생각) 이야기를 반복하며 티비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다 들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공감되거나 인생의 팁이 되는 이야기도 들려 가끔 맞장구를 쳐 주었고 묻는 말엔 고분고분 대답해 드렸고 과일도 여러번 나누어 먹었다. 그러면서 조금 느긋하게, 무심하게,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지금은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수시로 커튼을 쳐서 나만의 작은 방(나름 아늑했다)을 만들었다. 삼시세끼 먹고나면 낮에는 옥상정원으로 저녁이면 복도끝으로 휠체어를 타고 가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쐬며 밝은 조명 아래서 책을 읽었다. 병실의 인생선배들은 저녁식사를 끝내면 일찍 불을 껐고 영화는 이때부터 보기 좋았다. 이어폰을 꽂고 영화를 보며 통증도 불편함도 잊으려 했다. 재활의학과병원에서는 창가 침상이어서 햇살이 밝아 낮에 책 보기 좋았다. 창문 열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도 좋았고.


재활의학과병원으로 옮기고는 일단 환경을 좀 바꾸니 처음 몇 날은 날아갈 듯 살 것 같았다. 뭔가 에너지가 정화, 순환되는 느낌이랄까. 옥상정원에는 작은 꽃밭이 있었다. 튤립과 히야신스가 몽오리를 올리고 있어서 매일 오전 오후 눈맞추었다. 마주 보이는 황령산 꼭대기와 내려다보이는 수영 일대 동네 위로 매일 변주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맞는 주사가 엉덩이를 돌덩이로 만들어 문제이긴 했지만 다 좋다 해도, 종일 옆침상의 60대 여성분이 벽에 기대어 돌아앉아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주보았고 하루종일 입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길림에서 귀화한 조선족 60대 여성분은 하루종일 유튜브로 가짜뉴스를 보고 생중계했다. 브로치가 어떻고 옷이 어떻고 청와대에 폭파물이 어쩌고... 그걸 믿냐고 물으니 자긴 믿는다고, 거기서 당선인이 회담하면 큰일인데 걱정된다고ㅠ...휴ㅠ  (사람은 또 좋아서 괜찮다고 하는데도 식판을 매번 내다주고 뭐 그랬다. 게다가 개인적인 가족사를 들어보니 놀라웠다. 슬픈 과거사를 이야기하기 싫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나는 화제를 전환시켰다. 마오쩌둥 문화대혁명기에 유년을 보낸 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소상히 하고 있었다.)  아무튼 눈 뜨면 반복되는 갇힌 공간에서의 이런저런 환경, 더는 못 있겠다 싶은 한계가 오는 날, 퇴원을 좀 앞당기기로 결심했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몇 군데 전화해서 처리할 것들 하고 시감상과 낭송 수업도 유월초로 미루어 두었다. 그리고 대장님에게 전화드렸다. 4월에 예정되어 있던 낭송을 못하게 되었으니 조치하시라며 근황을 말했더니 놀라며 몇십 년 전 사고 기억을 들려주셨다. 교통사고였는데 다리를 심하게 다쳐 8개월간 병원생활을 했다고, 그때 모든 일을 병실에서 다했다고, 우리같은 사람에게 신이 몸에서 딱 한 군데만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디일까, 다리가 아닐까, 한다고. 공감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동안 바빴으니 좀 쉬라고, 팔도 괜찮고 의식도 괜찮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는 말씀이다. 그러잖아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서로 깔깔 웃었다. 퇴원하고 집에서 휠체어로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하는데 능률이 이전과 다르다. 몸은 연결되어 있는 통합시스템이라는 걸 절감한다. 그동안 세 군데 청탁원고를 보내고, 수필집 편집본을 교정교열 완결해 출판사에 보냈다.(노령 문우의 수필집을 도와주라는 임무를 주셨는데 이 또한 대장님의 배려임을 안다.) 


퇴원하는 날 아침, (두 발로 걸어서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만우절 기념 거짓말로 한 번 써먹고 웃었다ㅎㅎ)  옥상에 올라가 보니 연노랑 연분홍이 섞인 튤립이 제법 활짝 피었다. 보랏빛 히야신스도 만개했다. 반찬이랑 맛난 간식 사다준 이들,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웃게 해준 친구들, 힐링음악과 봄꽃 소식을 자주 보내준 글벗, 한결같이 도와주는 무던한 여동생과 나름 애쓰는 옆지기에게 고맙다. 어젠 좀 마뜩잖아 투닥거렸지만 이 또한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는 딸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말을 못하겠다. 큰딸이 내일 다니러 올건데 놀라겠지. 친구는 이런 나더러 특이하다고 놀린다. 나, 특이한 인간이야?

그리고 자주 안부를 물어준 알라디너벗들과 위로의 편지와 책선물을 보내준 님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 병원에서 본 책과 영화를 역순으로 간단히 정리해둔다. 100자평이나 리뷰는 다음에 또 되는대로...



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옌렌커



 동명의 우리 영화가 왜 그렇게 코미디처럼 느껴졌는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공간적 배경과 인물을 한정한 간결한 혁명 서사에 두 인간의 욕망과 생존욕이 대비를 이루어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마찰이 슬픈 웃음을 낳는다. 의도된 희화화이지만 그보다 옌렌커는 웃음 뒤에서 혁명의 역사에 반문하여 인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원을 묻는다. 1944년 중국공산당 전사, 장쓰더가 탄광에서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난 사흘 후 마오쩌둥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이는 혁명언어의 경전이 되었고 이 소설은 이 경전을 류롄과 우다왕이 본능과 사랑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쓴다. 왜곡된 인간 존재가 가혹한 현실에서도 존엄과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과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하고 눈물겹다. 간결한 문장에 서정적인 묘사, 의미 있는 구절도 좋고 재미나게 읽었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인생은 솥과 그릇이 바가지와 국자가 되고 음차(중국 전통극에서의 흉악한 인물)가 양착(음차에 반대되는 배역, '음차양착'은 운명의 불길함을 말함)이 되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이것 말고 새로운 물건이나 장치는 없었다. 음차양착은 중국 전통 가극의 정수이자 이 사랑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256쪽)



2. 글쓰는 여자의 공간 / 타니아 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의 빛나는 순간과 문장들!" 너무 좋았다. 우선 노란 액센트와 보기 좋게 편집된 풍부한 사진들. 여성작가 35인의 자연스러운 실물 사진과 글쓰는 공간, 특별한 포트레이트 같은 것들이 마음을 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을 알게 되어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더해진 것도 덤! 

작가들의 꼿꼿한 생각과 충만한 자신감이 담긴 말도 경구처럼 머리를 때리고 심장을 두근대게 한다. 

마지막, 니콜 크라우스(Nicole Krauss)의 '괴물같은 거대한 책상'은 장편소설 <위대한 집>에 영감을 주었다. 사는 집의 전 주인에게 물려받은 책상인데 벽에 견고하게 붙어 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책상이 담긴 사진은 없다고 한다. 크라우스는 그 책상에서 멋진 소설을 썼고 환상의 비밀 서랍 안에서 작품 속 인물들이 나왔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쓰려고 했다. 

글로써 서술되지 않은 세계에 사는 것은 너무나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 니콜 크라우스



 책에는 니콜 크라우스의 <위대한 집>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방 건너편의 나무 책상을 바라보았지요. 나는 저 책상에서 소설 일곱 권을 썼고, 당시엔 여덟번째 장편소설이 될 원고와 메모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어요. 서랍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어요. 책상에 달린 열아홉 개의 서랍 중 하나였죠. 크고 작은 서랍들이 짝도 안 맞고 배열도 아주 이상했지요. 그런데 막상 저 책상이 내 곁을 떠날 거란 생갈을 하니, 짝도 안 맞는 서랍 숫자와 이 이상한 배열이 제 삶을 이끌어준 어떤 질서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하략). " - <위대한 집> 중에서 

(글쓰는 여자의 공간 314쪽)

 


3.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명징한 사고와 사려 깊은 통찰에서 나온 정확한 언어는 언제나 가장 큰 힘이 된다. 우리가 무언가에 끄달려 헤메인다 싶으면 이런 책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의 미출간 원고까지 모은 이 책은 삶을 좀더 삶답게 살 수 있는 현명한 충고들이 담겼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가,라는 물음은 결국 '나'라는 개인에게 귀결하는 물음이다. 삶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삶에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살아 있는 것에 끌리는 마음'이란 살아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성장을 향한 적극적 관심을 담고 생명력 넘치는 모든 것을 향한 사랑, 열정적 욕망'이라 표현되는 것이다. 뭐든 자기 편의대로 오해하여 왜곡하면 곤란하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지만 뭔가 야릇한 느낌을 주는 인간 행위의 이면에는 진정한 자기애의 결핍이 낳은,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 깔려 있는 경우가 있다. 의식을 깨우는 좋은 대목이 너무 많지만 예를 들어 '소비하는 인간의 공허함'이라는 장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다. 



