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서 가장 바쁜 일과 시간은 4시에서 6시 사이다.

주로 유럽 회사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유럽의 아침이 되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독일에서,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에서 전화가 온다.
회사전화가 통화 중이면 성격 급한 바이어들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정신이.....없다. 헉헉!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6시 30분에 퇴근, 한겨레 문화센터로 달려 갔다.
강유원의 강의 <서구 고전 읽기 : 정치사상편>.

현충일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강유원의 강의가 있다는 한겨레 문화센터 광고에 제대로 "필" 받아
"충동적"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한겨레 문화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온라인 결제까지 해 버렸다.

커리큘럼은
플라톤 <<국가>> (박종현 옮김, 서광사)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이병길 옮김, 박영사)
마키아벨리 <<군주론>> (강정인 옮김, 까치)
로크 <<통치론>> (강정인 옮김, 까치)

내친 김에 책까지 한꺼번에 다 주문했다.

그런데... 성격상 일은 저질렀으나...
700 페이지 넘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안 그래도 저질러 놓은 일이 많은데
이 수업까지 들을 수 있을까?
이 텍스트들을 제대로 읽을 수나 있을까?

그래도 어쩌랴...
벌써 저지른 일인데...

한편으로는 궁금함과 기대로 설레이기도 했다.
강유원은 어떤 사람일까?
강유원의 강의는 어떨까?

어제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앞에 서서 수강생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강유원 선생님(이제 저자가 아니라 나의 선생님이다!) 을 처음 봤을 때,
난 너무 놀라 쌩뚱 맞은 질문을 해 버렸다.

"선생님..... 강유원 맞아요?"
( 강유원 선생님 맞으세요? 라고 했어야 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질문이 꼬였다. ㅠㅠ)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학교 청소부 아줌마들도 내가 선생 아닌지 아는데....하하."

질끈 묶은 긴 파마 머리,
더 이상 편할 수 없을 것 같은 티셔츠와 볼링화 같이 생긴 운동화,
사람 좋아 보이는 쾌활한 말투와 웃음소리...

"회사원 철학자"라고 해서 "회사원" 스러운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기억 속의 록 밴드 같기도 하고,
사주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도인 같기도 했다.

무엇 보다도...
"시니컬"해 보일 꺼라고 생각했는데
농담 따먹기도 너무 잘하고
능글능글하게 말도 잘해서 굉장히 놀랐다.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앞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끊임 없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지금 외출을 해야 해서 글을 마쳐야 한다. 강의후기는 다음에 써야지.)

끊임 없는, 지치지도 않는 나의 삽질에 스스로 경의를 표하며.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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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6-1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배워서 남주세요...^^ 꼭이요.
어제 글샘,달팽이님하고 술먹어서 힘들어 죽겟네..헤

마법천자문 2007-06-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삽질' 이란 두 글자를 보니 댓글을 안 남길 수가 없군요. 강유원씨는 토속에로영화에 나오는 마당쇠 같은 분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저런 강의에 돈 받으면서 다니라고 해도 못 다닙니다. 책 제목들만 봐도 골이 빠개지려고 하는군요. ㅎㅎ

2007-06-16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7-06-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오!!! 부산 모임이 있었나봐요? 잼 있었겠당^^
저도 어제 과음으로 숙취가...ㅋㅋ

분노의 삽질님, 마당쇠 보다는 변강쇠 같아요. ㅋㅋ
강의 재미있어요.^^ 숙제도 있어요. 해야 되는데..언제 할지 모르겠어요. ㅎㅎ

속삭이신님, 학구열이 아니라 삽질이예요. ㅋㅋ
일은 쉽게 저지르는데 수습을 잘 못해요. 돈키호테 스타일 이랄까요? 음하하하
 



<밀양>을 보면 생각이 넘 많아질 것 같아서
머릿 속이 복잡해 지는 게 살짝꿍 두려워서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었다.

결국... <밀양>에 대한 욕망은 두려움을 이겼고
현충일 오후에 <밀양>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술이 땡겼고,
극장에서 나와 허름한 술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마셔 버렸다.

( 그래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또는 죄책감으로
안주는 손두부를 시켰다. )

<밀양>은 정말...파괴력이 큰 영화다.
영화일기를 쓰려고 했으나,
머리를 빙빙 도는 생각들과 이미지가 넘 많아 포기해 버렸다.

