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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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네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말하는 것이

도리어 성가시다.
언덕으로 들어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우리가 들을 것이다,

듣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

 

(울라브 H. 하우게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뉜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무리와 사용하지 않는 무리. 스마트폰이 열어젖힌 광대한 대륙인 소셜 네크워크에는 새로운 정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대륙에 정착한 소셜 네크워크 접속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갈아타면서 정보와 네트워킹의 세계를 탐험한다. 와이파이의 전파를 온몸에 적실 수 있는 곳이라면 그들을 막을 장벽은 아무것도 없다. 인터넷이 소통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대륙에서 연줄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라는 걸 인증이라도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고, 시공간 제약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능력이나 의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쉽게 알 수 없었던 예전에 비해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온갖 SNS를 통해 알릴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으로 노출하는 이른바 ‘홍보 과잉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홍보 과잉 시대 속 소셜 네크워크 접속자는 언덕 꼭대기 위에 올라가 외치는 사람과 같다. 자신에 관한 모든 내용을 상대방이 알아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길 원한다. 페이스북 접속자는 보이지 않는 확성기를 들면서 ‘소통’을 명분으로 업적을 과시한다. 만인에게 공개되는 SNS에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더 멋있게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된다. 이런 반복되는 환경에 절대다수는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마케팅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친구를 거느리면 읽고, 응대하고, 사진을 올리는 등 홍보와 관리는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는 피곤한 노동이 된다. 본인 이야기만 있는 ‘페이스북 친구’의 게시물이 성가시게 느껴진다.

 

한때 소셜 네크워크는 다양한 정보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최적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허세스럽고 선동적인 게시물이 넘쳐나는 레드오션이 되었다. 홍보에 눈이 멀어 과도하게 게시물을 올리는 ‘관종’(관심병 종자의 줄임말)이 소셜 네크워크를 지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해 “관심을 바라는 마음의 병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노르웨이의 시인 하우게는 언덕 꼭대기에 소리치지 말고, 대장간을 짓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이것은 데이비드 즈와이그가 강조하는 ‘인비저블(Invisible)’의 정의와 일맥상통하다. 인비저블은 자기 홍보의 소음이 가득한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안다. 이들은 타인의 인정이나 관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일에 있어서도 지독할 정도로 꼼꼼해 사소한 부분까지 집중해 완벽하게 처리한다. 업무를 완벽하게 완수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남는 것을 즐길 만큼, 일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탁월한 기량을 유지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띄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의 결과만을 누리려고 하고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기피하는 반면 인비저블은 막중한 책임을 지며 그것을 즐기는 경향을 가진다.

 

자기 과시와 명성의 시대 속에 조용히 자기 일과 삶을 즐기는 인비저블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기관리를 하지 않은 채 홍보에 집착하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자기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직업적인 성공과 내적 성취감을 지향하는 인비저블의 모습은 장인 정신과 비슷하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인비저블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소박한 장인으로서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캘빈 클라인의 남성용 제조한 조향사, 124층 높이의 상하이타워를 짓고 있는 수석 구조 공학자, 유엔 최고 동시통역사 등은 모두 대중들로부터 크게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중견·고위급 직업에 해당한다.

 

미국의 빈곤층이나 개발도상국에서 힘겹게 일하는 무명의 노동자들과 달리 인비저블은 대부분 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탁월한 전문성과 실적에 힘입어 관련업계와 동료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와 인정,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다. (18쪽)

 

저자는 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고위직 전문직 종사자에 국한해서 인비저블의 정의를 규정하여 빈곤층 노동자와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빈곤층이나 힘겹게 일하는 무명의 노동자들은 인비저블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고위직 전문직 종사자에 비하면 빈곤층 노동자는 경제적 보상 같은 외적 요인을 누릴 경험이 적다. 경제적 보상에 따른 동기 부여가 이루어져야 업무 성취를 높일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인비저블들도 경제적 보상을 충분하게 받은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하여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칭찬, 보상 같은 외적 요인을 배제하면서 일을 하는 과정에 내면적 만족감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을 수행하는 열정을 구실로 더 낮은 급여를 주는 '열정페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노동자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금, 이 사회에 과연 내면적 만족과 외면적 풍요를 조화시키는 삶, 일을 통해 지속적인 행복과 성취를 얻는 삶이 가능한 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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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2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개발서를 너무 질색하는..저는 어쩌나요?!^^ 이 편견부터..어째야할텐데...앞에있음 읽으면서..찾아서 사서 부러 보게는 안되는...