딴말이지만 소외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곳이 구약의 예언서라는 사실을 상기해주고 싶다. 예언서는 말한다. 우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상은 생명 없는 물건이며 인간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인간은 나무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일부는 불을 지펴 케이크를 굽고 남은 일부는 우상을 만들어 숭배한다. 예언서보다 더 심도 있게 소외 개념을 설명한 것은 아마 어디에도 없으리라. (234쪽)



4.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 바버라 J. 킹


 어찌 보면 동물은 식물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지 못했다.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고 정화, 자생하는 능력이 있지만 동물은 좀 다르다.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기대어야 하고 밖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며 감정을 나누지 못하면 마음이 죽는다. 슬픔은 동물을 감정 중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감정이다. 사랑은 기쁨을 낳지만 그 이면에는 고독한 슬픔이 자리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무척 공감되었다. 많은 동물을 챕터별로 나누어 사려 깊게 들여다보고 관련 자료와 저서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설득하는데, 감상에 매몰되거나 주장을 전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읽는이가 생각하여 판단하게 이끄는 점이 마음에 든다. 

 후반부에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즉, '슬픔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좀더 성숙한 애도의 자세와 방법을 제시한다. 문자화한 언어로 슬픔을 헤아려 본다는 것. 그것은 종을 넘어 동물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표현하는 자기들만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든다. 


"옐로스톤의 죽은 들소와 동물 부고"라는 장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의 문장을 인용하며 이렇게 쓴다.


나는 이 문장에 심장이 사로잡혔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진짜로 죽는 게 아니거든." 죽으면 부고가 나는 사람이든 부고가 나지 않는 동물이든 이 말은 누구에게나 아울린다. 사람들은 동물이 죽으면 함께 모여 상징적인 추도 의식을 갖기도 한다. 10장에 나온 독일의 북극곰 크누트 사례처럼 국가 규모의 행사를 열든, 고양이 팅키 사례처럼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한 가운데 작은 행사를 치르든. 우리는 이 특별한 동물들에 대한 기억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기억을 우리 세대의 다른 사람들과 다음 세대에 전한다. (281쪽)



5. 에세이스트의 책상 / 배수아


 굿즈에 눈 잘 안 돌리는데 간혹 마음을 끄는 게 있으면 지른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양철 북케이스가 굿즈인데다 읽으려고 미루고 있던 문단의 이단아 배수아, 2003년 나온 소설이지만 옷 바꿔 입은 표지가 퍽이나 마음에 든다. 만듦새도 마음에 쏘옥. 나는 가끔 예쁜 책에 혹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지만 내겐 괜찮았다. 문장을 줄곧 따라가며 시공간을 떠나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가 있는 느낌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번역을 많이 하는 분인데, 단지 이런 문장은 번역문이라 해도 별로이고 우리말인데 이러니 난감하다.


# 알프레드는 북유럽 출신의 대학생 사촌을 가지고 있었고 대개는 파티에서 그런 부류들과 어울렸다.(65쪽) ---> 알프레드는 북유럽 출신 대학생 사촌이 있어 파티에서 대개는 그런 부류와 어울렸다. (이게 매끄러울 듯) 




혹은 내가 그해 겨울 어느 장소에서 이 글의 일부분을 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M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M에게 무엇인가 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내 책상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가 되었다. 동시에 나는 이미 나와 M 아시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마치 전혀 모르는 듯이 행동했기 때문에, 그곳은 망각을 망각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슬픔을 잊기 위해서, 더이상 슬프지 않다는 그 사실을 잊었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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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서 나는 계속해서 쓴다. 페터 한트케의 말처럼, '단지 글을 쓰고 있을 때만이, 나는 비로소 내가 되며 진실로 집에 있는 듯이 느낀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207쪽)




6. 불타버린 지도 / 아베 코보



아베 코보의 실종 삼부작 중 마지막 1967년 작품. <모래의 여자>(1962)를 먼저 읽고 매료되어 <타인의 얼굴>(1964)까지 모두 구매. 모두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모래의 여자>만 보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베 코보를 두고 더 오래 살았더라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거라고도 말했다. 1973년 극단을 만들어 배우를 양성하고 자신의 희곡을 올려 성공을 거두기도 한 코보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문학으로 접어들어 전방위로 재능을 발휘했다. 발명가, 사진작가, 일본작가 최초로 워드프로세서로 소설을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불타버린 지도>는 실종자를 찾는 탐정이 실종자로 전도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낡은 지도를 끊임없이 불태우고 지도에 없는 미지의 길로 내디딜 수 있을 때, 즉 소멸을 반복하며 재생과 존재의 자각을 이루어내는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인간이라 하겠다.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권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또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재미를 찾는 게 아닐지. 

마지막 단락에서 죽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려는 것도 그래서 웃음이 번지는 것도.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는 일은 이제 집어치우자. 손으로 끼적인 메모에 매달려 전화를 거는 일도 이젠 진력이 났다. 차의 흐름에 묘한 정체가 생겨서 쳐다보니 차에 깔려 종이처럼 납작해진 고양이의 시체를 대형트럭까지도 피해 지나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무의식중에 납작해진 그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려 했는데, 그러자 오랜만에 분에 넘치는 환한 미소가 뺨을 녹이며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다. (317쪽)



7. 연인들 / 최승자


 수술 일주일 후, 병실의 이런저런 환경이 답답하고 두통이 밀려왔다. 심리적인 원인이겠지만 한기도 조금 들어 카디건을 덮어 입고 저녁에 복도 끝에 나가 창문을 열어놓고 단숨에 읽었다. 눈으로 읽다가 나중엔 입으로 작게 소리내어 읽었다. 아니무스와 아니마,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섞이고 뒹굴며 뭉클거려, 살아서 파닥대는 시어들이 무한 힘이 되었다. 결국 그 힘은 시인이 1991년 서문에서 말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것 없이 이 지상 사람들 모두가 천상적 존재를 껴입은 땅님, 즉 따님인 것"이라는 말이 구현한 지점에서 나온 듯하다. 이는 시인이 제안하는 새로운 개념의 페미니즘이다. 그런 생각으로 시인은 연작시 '연인들' 1,2,3을 썼지만 이 시집의 다른 시들도 그런 생각에 기반한다. 

 






구토


오늘 내가 들은 빅 뉴스, 굿 뉴스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창조해 놓은 신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시를 썼었던

나는 이제 해방이다. 오늘에서라도

그 뉴스를 듣지 못했더라면, 나는 필경

그를 죽여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신의 살해자가 되었을 테니까.


창세기라는 이름의 소설, 아니면 영화 속에서

그 구조와 진행에 묶여 신음하던 여자가

그 스토리 밖으로 가볍게 빠져나온다.

도대체 이런 스토리를 쓴 작자는 누굴까.

죽여버려야지, 나는 그 안의 한 고통스러운

배역으로 존재하긴 싫으니까, 그리고

내 모든 형제들도 탈출시켜야 하니까,

이 작자를 죽여버려야지, 두리번거리면서,

찔끔찔끔 구토하면서.


하지만 그때 어떤 손이 내 등을 두드리며

내게 말한다. "이봐, 그것도 꿈이야. 꿈에서

아무리 죽인들 무슨 소용이야, 그저 그 꿈을

용서하는 게 최상이지. 용서가 가장

완벽하게 빠져나오는 길이야."

나는 그제야, 내가 그를 태곳적부터

알아왔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그를 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모든 여행은 쓸모없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고,

모든 여행은 떠난 적도 없는,

잠 속의 , 꿈속의 여행이라는 것을. 


(54-55쪽)





8.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이전에 영화를 먼저 보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원작을 아주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의 실루엣을 살린 여자의 몸도 내용을 잘 반영한다. 만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아베 코보는 공간적 배경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모래'의' 여자는 모래 속의 여자, 모래라는 여자, 모래를 모시는 여자, 모래를 위한 여자, 모래 같은 여자, 모래의 일부인 여자, 모래에 의한 여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재미있게 보았고 읽었다.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 실존을 모색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시시포스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시시포스가 언덕 위로 바위를 굴려 올려도 떨어질 것을 알면서 노동을 멈출 수 없었던 건 아마도 그 위에 자신을 반기는 꽃 한 송이, 바람 한 자락,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남자도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한 제2의 삶이기에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시간이라는 모래가 끊임없이 쌓여 존재와도 같은 집을 덮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즐거운 마음으로 그 시간의 압박을 가벼이 날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그냥 노동하는 것이다.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분지에 갇혀 살아도 물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탈주는 조금 미루어도 될 일이다. 입은 다물되 언제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 그렇다면 조금더 그 반복되는 시간을 견뎌볼 만할지 모른다. 기분 나쁘지 않게 음탕하고, 과학지식까지 겸비한, 재미있는 양반이다, 아베 코보.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의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변화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 배급이 중단될까 봐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가, 아니면 또 노동 자체의 성격 때문일까?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언제였던가, 뫼비우스의 띠가 같이 가자고 하여 무슨 강연을 들어러 간 적이 있다. (중략)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 그 자기 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153쪽)


남자는 밀려오는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다.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다. 모래의 모관 현상이다. 모래의 표면은 비열이 작기 때문에 항상 말라 있지만, 조금만 파 내려가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젖어 있는 법이다. 표면의 증발 현상이 지하의 수분을 발아올리는 펌프 작용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침 저녁 사구가 뿜어내는 저 방대한 양의 안개와, 벽과 기둥의 재목을 썩히는 저 비정상적일 정도인 습도의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다. (중략) 바꿔 말하면 물은 끊임없이 보급되고 있다는 소리다. (221-222쪽)




