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Scene #1  풀과 가위의 역사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풀과 가위의 역사’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 사관에 의해서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임으로써 얼마든지 변형된 역사가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풀과 가위의 역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체들과 이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공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에서 쏟아내는 미디어 정보는 넘쳐난다. 이 가운데는 양질의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가 섞여 있다. 이런 정보홍수 가운데 ‘무엇을 읽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판단과 선택의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능력이 갖춰져 있다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집, 분류, 정리,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결과물인 바로 스크랩북이다. 개인적인 발견인지는 모르지만, 흥미 있는 사실은 ‘스크랩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크랩북에는 한 사건에 대한 역사가 시간적인 순서로 들어 있다. 물론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적절하게 조작된 내용도 있으나 한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면 정보 분석, 응용의 과정을 직접 해봄으로써 비판적 분석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풀과 가위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편찬이 아니라 사실과 해석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과거의 사실 그 자체보다는 현재의 해석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더 우위에 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는 풀과 가위로 만들어진 한 권의 스크랩북과 같다. 그런데 역사 스크랩북 제작자 유시민은 이러한 시도를 ‘위험한 현대사 읽기’라고 본다. 1959년에서 2014년까지 딱 저자 본인이 살아온 세월만 정리했다. 선택한 사실에 대한 유시민의 역사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또 현대사는 역사적·정치적 공방이 동반되는 특수한 범위이다. 여기서 역사가와 정치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공생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실제로 없는 것을 덧붙이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의미 있다고 보는 사실을 선별하여 객관적 인과관계를 밝혀, 해석할 권리가 있다.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정리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단순히 그럴싸해 보이는 평범한 기록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는 진정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료(史料)로 평가받는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풀과 가위에 의해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윤색, 혹은 탈색될 수 있어도 결국 공정한 평가로 진실이 가려져야 하는 엄숙한 일이기도 하다.

 

 

 

 

 Scene #2 <국제시장>과 《나의 한국현대사》의 공통점

 

 

 

 

 

유시민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 사실을 해석할 때 사실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게 되는 허무주의적 또는 자아도취적 결론을 경계한다. 역사에 아주 민감한 우리 사회는 극명한 해석으로 양분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윤제균 감독의<국제시장>을 둘러싼 평가다.

 

역사상 최초로 ‘쌍 천만’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다루는 시기와 유사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굵직한 사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한국현대사의 자화상’이라며 공감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박정희 정권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마항쟁, 4·19 혁명 등이 영화 속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보적 지식인과 평론가 들은 <국제시장>을 역사의식이 모자란 우파 영화로 평가해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영화에 대한 아버지 세대의 공감과 자부심이 우파가 좋아할 만한 전형적인 ‘자아도취식 역사인식’으로 빠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반응에 윤제균 감독은 영화 매체의 특성상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한국현대사》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현대사를 술회하여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정선거에서부터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을 포함한 1980년대 민주화 투쟁 등 민주화와 산업화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이슈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종국에 가서는 대북관계, 복지정책 등에서 진보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진보주의자로서의 유시민을 불편하게 여겼을 보수적 관점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현대사 읽기 또한 매우 거북하게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눈여겨볼 내용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국정원의 한국형 인민재판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책이 나온 지 5개월 뒤에 불거지게 될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의 문제점을 미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보수 진영의 파시즘적 사고를 비판한다.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유시민의 ‘제한적인 자부심’이라는 표현도 쉽게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특히 국정 역사교과서 전환을 바랐던 여당이라면 자부심 앞에 붙은 ‘제한적’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현대사, 특히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찬미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부끄러운 역사(유신체제로 인해 훼손된 민주주의의 원칙, ‘한강의 기적’에 가려진 부의 불균등 분배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를 가르치고, 알아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역사를 좌편향 일색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Scene #3  상처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념의 색안경을 벗지 못하면 역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 유시민의 한국현대사 스크랩북은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 ‘훌륭한 변화’와 ‘부끄럽고 추악한 역사’, 즉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역사를 땅따먹기 식으로 나누어 서로 대립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역사적 관용으로 대립을 봉합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포석을 놓는다. 

 

우리 현대사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탄압의 사건들로 점철됐다.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한탄했지만, 과연 ‘상처 없는 역사’가 어디 있을 것인가. 우리가 바라봐야 할 역사의 거울이 항상 자랑스럽고 멋진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만한 역사를 보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의 욕망 단계설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본 유시민의 독특한 시선을 대입하자면 한국현대사는 자기실현이라는 최고의 욕구에 도달하고 싶은 대중의 힘으로 작동되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와 전쟁으로 거의 쓰러져간 나라를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 탈바꿈시켜버리는 기적 같은 역사는 처절한 생리적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욕망이 충족되면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진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던 대한민국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역사의 거울 속에 비춰진 대한민국, 그리고 그 대한민국이 거울로 보고 싶은 그 모습은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물질적 욕망에 치우치다보니 부정부패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욕망을 충족하는 데 성공한 자들은 ‘갑’의 강자가 되어 ‘을’의 약자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답지 않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과연 미래는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의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이 우리처럼 외면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는 역사의 교훈이 주는 중요성을 부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문제는 깊게 팬 현대사의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도록 봉합하고, 진실한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부끄럽게 여길만한 시대상을 역사의 거울을 통해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이 거대한 작업으로서의 화해가 반성과 기억임을 유시민은 현대사 스크랩북을 통해 보여주었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무의미하고 거기서 얻을 교훈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며, 반성 없는 통합은 미래를 위한 화합의 전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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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1-18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사람 너무 좋아서 이책을 읽지 않고 있어요 ^^ 말이 안되나요?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고 내가 다 공감할 내용이라서요. 조만간 읽으려나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통치약님의 말씀 이해합니다. 유시민씨의 팬이군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천천히 읽거나 좀 나중에 읽는 편입니다. 저자의 글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싶은 마음으로 읽는다고 해야 될까요? ^^