<씨네21>에서 평론가 허문영과 이창동의 두번째 대담을 읽었다.

이창동이 한 말을 읽을 때 마다 소름이 돋게 공감을 했고,
허문영이 한 말을 읽을 때 마다 짜증이 났다.

가끔 평론가들을 보면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영화를 재미 없게 보려고 환장한 것 같기도 하고,
머릿 속에 있는 이론을 어떻게든 다 써먹어 보려고 들이 미는 것 같기도 하고,
쌩뚱 맞은 이데올로기 얘기를 할 때는 무섭기도 하다.

허문영이 말했다.

이 영화는 가부장의 부재와 그 복원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밀양이 죽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것도 그렇고.
종찬이 가부장의 자리를 원하지만, 그 역할 수행에는 실패한다.
신애가 찾는 하나님은 또 다른 가부장일 수도 있다.


가부장의 부재와 복원이라.... 헉!
허문영은 마초일까?
아니면 텍스트가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얘기하는 걸까?
아니면 이창동의 "아니다"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소크라테스처럼 산파술을 쓴걸까?

신애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간 건
가부장의 부재를 복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 속 대사
"난 여기가 좋아.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기가." 대로
남편의 배신, 주위 사람들의 동정,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리모델링"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남편을 사랑해서 남편의 고향에 살러온 순애보적인 여자로,
(동생에게 조차 그렇게 보이기를 원한다!)
은행 이자 얼마 되지도 않는데 좋은 땅 사서 집이나 지으려는 돈 많은 여자로,
그 누구에게도 불쌍해 보이지 않는
사랑했던 기억과 놀고 있는 돈이 넘쳐나는 행복한 여자로.

그런 신애의 발버둥치는 모습에 안스러움을 느꼈고,
그런 신애의 자기방어에 어지러울 만큼 감정이입이 됐고,
그런 신애의 모습에 너무나 술이 땡겼고,
그래서......마셨다.

다이어트가 끝날 때까지는 코미디만 봐야 겠다.

p.s) 영화를 보면서.....종찬 같은 남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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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6-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종찬같은 남친이 있음 좋겠단 생각 했어요. 울 신랑은 결혼하고 나더니 확 돌변했습니다. 뭐 낚은 고기에는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나요. 쳇.
신애에게서 동질감도 느꼈습니다. 왜 약간의 허영심은 부리고 싶잖아요~~
제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이에게서 전화오자 '엄마 금방 갈께~' 하던 거짓말)
자칫 무거움 일색으로 흐를뻔 했던 영화가 송강호로 인해 한결 가벼워 졌지요~~

다락방 2007-06-1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구요, 앞으로 봐야할지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조금 더 고민해야겠어요.

수선님의 말씀처럼, 왜 죄다 재미없게 보려고 환장한듯 한걸까요? 느끼는대로 얘기해줘도 좋을텐데. 그나저나 이왕 드시는거, 맛있는거 드시지 그러셨어요. 헷.

hnine 2007-06-12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문영 이라는 분의 말씀을 비롯해서, 저건 아닌데 하는 말을 듣거나 읽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답답하긴 하지만, 누구나 알고 보면,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의 감정 이입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는 것 같아 그냥 이해해주기로 합니다.
저 지금, 일어나서 사과 먹고 있는데, 밀양에서 전 도연이 사과를 베어먹다가 눈물을 지금지금 흘리고 말던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마늘빵 2007-06-12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찬 같은 남친이라면 전 아니군요. 크크.

저도 밀양 보고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내가 뭘 느낀건지 아무 것도 모르겠더군요.

프레이야 2007-06-12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외연을 확대하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개인의 스키마와 보는 관점에
따라 작품은 여러 갈래로 해석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허문영 평론가라는 사람의
확대해석은 영화의 의도와는 너무 멀어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전문평론가
들의 글을 안 읽지요.. 그나저나 수선님 다요트 계속 성공길로 가시기 바래요^^

2007-06-12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6-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텍스트를 해석하는 눈은 여러가지 일 수 있다고 봐요....창작자가 그걸 의도하지 않았어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고봐요.물론 과도한 해석의 가능성도 있지만요.아무데나 가도 되는데 굳이 남편의 고향으로 간 상황이 그런 해석을 가능케하지 않았을까요....'난 여기가 좋아'면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는건가요? 그렇진 않겠지요^^...

