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헌책방은 애매한 단어다. '헌책'이라는 게 어디 있나. 그냥 책이다. '오래된 책방'이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 오래된 책방은 정말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책을 팔고 있는 집이다. 그 집에 쌓여있는 책들은 책이 아니고 문화며 역사다. 70년대에 나온 책에는 경제개발 시대의 새까만 먼지가 묻어있다. 80년대 전공서적을 들여다보면 콧구멍 속이 매캐해진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건 묘한 전율이 있다. 어떤 책을 사겠다고 작정하고 찾아 나서는 경우는 대개 드물다. 오히려 책이 찾아온다는 게 맞다. 오늘은 어떤 책이 있을지 막연한 호기심으로 기웃거린다.

 

저자나 지인이 면지에 사인을 남긴 책, 행간마다 꾹꾹 눌러 그은 밑줄로 굵은 볼펜 심 자국이 선명한 책, 여러 번 넘겨 읽은 증거인양 곳곳에 찢어진 흔적이 있는 책. 고서쯤 되면 가치도 평가받지만 사람 손길을 많이 거친 헌책은 그저 버려도 되는 책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책과 맺은 인연이 이렇듯 하찮다. 그깟 책쯤이야 버린다 한들 무슨 대수랴,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책이 그렇게 버려져야 할 존재인가. 책이라는 게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가.

 

오래된 책을 만나는 또 하나의 묘미는 누군가의 흔적 속에서 나의 어떤 기억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전 책 주인의 심중이 드러난 한 줄의 메모는 그 책의 고고학적 연대기이자 숨결이다. 책 안에 들어있는 비밀스러운 사연들은 선택한 이가 받는 덤이다. 커버를 넘기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글이 적혀 있다. ‘보고 싶은, ○○에게로 시작하는 문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편지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책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가 직접 사인까지 해준 책도 책방에 발견된다. 책을 준 저자, 그 저자의 친필 사인 본을 받은 사람 모두 유명하면 책의 가치가 높아진다.

 

자신의 물건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건 자연스럽다. 책의 경우 보통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적거나, 간단한 단상을 적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책 속의 흔적들은 자신이 간직하는 책에 그 소유를 밝히기 위해 찍는 도장과 같다. 동양에서는 책의 소장자가 자기의 소유임을 알리기 위해 장서인을 찍는다. 우리나라 애서가들은 책에 있는 전 주인의 장서인을 따로 도려낸다. 장서인이 잘려나간 종이 부분이 흉물스러운 상처처럼 남는다. 그러면 거기에 종이를 덧대어 붙인 뒤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는다. 반대로 중국 애서가들은 전 주인의 장서인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장서인이 많이 찍혀있는 책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도장이 많이 찍힌 종이가 지저분하게 보여도, 책값은 올라간다. 유명인의 장서인이 하나라도 있으면 책값이 더 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인의 흔적이 있는 책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나는 책방에 가면 전 주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책을 산다. 지저분하게 보이는 남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장서가인 최석정의 말씀처럼 책을 모을 힘이 있어서 책이 내게 모인 것이다. 책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때를 밀려고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를 박박 문지르면 피부 살갗이 벗겨지듯이 종이의 때를 억지로 없애면 책 상태가 더 나빠진다. 헌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을 선뜻 사지 않는다. 당연히 새 책이 좋다. 누구나 깨끗한 상태의 책을 읽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읽을 맛이 난다. 연필 자국으로 덮인 활자가 눈에 거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주인의 친필 메모에 공부에 대한 주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활자가 적힌 책이어도 그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의 눈에는 타블라 라사(Tabla rassa)일 뿐이다. 진정한 애서가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책의 여백에 기록해둔다.

 

 

 

 

 

 

내가 책방에 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 1권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 부분이 많다. 더러는 그 밑줄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고 어떤 부분은 의문을 품게 된다. 타인의 마음을 더듬는 것이 즐겁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가늠하는 것 말고 나보다 먼저 책을 읽은 독자의 마음을 느끼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다른 인생과 교감하는 즐거움이다. 알뜰살뜰 적어둔 주인의 메모는 다음 책 주인의 가슴에 식은 공부 열정의 온도를 다시 뜨겁게 해준다. 굳이 주인의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내 생각이 주인의 생각과 다르다면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면 된다. 또 다른 여백에 메모를 남기는 것이다. 메모에는 책 읽은 사람의 생각이 갇혀 있다. 이것은 서가에 꽂혀있을 때는 박제돼 있다가도 지식이 필요한 독자들을 만나면 다시 살아 숨 쉰다.

