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킥’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불’과 ‘차다’라는 뜻을 가진 ‘Kick’과 합쳐진 인터넷 신조어다.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부끄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머릿속에 떠올라 이불을 차는 자탄의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주에 저지른 부끄러운 실수를 잊지 못해 주말 내내 잠을 자기 전에 이불을 걷어찼다. 《나의 서양사 편력》의 서평에 참고문헌이 없다는 내용을 쓴 것이 이불킥을 차게 만든 화근이었다. 이 책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을 완독하자마자 바로 2권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나의 서양사 편력》 서평을 썼고, 그 다음 날에 ‘칼레의 시민’을 주제로 한 잡문을 썼다. 나는 1권에 참고문헌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책 자체에 참고문헌이 없다고 단정했다. 2권 끝에 참고문헌이 있는데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책의 구성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좋은 책의 가치를 깎아내렸고, 책의 평판이 나빠질 뻔했다. 다행히 서재 이웃 두 분이 참고문헌이 있다는 사실을 댓글로 알려줬다. 잘못 적은 글을 수정했고, 책의 정보를 잘못 알린 점에 대해서 댓글을 남긴 분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내가 참고문헌이 없다고 언급한 댓글과 내 실수를 지적한 서재 이웃 두 분의 댓글은 삭제하지 않았다.

 

문제 되는 내용이 있는 댓글을 교묘하게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덮는 행위다. 내가 잘못 쓴 글이나 댓글이 비공개로 설정되지 않으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게 되면 마치 자신의 약점이 타인에게 발각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허점 하나로 인해 내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 궁지에 헤어나려면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면 된다. 블로그나 SNS의 글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끝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 센 사람들은 이를 악용한다. 타인에게 지적당한 내용을 수정하거나 깡그리 삭제한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뗀다. 자신은 그런 표현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변명하는 데 급급하다. 심지어 자신의 허점이 드러난 모든 댓글을 다 삭제하고 난 뒤에 일말의 사과도 없이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

 

안하무인 행태는 페이스북에서 늘 자주 보는 일이다. 특히 토론 거리가 될 만한 글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과 댓글 논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 수법을 방패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향하는 포탄과 같은 타인의 공격적인 문제 제기와 지적에서 살아남으려고 ‘수정/삭제’ 기능을 은근슬쩍 사용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간다. 그런데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댓글 논쟁에서 이겨본 모습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수법을 사용하면 자신을 더욱 궁지에 몰린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에 있는 글이나 댓글을 수정하면, ‘수정됨’이라는 글자와 함께 글쓴이가 수정했던 날짜와 시간이 나온다. 이는 허점이라는 혹을 떼려다가 그만 불필요한 혹 하나 더 붙이는 꼴이다. 댓글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 자신의 의견이 있는 댓글을 수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허점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허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만약에 댓글 논쟁에서 상대방이 자꾸 댓글을 수정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심리적 중압감에 흔들리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논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궁색한 주장만 중언부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잘못한 점을 순순히 시인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인 데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남긴 댓글을 삭제하고 난 뒤에 페이스북 그룹을 스스로 탈퇴하거나 대립의 날을 향했던 상대방과 마주하기 싫어서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해제한다. 자신의 실수로 보일법한 모든 증거를 제거하고 난 뒤에 도망치면서 사라지는 범죄자처럼 말이다.