붉은돼지 2015-03-29 13:09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엔 자기개발서 종류는 질색을 했는데 어쩌다 몇 권 읽어보니 괜찮은 것도 있더라구요.
요즘은 자기개발서에 대한 편견은 없어진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한두권 빌려보세요~~^^

cyrus 2015-03-29 16:02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자기개발서를 안 읽는 편인데 책의 목차를 직접 확인해서 내용이 마음에 들면 읽어봅니다. 읽다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그냥 읽지 않습니다. 저자의 메시지는 주로 서문이나 책 맨 끝장에 나오는데 자기개발서만큼은 정독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핵심내용만 발췌해서 읽습니다.

[그장소] 2015-03-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안보는건 아니랍니다.어쩌다 넘겨봐서 맘에들면 읽어요. 편식이 편견보다..더 한 지도...ㅎㅎㅎ

낭만인생 2015-03-2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그들이 진짜 인비저블이죠.

cyrus 2015-03-29 18:0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인비저블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인비저블의 정의를 설명하는 과정에 ‘빈곤층’을 언급하면서까지 계층이라는 기준을 내세우는 저자의 발언이 불편했습니다.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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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들 때 느껴지는 두툼한 부피감과 표지를 쓰다듬을 때 전해오는 부드러운 질감을 사랑한다. 막 인쇄된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와 헌책방에서 풍기는 곰팡내도 좋아한다. 새로 산 책을 펼쳐 들고 활자와 문단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작업은 즐겁다. 책은 저자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의미'로 텍스트화에서 담아놓은 글 바구니이다. 독자는 이 글 바구니에 들어가 열심히 책을 읽는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독서는 바로 ‘저자가 구축해 놓은 작가의 경험과 사상 즉, 저자가 전하려는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독자가 글 바구니에 들어가려면 우선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는 소설 등의 서사적인 글이 가져야 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글 말고도 설명적이거나 논리성이 요구되는 글까지도 글을 읽고 싶게 하는 호기심을 발동하게 해야 한다. 일단 재미가 없으면 독자는 글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과 가까이한 경험이 많지 않은 독자라면 몰라도 독서를 많이 한 독자는 결코 책 속에서 재미만 쫓지 않는다. 저자는 글 바구니 안에 있는 책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책이 좀 많습니다》에 나오는 23명의 애서가들은 비록 가진 책은 몇 천 권(?)에 불과하지만, 책 한 권을 음미하는데 누구보다도 탁월한 미식가다. 개인소장도서 몇만 권을 헤아리는 장서가라고 해서 ‘독서 고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을 구별 짓는 일률적인 자격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적인 행동양식은 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사람들은 건져내지 못하는 책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아마도 이들은 하루만 책을 보지 않아도 불안에 떨 것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권의 책을 허겁지겁 탐식하고 나서는 마음은 서점으로 향해 있다. 이렇다 보니 애서가들은 대체로 수집벽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허섭 씨는 애서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들인 책이 무려 2만 권 족히 된다. 너무 많이 사서, 또 너무 많이 차지해서 가족들의 눈치를 받게 되자 개인 서재인 ‘학사재’를 갖게 되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책을 사고 모으다 보니 집이 책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국지를 좀 읽어본 독자 대부분은 이문열 삼국지로 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남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를 세 번 이상은 완독하려고 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문구를 책의 카피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한 출판사의 전략은 성공했다. ‘이문열 삼국지’는 최장기간 스테디셀러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 나온 삼국지를 대표하는 제1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삼국지 열풍 속에 부작용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쓴 삼국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만 찾는 것이다. 허섭 씨는 삼국지를 읽을 때 이문열뿐만 아니라 황석영, 장정일 등이 쓴 여러 가지 삼국지 판본을 사면서 읽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삼국지가 들어간 제목의 책만 해도 수십 권 넘는다. 웬만한 삼국지 전집을 다 갖춘 셈이다. 범인(凡人)은 허섭 씨의 독서 편력을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책이 좋아도 그렇지 적지 않은 책값을 삼국지에만 쏟아 붓는 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섭 씨의 끝장 도서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기 위한 허섭 씨만의 독서법이다. 이문열의 생각이 투영된 삼국지만 세 번 이상 읽었다고 해서 삼국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허섭 씨가 생각하는 위험한 독서는 고작 책 몇 권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만 가지고 쉽게 단정하고, 오만해지는 것이다. 애서가는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안다. 프리랜서 윤정일 씨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이공계 도서를 알뜰하게 모아 두었다. 그가 관심 있는 컴퓨터 분야는 국내에서는 척박하고 낯선 황무지와 같다. 그런데도 윤정일 씨는 쉽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서를 장만했다. 그에게 독서는 이공계 도서의 출판과 번역에 관한 방법론을 전파하기 위한 고독한 여정이다. 국어 교사 김주연 씨는 시집와 그 시집을 쓴 시인에 관한 책들을 가지고 있다. 수의사 임희영 씨는 단지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사게 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이 있지만, 글 바구니를 제대로 가지고 놀 줄 아는 모습은 닮았다.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우리나라 사회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책이 주렁주렁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묵묵히 걸으면서 책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을 줄 아는 진정한 애서가들이다.

