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토토가’ 이후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제 '추억 콘셉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출판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알라딘 인문 MD님이 출연하는 본격 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20회는 9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과 신문 책 광고를 소개하여 독자의 추억을 되살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은 없지만, 과거에 나온 책을 만나거나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책방이다. 여기에 가면 90년대뿐만 아니라 한창 밀레니엄 열풍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의 베스트셀러를 만나볼 수 있다. 책방에 가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 있을 뿐이지 책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이 책들은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늘 상위권에 있었고,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면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가수인 것이다. 그렇지만 자고 나면 상큼한 신인들이 나올수록 영원할 것 같은 인기는 점점 떨어지게 되고, 대중들에게 잊힌 한물간 가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다. 한 권의 책이 스테디셀러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기는 쉽지 않다. 베스트셀러가 잊히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출판사의 도산이다. 출판업계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출판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게 되는데 출판사에서 나온 베스트셀러도 파산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래서 책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 나온 책이 다시 한 번 독자의 관심을 받으려면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하면 된다. 처음 나올 때 판매량이 저조한 책도 미디어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이다. 동영상 웹사이트에 공개된 어느 팬의 무대 영상 한 편이 커다란 화제가 되어 무명 아이돌 걸 그룹 가수에서 현재 각종 가요 순위 1위를 휩쓰는 인기 가수가 된 EXID를 생각하면 미디어가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괜히 ‘미디어셀러’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미디어셀러는 출판 불황이 지속되는 출판 시장에 생기를 북돋우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디어셀러 열풍이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 책의 홍보를 영화나 드라마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출판업계의 주도권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 그리고 미디어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은 양서가 소리 소문 없이 묻히게 된다.

 

그래서 온전히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로만 책을 홍보했고,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고도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쯤 되면 오랜 전통을 자랑했던 종로서적의 추억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했던 시절이다.

 

이 시절에 누구든지 책을 내고 싶으면,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할 수도 있었다. 일반인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과정이다. 지금도 가능한 일이지만, 출판사가 마냥 독자 원고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이젠 출판사가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활용하는 일반인의 글을 탐색해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도 한다.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는 대중의 반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일부 출판사에서 기존의 투고 방식을 탈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출판사 편집자가 독자의 원고를 검증한다고 해서 이 글이 독자들의 반응에 먹힐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독자의 글이 한 권의 책이 만들게 되는 과정이 출판사 입장에서는 무모한 모험이다. 일단 책으로 만들어보고 잘 팔리면 대박, 반응이 영 시원찮으면 쪽박이다.

 

 

 

 

 

 

비록 내가 책방에서 발견한 이 책은 출판사 수익 성과로 따지면 쪽박일 수 있겠으나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작가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인디라이터’ 명로진의 시집 《사랑은 두 가슴이 열려 한 가슴으로 포개지는 꿈입니다》(박우사, 1990년)은 저자가 늘 강조했던 ‘책 쓰기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첫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그가 써온 책들 중에 시집만 두 권 펴냈다. 이 책과 《내 인생은 24시간 절찬 상영중》(가원, 1996/품절)이다.

 

 

 

 

 

 

 

 

 

가벼운 판형, 단순하면서도 촌스러운 티가 팍 나는 표지 디자인과 삽화 그리고 지금 봐도 상당히 오글거리는 제목. 이 시집은 90년대 책 스타일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을 펼치면 풋풋한 대학 시절 모습의 명로진 작가의 사진이 있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작가가 대학 시절에 쓴 것들이다. ‘연인에게’라는 제목으로 총 30편으로 구성된 연작시가 이 시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랑, 그 흔한 단어로 시를 만들었고, 청춘이라면 이런 시를 읽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평소 산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최근 《마운틴 오디세이》(바다출판사, 2014)를 펴낸 심산이 시집의 발문을 썼다. 명로진과 심산, 이 두 사람의 인연은 깊다. 명로진은 심산이 직접 설립한 시나리오 작가 학교 심산스쿨 인디라이터반 강사로 활동했다. '

 

 

 

 

 

 

시집 가장 마지막 뒤쪽에 독자에게 원고를 보내 달라는 출판사의 글이 있다. 요즘에 나오는 책에선 볼 수 없는 문구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고 신선한 글로 책을 만들고 싶은 출판사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런 열정은 작가가 되고 싶은 독자들의 꿈을 이루어지도록 인디라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명로진의 가슴 속에 전달되었다.

 

원고를 우체국으로 보내달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여기서 또 사라져버린 아날로그적 추억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길모퉁이에 우뚝 서 있는 빨간 우체통도 '추억의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문득 박우사라는 출판사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검색해본 결과, 2002년 이후로 책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진 것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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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1-18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산과 명로진 연대 불문과 동문이죠
언젠가 명로진이 글쓰기책에서 심산의 마운틴오디세이를 극찬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악문학 소개서 비슷한데 몹시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로진의 극찬이 허사는 아닌것 같았습니다

cyrus 2015-01-19 12:4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처음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명로진씨의 글쓰기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든요.

2015-01-19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9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