kleinsusun 2007-06-1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정말 송강호랑 양장점 아줌마 및 그의 친구들이 없었으면 영화가 너무 무거울 뻔 했어요. ㅋㅋ 외국어 자막으로는 사투리가 주는 어감을 전달할 수 없으니 넘 안타까워요. 송강호의 느글느글한 대사들 정말 압권이었는데....^^

다락방님,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부쩍 짜증이 심해진 것 같아요. 이러면 안되는데...ㅠㅠ <밀양>은 후유증이 심하긴 하지만.....그래도......안보면 후회할 거 같아요.^^

hnine님, 아.......그 사과 깍는 장면!
뜬금 없는 소리지만... 과도 좋은 걸로 샀는데 한번도 안 썼어요.ㅋㅋ

아프님, 네...정말 후유증이 큰 영화예요. 님 같은 꽃미남은 종찬 캐릭터와 안어울려요.ㅋㅋ

혜경님, 네...넘 비약이 심한 해석이죠? 무엇보다...가부장의 부재와 복원이라는 건 가부장의 권위가 인정될 때 가능한 일인데...왠 뜬금 없이 가부장이 나오는지... 신애의 주체적 캐릭터를 부정하는 것 같아요.

속삭이신님, 항상 님은......쵝오!^^

드팀전님, 아무데나 가도 되는데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간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그러니까 남편이 바람 피다 교통사고 나서 죽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뿐만 아니라 남편의 고향으로 살러 갈 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발버둥 같은 거 같아요. 텍스트는 당연히 천길 만길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부장은 정말.....아닌 것 같아요. (아님.....저한테 가부장 알레르기가 있나봐요.ㅋㅋ)

글샘 2007-06-1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부장적이라고 한 건, 오버같네요.^^
남편 고향과 아들은 '상처받은 영혼'에게 '갈 곳' '아는 사람 없는 곳' '피안'의 세상이었겠지요. 비록 그곳이 가봤자 거기서 거기인... 송강호 말대로 거기가 거기인 곳이었지만요.
 
 전출처 : 로쟈 > 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

'작가와 문학사이' 21번째 작가는 사랑 듬뿍 받는 소설가 김애란씨이다. 심진경 평론가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젊은 평론가 차미령씨가 공개적으로 표나는 애정고백을 바치고 있다. 혹은 작업을 걸고 있다. '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이라... 넉다운시킨다는 얘기 아닌가?..  뉴스메이커에 실린 가장 최근의 인터뷰 기사도 후미에 붙여놓는다. 평론가의 애정고백이 영 쑥쓰럽다고 하므로.  

경향신문(07. 06. 09) [작가와 문학사이](21) 김애란-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

한 소설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양반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작업을 거는구나.’(이기호)

또 한 비평가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신형철)

2003년 등단한 작가는 2005년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유수의 문학상(한국일보 문학상)의 영예를 누렸다. 작금의 한국소설을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이 일치단결이 그렇고 그런 안간힘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짚은 분들은 조만간 출간될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이러한 반응이 예사로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범한 작가는 누구인가. 김애란이다. 1980년생이다.

현재 김애란은 2000년대 젊은 소설의 대표명사다. 하지만 동년배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최근 1, 2년 사이 데뷔한 문단의 최신예들은 이상하고 신기하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창안하는 데 몰두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애란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범속한 일상의 사건들로부터 누구나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그 이면의 진실들을 끌어내서 기어이 독자가 무릎을 치게끔 만든다.

김애란은 세번 독자를 매료시킨다. 한번은 그 활달한 상상력에, 한번은 재치 넘치는 언어감각에, 또 한번은 세상살이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이 세층위가 한데 엉기며 시너지 효과를 빚어내는 것이 김애란 소설이다. 그중 세번째 층위가 유난하다. 그 시선이 비루한 동시에 숭고한 우리네 삶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작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는 기원에의 탐색, 서울 변두리 자취 남녀들의 삶,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적 탐구가 유머와 페이소스를 등에 업고 촘촘히 펼쳐진다. 각각을 대표하는 소설의 제목을 따와 작품집의 면면을 간략히 스케치해 본다. 불꽃놀이는 자기 생명을 기획하고 재연하는 개체의 첫번째 시나리오(‘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이고,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집은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인의 거처(‘노크하지 않는집’)이며, 종이 물고기는 현실의 수면 아래를 찢어질 듯 힘겹게 유영하는 글쓰기의 상징(‘종이 물고기’)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개인의 서사, 개인의 윤리다. 마찬가지로 제목을 빌린다. 우리는 각기 우리 삶의 ‘영원한 화자’다.