 

그들이 터놓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책의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지식의 풍경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평범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책 속에 있는 지식의 풍경은 사라지고, 책이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메마르면서 죽는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글이 담긴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낳고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수 세기 동안은 그런 염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해도 된다고 본다. 영상문자가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작가가 만들어낸 텍스트의 의미를 찾는 일이나 텍스트을 읽으면서 획득되는 ‘상상에 의한 창의력’ 쪽은 종이책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책이 좀 많습니다’라는 제목만 보고 애서가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 독자들이 그런 착각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제목 앞에 괄호를 넣고 싶다. 《( ) 책이 좀 많습니다》. 《( ) 책이 좀 많습니다》안에 독자가 원하는 말을 넣을 수 있다. 평소에 좋아하고, 많이 읽은 분야의 책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 모으면서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자랑해도 된다. 아니면 커피의 종류나 이와 관련된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글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커피에 관한 책만 모으는 독자는 ‘(커피에 관한)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애서가다. 단지 책이 특별히 많다고 해서 애서가라고 할 수 없다. 책이 좀 많다고 자부하는 애서가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독서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거라 믿는다. 애서가는 말 그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범하기만 하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나무를 개인 서재에 심어 가꿀 줄 안다면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애서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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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27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성적으로 (안 읽은)책이 좀 많습니다 vs (잘못 읽은)책이 좀 많습니다 vs (읽다가 만)책이 많습니다... 빅매치를 엉뚱하게 상상해 봅니다;

새아의서재 2015-03-28 07:17   좋아요 1 | URL
이렇게 공감이 되는 댓글은 처음이군요! ㅋㅋ

해피북 2015-03-28 09:09   좋아요 1 | URL
저두 공감100개 누르고 싶네요^~^

sslmo 2015-03-28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리뷰를 쓰지 않거나 쓰지 못한) 책이 좀 많습니다~^^

해피북 2015-03-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면서 확 정리도 되고 공감도 되는 글이예요 저두 오늘부터 가로안에 들어갈 문구 생각 해봐야겠어요 저두 (읽지 못한)책이 좀 많습니다가 될거 같지만요 ㅋㅡㅋ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5-03-28 21:47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은 어린이 그림책이나 마스다 미리가 쓴 책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해피북님은 (유유출판사에 나온) 책들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해피북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내일 아침에 황사 섞인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점 안 읽은 책이 책장을 점령했네요....

cyrus 2015-03-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안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군요. (C무룩)

하양물감 2015-03-2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은) 책이 좀 많습니다
(방바닥에 널부려놓은 )책이 좀 많습니다. ㅠㅠ

오쌩 2015-03-3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분들 댓글보니 대부분 상태가 비슷하군요ㅠ
 

