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 알맹이 그림책 22
변선진 글.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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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이가 어떤 말에 상처입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은 내 안에도 아직 살아있는 어릴 적 모습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하나의 세상, 처음 만나는 세상이자 유일하게 내치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세상이 자신을 내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큰 슬픔을 맛본다.  
배신과 죽음의 느낌이다.

이 그림책의 제목은 역설인데, 작가인 아이가 상당히 화가 나있는 상태로 소리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작가 변선진은 1991년 생인데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간디학교를 졸업하고 병으로 세상 밖으로 영영 가버린 그녀는 무균실에서 병마와 싸울 때
작품집 제안이 들어와 그 기쁨으로 살았다고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쓴 글과 그림이지만 이 그림책은 어른들,
특히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여전히 안고 사는 어른들에게도 좋은 충고가 된다.
바람직한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귀기울여주고 믿어주고 관심가져 주는 것.
자신이 아무리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어도 공명하지 않는 무표정한 세상에서는 홀로 버려진 느낌으로 슬프다.
자신과 상대하는 모든 관계는 하나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아이는 어른은 인정받고 보호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림의 색감과 붓질이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거칠기도 하고 과감하기도 하면서 섬세하고 순수하며 다채로운 색이다.
초콜릿 한 조각으로 마음의 빚을 청산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이 그림책은 따끔하고도 중요한 말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따뜻한 관심과 오래도록 귀기울여주는 것이란 걸.
사랑은 그 자체가 치유다. 



재능을 더 꽃피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한 변선진이 남긴 창작일지에는 이런 글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열정과 욕심을 헷갈리지 말자. 욕심이 바라보는 것은 대가이지만, 열정이 바라보는 것은 결코 대가가 아니야.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욕심이라 느껴진다면 과감히 버려. 하지만, 그것이 열정이라면 멈추지 마." 
(2009. 5.20  수요일 일기 중) 

 

"누군가의 표현을 빌어서 썩을 대로 썩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 사랑."
(2009. 6. 14 일요일 일기 중)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자. 남이 보았을 때 우아 멋진 사람이다란 얘길 듣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가 나에게 '멋진 사랑,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백배 천배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런 나보다 선생님께 믿음직한 나보다 진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를 찾자.
(2008. 여름 2학년 1학기 자기평가 중) 

 

저마다 색깔이 뚜렷한 아이, 그 색을 함부로 지우려 하지말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인정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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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1-08-2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졸업작품이었군요.
안타깝네요~

프레이야 2011-08-22 20:42   좋아요 0 | URL
네, 개성있고 섬세한 아이 같은데 갑자기 병마와 싸우다 갔나봐요. 참 안타까워요.

마녀고양이 2011-08-2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가지고 싶어요.
몹시 보고 싶어지는걸요. 스무살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났군요. ㅠ

프레이야 2011-08-22 20:42   좋아요 0 | URL
미술치료사 입장에서도 좋을 거 같아요.
언젠가 (조만간 빨리) 마녀님 드릴게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25   좋아요 0 | URL
그럼 안 사도 되는거예요? 신난당~ (뻔뻔한 마녀고양이~ 아하하)

2011-08-22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2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8-23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1991년생인데 벌써 이 세상에 없다니요...
예쁜 흔적을 남기고 갔다고 하기에도 너무 안타깝네요.
'바람의 아이들'은 저도 좋아하는 출판사랍니다.

프레이야 2011-08-23 07:41   좋아요 0 | URL
바람의아이들, 무조건 다 좋다해도 과언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참 좋아해요.
아깝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나 참 안타까워요. 꽃피우지도 못하고.