 

특별한 하늘의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책의 전 주인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측만 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이 남긴 글씨 속에 주인의 얼굴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그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책을 파고드는 모습 말이다. 책 속의 메모는 한 인간이 책에 쏟아온 열정과 떨림을 엿보게 해 준다. 애서가는 눈빛으로 책을 갉아먹는다. 책벌레가 사라졌다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책방에 가면 이름 모를 책벌레들의 흔적으로 지저분한 책들을 발견한다. 책방에 가득 쌓인 책더미 사이를 지나다니는 책벌레를 만나곤 한다. 두어(蠹魚, 책벌레)가 습기를 좋아하고, 햇볕을 싫어하는 것처럼 인간 책벌레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을 때까지 어두컴컴한 책방에 서식한다. 나는 또다시 그곳에 간다. 책을 구경한다. 메모 흔적 가득한 낡은 책을 고른다. 다시 한 번, 책 속에 내 취향이 비슷한 독자, 아니 인간 책벌레 동지의 인생을 만난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11-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이래서 글씨 연습이 필요한거 같아요. 저는 신랑이 글씨 못쓴다고 구박할 정도의 악필인데 악필속에 비친 희미한 제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ㅋㅂㅋ~~~

cyrus 2015-12-01 18:00   좋아요 0 | URL
제가 발견한 헌책의 낙서는 심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악필 수준은 아니었어요. 자세히 읽으면 글씨를 알아볼 수 있어요. 저는 책을 메모하는 데 굳이 글씨를 잘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남들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만 알아보면 됩니다. ^^

단발머리 2015-11-3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어쩜 이런 다른 생각과 이야기가 이어지는지.... 정말 신기해요^^

cyrus 2015-12-01 18:02   좋아요 0 | URL
서평 대회 적립금을 받고 싶어서 다른 분들의 글을 쭉 읽어봤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을 이미 다른 분들이 다 썼더군요. 그래서 뭐 써야할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ㅎㅎㅎ

물고기자리 2015-11-30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읽은 흔적을 많이 남기는 편이라 사진 속의 책에 어쩐지 정이 가네요^^ 읽은 책은 곳곳에 플래그를 붙이고 밑줄도 그어 놓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면 책과 비슷한 크기의 노트 모양 포스트잇에 이런저런 메모들을 해서 책 뒷장 안쪽 날개에 붙여 두어요. 어떤 책은 앞 뒷면을 모두 빼곡히 채운 여러 페이지의 노트가 생기기도 하는데, 어느 날 그 책을 다시 펼쳐볼 때면 책도 책이지만 책 속의 제 흔적들을 보며 상념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마치 저자와 제가 같이 쓴 일기장을 보는 것 같거든요ㅎ

사실 그 흔적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재독할 때인데 처음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되거나 메모의 내용이 추가되면서 책을 통해 제 자신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재독하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요ㅎ 근데 이런 책은 제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라 팔기는커녕 가까운 사람이 빌려달라고 해도 꺼려져요^^ 하지만 타인의 흔적이 남은 책은 저도 읽고 싶네요ㅎ 누군가와 같이 쓰는 일기 같을 것 같아요..

cyrus 2015-12-01 18:06   좋아요 0 | URL
책 읽고 난 뒤에 쓴 기록들을 ‘일기’로 비유하는 물고기자리님의 표현이 멋져요. 맞아요. 맨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기록하고 난 후에 좀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달라져요. 사실 저도 이런 소중한 기록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알라딘에 서평을 쓰는 것도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일기를 쓰는 행위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제가 블로그 활동 사실을 몰라요. ㅎㅎㅎ

살리미 2015-11-30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모을 힘이 있어서 책이 내게 모인것!! 너무 멋지네요^^ 책장에 써서 붙여놓고 싶어요.
가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다보면 타인의 흔적이 지나쳐서 너무 지저분한 경우도 있던데, 마구 그어놓은 밑줄이나 동글뱅이 같은 것들요 ㅎㅎ
저런 메모정도라면 전에 읽은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반가울듯 합니다^^

cyrus 2015-12-01 18:08   좋아요 0 | URL
저 문장을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책방에 좋은 책을 만날 때 그 감정을 표현한 것 같았거든요. 도서관 책의 메모는 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기 흉할 정도로 공공도서관 책에 메모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단, 약간의 밑줄은 봐줄 순 있습니다. ^^

보슬비 2015-12-0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cyrus님을 위해서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cyrus 2015-12-01 18:10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은 알라딘에서 책에 관한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일까지 기록하시는 모습이 대단해요. ^^

인디언밥 2015-12-01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라요. 그때 반 아이들이 책 한 권씩 교실에 기증하는.. 뭐 그런 식의 행사가 있었는데, 기증한 책은 학년이 올라가면 책을 다시 집으로 가져가는 식이었거든요. 어린마음에 제 책에 손때묻고 더러워지는 게 싫었는데, 그런 책은 친구들이 그만큼 많이 읽었던 책이니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책을 집에 가져갈 때 새책처럼 깨끗한게 좋은게 아니라고 하시던..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그때 기증한 책이 <유명한 이야기>였는데, `유명한`이야기 인 줄 알고 샀다가 `유 명한 씨 이야기`였는줄은 모르고...

cyrus 2015-12-01 18:13   좋아요 0 | URL
인디언밥님의 추억담을 보면서 감동과 웃음이 한 번에 느꼈습니다. ㅎㅎㅎ 정말 좋은 은사를 만나셨군요. 요즘은 새것이 더 많이 나오는 세상이라서 헌 물건을 물려 쓰는 일이 잘 없는 것 같아요.