 

 

 

 

 

 

 

‘이불킥’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불’과 ‘차다’라는 뜻을 가진 ‘Kick’과 합쳐진 인터넷 신조어다.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부끄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머릿속에 떠올라 이불을 차는 자탄의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주에 저지른 부끄러운 실수를 잊지 못해 주말 내내 잠을 자기 전에 이불을 걷어찼다. 《나의 서양사 편력》의 서평에 참고문헌이 없다는 내용을 쓴 것이 이불킥을 차게 만든 화근이었다. 이 책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을 완독하자마자 바로 2권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나의 서양사 편력》 서평을 썼고, 그 다음 날에 ‘칼레의 시민’을 주제로 한 잡문을 썼다. 나는 1권에 참고문헌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책 자체에 참고문헌이 없다고 단정했다. 2권 끝에 참고문헌이 있는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책의 구성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좋은 책의 가치를 깎아내렸고, 책의 평판이 나빠질 뻔했다. 다행히 서재 이웃 두 분이 참고문헌이 있다는 사실을 댓글로 알려줬다. 잘못 적은 글을 수정했고, 책의 정보를 잘못 알린 점에 대해서 댓글을 남긴 분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내가 참고문헌이 없다고 언급한 댓글과 내 실수를 지적한 서재 이웃 두 분의 댓글은 삭제하지 않았다.

 

문제 되는 내용이 있는 댓글을 교묘하게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덮는 행위다. 내가 잘못 쓴 글이나 댓글이 비공개로 설정되지 않으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게 되면 마치 자신의 약점이 타인에게 발각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허점 하나로 인해 내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 궁지에 헤어나려면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면 된다. 블로그나 SNS의 글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끝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 센 사람들은 이를 악용한다. 타인에게 지적당한 내용을 수정하거나 깡그리 삭제한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뗀다. 자신은 그런 표현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변명하는 데 급급하다. 심지어 자신의 허점이 드러난 모든 댓글을 다 삭제하고 난 뒤에 일말의 사과도 없이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

 

안하무인 행태는 페이스북에서 늘 자주 보는 일이다. 특히 토론 거리가 될 만한 글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과 댓글 논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 수법을 방패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향하는 포탄과 같은 타인의 공격적인 문제 제기와 지적에서 살아남으려고 ‘수정/삭제’ 기능을 은근슬쩍 사용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간다. 그런데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댓글 논쟁에서 이겨본 모습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수법을 사용하면 자신을 더욱 궁지에 몰린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에 있는 글이나 댓글을 수정하면, ‘수정됨’이라는 글자와 함께 글쓴이가 수정했던 날짜와 시간이 나온다. 이는 허점이라는 혹을 떼려다가 그만 불필요한 혹 하나 더 붙이는 꼴이다. 댓글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 자신의 의견이 있는 댓글을 수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허점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허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만약에 댓글 논쟁에서 상대방이 자꾸 댓글을 수정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심리적 중압감에 흔들리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논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궁색한 주장만 중언부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잘못한 점을 순순히 시인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인 데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남긴 댓글을 삭제하고 난 뒤에 페이스북 그룹을 스스로 탈퇴하거나 대립의 날을 향했던 상대방과 마주하기 싫어서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해제한다. 자신의 실수로 보일법한 모든 증거를 제거하고 난 뒤에 도망치면서 사라지는 범죄자처럼 말이다.

 

알라딘 블로그나 북플의 수정 기능은 수정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잘못 쓴 글이나 맞춤법이 틀린 댓글을 수정해도 언제 몇 시에 수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수정을 여러 번 해도 글과 댓글이 처음으로 작성된 시간만 나와 있다. 만약에 내가 지난주 토요일에 잘못된 글이 지적한 두 사람의 댓글을 삭제하고, 수정했더라면 내 실수를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가 민망해서 상대방의 댓글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상대방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이다. 심지어 실수한 당사자를 배려해서 단 비밀 댓글을 삭제하거나 답글을 하지 않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부끄럽더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나서 상대방에게 댓글을 직접 삭제해달라고 양해를 구한다면 서로 간의 오해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를 볼 수 있다.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기분 불쾌하게 만드는 비속어가 들어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내 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한 댓글을 삭제할 생각은 없다.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놔둔다. 밤에 자기 전에 이불킥을 몇 차례 하면서 반성했다. 책을 읽고,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조금만 더 세밀하게 살피고, 신중한 마음으로 책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겸손한 자세로 책을 소개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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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 2015-03-2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실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죠. 따뜻하고 겸손하게...저도 노력하겠습니다~

