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사후 400주년이라 셰익스피어 관련 책을 읽고 싶어,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을 손에 들었으나,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멍청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덩달아 내 시간까지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결론은 셰익스피어 희곡은 셰익스피어가 썼다는 것. 나는 사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셰익스피어가 썼건, 베이컨이 썼건, 달걀이 썼건, 외계인이 썼건 관심 없다. (달걀이 썼다면 쬐끔 관심이 생길 듯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을 실패하고, 다시 집어든 셰익스피어 관련 책이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였다. 이런 책일 줄 몰랐다. 엄......성인이 읽기엔 쬐끔 민망하기도..... 중학생 정도가 타깃 독자층이라고 할까.
셰익스피어 희곡의 내러티브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희곡이 ‘오해’와 ‘오인’의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독창적인 이야기도 없다. 오늘날로 치면 셰익스피어 전 작품이 거의 다 표절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사는 정말이지......셰익스피어 희곡을 영국 본토인의 발음으로 들으면 무릎이 후들거린다.
작가는 셰익스피어 희곡 중 아홉 편의 작품을 소설처럼 요약했다. 셰익스피어 극의 멍청한 플롯을 요약하곤 싶진 않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대사들만 정리해 본다. 역자 송태욱의 번역은.....무난한 편이지만.... 나로선 전혀......원문을 찾아 읽는 수밖에.
책을 읽으며, 가장 다시 읽고 싶은 희곡은 역시나 <햄릿>이었다. ‘To be or not to be’를 이 책에선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로 번역했다. 아마도 역자의 번역이라기보단 오다시마 유시의 번역일 것이다. 한국 번역가들은 언제까지 오욕과 오역의 번역사를 이어갈 것인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명명백백한 오역이다. 햄릿은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한국 셰익스피어 번역가들,.... 죽고 잡냐? (옛날엔 오역하면 죽었다.) 오다시마 유시의 번역이 원문의 뜻에 가깝다. ‘죽느냐, 사느냐’는 마치 햄릿이 자살을 고민하는 것처럼 들린다. 햄릿은 3막에서 전혀 자살할 생각이 없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해야 함에도, 죽음을 두려워해 행동하기를 머뭇거리는 자신의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문맥을 따르자면, ‘to be’는 ‘왕권도 소중한 목숨도 잔학무도한 놈한테 빼앗긴 부왕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뜻한다. ‘not to be’는 당연히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하는 행위를 뜻한다. 만일 나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복수를 결행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정도로 해석하겠다.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의 번역은 햄릿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거나 멍청해 보일뿐더러 무슨 뜻인지 애매모호하다.
셰익스피어 사후 400년이 되었건만, 아직까지도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역 투성이 <햄릿>을 읽어야 하다니! 한국의 학자, 번역가라는 것들은 왜들 이리 책임감도 없고 게을러 터졌을 뿐만 아니라 지독히도 멍청한 걸까. 살무사의 알들. 타성에 찌든 이 걸어 다니는 그림자들!
‘셰익스피어 번역 경연 대회’라도 열어야 할까. 한국에서는 방법이 없다. 전체 드라마의 문맥에 유념하여 각자가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것 말고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 입술은 당신 입술로 죄가 씻기었소.”
“그럼 저는 당신 입술에서 죄를 받은 건가요?”
“제 입술에서 죄를요? 오오, 부드러운 힐책. 그럼 그 죄를 돌려주시오.”
“단 하나의 내 사랑이 단 하나의 미움에서 태어났다니.”
“잠깐, 저 창문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빛은 뭘까? 동쪽에서 빛이 나니, 그럼 줄리엣은 태양인가.”
“사랑이라는 가벼운 날개로 이 담을 날아 넘었소”
“맹세하겠소. 저 과일나무 우듬지를 온통 은빛으로 물들이는 달을 두고.”
“오호, 행복하고 행복한 밤이로다. 밤이라 해도 모든 게 꿈은 아니겠지?”
“빨리, 빨리, 불꽃 발의 어린 말들이여, 태양신을 오늘 밤의 숙소까지 데려오라. 오라, 아름다운 밤이여, 그리고 로미오를 내게 보내줘. 로미오가 죽으면 돌려줄게. 잘게 썰어 작은 별로 만들면 돼. 그러면 로미오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지상의 사람들은 모두 밤을 사랑하게 되겠지.”