봄밤 2015-01-18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님의 풀과 가위가 이 책과 <국제 시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마름하신 것 같아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해피북 2015-01-1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저두 이 책을 앞두고있는데 선뜻 읽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어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이 옳지않음을 느낄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컸답니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읽기위해 조금더 느껴보기 위해 용기내보자고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 잘 읽고 갑니다 꿀밤되세요~~^^

cyrus 2015-01-19 12:43   좋아요 0 | URL
현대사를 이해할 때 기억해야 될 굵직한 사건들을 잘 소개한 책이에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

표맥(漂麥) 2015-01-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점을 참 잘 잡아 써내렸네요. 잘읽었습니다.
저에겐 아직 `판단 유보`의 영역이라 저 책 또한 `읽기 유보` ...^^

cyrus 2015-01-19 20:05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여전히 판단을 유보해야 할 신중한 역사적 사실이 몇 개 있어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좀 더 역사를 보는 눈을 넓히는 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와같다면 2015-02-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었을 때의 그 전율을 아직두 기억합니다

cyrus 2015-02-01 20:11   좋아요 0 | URL
전설의 문장. 저도 한 번 읽고 싶군요. 항소이유서가 실린 책을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무한도전-토토가’ 이후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제 '추억 콘셉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출판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알라딘 인문 MD님이 출연하는 본격 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20회는 9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과 신문 책 광고를 소개하여 독자의 추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은 없지만, 과거에 나온 책을 만나거나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책방이다. 여기에 가면 90년대뿐만 아니라 한창 밀레니엄 열풍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의 베스트셀러를 만나볼 수 있다. 책방에 가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 있을 뿐이지 책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이 책들은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늘 상위권에 있었고,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면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가수인 것이다. 그렇지만 자고 나면 상큼한 신인들이 나올수록 영원할 것 같은 인기는 점점 떨어지게 되고, 대중들에게 잊힌 한물간 가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다. 한 권의 책이 스테디셀러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기는 쉽지 않다. 베스트셀러가 잊히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출판사의 도산이다. 출판업계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출판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게 되는데 출판사에서 나온 베스트셀러도 파산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래서 책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 나온 책이 다시 한 번 독자의 관심을 받으려면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하면 된다. 처음 나올 때 판매량이 저조한 책도 미디어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이다. 동영상 웹사이트에 공개된 어느 팬의 무대 영상 한 편이 커다란 화제가 되어 무명 아이돌 걸 그룹 가수에서 현재 각종 가요 순위 1위를 휩쓰는 인기 가수가 된 EXID를 생각하면 미디어가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괜히 ‘미디어셀러’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미디어셀러는 출판 불황이 지속되는 출판 시장에 생기를 북돋우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디어셀러 열풍이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 책의 홍보를 영화나 드라마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출판업계의 주도권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 그리고 미디어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은 양서가 소리 소문 없이 묻히게 된다.

 

그래서 온전히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로만 책을 홍보했고,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고도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쯤 되면 오랜 전통을 자랑했던 종로서적의 추억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했던 시절이다.

 

이 시절에 누구든지 책을 내고 싶으면,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할 수도 있었다. 일반인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과정이다. 지금도 가능한 일이지만, 출판사가 마냥 독자 원고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이젠 출판사가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활용하는 일반인의 글을 탐색해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도 한다.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는 대중의 반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일부 출판사에서 기존의 투고 방식을 탈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출판사 편집자가 독자의 원고를 검증한다고 해서 이 글이 독자들의 반응에 먹힐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독자의 글이 한 권의 책이 만들게 되는 과정이 출판사 입장에서는 무모한 모험이다. 일단 책으로 만들어보고 잘 팔리면 대박, 반응이 영 시원찮으면 쪽박이다.

 

 

 

 

 

 

비록 내가 책방에서 발견한 이 책은 출판사 수익 성과로 따지면 쪽박일 수 있겠으나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작가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인디라이터’ 명로진의 시집 《사랑은 두 가슴이 열려 한 가슴으로 포개지는 꿈입니다》(박우사, 1990년)은 저자가 늘 강조했던 ‘책 쓰기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첫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그가 써온 책들 중에 시집만 두 권 펴냈다. 이 책과 《내 인생은 24시간 절찬 상영중》(가원, 1996/품절)이다.