최호영 2015-12-05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감사합니다

2016-01-21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 자크 루소는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한 번도 정규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집을 나간 루소는 남의 집 하인 노릇까지 해가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자신의 후견인 바랑 부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루소는 독서에 몰두했다. 그는 백수 생활을 하면서 편견 없이 세상을 통찰하는 눈, 독창적 사고력을 얻었을 수 있었다. 이랬던 루소가 여성의 독서를 부정적으로 봤다. 그는 여성이 한쪽 손으로 책을 읽는 이유가 마스터베이션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는 사회에 매장당하는 신세가 된다. 루소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여성이 독서를 하면 정욕에 휩싸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중세의 봉건 질서를 비판하고, 인간 이성의 가치를 신뢰했던 루소와 같은 계몽 사상가들마저도 여성의 독서를 용납하지 않았다.

 

남성들은 여성의 손에 책 한 권이 쥐어지면, 절대로 열어선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악마의 손에 들어간 것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여성들의 지적 호기심을 경계했다. 여성들이 책을 읽게 되면 가정에 대한 순종을 거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렇다 보니 남성중심 사회에서 연애소설은 여성의 감정을 교란케 하는 불건전한 책으로 오해를 받았다. 남성들은 책과 여성의 관계에 자꾸 침범했다. 여성이 책을 읽다가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힐까 봐 두려워했고, 성경이나 정숙한 여자가 되는 예절을 소개한 팸플릿을 권했다.

 

여성이 마음대로 책을 읽지 못했던 ‘남독(男讀) 강점기’ 대략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라고 보면 된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여성들은 하층민 여성보다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남성들의 텃세 때문에 제한적으로 독서를 해야만 했다. ‘남독 강점기’의 여성은 ‘책 읽는 존재’가 아닌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지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연스럽게 규정되었다. 

 

 

 

 

 

안토니 비르츠  「소설 읽는 여자」 (1853년)

 

 

 

남성들은 여성의 독서를 금지하면서도 여성과 책의 만남을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아주 노골적으로. 화가 안토니 비르츠는 소설 읽는 여자를 나체 상태로 만들었다. 이 그림을 구경하는 남자들은 누드모델의 독서 행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자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자의 몸매를 마음껏 감상할 뿐이다. 그림의 구도는 남자들의 눈이 여자의 봉긋한 가슴과 은밀한 부위가 비치는 오른쪽 거울로 향하도록 유도한다. 여자 가슴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자들은 그림 왼쪽에 악마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악마의 손은 여성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공급하는 ‘나쁜 손’이다. 남성들은 소설에 푹 빠진 여성을 부도덕한 죄인으로 경계하면서도, 자신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채워주는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남성들의 이중적인 시선은 장서표에서도 드러난다. 남성 장서가들을 위해서 여성 나체가 그려진 장서표가 유행했고, 에로틱한 장서표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가부장제가 강화되었던 동양에서도 책 읽는 여성의 존재는 미미했다. 중국의 남성 애서가들은 책을 미녀로 비유하곤 했다. 중국 명나라 사람 포송령의 소설 《요재지이》에 책 속에 튀어나온 미녀의 이야기가 있다. 낭옥주는 독서를 무척 좋아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홀아비로 지내왔다. 그는 자신이 즐겨 읽는 책속에 나오는 미녀가 자신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멋진 왕자가 나오는 동화를 읽고 나서 백마 탄 왕자가 자신에게 청혼하기를 바라는 소녀들의 순수한 마음과 유사하다. 낭옥주의 기도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되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 낭옥주는 <한서>를 읽다가 살아있는 듯한 미인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한다. 드디어 그림 속 미녀는 진짜 사람이 되어서 낭옥주 앞에 등장한다. 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안여옥’이라고 밝힌다. 낭옥주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안여옥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낭옥주는 자신의 책을 잊지 않았다. 낭옥주가 독서에 열중하면, 안여옥은 질투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함께 살고 싶으면, 책을 모두 내다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낭옥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태어난 집이나 다름없는 책을 버릴 수 없었다. 고대 중국의 시인이나 애서가들은 책의 아름다움을 미녀로 비유하면서 칭찬했지만, 책 읽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글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책에 관한 글에 등장하는 애서가들은 전부 남자다. 안여옥은 책에서 태어난 사람인데도 책을 싫어한다. 자신의 존재 근원을 부정하는 그녀의 태도가 억지스럽다. 애서가 입장에서는 안여옥이 독서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여성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동양의 남성들도 책과 여성의 만남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관계로 이해했다.

 

남성의 억압과 편견 속에서도 여성들은 자유롭게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을 마음껏 표출했다. 기존사회 관념에 도전하며, 여성의 교육적·사회적 평등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300여 편이 넘는 서평을 남긴 역사상 최초의 여류 서평가였다. 그녀는 부지런히 신간 도서들을 읽고, 비평했다. 마리 조피 르루아예 드 샹트피라는 여성은 플로베르의 문제작 《마담 보바리》를 읽은 뒤에, 소설 여주인공에 관한 자신의 감상을 직접 편지에 써서 작가에게 보냈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냈다. 그녀는 독서를 통해 대학 문턱에 가보지 못한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녀들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의 즐거움에 마음껏 탐닉했다. 독서의 역사를 논할 때, 그녀들의 활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책의 역사마저 남자들이 기록하는 이야기(History)가 되었다. 현재의 독자들은 이들이 독서 문화에 끼친 영향을 모르고 지냈다. 아직도 책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을 진심으로 좋아한 사람 중에 여성이 제일 많았다. 독서가 아픔과 슬픔과 비애를 달래주는 마음의 치유제라는 사실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여성이었다. 여성의 독서는 고귀하다. 그녀들은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려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강제된 체제, 억압된 자유, 그 속에서 여성이란 존재로서 살아야 했던 시간에 대한 처절한 복기(復棋)다.

