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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를 잠시 돌아다니다 내 글을 발견하는 건,
밖에서 가족의 얼굴을 난데없이 보게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큐 <쿠바의 연인>의 감독이자 주인공 정호현님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내 글을 찾았다.
신문에 실렸던 글을 옮겨놓으셨네. 야릇, 반갑다.
"연애는 혁명이다"를 노래한 자유분방한 그녀, 호현!  
지금도 쿠바 청년 오리엘비스와 재미나게 살고 있겠지. ^^

http://blog.naver.com/cubanboy/30101394092  호현님 블로그의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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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3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기사 기억나요. 예전에 한번 소개해주시지 않았나요?
연애는 혁명이라고요, 흠...
혁명같은 연애를 했나보네요 ^^

프레이야 2011-10-30 23:54   좋아요 0 | URL
그랬죠 잠시 후 제가 내렸는데 그글이 이렇게 타인의 블로그에 이사가 있네요.
주인공 정호현님의 블로그라 나쁘진 않아요.
네, 그 분 정말 혁명같은 연애를 했더군요.
재미난 다큐였어요.^^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화제사건<숭례문을 파괴하게'내버려둔'사람들에게>

아래글은 '6학년님'이 서재에 쓴 글이다. 5학년 때부터 서재에서 알게 된 남학생인데 올해 중학생이 된다.  어른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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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께 외삼촌댁이 있는 서울에서 삼촌과 차를 타고 가면서 숭례문을 보았다. 정말 아름답고 멋지던 그 숭례문이 어제 아침에 뉴스를 들어보니 불에 타고 폭삭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숭례문이 사라지니 슬프고 또 화가 났다. 들어보니 방화범은 70대 남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별로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 이번 사건의 진짜 책임은 바로 우리나라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국보1호면 경비를 철저하게 해야하는데 너무 허술한 경비체재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국보1호면 국보1호 답게 경비를 서야지 자기가 무슨 낡아빠진 건물 지키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책임은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는 정말 양심이 눈꼽에 있는 미생물만큼도 없는 사람들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 다시 숭례문을 복원해봤자 소용 없다. 그것은 우리 선조의 혼이 깃든 숭례문이 아닌 짝퉁 장식품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시 복원한 숭례문을 보고 우리나라 국보 1호의 자부심을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지도자에게는 1초도 쉬지않고 경호를 서면서 최고의 문화제를 그렇게 허술이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만약 진짜 문화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면 국보1호를 대신할 문화제를 전국을 뒤져서라도 찾아내야한다. 당신들이 아무리 변명을 하고 책임을 돌려도 우리는 숭례문 불에 타 없어진 것이 당신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있으니 더 이상 변명하지 말고 양심있게 반성하고 온 국민과 숭례문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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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1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을 그들만 모른다는 게 너무나 웃기지요~~
모른척 하는 거겠지만, 썩을 것들!!

전호인 2008-02-1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이 저 우매한 것들에게 전달되길 기대해도 될까요?
짝퉁이라는 말에 어린친구보다 앞서 살고 있는 선배로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바람돌이 2008-02-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아이들의 직설이 무서운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보석 2008-02-1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도 아는 걸 모르는 어른들이 있으니 문제..

프레이야 2008-02-1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 님의 서재글을 알려드리고 싶어 옮겨왔어요.
참 멋진 학생이에요. 올해 중학생이 된다지요.
님들 관심 가져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출처 : 히피드림~ > 시나리오 분석- 과제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시나리오를 쓰시고자 하시는 분들에겐 큰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시드 필드(유지나가 번역한) 의 책을 읽으면 구성점, 중간점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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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분석.  마스터스쿨 영화연출 클래스 36기  이름 :   펑크^^

주말에 본 영화!
영화제목 : 이키루 
소재 : 불치병과 공원 건설
장르 :  드라마

          
1. 이 영화의 컨셉은 무엇인가?
  말기 위암으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한 남자가 무의미하고 수동적이었던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바꾸려 애쓰는 이야기             

2. 주인공은 누구인가?
 시청 시민과 과장인 와타나베 칸지.

3. 주인공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칸지는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공원을 지으려 하지만 관료주의의 경직성과 무사안일적 태도 때문에 공원 건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4. 잘 안되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1) 외적 장애물: 시청의 여타 부서 사람들의 비협조, 부시장의 관료적 오만함과 방해, 아들 부부의 아버지에 대한 몰이해, 공원부지에 술집을 지으려는 건달들의 협박, 그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2) 내적 장애물: 죽음에의 공포와 두려움, 주변 사람들의 몰이해에서 오는 외로움, 자신이 죽기 전에 공원 건립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긴박한 사명의식.