9. 파워 오브 도그 / 토머스 새비지 


  장성주 번역이라 그런지 문장이 더 매력있다. 이 책은 수술 전까지 이틀 동안 부상 부위에 얼음 주머니를 계속 얹고 읽었다. 앉지 말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두라고 야단치시는 바람에 누워서 읽으며 통증을 잊으려 했다. 진통제 효과가 떨어지면 견디다 너무 아프면 간호사를 호출하고 그러며 읽었다.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한 사람이 도리어 개가 되고 말았으니 그 오만함과 어리석음이 마땅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인간에 대한 연민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다. 피터는 자신과 사랑하는 엄마의 운명을 스스로 구한 새로운 유형의 징벌자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살게 할 안전한 세계를 스스로 구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새비지의 실제 가족사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니 피터에 이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졌다. 먼저 보았던 영화의 장면이 겹쳐지며 생동감 있었다. 영화에서 들을 수 없었던 참된 대사들도 다시 펼쳐보고 싶다.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피터는 그 기도서가 자주 쓰이는지, 혹시 그 구절만 잘라 내어 자기 스크랩북에 붙이면 안 될지 궁금했다. 아직 붉은색은 띠고 있으나 향기를 잃은 장미 꽃잎보다는 그 시편 구절이 스크랩북의 마지막 항목으로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이제 로즈는 구원받았으므로. 이는 피터 아버지의 희생 덕분이었고, 피터 스스로가 아버지의 묵직한 검은 책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저지른 어떤 희생 덕분이었다. 이제 그 개는 죽었다. (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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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8 2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생많으셨어요 프레이야님 그 힘든 소음속에서도 많이 읽으셨군요 ㅎㅎㅎ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살색들이 슬프더라고요 ㅎㅎ 모래의 여자 저도 좋아하는책 ~ 불타버린 지도 궁금하네요 *^^* 피아노 잘 치는 따님 오시는군요 ㅎㅎ 제가 애기가졌을때 아빠에게 피아노 잘 치고 공부 잘하는 딸 갖고 싶다고 했더니 … 네가 좀 그러지 그랬냐고. 팩폭을 ㅠㅠ ㅎㅎ 제가 갖고싶었던 따님을 가지신 프레이야님 ㅎㅎ 얼릉 나으시길 ~

프레이야 2022-04-18 20:47   좋아요 3 | URL
ㅎㅎ 아빠의 팩폭에 빵터졌어요.
미니님의 조근조근 사랑스러운 유머는 아빠를 능가하여 닮으신 듯요.
내일 오늘 딸은 피아노딸의 언니.
동문이고 클래식기타딸입니다. ㅋㅋ
거의 다 읽으신 책이죠?
불타버린 지도 재미있어요.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야겠다 싶어서
생각나는대로 주섬주섬 ㅎㅎ

고맙습니다 미니님.

튜울립 2022-04-18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네요.재활운동 열심히 하시구요~

프레이야 2022-04-18 21:17   좋아요 2 | URL
튜울립님 제 페이퍼에도 등장해요 ㅎㅎ
옥상정원에 두고왔는데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지만 얼마나 반가웠다구요. 고맙습니다. 이제 슬슬 재활운동 그런 거 해야되는 거 같아요. 슬슬 겁이 나네요

미미 2022-04-18 2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병원에서 이렇게나 풍부한 독서생활을 가지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몇년전 병원에 입원했을때 입맛없어져 규칙적으로 나오는 한식만 잘 챙겨먹다보니 10키로나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새댁이었는데ㅋㅋㅋㅋ 입원실을 만담방, 고요방 분리해주면 좋겠어요.ㅋㅋ종종 귀에서 피가 흐르던 기분ㅠ.ㅠ 책 읽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집중이 안되어 한달동안 두세권 읽었던것 같아요. 주섬주섬 몇 권 담아갑니다. ^^

프레이야 2022-04-18 21:21   좋아요 2 | URL
ㅋㅋ 귀에서 피가. 넘 딱 맞는 비유에요. 진짜 자꾸 말을 시키고 이거 먹어보라고 하고 그래도 좋은 분들이었어요. 만담방 고요방 분리 시스템 찬성요. 근데 병원에 계시면서 10킬로나 감량을요. 이게 병명에 따라 식단이 다르니. 정형외과는 무관하니 전 너무 잘 먹어가지고 위대해져서는 아직 유지 중이에요. 입맛이 왜 더 있냐고요. 아이고 진짜 새대기였군요 미미님. 전 가짜 새대기ㅋ 그분 시력이 안 좋으셨나 봐요. 그래도 슬쩍 므흣했어요. 웃픈 ㅎㅎ

2022-04-18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2-04-18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병실에서 들려오는 이견들,, 짜증났을 것 같어요. 저 같어도 상대하고 싶지도 않었을 듯 싶어요. 좀 편하게 있고 싶으셨을텐데..
책 많이 읽으셨네요. 저는 요즘 이상하게 집중이 안되서… 빨리 완쾌하시길 바랍니다. 아버님도 다행히 많이 좋아지셨다니.. 한시름 덜으셨겠어요. 저도 어떨 땐 엄마한테 미안할 때가 내가 왜 그땐 그 걸 몰랐을까, 엄마한테 신경쓰고 더 잘할걸!!!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프님, 다음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프레이야 2022-04-18 22:13   좋아요 0 | URL
온통 태극기부대원 같은 분들이었어요. 제발 들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눈은 감으면 되는데 귀는 참 ㅠ 그래서 나중에는 귀에 계속 이어폰 꽂고 음악 크게 들었어요. 귀가 아프면 책 휠체어에 태워서 나가고 ㅎㅎ
집중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혹시 코로나 후유증은 아니시길요. 후유증으로 그런 분도 있더군요. 집중 안 될 땐 그냥 책 놓고 무조건 좀 쉬세요. 고맙습니다 님.

persona 2022-04-18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원 축하드려요!
저도 10주간 다인실 이용했었는데 하나하나가 말들이 많고 무슨 행동이든 흉이 되서 불편했어요. 일곱명의 환자와 4명의 간병인이 다들 저마다 전화도 자리에서 받으니 밤낮없는 소음에 지치더라고요.
그냥 차라리 커튼 치고 서로 터치 안하고 프라이빗하게 있는 게 나은 것 같은데 그분은 왜 그랬을까요? 창문이 안보였으려나요? 정말 사람은 다양하고 그래서 서로 다르고 그런 거 같네요. ㅎㅎ
그래도 병원보단 집이 낫죠. 얼른 재활 잘하시고 다시 잘 돌아다니실 수 있길 바랍니다! ㅎㅎㅎ

프레이야 2022-04-18 22:24   좋아요 1 | URL
빰바라밤 ㅎㅎ 고맙습니다 페르소나님. 전 4주도 한계가 오던데 10주간이나 공동공간에 계셨군요. 7인실이나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에구 전 4인실이고 코시국이라 다행히 간병보호자 없어도 그 지경이던데요. 불도 늘 켜져 있으니 그것도 수면에 방해가 되고.
커튼은 참 묘한 게 있던데요. 첫 병원에서는 창가랑은 멀리 떨어진 입구의 벽쪽이었거든요. 커튼의 심리 뭐 그런게 있을까요 ㅎㅎ 첫병원 퇴원하기 며칠전 여대생이 입원했는데 하루종일 커튼 치길래 그건 좋은데 남친이랑 하루종일 전화통화를 생중계하더군요 ㅎㅎ 너무 남을 의식하지 않는 ㅠ 영통을 하는지 남친 목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ㅎ 목소리가 좋더군요. 깨달은 바 두번째 병원에서는 커튼 아예 한번도 안 쳤어요. 그러니 종일 옆환자가 지켜보는 대로 지냈어요. 에피소드가 많지요. 수럭수럭한 마음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돌아다닐 날까지 홧팅! ㅎㅎ

persona 2022-04-18 22:36   좋아요 0 | URL
궁딩이를 다쳐서 수술하고 붕대를 산 만하게 붙여서 비주얼이 엄청 웃긴데다 이목을 집중하는데 팔다리는 또 괜찮아서 걸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별거 아닌 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근데 수그리질 못하고 앉지 못해서 머리도 제대로 못 감고 볼일도 못 봤어요. 그래서 밥도 볼일 볼까봐 못 먹고, 늘 서있거나 기력없이 누워있으니 재는 참~ 게으르고 팔자 편하다는 말을 한 간병인에게 너무 들어서 질렸었어요. ㅋㅋㅋ
맞아요. 커튼 쳐도 안 보이면 안 들리는 줄 아는 걸까요? ㅋㅋㅋ 그분도 지겨웠겠지만요. ㅋㅋㅋ 이게 또 정형외과라 다들 전화를 안에서 받으니 다인실에서 새벽이나 밤에 전화하면 정말 대환장입니다.
진짜 파이팅입니다. 잘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프레이야 2022-04-18 22:45   좋아요 1 | URL
에구 궁딩이를 ㅎㅎ 불편한 정도가 아니었겠다 싶어요. 세상에나 ㅠ 남말 참 쉽게 하는데 그말이 상처될 줄 모르고 ㅠ 다 사정이 있는데 말이죵. 화장실은 참 ㅠ 밥도 안 드시다니. 저도 한번 갈 때마다 힘들어 물은 아예 안 마셨어요. 커피는 왜 마셨나 몰라요 ㅎㅎ 그건 양보할 수 없어서요

persona 2022-04-18 22:48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요즘은 커피가 물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선 것 같아요. 저도 그 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면 아메리카노는 포기 못했을 것 같아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4-18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다인실 병실에서 이렇게나 책을 많이 읽으셨다니????👍
커텐을 치면 궁시렁대는 소리가 어쩐지 제 귀에도 들리는 듯하여 조금 웃었습니다.
다인실은 하나의 또다른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어요. 적응될 듯 한데도 적응되지 않던 병원생활ㅜㅜ
그런 공간에서 저렇게나 많은 책들을?? 장하세요~^^
큰따님 내려오면 에궁~ 놀라겠어요.
저도 예전에 결혼 전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는데 엄마가 넘어지셔서 팔이 부러져 한 달을 깁스를 했었다는데 말씀을 안하시니 전 전혀 몰랐었어서 속상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저는 속상한척은 했었는데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했었고, 눈으로도 고통과 불편함을 직접 보질 못했으니 잠깐 속상하다가 또 내 생활에 빠져서 잊고 지냈었던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이 30 년 전 어머님의 다리 다치셨던 옛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물이 나신다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자식들은 왜 꼭 겪어봐야 부모심정을 그제서야...ㅜㅜ
암튼 그래도 그와중에 아버님의 완쾌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프레이야님의 회복 속도도 이제부터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아 다행이구요.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덧나지 않게 잘 회복하시길요^^ 남편님도 고생 많으셔요^^