 

 

 

 

※ 글 제목을 정하지 못해서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곰발님이 오늘 쓰신 글을 읽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Thanks to Gombal

 

※ 《여자와 책》 302쪽에 적힌 ‘E.M. 포르스터’를 ‘E.M. 포스터’로 고쳐 써야 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5-11-2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 제가 태어났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눈치 안 보고 책 읽을 수 있음에
감사드려야겠어요.
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 여자는 열등하다는 거요. 아무리 뛰어난 철학자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세계는 새롭게 밝혀져야 할 무엇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를...

cyrus 2015-11-30 17:35   좋아요 0 | URL
만약에 지금이 남자들만 책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정말 따분했을 거예요. 지적 허영심 많은 꼰대들의 말다툼이 있지 건전한 독서토론은 없었을 겁니다. ㅎㅎㅎ

표맥(漂麥) 2015-11-2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5-11-30 17: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11-2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즈 라캥에서도 책을 읽음으로써 테레즈가 도덕을 알게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 했지만요~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에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는 여자들에 대한 시선이 읽힐때는 시대상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좀 불편해집니다 ㅎㅎ
책 읽는 여자들... 위험합니다. 남자들이 부과한 의무를 안하려고 하니...
요즘도 책 읽는 여자 그리 좋아하지 않는듯 합니다 ㅎㅎ 적당히 머리빈 여자만 아니면 될 정도로만 읽기를 바라는 사람들 종종 봤습니다. ....

cyrus 2015-11-30 17:38   좋아요 0 | URL
낭옥주처럼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는 노답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 될 수 있어요. 저처럼 책 읽는 남자도 여자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또르르

stella.K 2015-11-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는 그때 그때마다 어디서 주제를 그렇게도 잘 뽑아내니?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탁월해!
루소 그 점잖게 생긴 할배가 그런 응큼한 상상을 하다니. 웃겨!ㅋㅋ
얼마 전 남자와 여자가 평등해지려면 130년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게
그냥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쩝

cyrus 2015-11-30 17:40   좋아요 0 | URL
루소의 삶에 흑역사가 많아요. 가장 유명한 인생의 오점이 자신이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놓고선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낸 일이에요.

서니데이 2015-11-30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5-11-30 20:1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미국의 심리학자 쉐드 헴스테드는 인간은 하루에 5만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주장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우리말이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로 기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IS 테러 소식, 광화문 시위, 각종 사건 사고 소식 등 많은 정보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다룬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비판적이나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끌게 된다. 비판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기는 대상이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감이 난다.

 

 

 

 

 

 

 

 

 

 

 

 

 

 

 

 

 

 

 

 

우리 사회는 긍정을 강조한다.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힘' '긍정심리학' 같은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긍정'이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같은 얘기를 하는 책들도 많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내세운 베스트셀러 《시크릿》이나 1년 열두 달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무조건 행복할 것'과 같은 여러 자기계발서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결국 "긍정하라"인 것이다. 이지성은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R=VD 공식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인생의 진리는 단순하므로 우리 스스로 상상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아직 열리지 않은 희망의 열매가 거둘 것이라고 낙관해도 좋을까. 삶의 난관들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긍정의 힘만 믿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보면서 문제의 본질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가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말의 칭찬만 더 듣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른다. 부정적인 말이 조직 내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올바른 비판 의식이 갖춰진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로 조성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향한 부정적인 비판이 자신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까봐 아예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여 오로지 칭찬만 듣고 싶어 한다.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남들의 눈에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거의 아부에 가까운 칭찬만 듣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앞에 자신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열심히 춤을 춘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열정이라고 말하지만,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는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잘했는데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나 좋은 반응이 없다면 분명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계속 칭찬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도전적 과업을 포기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중세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허무맹랑한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죽음의 무도'는 죽음 앞에서 누구나 죽게 되는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상징하는 말로 알려졌지만, 이것을 삐딱하게 보면 '칭찬'이라는 미신을 믿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남들 앞에서 열심히 춤추는척 하는 비참한 상황을 보여준다. 과도한 칭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칭찬의 무도'를 멈추지 못한다. 언제까지 주변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칭찬의 춤을 추고 있을 건가? 당신의 모습을 보라. 비판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비굴한 모습을.

 

 

어떤 질문이 당사자를 불편하게 했다면 본질에 정확했다는 이야기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408~409쪽)

 

 

칭찬을 장려한다는 이유로 '강요'를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려는 가식만 나올 뿐이다. 긍정과 부정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정적 피드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비판적 직언을 존중해야 한다. 직언을 막으면 조직이 실패할 수 있다. 노키아 경영진은 “아이폰에 버금가는 스마트폰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개발진의 건의를 무시해 급격한 경영 악화를 경험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직언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1등 악당에게는 근면 성실이 필수 덕목, 빌 게이츠, 히틀러, 무솔리니도 근면, 성실했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114~115쪽)

 

 

윗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 젊은 시절보다 노력하지 않는다', '옛날보다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는 데도 불만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근면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해주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믿고 표를 준 국회의원마저도.