 

 

 

 

 

 

 

 

 

가벼운 판형, 단순하면서도 촌스러운 티가 팍 나는 표지 디자인과 삽화 그리고 지금 봐도 상당히 오글거리는 제목. 이 시집은 90년대 책 스타일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을 펼치면 풋풋한 대학 시절 모습의 명로진 작가의 사진이 있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작가가 대학 시절에 쓴 것들이다. ‘연인에게’라는 제목으로 총 30편으로 구성된 연작시가 이 시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랑, 그 흔한 단어로 시를 만들었고, 청춘이라면 이런 시를 읽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평소 산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최근 《마운틴 오디세이》(바다출판사, 2014)를 펴낸 심산이 시집의 발문을 썼다. 명로진과 심산, 이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명로진은 심산이 직접 설립한 시나리오 작가 학교 심산스쿨 인디라이터반 강사로 활동했다. '

 

 

 

 

 

 

시집 가장 마지막 뒤쪽에 독자에게 원고를 보내 달라는 출판사의 글이 있다. 요즘에 나오는 책에선 볼 수 없는 문구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고 신선한 글로 책을 만들고 싶은 출판사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런 열정은 작가가 되고 싶은 독자들의 꿈을 이루어지도록 인디라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명로진의 가슴 속에 전달되었다.

 

원고를 우체국으로 보내달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여기서 또 사라져버린 아날로그적 추억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길모퉁이에 우뚝 서 있는 빨간 우체통도 '추억의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문득 박우사라는 출판사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검색해본 결과, 2002년 이후로 책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진 것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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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1-18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산과 명로진 연대 불문과 동문이죠
언젠가 명로진이 글쓰기책에서 심산의 마운틴오디세이를 극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악문학 소개서 비슷한데 몹시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로진의 극찬이 허사는 아닌것 같았습니다

cyrus 2015-01-19 12:4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처음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명로진씨의 글쓰기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든요.

2015-01-19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9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플은 ‘책 읽는 사람들의 SNS 서비스’를 표방하면서 독서 기록 기능뿐만 아니라 책 읽는 사람들끼리 소통하여 친구를 맺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이다. 사실 독서 기록 기능만 제외하면 독서 취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정보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 방식은 페이스북에서 이미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공개 혹은 비공개 그룹을 설정하여 비슷한 취미나 공통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회원들을 모을 수 있다. 일종의 동호회 같은 성격의 소통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북플이 나오기 전에 나는 이미 페이스북에 독서 관련 그룹 몇 개 가입했다. 비록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유령회원이지만. 그룹 회원들이 소개하는 책이나 그밖에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 회원들이 가장 많이 올리는 글은 사거나 읽고 있는 책을 인증하는 사진이다. 또 개인의 서재를 사진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셜네트워크의 관심사 및 성향을 좀 더 확장해서 페이지로 만든 것이 바로 ‘페친의 책장’이다.

 

‘페친의 책장’ 페이지는 말 그대로 애서가들의 서재를 공개한다. 책 안 읽는 인구가 많다는 이 나라에 애서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페이지가 단순히 서재 인증사진만 올리는 그저 그런 페이지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느리게 읽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한다. 굳이 누가 가장 먼저 했는지 따지고 싶지 않지만, ‘책 읽는 사람들의 SNS 서비스’는 북플보다 ‘페친의 책장’이 먼저 했고,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 활동으로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독서 커뮤니티 공간에 가끔 애서가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댓글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리 책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공간이라고 해도 항상 조용하고, 질 좋은 댓글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댓글 하나가 격렬한 논쟁으로 불붙는 도화선이 된다. 독서 커뮤니티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논쟁거리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책 인증사진 유행과 관련된 논쟁 하나만 소개해볼까 한다.

 

어느 날,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회원이 자신의 서재를 사진으로 찍어 공개했다. 또 다른 회원들이 서재가 멋있다고 칭찬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자, 여기까지는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흔하고 평범한 풍경이다. 애서가들의 관심이 서재 사진에 쏟는 상황에 누군가가 이런 내용의 댓글을 단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은 그저 서재나 책 사진만 올리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개인적인 감상이나 그 밖의 책과 관련된 실질적인 정보를 올려야지 거의 도배하듯이 책 사진만 올리는 사람만 보면 본인의 지적 허영심을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책과 커다란 책장이 있다고 해서 본인이 잘사는 거 자랑하는 거냐? 보기 불편하다.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진다. 반박 댓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공개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열등감을 느껴 짜증을 낸 것 같다. 아무리 사진이 불편하게 여긴다고 해도 사진을 올리지 말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에 맞으면 책 인증사진도 괜찮다. 평범한 책 사진일 뿐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

 

책 인증사진을 옹호하는 의견의 댓글이 많지만, 그렇다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댓글이 적은 건 아니다. 책 인증사진이 너무 많이 올리면, 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감상문 같은 글이 외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회원의 의견도 있었다. 인증사진도 적당한 선에서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책 인증사진을 둘러싼 논쟁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커뮤니티 그룹 관리자가 계속 물고 늘어지는 댓글 논쟁을 멈추기 위해 중재하러 나서기 시작하면 수백 개가 넘는 수의 댓글과 답글이 다닥다닥 남긴 채 그룹 분위기는 원래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런 광경은 페이스북 그룹에서만 볼 수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북플도 예외가 아니다. 북플은 페이스북과 유사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를 맺을 수 있고, 내가 서평이나 책 사진을 올리면 그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  