소나무집 2011-08-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마다 색깔이 뚜렷한 아이, 그 색을 함부로 지우려 하지 말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인정해주자.
마음속에 와서 팍~ 박히는 말이네요. 그런데 그 인정해주는 게 쉽지 않아요.ㅜㅜ




프레이야 2011-08-23 19:49   좋아요 0 | URL
자꾸 지적을 하게 되면 강박이 생기고 자신감에도 해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그렇겠지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 인내와 무욕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왕발이 삼촌 내인생의책 작은책가방 1
조지 오코너 글.그림,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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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그림책의 부제는 '다문화가정 및 다양성에 관한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부제가 말하듯 요즘 쏟아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조금 특별하다.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해가는 과정이 화자인 소년 '나'에 의해 진행되는데
재미있는 건 소년의 갸우뚱한 머리와 한쪽으로 확 쏠린 게슴츠레한 눈초리다.
순수한 의심과 호기심,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아이다운 편견과 두려움,
그런 것들을 부정적으로 부각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전의 단계로 보여준다.
끝까지 그 표정은 바뀌지 않고, 아이답게 풀리다가
또 다른 대상에게 다시 호기심과 편견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얼굴이 웃음을 유발한다. 
교훈적이지 않으면서 색다른 흥미거리를 불러와 '다름'을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다.
단번에 완전히는 아니고 어느 정도 조금씩 차츰차츰, 이런 방식이 오히려 믿음을 준다.

'왕발이'(Big Foot)는 소년의 삼촌이다. 남과 다른 특별난 외모로 붙여진 별명일 것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오랜 전설 속에 빅풋은 사람과 가까운 형제로 여겨지고
라코타 인디언은 '치예-탄카' 즉 '키가 큰 형님'이라 부르며 빅풋을 존중한다는 설명이 앞장에 곁들여 있다.
우리나라 도깨비에 비유하여 빅풋은 상상의 인물이지만 친근하여 종종 이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할 정도다.
 
이 그림책의 특별한 관심거리는 각 장마다 배경으로 소년의 집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인데
하나 같이 특이한 생명체(상상 혹은 미확인 생명체)와 미스터리 물체에 관한 것이다.
빅풋 못지않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스테리한 생명체들(예를 들어 모스맨, 유니콘, 네시 등)과
크롭서클이나 로즈웰 같은 미스터리한 마크나 지역이 그림의 배경에 책이나 액자 속 글자로 나오는데
이들 14가지는 책 뒤에 '찾아보기'로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초등 저학년에게 권장할 수 있는 그림책이지만 이런 부분은 어른이 읽고 쉽고 간단히 설명해 주면 좋을 듯.

아이가 편견을 서서히 깨고 결정적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는 건 엄마의 말에 의해서다.
역시 엄마는 아이가 가장 신뢰하는 '세상'이다.
발이 크다고 빅풋이라고 하면 안 되지, 라고 말하고 있는 엄마의 방에는 '섀스타산'이라 적힌 책이 꽂혀있다.
섀스타산은 미국 오리건의 인디언이 선한 눈의 신이 산다고 믿는 산이란다.
(사악한 불의 신은 마자마산에서 산다고 믿고.)
이런 것이 이 그림책이 이야기하는 선한 방식이다. ^^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빅풋 베니 삼촌은 조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방식으로 가치있다고 어느정도 인식할 즈음에 그는 떠났다.
하지만 아이답게도 빅풋 삼촌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은 벌써 옮겨졌다.
스코틀랜드에서 엽서가 왔고 조만간 놀러올 네시 고모는 또 소년에게 어떤 관찰대상이 되어
어떻게 다르고, 멋지고, 특별한 또 한 명의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탐정처럼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뜨고 눈을 흘겨 보고 있는 아이. 
제대로 안다는 건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시는 스코틀랜드 네스 호에 산다는 괴물이다.
멸종한 수장룡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빅풋 삼촌과 네시 고모, 어떻게 그려져 있을지 상상해 보면 더욱 재미나다. 
<왕발이 삼촌>은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고 지적인 그림책이다.
일러스트레이션도 유쾌하고 생동감 있다.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인상적인 건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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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1-3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서평입니다.^^

글샘 2010-11-30 23:3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0-12-0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주 좋은걸요.
트랙백해서 미리 보기로 좀 보고 보관함에 담아놨어요.
아~좋아요.