 

 

똑똑한 애들은 보통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서 공략한다. 하지만 사악한 애들은 장점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좌절시킨다. 다신 못 일어나게.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221쪽)

 

 

제대로 일하지 않거나 성과가 미미한 사람일수록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고 변명을 한다. 열심히 한다는 칭찬이 능력을 향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는 방패가 된다. 정글 같은 냉혹한 현실에는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무기로 앞세워 성공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독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성실'과 '노력'이라는 방패를 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긍정과 칭찬은 우리 삶을 기분 좋게 해주는 꿀이다. 그 꿀을 맛보려면 벌의 독침 공격을 맞으면서까지 벌집에 다가서야 한다. 꿀을 지키기 위해 공격하는 벌들은 안정적인 우리 삶에 공격하는 수많은 난관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따끔거리게 하는 가벼운 쓴소리가 될 수 있고, 심하면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좌절하게 하는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포로가 된 스톡데일은 지속적 고문과 가혹한 환경을 견뎌내는 생활을 8년이나 한 끝에 극적으로 생환하였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또는 부활절에는 미군이 승리,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믿었던 많은 병사는 계속되는 실망감에 결국 상심해 죽게 된다.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맹목적인 낙관은 결국 실패로 이끌지만, 어려운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실화이다. 강요에 가까운 무조건적 긍정은 언젠가 우리의 발등을 크게 찍을 때가 있다. 긍정에도 힘이 있지만, 부정에도 중요한 힘이 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5-11-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28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칭찬의 무도` 아프게 와닿네요. 저도 누가 저를 좋게 보면,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한지는 모르겠지만...

cyrus 2015-11-28 09: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습니다.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가 부탁하는 일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어요. 뭐든지 잘 하려는 마음이 정신적 압박감으로 되어서 스트레스가 생겼어요.

saint236 2015-11-28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다 잘될거야가 너무 팽배하다보니까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더라고요. 잘 될거라는 믿음도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할 수 있는 용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헛된 꿈이지요.

cyrus 2015-11-29 19:44   좋아요 1 | URL
제가 글로 쓰고 싶은 내용을 아주 간결하게 말씀해주셨네요.

페크pek0501 2015-11-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이지성 저자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봅니다.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자는 그래서 행복해질까요?

saint236 2015-11-29 23:50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편견일지 모르지만 이지성은 뽕도 안되더라고요

yureka01 2015-11-3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죽음도 맹목적 낙관의 일종이라면...ㅎㅎㅎ그러게요.

cyrus 2015-11-30 17:43   좋아요 0 | URL
올리버 색스나 지미 카터 같은 사람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들처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의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수천 개 이상의 단어들을 기발하게 비틀어 정의했다. 가령 의사는 병으로 번창하고 건강으로 망하는 사람’, 병원은 의사의 의술과 관리자의 학대라는 두 가지 치료를 받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비어스는 책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야유를 늘어놓았다. 비어스가 새로 만든 단어사전의 제목은 <냉소주의자 단어집>. 우리나라에서는 악마의 사전으로 알려졌다.

 

바다에서 나는 굴을 비어스는 이렇게 정의했다. 문명사회에서도 내장을 빼내지 않고 그냥 통째로 먹는 미끈미끈한 조개. 그리고 이 굴 껍데기는 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덧붙여 썼다. 언뜻 봐서는 단순하게 굴의 식용 방법을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잘 읽어보면 비어스가 굴 하나로 빈곤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면서 귀한 음식재료로 대접받았다. 굴에는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아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굴 요리는 돈 많은 정력가가 많이 찾는 특별 보양식이었다. 카사노바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까지 여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굴 또한 많이 사랑했다. 굴과 관련된 상식으로 카사노바의 굴 사랑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 카사노바는 굴이 자연이 주는 합법적최음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카사노바는 신선한 굴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하루에 굴 50개는 거뜬히 먹어치웠다고 한다. (미식가이자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하루에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굴이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맞으나, 직접 성욕을 유발한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얀 스테인 굴을 먹는 소녀

 

 

굴이 연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재료로 알려지다 보니 굴 먹는 행위가 사랑의 유희를 떠올리는 음탕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의 굴을 먹는 소녀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그녀는 굴 속살을 먹으려는 중이다. 굴을 먹는 여자가 그려진 그림은 남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소재였다. 소녀가 굴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도 이제 알만큼 안다는 것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은밀한 신호다. 이제 곧 어른의 세계에 접하려는 처녀의 도발이다. 소녀의 눈빛과 마주치면 앞으로 펼쳐지게 될 야릇한 애정 행각이 떠올리게 된다.

 

뽀얀 흰 빛깔의 굴 속살이 상류층 사람들의 입안으로 들어갈 때, 버려진 굴 껍데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 굴 껍데기는 상당히 딱딱하다. 가끔 생굴을 먹다가 아주 작은 굴 껍데기 조각이 입안에서 씹힐 때가 있다. 딱딱한 것을 씹을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열심히 움직이던 입이 멈춰진다. 쌀밥을 먹다가 모래알을 씹을 때만큼이나 음식 맛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굴을 먹을 기회가 없다고 해서 딱딱한 굴 껍데기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굴을 먹는 방법을 몰라서 굴 껍데기까지 씹어 먹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굴 맛을 아는 부자들은 굴 껍데기를 먹으려는 빈자를 우습게 봤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은 굴 하나 때문에 비참한 상황으로 이르는 장면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런데 그 회상 장면이 너무 비참하고 암울하다. 화자가 아홉 살이었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가 구걸한다. 굶주린 어린 화자는 아사 직전 상태까지 갈 정도로 기력을 잃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화자는 주점 간판에 적힌 이라는 글자를 본다.