5.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이고 무엇을 도와주나?
 살아생전에는 그를 도와주거나 이해해준 이가 거의 없었다. 처음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를 향락과 퇴폐의 세계로 이끈 3류 소설가, 시청의 생기발랄한 부하 여직원, 공원 건설이라는 자신의 소명을 비로소 인식했을 때, 순박한 마을 부녀자들과 자신의 부하직원 몇몇이 공원 건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6. 결국 영화의 끝에 주인공은 무엇을 얻나?
 공원 건설을 성공시키지만 그 공은 곧 선거를 앞둔 부시장에게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아무 의미 없이 미이라처럼 살았던 주인공의 인생이 공원건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 몇 달 동안의 분투로 인해 유의미하게 바뀌었으며 그의 사후에도 순수한 말단직원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1) 외적 변화
    마찬가지로 거대한 관료주의의 기계부속품에 불과했던 시청의 공무원들이 그의 장례식에 모여 그를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의 업적을 우러러 보게 만들었으며, 잠시나마 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2) 내적 변화
 그는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자신에게는 화를 내거나 원망할 만한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그저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것, 자존심과 인내심의 한계를 모르고 타 부서의 협조를 요구하는 것으로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을 없앴다. 이런 식으로 아들의 장래만을 걱정하던 구두쇠 영감, 자기주장이 없고 극도로 소심하며 남의 눈치나 보던 칸지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투쟁해 갈 수 있는 인물로 변모해갔다,

7. 3장을 구분하여라.

 1) 1장의 내용
 평소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을 찾은 칸지는 의사의 수상한 태도에서 자신이 위암말기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죽음의 공포에 빠진 늙은 공무원은 수십 년간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던 직장까지 나가지 않은 채 거리를 헤맨다. 그 와중에 우연히 만난 3류 소설가를 따라 향락의 세계에도 빠져보고 시청의 부하 여직원과도 어울린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와타나베.

2) 2장 전반부(중간점 이전)의 내용
 자신의 두렵고 외로운 심경을 여직원에게 토로하자,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태엽인형 공장의 토끼인형을 그에게 보여준다. 그것을 보고 단박에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은 카페를 빠져나와 시청으로 향한다. 그가 찻집을 나올 때 울려 퍼지는 생일축하노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중간점’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동안 뭔가를 창조하며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을 던지고자 하는 주인공의 부활과 재생을 상징한다.

 3) 2장 후반부(중간점 이후)의 내용
시청으로 돌아온 그는 생전 처음 책상위의 서류를 벗어나 현장답사를 나간다. 어안이 벙벙한 부하직원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그를 따른다. 마을 사람들과 악취가 나는 거대한 물웅덩이에 도착하여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는 주인공.
 장면이 바뀌면 와타나베의 영정이 놓여있는 장례식 제단이 보인다. 그는 이미 죽고 없으며 살아생전의 동료들이 몰려와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다. 뻔뻔한 부시장이 조문을 오고 기자들이 몰려와 공원건설의 성과가 누구의 것인지 묻자, 부시장은 망자의 공로를 가로챈다. 그러자 시청 사람들도 칸지가 한 일이 거의 없고, 부시장이나 자신들이 협조해 주지 않았다면 공원건설은 요원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4) 3장의 내용
 하지만 점차로 여러 가지 사실들이 퍼즐을 맞추듯 밝혀지면서 조문객들은 칸지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보기 드문 용기와 열정을 발휘하여 모든 일들을 추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완전한 부정에서 출발한 씬은 칸지의 인생에 대한 완전한 긍정으로 바뀌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심경과 태도의 변화가 너무나도 교묘하고 세심하게 일어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돌려보면서 주의 깊게 쓰여진 대사들을 재차 확인해야 할 정도이다.


8. 각 구성점의 장면을 말하여라.  

1) 1장의 플롯포인트(구성점)은 어떤 장면인가?
 병원에 갔다가 자신의 말기 위암을 알게 되는 때.


 2) 중간점은 어떤 장면인가?
찻집 씬.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 와타나베는 소중히 토끼인형을 안고 찻집을 빠져 나온다.


 3) 2장의 플롯포인트(구성점)은 어떤 장면인가?
 와타나베의 모자를 가족에게 전해주기 위해 경찰이 조문을 오고 그는 공원에서 자신이 본 광경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와타나베가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공원 그네에 앉아 유행가를 부르며 눈을 맞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협조적인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재결을 요청할 때, 부하직원이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자, 자신은 사람들을 원망하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회상되자, 사람들은 그제서야 칸지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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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지나친 '한국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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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C방송 ‘투데이’의 총기난사 사건 보도

버지니아공대 참사가 한국과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에 미칠 영향은 어떤 것일까? 한국에 10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인 내가 보기엔 이번 참사는 한국이나 한국 민족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버지니아공대 참사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것 자체가 한국에 만연한 천박한 민족주의를 드러낸다.