“이 가슴이 너의 칼집, 거기서 잠들어라.”
한 여름밤의 꿈
“잔디 덩이 하나면 베개로 충분할 거야. 마음은 하나, 침대도 하나, 가슴은 두 개라도 사랑의 진실은 하나니까.”
“혀야, 빛을 거두어라.
달아, 이제 그만 말하라,
이제 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
베니스의 상인
“내가 유대인이어서? 유대인을 뭐로 보는 거야? 유대인한테 눈이 없어? 손이 없어? 오장육부, 사지오체, 감각, 감정, 정열이 없기라도 하다는 거야? 그리스도교도와 어디가 다른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날붙이에 상처 입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으로 낫고, 같은 겨울의 추위, 여름의 더위를 느끼지 않기라도 한다는 거야?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나고, 간지럼을 피워도 웃지 않고, 독을 먹어도 죽지 않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가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면 안 되기라도 한다는 거야?”
“당신의 눈에 제 마음은 둘로 갈라지고 말았어요. 절반은 당신 것, 나머지 절반도 당신 것,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 것은 당신 것, 그러니 모두 당신 것....”
“그러니 외양의 아름다움은 내용물을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비란 의무에 의해 강제되는 게 아니오. 하늘에서 내려와 저절로 대지를 적시는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오. 당신은 정의를 요구하는데, 생각해보시오. 정의만을 요구하면 누구 한 살마 구할 수가 없소.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바라며 기도하고, 기도 자체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겠소?”
“꼭 이런 밤이었지. 트로일로스가 트로이 성벽 위에 홀로 서서 크레시다가 잠자고 있는 그리스 진영을 향해 한숨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보낸 것은.”
“저렇게 작은 등불이 이렇게 멀리까지 빛을 비추다니! 아마 좋은 행위는 나쁜 세상을 저렇게 비추겠지.”
줄리어스 시저
“난 나와 같은 인간을 무서워하며 사는 인생이 질색이네.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난 시저와 마찬가지로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자네도 마찬가지네.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고, 마찬가지로 겨울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지. 그런데도 어떤가? 시저는 로도스 섬의 거인상처럼 세계가 좁다는 듯이 우뚝 서서 가로막고 있고, 우리들처럼 자그맣고 보잘것없는 사람은 그 거대한 다리 사이를 헤매면서 마땅히 부끄럽게 여겨야 할 묏자리를 찾고 있는 데 지나지 않지. ”
“오늘이여, 너는 오욕의 시대다!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 사람의 인간이 모든 영예를 독점한 시대가 있었나?”
“살무사가 기어 나오는 것은 반드시 화창한 날이다. 시저는 이를테면 살무사의 알이다. 일단 부화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따라서 알일 때 죽여야 한다.”
“겁쟁이는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죽는 생각을 하지만 용감한 사람이 죽음을 맛보는 것은 한 번뿐이오.”
“썩 물러가라. 올림포스 산을 움직일 생각이냐?”
“자, 몸을 굽혀 손을 피에 적십시다. 천 년 후까지도 우리의 이 장렬한 장면은 되풀이되어 연출될 것이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들에서,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언어로.”
브루투스의 연설.
“ 로마 시민, 우리 동포,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이 군중 속에 혹시 시저의 친구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한테 말하겠소. 시저를 사랑하는 브루투스의 우정은 그 사람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고 말이오. 또 그가 시저를 죽인 이유를 듣고 싶어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오. 그건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로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오. 시저는 날 총애해주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소. 시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기쁘지 않을 수 없소. 시저는 용감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소. 하지만 시저는 야심을 품었소. 그걸 생각하면 나는 시저를 찌르지 않을 수 없었소. 시저의 사랑에는 눈물을, 시저의 행복에는 기쁨을, 시저의 용기에는 존경을, 그리고 시저의 야심에는 죽음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거요....”
안토니의 추도사.