    

 

.....”

나는 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는다.

이상한 말이다! 이 땅에서 8년하고도 3개월을 살았건만 이런 낱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슨 뜻일까? 혹시 주점 주인의 성일까? 하지만 주인의 성을 쓴 간판은 보통 문 앞에 내걸지 벽에 걸지 않는다!

 

(<> 중에서, 12~13)

    

 

가난한 소년은 아빠에게 굴의 정체를 물어보고 나서야 굴이 음식재료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허기를 참고 있었던 소년은 굴이라는 단어를 듣고, 굴의 모습부터 굴이 들어간 음식들을 먹는 자신의 모습까지 상상한다. 황홀한 상상에 빠진 소년의 모습과 아버지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오는 체호프의 묘사가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연출한다. 소년의 가슴에는 굴을 먹고 싶은 열망이 솟아났다. 소년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굴을 달라고 구걸한다. 아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도 구걸에 동참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굴을 먹을 줄 아느냐고 비웃는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소년을 주점으로 데리고 와서 굴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소년 앞에 굴 음식이 차려지고, 주점 손님들은 굴을 먹으려는 소년 주위로 몰려든다. 소년은 생소한 냄새를 풍기는 굴 음식을 맛보는데, 굴 껍데기마저 씹어 먹고 만다. 주점 손님들은 우스꽝스러운 소년의 모습에 박장대소하고, 소년을 바보라고 놀려댄다.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굴 하나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체호프의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 이상한 사람이야..... 병신이라고..... 그 사람들이 굴 값으로 10루블을 내는 걸 보고도 왜 다가서서 몇 루블만.....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 빌려줬을 텐데.”

 

(<> 중에서, 16)

    

 

굴은 남자를 위한 맛 좋은 음식재료가 아니다. 원래 귀족의 힘이 컸던 시절에 굴은 지배 계급만 누릴 수 있는 값비싼 음식재료였다. 귀족 대접을 받으려면 특유의 비릿한 굴 맛과 굴을 먹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오늘날의 굴은 우리들의 밥 도둑이었지만, 과거에는 귀족들의 밥 도둑이었고, 최음제였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1-27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스타일 좋군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검토하는 방식.. ㅎㅎ. 악마의 사전도 저도 가지고 있는데 화장실에 배치했습니다. 화장실에서 톨스토이 전쟁과병화를 읽을 수는 없잖습니까. 굴 하면 말씀하셨다 시피 카사 형이죠...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11-27 22:23   좋아요 0 | URL
굴의 정의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생각났어요. 소년이 굴 껍질 먹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든요. ㅎㅎㅎ

보슬비 2015-11-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팀버튼의`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김장철이라 굴값이 많이 올라서... 빨리 김장철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0 | URL
김장배춧값도 올랐다죠? 굴이 들어있는 김치를 맛보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붉은돼지 2015-11-2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흐프 `굴`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보다는 무척 짧은 소설이었다는 기억이...ㅜㅜ
보슬비님이 말씀하신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도 생각나요...옛날에 읽은 듯 안 읽은 듯 알듯말듯....^^

cyrus 2015-11-29 19:45   좋아요 0 | URL
네.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줄거리와 주요 장면이 지금도 생각 나는 것 같아요. ^^
 

 

 

 

 

 

 

 

 

오늘 중앙일보 신문을 보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칼럼이 눈에 띄었다. 칼럼 제목은 이렇다. <‘응팔’은 왜 실패했나> ‘응팔’은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줄임말이다. 시청자들을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들었던 ‘응칠(응답하라 1997)’과 ‘응사(응답하라 1994)’를 이은 세 번째 시리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88년에 유행했던 패션, 물건, 유행어 그리고 대중가요들까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응팔’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라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드라마에 벌써 실패 운운하는 글쓴이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글쓴이는 드라마가 고증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실패의 원인을 1980년대 관련 유물 및 데이터베이스 정리가 미흡한 사회 현실에서 찾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은 시중에 구하기 힘든 과거의 소품들을 모조리 찾아내거나 복원하는 등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그 때 그 시절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1980년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80년대의 소품들이 많지 않은 데다가, 그 당시를 기억하는 세대의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한두 개씩 시대적 오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응팔’의 신원호 PD는 ‘응칠’, ‘응사’보다 고증을 준비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칼럼의 글쓴이는 ‘응팔’ 제작진의 교훈을 통해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응팔’을 시청하면서 제작진의 노력에 몇 번 감탄한 적이 있었다. 제일 찾기 힘들었을 소품을 거의 완벽하게 새것처럼 복원했기 때문이다. ‘응팔’을 챙겨 보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만약 당신이 드라마 제작진 중의 한 사람이라면 어떤 소품이 제일 찾기 힘들었을 것 같은가. 금성 텔레비전? 연탄보일러 온수통? 다이얼로 돌리는 전화기? 아니면 덕선(혜리 분)이 선우(고경표 분)에게 선물로 준 변진섭의 1집 카세트테이프?