프레이야 2022-04-18 22:32   좋아요 2 | URL
정말 또 하나의 사회였어요. 적응되어가면서 편하다 싶으니까 한계가 오더군요.
의사들 대단하다 싶고 간호사와 조무사, 요양보호사 분들 모두 성심껏 돌보고 상냥하게 대하며 수고하시더군요. 좀 아닌 분도 있었지만 우린 그냥 넘어가는데 이십 대 환자는 또 다르더군요. 머리를 시원하게 안 감겨줬다고 항의건의서 제출하대요. 놀랐어요ㅠ 별사람 다 ㅎ
우리네 엄마들 마음은 다 그런가 봐요. 저도 괜히 걱정이나 하지 싶어 공부하는 데 신경 쓰일까 봐 그냥 말 안 했거든요.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ㅠ 회복은… 천천히 조금씩 잘해나갈게요. 고맙습니다 늘. 히융~ 눙물이.

햇살과함께 2022-04-18 2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병원이라는 공간이 시간 많은 듯 하지만 막상 책은 잘 안읽히던데 대단하세요! 그 소음과 방해 속에서도 ㅎㅎ

프레이야 2022-04-18 22:47   좋아요 2 | URL
자칫하면 이도저도 아니고 완전 먹고 자고 누고만 할 것 같아서 나름 용을 쓴 것 같아요. 덕분에 오히려 집중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ㅎㅎ

독서괭 2022-04-18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고생이 많으셨군요 ㅠㅠ 그 많은 소음 특히나 듣기 힘든 견해들을 견디느라 더 힘드셨겠어요 아휴… 그와중에도 이만큼이나 읽으셨네요! 모래의 여자 예전에 읽은 것 같은데 가물가물.. 최승자 시인의 시가 참 좋습니다.
프레이야님도 옆지기님도 잘 회복하시길 빕니다!

프레이야 2022-04-19 00:37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독서괭 님.
옆지긴 잘 나았어요. 그땐 참 황당한 게 하필 퇴원날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신의 한수였어요. 우린 로또 같은 사이라고 ㅎㅎ 안 맞는 사이라고. 친구말에 웃었답니다. 두번째 병원에서 좀 느긋하게 또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도 듣는 인내심도 기르자 그런^^ 최승자 시 참 좋지요. 모래의 여자는 영화도 좋았어요. 굿나잇 ~

새파랑 2022-04-19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술하셨었군요 ㅜㅜ 좀 괜찮아지신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책이 힘이 되었던거 같아 다행이네요 ^^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4-19 13:54   좋아요 2 | URL
책 아니었으면 어찌 보냈을까 싶어요
어서 회복하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새파랑 님

singri 2022-04-19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고생됐을꺼같아요. 잘 회복하시길요.;;

프레이야 2022-04-19 13:54   좋아요 1 | URL
싱그리 님 고맙습니다
봄날 누리시길요~

그레이스 2022-04-19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원하셨군요
고생하셨어요
빨리 회복되시길 바래요

프레이야 2022-04-19 13:5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
느긋하게 조심조심 씩씩하게 회복할게요~

꼬마요정 2022-04-19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인실 힘들죠ㅠㅠ 고생하셨어요~ 저는 예전에 장염으로 잠깐 입원했는데 금식이라 잠만 자니까 다들 신기해하면서 깨우더라구요. ㅎㅎㅎ 암환자분들은 오히려 북적북적이는 게 마음이 편한가보더라구요. 퇴원하셔서 다행입니다. 병원은 잠깐만 들러도 기 빠지는 느낌이에요ㅠㅠ 얼른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2-04-19 13:58   좋아요 3 | URL
자면 먹으라고 꼬박꼬박 삼시세끼 깨우죠 ㅎㅎ 병실도 코시국이라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아 어떤 면으론 좋은데, 보호자로 병실에 있어봤지만 보호자까지 북적이던 이전 병실이 생각나더군요. 그런 게 좋은 면도 있지요.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님~

거리의화가 2022-04-19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뒤늦게 이 글을 읽었어요 퇴원 정말 축하드립니다.
저도 몇 년전 발목을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 달간 병원에 있었고 거의 6개월을 물리치료받는 생활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전 놀러나갔다가 헛다리 제대로 짚어서 그렇게 되었는데 진짜 병원 생활 너무 힘들더라구요. 답답한 것도 있는데 주변의 그 시선들과 주변의 소리들이 다 들리다보니 스트레스더라구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와중에 책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셨군요! 부디 잘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2-04-19 16:19   좋아요 1 | URL
저랑 여러가지로 딱 비슷한 경험 하셨군요. 동지 만난 듯 ^^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완전히 괜찮으신거죠?
이삼 년은 지나야 안심이라고들 해서 느긋하게 마음먹자 그런답니다.
소리공해 이거이 견디기 힘들어요.
고맙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서니데이 2022-04-19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월 초의 일이니까, 벌써 한달 하고도 반이 더 지났네요. 얼마 전의 일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가요.
바로 퇴원하지 않고 재활의학과병원으로 가신 건 잘 하신 것 같아요.
근데 다인실이라서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더 좋아지시면 좋겠습니다.
프레이야님, 좋은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22-04-19 20:34   좋아요 1 | URL
늘 감사해요 서니데이 님

페넬로페 2022-04-19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원, 수술, 재활, 퇴원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그 와중에 독서도 열심히 하셨네요.
완전한 쾌차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22-04-19 23:46   좋아요 2 | URL
재활은 이제부턴데 아직 길이 멀어요^^ 잘하겠습니다. 재활의학과병원은 거의 나이롱환자 수준으로 억지주사 맞고 물리치료 몇 번 하고 그 정도였어요 ㅎㅎ 왜냐면 그땐 재활 그런 거 할 시기가 아니라고 호텔이라고 마구 스스로 세뇌하며 있었답니다. 책이 있어 좋았지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님.

Angela 2022-04-20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원생활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이렇게 보여주시니 좋아요~

프레이야 2022-04-20 07:08   좋아요 1 | URL
다른 거 할 게 없으니 오히려 좋은 기회였죠. 책읽기의 즐거움 ^^
고맙습니다 안젤라 님

psyche 2022-04-20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병원 생활은 안 해봤지만 어쩐지 그 느낌 알 거 같아요. 그 와중에 책도 많이 읽으시고.
앞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빨리 완쾌하시길. 힘드신 재활도 으샤으샤 씩씩하게 잘 해나가시리라 믿어요!

프레이야 2022-04-20 07:18   좋아요 1 | URL
넵. 멀리서 보내주신 기운 받아 으샤으샤 잘요! 프시케 님 고맙습니다 ^^

라로 2022-04-20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한 달 보름이에요??? 우와 정말 시간이 빨리 가네요!!
프야님 글 읽으니까 책 열심히 읽으시던 환자분 생각나요.
뜨개질 하던 분도 기억나고,, 저희 병원은 자원봉사하는 학생이
도서관 카트 같은 거 밀면서 병실 다니면서 환자들 읽고 싶은 책 빌려주는 서비스도 있어요.
사실 너무 아프지만 않으면 병원에서 책 읽기 좋은 환경이죠..^^;;
아무튼 수고했어요. 앞으로도 몇 달 계속 고생하시겠지만, 지금처럼 잘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화이팅!!!

아참! 저 지금 <파워 오브 도그> 읽고 있어요!! 재밌네요.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소소한 기쁨이 느껴져요.^^

프레이야 2022-04-20 23:44   좋아요 1 | URL
우와 그 병원 도서 서비스 완전 좋아요
그런 거 필요한데 진짜!! 너무 반복되는 소음만 없으면 좋은데 말이죵. 몇번은 듣고 맞장구도 하는데 너무 리플레이를 하니 힘들었어요. 매일 반복해도 안 질리는 게 바로 책읽기 아닐까요. 파워도그 재미납니다. 혹시 원서로 읽나요? 원서 페이퍼북 있던데 원문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장성주 번역가 순록 그 책도 번역했어요. 문장 좋은 듯. 우리 소소한 기쁨 좋아요. 화이팅 고맙구용

희선 2022-04-23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원에서 책 읽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많이 보셨네요 책이 있어서 덜 지루하셨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아버님 건강이 나아지셔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면 좋겠네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프레이야 님도 다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좋아지기만 하면 되겠지요 따님이 프레이야 님 보고 많이 놀랐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4-23 09:53   좋아요 1 | URL
네. 좋아지겠지요.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요. 늘 고맙습니다 희선 님.
 