범인이 1992년에 이민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한국에는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반응은 범인의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에 경악하고, 희생자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건 자연스럽다. 18일 홍익대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정신병자 같다” “미쳤다” “테러리스트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학생들 반응도 이해하고 노 대통령 메시지에도 동의한다. 따로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두 번째 반응은 좀 얘기가 다르다. 이 사건이 한국 이미지와 대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따지고, 이번 일로 미국 내에 반한(反韓) 정서가 일어나거나 한국인 비자 발급에 영향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홍익대 교직원 한 명이 내게 “한국 이미지가 나빠질 테니 재미교포들이 불쌍하다”고 얘기한 것이 여기 속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발행되는 모 영자지는 ‘한국인, 반한 물결을 두려워한다(Koreans Fearful of Racial Backlash)’는 제목을 뽑았다. 이 기사에는 “이번 사건이 세계 11대 경제 대국으로서의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지위에 심각한 타격이 될까 우려된다”는 외교통상부 직원의 발언이 인용됐다.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는 심지어 워싱턴 교민들과 만나 “한인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국 주류 사회와 다시 한 번 융합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총격사건 자성의 뜻으로 금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 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이고, 둘째, 미국 대중이다. 이 사건은 한국인 혹은 한민족에 대한 사건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제발 현실감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이 같은 반응의 뒤에 있는 감정 논리는 이해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2002년 10대 여중생 2명이 의정부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효순·미선양사건’ 때 몇 달 동안 보였던 반응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대중도 비슷한 인종적 혐오를 보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자기 기준을 다른 문화에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견해는 오히려 참사가 일어난 미국의 진짜 현실보다는 한국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미국 주류 언론은 범인의 국적(國籍)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미국 대중도 마찬가지다. 미국 언론에 범인의 국적이 한국이란 것은 범인이 영문 학도라는 점, 외톨이였다는 점, 여학생을 스토킹한 적이 있다는 점 등 사건에 영향을 미친 대여섯 가지의 다른 개인적인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범인이 휘갈긴 유서에 나오는 “부잣집 애들” “방탕” 같은 단어를 고려하면 오히려 계층적 위화감과 성적 좌절이 국적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었을 수 있다.

한국인들이 “버지니아공대 참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게 뭐냐?”고 묻는 건 사실 “우리 이미지가 나빠질까?”라는 뜻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르시시즘의 극치다. 사건의 본질은 보려 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건에 자기 문제와 걱정거리를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말 해야 할 것은 진정한 감정 이입뿐이다. 자기 걱정은 잠시 잊고, 이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 염려할 때다. 그게 다다.

요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천박한 민족주의가 아니다. 한반도 바깥의 세상에 대한 코즈모폴리턴적이고 인류애적인 감정 이입이 필요하다. 만약 범인도 자기의 좁은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남에 대해 조금만 감정 이입을 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J 스콧 버거슨/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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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한국 걱정', '천박한 민족주의' , '나르시즘의 극치'
음, 이런 말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 ^;;;

소나무집 2007-04-25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조승희가 가장 불쌍했습니다. 사랑이 필요하다고 수없이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전출처 : 로시난테 > 김훈은 '난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 나무*2003)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김훈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한 비평가는 '그의 문체가 소설에 적합하겠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기자로서의 글쓰기와 소설가로서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글쎄. 솔직히 난 김훈의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접한 김훈의 글은 <강산무진>이었다. 김훈의 몇몇 소설을 뒤적이고 또 이 책을 본 후에, 난 위의 비평가와는 전혀 반대의 의문을 가졌다. '이런 식의 사고와 문체로 과연 김훈이 기자적 글쓰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뒤늦게 읽은 김훈의 글에는 뭐랄까, 기자로서 요구되는 '벼린 이성'보다는 '축축한 감정'이 묻어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는 편집자와의 상의 끝에 원래 제목이었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를 수정한 제목이라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곱씹을수록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두고 제목에 '낚였다'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에서 스치듯 김훈의 과거사를 전해 듣고, 난 그가 궁금해졌다. 부끄러운 과거 덮기에 급급한 한국 지식인 지형에서 자신의 치부를 손수 밝히고자 했던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듣고 싶어졌다. 게다가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도발적 표제를 건, 김훈이 말하는 세설(世說)이라니. 알라딘으로부터 택배가 도착하기 전부터 난 조바심이 났다.  

