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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평점 :
당신이 읽은 책을 나에게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라는 진부한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어느 부분 틀리지 않는 말이다. 책은 사람이 만들지만 사람은 책이 만든다는 말도 그런 의미와 닿는다. 책을 고르는 주체는 나이고 책을 읽는 행위는 그런 자신에게로 한걸음 더 들어가 달라진 자신을 자재로 하나의 책장을 구축하는 일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책장은 자신이 건설한 세계의 축소판이다. 한 권 읽었다고 바로 달라지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 달라지기에는 많은 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녁의 한복판을 화살로 맞았다면 말이다.
과녁의 주변을 맞아도 그 진통의 울림을 무시하지 못한다. 서로 단단히 연결되면서 바람이 통하며 이야기 나눌, 유연한 틈이 노리는 책들로 나의 책장을 쌓아가자.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돌멩이들이 어깨를 곁고 선 담이 더 튼튼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오는 도서관은 내게 이런 이미지를 주었다. 분류법에 따라 줄 세워진 책장들, 세상에 존재하는 이어지거나 분리된 수많은 책장들. 그것은 벽이기도 하지만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 위에 올라서서 한순간 다른 도시로 뛰어내릴 수도 있는 담이다. 낙하! 비시간의 공간에서라면 가능할 상승! 마치 밀도가 높아진 물이 위로 솟듯이. 강하고 경쾌하게.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모든 건 우리 스스로 가담한 일이다.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을 부제로 하는 ”여자만의 책장“은 엄밀히 말해 우리가 스스로 고르고 쌓아올린 책장이다. 여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물론 남성 작가의 작품도 다룬다. 우리가 한 권의 책이고 책장이라면 세상에 다양한 성격의 책장들 중 하나로서 이 책은 여성 삶을 다룬 문학의 역사에 획을 그은 작품을 연도순으로 소개한다. 여성 삶이 주체적 역사로 변천하고 발전해온 과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여전히 나아가는 중이고, 돌아보아야 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세상에 맞서 싸울 의무를 져온’ 여성들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에 관해 소중한 통찰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엄선했다고, 저자는 머리말에 밝혔다. 그에 앞서,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자 작가, 철학자로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문장으로 이 책장을 연다.
- 확신하건대 세상과 맞서 싸울 의무보다
우리의 능력을 더 잘 끌어내는 것은 없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딸들의 교육에 관한 성찰,
1787.
1002년 “겐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읽기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한다. 소개된 작가의 책을 모두 읽고 싶게 손을 이끈다.
- 세계 문학사 최초의 대하소설 겐지 이야기는 일본 소설 최고의 명작이자 지금껏 쓰인 허구의 이야기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성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 독창적인 소설의 작가는 11세기 일본의 궁녀다.
무라사키 시키부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별로 없다. 아버지는 중급 귀족이고 지방관을 지냈다. 시키부는 의뢰를 관장하던 기관 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한때 맡았던 관직을 가리키며 무라사키는 보라색을 의미하고 겐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의 별명에서 따온 듯하다. (19쪽)
본문으로 들어가 보면 외연을 확장해 적극적으로 읽을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읽고 싶어지는 도서 목록이 늘어나는 즐거움이 따라온다. 목차에 오른 연도순 도서를 차곡차곡 읽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곳간에 양식 늘어나듯이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 이 책에 언급된 주요도서 50권과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의 다른 책들을 확장해 읽으며 우리의 책장 중 또 하나를 쌓아가는 것도 좋겠다. A Bookshelf of Our Own. 무한대 책장이다.
원서 표지와 함께, 국내에서 번역된 책은 편집자가 가장 추천하고픈 출판사 도서로 각 장에서 표지와 함께 소개한다(예외 몇 - 도로시 L. 세이어스, 대학제의 밤Gaudy Night 외). 유용한 편집이다. 여러 면에서 고심하며 성실하게 작업한 흔적이 보이는 반듯한 번역도 돋보인다. 원서가 2005년 발간되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2002년 도서로 캐시 하나워 작, “그래, 난 못된 여자다”가 소개된다. 이후의 책들은 독자가 골라 책장을 메꿔나가면 더욱 의미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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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에이드리언 리치
(밑줄긋기 440쪽)
1989 숄. 신시아 오직(밑줄긋기 501쪽)
모성을 "인간의 모든 관계가 얽혀 있고 사랑과 권력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숨어 있는 거대한 그물망"이라 칭하며 세 아이의 어머니인 자기 경험을 시작으로 개인적 관점과 인류학적·역사적·정치적 관점에서 주제를 탐구해나간다. 리치는 당시에 쓴 일기를 들춰보며 임신 기간과 자녀의 주양육자로 지내는 동안 느낀 양가감정을 강렬하고 진솔하게 기록한다. "사랑과 증오, 아이의 유년기를 향한 질투심, 성숙기로 넘어가리라는 희망과 두려움, 한 존재에 온몸이 매인 채 책임감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갈망의 파도에 휩쓸린다." 리치는 자신이 주부와 어머니로 부적합하다고 느끼고 지성인과 예술가로서 살아야 할 삶을 너무 희생했다고 억울해하는 등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지루한 가사노동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제 역할에 만족하는 온전한 어머니라는 신화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리치는 자각했다. "나는 모성의 실재가 아니라 모성의 제도 때문에 진정한 육체와 진정한 정신에서 실질적으로 소외된 것이다. - P440
현대 세계의 유대인이 마주하는 어려움이라는 주제에 집중해 작품 대부분을 집필한 신시아 오직은, 이 주제를 넘을 수 없을 듯한 장애물을 앞에 두고서 영혼과 믿음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심오하고도 보편적인 탐구 과정으로 변형해왔다. 평론가 다이앤 콜은 "현대 작가 중에 오직만큼 폭넓은 작품 세계와 지식, 열정을 보여주는 작가는 거의 없다."라고 강조했으며, 연구자 일레인 M. 코바는 오직을 꼼꼼한 문장의 대가이자 예술적인 도덕감각의 대변자"라고 불렀다. 『신뢰』 (1966), 『식인 은하계』(1983), 스톡홀름의 메시아』(1987), 『퍼터메서의 논집」(1997)등 장편소설 네 편을 발표한 작가지만 오직이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은 『이단 랍비』(1971), 유혈극』(1976) 공중 부양(1982) 등의 단편집들 덕분이었다. 평론가 캐럴 혼은 "오직의 이야기는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신비롭고 불온하다. 총명함이 아른대고, 언어에 환희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직의 작품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참혹한 이야기를 담은 「숄과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편소설 「로사」로, 두 작품은 한 권에 모여 「숄이라는 제목으로 1989년 출간되었다. 홀로코스트의 충격을 그린 작품으로도, 신시아 오직이라는 주요 작가를 만날 입문서로도 이보다 더 훌륭하고 매력적인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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