그동안 이래저래 정신없이 페이퍼가 밀렸다. 일단 미뤄두고 간단히라도 한 가지만 기록하자. 설날을 맞이하야 내일은 음식준비를 하고 뭐 마음이 또 분주해진다. 


방전된 느낌이랄까, 뭔가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 연료를 채울 필요성이 느껴졌다. 훌쩍 2박 3일의 제주 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일상은 그대로 나를 반겨주었다. 물론 우리집 고양군 모꾸 일명 꾸돌이도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서 내려와 슬쩍 내 바지에 부비적거렸다. 잘 다녀왔냐옹. 제주에서 길냥이들을 볼 때마다 요 녀석 생각이 나서 말도 걸고 그랬는데 간식을 들고 가지 않아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특히 성격 좋던 하북포구의 뚱냥이 녀석, 미안하다. 뭐 좀 내놓고 가라고 그렇게나 애옹거리며 다가왔는데 ㅜㅜ 


이번엔 조천 쪽에 숙소를 두고 다닐 생각이었다. 제주에 내린 첫날은 보슬비가 내렸다. 공항에서 우산을 사고 렌터카 찾으러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금방 빗방울은 잦아들었고 함덕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만춘서점에 들렀다. 1호점과 2호점이 나란히 조금 간격을 두고 있는데 2호점에서는 구매한 책을 창가 테이블에 앉아 읽을 수 있다. 나처럼 혼자 온 아짐이 열심히 책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인지는 모름.


 김승옥의 <차나 한 잔>

 한 권만 골랐다. 민음사 쏜살문고. 부피가 작아 가볍게 여행에서 읽기에 좋다. 

 단편 4개가 실려 있다. 서울의 달빛, 야행, 차나 한 잔, 서울 1964년 겨울.

 숙소에서 자기 전에 읽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성감수성이 어떻고 할 대목들이 많지만 60년대 중반이란 걸 감안하고   흥미로운 단편들. 현대 지식인의 허약한 민낯을 심연에서 건져올려 까발리는 느낌이다.

 비단 이런 부류에게만 국한된 것일까나. 뭔지 모를 힘에 떠밀려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섬 뜩한 두려움...  젊음이란 게, 여생이란 게 어두운 미로를 더듬어 나아가야 하는 일이지. 두려움은 삶의 종결지점까지도 가시지 않을걸.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 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 서울 1964년 겨울, 중




서점을 나와 바다쪽으로 걸어가는데 비를 맞아 털옷이 축축한 고양이 한 마리가 음침한 눈으로 소나무 아래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서서 바라보니, 나를 잠시 쳐다보다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한다. 추워 보이고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울집 냥이와 달리 길냥이들에게서 느끼는 공통점은 눈빛이 흐리고 눈을 바로 뜨지 못한다는 사실. 몸이 좋지 못하면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불쌍한 녀석들.



전이수 카페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이수와 동생 우태의 글과 그림에 놀랐다. 2008년생 물고기자리 이수는 동화작가로 이미 알려져 있다. 현재 15살인데 미래가 기대되는 공감능력 천재다. 사람의 마음 곁에 이토록 따듯하게 다가가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결국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것이어야 하리. 이수는 글을 항상 먼저 쓰고 그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우태는 이수보다 좀더 활달하고 느긋하고 당당하다. 이수는 4남매의 맏이답게 진지하고 의젓하고 섬세하다. 배우 김고은과 류준열을 섞어 닮은 얼굴에 눈웃음이 밝고 귀엽다. 머리는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른다고 한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의 교육관도 범상치 않은데 어른에게도 존대어를 강요하지 않고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우리는 무슨 말이든 생각이든 표현하지 않고 삼가는 게 몸에 배었는데 참 괜찮은 방식이다. 그림이 하나같이 밝고 따뜻해서 마음을 토닥여준다. 어른들이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온기있고 진지하게 표현할 줄 안다. 그림 옆에 놓인 글은 더욱 그렇다. 사전 예약하고 인원수대로 입장.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은 한 달 전에 예약을 하고 와야했다.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온세상이 음소거된 듯 조용한 아침을 맞이한 다음날 산굼부리에 올랐다.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며 제법 나긋한 풍경을 연출했다. 몸도 마음도 시원했다. 점심을 먹고 1100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 서서 바라본 한라산과 고지에서 본 맑은 하늘, 잔설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눈여겨 봐두었던 카페, 내려오면서 '고도500'에 들러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측 옆에는 신비의 도로다. 좌측 옆 신축 타운빌리지가 꽤 괜찮아 보였다. 훗날 이런 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날이 따스해 테라스로 나와 앉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냉장고 언제 오냐고. 오래된 냉장고 탓인지도 모르고 식혜가 자꾸 상한다고 하셨던 엄마다. 어제 숙소에서 주문을 하고 며칠 후 배송받기로 했는데 기다려지는지 또 확인을... 전화기 단절이 안 된다. 검색도 하고 전화도 받고 카톡도 받고 북플도 보고...


1100고지에서( 2022. 1. 26.아이폰12)



납읍초등학교 바로 앞의 원시림에 혹해서 세 번 갔던 납읍 난대림. 그보다 규모면에선 훨씬 큰 활엽수림 동백동산을 가려고 예정했다. 동백군락이었던 시절이 있어 이름이 동백동산이지만 전체적으로 동백보다 화산암 위에 활엽수림이 형성된 선흘리 곶자왈 지역이다. 이곳도 제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 곶자왈은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곶은 숲, 자왈은 바위. 그러니 제주에 곶자왈이 여러 곳이었던 것. 마스크를 벗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올랐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누워 있었다. 뿌리 쪽에 박인 돌덩이들이 곶자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래 사진) 동백동산 입구에서 먼물깍 쪽으로 올라서 한 바퀴 걷는 데 100분 정도 걸렸다. 사람손이 닿지 않은 숲이고 사람도 없어 살짝 무서웠지만 올라가다 보니 그런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먼물깍을 지나고 부터 가끔 한두 명이 맞은 편에서 내려왔다. 곳곳에 뱀조심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뱀은 겨울이라 그런지 한 마리도 안 보여 다행이었지.


동백동산, 쓰러진 나무 (2022.1.27.아이폰12)



동백동산에는 도틀굴이라는 지하 굴 입구가 있다. 4.3사태 때 양민이 숨어 있었던 곳 중의 하나이다. 숲을 빠져나와 낙선동 4.3성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포구, 화북포구를 둘러 곤을동 환해장성과 4.3유적지로 갔다. 조천은 특히나 당시 엄청난 핍박과 희생이 따랐던 곳이고 그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당시 쫓겨났다가 허락을 받고 들어오면서 직접 돌을 날라 쌓은 낙선동 4.3성에는 붉은 눈물처럼 동백이 처연하게 떨어져 있었다. 너븐숭이 기념관에서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와는 좀 다른 전시가 되어 있었다. 강요배의 그림 '젖먹이'가 입구에 걸려 있고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초판본과 번역본까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북촌마을에서 사태의 기점이 되었던 구체적 연월일 시간과 사건이 적혀 있다. 음력 1948년 12월 19일. 이후에도 침묵을 강요당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국제법상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제노사이드는 금지되어 있다. 기념관 맞은편에 애기무덤들 그리고 추모비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무거워진 마음을 덜어주려는지 북촌포구로 이어지는 바다가 무심하게 찰랑거리고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흰 구름이 시시각각 변주하며 하늘에 붓칠을 해대었다. 




애기무덤을 지키는 수선화(2022.1.27. 아이폰12)



너븐숭이로 간다니 그전날 귤을 한 그릇 갖다준 펜션 주인장이 친절하게도 인근 카페를 추천해 주셨다. 아라파파 a la papa. 프랑스어로 천천히, 한가로이라는 뜻. 바다가 바로 눈앞. 카페에 가면 비치해둔 책을 보는 편인데 여긴 과월호 채널예스가 여러 권 있었다. 주인장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대목. 정유정 소설가 인터뷰가 마음에 들어왔다. 인간심리에 관심이 많고 <완전한 행복>은 욕망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고. 2년 후 나올 두 번째는 미래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한다. 계획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강단이랄까 배짱이 느껴졌다. 세상의 비위를 맞출 생각은 없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이 좋아해주길 바라지 세상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쫓아다니며 쓸 생각은 없다는 작가다. 불안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다 써 놓고 아름다운 문장은 지워버린다는 인터뷰를 본 적도 있다. 이거 저거 좀 보면서 바다멍도 하고 화북마을 곤을동으로 달렸다. 화북포구에 잠시 차를 대자마자 붙임성 좋은 치즈냥이가 애옹대며 다가왔지만 줄 게 없었다. 그걸 눈치채고는 저만치 가서 야속하다는 듯 쳐다보네. 에고 맨날 깜박하지 말고 간식 넣어다녀라 좀!! 




아라파파 앞마당(2022.1.27 오후 1시경)




 














곤을동4.3유적지에서 나와 화장실 갈 겸 근처 카페에 갔는데 뜻밖의 이런 책. 

우지현 작가가 명화와 함께 나란히 짧은 글을 실어 놓았다.

우지현 님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표지를 그린 분이네.


<풍덩!> 책장을 넘겨보다가 골라놓은 그림들에 마음 끌렸다.

특히 모네의 스승이자 인상주의 시초, 외젠 부댕의 에트르타 바다가 6년전 추억을 불러 주었다. 모네는 5살 때 부댕을 만났다.