 

알라딘 블로그나 북플의 수정 기능은 수정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잘못 쓴 글이나 맞춤법이 틀린 댓글을 수정해도 언제 몇 시에 수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수정을 여러 번 해도 글과 댓글이 처음으로 작성된 시간만 나와 있다. 만약에 내가 지난주 토요일에 잘못된 글이 지적한 두 사람의 댓글을 삭제하고, 수정했더라면 내 실수를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가 민망해서 상대방의 댓글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상대방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이다. 심지어 실수한 당사자를 배려해서 단 비밀 댓글을 삭제하거나 답글을 하지 않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부끄럽더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나서 상대방에게 댓글을 직접 삭제해달라고 양해를 구한다면 서로 간의 오해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를 볼 수 있다.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기분 불쾌하게 만드는 비속어가 들어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내 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한 댓글을 삭제할 생각은 없다.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놔둔다. 밤에 자기 전에 이불킥을 몇 차례 하면서 반성했다. 책을 읽고,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조금만 더 세밀하게 살피고, 신중한 마음으로 책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겸손한 자세로 책을 소개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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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 2015-03-2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실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죠. 따뜻하고 겸손하게...저도 노력하겠습니다~

cyrus 2015-03-25 2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허점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부끄러운 마음만 생겨서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병통치약 2015-03-2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뭐 모든 리뷰가 하루 지나면 이불킥이라서요 ㅋㅋ 그제도 리뷰 북플로 수정하겠다고 건드리다 삭제했어요

수이 2015-03-24 22:39   좋아요 0 | URL
ㅋㅋ 왜 이리 공감 되죠_ 만병통치약님 :)

cyrus 2015-03-25 22:51   좋아요 0 | URL
컴퓨터 상태가 오래되면 진행 속도이 느려지고 로딩이 길어져요. 이럴 때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수정할 때 조심해야 됩니다. 지금은 이런 경우는 없는데 몇 시간동안 작성된 글을 올리다가 중간에 렉이 걸려서 저장을 하지도 못한 채 먼지처럼 날려버린 적이 많았어요. ^^;;

수이 2015-03-2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이불킥을 차는 장면은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귀엽기만 하구나~

cyrus 2015-03-25 22:53   좋아요 0 | URL
그 날 부끄러운 실수가 있으면 잠이 안 와요. 누운 상태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실수했던 상황이 제 눈앞에서 떠올려져요. ^^

돌궐 2015-03-24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이든 난관과 장애물, 방해공작, 실수 등을 딛고 이루어져야 더 완벽해진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런 실수나 어려움까지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요.ㅎㅎ
실수가 있었으면 있는 그대로 남겨두고 취소선을 표기한 다음 그 뒤에다 수정한 내용과 날짜를 새로 적어넣거나 글 말미에 보완할 내용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cyrus 2015-03-25 22:56   좋아요 0 | URL
오! 그런 방법도 있군요. 돌궐님의 글을 읽을 때 맨 마지막에 날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군요. ^^

달걀부인 2015-03-2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끈 열이 올랐다 내렸다하는 갱년기에도 이불킥합니다요... ㅋㅋㅋ

cyrus 2015-03-25 22:57   좋아요 0 | URL
전기장판을 켜놓고 잠을 자는데 새벽에 너무 더워서 이불킥을 합니다. ^^

해피북 2015-03-2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물론 잘못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인정하는 부분 참좋지요 그렇지만 cyrus님의 글은 번개같이 읽은 이웃으로써 ㅋ 이불킥을 날려야할 정도는 아니였다는데에 공감버튼 꾹 누르겠어요ㅎ

폄하 비하도 아니였고 참고문헌이 없어 아쉽다던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또 1권만 구입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중요한 정보 아니였을까라는 소심한 의견 놓고 갑니다 ㅋㅡㅋ,,

cyrus 2015-03-25 23:01   좋아요 0 | URL
네,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제가 원래 실수 같은 안 좋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편입니다. 약 3일 정도는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ㅎㅎㅎ 저는 서평을 쓸 때 좋은 문장으로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책의 핵심내용이나 주제를 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편이라서 주말에 있었던 실수를 그냥 넘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오후즈음 2015-03-2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이런 태도 정말 본 받고 싶은걸요. (그래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ㅋㅋ)

회사에서 일하다가 보면 이런 경우 너무 많이보잖아요. 자신의 실수는 교묘히 가리고, 남탓하고.
내가 언제 그랬어? 이런 얼굴로 서 있고...아, 진짜 뒷목 잡을일이 어디 한두번어야 말이죠.
자기가 잘못한 일은 정말 누구 말처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회 안되는 걸까요?

cyrus 2015-03-25 23:05   좋아요 0 | URL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실수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죠. 제가 군 복무할 때도 실수를 덮고 남 탓하는 선임, 동기를 봤고, 저도 어쩔 수 없이 살고자하는 마음(?)에 잘못된 행동을 한 적도 있어요.