 

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1988년에 나온 책들이 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드라마의 복고 열풍 덕분에 언론에서 8, 90년대 베스트셀러를 조명한 기사를 선보인 적 있었으나 그때 나온 책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헌책방 주인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책들의 존재감이 점점 잊힌다. 나온 지 오래된 책들은 종이가 변색하고, 찢어지기 쉽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생기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이 책도 사람처럼 늙어간다. 젊은 책들의 등장으로 인해 자리를 잃고만 늙은 책은 박스 안에 갇힌 신세가 된다. 오랫동안 책 주인의 손길을 그리워하다가 폐품처리장에서 생을 마친다. 한 번도 주인과 눈 마주쳐보지 못하고 폐지로 전락하는 늙은 책의 신세가 처량하다. 더 슬픈 사실은 주인이 책을 버린 일을 까맣게 잊고, 그 책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점이다. 책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리는 물건이다. 오래 보관하기가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다. 물, 불, 습기에 약하다. 

 

 

 

 

 

 

 

 

 

 

 

 

 

 

 

 

 

 

오늘날에는 관심 있는 책이 있으면 인터넷 서점 독자 서평, 출판사 서평을 참고할 수 있다. 서평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이해시키기 위한 객관적 정보를 담고 있다. 독자를 염두에 둔 서평도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책에 서평이 많이 달리는 횟수로 그 책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독자 서평 한 편도 없는 책은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절판된다. 요즘은 독자 서평의 반응에 따라 책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지만, 80년대에는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책이 많았다. 그때는 독자 서평이라는 개념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80년대에 나온 책들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수천 권의 책들의 정보를 구축한 인터넷 서점에 종종 80년대 출간 서적이 검색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제목과 저자명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는데도 표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80년대 책을 찾기 위해 헌책방을 헤맸던 헌책 마니아 1세대들이 존경스럽다. 그들 중 일부는 잊혀간 헌책들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운영자 윤성근의 《심야책방》(이매진, 2011)과 박균호의 《오래된 새 책》(바이북스, 2011)은 우리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책들의 그리움을 담은 소중한 기록들이다. 애서가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절판본이 재출간되는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나오는 흔한 서평 집도 다음 세대 독자들을 위한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인기를 많이 받는 서평 블로거들의 기록 또한 소중하다. 특히 추리소설 전문 서평을 많이 썼던 故 홍윤 씨(닉네임 물만두)의 활동을 잊어선 안 된다. 장르문학이 잘 안 팔리던 시절에 홍윤 씨는 다양한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다. 홍윤 씨의 기록 덕분에 과거에 출판되었던 유명 추리소설 작품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서평 집에 소개된 책들이 십 년이 지나 절판이 되어도 서평가들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평 집이 절판되더라도 그 속에 있는 기록들은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책 소품이 나오는 1초의 장면도 유심히 바라본다. ‘응팔’을 시청하면서도 책 소품이 나오는 장면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덕선이 자신이 짝사랑하는 선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4화)에서 덕선의 귀여운 표정보다는 책장에 꽂힌 책에 더 눈이 가더라. 그 장면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책등에 찍힌 책 제목을 확인할 수 있다. 《밤 열차》, 《한 아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보인다.

 

 

 

 

 

 

 

 

 

 

 

 

 

 

 

 

 

《한 아이》는 특수 교육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문제아로 특수학급에 배치돼 말썽을 일으키지만, 여교사가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아동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 아이》는 1984년에 샘터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너무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수필가 전혜린의 책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이 쓴 소설 제목이 전혜린의 수필집 제목과 같다. 이 소설은 1987년에 학원사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으로 번역되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될 《밤 열차》는 정체가 궁금한 미지의 책이다. ‘밤 열차’라는 제목이 흔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하면 1천 권이 넘는 책이 나온다. 이 많은 책들 중에 《밤 열차》를 찾기란 모래밭에 진주 한 알을 찾는 일이다. ‘응팔’에서 소품으로 나온 《밤 열차》는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책일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기라고르스. 출판 연도는 1985년. 네이버에서는 이 책을 ‘기타 나라 소설’로 분류했을 뿐 이 책의 줄거리에 대한 소개가 없다. 물론, 이 책을 짧게 언급한 서평 또한 나오지 않는다. 놀랍게도 문예출판사 공식 출판사 홈페이지에 《밤 열차》를 검색하면 ‘없는 책’으로 나온다. 하지만, 문예출판사는 분명히 이 책을 출판했다. 이듬해에 《밤 열차》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었다.

 

 

 

출판사에 일하는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어려운 일을 바라는 건 아니다. 앞으로 책 한 권을 펴낼 때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하고, 그 기록들이 오랫동안 보존했으면 좋겠다. 자사가 펴낸 책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책의 출생일을 신고하는 일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출생증명서와 비슷하다. 지금은 책을 알리는 홍보의 목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지만, 나중에 다음 세대 독자들이 참고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된다. 신간 도서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과거에 나온 책들도 소중히 여겨 꼼꼼하게 알아보는 애정도 필요하다. 출간된 책이 있는지도 모른다면, 출판사의 역사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잊힌 책도 한때 출판 노동자의 땀이 맺힌 노력의 결실이다.