모네의 일출과 부댕의 일몰을 대조해 보는 것도 재미나다. 평생 어딘가에 빠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의 바다에 빠져 평생 그 바다 풍경을 그린 부댕은 말년에 자신이 태어났던 항구마을 옹플레흐에 머물며 항구와 바다를 그렸다. 부댕의 그림에는 격정적이거나 평화로운 하늘과 바다와 구름이 살아 있다. 한시도 같은 풍경이지 않다. 항구가 그림 같던, 항구를 그리는 화가들이 캔버스를 놓고 서서 열심이던 옹플레흐에는 에릭 사티 박물관이 있다. 항구에서 목조 까트린성당을 지나 조금 오르막 골목으로 걸어 한 바퀴 돌아내려와 에릭 사티 생가가 있는 골목으로 내려왔다. 


에트르타에 닿았을 때는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며 항구마을의 분위기를 흠뻑 적셔 주었다.

외젠 부댕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던 르 아브르의 앙드레 말로 미술관 MuMa는 오르셰미술관 다음으로 인상주의 그림을 많이 보유한다. 그 때 보았던 외젠의 그림 속 바다와 항구, 폭풍과 구름 그리고 풍경 속의 고독하거나 강인한 사람들의 평범한 인상이 강렬하다. 지금은 다소 흐릿해진 추억을 한 장의 그림이 소환해 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지. 미술관에서 눈여겨 보였던 건 부댕의 그림만이 아니었다. 노인분들이 유독 눈에 띄었고 모두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에트르타의 이 코끼리바위를 배경으로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하는데 우지현의 <풍덩!>에서 발견한 이 그림은 그때 미술관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 그림이다.




2016. 7월초 앙드레말로미술관 외젠 부댕 특별전(윗층에서 아래로, 아이폰 촬영)



르 아브르 항구의 일몰/외젠 부댕/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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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30 22: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모네의 스승격이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고 읽은 기억이 나요. 프레이야님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를 가보셨군요. 부럽습니다 ㅎㅎ제주도의 풍경도 좋고 ~ 강요배의 그림엔 늘 제주의 바람이 담겨있는거 같아요. 애기무덤은 넘 먹먹했고.~ 프레이야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 저도 낼 음식해야 하는데 ㅎㅎ 맘은 바쁘고 몸은 느긋하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2-01-30 22:38   좋아요 7 | URL
그림 좋아하시는 미니 님이라 더 잘 아시지요^^ 자연, 특히 바다와 하늘과 구름은 사람에게 무한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저는 바다를 더 좋아했는데 요즘은 숲 또한 좋아집니다. 나이 들어가는 증거인가 봐요. 강요배작가의 <풍경의 깊이>를 만지작거리다 살포시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어요. 작년에 제주의 어느 책방에서요. 눈에 삼삼해서 아무래도 영접해야할 것 같아요. 애기무덤들 ㅠㅠ 설날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맛난 것도 많이 드세요^^ 저도 현재는 몸이 느긋합니당. 뭐든 닥쳐야 하는 사람이라.ㅎㅎ

scott 2022-01-30 22: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부댕의 그림보다 제주 아라파파 앞 마당 풍경이 더 멋져 보입니다!
설 연휴 제주 기행 프레이야님 겨울 바다 향기 가득!!

즐거운 명절 새해 福 마뉘 ^ㅅ^

프레이야 2022-01-30 22:45   좋아요 6 | URL
와락~ 그동안 수다 못 떨고 좀 어수선했어요.ㅎㅎ 지금도 그렇지만.
본 것들이 좀 있는데 집중 안 되어 못 쓰고 자꾸 밀려버렸네요.
앗참, 사울레이터 다큐도 절묘하게 찬스가 왔지요.
24일에 이곳 영화의 전당에서 하루 딱 한 차례 마지막으로 상영했어요.
횡재한 기분!! 지각해 전반 10분을 못 보았지만 ‘사람‘이 보여서 참 좋았어요.
옆지기도 노년에 그러고 있을 것 같아 필름 잘 보관해두라고 했어요.ㅎㅎ
아라파파 괜춘했어요. 발효차도 좋았고요.
님, 건강하게 해피설날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1-30 22: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제주의 소식을 들으면 공감대가 많아 반갑습니다~^
겨울 제주에 다녀오셨군요~~
아라파파 앞마당에서 보는 버다가 넘 좋았겠어요.
저는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해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합니다^^
책을 읽는 분들은 어디서나 책과 함께라서 좋습니다**

프레이야 2022-01-30 23:15   좋아요 6 | URL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제주는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 보이고 돌아오면서 그다음을 예정합니다. 바다 좋아하시는군요. 저두요. 인자도 지자도 아니지만 바다든 숲이든 마냥 좋습니다. 책처럼 숲도 바다도 시절인연이라^^ 설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님.

희선 2022-01-30 23: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멋지지만 아라파파 앞마당에서 담은 풍경이 더 멋지네요 카페 이름처럼 천천히 한가롭게 지내기에 좋을 곳이겠습니다 제주에 다녀오셔서 좋으셨겠네요 슬픈 역사가 있는 곳에도 가셨지만... 1100고지에 있는 건 흰 사슴이군요 찾아보니 심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백록이 바로...

프레이야 님 설 잘 쇠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2-01-31 00:22   좋아요 5 | URL
희선 님 마음 담은 말씀 늘 고맙습니다.
백록이 그런가요 ^^ 좋은 뜻이 담겼군요.
설날 보낼 연료 좀 채우고 왔어요.
까치까치 설날 즐겁게 마음 편히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 2월 1일네요 설날이. 우리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에요. ^^

책읽는나무 2022-01-31 06: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주 여행의 동행인은 곧 책이었군요?
어쩜!!!^^
아름다운 풍경과 프레이야님이 올려주신 책들의 풍경이 너무 잘 어우러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집사님 본능!!!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명절 잘 쇠시구요, 건강하고 행복하시길요♡

프레이야 2022-01-31 06:59   좋아요 6 | URL
와락 책나무 님 댓글 보려고 눈이 떠졌나 봐요. 홀로여행 좋아요. 가는 곳마다 날 기다리는 책과 고양님들 ㅎㅎ 집사본능 제대로 하려면 먹거리 잘 챙겨다녀야 해요. 허술해 ㅠㅠ
귀여운 둥이랑 민이랑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새파랑 2022-01-31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제주도 다녀오셨군요? ㅋ 완전 부럽습니다 ㅜㅜ 사진 보니까 너무 멋지네요. 역시 사진은 아이폰!

프레이야님이 가보신 곳을 전 한군데도 안가봤군요 😅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음식은 조금만 하세요 ^^

프레이야 2022-01-31 13:20   좋아요 3 | URL
넵 음식은 조금만 먹을 만큼만 해야지요 ㅎㅎ 불 앞에 있으면 안구건조증 심해지고 완전 뻑뻑해요. 아직은 안 바쁘고 어정거리고 있어요. 제주는 갈 때마다 다른 게 보이고 다음에 갈 곳도 내정하고 그맛에 자꾸 가나 봐요.
새파랑 님 연휴 느긋하게 건강히 보내세요 ^^

미미 2022-01-31 12: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거문오름 갔을 때 세계자연유산 투표가 한창이어서 저도 한 표 넣었는데 이제 한 달전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군요. 어쩐지 씁쓸하네요. 그래도 이곳저곳 다니시며 충전이 듬뿍 되셨을것 같아요!! 다음에는 프레이야님 냥이 간식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2-01-31 13:08   좋아요 6 | URL
넵 냥님 간식 챙겨 나가기!
미미 님 가보셨군요. 전 두어 갈 후 예약해야겠어요 ㅎㅎ 그렇게 인원 제한하여 출입하고 관리를 잘하나 보더라구요. 연료탱크 만땅에서 2프로만 덜 채우고 왔어요. 훌쩍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해요. 해피 설날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1-31 12: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냥 확 떠나 버릴까요?
ㅋㅋ
부러워요~

프레이야 2022-01-31 14:57   좋아요 6 | URL
떠날 때는 이거저거 재지 말고 확~ ㅎㅎ 님 피아노 페이퍼 보고 저도 추억 소환했는데 댓글 못 남기고 피아노 좋아하는 작은딸 픽업해 와서 점심 먹고 앉았네요.
해피설날 보내세요 그레이스 님.