cyrus 2015-03-25 2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허점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부끄러운 마음만 생겨서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병통치약 2015-03-2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뭐 모든 리뷰가 하루 지나면 이불킥이라서요 ㅋㅋ 그제도 리뷰 북플로 수정하겠다고 건드리다 삭제했어요

수이 2015-03-24 22:39   좋아요 0 | URL
ㅋㅋ 왜 이리 공감 되죠_ 만병통치약님 :)

cyrus 2015-03-25 22:51   좋아요 0 | URL
컴퓨터 상태가 오래되면 진행 속도이 느려지고 로딩이 길어져요. 이럴 때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수정할 때 조심해야 됩니다. 지금은 이런 경우는 없는데 몇 시간동안 작성된 글을 올리다가 중간에 렉이 걸려서 저장을 하지도 못한 채 먼지처럼 날려버린 적이 많았어요. ^^;;

수이 2015-03-2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이불킥을 차는 장면은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귀엽기만 하구나~

cyrus 2015-03-25 22:53   좋아요 0 | URL
그 날 부끄러운 실수가 있으면 잠이 안 와요. 누운 상태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실수했던 상황이 제 눈앞에서 떠올려져요. ^^

돌궐 2015-03-24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이든 난관과 장애물, 방해공작, 실수 등을 딛고 이루어져야 더 완벽해진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런 실수나 어려움까지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요.ㅎㅎ
실수가 있었으면 있는 그대로 남겨두고 취소선을 표기한 다음 그 뒤에다 수정한 내용과 날짜를 새로 적어넣거나 글 말미에 보완할 내용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cyrus 2015-03-25 22:5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방법도 있군요. 돌궐님의 글을 읽을 때 맨 마지막에 날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군요. ^^

새아의서재 2015-03-2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끈 열이 올랐다 내렸다하는 갱년기에도 이불킥합니다요... ㅋㅋㅋ

cyrus 2015-03-25 22:57   좋아요 0 | URL
전기장판을 켜놓고 잠을 자는데 새벽에 너무 더워서 이불킥을 합니다. ^^

해피북 2015-03-2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물론 잘못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인정하는 부분 참좋지요 그렇지만 cyrus님의 글은 번개같이 읽은 이웃으로써 ㅋ 이불킥을 날려야할 정도는 아니였다는데에 공감버튼 꾹 누르겠어요ㅎ

폄하 비하도 아니였고 참고문헌이 없어 아쉽다던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또 1권만 구입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중요한 정보 아니였을까라는 소심한 의견 놓고 갑니다 ㅋㅡㅋ,,

cyrus 2015-03-25 23:01   좋아요 0 | URL
네,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제가 원래 실수 같은 안 좋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편입니다. 약 3일 정도는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ㅎㅎㅎ 저는 서평을 쓸 때 좋은 문장으로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책의 핵심내용이나 주제를 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편이라서 주말에 있었던 실수를 그냥 넘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오후즈음 2015-03-2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이런 태도 정말 본 받고 싶은걸요. (그래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ㅋㅋ)

회사에서 일하다가 보면 이런 경우 너무 많이보잖아요. 자신의 실수는 교묘히 가리고, 남탓하고.
내가 언제 그랬어? 이런 얼굴로 서 있고...아, 진짜 뒷목 잡을일이 어디 한두번어야 말이죠.
자기가 잘못한 일은 정말 누구 말처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회 안되는 걸까요?

cyrus 2015-03-25 23:05   좋아요 0 | URL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실수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죠. 제가 군 복무할 때도 실수를 덮고 남 탓하는 선임, 동기를 봤고, 저도 어쩔 수 없이 살고자하는 마음(?)에 잘못된 행동을 한 적도 있어요.