 

북플에 책 사진을 올리는 이웃분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본인이 생각지도 않은 댓글이 달릴 수 있다. 누군가가 책 사진 달랑 올리는 당신의 행동이 너무 성의 없이 느껴지고, 본인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많이 사는 소비습관을 굳이 경제력 수준과 연관되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돈이 좀 많은 사람이 책을 많이 사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은 엄청나게 사들인 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나, 이 정도로 잘산다’라고 뽐내는 것일까. 모든 이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 많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를 버린다면 평범한 책 사진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진짜 책 좋아하는 사람은 먹고살기 힘들어도 어떻게든 책은 꼭 사게 되어 있다. 왜냐고?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아하니까. 시끄러운 세상 속에 책 읽는 시간이 있으면 피로감이 싹 가시고,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책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책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사람은 있는 적은 돈이라도 아껴서 책을 산다. 정작 책을 살 수 없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아니면, 책방에 가서 저렴하게 책을 산다.

 

나는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을 귀찮아서 잘 하지 않는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인증사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사거나 읽은 책에 대해 간단한 감상이 곁들였다면 이 또한 구매자들에게 귀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출판사에게는 독자의 구입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사진을 통해서 내가 사고 싶은 책의 실물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 서재를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디자인이 멋진 책장을 찍은 남의 사진을 보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러울 뿐이지 저런 멋진 책장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나 자신을 절대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 열등감이 생긴다. ‘아, 나는 저 정도로 책과 책장을 사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구나.’ 하면서 말이다.

 

혹시 책 인증사진을 보고 이런 열등감도 생길 수도 있겠다. ‘나도 저 책 사고 싶은데 저 사람은 샀구나. 부럽다.’ 열등감은 소유욕이 강할수록 커진다. 여기서 비관적인 생각이 나온다. 저 책을 사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제발 과감하게 버렸으면 좋겠다. 대체로 애서가라면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 편이다. 내가 그런 성향이다. 그렇지만, 책 읽고 즐기는 모습을 잊어선 안 된다. 책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내가 사지 못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도 내 이웃의 책 인증사진 때문에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서평을 써라.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는 모습을 남들 앞에 떳떳하게 보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서평도 자신의 독서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직접 구매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수 있고,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도 서평을 쓸 수도 있다. 정말 남들이 올리는 책 인증사진에 열등감이 느껴진다면 왜 서평을 쓰는 독자 앞에서는 가만히 있는가. 그들도 글로써 자신의 독서를 인증한다. 책 인증 사진을 올리는 사람에게만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책 인증 사진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책 많이 산다고 해서 경제력이 좋다고 함부로 재단하는 건 결코 좋지 않다. 그것은 본인의 정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된다.

 

뜬금없지만 나는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몇몇 이웃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쪽 분야에 치우친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 가지 않더라도 책 실물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이웃의 책 인증사진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이상하게 나는 남의 집에 가면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 가장 먼저 서재가 있는지 늘 확인한다. 이런 습관 때문에 나는 책 인증사진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니까, 서재 이웃님들. 앞으로도 책 인증사진 많이 올려주시길. 내가 ‘좋아요’ 꼭 눌러 주리라. 인증사진에 내가 마음속에 찜을 해둔 책이 있다거나 예전에 읽은 책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 주리라. 댓글로나마 소소하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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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1-16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그러니까 책장 인증샷이나 책 인증샷 따위랑 경제력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1인입니다여~@@
전 몇번 책장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한번도 디스당한적 없고, ㅋ~.
저희집 책장은 럭셔리한 오동나무도 호두나무도 아닌 집성목이라 불리우는 MDF박스라서 있어보이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전 돈을 잘 안 쓰는 구두쇠, 짠순이인데...
제가 쓰는 돈의 90프로는 알라딘 상품권을 구입하는데 쓰입니다.
고로 책을 많이 가진거랑 경제력이랑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거죠. 럭셔리한 책상이나 책장이라면 또 모를까여, ㅋ~.

cyrus 2015-01-17 14: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신간도서는 적립금으로, 책방이나 중고서점은 식비를 되도록 안 써서 공돈으로 모아서 사는 편입니다. ^^

이웃집홍홍 2015-01-16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제 이웃의 글에 경제력 운운하는 덧글 보고 이해할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편중된 시각을 가진 분들이 꽤 있다는 건 알지만 책을 읽다보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확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요, 그렇지 않은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속이 좀 시원해지네요 잘읽었습니다~

cyrus 2015-01-17 14:0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온라인 공간에 댓글로 발언을 할 때 신중해야하죠. ^^

소금창고 2015-01-16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인증사진 보면 사보고싶고 부럽던데요
고급스런 서재는 아니어도 책 꽂혀있는 서가를 보면 신선한 공기가 마구 뿜어져나오는 숲속 키큰 나무들 미끈한 다리같아서 가슴 두근거리고 내방이 아님에도 저곳에 커피한잔들고 한시간만이라도 책찾으며 길을 잃어보고싶기도해요

몇일전 백석시를 읽다가 너무 행복하고 눈물나서 친구들 단톡방에 필사한 <박씨봉방 >노트를 올렸더니
소녀감성이네 아직도 여고생이네 문학소녀처럼 살아서 남편이 좋아하겠네
하는 소리듣고 완전 기분을 잡쳤어요
이해받지못할 그룹과는 책얘긴 안하겠다
이런 원칙이 생기더라고요

cyrus 2015-01-17 14:10   좋아요 1 | URL
대형서점이나 책방 서점만 보면 저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항상 보고 싶은 짝사랑하는 여인을 보게 되는 것처럼요.