“ 내 친구, 로마 시민, 동포 여러분, 들어주시오. 내가 온 이유는 시저를 묻기 위해서지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나는 여기서 부루투스와 여러분의 허락을 받고 이렇게 시저의 추도사를 하게 되었소.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고 여러분도 공명정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시저는 나에게 성실하고 공정한 친구였소. 하지만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시저는 로마로 많은 포로를 데려왔소. 그 몸 값은 모조리 국고로 환수되었소. 그런 시저에게 야심의 그림자가 보였을까요? 가난한 사람이 굶주림에 울 때 시저도 눈물을 흘렸소. 야심이란 좀 더 냉혹한 것으로 만들어졌을거요. 하지만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하오. 그리고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여러분은 모두 루페르칼리아 축제 때 목격했을 거요. 나는 시저에게 세 번 왕관을 바쳤으나 시저는 세 번 다 거절했소. 그게 야심이오? 하지만 브루투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고 하오. 그리고 물론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이오...”
“나는 인생을 시작한 날 인생을 마치려 하고 있네. 나는 인생의 결승점을 지나쳤어.”
십이야.
“어머, 난 그렇게 차가운 여자가 아니에요. 내 아름다움을 명세서로 작성하여 이 세상에 남겨두기로 하죠. 하나, 상당히 붉은 입술 두 개. 하나, 푸른 눈 두 개, 눈꺼풀 딸림. 하나, 머리 한 개. 하나, 턱 한 개 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엉클어진 실을 나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 아아, 시간이여, 매듭을 푸는 일은 너의 손에 맡기겠다. ”
“신분이 낮은 사람을 사랑하면
루크레티아의 명검처럼
침묵은 내 가슴을 찌르는,
목숨이다. “
“내 운명의 별이 그대보다 위에 있다고 해서 고귀한 신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어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고귀한 신분을 획득하는 사람도 있고 고귀한 신분을 내던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대의 운명이 손을 내밀고 있어요. 결연한 용기로 그 손을 잡으세요.”
“사랑의 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습니다.”
“남자는 연하의 여자를 애인으로 두어야 하네. 여자란 장미꽃, 그 아름다움은 덧없는 생명. 지는 것도 한순간, 피었나 싶으면 지는 거라네.”
“더러움을 모르는 봄날의 장미에 걸고 처녀의 지조, 명예, 진실, 이 모든 것을 걸고 당신을 사랑해요.”
“저에게도 하나의 마음, 하나의 가슴, 하나의 진실이 있습니다. ”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옷, 두 개의 몸, 자연이 만들어낸 거울이로군.”
“어떻게 당신은 두 사람이 되었나?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도 이 두 사람만큼 닮지는 않겠어.”
햄릿
“ 아아, 너무나도 단단한 이 육신이 녹아내려 이슬로 사라져주지 못하는 걸까! 적어도 자살을 금한 신의 율법만이라도 없었다면, 아아, 어찌하면 좋을까! 나한테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성가시고 지겹고 쓸데없는 것으로만 보이는구나. 싫다, 싫어. 이 세상은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나 황폐해진 채 내버려진 정원이고 역겨운 것만이 설치며 만연해 있다. “
“마음이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겨우 한 달 만에, 아니, 아버지의 유해에 달라붙어 니오베처럼 눈물에 잠겨 묘지까지 따라간 어머니의 그 신발이 닳기도 전에,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아, 사리분별을 못하는 짐승이라도 좀 더 슬퍼할 텐데.”
“아아, 어쩌면 그토록 무엄하게 빠르단 말인가, 그토록 재빨리 불의의 잠자리에 뛰어들다니! ”
“요즘 세상은 관절이 삐어 있어. 우울한 이야기지. 그걸 바로 잡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니!”
“자네들은 무슨 나쁜 짓을 한 건가? 운명의 여신이 이 감옥에 쳐넣다니 말이야.”
길든스턴이 “감옥?”하고 반문하자 햄릿이 대답했다.
“덴마크는 감옥이네.”
“나는 설사 호두 껍데기에 갇혀 있어도 무한한 우주를 지배하는 왕이라고 믿는 사람이네.”
