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길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몇 달 만에 동창을 만났다. 그녀는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동창이며 친구다. 모든 지인들과 정리를 했지만 그녀만큼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의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오는 연락이 훨씬 많았던 탓에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잊을 만 하면 그녀에게서 날아오는 카톡으로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 아직 이런 친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 그녀의 부지런함에서 오는 인맥 관리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부지런 한 것은 이런 인맥 관리뿐만이 아니라 자기 관리에서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5미터전, 얼굴을 보자 나는 빵 터졌다.


면접이라도 보러 오는 사람처럼 차려 입은 그녀가 내 앞에 섰다.



​"나 만나고 어디 가냐?"

"어딜가, 요즘 체력이 떨어지니 약속 하나 있음 바로 집으로 간다."

"그런데, 왜? 이런 차림이지? 너를 보니 내가 뭔가 잘못 한 느낌이랄까"


​면접보다는 맞선이 맞을 것 같은 차림으로 온 친구에게 미안한 차림으로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헤어졌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친구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늘 한결같이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지, 집 앞 마트에 갈 때도 이렇게 나간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지 물었다. 친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 있잖아. 이런 경험 딱 한번 뿐이긴 했어. 주말에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가벼운 화장하고 살았던 내가 그날은 정말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거지. 둘째가 좀 느려. 걔는 뭐든 느려. 지 아빠 닮아서. 정말 속이 터져. 그날도 그랬어. 둘째가 그날은 더 늦는 거야. 밥도 한 숟가락을 10분 먹더라고. 애를 거의 보쌈 하듯 데리고 나왔어. 나는 하필 그날 아무것도 쳐 바르지도 못한 거야. 그렇게 나와서 애들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한시름 놓고 나를 보는데 슬리퍼도 짝짝이로 신고 나왔더라. 그런데 건너편에 어떤 남자가 나를 한 참 보기에 안경 닦으며 나도 봤어."

"누구였어?"

"너 알지, K대 다녔던 그 S말이야..."

"아, 네 첫사랑? 알지. 건너편 남자가 걔였어?

"응.... 나 그때부터 밖에 나올 때마다 매일 면접 보는 느낌으로 산다."




​어디서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늘 한결 같은 모습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런 마음보다는 20대에 만났던 그때의 사람들이 마흔을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모습이 궁금하다. 너도 나처럼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주름이 늘고, 열심히 운동해도 줄지 않는 체지방을 간직하고 있는지. 부지런해도 늘 한결 같다고 생각하는 나의 외형적인 모습은 이럴지라도 다른 부분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무엇보다 나는 길을 가다가 여태 단 한 번도 사귀었던 남자들을 다시 마주친 적이 없다. 어쩜 나와 같은 경우의 수가 현실적인 수치가 아닐까.



​그녀가 여전히 예쁜 얼굴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날씬한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존경스럽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다. 내 첫사랑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도 나처럼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집에서 뒹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매일 늘어나는 흰 머리가 신경 쓰이지만, 염색 따위 귀찮아서 하지 않고, 늘어나는 체지방이 걱정 되지만 그만큼의 인격과 인성이 단단해 지길 바라며 독서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으로도 반갑게 만나면 인사하고 싶다. 너도,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젊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속의 결말은 뭘까.





언젠가 유투브 알고리즘이 보내온 이 영상을 보고 길을 걷다가 한참을 울었다. 30년이 지난 어느 가수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백발이 된 그의 나이든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친구가 말하는 그 첫사랑을 길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기분이 이런 것일까. 뭔가 어른답게 늙어 있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위해 헬스클럽 회원 등록을 하고 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과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늙음의 나날들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늦게 읽어서 미안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5-08-2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 선정 도서라서 처음 이 책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
 
타코피의 원죄 - 하
Taizan5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전에 놀랐네. 타코피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엔딩은 어찌 되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은 정말 축하하지만 이런 책을 낸 문지에게 화가난다. 정원 노트는 한 페이지에 한줄 있는걸 보고 헐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종이 낭비라는게 이런거 아닌지. 이따위 편집본을 내지 말자.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