AgalmA 2015-03-25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불킥 심하게 하실 일은 아닌 듯 한데요. 단순한 실수이신데... 누군가 알려줘서 아, 그런 점도 있구나 알게 되면 저또한 또 배우게 되고 겸손해지려 다시 돌아보게 되고 오히려 약이 되는 듯 합니다. 인간이니 감정이야 어쩔 수 없이 상하지만요^^;

cyrus 2015-03-25 23:14   좋아요 0 | URL
주말에 있었던 실수는 감정이 상했다기보다는 너무 민망했습니다.. ㅎㅎㅎ 아갈마님을 포함한 정말 마음씨 좋고, 내공이 깊은 서재 이웃님들을 알게 된 덕분에 많은 걸 배우게 되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5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저도 참고문헌이 없다기에 앵앵거렸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ㅎㅎㅎㅎㅎ.

cyrus 2015-03-25 23:16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

stella.K 2015-03-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킥이라... 그런 용어가 있었구나.
아직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이런 행위는 있었지.
이건 잠자다가도 무의식중에 나타나기도 해.
그럼 스스로 놀라서 순간 잠에서 깨지.
그리고 무슨 일을 했지? 하다 곧 잠이 들어.
하긴 누구는 키 크는 거라고 한다만 이미 다 커버린 사람은 어쩌냐구.ㅠㅋㅋ

cyrus 2015-03-25 23:25   좋아요 0 | URL
누님은 드라마를 많이 보셔서 잘 아실 거예요. 극중 인물이 자다가 악몽을 꿀 때, 벌떡 일어나잖아요. 전 그 장면이 과장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저도 악몽을 꾼 적이 있었지만, 상체가 벌떡 일으킬 정도로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누님 말씀처럼 몸이 약간 움직이면서 잠에서 깨요. 저도 그 반응이 키 크는 꿈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양철나무꾼 2015-03-25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책의 오탈자 잡아내는 일엔 민감하면서, 제가 쓴 글은 다시 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ㅋ~.
그 이유가 제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순간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는 식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불킥 괜찮은 방법인걸요~, cyrus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옆에 누운 사란을 향하여 화가 나는 날,
자다가 모르는척 옆자리를 향하여 킥을 날리는 것도 그럴듯 하겠는데요, 낄~!

AgalmA 2015-03-25 16:55   좋아요 0 | URL
킥킥킥...참을 수 없어서ㅋㅋㅋ

cyrus 2015-03-27 21:59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제안하신 방법은 군대에서 나를 못살게 구는 선임에게 신체적 폭행을 가할 때 쓸 때가 있어요. 제 동기가 그런 방법으로 잠꼬대하는 척하면서 한쪽 팔을 쭉 뻗어 옆에 잘 자는 선임의 얼굴을 몇 번 친 적이 있었어요. 한 번도 안 걸린 게 신기해요. 아마도 군인은 직업 특성상 체력이 소진되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

세실 2015-03-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킥ㅎ 양철나무꾼님 굿 아이디어예요^^
리뷰나 페이퍼 오픈하고 보이는 오타나 문맥은 수정해도 되겠죠? ㅎㅎ

cyrus 2015-03-27 22:03   좋아요 0 | URL
오자나 맞춤법 틀린 건 당연히 수정해야죠. 저는 댓글 내용도 맞춤법이 틀려 있으면 수정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