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
'작가와 문학사이' 21번째 작가는 사랑 듬뿍 받는 소설가 김애란씨이다. 심진경 평론가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젊은 평론가 차미령씨가 공개적으로 표나는 애정고백을 바치고 있다. 혹은 작업을 걸고 있다. '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이라... 넉다운시킨다는 얘기 아닌가?.. 뉴스메이커에 실린 가장 최근의 인터뷰 기사도 후미에 붙여놓는다. 평론가의 애정고백이 영 쑥쓰럽다고 하므로.
경향신문(07. 06. 09) [작가와 문학사이](21) 김애란-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
한 소설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양반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작업을 거는구나.’(이기호)
또 한 비평가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신형철)
2003년 등단한 작가는 2005년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유수의 문학상(한국일보 문학상)의 영예를 누렸다. 작금의 한국소설을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이 일치단결이 그렇고 그런 안간힘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짚은 분들은 조만간 출간될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이러한 반응이 예사로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범한 작가는 누구인가. 김애란이다. 1980년생이다.
현재 김애란은 2000년대 젊은 소설의 대표명사다. 하지만 동년배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최근 1, 2년 사이 데뷔한 문단의 최신예들은 이상하고 신기하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창안하는 데 몰두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애란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범속한 일상의 사건들로부터 누구나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그 이면의 진실들을 끌어내서 기어이 독자가 무릎을 치게끔 만든다.
김애란은 세번 독자를 매료시킨다. 한번은 그 활달한 상상력에, 한번은 재치 넘치는 언어감각에, 또 한번은 세상살이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이 세층위가 한데 엉기며 시너지 효과를 빚어내는 것이 김애란 소설이다. 그중 세번째 층위가 유난하다. 그 시선이 비루한 동시에 숭고한 우리네 삶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작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는 기원에의 탐색, 서울 변두리 자취 남녀들의 삶,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적 탐구가 유머와 페이소스를 등에 업고 촘촘히 펼쳐진다. 각각을 대표하는 소설의 제목을 따와 작품집의 면면을 간략히 스케치해 본다. 불꽃놀이는 자기 생명을 기획하고 재연하는 개체의 첫번째 시나리오(‘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이고,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집은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인의 거처(‘노크하지 않는집’)이며, 종이 물고기는 현실의 수면 아래를 찢어질 듯 힘겹게 유영하는 글쓰기의 상징(‘종이 물고기’)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개인의 서사, 개인의 윤리다. 마찬가지로 제목을 빌린다. 우리는 각기 우리 삶의 ‘영원한 화자’다.
두루 환영받은 첫 창작집 이후, 이즈음 김애란 소설은 더 몸을 낮추고 더 낮은 자리로 향하고 있다. 편의점과 원룸은 애당초 댄디들의 세련된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근래 발표한 소설들의 공간은 거기서 다시 여인숙(‘성탄특선’)과 반지하방(‘도도한 생활’)으로 옮아간다.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지상의 방 한칸마저 마땅치 않은 청춘남녀들에게 성탄절은 ‘역병’이나 다름없고, 도도하기는커녕 비애가 뼈아프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김애란의 인물들이 이제 누군가와 맞닥뜨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 누군가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다리청년이기도 하고,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이를 가진 사내이기도 하다. ‘영원한 화자’가 마침내 조우하기 시작한 이 타자들에 대한 인식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또 어디까지 밀어붙이는가에 따라 앞으로 김애란 소설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선가 김애란은 말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나한테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쓸 뿐이라고. 겸사인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영화감독도 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한다.”(차이밍량) ‘나’에게 절실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설만이, 안으로는 질문을 내장하고 바깥으로부터 퍼부어지는 질문 역시 끝내 견뎌낸다. 누구나 주목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주목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란 영 쑥스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그 염치불구를 무릅쓰게 할 만큼 김애란 소설은 동시대 비평가에게는 설레는 기쁨이자 섬세한 자극이다.(차미령|문학평론가)
뉴스메이커(07. 06. 12)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뿐이죠”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출판계와 저널리즘에 이르는 오늘날 문단의 불문율 중 하나는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진보적 리얼리스트들에서부터 전위적 모더니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젠 체하는 비평가들에서부터 자유분방한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 문학평론가 신형철(계간 ‘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최근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을 준 신인작가로(…) 박민규와 김애란을 꼽을 수 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계간 ‘창비’ 2006년 봄호)
소설가 김애란(28)에 대한 극찬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는 김애란이 창작집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순원문학상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몇몇 심사위원이 “규정을 바꾸라”며 반기를 들고 나서기도 했다. 김애란은 단편 몇 편만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가라는 게 당시 의견이었다.
1980년생인 소설가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하고, 제1회 대산대학생문학상 소설부문 당선(2003년)을 거쳐, 2005년 11월 단편 ‘달려라, 아비’로 역대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출간한 그녀의 첫 창작집 ‘달려라, 아비’(창비)는 한 달 만에 판매부수 1만 부를 넘기면서 문단은 물론, 새로운 소설에 목마른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칭찬만 있는 건 아니다. “김애란 소설의 특징은 개그적 재능이다. 자기 삶을 통일시켜줄 규범이 없는 세대니까, 개그처럼 즉흥과 되풀이가 많은 것이다”(평론가 유종호),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말 한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상황을 만든다. 장면만 제시하고 지나가는 TV 드라마와 같은 소설이다”(소설가 이청준)가 그것이다.
그러나 문단이든 독자든, 김애란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녀의 출연에는 ‘한국 소설의 샛별’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질질 끄는 문체와 화려한 수식어, 한 말 또 하고 또 하기를 거듭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기존의 여성 작가들 문장에 질린 독자들에게 김애란의 짧은 호흡, 수미상응의 작법, 군더더기 없는 경쾌한 문장,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 쿨한 문장은 신선함과 함께 우리 문단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 놓았다.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김애란 작품에서 찾는 ‘소설에의 희망’은 중성(中性)성과 우리 시대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다. 우선 그녀의 인물들은 자신의 성별에 의지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주어지는 특별한 상황은 없으며, 때문에 슬프거나 노엽거나 좌절하거나 그 처리과정도 중성적이다. 이 중성성이 소설의 명랑성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평가다. 이 점이 기존 여성 작가들과의 구별점이기도 하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성보다는 인간에 주력하고자 했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많은 작품에서 아버지를 등장시키는데, 봉건사회와 분단시대, 그리고 산업화라는 시대의 질곡 속에서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아버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가다 연탄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장발 휘날리며 콘돔을 사러’ 가는 남자가 김애란 소설 속 ‘아비’의 초상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우리 손자 세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던 차에 그 세대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 반가웠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들은 전통적 아버지에 비하면 아버지 같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의 소설에서 젊은이들은 ‘아비’에게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아비’를 버렸다고 자부하니, 새롭고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손정수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최근 격주간 ‘기획회의’ 195호에서 “발단부터 결말에 이르는 시간적 과정이 하나의 줄기로 매끈하게 꿰어져 있는 전통적인 단편소설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소설답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바로 이 점이야말로 김애란의 소설이 기존의 낯익은 소설들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뚜렷한 토대”라고 평한다.
한편 김애란은 “지각이 없는 작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을 쓸 때 나한테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라며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고 자신의 소설관을 나타냈다.(조득진 기자)
07. 06. 09.