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내 눈 밑으로 열을 지어 유유히 없는 길을 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내려다본 적 있다, 16층이었다
기럭아, 기럭아
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
내가 몹시 잘못했다
- 안도현 시집 [북항],에서
눈 아래로 저 멀리 물가에서 노니는 황조롱이들의 등을 내려다 본 적이 있다.
망원렌즈 속에 잡힌 그네들의 등이 포실하니 햇살을 받아 따사로운데
입술이 마르고 눈이 부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등을 본다는 건 말할 수 없이 스미는 모종의 쓸쓸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별을 밥 먹듯이 하는 질긴 인연의 등이거나,
혼자 밥술을 뜨는 사람의 어두운 등이거나,
하루치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여윈 어깨에 이어내려온 얇은 등이거나,
갈수록 곱사등이가 되어가는 등을 짊어지고도 미모의 시절 지녔음직한 도도함을
내려놓지 못하는 늙어가는 사람의 등이거나,
두려운 일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다.
그 소리 철렁, 들릴까 봐
획 돌아서지도 못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