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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아저씨와 폴 아저씨 ㅣ 알맹이 그림책 12
만다나 사다트 글.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7월
평점 :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기억은 적어도 13년 정도의 세월을 거슬러간다. 내 어릴 적에는 그림책을 좋아했는지 당연히 기억에 없고 그저 그림이 있는 동물도감에 나오는 개미핥기와 나무늘보에 열광하더라는 친정엄마의 회고담이 기억에 있을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만 유독 문자를 빨리 깨우치고 책읽기를 좋아하던 큰딸아이를 위해 좀더 좋은 그림책을 찾게 되었다. 그림책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명작을 비롯해 참신한 그림책들까지 당시 내가 소장하고 싶었던 그림책을 사모으기 시작했었다. 모 대학의 독서지도사 과정 중에서 특히 그림책지도 수업이 가장 흥미로웠고 당시 젊은 여자선생님이 들려주던 그림책에 관한 놀라운 진실들이 나를 매혹의 그림책 세계로 점점 더 끌어당겼다. 행복한 늪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으니.
당시 큰딸이 네다섯살 쯤에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은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였다. 싫어하는 그림책은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딸아이가 네살쯤인가에는 하야시 아키코의 '목욕은 즐거워'를 가장 좋아했다. 역시 아이들은 다 다르고, 또 같기도 하다. 놀이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점이 그렇다. 지금도 어린 조카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갖고 있는 그림책들이 작은아이 방 책꽂이 한 면 가득하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그림과 간결한 글이 주는 위로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게다가 동심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의 힘도 가벼이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말이 또다른 오해를 불러오고 마음의 평화를 더 흐트리기 쉬울 때, 그냥 그림책 한 권을 펼쳐드는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고 가벼우면서도 깊은 그 세계로 들어가면 근심이 다소 누그러지게 마련이다. 특히 가브리엘 뱅상의 셀레스틴느 시리즈는 내가 툭하면 펼쳐보는 그림책이다.
<폴 아저씨와 폴 아저씨>는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알맹이그림책 시리즈 열두 번째 편이다. 해외의 잘 소개되지 않은 그림책을 발굴하여 간결하면서도 우리말맛을 잘 살려 번역하는 최윤정님의 '옮김'에 우선 믿음이 간다. 제목에서처럼 이 그림책은 이름은 같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 사는 우리들 자신, 우리들 이웃의 이야기로 친구맺기의 미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림의 힘을 시각적으로 잘 이용한 그림책이다. 그림에 깊이가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고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 다르니까. 제목에서 힌트가 있듯이, 붉은 글씨로 씌어진 '폴 아저씨'와 녹색 글씨로 씌어진 '폴 아저씨'가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생김새 모두 성격과 비슷하게 그림으로 그려져있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하고 단순한 선과 흑백으로만 그려진 쪽과 자유롭게 손으로 쓱쓱 그린 듯한 가는 선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어지럽게 그려져 있는 쪽.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는데, 과연 서로 좋은 친구사이가 될까. 두 사람은 이런 인연을 생각이나 하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 사람의 외양이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도 사람이다.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나와 같은 부분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와 같을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그걸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불만과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에게서 자신은 '상상도 못해 본 일'을 경험하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놀라움이 앞서고, 그것으로 인해 좀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어가는 과정도 이런 호기심과 뜻밖의 내면적 경험에서 시작될 것이다. 친구와 잘 다투거나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취학 전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른도 관계맺기에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 그림책 연령은 제한이 없다. - 마음으로 말하는 것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 '마음으로 말하는 것'을 이 그림책에서 어떻게 그려놓았는지 상상해보세요.^^ - 그리고 조용히 느긋하게 그 말이 내 가슴 가운데 제대로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바심의 탓도 클 것이다. 이 그림책은 아이든 어른이든 그렇게, 진심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보여주고 나눠주는 마음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각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가진 게 없다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역시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들 중 몇 개만 나눠주어도 근사한 관계맺기가 이뤄질 수 있다. 정작 나눠주는 것에 인색해지고 또는 오히려 놀림감이 될까봐 소심해지기도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걸 어른보다 잘 한다.
또한 이 그림책은 시와 음악으로 표현된 예술, 그러니까 우리 정신과 마음의 작용, 그 아름다운 파장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올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닫혀있던 마음의 자물쇠를 열어주고 잠자고 있던 감성을 깨워주는, 내면의 운율에 따르게 하는 순한 파장이다. 교과학습과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배우는 예능학원수업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로운 유희정신으로 생활 속에서 예술활동을 즐길 수 있다면 아이들이 훨씬 따스한 감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바로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으로 타인의 가슴에 화사한 꽃 한송이 피워줄 수 있다면! 경쾌한 새의 노래소리 한 소절 불러줄 수 있다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음의 향기인데, 마음밭에 꽃씨 하나 먼저 심어둘 일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동시에 같은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인정하고도 싶다. 오해를 낳기 쉬운 말이나 글이 없이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서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각자 하나의 외로운 섬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 행복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아이와는 이렇게 심각한 듯한 언어로 대화할 필요는 없지만, 취학 이전의 어린 아이와 함께 읽고, 보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 나누기에 좋은 그림책이다. 어른이 보아도 물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