마녀고양이 2010-12-0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틀림이 아닌 다름.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안에는, 아마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는거겠죠?
다르다고 이해하지 않고, 틀리다고 주장하다는 것 역시 그런 결핍의 일종이겠죠?
코드가 다를 뿐이야,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틀린 건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저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뉴스나 여러 상황들에서 불끈 치미는 화는... 아하하.

분노하지 않는 자는 성인일건데, 저는 성인이고픈 맘은 없으니, 혼자 화를 박박 내기도 해보렵니다.
나랑 달라, 아냐 나랑 같아........... 인간이야, 같은. 횡설수설. 중얼중얼. 크.
 
내 꿈은 기적 알맹이 그림책 17
수지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첸 지앙 홍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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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어릴 적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가. 그런 아이들도 있긴 했다. 물으니까 대답은 해야겠고 억지로 생각해서 뭔가 근사한 답변을 하였던가. 난 그런 기억이 별로 없는데 요즘 아이들 교실 뒤 게시판에 가보면 어쩜 그리 근사한 장래희망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뒀는지 신기하다.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으면 아무렇게나 검사, 판사, 의사, 변호사...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아이가 있다. 사실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란다. 솔직하다.

바람의아이들, 알맹이그림책 시리즈 <내 꿈은 기적>에 나오는 남자아이가 그애다. 약간 노란 얼굴(동양인)에 고집스럽게 보이는 눈과 입, 통통한 맨발을 한 이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질문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고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는데, 그것으로 이 그림책의 나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글자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제법이다. 7,8세 아이와 같이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만한 그림책이다.  처음에 아이가 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늦잠을 자고 싶은 아이의 작은 소망 같은 것일 수도. 하지만 점점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심상치않다.  

존 레논의 Imagine이 떠오르는 희망사항을 꿈꾸는 아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꿈'과 '기적' 모두 엄청난 무게의 단어인데 가볍고 통통 튀는 수지 여사의 글이 묵직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나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한다. 첸 지앙 홍은 고학년소설 <바다소>에 삽화를 그린 화가다. 붉은수수밭을 연상하게 하는 이글대는 배경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 시커멓고 굵은 붓질로 휘날리는 파도와 총알, 부활한 죽은자들의 율동감 있는 몸짓, 굵고 선명한 검은 윤곽선. 어딘지 모를 깊은 꿈속, 원체험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심오한 세상, 그 끝에서 아이는 양손을 옆으로 활짝 펼치고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다. 잿빛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며.  

아이가 꿈 꾸는 건,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것인데 그 이유를 하나하나 들어보면 아이답지 않을 정도의 폭넓은 사랑과 지혜가 담겨있다. 세상과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와 사랑으로 산다면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줄 한 줄 새겨읽을 만하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을 지금보다 좀 낫게 만들기 위해서라니. 마지막 장은 뒷통수를 때린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참 대견한 아이다. 그래도 어른의 글이라는 게 표나서 별넷이다. 그만한 나이의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  하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올바르고 바람직하고 만족스럽다. 수지 모건스턴다운 글을 최윤정님이 발랄하게 옮긴 흔적도 보인다. 가령 '이 다음에'를 '이 담에'로 번역한 것. 아이다운 말투다.

표지의 "내 꿈은 기적"이라는 붓글씨체는 한글을 모르는 첸 지앙 홍이 직접 썼다고(아니 그린걸까?ㅎㅎ) 한다. 힘이 느껴지는 필체다.  

그런데 아이의 꿈, 기적(뭘까???)은 이루어질까. 못 이루어진다고 할 수도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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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아이에겐 꿈 자체가 기적이겠죠?!
요즘 아이들은 참 좋겠어요, 나도 울 애들 보면서 맨날 부러웡~~ㅎㅎ

프레이야 2010-06-26 21:44   좋아요 0 | URL
저 아이 꿈이 기적을 이루는 건데요,
그 기적이란 게 발칙해요.
아니 발칙한 게 아니라 어쩌면 도발적이지만 의미있다고도 할 수 있구요.
아이랑 대화해볼 수 있는 그림책이에요.^^
우리 어릴 땐 이렇게 좋은 그림책이 없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풍요롭다 할 수 있지요.
어릴 적 엄마가 사주신 안데르센동화그림책전집이 생각나요. 흐흑~
그걸 아빠 몰래 사주셨다고 들켜서 야단났었더랬지요.