친구 분들이 소금님의 늘 변함없는 감수성이 부럽거나 시기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필사한 글을 알라딘 서재에 공개해주세요. 저는 백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

만병통치약 2015-01-16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것도 사실이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많아요 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5-01-17 14: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렇고 모든 사람은 어떤 것을 소유했으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리가 있으니까. ^^

수이 2015-01-16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내가 잠깐 북플에 게을리한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겝니까?!

cyrus 2015-01-17 14:11   좋아요 0 | URL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ㅎㅎㅎ

돌궐 2015-01-16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이웃의 서재라고 하셔서 전 알라딘 서재 말씀하시는줄 알았어요.
전 책이 많지 않아서 책으로 가득한 서재가 부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건 차곡차곡 좋은 리뷰와 페이퍼를 쌓아둔 알라딘 서재입니다.

cyrus 2015-01-17 14:18   좋아요 1 | URL
저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책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타인의 서재를 보면 부럽고, 저런 서재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렇다고 소유욕이 너무 지나치면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그래서 도서관을 주로 애용합니다. 리뷰와 페이퍼는 그 날 읽은 책들에 대한 내용이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편인데 글의 양식이나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비로그인 2015-01-1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은 것 보면 예전에는 부러웠는데 저 또한 많이 소유하다보니 그닥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읽어보고 싶은 책을 읽어볼 수 있으면 그것에 감사할 뿐이죠/

cyrus 2015-01-17 14: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을 사서 읽든, 도서관에서 빌려 읽든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사는 게 피곤해도 책 읽는 시간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해피북 2015-01-17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찌찌뽕~해야겠어요ㅋ 요즘 비블리아라는 책관련 잡지 보는데 오늘 딱 페이스북에 페친의 책장 이야기를 다뤄서 흥미롭게 읽었거든요 페이스북은 이런 재미난일도 하는구나 싶어 부러웠는데ㅋ 리뷰도 좋고 페이퍼도 좋지만 자신이 소유한 책을 꺼내보이면서 약간의 용기를 보여주시는거구 이웃간에 이야기 주제가 생겨나고 관심이생겨나고 또 실제 책의 모습도 볼수있어서 좋다는데 큰 공감합니다 저는 일부로시간 날때 지식인의 서재에 들어가서 어떤 책들이 있나 살펴보곤하죠 말로 소개 못한 책들 발견할때의 기쁨이란!

cyrus 2015-01-17 14:23   좋아요 0 | URL
페이스북에 `페친의 책장` 페이지에 한 번 보면 정말 흥미롭습니다. 책 안 읽는다는 대한민국에 애서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책장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어! 저런 책이 있었네.˝하면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거나 나랑 같은 책을 가진 애서가들을 보면 친밀감이 느껴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7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의 집 가면 제일 먼저 보는 게 책장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장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이런 사진 올리면 탱큐라고 생각합니다..ㅋㅋ

cyrus 2015-01-17 14:24   좋아요 0 | URL
저는 곰발님의 서재가 무척 궁금한데요. 서재 사진을 공개하신다면 저야말로 때땡규죠. ㅎㅎㅎ

보물선 2015-01-1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친의 책장 좋아요!

cyrus 2015-01-17 14:2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나 북플에 활동하시는 이웃분들도 가끔 서재를 공개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인데 알리딘은 왜 이런 쪽으로 이벤트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알라딘에서 알라디너 서재 사진을 공개하는 이벤트를 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stella.K 2015-01-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가 유독 많이 달려서 뭔가 유심히 읽었다.
과연 너다운 글이란 생각이 든다.
거참 웃기는 심리네. 책은 부러움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열등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이게 예전엔 없었던 인간의 새로운 심리일까? 소셜네트워크가 만든 ...?
어쩌면 자신의 지적 열등감을 그렇게 표출한지도 모르겠네. 사진을 찍어 올린 사람은 그런 식으로 지적 우월감을 표시하고 싶은 거였겠고. 하지만 싸울 것 까지는 없었을 텐데 말야.
나도 멋진 서재는 고사하고 멋진 책장있으면 원이 없겠다.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고 내 책들은 거의 대부분 옆으로 누워 방치되어 있다. 그래도 좋던데...
그런데 이젠 나누거나 팔 때라고 생각해.
무조건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책만 가지고 있고 덜어 내는 것 나에겐 이게 필요하다.
남의 집 가서 그 집 주인이 어떤 책을 읽나 보는 건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같은 심린 것 같다.ㅎㅎ

cyrus 2015-01-17 14:35   좋아요 0 | URL
SNS가 사소한 것도 남들에게 공개하는 자신만의 쇼윈도 같은 곳이죠. 책 인증사진도 지적 우월감을 보여주려는 심리의 행동으로 볼 수도 있어요. 건전한 의도라면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그런데 너무 지나치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나오는, 남의 인생 일부를 도용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번은 어떤 독서 커뮤니티 회원이 정말 멋진 자신의 서재를 공개했어요. 집안 내부도 상당히 크고, 디자인이 뛰어나서 마치 유럽이나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저택의 서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퍼온 사진이었어요. 책 인증사진도 지적 우월감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올리면 이런 부작용이 있어요.