두루 환영받은 첫 창작집 이후, 이즈음 김애란 소설은 더 몸을 낮추고 더 낮은 자리로 향하고 있다. 편의점과 원룸은 애당초 댄디들의 세련된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근래 발표한 소설들의 공간은 거기서 다시 여인숙(‘성탄특선’)과 반지하방(‘도도한 생활’)으로 옮아간다.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지상의 방 한칸마저 마땅치 않은 청춘남녀들에게 성탄절은 ‘역병’이나 다름없고, 도도하기는커녕 비애가 뼈아프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김애란의 인물들이 이제 누군가와 맞닥뜨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 누군가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다리청년이기도 하고,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이를 가진 사내이기도 하다. ‘영원한 화자’가 마침내 조우하기 시작한 이 타자들에 대한 인식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또 어디까지 밀어붙이는가에 따라 앞으로 김애란 소설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선가 김애란은 말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나한테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쓸 뿐이라고. 겸사인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영화감독도 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한다.”(차이밍량) ‘나’에게 절실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설만이, 안으로는 질문을 내장하고 바깥으로부터 퍼부어지는 질문 역시 끝내 견뎌낸다. 누구나 주목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주목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란 영 쑥스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그 염치불구를 무릅쓰게 할 만큼 김애란 소설은 동시대 비평가에게는 설레는 기쁨이자 섬세한 자극이다.(차미령|문학평론가)

뉴스메이커(07. 06. 12)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뿐이죠”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출판계와 저널리즘에 이르는 오늘날 문단의 불문율 중 하나는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진보적 리얼리스트들에서부터 전위적 모더니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젠 체하는 비평가들에서부터 자유분방한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 문학평론가 신형철(계간 ‘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최근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을 준 신인작가로(…) 박민규와 김애란을 꼽을 수 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계간 ‘창비’ 2006년 봄호)

소설가 김애란(28)에 대한 극찬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는 김애란이 창작집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순원문학상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몇몇 심사위원이 “규정을 바꾸라”며 반기를 들고 나서기도 했다. 김애란은 단편 몇 편만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가라는 게 당시 의견이었다.

1980년생인 소설가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하고, 제1회 대산대학생문학상 소설부문 당선(2003년)을 거쳐, 2005년 11월 단편 ‘달려라, 아비’로 역대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출간한 그녀의 첫 창작집 ‘달려라, 아비’(창비)는 한 달 만에 판매부수 1만 부를 넘기면서 문단은 물론, 새로운 소설에 목마른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칭찬만 있는 건 아니다. “김애란 소설의 특징은 개그적 재능이다. 자기 삶을 통일시켜줄 규범이 없는 세대니까, 개그처럼 즉흥과 되풀이가 많은 것이다”(평론가 유종호),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말 한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상황을 만든다. 장면만 제시하고 지나가는 TV 드라마와 같은 소설이다”(소설가 이청준)가 그것이다.

그러나 문단이든 독자든, 김애란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녀의 출연에는 ‘한국 소설의 샛별’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질질 끄는 문체와 화려한 수식어, 한 말 또 하고 또 하기를 거듭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기존의 여성 작가들 문장에 질린 독자들에게 김애란의 짧은 호흡, 수미상응의 작법, 군더더기 없는 경쾌한 문장,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 쿨한 문장은 신선함과 함께 우리 문단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 놓았다.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김애란 작품에서 찾는 ‘소설에의 희망’은 중성(中性)성과 우리 시대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다. 우선 그녀의 인물들은 자신의 성별에 의지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주어지는 특별한 상황은 없으며, 때문에 슬프거나 노엽거나 좌절하거나 그 처리과정도 중성적이다. 이 중성성이 소설의 명랑성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평가다. 이 점이 기존 여성 작가들과의 구별점이기도 하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성보다는 인간에 주력하고자 했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많은 작품에서 아버지를 등장시키는데, 봉건사회와 분단시대, 그리고 산업화라는 시대의 질곡 속에서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아버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가다 연탄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장발 휘날리며 콘돔을 사러’ 가는 남자가 김애란 소설 속 ‘아비’의 초상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우리 손자 세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던 차에 그 세대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 반가웠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들은 전통적 아버지에 비하면 아버지 같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의 소설에서 젊은이들은 ‘아비’에게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아비’를 버렸다고 자부하니, 새롭고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손정수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최근 격주간 ‘기획회의’ 195호에서 “발단부터 결말에 이르는 시간적 과정이 하나의 줄기로 매끈하게 꿰어져 있는 전통적인 단편소설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소설답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바로 이 점이야말로 김애란의 소설이 기존의 낯익은 소설들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뚜렷한 토대”라고 평한다.