전호인 2010-06-2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어릴 적에 물으면 "대통령이요!" 돈을 얼마만큼 벌거냐고 물으면 "백만원이요"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허상이었지만 결국은 그런 꿈이 있었던 것인데 먹고 살다보니 꿈을 잃고 살게 됩니다. 저의 또다른 닉네임이 "꿈을 가진 남자"라지요. 우리 또래 친구들의 어릴적에 가졌던 원대한 꿈, 대통령(이게 과연 원대한 것인지는....). 지금부터라도 작은 꿈이라도 꾸며 살고 싶네요.

같은하늘 2010-07-0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이기 때문에 기적을 꿈 꿀수 있는거겠지요.
그것이 안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어른들의 현실이 슬픈거지요?
 
폴 아저씨와 폴 아저씨 알맹이 그림책 12
만다나 사다트 글.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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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기억은 적어도 13년 정도의 세월을 거슬러간다. 내 어릴 적에는 그림책을 좋아했는지 당연히 기억에 없고 그저 그림이 있는 동물도감에 나오는 개미핥기와 나무늘보에 열광하더라는 친정엄마의 회고담이 기억에 있을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유독 문자를 빨리 깨우치고 책읽기를 좋아하던 큰딸아이를 위해 좀더 좋은 그림책을 찾게 되었다. 그림책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명작을 비롯해 참신한 그림책들까지 당시 내가 소장하고 싶었던 그림책을 사모으기 시작했었다. 모 대학의 독서지도사 과정 중에서 특히 그림책지도 수업이 가장 흥미로웠고 당시 젊은 여자선생님이 들려주던 그림책에 관한 놀라운 진실들이 나를 매혹의 그림책 세계로 점점 더 끌어당겼다. 행복한 늪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으니. 

당시 큰딸이 네다섯살 쯤에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은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였다. 싫어하는 그림책은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딸아이가 네살쯤인가에는 하야시 아키코의 '목욕은 즐거워'를 가장 좋아했다. 역시 아이들은 다 다르고, 또 같기도 하다. 놀이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점이 그렇다. 지금도 어린 조카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갖고 있는 그림책들이 작은아이 방 책꽂이 한 면 가득하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그림과 간결한 글이 주는 위로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게다가 동심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의 힘도 가벼이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말이 또다른 오해를 불러오고 마음의 평화를 더 흐트리기 쉬울 때, 그냥 그림책 한 권을 펼쳐드는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고 가벼우면서도 깊은 그 세계로 들어가면 근심이 다소 누그러지게 마련이다. 특히 가브리엘 뱅상의 셀레스틴느 시리즈는 내가 툭하면 펼쳐보는 그림책이다.

<폴 아저씨와 폴 아저씨>는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알맹이그림책 시리즈 열두 번째 편이다. 해외의 잘 소개되지 않은 그림책을 발굴하여 간결하면서도 우리말맛을 잘 살려 번역하는 최윤정님의 '옮김'에 우선 믿음이 간다. 제목에서처럼 이 그림책은 이름은 같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 사는 우리들 자신, 우리들 이웃의 이야기로 친구맺기의 미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림의 힘을 시각적으로 잘 이용한 그림책이다. 그림에 깊이가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고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 다르니까. 제목에서 힌트가 있듯이, 붉은 글씨로 씌어진 '폴 아저씨'와 녹색 글씨로 씌어진 '폴 아저씨'가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생김새 모두 성격과 비슷하게 그림으로 그려져있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하고 단순한 선과 흑백으로만 그려진 쪽과 자유롭게 손으로 쓱쓱 그린 듯한 가는 선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어지럽게 그려져 있는 쪽.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는데, 과연 서로 좋은 친구사이가 될까. 두 사람은 이런 인연을 생각이나 하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 사람의 외양이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도 사람이다.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나와 같은 부분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와 같을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그걸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불만과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에게서 자신은 '상상도 못해 본 일'을 경험하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놀라움이 앞서고, 그것으로 인해 좀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어가는 과정도 이런 호기심과 뜻밖의 내면적 경험에서 시작될 것이다. 친구와 잘 다투거나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취학 전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른도 관계맺기에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 그림책 연령은 제한이 없다. - 마음으로 말하는 것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이 그림책에서 어떻게 그려놓았는지 상상해보세요.^^ - 그리고 조용히 느긋하게 그 말이 내 가슴 가운데 제대로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바심의 탓도 클 것이다.  이 그림책은 아이든 어른이든 그렇게, 진심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보여주고 나눠주는 마음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각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가진 게 없다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역시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들 중 몇 개만 나눠주어도 근사한 관계맺기가 이뤄질 수 있다. 정작 나눠주는 것에 인색해지고 또는 오히려 놀림감이 될까봐 소심해지기도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걸 어른보다 잘 한다.