저도 책장이 필요해요. 디자인도 좋지만, 일단 이제 책 꽂을 공간이 없어서 크기 상관없이 책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방이 크지 않아서 일단 되는대로 책을 보관하고 있어요. ^^

보물선 2015-01-17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말잘듣는 물선씨^^
청소를 해도 더 이상이 안되는 제 서재를 감히 올려봤습니다^^

yamoo 2015-01-18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사이러스님^^
근데, 저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책을 많이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 많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를 버린다면 평범한 책 사진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 라고 하셨는데요..

서재 사신을 올리거나 읽고 있는 책 인증 샷을 올리는 건 아마도 상대적인 주관이 많이 좌우되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없이...그냥 자기 취향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 하는 일상을 담는 거라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책을 사고 서재 사진을 올리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자랑질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은 시간이 있다는 건 그만틈 삶의 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책을 많이 사고 책이 많아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나요? 네...책을 꽃을 공간이 필요하지요. 5천권 만권...이런 장서가들이나 소설가 똔느 유명 작가들의 서재를 보면 서재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렇습니다. 윤택한 삶입니다. 그 서재를 꾸민 디자인이 좋을 수록 쉽게 말해서 뽀대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걸 자랑질 하는 걸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는 사람들...업무 때문에 계속 야근하여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은 그런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사람 성향마다 다르지만 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 하고 책을 많이 사고 자신의 서재를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소위 잘 사는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자본이 있다는 걸 알려주거든요~ 책을 사 모은다는 그 끝을 생각해 보시면 반드시 자본과 연결됩니다..

그냥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글에서 너무 단정적으로 표현하신 거 같아 제 생각을 몇 자 적어 봤습니다~^^;;

cyrus 2015-01-18 14: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을 많이 사게 되면 큰 책장 하나 마련해야 되고, 그러려면 집도 넓어야 하고... 책을 사는 행위가 자본과 밀접한 관계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책 인증사진도 너무 지나치면 지적 허영심을 보여주기 위한 시간 낭비일 수도 있고요.

예전에 독서 커뮤니티 그룹에 어떤 회원이 자신의 개인 서재라고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정말 멋졌어요. 외국에 있을법한 훌륭한 서재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퍼온 사진으로 발각되고 말았어요. 그 회원은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탈퇴하고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행동이 거짓으로 밝혀지니까 도망친 거죠. 과도한 인증사진 유행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타인의 인증사진에 대해 열등감을 또 다른 타인의 일상 일부를 자신인 것 마냥 도용해서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서재 사진을 올리면서 내가 이런 책을 읽을 정도로 똑똑하고, 경제적 형편이 좋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래서 야무님의 의견을 수렴한다면 책 인증사진은 적당한 선에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정보도 곁들인다면 또 다른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2015-02-11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1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괴된 사나이 - 새번역판 그리폰 북스 6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연애를 하려면 ‘썸’ 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다. 연애에 감을 잡지 못하는 모태솔로는 썸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해 한탄으로 끝이 난다. 상대방의 마음을 뜨겁게 불 지를 수 있는 사랑의 불꽃이 일어나기는커녕 당사자는 상대방 마음을 몰라 애만 태운다. 만남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내민 손을 잡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통해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흔한 우리네 사랑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점차 사랑을 느끼는 단계를 밟는다. 하지만 썸은 이러한 단계보다도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 감정에 머문다. 썸을 탈 때 밀당의 기술은 필수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에게 카톡으로 밀당을 한다. 본인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만, 카톡을 받는 즉시 응답하면 괜히 내 마음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바로바로 카톡에 답하지 않는다. ‘난 쉬운 여자가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좋으면 네 진심을 더 보여줘’라는 기대 심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가 너무 길어지면 남녀 간 마음의 거리를 좁혀나가기가 쉽지 않다. 두세 달을 만나도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맴돌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사랑’이란 감정에 기초해야 하는 연애를 기술로만 접근해 습득하려는 성향이 많아졌다. 호감 있는 상대 이성의 SNS나 카톡 같은 메신저 내용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 이성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해야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별 뜻은 없는데 상대 이상의 카톡 상태 한 줄 때문에 스마트폰만 바라보면서 전전긍긍한다.

 

연애하는 데 있어서 문자나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중요해졌다. ‘사랑해’라는 말도 문자로 전할 수 있다. 그런데 관계가 아닌 감정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썸이 우리네 사랑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말로 하지 않아도 남자가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말 안 해도 내 맘 알지?’ 남녀가 사귈 때 여자들이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풀이한 ‘여자어 사전’이라는 것도 있다. 남자가 이런 말을 눈곱만큼 알아채지 못하면 여성은 토라진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사소한 오해가 갈등의 씨앗을 낳는다.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을 향한 남자의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원한다면 독심사를 만나시든가.