 

유행을 돌고 돈다. 십 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2015년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컬러링북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되고, 한동안 잊다가 또 한 번 유행할 수 있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항상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내서 응답하기만 바랄 수 없다. 우리의 뇌와 수명은 몸으로 기억한 과거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사람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 그 기억들도 사라져버린다.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과거의 나를 불러야 할 때가 왔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1-24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1-27 14:26   좋아요 0 | URL
제가 태어나고 한 달 후에 서울 올림픽이 개막했습니다. ㅎㅎㅎ

syo 2015-11-2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든 길든,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적이지도 심지어 공시적인 것만도 아니었다는 걸, 알려면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간 몰랐을까요.
책에 대한 기록 알차게 남겨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11-27 14:30   좋아요 0 | URL
책의 줄거리는 일년만 지나도 잊어버립니다. 그럴 때 책을 다시 읽으면 되지만, 하루에 수십 권 넘는 신간도서에 관심을 쏟게 되다보니 재독하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고난 뒤에 짤막한 감상을 글로 남겨두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볼 수 있어요.

북다이제스터 2015-11-24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기사 보셨습니다. 응8년도에는 도정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과 같은 시집들이 대유행이었단 다른 기사도 보았습니다. ^^

cyrus 2015-11-27 14:32   좋아요 0 | URL
응답 시리즈 덕분에 과거 베스트셀러가 재조명된 적이 있어요. ^^

살리미 2015-11-24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중앙일보의 그 칼럼 읽고 너무 화가나서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응팔` 팬이라서요 ㅋㅋ 저는 응사나 응칠은 보지 못해서 응팔이 전작에 비해 고증에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드라마보다가 주인공들이 들고 있는 책을 눈여겨 보았는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성자가 된 청소부를 읽고 있는 걸 보면서 옛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책장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꽂혀있었던 건 몰랐네요^^
지금 cyrus님 글을 읽으니 데이터베이스 정리와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구나 이제서야 깨달아요 ㅎㅎ
그래도 응팔 덕분에 내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소품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그래도 실패라는건 너무 자극적인 제목이에요 ㅠㅠ 제가 딱 그세대라서 전 이 드라마가 너무 재밌습니다!

cyrus 2015-11-27 14:34   좋아요 0 | URL
<성자가 된 청소부>! 맞습니다. 그 책도 응팔 에피소드 장면에 잠깐 나왔습니다. 응팔 다시보기 기능이 있었으면 그 장면을 캡처할려고 했어요. ^^

AgalmA 2015-11-2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그때 배로 풍성해졌지만, 소외받는 책도 많고, 그렇다고 다들 내실있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하는 점도 우려스럽죠. .

cyrus 2015-11-27 14:4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현재 출판시장이 안습이지만, 인지도 높은 대형출판사는 중소출판사, 1인 독립출판사의 사정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대형출판사 마케팅 공세가 많아질수록 베스트셀러에 편중된 독서 성향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세실 2015-11-2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알라디너 몇명만 섭외했어도 ㅎㅎ
응팔! 제 세대라 그런지 재미있네요^^

cyrus 2015-11-27 14:44   좋아요 0 | URL
과거 책 소품 고증 작업을 박균호님, 윤성근님이 직접 참여하시면 거의 완벽하게 과거를 복원했을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5-11-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응사가 딱 제 시대에 맞았고 응팔은 국민학교 때라서 잘 와닿지는 않네요. 특히 무리해서 펼치는 `따뜻한 그 시절` 향수는 역시 제 취향과는 멉니다. 그냥 80년대를 보는 재미, 90년대 초반까지는 유지된 마을 공동체의 이미지. 이런 것들만 눈에 들어오네요.

cyrus 2015-11-27 14:46   좋아요 0 | URL
시청자 의견 대다수가 guest님의 생각과 비슷해요. 저도 드라마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

stella.K 2015-11-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시리즈는 패턴이 비슷해서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본다면 그 시대 문화 코드와 배우들의 코믹과 진지를 왔다갔다하는 게
볼만 한 거지.
그런데 88은 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복고란 느낌이 들긴 해.
배경이 70년 대 후반 내지는 80년 대 초반은 아닐까 싶기도 하거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 같아.
오늘 우리가 쓰는 글들이 훗날 어떻게 쓰일지 누가 알겠니?ㅋ

cyrus 2015-11-27 14:5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처럼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응팔이 너무 복고 느낌이 짙다는 의견이 많아요. 드라마 배경 장소인 쌍문동 골목길 세트 무대를 처음 봤을 때 7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2015-11-2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11-2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좋은 책은 너무 쉽게 절판되고 중고책 구하기도 힘들어요....

cyrus 2015-11-29 19:49   좋아요 0 | URL
희귀한 중고책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바로 구매하기가 어려워요.

clavis 2016-01-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지만 응팔이 응답하라 1988..인줄 여기서 처음 알았어요ㅠ

cyrus 2016-01-22 16:28   좋아요 1 | URL
드라마를 안 본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 보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드라마 결말 때문에 시청자들 사이에 말이 많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