또한 이 그림책은 시와 음악으로 표현된 예술, 그러니까 우리 정신과 마음의 작용, 그 아름다운 파장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올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닫혀있던 마음의 자물쇠를 열어주고 잠자고 있던 감성을 깨워주는, 내면의 운율에 따르게 하는 순한 파장이다. 교과학습과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배우는 예능학원수업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로운 유희정신으로 생활 속에서 예술활동을 즐길 수 있다면 아이들이 훨씬 따스한 감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바로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으로 타인의 가슴에 화사한 꽃 한송이 피워줄 수 있다면! 경쾌한 새의 노래소리 한 소절 불러줄 수 있다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음의 향기인데, 마음밭에 꽃씨 하나 먼저 심어둘 일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동시에 같은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인정하고도 싶다. 오해를 낳기 쉬운 말이나 글이 없이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서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각자 하나의 외로운 섬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 행복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아이와는 이렇게 심각한 듯한 언어로 대화할 필요는 없지만, 취학 이전의 어린 아이와 함께 읽고, 보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 나누기에 좋은 그림책이다. 어른이 보아도 물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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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멋진날 2009-08-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리뷰를 정말 그림 같이 멋지게 쓰셨네요^^
프레이야님이 그림책을 좋아하시는군요,,
나중에 제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이런 책 꼭 보여주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9-08-16 10:27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게 되면 누구나 그림책 좋아하게 될 걸요.^^
아이랑 즐기는 거죠.ㅎㅎ

후애(厚愛) 2009-08-1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면 선물로 주고 싶은 그림책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들을 보면 저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아이들이 넘 부러워요~ ㅋㅋㅋ

프레이야 2009-08-16 11:03   좋아요 0 | URL
후애님, 아이들이 어릴 적 같이 나란히 두다리 뻗고 앉아 무릎에 그림책을 얹고
함께 그림을 보며 글을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대사가 나오면 음성변조도 해가며 ㅎㅎ
우리 어릴 때 비하면 좋은 그림책들이 너무 많이 나오지요.^^

2009-08-16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7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8-1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좋은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커버렸다는게 아쉬울 때가 있어요.
아, 이 리뷰는 정말 그 책을 너무너무 보고 싶게 만드는..

프레이야 2009-08-17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멀어지는 것들이 있고
새로이 다가오는 것들도 있고 그래요.
딸과 아들이 좀 다르기도 할 거구요.
딸은 정녕 눈물이더라,는 글귀의 편지를 어제 뜬금없이,
친정엄마에게서 받았어요.

2009-08-17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8-17 10:49   좋아요 0 | URL
알라딘 마을에 좀 오래 살고있다보니 그런가 봅니다.ㅎ
단순함의 미덕을 그림책에서 늘 찾게 되어요.

같은하늘 2009-08-2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연령은 제한이 없다-- 이 말에 찌찌뽕~~~
저도 아이들 때문에 그림책을 보지만 정말 좋은거 많더라구요...

프레이야 2009-08-21 22:1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우리 어릴 때 비하면 정말 풍요롭지요.
 