 

혹시 여전히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진심을 이해해주는 남자야말로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 여자가 있다면 앨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에 나오는 1급 에스퍼(Esper) 링컨 파웰을 소개해주고 싶다. 텔레파시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말을 안 해도 마음만으로 대화할 수 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지만 훤칠한 키에 직업이 경찰 국장이다. 그런데 만남 조건이 있다. 이런 남자를 만나려면 당신도 에스퍼 자격이 있어야 한다. 아무나 에스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에스퍼는 총 세 개의 급으로 분류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1급 에스퍼가 되면 깊숙한 무의식의 심층까지 들어가 알아볼 수 있다. 1급 에스퍼 수가 많지 않다. 제일 낮은 에스퍼가 3급이다. 사람의 의식만 읽는 수준으로 한정되어 있다. 파웰은 3급 에스퍼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3급 에스퍼라고 해도 폭풍 같은 속도로 텔레파시로 대화를 주고받는 에스퍼 수다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또 그의 약점도 이해해줘야 한다.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앨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는 SF 장르로서 첫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 동안 뛰어난 SF 작품을 선정하는 휴고 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쟁쟁한 선배 작가 후보에 있었던 아서 C. 클라크를 제친 영광스러운 1회 수상작이다. 영화 <인셉션>이 꿈을 침입하여 마음을 조종하는 미래를 선보였다면, 이보다 먼저 베스터가 창조한 미래에 마음을 읽는 능력을 넘어서서 무의식까지 꿰뚫을 수 있는 전문 독심사 에스퍼가 활동하고 있다. 언어 대 언어가 아닌 마음 대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미래. 상대방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는 독심사가 되면 이제 썸을 탈 필요가 없다. 상대가 말을 안 해도 네 목소리가 들리니까.

 

그러나 베스터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다. 독심사가 사는 세상은 음모와 범죄가 난무하며 파괴의 종말을 향해 폭주하는 시대이다. 여기에 탐욕 덩어리 마너크 그룹의 벤 라이히 회장이 범죄 계획을 꾸미면서 파괴로 치닫는 어둠의 하모니는 시작된다. 자신의 합병 제안을 거절한 드코트니를 암살하기 위해 1급 에스퍼 오거스터스 테이트를 끌어들여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악마 같은 라이히가 독심사 테이트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독심사 세계에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링컨 파웰이 나선다. 파웰은 라이히가 실질적으로 범죄를 일으킨 사실을 확증하는 결정적 단서를 찾기 위해 드코트니 암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자 드코트니의 딸인 바버라의 무의식에 침투한다. 암살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파웰과 그의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라이히 간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악의 에너지를 과다하게 표출하는 라이히가 파멸의 수렴으로 향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흡입력 높은 베스터의 문체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베스터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파멸의 징조를 예고하는 폭발음 팡파레가 멈추고, 현실과 환상이 마구 뒤섞인 의식 터널에 빠져나오면서 영화 같은 소설은 끝이 난다. 임무를 완수한 파웰은 에스퍼가 아닌 인간 독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에스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기세요. 인간의 외면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에도 감사하십시오. 인간의 수많은 격정, 증오, 질투, 악의, 병폐를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고맙게 여기세요...... 인간의 무시무시한 진실을 보는 일이 흔치 않다는 사실에 감사하고요. 모두가 독심사이고 전부 균형 잡힌 심리를 갖고 있다면, 아마 세상은 훌륭한 곳이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눈멀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세요." (《파괴된 사나이》 중에서, 377쪽)

 

 

파웰은 자신의 천직이 굉장하면서도 끔찍스럽다고 말한다. 그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의식 터널에서 본 것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응고되어 남아있는 인간의 또 다른 이면, 바로 끔찍한 악의 목소리였다. 라이히는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 '얼굴 없는 사나이'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이처럼 파웰은 1급 독심사로서 자신의 무의식 안에 있는 악마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센 놈을 만났다. 정말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의 진실까지 알게 된다. 심지어 상대가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끔찍한 기억마저도 본다. 숨기고 싶은 내 의식의 치부를 누군가가 알고 있고, 자신의 의도를 무시한 채 공공연히 그걸 밖으로 드러낸다면 정신이 산산이 부서질 각오를 해야 한다. 1급 에스퍼처럼 마음을 차폐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도 내가 보고 싶은 진실만 밝혀서 볼 수 없다. 지옥 같은 세상에 더 지옥 같은 마음조차 읽는다면 정말 주옥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제발 사랑이라는 이름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거나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마라.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알면서도 눈 감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잘생기고 멋진 독심사 같은 남자가 만나고 싶은 그 꿈 좀 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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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1-14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멋진 서평입니다^^

cyrus 2015-01-15 10:5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수이 2015-01-1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들 혹은 공주님들을 기다리는 왕자님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 리뷰가 하도 멋져서 책을 읽고싶어졌어. 장바구니에 퐁당 집어넣었습니다.

cyrus 2015-01-15 19:47   좋아요 0 | URL
이 책 SF소설이라서 썸이랑 전혀 상관 없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내용 분위기가 마초적이거든요... 일단 옆지기 형님부터 먼저 읽어보라고 권해보세요.. ^^;;