그에게 붙은, 그를 가장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수식어는 바로 ‘문장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간결한 문체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배치하는 만연체는 글의 전체 맥락 속에 적절히 혼용돼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책머리에>라는 책의 첫 장부터 그의 칼날 같은 문장이 나를 압도한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세설 중 가장 압권으로 문화일보가 소개한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일부를 보자. “내가 아들인 너의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너는 결국 너의 그 별것도 아닌 평발 증세를 너의 어머니께 강조하면서 재심받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와 너의 어머니는 다만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너를 낳아서 청년이 되도록 길렀으며, 남자로 태어나 함께 병역의 의무를 진 내가 너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의 어느 아버지가 징집을 앞둔 아들에게 이 사태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병역은 남자로 태어난 국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한들 이미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중략)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pp.18-20) 

그러나 김훈의 미사여구에 갖혀 그의 문체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랜 기간 기자로 재직하며 쌓았던 그의 내공을 폄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재주야 하늘이 내려주신 선험적 재능이라 볼 수도 있어 그의 필력에만 평가가 집중하는 건 ‘주례사비평’스러운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에 실린 글은 세상살이에 대한 김훈의 사색을 훔쳐볼 수 있어 그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식 글쓰기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아날로그적 글쓰기'다.

그는 여지껏 컴퓨터 자판에 익숙치 않아, 4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꾸역꾸역 문장을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집필 공간엔 잔뜩 구겨진 원고지와 지우개 가루가 어지러히 널려 있다고 한다.

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자임한 자가 만드는 문장 하나하나는 몇번을 고쳐쓰고 지워쓰는, 산고의 고통을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란 본디 '볼펜'보다는 '연필'로, 좀 더 투쟁적으로는 '몽당연필'로 써야 맞다.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대답은 자못 분명하다. ‘난 아무편도 아니다’가 그가 유일하게 밟고 있는 사유의 방향성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그는 그의 ‘계통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니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그의 ‘아무편도 아님’은 쉽게 읽힌다.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 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p.78)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 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p.76) "나는 보편과 객관을 걷어치우고 집단의 정의를 조롱해 가면서 나 자신의 편애와 편견을 향하여 만신창이로 나아갈 것이다.”(p.76)  

그가 잣대로 삼는 유일한 사유의 기초는 바로 ‘삶의 구체성’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먹고 사는 일’을 고려하는 것부터 그의 사유가 전개된다. 예컨대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에서 아들에게 하는 다음과 같은 충고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p.13)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밥을 먹고 돈을 버는’ 인간의 기초 행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p.31) 그리고 그의 이러한 기본적 삶에 대한 집착은 곤궁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대한민국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듯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열차 지붕 위에 실려서 부산까지 내려갔던 세 살 먹은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글을 쓴다. 피난지에서 자라난 유년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고 1년 내내 배가 고팠다.”(p.21) 혹은 오랜기간 기자 생활을 하며 부딪힌 사건들, 사람들의 양면성과 이면성을 몸으로 체득하며 얻은 심성일 수도 있겠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p.92) 

난 김훈의 계통없음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대단히 용기 있는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이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중층적’이어서, 한 가지 틀로 명쾌히 설명하는 언설은 이제 흰소리로 느껴진다. 다만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잣대의 무의미함’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삶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는 ‘절대적 상대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언급해 둔다. 또한 지나친 허무주의로 인해 극단적 부정의 냉소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날의 말을 되돌아보는 두려움이 98년의 저물녘에 되살아난다. 말들은 허상 만들기로 싸우고 허상 위에서만 타협이 가능하다. 결국 당대의 현실은 당대에서 말하여지지 않는다. 들끓고 날뛰고 날아오르는 말들이 당대의 결핍이며 빈곤이다. 신기루는 점점 두꺼워진다.”(p.66) "어느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관리가 ‘그것(IMF)은 나의 책임이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책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한들 그 말이 그 말이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나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나 그 말이 그 말인 것이고 하나마나한 소리이고 들으나마나한 소리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하다. 왜냐하면 그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질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p.35)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 나 ‘천국으로 가는 길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계통없음’을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지, 삶의 갖가지 핑계거리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초로(初老)라 부르지만, 이제 이순(耳順)에 가까워져 오는 그가 보여주는 ‘글’에 대한 집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닿을 때 그의 글을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p.203) 매일 이 핑계, 저 핑계에 절주, 금연 선언을 번복만 하기에 바쁜 나로썬 얼굴 홧홧 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 몸을 부릴 대로 부려야 사유가 번뜩이는, 젓 비린내 여지껏 가시지 않은 20대가 아니던가. 이런 내가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지금부터 다시 금연이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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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4-2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김훈을 좋아해요. 이 책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

프레이야 2007-04-2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김훈 팬이 계시군요. 울옆지기는 자전거여행과 칼의노래 이후로 그분의 소설에선 매력을 못느끼더군요. 전 나름의 개성으로 봅니다..

2007-04-26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4-26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일산의 노을 사진 저번에 올려주신 것 보니까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웠어요. 그 여인은 왜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요? 오히려 물어보지도 말을 건네지도 못할 것 같아요, 저라도... 어젯밤엔 좋은 꿈 꾸셨기 바래요. 오늘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요. 님에게 좋은일만 내내 있기를~~~

2015-05-3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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