한편 김애란은 “지각이 없는 작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을 쓸 때 나한테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라며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고 자신의 소설관을 나타냈다.(조득진 기자)

07.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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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으로는 부족해, 라고 생각했던 작가였어요. 매우 재기발랄하고 경쾌한데, 이 리듬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어쩌면 그녀의 책은, 저자 이름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혜덕화 2007-06-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주 솔직하게 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은데, 읽은 지 오래되어 이젠 생각도 나지 않는군요. 독립 생활은 어때요?
 

며칠 전, 출근 길에 신문을 읽다가
전도연이 칸 여우 주연상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보니
가슴이 짜~안 한 것이 울컥하기 까지 했다.
전도연의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 그러니까 97년,
전도연은 <접속>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 때는 PC 통신이 한참 인기였고,
전도연과 한석규 주연의 <접속>은
주제가였던 Sarah Vaughan의 [Lover's concerto]가
서울의 모든 카페와 길거리 리어카에서 울러 퍼질 만큼 인기였다.

그 후 <약속>, <해피 엔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너는 내 운명> 등 쉬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해 왔다.

<약속> 같이 "이래도 안 울래?"하는 신파의 극치, 허접한 영화도 있었고
<해피 엔드> 같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영화도 있었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잔잔한 소품 같은 영화도 있었다.

어쨌거나 전도연은 재벌 또는 재벌의 방계와 결혼해서
활동을 중단했다가 이혼 후 컴백을 한다거나,
쌩뚱 맞게 가수로 데뷔한다거나,
쇼 오락프로 패널로 출연한다거나 하지 않고
쉬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해 왔다.

10년간 꾸준히 성장해가는 동갑내기 전도연을 지켜보면서
웬지...동지의식(?) 같은 걸 느꼈다.
지치지 않고, 외도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 길을 파는 그녀에게!

2007년, 97년 <접속>으로 데뷔한지 10년만에
전도연은 10번째 영화 <밀양>을 찍었고,
10번째 영화는 그녀에게 칸 여우 주연상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줬다.

칸 트로피를 거머쥔 전도연의 모습에 그토록 가슴이 뻐근했던 건
언제나 품고 있었던 나의 믿음, 꾸준함은 힘이 세다! 를 그녀가 보여 줬기 때문이다.

꾸준함은 재능 보다 힘이 세다...고 나는 믿는다.
작년에 알게 된 노동자 화가 S는
자신이 매일 아침 외우는 말을 전시회 도록과 함께 메일로 보내 줬다.
"재능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의 힘을 믿는 것" (화가 고르키가 한 말이란다.)

꾸준함을 이기는 자산은 없다.(그렇게 믿는다.)
그 어떤 재능도, 그 아무리 대단한 부모의 빽도...

힘들다고 투덜대지 말고,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고 좌절하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며 안달하지 말고,
꾸준히....꾸준히 가야지.
때로 힘들 때는 버티기 전략으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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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6-0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 go~~~ 전도연 참 멋진 배우임을 새삼 느낍니다. 진정한 배우지요~
저 다요트 시작했구 3킬로그램 감량했습니다. go go!

글샘 2007-06-04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재능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늘 불만이고, 불안해하기 쉬운 것이 재능없는 사람들의 특성이죠.
자기를 믿는 것, 그리고 뒤돌아 보지 않고 매진하는 것. 그것이 정말 큰 재능 중의 하나 아닐까요? 99%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독한 뚝심같은 것. 세실님은 그 뚝심을 가지신 분이군요. ㅎㅎㅎ 모두모두 고고 합시다.!!