AgalmA 2015-03-25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불킥 심하게 하실 일은 아닌 듯 한데요. 단순한 실수이신데... 누군가 알려줘서 아, 그런 점도 있구나 알게 되면 저또한 또 배우게 되고 겸손해지려 다시 돌아보게 되고 오히려 약이 되는 듯 합니다. 인간이니 감정이야 어쩔 수 없이 상하지만요^^;

cyrus 2015-03-25 23:14   좋아요 0 | URL
주말에 있었던 실수는 감정이 상했다기보다는 너무 민망했습니다.. ㅎㅎㅎ 아갈마님을 포함한 정말 마음씨 좋고, 내공이 깊은 서재 이웃님들을 알게 된 덕분에 많은 걸 배우게 되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5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저도 참고문헌이 없다기에 앵앵거렸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ㅎㅎㅎㅎㅎ.

cyrus 2015-03-25 23:16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

stella.K 2015-03-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킥이라... 그런 용어가 있었구나.
아직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이런 행위는 있었지.
이건 잠자다가도 무의식중에 나타나기도 해.
그럼 스스로 놀라서 순간 잠에서 깨지.
그리고 무슨 일을 했지? 하다 곧 잠이 들어.
하긴 누구는 키 크는 거라고 한다만 이미 다 커버린 사람은 어쩌냐구.ㅠㅋㅋ

cyrus 2015-03-25 23:25   좋아요 0 | URL
누님은 드라마를 많이 보셔서 잘 아실 거예요. 극중 인물이 자다가 악몽을 꿀 때, 벌떡 일어나잖아요. 전 그 장면이 과장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저도 악몽을 꾼 적이 있었지만, 상체가 벌떡 일으킬 정도로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누님 말씀처럼 몸이 약간 움직이면서 잠에서 깨요. 저도 그 반응이 키 크는 꿈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sslmo 2015-03-25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책의 오탈자 잡아내는 일엔 민감하면서, 제가 쓴 글은 다시 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ㅋ~.
그 이유가 제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순간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는 식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불킥 괜찮은 방법인걸요~, cyrus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옆에 누운 사란을 향하여 화가 나는 날,
자다가 모르는척 옆자리를 향하여 킥을 날리는 것도 그럴듯 하겠는데요, 낄~!

AgalmA 2015-03-25 16:55   좋아요 0 | URL
킥킥킥...참을 수 없어서ㅋㅋㅋ

cyrus 2015-03-27 21:59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제안하신 방법은 군대에서 나를 못살게 구는 선임에게 신체적 폭행을 가할 때 쓸 때가 있어요. 제 동기가 그런 방법으로 잠꼬대하는 척하면서 한쪽 팔을 쭉 뻗어 옆에 잘 자는 선임의 얼굴을 몇 번 친 적이 있었어요. 한 번도 안 걸린 게 신기해요. 아마도 군인은 직업 특성상 체력이 소진되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

세실 2015-03-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킥ㅎ 양철나무꾼님 굿 아이디어예요^^
리뷰나 페이퍼 오픈하고 보이는 오타나 문맥은 수정해도 되겠죠? ㅎㅎ

cyrus 2015-03-27 22:03   좋아요 0 | URL
오자나 맞춤법 틀린 건 당연히 수정해야죠. 저는 댓글 내용도 맞춤법이 틀려 있으면 수정해요. ^^
 

 

 

 

 

 

 

 

 

 

 

 

 

 

 

 

 

 