페크pek0501 2022-02-04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라파파 앞마당 사진이 너무 좋네요. 한참 보게 만들어요.
19호실로 가다, 김승옥 작가, 순이 삼촌은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순이 삼촌은 읽었는데 오디오북으로도 나와서 최근 들었어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이죠.
책 구경, 이야기 구경, 사진 구경을 실컷 하고 갑니다.^^

프레이야 2022-02-05 14:28   좋아요 2 | URL
페크 님 들으시는 오디오북 어떤 건지 좀 가르쳐 주세요. 오디오는 진짜 집중해서 들어야 하지요. 듣다 옆길로 새기 일쑤라 좀 멀리했는데 이제 좀 가까이해 볼까 싶어요. 이 페이퍼에 사실 하고픈 말이 많은데 간략히 줄였어요. ^^

2022-02-06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6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6 0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2-06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제주여행 다녀오셨군요. 얼마전에 연휴 시기에 제주도 여행 가는 분들 많다고 뉴스에서 봤습니다. 여행 잘 다녀오셨나요. 제주도도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진 속에서 차가운 느낌이 묻어나요.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2-08 23:12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 님 어느새 2월도 2주차네요.
제주에 갔던 날은 따스했어요. 저는 추울까봐 생전 안 입던 내복까지 입고 가설랑 ㅎㅎ
날마다 좋은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서니데이 2022-02-16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연휴 지나고 페이퍼 읽었는데, 잠깐 사이에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났네요.
조금 늦긴 했지만, 오늘(15일)이 정월대보름이예요.
프레이야님,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세요.^^

프레이야 2022-02-16 08:05   좋아요 2 | URL
어제 대보름날이었는데 달 보는 걸 깜빡했어요. 오늘 봐야겠어요. 하루 지나서 보면 더 둥글대요. 만월이 되려면 하루가 더 필요하다고. 서니데이 님도 보름달처럼요^^
 

카페 공곶이 이야기

- 그곳에 길이 있고 꽃이 있네

 

 

 

 

 

 

 

 

 

 

 

 

 

 

 

 

 

   

공곶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몇 가지가 될까.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에는 봄이면 노란 얼굴을 내미는 수선화가 계단식 밭을 메우는 공곶이가 있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계절 따라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와 꽃이 손님을 맞이한다. 19세기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의 피난처였기도 하다. 천주교신자들의 묘지도 있는 공곶이에 꽃밭이 조성된 건 노부부의 신념과 수고가 이뤄낸 공(悾)이다. 공곶이는 2007년 거제의 추천명소 8경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매력적인 풍광을 품고 있다.

 

 

 

 

 

험한 언덕을 오르려면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공곶이 언덕을 오르기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이 툭 트이는 언덕 꼭대기에 이른다. 조붓한 산길을 걷다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검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넓게 펼쳐진다. 흰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파도와 그 비명소리를 가슴으로 마주서면 바닷길은 멀리 한려수도로 이어진다. 몽돌 사이 널브러진 바다새의 주검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명랑한 아베크족들과 대조된다. 극명한 생과 사의 풍경에 크게 놀라진 말자. 한숨을 돌리고 오른쪽 숲으로 연결된 데크계단을 올라가 새소리 호젓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한 바퀴 걷기에 딱 좋은 힐링코스가 된다. 방향을 바꾸어 걸어도 괜찮은 길이 되겠다.

 

툭 트인 바다도 좋지만 아담한 포구는 마음을 한껏 당긴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공곶이길로 들어서서 공곶이 언덕으로 좌회전하지 말고 조금 더 가면 작은 포구, 예구가 나온다. 고양이낮잠처럼 나른하게 시간이  멈춘 예구에 서면 잔잔한 바다도 눈부신 하늘도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마음속에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비좁은 마음자리에 너른 길 하나 내어주게 된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공곶이를 지키는 부부가 있다. 공곶이를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이곳에서 뜻밖의 하얀 성모입상을 처음 본 건 오래 전이다. 공곶이 언덕으로 오르는 초입 오른쪽으로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층집 마당에 성모상은 서 있었다. 저 멀리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비 그친 마당엔 사람이 다녀간 흔적마저 희미했다. 호기심에 젖은 흙마당까지 걸어 들어가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주인도 없는 집에 별 다른 게 없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이곳이 공곶이언덕 펜션으로 리모델링되어 탄생하였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이 건물의 주인장이 개인사정으로 한동안 펜션일을 미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목공 손재주가 예사롭지 않은 주인장이 손수 꾸민 펜션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건 안주인의 세심하고 깔끔한 손맵시다. 공곶이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들러도 좋고, 편안한 컨트리풍 펜션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브런치나 티타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은 카페가 있다. 올해 3월 노란 수선화가 한창일 때 부부는 공곶이 이야기라는 이름의 카페를 펜션 한모퉁이에 마련했다. 물론 주인장이 일일이 자재와 소품을 구하여 하나하나 만들고 다듬고 꾸민 공간이다.

 

 

 

 

여름휴가철 정점에 친구들과공곶이 이야기를 찾아갔다. 우드 코티지 풍의 카페 문을 열자, 일본의 젊은 스님 류노스케가 쓴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있던 주인장이 책장을 덮으며 반색을 한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에 밝은 분위기의 앙증맞은 소품과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도서들 그리고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낡은 통기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방은 오픈되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안에서 주문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안주인의 맑은 미소만큼이나 정갈하다.

 

주인장이 손수 만들어 판매도 하는 우드 트레이와 우드 쟁반들이 눈길을 끈다. 목재질의 강도와 특성에 따라 트레이의 두께를 조절하고, 손잡이도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게 했다. 창가 한구석에 세워둔 트레이가 눈에 들어와 물어보니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며 나뭇결이 정말 멋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마을의 수호수, 아낌없이 주는 정령, 수령 높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우드 트레이 하나로 연상되었다.

 

 

 

 

테라스도 좋지만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실내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섬과 바다와 구름이 그려내는 한폭의 수채화가 테라스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그림자와 함께 그야말로 그림이다. 진한 카페라떼에는 하얀 하트가, 블루베리 스무디에는 깜찍한 꽃이 얹혀 나왔다. 꽃은 먹으라는 말과 함께. 연보라색 스무디 위에 앉은 하얗고 빨간 작은 꽃이 깜찍하다. 나로선 처음 보는 꽃이다. 주인장이 얼른 나가더니 그 꽃을 뜯어서 들고 들어온다.

   

체리세이지! 그가 해보라는 대로 작은 잎을 손으로 만져 코끝에 갖다 댔다. 싱그러운 초록향기가 퍼진다. 허브 종류인 체리세이지는 일조량과 공기의 온도에 따라 꽃잎의 색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주인장의 설명은 좀 다르다. 원래의 체리세이지는 빨간색이고 변종 체리세이지가 그렇게 하얀 색이 섞이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앙큼하지만 어쩌면 지혜로운 본성이 아닐까.

 

꽃잎의 변색이야 아무렴 어떠냐 싶지만, 고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 생명을 애지중지하는 따스한 심성이 엿보인다. 집 잃은 개 몇 마리와 오래 동거하는 걸 보아도 섬기고 보살피는 은사를 베풀고 사는 마음이 순하게 전해진다. 알고 봤더니 눈빛 맑은 안주인이 천주교 신자이다. 성모상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주인장은 어떤가. 한때는 주말이면 미친듯이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지만 아킬레스건을 다친 이후로 반(半)자발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자유는 물리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 친구같은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라면 자유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모른다.

 

 

 

 

 

몇 시간 수다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저 아래 바다 위로 놀이 지고 있다. 붉은 꽃잎이 수평선 위에 엎드린 듯 황홀하게도 수굿해지는 시간이다. 풀도 눕고 태양도 그 기세를 꺾는다. "해거름이면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져요."  놀이 붉게 타는 신선대부두 고가도로를 차로 달리다 울컥해져서 해거름이면 저는 마음이 막 이상해져요, 라는 내 말에 노문우가 단칼에 뱉은 대사가 환청처럼 들린다. 놀을 배경으로 선 안주인과 카페 간판이 역광으로 빛난다.

     

우리도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카페 입구 길섶에 낮달맞이꽃이 연분홍 고운 자태로 낮게 피어 있다. 체리세이지 꽃잎이 온도를 따르듯 열정에도 따라야 할 온도가 있다. 누구의 어떠한 삶이든 삶이 아름답다면 이야기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야기의 온도가 있어서일 것이다. 느긋하고 선한 두 사람이 말없이 전하는 공곶이 이야기를 나와  '바람의 언덕'으로 희미한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차 안에서 길과 꽃, 그 열정의 방향성을 새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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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8-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초 고등동창들과 큰마음 먹고 1박2일의 여행을 계획중이에요.
아이들 키우느라 늘 친구들과의 여행을 뒤로 미루다 보니 거의 20년만에 떠나게 된 것같습니다.
그 첫장소를 사람들이 덜 붐비면서 풍경좋은 장소로 거제를 선택했죠.
팬션을 잡아야 하는데~~라며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프레야님의 ‘공곶이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친구들에게 한 번 의견을 내보야겠습니다.
공곶이 이야기^^

2018-08-1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충전복

- 전복(全鰒)으로 무더위도 전복(顚覆)해 볼까

   

    

 

휴가철 도심은 태풍의 눈이 된다. 더위를 피해 인파로 들끓는 산과 바다를 비웃듯 조용한 휴처를 내어주는 곳이 휴가철 도심이다. 도심 바캉스를 즐기는 방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좋은 음식으로 재충전하기.

 

전국이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날, 서울에서도 어린 시절의 헙수룩한 골목 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찾아갔다. 장충동이 그곳이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 내려 추억의 빵집태극당을 지나 조금 더 가서 왼편으로 골목을 찾아들어가도 되지만 퇴계로로 들어선 택시는 웬 좁다란 골목이 보이는 입구에 부산사람을 내려주었다. “저기 저 위에 흰 간판 보이네요.”

 

정감 가는 낡은 골목 중간쯤, 흰색 바탕에 검정 파랑 캘리그래프로 장충전복이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將充 : 장을 충전하다> 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을미사변 때 구국 군인들의 충성심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진 제단, 장충(將忠)단에서 동음이의를 이용해 중의적으로 쓴 이 문구는 영리한 주인장의 아이디어겠지, 짐작하며 문을 열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때라 손님은 나 하나. 태풍의 눈 중의 눈이다. 20석 정도 좌석이 깨끗하게 배치되어 있고 주방도 오픈되어 있는 아담한 공간에서 주인장이자 주방장이 어제 만난 듯 인사를 한다. 곧바로 내어온 주요리 전복삼계탕은 한눈에 봐도 구미가 확 당긴다. 개업한 지 몇 달밖에 안 되었지만 주변 직장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점심시간이면 전복삼계탕을 찾는 식도락가들로 좌석이 꽉 찬다고.