머리 안 자를 거야! 알맹이 그림책 7
엘리비아 사바디어 글·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그림책을 보며 십 수 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싱긋 웃었다. 아이와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이런 그림책은 아이보다 오히려 엄마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아이에게는 대리만족이나 욕구의 간접배설을 경험하게 한다. 아이를 길러본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이야기를 슬그머니 미소 지을 수 있게 그려놓은 그림책이다. 특히 자기주장이 강하고 예민한 아이를 기른 엄마라면 훨씬 더 공감하며 살짝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이의 주장을 흡수해주고 아이의 불안한 감정을 포용해주지 못한 나처럼 그렇게.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알맹이그림책 시리즈의 일곱 번째 그림책 <머리 안 자를 거야>는 간단명료한 글과 글처럼 간결하면서 온기 있는 그림이 엄마와 어린 아이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믿음과 사랑을 잘 전해 준다.

 열여섯 살이 된 큰딸은 어릴 때 무척 고집이 세었다. 숱이 적은 편이었는데 한 번 박박 밀어주면 더 많이 잘 난다고 해서 백일이 좀 지나 미장원에 데려간 적이 있다. 그날은 미장원이 발칵 뒤집어진 날이었다. 나는 아이를 붙잡느라 녹초가 되었고 아이도 기진맥진하였다. 미장원 언니들도 고역이었다. 얘는 생후 2개월에 어깨띠를 하고 내 가슴에 매달려 외출을 할 때에도 그때가 한 겨울이었는데도 숄을 머리에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머리를 뻗치며 흔들어대었다. 그래서 생후 첫 나들이 때부터도 뒤집어씌워 다니지 않았지만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안 할 거야’라고 거부의 표시를 할 때, ‘내가 할 거야’라고 적극적 의사 표시를 할 때마다 엄마는 자신과 타협을 해야 한다. 수긍하고 허락하던지 금지시켜야 하던지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 딸처럼 ‘안 할 거야’라는 의사표시를 많이 했던 아이를 나는 존중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 편의나 남의 시선 때문에 아이를 무조건 내 기준으로 맞추고 윽박질렀다. 좀더 포용해주고 아이의 정서와 의사를 수용해주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후회가 든다.

 그림책 속의 엄마는 고집스럽지만 귀여운 아이의 마음을 읽고 아이와의 싸움에서 휴전의 지점을 잘 알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또한 읽고 있다. 두 사람의 볼이 부딪히고 ‘머리카락이 서로 섞이고’ 눈동자가 함께 반짝 빛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온난기류가 든든하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버릇없는 아이가 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적정한 선에서 자신의 손을 들어주고 안아준다는 걸 체온으로 믿을 수 있을 때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욱 온화해지지 않을까 싶다. 방종이나 과잉보호와는 다른 이야기다.

 이 그림책의 매력은 활자의 크기와 모양으로 어린아이의 직설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활자가 주는 내용전달의 힘은 그림책의 그림 못지않게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나 ‘작은집 이야기’처럼 글자의 배치를 통해서도 일러스트레이션에 한 몫 하는 그림책은 유쾌하고 생동감 있다. “오늘은 머리 안 자를 거야” 라고 쓴 커다랗고 굵은 명조체 활자는 자기 의사를 뚜렷이 밝히는 도미니크의 목소리를 녹음기로 실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이의 마음이 읽히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최윤정 님의 번역이다.

 

 글자가 적어 미취학어린이 중에서도 연령대가 어린 아이나 글자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도 좋겠다. 엄마와 같이 읽어보면 아이의 마음도 대변해주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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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2-04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안자를거야는 우리집 애들 단골 메뉴인데요. ㅎㅎ
이번에 예린이 머리 자르기 위해서 얼마나 꼬드겼게요. ^^
이 책 보여줘야겠네요. ^^

프레이야 2008-02-04 10:56   좋아요 0 | URL
히힛.. 이 그림책 오늘 님께 보낼게요.
예린이보다 해아가 더 좋아할 것 같아요. 글이 적고 그림은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