“이대로 있어도 될까. 안 될까, 그것이 문제로다. 과연 목적이 훌륭한 삶인가? 이대로 마음속에 포학한 운명의 화살과 탄알을 맞으며 가만히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밀려드는 노도와 같은 고난에 감연히 맞서 싸워 그것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죽는 것은 곧 자는 것, 그뿐이다. 자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마음의 괴로움에도, 육체에 따라다니는 갖가지 고통에도, 그야말로 더할 나위없는 종지부 아닌가? 죽는다, 잔다. 잔다, 아마도 꿈을 꾸겠지. 거기다, 발이 걸리는 건, 이 세상의 걱정에서 간신히 벗어나 영원히 잠드는데, 거기서 어떤 꿈을 꾸는 거지? 그게 있으니까 망설이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언제까지고 괴로운 인생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참으랴.
세상 사람들이 퍼붓는 비난, 권력자의 무법적인 행동, 오만한 자의 모멸,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랑의 고통, 재판의 지연, 관리들의 횡포, 훌륭한 인물이 하찮은 놈에게 견디는 굴욕, 이런 무거운 짐을 누가 견디겠는가? 그저 단검으로 한 번 찔러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데. 괴로운 인생에 신음하면서 땀을 흘리며 걷는 이유도 그저 사후에 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다. 사후의 세계는 미지의 나라다. 사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자는 한 사람도 돌아온 예가 없다. 그래서 결심이 약해지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저 세상의 고생에 뛰어드느니 익숙한 이 세상의 근심을 견디려 하는 거다. 이처럼 번민하는 마음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이처럼 결의의 색조는 고뇌의 핼쑥한 도료로 덮인다. 생사가 걸릴 만큼 중대한 일도 그 때문에 어느새 나아갈 길을 잃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끝나고 마는 것이다.....”
“아아, 햄릿, 넌 이 가슴을 둘로 찢어놓았구나.”
“그렇다면 나쁜 쪽을 버리고 좋은 쪽만 남겨 맑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세요.”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신의 섭리. 올 것이 지금 오면 나중에는 안 오네. 나중에 안 온다면 지금 오겠지. 지금이 아니어도 올 것은 반드시 오는 것이네. 무엇보다 각오가 중요하지.”
오셀로.
“번쩍이는 칼을 거두어라. 밤이슬에 녹슬겠다. 각하, 명령은 연세로 내리면 충분합니다. 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명예로운 살인자라고 불러주시오. 내가 한 짓은 증오 때문이 아니라 모두 명예 때문이었소.”
리어왕
“바람아, 불어라. 너의 뺨을 찢어놓을 때까지 마구 불어라! 비야, 내려라, 폭포가 되고, 맹렬한 회오리가 되어 우뚝 솟은 탑, 수탉 모양의 풍향계마저 삼켜버릴 때까지 마구 쏟아져라!”
“내게는 길이 없다. 그러니 눈도 필요 없어. 눈이 보였을 때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곤 했어. 아아, 에드거, 사랑스러운 아들아, 속아 넘어간 아버지의 분노에 네가 희생되었구나!”
“아아, 지금이 최악의 상태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게 최악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동안은 진정한 최악의 상태가 아니다.”
“참지 않으면 안 되네. 사람이 태어날 때 우는 이유는 이 광대들의 무대에 끌려나온 것이 슬퍼서야.”
“도망치는 거예요, 아버님, 사람은 참아야 해요. 이 세상에 나올 때도 떠날 때도 사람한테 자유는 없어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각오가 중요해요.”
맥베스.
“좋은 건 나쁘고 나쁜 건 좋다네”
“겉은 무심한 꽃으로 가장하고 그 뒤에 뱀을 숨기는 거예요.”
“저는 갓난아기를 키운 적이 있어요. 제 젖을 빠는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지 알지요. 하지만 저는 미소 짓는 갓난아기의 부드러운 잇몸에서 제 유두를 강제로 떼어내고 머리를 부숴버릴 수도 있어요. 조금 전의 당신처럼 일단 한다고 맹세했다면요.”
“자, 얼굴을 환하게 펴시오. 아무리 밤이 길더라도 반드시 날이 새는 법이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렇게 시간은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걸아가 끝내는 역사의 마지막 한 순간에 이른다. 어제라는 날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이 먼지가 되는 죽음으로 가늘 길을 비쳐왔다. 꺼져라, 꺼져라, 한 순간의 등불!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다. 무대 위에서 과장된 몸짓을 해도 차례가 끝나면 사라진다. 어리석은 자가 말하는 이야기다. 아우성치는 소리와 분노는 무시무시하지만 의미는 전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