 

 

 

 

다양한 종류의 전복요리 전문점 장충전복, 이곳 전복삼계탕은 특별하다. 전복내장을 갈아 넣어 진한 녹두색을 띄는 국물을 보고 녹두삼계탕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먹어보면 전혀 맛이 다르다. 윤기 나는 국물이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이것저것 부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 전복 하나와 마르지 않은 알밤 반 톨이 담긴 모양새가 주인내외의 성품을 닮아 자랑을 삼가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우선 국물부터 담백하고 고소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전복내장의 깊은 맛이 잘 우러나 아끼지 않고 재료를 풍성하게 넣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닭고기의 육질 또한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 전혀 잡내가 나지 않고 어린아이 살을 만지는 듯 연하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맛있다고 하니 친정어머니가 좋은 배추로 직접 담근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국내산 배추라고 써 붙여 놓으라고 하니 의아해하며 안 써놓으면 당연히 국내산이고 중국산이면 써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전복은 매일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공수해 오고 싱싱한 것으로 하루에 다 요리하고 남는 것은 아무래도 부부가 먹다보니 건강도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하루를 같이 시작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또 각자의 시간도 틈틈이 가지는 이들의 등을 다시 돌아보았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인생 이모작, 삼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오십대 고개를 넘는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과욕 부리지 않고 여유와 건강을 누리며 소박하고 조촐한 품위를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열치열로 전복삼계탕 그릇이 다 비어갈 즈음, 전복회 세트가 나온다. 먹기도 좋게 보기도 좋게 칼질한 전복살과 내장이 통째로 혀와 코를 감치고 돌아 남도의 푸른 바다를 불러준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건 살맛이라더니 일상에 지칠 때 한 끼 정갈한 음식으로 살맛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조만간 또 찾게 될 걸 예감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동공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데 속은 든든하고 머리는 시원하다.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간 탓에 다 못 먹고 남긴 전복내장이 눈에 아른거린다. 전복 앞에서는 못 말리는 식탐이다. 서울로 도심바캉스를 가실 분들은 꼭 들러보시길.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중복도 지나고 말복으로 가면서 기승을 부릴 무더위도 이제 꼬리를 감출 일만 남았다. 우리 생의 무더위도 생각을 전복(顚覆)하면 제법 즐길 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사진은 장충동이 아니라 현재 시각 부산입니다.
무더위에도 건강히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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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7-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멋집니다.

프레이야 2018-08-01 12:4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더운 데서 일하는 분들은 힘들겠지만 하늘은 멋지네요. 장충동이랑 멀지 않으면 저곳 식당 추천 드려요^^

stella.K 2018-07-3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더워 죽을 것 같긴한데 하늘은 꽤 멋있더라구요.
적당히 구름도 낀게.
이런 하늘을 언제까지 좋아할 수 있을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기만 해도 살 것 같을텐데...
건강 조심하시길.^^

프레이야 2018-08-01 12:45   좋아요 0 | URL
오늘 부산은 좀 낫습니다. 아무래도 바다쪽이라 그렇겠지요. 서울은 찜통이라고 들었어요. 저곳 장충동 장충전복 한 번 가보세요. 든든하게 ㅎㅎ 기사 클릭되나요

서니데이 2018-07-3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날씨가 무척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사진속의 부산은 파란 하늘이 예뻐요.
그렇지만 요즘 이런 날에는 더 더워서 그런지 아아 덥겠다, 그 생각이 먼저 듭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08-01 12:46   좋아요 1 | URL
요즘도 열공하느라 힘드시겠어요. 지치지 않게 시원하게 해놓고 하세요.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덜 멋지겠죠. ^^
 
24개의 눈동자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쇼도시마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을 추억하며.
쇼도시마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 현에 속한 섬이다.
다카마쓰 여객터미널에서 나오시마와 쇼도시마로 가는 배를 각각 탈 수 있다.
봄날 설레며 찾아갔던 때묻지 않은 섬, 쇼도시마!

 

 

순수함이 주는 눈물어린 위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 기노시타 게이스케 / 1954

 

   

 

 일본 남쪽바다 세토내해에 있는 서른 개의 섬들 중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시마. 유월 어느 좋은 날, 다카마쓰 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그 길은 설렘이었다. 미풍이 밀어 준 배는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도노쇼 항에 도착했다. 느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쇼도시마는 그 소박한 풍경만으로 무한한 위로가 되는 순수한 영혼이나 다름없었다.

 

서정성이 돋보이는 감독 기노시타 게이스케가 이 섬에 세트장을 마련하고 촬영에 들어간 영화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년에 탄생해 여태껏 일본의 국민영화로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섬처럼 순연한 흑백의 필름이 어린 열두 명의 영혼과 온기 넘치는 오이시 선생의 수십 년 세월을 담담하고 투명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19284, 섬에 갓 부임한 여선생 오이시가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섬마을 어른들은 신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5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분교로 출근한 예쁜 선생님을 초등학교 1학년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은 반기고 따른다. 오이시 선생님은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게 되어도 자신을 걱정해 먼 길을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아이들을 따뜻이 맞이해 먹이고 놀아준다. 영화는 이들이 맺는 소중한 인연을 따라 몇 십 년을 이어간다. 가난과 전쟁으로 상실의 고통을 딛고 신산한 삶을 사는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흑백의 필름 위에 맑은 눈물로 어룽거린다.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해 표독한 말을 드러내진 않지만 영화는 힘없고 순수한 사람들의 상처를 통해 오히려 강하게 말하고 있다.

 

쇼도시마로 무작정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24개의 눈동자 영화촌을 가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른한 마루켄 간장마을을 지나 당도한 그곳에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둔덕에 커다란 솥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저쪽으로 영화에서 본 교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나무바닥이 삐걱대는 복도에 신발을 벗고 올라 교실에 들어서니, 두 명씩 앉는 나무책상들이 낮게 배열되어 있고 출입문 쪽에는 풍금이 놓여 있었다. 햇살 따스한 교실의 격자창문 밖으로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우리 마음에도 그처럼 고요한 정경이 늘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옆 교실에는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사진과 당시의 촬영기계들, 영화 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교무실 안에 오이시 선생님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 뒤에 자잘한 꽃무늬 수건에 싸인 도시락이 묶여 있었다. 안쪽으로는 선생님이 앉았을 소박한 나무책상 위, 나무 책꽂이에 분홍색 공책이 한 권 있고, 그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보이는 벽에 괘종시계가 12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딱 그 때로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교실을 나와 입구 쪽으로 나오니 영화 상영관이 있고 그 옆으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 원작을 쓴 소설가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이 보였다. 사카에는 1952년 이 책을 내고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나온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아담하고 정갈한 건물 안에 후박한 얼굴에 동그란 테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과 여러 가지 표지로 출판을 거듭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쓰보이 사카에는 전쟁은 불행만을 안겨준다고 생각했고 오이시 선생의 입을 빌어 말했다. 오이시는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을 겪으며 명예로운 야스쿠니가 되겠다는 다섯 명의 남자 제자들을 막지 못하는 슬픔을 겪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명예로운 전사 따위 필요 없어. 꼭 살아 돌아와야 해.” 18년이 지나 전쟁의 상흔과 가족의 상실을 겪은 선생님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때 그 제자들의 아들딸들을 가르친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눈물 많고 여린 선생님이지만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간의 아름답고 단순하고 순수한 관계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이들은 그저 무심하고 담담하고 분노할 줄 모른다. 쇼도시마의 깨끗하고 조용한 풍경이 아픔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을 더욱 진하게 전해준다.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 다 닦을 수 있으랴. 꾸미지 않고 뽐내지 않고 부풀리지 않는 순한 마음과 그 마음이 전해지는 말과 눈빛은 언제나 수굿한 포옹이다. 그렇게 순연한 위안이 필요할 때면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본다.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고마워 영화> 중,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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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1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이 책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었는데.. 영화가 있었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8-01-12 16:59   좋아요 0 | URL
네, 비연 님 원작을 먼저 보셨군요. 오래된 흑백영화에 순수함을 담아냈어요.
일본 국민영화라고 하더군요.

비연 2018-01-12 21:31   좋아요 0 | URL
심지어 일어원서도 있답니다 ㅠ 못 읽고 한켠에 쳐박..ㅠ 영화가 네이버다운로더 이런 데 없어서 DVD를 사야하나 그러고 있슴다~

프레이야 2018-01-12 23: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디비디를 구입해 보았어요.
일어 원서까지 갖고 겨시군요.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에 여러가지 표지가 있었어요.

雨香 2018-01-1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근대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겠군요. <24개의 눈동자> 를 보러 쇼도시마에 갔다는 블로그를 몇 편 봤습니다. 쇼도시마 정말 볼 것이 많은 곳이군요.^^

프레이야 2018-01-13 18:07   좋아요 1 | URL
네, 가보시면 아주 좋아하실거에요. 느리고 조용하고 깨끗해요

雨香 2018-01-14 10:57   좋아요 0 | URL
네.. 느리고, 조용하고,,, 제가 일본 시골, 소도시에 관심이 가는데, 딱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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