해피북 2015-01-1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반성했어요 ㅋ드라마 너에 목소리가 들려정도라면 했다가 홀딱 깼어요ㅋ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는데 길을 걷다가 누군가 정말로 내 생각을 읽으면 어쩌지 와 같은 ㅎ

cyrus 2015-01-16 10:59   좋아요 0 | URL
생각만해도 무서워요.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속으로 욕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독심사였다면... ^^;;
 

 

 

 

 

 

 

 

 

 

 

 

 

 

 

 

 

 

 

요즘 카렐 차페크의 작품을 읽는 중이라서 《카렐 차페크 평전》(행복한책읽기, 2014)도 겸해 읽었다. 제목만 봐도 그저 차페크의 생애에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평범한 평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읽어 보면, 차페크의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이 많다. 평전이라기보다는 작품 개론서에 가깝다. 차페크의 작품 중에 인상 깊게 읽은 것이 희곡 《곤충 극장》(열린책들, 2012)인데 깊이 파고든 작품 해설을 참고하는 데 있어서 《카렐 차페크 평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카렐 차페크 평전》에서 《곤충 극장》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문장을 발견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희곡의 클라이맥스는 변화를 보여준다. 벌목꾼은 방랑자의 주검을 발견하고는 "죽은 자여, 불쌍한 늙은이야. 적어도 일생의 근심은 덜었군."이라며 결말을 내린다. 또 다른 희망적인 미래를 상징하는 아기를 안은 여자가 그의 임시 묘지에 꽃다발을 놓는다. 희곡의 첫 부분에서 나비채집 곤충학자가 방랑자에게 화를 내고 경멸하는 반면에 희곡의 끝에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희곡은 긍정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다. (《카렐 차페크 평전》 「곤충 극장, 풍자와 익살을 내포한 철학적 알레고리」 중에서, 190쪽)

 

여기 인용문에 굵게 표시한 문장은 《곤충 극장》의 에필로그 장면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열린책들 출판사에 나온 《곤충 극장》을 읽었을 때, 벌목꾼이 방랑자의 주검을 발견하는 장면과 아기를 안은 여자가 방랑자의 임시 묘지에 꽃다발을 놓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에필로그만 처음부터 다시 읽을 필요 없이 등장인물을 쉽게 확인하는 법이 있다. 《곤충 극장》과 같은 희곡 작품은 막이 오르기 전에 먼저 각각의 막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하루살이 세 마리, 하루살이 합창단(코러스), 민달팽이 두 마리 그리고 여행자다. 열린책들의 《곤충 극장》은 민달팽이 두 마리가 서로 대화하면서 끝이 난다. 민달팽이 두 마리는 땅바닥에 널린 하루살이들의 시체와 여행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을 달콤하다고 말하면서 지나간다. 민달팽이들은 사라지면서 《곤충 극장》의 막이 내린다. 

 

국내 초역인 《곤충 극장》은 완역이 아닌 것일까. 열린책들의 《곤충 극장》에 있는 결말대로라면 이 작품의 해석이 달라진다. 《카렐 차페크 평전》에 소개된 결말의 해석과 상반된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곤충 극장》 원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체코 어는 아예 모르겠고, 영어 독해 실력이 영 시원찮으니 찜찜한 기분으로 문제 제기만 해본다. 소소한 숙제가 생겼다. 일단 《곤충 극장》의 결말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작품과 관련된 각종 문헌들을 찾아봐야겠다. 안 되면 열린책들 출판사에 직접 문의하는 수밖에. (혹시 《곤충 극장》 원서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결말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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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1-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롱룡과의 전쟁인가? 그책 참 재밌게 읽었는데...근데 뭐 때문인지 끝까지 읽지를 못했어.
과학소설도 이렇게만 쓰면 좋겠다 싶었지.
곤충 극장이라. 왠지 변신이 생각나면서 재밌을 것 같군.
근데 결말을 잘 모르겠다니 좀 거시기 하네.
책을 향한 너의 열정은 참...!
나중에 알면 알려 줘.
평전에 관심이 많은데 개론서 같다니 좀 그러네...

cyrus 2015-01-15 19:53   좋아요 0 | URL
저도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롱뇽과의 전쟁> 읽었어요. <곤충 극장>은 한 편의 우화 같아요. 이 작품도 재미있어요. ^^

해피북 2015-01-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대해 알진 못하지만 번역서에서 생겨나는 갈증은 깊이 공감됩니다 꼭 갈증이 풀리시길~^^

cyrus 2015-01-16 11:00   좋아요 0 | URL
그냥 출판사에 직접 물어보려고 해요. ^^

잠자냥 2017-1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도 다음에 차페크 평전을 읽어 볼 생각인데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혹시 궁금증은 해결하셨습니까? 아직 미해결 상태라면 저도 평전을 읽은 뒤 한 번 해결해보도록 해야겠군요.... 체코어도 모르는데 ㅎㅎㅎ)

cyrus 2017-11-06 10:10   좋아요 1 | URL
출판사로부터 답변을 얻지 못했어요. 잠자냥님 덕분에 이 글 진짜 오랜만에 보게 되는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