프레이야 2007-06-0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준함을 이기는 자산은 없다. 저를 위한 경구로 알고 기분 좋은 하루 시작할게요.
수선님도 좋은 하루! 님, 스킨이 참 멋져요. 우아한 포인트벽지 같아요. ^^

사마천 2007-06-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준한 노동자 화가라고 하니 고흐가 떠오르네요 ^^

blowup 2007-06-0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이 고작 책을 읽으며 남의 인생을 더듬어 보는 동안,
배우들은 빙의처럼 남의 인생을 살아 보니.
성숙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겠죠?
네이버에서 본 이동진의 전도연 인터뷰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전도연 씨의 대답들이 참 영리하면서도 깊더군요.
꾸준함은 없던 재능도 만들고, 게으름은 있던 재능도 갉아먹는 것 같아요.

혜덕화 2007-06-0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 혼자 말했습니다. 어찌 전도연 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커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싱글들도 씩씩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오지랖 넓은 아줌마의 생각이랍니다. ^^

2007-06-07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 6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명두>에서 김애란의 단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읽은지
거의 1년 만에 김애란의 단편집을 읽었다.

이 책의 끝에 있는 <작가의 말>에 김애란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김애란은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고 느낀 첫번째 감상(?)은
아....정말 소설 많이 읽고, 습작 많이 하고, 소설 작법을 피 터지게 배웠구나! 다.

얄밉다.
꼭 "국영수를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수능 전국 수석의 9시 뉴스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그러니까 벌써 몇년 전, MBA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GMAT을 5번이나 봤는데 매번 똑 같은 점수가 나왔다.
그 비싼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5번이나 봤는데
그 때마다 똑 같은 점수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이라니!

Top 5 MBA 합격자들이 쓴 [TOP MBA로 가는 길]에
합격자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썼다.

TOEFL은 모의고사를 한두번 풀어 보고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좋은 점수가 나왔고,
GMAT은 바쁜 회사 일에 쫓겨 2~3달 주말에 도서관에서
[The Official Guide for GMAT]을 반복해서 봤는데,
다행히 700~75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와 essay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런 수기를 읽었을 때의 좌절감이란!
난 머리가 나쁜 걸까?

그런데...그 합격자 수기 중에는 학교 선배의 것도 있었는데,
(그 선배도 그렇게 썼다!)
그 선배는 회사까지 휴직하고
온 종일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저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어요!" 라고 하면
쩍 팔린걸까?

평론가들은 김애란의 출현을 "천재 소녀의 강림" 으로 보는 것 같다.

김애란은 분명, 단연코, 유쾌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가다.
하지만... 아직 작품집이 한 권 뿐인 작가를 가지고 너무 오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애란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장편, 또 다음 단편집을 기다려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비난 보다도 더 무서운 "무관심" 속에 힘들어 할
신인 작가들의 소설도 계속해서 "사서" 읽으려고 한다.

그것이... 회사원 나부랭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문학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딴지가 길었다.
그래서...김애란의 단편집은 어땠는가?

이렇게 딴지를 걸 만큼,
동종업계도 아닌데 시기와 질투를 느낄 만큼,
대.단.하.다.
그 유쾌한 상상력과 놀라운 비유들로 가득한 문장들!

김연수 소설의 아버지가 "늙고 추례한 아비"라면
김애란 소설의 아버지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실종된, 사라진 아비"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는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아비의 떠남은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도 않고
자기연민의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김애란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삶의 고통에 빠지는 대신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긍정한다.
아....이 도발적인 유쾌함이라니!

김애란이 단편을 발표하는 여러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김애란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달려라,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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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판단을 유보한 작가들 중의 하나입니다. 김형경의 글이 아무리 못되어도 좋다라는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몇 편을 읽어야 했고 박민규가 때로는 영 아니올시다 싶었던 글과 대단스런 글들을 섞어 단편집을 내는 것을 보다 보니, 판단을 내리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어요. 저도, 다음 작품집을 기다립니다.

kleinsusun 2007-06-0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음 작품집, 또 장편을 읽어 보고 싶어요.
평론가들은 말하더군요. 다음 작품집을 기다려 평을 하면 이미 늦는다고... 작품에 배팅을 해야 한데요. 평론에도 시장의 논리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