박상익 교수는 《나의 서양사 편력 1》(푸른역사, 2014) 서설에서 역사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역사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교과서나 책에서 알게 된 역사는 시대를 지배했던 기득권 논리를 대변하기 위해 첨가되고, 삭제되는 과정을 거쳐서 기록되었다.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든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들을 좀 더 세밀하게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과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의 전체 지식 안에서 올바른 진실을 찾음으로써 역사의 맨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프랑스인에게 물어본다면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 작품에 대해 먼저 얘기할 것이다. 이 작품은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전쟁 때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영웅적 시민 6명의 기념상이다. 당시 영국에 포위됐을 때 시민들을 위해 밧줄에 목을 매어 처형받기로 자원한 6명의 칼레 시민들을 조각한 것이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유래를 알려면 백년전쟁(1337~1453)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은 칼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레 시민들은 수 개월간의 항전 끝에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항복했다. 당황한 칼레의 시장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한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지만, 시를 대표하는 6명이 교수형에 사용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 성문의 열쇠를 갖다 바칠 것을 명령한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이 있었다. 당시 칼레시의 가장 큰 부호였던 이와 시장 등 6명 모두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귀족들이었다.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들을 살려줬다. 임신 중이었던 왕비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6명의 시민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을 연대기 작가인 프르와사르이 기록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박상익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칼레의 시민’」이라는 제목의 글(《나의 서양사 편력》 1권에 수록)에 칼레의 시민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로 독립운동가 이회영 일가를 소개했다. 

그러나 역시 서양사를 전공한 주경철 교수는 ‘칼레의 시민’ 이야기 속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줬다. 이미 일부 역사가들은 칼레의 시민 이야기가 프르와사르에 의해 과장, 왜곡되었다고 제기했다. 프르와사르의 기록 이외에도 현재 남아있는 칼레의 사건을 증명해주는 당대 문헌들이 20여 개가 있는데 칼레 시민들의 행동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가 강한 공개적 종교 의례라고 적고 있다. 6명의 시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용감하게 나섰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프르와사르의 기록은 칼레의 시민을 외세의 힘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애국 영웅으로 만들었고, 이야기는 민족주의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신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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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2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먼저 책에 참고 문헌이 없을때의 허탈함에 깊은 공감 한표 꾹 누르구요

두 책을 비교하여 해석하시는 모습에 감탄하며 또 한표 꾹 눌러봅니다 공감만 있지말고 감탄했어요 놀라워요 같은 버튼 좀 있음 좋겠어요 알라딘~~!

cyrus 2015-03-21 11:27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참고문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2권에 있었습니다. 저는 참고문헌이 1권, 2권 따로 있는 줄 알고, 1권에 참고문헌이 없는 것을 보고 아예 참고문헌이 없다고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프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반드시 보는 것 중 하나가 참고목록`입니다. 소설은 제외하고 사회인문과학 같은 경우는 참고목록이 있어야 하잖아요. 인용문이 많다면 더더욱. 그런데 참고문헌을 전혀 기재하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전 그런 책은 아예 안 사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기본이 안 된 거죠... 물론 사회인문과학을 모두 자기 주장으로 깔았다면 대단한 실력이지만 대부분은 문헌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죠... 의심스러움..

cyrus 2015-03-21 11: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참고문헌이 있어야 분야에 관련된 책을 참고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제가 한심하게 참고문헌이 2권에 있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나의 서양사 편력>이 두 권짜리거든요. 저의 실수 때문에 좋은 책이 이상하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돌궐 2015-03-2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문헌이나 자료가 발굴되어 기존과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역사학이 발전하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해석들이 다 잘못된 것만은 아니고 그 나름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가 성실하게 조사연구를 했다는 것이 전제가 되야겠습니다.^^

cyrus 2015-03-21 11:23   좋아요 0 | URL
돌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정확한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패러다임이 생각납니다.

sslmo 2015-03-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이런 정보, 저같은 입문자에겐 큰 도움이 돼요~^^

cyrus 2015-03-21 11:18   좋아요 0 | URL
어렵지도 않고, 서양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안티고네 2015-03-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 말미에 참고 문헌 있는데요?

cyrus 2015-03-21 11: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2권에 있었군요. 1권을 다 읽고 2권 절반 가량 읽은 상태라서 2권에 참고문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부끄러운 글을 쓰고 말았군요. 잘못된 내용은 수정하겠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03-24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레의 시민`이야기를 몰랐던 저로서는, `칼레의 시민` 이야기와 `칼레의 시민` 이야기에 감춰진 이야기가 모두 다 흥미롭습니다.

cyrus님 좋은 글, 공부를 부르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3-24 18:05   좋아요 0 | URL
실수로 잘못 적은 내용이 있어서 지난 주 토요일에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을 만한 글은 아니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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